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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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0    (진언수상록 76) 그럭저럭 살다의 묘미 댓글:  조회:2297  추천:0  2018-04-18
                                         그럭저럭 살다”의 묘미                                                          진 언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나 지기가 “그래 어떻게 보내고있소?”라는 문안하면 “허. 그럭저럭 살고있네”라고 대답하기가 보통이다.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말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우선 추상적가치가 부재한바 끝까지 해내지 않고 또 대수로이 여기지 않기에 맺고끊는 멋이 없이 대충대충 넘어간다.     글자, 혹은 한개 단어는 단순개념일수 있으나 어떤 글자, 단어는 그 민족의 문화, 집체의식을 담고있다. 음역해서 우리 말로 쓰이는 혼돈(混沌)에 깃든 혼합의미는 미묘하다. 강물이 흐르면서 수많은 지류가 흘러들어 류량이 부단히 커지고 또한 혼탁해지듯이 여러사람이 뒤섞여지니“혼(混)”이 생기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이시점에서 “혼”자를 중국의 민초들이 쓸 때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하 여“混饭吃,混日子”라는데 확실히 한갈래 삶의 길이라고도 하겠고 일종 생활방식이라고도 하겠다. 이에 상응되는“그럭저럭”은 일종의 처세술로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흑백을 뒤섞어놓고 무슨 일에 부딪치며 애매모호 하게 말하거나 대강대강 창졸 하게 엮어댄다. 이런 심성이 굳어지면 기괴한 판단표준과 행위준칙으로 삼기도 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는 속담을 기준삼고 물이 흐린김에 고기를 더듬어 잡으려는 이런 심리관성으로 하여 시시비비를 가르려하지 않고 비정한 현상에도“쓸데없이 참견말라”는 좌우명대로 마냥 구경군이 된다. 이런 심리자세를 가지다 보니 사람들이 오래동안 가치방향을 잃어버렸던것이다.     반대로 긍정적인 의미에서“혼”은 타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예측불가의 생활속에 수시로 막무가내한 일들이 발생하고 그만큼 파란만장한 인생려정이니 어찌보면 번거로운 인생살이에서 지어먹은 해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혼”이 중국사람들의 처세철학에 한가지 규범이 되였는지 모른다.     하기사 인생이 뭐 별거인가? 저무는 인생길에서 만단회포를 한마디로 개괄한다면 참으로 “그럭저럭 사는 인생”이라 하겠다. 욕망의 벽도 다 무너지고 가는 시간, 가는 순서도 다 헝클어진 고래희 고개턱에서 돌이켜보니 둥근 지구촌에서 두리뭉실 살자해도 이리저리 부딪치며 상처나고 아물고 또 래일에 웃으니 세상사란 요지경같다. 지어먹은 마음같이 되지 않는 인생인것을 악착스레 살았던들 남은게 무엇인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인생지침서들이 많더라. 혹자는 가르치되, 목표를 세우고 자신감을 갖고 환경에 익숙한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거기에 행동할 용기를 갖추어야 한다고,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은 라태와 무료함이니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고, 난관이라도 헤쳐나간다면 인생이라는 이 어렵고 복잡한 마당에서 반드시 최종승자가 될것이니 행동이 바로 생활에 충실하고 무료함으로부터 벗어나는 량책이라고,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하지 말고 세상을 헛되게 살았음을 한탄하라고, 다 일리가 있지만 기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쳐줄수 없 다. 말대로라면 인생학교 우등생이 되련만 그게 어디 마음먹은대로 되는 일인가?     각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래서 힘이 되는 조언들은 서로 모순되기도 하여 유의무의하게 어기며 살게 되는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나름대로 다르게 정의해 볼수도 있다. 인생의 동의어인즉 사랑이니 광의적의미에서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했다면 지성인이라 할것이니 단 한사람에게서라도 사랑을 받고 살았다면 사람답게 산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현시대 가장 절실히 필요되는것이 성실일진대 시종 성실하게 살았다면 이 사회에 가장 필요한 사람이였다는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이 모든것에 이신작칙 하였다면 과시 훌륭한 사람이라 할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무릇 개변이란 불가능함을 알고 있기에 될수록이면 시끄러움을 회피하고 되여가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는것이 준칙이 됨으로써 공공리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리익에 준하는 처세를 강구한다.  행복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감수에 머물고 있다는것을 알면 괴로움도 한걸음 물러서는 법이다.  잘났으면 잘난대로 살고 못났으면 못난대로 살아가기 마련인 인생이라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살고, 배고프면 배고픈대로 살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살면서 마음이 편하면 만사대길이요 자신에, 가정에, 사회앞에서 책임을 내세워서 그럭저럭 버텨내며 살아왔다면 과시 제잘난 멋에 살아온 인생이 아니던가?     바람직한 일은커녕 바라는 일도 하지 못하고 좋은 일은 고사하고 좋아하는 일도 맘대로 못하고 하고싶은 일이야 없었으랴만 마냥 해야 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온 인생, 결국 사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게 되는법인가, 심각했던, 가벼웠던, 목적의식적이였던, 자각했던, 몰자각했던 살아지는대로 살아온 인생이다. 고생도 그 한때, 슬픔도 그 한순간, 성공의 희열도 그 한때뿐, 인생이 고달파 못살것같았지만도, 번한 날이 없을것 같았지만도 그럭저럭 살아왔으니 그런 인생일지라도 사는게 좋았던듯싶다.     유감이 많아서 한많은 이 세상인가? 어느날 갑자기 나는 “나 먼저 가오. 잘있소” 라는 영별도 할새없이 훌쩍 떠날적에 돈도 명예도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것 하나 없고 동행자도 없으니 떵떵거리며 살아도, 안빈락도로 살아도 결국은 그럭저럭 살수밖에 없는 목숨이 인생인데 탐욕이 탐욕을 마중하고 추구가 추구를 뒤쫓느라 아득바득하니 목숨이 열개라도 당해내지 못할것이다.     자초에 사람들을 죽이고 살리던 엽전의 의미는“밖으로는 둥글게(圓), 안으로는 반듯하게(方)”처신하라는 뜻이였단다. 자신감을 갖고 안으로는 반듯하게 (方) 사는 것은 인생의 기본원칙이라 하고 밖으로는 둥글게(圓) 사는것을 세상을 이끌어가는 기술이라 한다. 달리말하면 눈에 보이기에 보이는만큼 보는 세상, 극히 일부분으로서의 세상을 세상의 전부로 인식하면서 살수 있다면 그게 바로 자족인게다.     그렇게 사는것이 지극히 물질적인 의식이라도, 확실히 보이는것 같은 저급적인 가치를 기준삼고 근근히 동물적인 본능으로 서식하는것이라해도 인생은 인생이렸다. 고기빵에 고기가 많으면 그만이지 빚은 맵시에 있지 않는것이다. 저 유명한 헤겔씨도 합리적인것은 진실하며 진실한것은 합리적이라고 말했거늘,     변화무상한 세상이요 인생일사 피일시 차일시로 그럭저럭으로 엮어진다. 그래서 순리대로 살라고 한다. 그럭저럭 살아오고 살아가는 초민백성이라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여서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잘 어울려 산 인생이였다면 사람냄새를 풍기는 인생을 산것이고 먼저 남을 생각하는 착한 마음으로 흉금이 넉넉하였다면 가난해도 부유한 사람으로 산 인생이 된다.     금의 가치는 오래동안 색갈이 변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인생의 진미는 오늘보다 래일이 더 낫고 이달보다 다음 달이 더 가치가 있을것이라 믿어야 삶의 진미를 맛볼수 있다. 믿기거나 안믿기거나 우리 모두가 명기해야 할 금언이 있다. 스스로 부풀린 욕망에 짓눌려 헐씨근거리지 말고 당신의 마음 눈을 밝히시라.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한것은 끝까지 가보지 못했기때문이지 세상에 풍물이 없기때문이 아니다. 아름다우면 정채롭다고 찬탄하고 좌절당했다면 경험이라 생각하라. 골이 깊고 아늑한 곳에 초목이 우거지고  물이 고여 깊은 곳에 고기들이 모여 드나니 그냥 리해득실에 초조함을 태우지 말고 순리를 따르면 그럭저럭 사는 삶이라도 무위도식하며 허송세월한 삶은 안되리라.                                              2015년 6월 15일        (2018년 7월 6일 연변일보에 발표됨) 
779    고전적 문학언어의 묘미 댓글:  조회:2450  추천:0  2018-04-12
                                             고전적 문학언어의 묘미                                                       최 균 선           시대와 더불어 변화,발전하는 언어의 자체규률을 어길수 없지만 좋고 아름다운 말인데 차차 쓰지 않아서 숨결이 끊어진 말들이 많아지고있다. 그러나 그것을 “낡투” 라는 감투를 씌워 랭궁에 처넣는다는것은 우리 말과 글의 전통성의 단절을 의미한다 고 사료된다. 병아리를 키우다가 죽어버리면 버리지, 죽은걸 닭장에 넣는다고 암탉이 되냐는 식으로 생각하는것은 단순하다.        왜냐하면 비록 잘 쓰이지 않던 단어라도 재능있는 시인이나 작가의 붓끝에서 거듭나서 보석처럼 반짝거릴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반지라도 오래동안 구석에 처박아두면 고철이나 다름없지만 다시 꺼내여 잘 닦으면 값진 금가락지 구실을 할수 있듯이 고전적인 언어라도 분위기에 맞게 재활용한다면 그 또한 멋스럽지 않을수 없다. 설사 그것이 숭늉맛같은것이라도 문장이 고전적인 맛과 향기를 풍길수 있다. 이런 문 장기법은 마치 방언을 잘 사용하면 지방특색, 민속적특성을 잘 발휘하는것과 같다.         언어는 류행복처럼 일시적인것이 아니다. 시대의 발전과 아울러 우리 말, 우리 글은 더없이 풍성해졌지만 뿌리없는 나무가 무성할수 없듯이 언어의 뿌리를 외면할수 없는것이 언어발전이다. 바로 작가들이 고전적인 단어라도 잘 닦아서 글줄속에서 야명주처럼 반짝거리게 하는 언어작업은 결코 보수적이만은 아니며 무모한 일이 아니다. 문학언어라 하면 그 특성으로 참신성을 첫손에 꼽지만 전통언어의 재활용과 상충되지 않는다. 세월과 더불어 색바래지 않고 그냥 향기를 풍기는 우리 말이기 때문이다.         례하여 세월은 아득히 흘러가고 시대는 많이도 변하였지만 우리 민족의 고전민요가 어이하여 오늘 날에도 그냥 우리를 사로잡고있는가. 한것은 고전민요는 우리 말, 글살이의 터밭이기때문이 아니랴싶다. 고전민요는 민중의 삶이요 생명으로서 들으면 가슴에 꿈틀거리는 한과 그 한을 흥으로 바꾸어 놓는 묘미가 있다.         그 생명력을 확보해 온것은 바로 우리 말의 매력이다. 들풀처럼 싹트고 한때 무성하여 그윽한 향기를 이 세상에 남기고 차차 잊혀지는것이 민요의 숙명인지 몰라도 언어자체의 숙명은 아니다. 민요는 로동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발생하였기에 일상의 언어가 그대로 원시적 민요로 엮어지였다. 민요에 쓰인 말은 다듬은 예술언어가 아닌 현실적 생활언어로서 로동생활속에서 곰삭아 우러나온것이고 인생고를 이겨가는 희 열의 순간에 저절로 터져나온 진실된 언어이다.         수백년 세월을 넘기며 밭고랑 사이로 전해지고 험한 산길이나 초가집 안방에서, 내가의 빨래터에서 불려진 가락, 한많은 녀인들의 애환이 맥맥히 흐르는 구성진 소리, 그 애원성에서 우리 소리와 우리 말의 멋과 맛이 그대로 녹아있음을 기쁘게 발견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고전민요는 우리의 말, 글살이의 시초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데 때로는 진솔하게 때로는 상징법으로 민중의 감정과 뜻을 구비구비 풀어낸다. 그래서 민요는 자초에는 개체의 소리였지만 결과적으로 민중전체의 소리이며 지역의 소리이면서도 전민족의 소리로 우렁차게 메아리쳐왔다.         민요의 노래말은 민중의 웃음과 울음이 씨줄과 날줄로 교차하여 만들어진 삼베와 같다. 부녀들 손발의 쉼없는 반복이 베틀작업이듯이, 민중의 한많은 사연이 세월과 더불어 빚어졌는바 마치 질그릇처럼 투박하지만 구구절절 민심이 묻어있지 않은것이 없다. 그리고 그 “질그릇속”에는 울음과 웃음이 공존하고있다. 이는 웃음으로 울음을 걷어내는 민초들의 삶의 지혜의 결과라 할것이다.         아래에 경남《초군 신세타령》을 보자. “에 -이 남날적에 나도 나고 내 날적에 넘났는데/어찌 부귀귀천이 같지 않고 항상 이놈의 지게목달(‘지게다리) 못면하고 항상 넘의 짐만 지고 살아지고이 아- 어떤 사람 팔자좋아 고대광실 높은집에 사모에 핑경 달고 만석농으로 누리건만 이내 팔자 어이하여 항상 지게 못면하고 항상 넘의 집만 살아진고 이후후후--”       나무군이 산에서 힘들게 나무를 하는 과정에서 슬프고 구성지게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는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는 매우 슬픈 소리이다. 그러나 민요 일반이 다 애원성에서 시작되여 애원성으로 끝나는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민요《령감노래》는 웃음을 유발하기에 결국 웃음으로 울음을 치유하는 희노애락으로 점철된 인생마당의 진실을 지극히 예술적으로 잘 밝히고있다.        “영감아 영감아 개떡 잡소/거리방애 품들어 개떡 쪘네/개떡을 쪄시마 작기나 쪘나 /서말찌 (서말치) 솥에다 한솥 쪘네/영감의 코에는 찬바람 나고 / 개떡솥에는 짐 이 난다”       질박한 언어속에 민초들의 삶의 양상이 생생하게 그려져있는것이 바로 우리 민요의 세계이다. 보다싶이 일상의 언어로 가슴에 피맺힌 이런저런 사연을 가감없이 풀 어냈던것이다. 민요자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민중의 창작품으로서 적자생존의 치렬한 경쟁을 겪어낸 우수한 예술의 결정체이다. 민요의 언어속에는 예술언어 로서의 깊이와 넓이가 그대로 엿처럼 녹아있다.        민요는 천심이라 하는 민심의 세기적 메아리이다. 민요속에는 바르고 정직하게 살려는 민심이 물과 젖처럼 융화되여있다. 동요처럼 천진무구하게 속뜻을 드러내기도 하고 참요(讖謠)처럼 상징과 풍자, 해학 등이 바늘처럼 예리하고 번뜩이는것이 또한 민요의 독특성이다. 생동하는 언어가 지닌 맛, 최적의 표현으로 다듬어진 멋이 민요에 있다. 민요의 언어속에는 다듬어진 예술언어에 못지 않은 묘미가 깊이 녹아들어 있다. 민요는 현실언어가 지니는 멋과 맛을 지니고 있으므로 격세유전의 예술언어로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그래서 민요는 우리 말의 보물고라 한다. 보다싶이 민요에는 우리 말을 구사함에 서 우리의 말, 글살이가 그대로 자연스럽게 문학이 되고 음악이 되여진것이다. 말이 말을 받아 소리로 이어질때는 말자체가 자연스럽게 음악성을 고유하게 된다. 말이 그대로 소리가 되고 음악이 되여 부드럽고 아름다운 리듬과 선률을 지니게 된것이다. 동시에 드러내고자 하는 말의 뜻이 정서적으로 은은하게 전달되고있다.        우리의 민요는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발생한것이지만 세련되게 다듬어져있다. 말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거칠고 투박한것을 피하고 유연하고 막힘없이 류통되기 마 련이다. 그래서 민요는 어떤 특수계층이나 전문가만이 향유하는 문화가 아니라 대중적이다. 중세기 사람들이나 현대문명인들이나 약속이나 한듯이 공감할수 있는 의미전달의 장(場)으로서 제기능을 훌륭하게 하여왔기에 우리 문화유산이 될수 있었다.      문학어와 일상생활어는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다는 목적성에서는 큰차이가 없다. 다만 문학어는 운률이나 의미의 사용면에서 소리를 기술적으로 다루거나 여러가지 의 미로 해석되는 말 등을 보다 재치있게 예술이 돋보이게 활용한다.         요컨대 시(민요도 포함)에서 언어는 예술성을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이다. 시의 예술성,감칠맛은 시어의 쓰임새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 것은 시어의 표현성, 독창성, 참신성으로 나타나는것이기에 시어는 예술적가치 구현의 한 척도가 된다. 민요에서처럼 고유어, 방언의 쓰임새에서 우리 말에 고유한 멋과 맛 그리고 향기가 그냥 짙게 풍길것은 틀림없다.       화제를 달리 전개해 보자. 지금 현대시 실험을 넘어 인제 하이퍼시까지 나온 상황에서도 김소월의 시가 왜 많은 사람들이 기리고 있을가? 김소월은 조선시대 근대시 발전도상에서 최초로 전통의 현대적수용을 새로운 경지로 보여준 시인이다. 신문학 초기 많은 시인들은 전시대의 삶의 가치관이 갑작스럽게 헝클어지게 된 현실속에서 주체적인 세계인식, 태도가 확립되지 못하였고 시창작방법을 확립하지 못한채 외부의 충격을 매료되였다. 그러나 시대 현실에 대한 옳바른 인식이나 전대 문학과의 관련을 상실한채 추구하는 서구시의 수용과 모방은 혼돈과 미숙성으로 귀결될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문예사조가 혼류하는 가운데 많은 시인들이 서구시를 모델로 한 실험에 열광할 때 소월은 우리 전래의 문학과 문화유산을 폭넓게 계승하여 뚜렷한 시적성 취를 이룸으로써 조선근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던것이다. 하여 소월의 시작품은 전통론의에 시금석과 같은 존재로 각광받았다. 소월의 시에 내재된 전통적 요 소와 특성, 특히 민요적 성격과 “한(恨)의 정서가 사람들의 공명을 불러왔다.         물론 문학의 전통성에 대한 연구와 계승은 궁극적으로는 당대현실과의 변증적 융함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자명하다. 따라서 단순히 전통방식의 답습은 무의미한바 창조적 비전을 외면하고 획일적인 전통지향은 복고주의에 불과하게 된다. 전통성에 대한 연구도 단순한 전통적요소의 재확인을 넘어서서 전통을 계승함에서 창조성과 현 재성을 규명하면서 협조적으로 되여야 함은 두말할것 없다.        재언명하거니와 우리의 고유한 가락, 전통적 률격을 현대적으로 재치있게 재생해 낸것이 바로 소월 시이이다. 례하여 “진달래꽃”의 률격을 처음 대할 때 도무지 낯설 지 않고 친숙하게 다가오는것은 바로 소월시가 일상어에 가까운 소박한 시어의 구사와 전통률격에 밀접히 접목되어 있기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노래말 구성법으로 볼 때 민요는 우리 말을 가장 부드럽고 향토적 정감이 넘치는 방향에서, 그리고 쉽게 부르고 쉽게 기억할수 있는 차원에서 구사한것들이였다. 그런데 정보화시대에 들어서면서 민요는 전통문화권에서 기능했던 역 할을 상실하고 현대풍의 대중가요속에서 사라지고있다. 소리가 사라지는 세계에 음악 이 넘쳐나는 이률배반적인 세상에서 우리의 민요문화는 어떻게 계승될것인가?           민요속에 인간삶의 보편적 정서와 지역공동체의 공감대를 느껴볼수 있다. 이러한 속성의 민요는 극단적으로 개인화되여가는 현대사회를 보다 따뜻하게 만들수 있는 매체로 존재할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도 민요가 일상의 삶에서 쉽게 접근할수 있는 노래문화로 거듭난다면 민요는 새 생명을 얻을수 있을것이다. 따라서 민요속의 멋과 맛을 더 깊이 료해하고 그것을 우리의 시문학창작에 응용한다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세계적 문화의 꽃으로 내세우는데 얼마나 의의로울것인가!                              2016년 12월 31일                (2017년
778    작가에게 도화원은 없다 댓글:  조회:2627  추천:0  2018-04-08
                                        작가에게 도화원은 없다                                                            최 균 선       우리의 문학은 지금 독자층의 확보라는 난제를 안고있다. 우리의 문학을 누가 읽어야 하는가. 오늘 날, 다른 전달매체에서 끌어간 더 많은 대중들이 읽어야 한다. 감각지상주의가 된 이 시대, 문제시 되는것은 보다 문학성이 짙은 작품으로 날로 나날이 더 많이 잃어가고 있는 독자들을 흡인하기가 쉽지 않다는것이다.    문학이 사회와 관련없이 쾌락적인 오락으로 전락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작가가 개변하기는 어렵다. 현시대 젊은이들의 상상력의 결핍은 문학에 대한 소외와 관련 되여 있다. 유혹의 상징은 희랍신화속 바다요녀의 노래이다. 문학이 바로 바다요녀의 유혹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문학은 자체에 고유했던 유혹력을 상실하였다.     문학이 인간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 나가는데 무력하다는 의론을 반문학적이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작가로서는 비관적인 평판이 아닐수 없다. 인류가 남겨놓은 문학유산은 휴지가 될것이고 선각자들이 쉴새없이 진행한 사고들은 모두 헛짓이 되고 말기때문이다. 문학이 대중에게 소외당하게 된것은 고도의 물질문명의 역설인가?     손중산선생은 인간을 세가지 류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는 “선지선각자(先知先覺者)”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생각하고 먼저 알고 먼저 깨달아서 먼저 행동하는 사람을 이른다. 항상 앞서가는 인간군의 선두주자들로서 희소하다     둘째는 “후지후각자(後知後覺者”로 다른 사람이 행동할 때 뒤따라가는 사람으로서 항상 행동이 한단계 느리지만 뒤늦게 깨달아도 나름대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 람이다. 때론 자존심때문에 맹종하지 않고 늦게라도 알아차려 제대로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로서 된 사람으로서 인생고를 겪어야 할 운명이다.     셋째는 “부지부각자(不知不覺者)”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우왕좌왕, 천방지축 살아가는 사람, 자신이 시대의 흐름에 앞서고 있는지 뒤처져 있는지 분간못하고 그냥 제멋에 겨워 인생을 살아가는 무리들이다..     손중산선생이 말하는 첫째 부류의 선각자가 되는 길이 작가의 길이다. 작가들은 흔히 불만족한 현실에 없는 문제들을 작품속에서 더듬어내고 그것을 펼쳐 보인다.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문학이 인류의 안녕과 복지에 복무하지만 비정상적인 환경하에서 문학의 백화원을 누가 지배하는가에 따라 악용되였다. 그러기에 무시로 딱한 처지에 놓일 부류가 문학인계층이였다. 그들은 문학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손에 의해 운행될지 알기도 하지만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문학 그 자체에는 리념이나 진영 따위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책에 씌여진 공리공담이다.누군가 자청해서 어용문인이 되였을 때 그는 인생의 패필을 쓰기 시작한것이며 랭소와 저주의 기둥에 매달리게 된다. 자고로 지조가 높다는 선비들도 리해득실을 앞세울 때에는 량지를 잃는다. 인간사회에서 리익을 초월하는 힘이 없기때문이다. 바람이 부는데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문인은 갈대의 순정에서 벗어날수 없다.     인간성이나 자유라는 개념이 상충되고 있는 인문환경속에서 문학에 혼신을 불태우는 작가들이 많은데 인류에 필요하고 청사에 길이 남을 작가가 될지 아니면 력사의 죄인이 될지는 각자가 선택할 일이다. 바람따라 돛을 달수도 있고 문인의 지조를 고집할수도 있는데 각자 선택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판정할것이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려는 지향은 불확실하다. 지금은 원고료로 갑부가 된 한 족작가들이 있지만 자초에 우리가 문학을 지망하던 그때는 원고료를 바라고 붓을 든 사람은 적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되돌려진 원고를 찢으며 절망하고 더는 문학을 하지 않는다고 만년필을 던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문학의 잘못이 아니였다.     작가는 마치 임자없는 묵밭에 금은보화를 묻혔다는 랑설을 곧이듣고 그 밭을 사서 구석구석 파헤치는 우직한 사람같다. 문학의 백화원에 눈부시게 피여나 향기 만방하는 글꽃들은 무수하지만 금은보화는 없다.작가는 망망한 바다에 한껏 펼쳐지여 희귀한 물고기를 끌어모으는 그물과 같기도 하여 그물에 가득하매 못된것은 내버리고 좋은것만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는 사람이기도 하다.     작가다운 작가는 고군분투할 숙명이을 타고났다. 또 하나 작가의 장인정신은 분투정신이다. 각고의 노력에 금전과 명성이 따라서지 못하여도 기죽지 않는것이 작가의 의지이다. 삶의 현장에 대한 관조와 재조명이 작가적 자각의 행위라면 문학은 비생명적이며 반인간적인 여러가지 요인에 결연히 맞서서 동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바람직한 인문조건을 마련하는 성스러운 작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산은 오르라고 있는것이지 보라고 있는것이 아니다. 땀을 흘리며 힘겹게 정상에 오른 사람이 즐거움을 맛볼수 있다. 문학백화원의 주인은 작가들이다. 고생스러움도 자아가치 실현도 내가 선택하고 내가 해석하는만큼 채워지고 달라진다. 억지가 상식을 짓밟고 진실이 혼란속에 질식되였지만 작가로서 굴절시킨 자기 합리화는 무모하다. 독자들의 사랑을 잃으면 문학의 존재리유를 상실한것이다.     인생은 행복한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하게 만들것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레브 똘쓰또이가 글을 쓴 까닭은 오로지 자신이 깊이 생각하여 깨달은바를 다른 사람, 세상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다소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이였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리되기 위해서 분투하였다. 인류는 너무 많은 진실을 감당할수 없지만 반대로 만천하에 범람하는 허위에도 진저리 치고있다. 작가는 그들과 함께 진저리만 치는것이 아니라 납함해야 할 사람들이다     진정한 작가는 “글뒤주”에서 나온적이 없다. 지식경제시대라 해도 작가에게 있어서 졸업장ㅡ학력(学历), 학벌은 별개의 문제이다. 작가에게는 학력보다 학력(学力) 이 효용적이기때문이다. 작가에게 확실한 학력은 곧 문학세계에서 발신되는 창조정신과 력량이다. 쉐익스피어나 쎄르반떼스나 졸라 등 대문호들의 학력은 미미했지만 인간연구에서 얻은 학력(学力)은 학력(学历)을 무시하고 인류의 문화발전에 불멸의 큰 획을 그어놓은 대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겸손하기 그지없는 이인(异人)들이였다.     참으로 진정한 문인은 교만하지 않는 자이다. 교만한자는 마치 다른 사람의 눈을 가리워놓으면 광명이 온통 자기에게 속하는듯 여기는 우자들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진정한 문인일수 없다는 사실을 바르게 알면 미래가 기약되지만 그것을 외면하면 희망이 없다. 작가가 옳바른 추구와 판단이 없이는 문학작품이 무료한 사람들의 소일거리로 전락할것이고 그로써 작가의 로동은 무효로동이 되고말것이다.     한편의 불멸의 시는 인성을 치유하는 힘, 영생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읽는 이의 가슴에 닿아 정감세계에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펼쳐주기도 한다. 인생현장의 골목길은 종래로 뒤공론하는 자들과 말밥에 오른 자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러기에 남의 기분에 장단맞추지 않는것이 작가다운 자세이다.      “도연명은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는데 도화원에서 씨뿌리고 밭갈수 있을가” 인간촌에 도화원은 작가들의 힘으로 만들수 없다.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을 도화원으로 만들수 있을뿐이다. 공연히 도고한체 하는 작가들이 글밭을 갈 도화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있다면 꿈의 세계도, 도피의 세계도 아닌 민중의 생활속에 있다.                                                            2018년 2월 12일
777    인권타령의 후렴구 댓글:  조회:2192  추천:1  2018-04-05
                                    인권타령의 후렴구                                                                                진 언     온세계 입가진 이들마다 외우고 있는 인권이란 기실 별게 아니다. 나이, 성별, 피부색, 국적, 신체 장애 등에 관계없이 인간으로 태여나면서 가지는 천부적인 권리이다. 따라서 아무도 빼앗을수 없고 또 남에게 양도할수 없는 자연적으로 주어지는것이 인권의 성격이다.     인권타령은 영원히 불리울것인바 마땅히 고창되여야 함은 두말할것 없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권리를 그 어떤 목적(기득권정치, 국제문제)하에 특정대상을 집탈하는 트집이라면 야비한 음모일뿐이다. 인권이란 보편적 개념이지만 구체적삶의 현상에서 체현된다. 이를테면 제아이를 하루세끼 밥먹듯 두드려패거나 극단적으로 학대,치사에 이르게 한다면 자식교육의 수단인것이 아니라 인권유린이 된다.     한국의 뉴스에 의하면 최근 5년간에도 12세미만의 아동 197명이 살해당한것을 비롯하여 아동학대건수가 총 4만 999건에 달하며 지난해에는 그 수가 1만 1 715건 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통계는 2011년에 6 058건이였던 아동학대행위가 근년에 들어와서 근 2배가까이 증가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부모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여 자식을 때려죽이거나 약을 먹여 죽인다음 산에 묻어버리는 끔찍한 살인행위들과 보육원들이 겨울철에 어린이들을 발가벗겨 밖에 내쫓거나 입에 손수건을 물려 방에 가두어놓다못해 건물 3층에서 밖으로 내던지는 끔찍한 범죄행위들도 있었다.     극도의 인간증오사상의 걸작들인가? 인간의 초보적인 권리마저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과자를 훔쳐먹었다'거나 '식탐을 부린다'며 양부모에게 투명테이프로 묶여 학대받다가 숨진 6살 입양딸이 두달동안 거의 굶은채 폭행당한 비극도 있다. 인면수심도 류만부동이지만 딸을 살해한후 시신을 불에 태워 죄증을 없애려는 극악무도한 그들에게 과연 인성이란게 있었을것인가?     이런 뉴스도 있다 “지난 8월 대구에서 ‘아동 폭행 사망 의심’신고된 4세 A양이 뇌사상태에 빠졌다. A양의 신체 곳곳에는 화상 및 멍자국이 가득했고 일반적으로 물고문의 징후로 판단되는 저나트륨증의 진단도 있었다.(세계일보)”이런 야만적인 아동학대행위는 개별적 인간들의 인성문제인가? 미성년의 인권의식이 제로인" 아동학대 정당화 사회"에서 설곳 없는 아동인권…끊이지 않는 아동학대사망, 그런 행위가 부단히 자행되는것은 인권문제가 아닌가?    “아동학대는 해마다 늘고 수법도 잔인해지고 있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4년 1만7791건, 2015년 1만9214건, 2016년 2만9669건으로 눈에 띄게 증가 추세다. 신고된 사건 중 아동학대로 판명 난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2014년에는 신고건수의 약 59%인 1만27건, 2015년에는 1만1000건(58%), 2016년 1만8000건(62%)이었다. 10건의 신고 사건 중 6건이 실제 아동학대인 셈이다.     특히 아동학대의 약 81%가 친부모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4개월 동안 아들을 화장실에 감금하고 학대해 사망한 평택 원영이 사건, 부천 초등생 아들 시신훼손 사건 등 부모가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 중이다. 전체 아동학대 중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인 영유아 비율은 해마다 증가해 지난 2014년 기준 15.2%에 달했다.”… 금수도 경악해 할 사건들이 비일비재이다. 일전에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폭행한 30대 아버지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어른들끼리도 인권의식이 비틀어져있다. 연합뉴스에 의하면2011년부터 2015년 까지 지난 5년간 로인학대 신고건수는 총 50,579건에 달하는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경악할것은 혈연의 아들딸,배우자들이 폭행의 주인공들이란다. 인간의 오복의 한가지 가 자식복이라는데 이 무슨 끔찍스러운 비극인가? 아들은 전체 학대행위자 1만 983 3 명(본인학대 포함) 가운데 8009명으로 전체의 404.4%를 차지했다.     이어서 ‘배우자(2766명, 13.9%)’와 ‘딸(2447명, 12.3%)’이 뒤를 이었다. 사위, 며느리와 손자녀 및 친척 등을 포함한 ‘가족ㆍ혈족에 의한 학대’는 1만 7181건으로 전체의 86.6%에 달하는데 학대행위자의 년령대는 40대와 50대가 위주란다. 이러루 한 뉴스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인다. 례하면 말다툼도중 40대 아들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A(79)씨를 체포해 조사중이라는둥, 자신과 안해를 폭행하는 아들 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B(7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는둥…애지중지 키워온 금 쪽같은 자식에게 흉기를 들이대는 “황혼의 분노”는 왜 일어나는것일가? 곤혹 그 자체라 할수밖에, 반대로 로(老)-로(老)학대도 날로 증가한다니 개체행악질만인가?      [플러스코리아타임즈]의 보도에 의하면 최근 5년 동안 성폭력을 저지른 로인도 4,623명에 달하는데 특히 지난해 로인성폭력 가해자수는 1,276명으로 2011년 629명에 비해 2배이상 늘었으며 매년 증가 추세란다. 국회 더불어민주당으 박모 의원이 16일 제출받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2011년 부터 지난5년 동안 성폭 력 범죄가해자는 11만8,755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65세이상 로인은 4,62 3명으로 전체의 3.9%라 한다. 판이 이러하면 흔히 말하는 개판이 아닌가?     한국이 자살률 세계 제1위라는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1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 하루 평균 자살자 40명이라는데 변명도 불필요한 슬픈 자화상이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자살자는 그로서의 막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한번 가면 다시 불귀의 길에 올랐겠지만 사정이 오죽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가?자살자 개인탓만으로 돌릴수 없다.     고등교육을 받은 소위 엘리트들의 인권의식은 어떠한가? 요즈음은 부산대학교 병원의 한 지도교수가 전공의들을 수년간 폭행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여론이 시끌벅적하다. 2014년과 2015년 부산대병원 A교수가 10명이 넘는 전공의를 상습적으로 폭행해왔다고 밝혔다. “성심병원 ‘장기자랑’ 논란을 계기로 의료계 곳곳에서 갑질,괴롭힘 문화가 폭로되고있다.     최근 드러나는 의료계 내부 폭력사례들을 보면 ‘교수-전공의-간호사- 간호학생’ 까지 의료계 권력관계에 따른 괴롭힘의 련쇄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부산대· 전북대 등에서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사례가 공개됐다. 그런데 이렇게 폭행을 당한 피해 전공의 가운데 일부는 간호사에 대한 ‘갑질’로 분풀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권력 서열에 따라 폭력이 재생산되는 행태는 간호사 사회 내부 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수간호사와 일반 간호사 사이에 만연해 있는 ‘직장내 괴롭힘’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의료계 안에서 ‘내리 갈굼’이라고 부르는 이런 식의 ‘연쇄 괴롭힘’은 간호대 학생들에게까지 이어진다. 간호학과 학생들은 병원 실습과정에서 약국 심부름·침상 정리·환자 안내 등 잡일에 시달린다.     일컬어 인류생명의 기사라는 사람들, 중국말로 “백의천사”의 흰옷속에 이런 흉물들이 숨쉬고 있으니 경탄스럽다. 입버릇처럼 인권을 론하기전에 묻거니와 인성을 선행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인성이 무어냐? 거두절미하고 사람의 됨됨이다. 인성의 반대어가 동물성이다. 인성이 없고 동물성만 가진 인두껍들에게 인권의식이란게 있을수 없다. 인성이 비틀어진 사회에서 인권타령을 부른다면 후렴구로 “제똥구린줄 모르고 남의 말한다 ”가 제격일듯,                                                    2016년 10월 23일ㅡ2017년 11월 14일
776    가장 아름다운 단어공부 댓글:  조회:2515  추천:0  2018-03-31
                                            가장 아름다운 단어공부                                                       최 균 선       세계 102개 비영어권 국가 4만 명을 대상으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선정하는 영국문화협회의 설문조사결과 가장 아름다운 말이“Mother (어머니)”였다고 한다. 기실 영어권에서만 “어머니”란 단어가 아름다운것이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게 느끼는 단어가 “어머니”이다. 사람은 누구나 따뜻한것을 좋아한다. 따뜻한 봄볕을 비롯해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물건들은 많고많다. 이 모든 따뜻 함을 상징하는 존재가 곧 어머니로서 따뜻함의 형용어로 애용되고 있다.     두번째 단어는“열정”이였다. 열정이 있다는것은 삶의 의욕이 있다는것을 의미하며 의욕이 넘친다는것은 생명의 약동을 의미한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몸은 로쇠하지만 신로심불로라는 말처럼 열정만은 상대적으로 “청춘”을 오래 유지한다.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삶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살아도 사는 보람을 떨칠수 있기 때문일가?     세번째는 “미소”이다. 낯선사람이라도 웃는 얼굴은 좋은인상을 준다. 거울을 마주하고 스스로 지어보는 미소띤 제얼굴을 보아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세상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니 뭇눈길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미소는 순수 조선말로 볼웃음으로서 입주변 근육을 많이 움직여서 짓는 빙그레 웃음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즐거움을 나타내는 표정이지만 불안을 표현할 때 씁쓸한 미소를 짓는 경우도 있고 눈은 웃지 않고 입귀만 실룩거리는 거짓미소도 있으니 절대경은 아니다.     네번째는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개념의 의미폭은 무한대하며 심오하기 그지없다. 단순한 단어풀이 차원에서는 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라 한다. 대저, 세상에 사랑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지니 가령 인간촌에 사랑이 없다면 사막같을 것이다.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라도 사랑이 없다면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사랑이 있기에 인간락원이 되는 것, 사랑이 없다면 천국이라도 가려하지 않을게다.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다면 세상은 적막할 것이기 때문이다.     광의적의미에서의 사랑은 문학,도덕,철학, 종교 모든 면에서 가장 근본적인 관념의 하나로 되여있다.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사랑을 둘러싼 사상이 전개되였고 동양에도 인(仁), 자비(慈悲)라는 사상이 있다. “인”이라고 하는것은 부모형제라는 혈연에 뿌리를 둔 사랑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런 감정을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넓혀가는것이 인도(仁道)이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의 시작이다"라고 말했고 사람을 가련히 여기는 동정심에서 사랑이 생긴다고 했다. 묵자는 "하늘아래 서로 겸애하라"고 말했고 친족과 타인을 구별하지 않는 평등한 사랑을 주장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慈)”는 진정 한 우정이며 “비(悲)”는 련민과 상냥함을 뜻한다.중국, 조선(한국), 일본에서는 자비라는 단어로 하나의 관념을 표현하여 왔다.     희랍어로 사랑은 에로스(erōs),아가페(agapē),필리아(philia)라는 세개의 단어로 표현된다. 이들은 사랑에 있어 본질적인 세 가지의 위상을 각각 가리키는 것으로 에로스는 정애에 뿌리를 둔 정열적인 사랑이며, 철학자 플라톤이《파이돈》에서 말했듯이 곧잘 광기의 모습을 보인다. 에로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삶, 실재와의 만남을 추구한 끝에 "삶보다 죽음이 바람직하다"라는 기이한 결론에 이른 것이리라.     다섯번째는 “영원”이다. 영원이란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 또는 시간을 초월 하여 변하지 아니함을 이르고  철학상에서는 보편적인 진리처럼 그 의미나 타당성이 시간을 초월함을 이르지만 한갖 념원에 속하는 추상적단어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가지고 있는 모든것들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아침이슬 같기에 영원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귀도 영화도 일장춘몽이라 한다. 영원이란게 없는줄 알면서도 영원을 약속하는 것은 인간의 기특한 바램일 뿐이다.     여섯번째는 “환상적”이라는 표현이였다. 환상은 현실적기초도 가능성도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이고 사상이나 감각의 착오로 말미암아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지만 아무튼 가장 매혹적인 단어이다. 팍팍하고 각박한 현실과 동경을 이어주는 금다리가 바로 환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환상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존재하지 않은 대상을 머리속으로 그려보다가 나래가 돋쳐 끝없이 확장됨으로써 전혀 현실적이 아니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것을 마음대로 상상하기에 이른다. 상상이든 환상이든 공중루각을 짓게 되다가 억지로 나가면 전혀 리치에 맞지않는 허황된 생각을 하거나 사실인 것처럼 굳게 믿어 망령된 생각에 이르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상상과 환상은 기특하지만 망상은 아니다. 인생은 환상으로 살 수는 없는데 도달한 곳이 망상의 낭떠러지여서야 되겠는가?        일곱번째는 “운명”이였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을 가리키는  말로서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로서 숙명과 곁들어 쓰기도 한다. 운명은 명(命)과 운(运)세이다 운명이란 한 사람의 선천적인소로서 운명에는 객관적이고 상대적인 온정성부분이 포함되여있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태여나는가는 선택할 수 없다. 이것은 명 (命)이다. 운(运)은 후천적인소로서 운명속에 주관적능동성을 가진 부분이다. 례컨대 비천하거나 령락한 가정에서 태여났으나 분발하였거나 운이 좋아 부귀공명을 얻는 경우를 이를 수 있겠다. 그래서 운명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명과 운은 반반이라 한다.     여덟번째는 “자유”이다.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 자기 뜻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위를 의도적행위와 비의도적행위로 구별했다. "비의도적인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강제로 한 행위와 모르고 한 행위이다. 그에 반해 의도적인 행위는 행위를 움직이는 원리가 행위자 자신속에 있으며 그 행위의 개별적상황을 행위자가 완전히 알고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루쏘는 자유는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지니는 속성이며 오직 개인에게만 속한다고 보았다. 인격의 자유는 자신의 사유재산권을 아무런 제약도 받지않고 완전히 제마음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 헤겔은 "그 어떤 필연도 내포하지 않는 자유라는 것과, 자유가 전혀없는 단순한 필연이라는 것은 추상적규정이며 따라서 옳지 않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구체적이고 그 자신속에서 영속적으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자유는 동시에 필연적이다."라고 피력하였다.     마지막 열번째는“평온”이였다. 평온이란 고요하고 평안함, 고요하고 평안함을 이르는 말이다. 평온은 평화로움을 모체로 한다. 평화는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 함. 평온하고 화목함을 이르는 말이라 해석하고 있다. 평화는 인류의 진화와 동보하여 만들어진 단어로서 세기적숙망이였고 어느 시대에서나 시대의 주어로 되였다.      영어권에서 선정되였다는 열개단어는 각개 다 깊은 함의를 가지고있지만 결국은 쉬바쵸브의 시구처럼 사랑과 자유에 귀결되고 또 그 모든것은 “평화”라는 이 하나의 단어에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지구라는 “어머니의 품”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자유를 누리며 대동세계에서 공생합일하려는 인류의 숙망은 꿈속에만 있을 수밖에 없으니 인류의 원초적비애는 영원한 비애로 남을 것이다.                                2012년 4월 2일 완고  ㅡ 2018년 1월 5일 (연변일보) 발표
775    지기를 떠나보내며 댓글:  조회:3014  추천:1  2018-03-28
                                                   지기를 떠나보내며                                                                        (고)김창석선생님의 령전에 올리는 글       삶과 죽음은 늘 한공간에서 호흡하며 우리들의 뇌리속에서 맴돈다. 사람이 함께 늙어가면서 언젠가는 누가 먼저 훌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챙겨 두면서도 정작 떠나보내고 보면 가슴이 착잡해지는 법이다. 한공간에서 마주보며 함께 호흡하며 웃고 울다가 인정사정 헤아리지 않고 떠나가는게 죽음이다. 그렇게 살뜰하게 보내다가 미련없이 떠나가는 길이 저승길이다.     그 나이에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는 병고라고 할 수 있지만 내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은 지인의 한 사람인 김창석선생님을 떠나보내며 허탈감과 상실감에 못이겨 김선생과 나의 인연을 되새겨보게 된다. 우리의 인연은 문필로 맺아진 셈이다.     1988년 당시 김창석선생님은 “천지”편집부에 소설편집이였다. 내가 도문시 교원진수학교에 있으면서 지지리 집고생을 하다하다 분통이 터져서 언감생심 써본 첫소설 “번지없는 집”을 투고하고 한강에 돌던진격이 되겠거니 하고있는데 김창석선생이 그해 “천지”3월호에 턱하니 내주시는 바람에 감격의 눈물을 찔끔 짜기도 했다.     그후 여러차례 소설창작학습반에 참가시켜 주었고 흥개호소설창작필회에도 불러주셨던 고마운 분이다. 그렇게 알게 되여 세월을 누비며 인정을 얽다보니 그를 문학선배,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소설편집으로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였고 마음으로 형님처럼 모셨다. 그처럼 김선생님은 나에게 많지 않은 지인이기도 하였다.    누구보다 나를 리해해 주고 긍정해주던 고마운 문학선배이다. 오늘은 가장 의미 깊은 말로 가장 깊은 추모의 글을 써서 올리고 싶다.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으셨고 참으로 문학도, 초학자들을 많이 사랑하였고 많은 배려를 돌려 신진소설가들을 육성한 선생님이다.     지나간 나날을 돌이켜 보노라니 나를 작가로 키워준 김창석선생님을 생각할수록 애석함을 금할수 없고 밤이 깊어가도 그냥 잠들 수 없는 나의 가슴속에서 추모의 글이 절로 이랑을  짓고있다. 다할길 없는 추모의 감정이 저 해란강처럼 되고 녹지 않는 그리움이 얼음꽃으로 피여있는 내 가슴속 깊은 슬픔을 어찌 서투른 붓으로 다 그려 낼수 있으랴, 진실하고 따스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지상의 소임을 다하고 바야흐로 오려는 봄날을 보지 못하고 먼 산에 눈꽃처럼 깨끗하고 순결하게 한생을 마감한 덕망높은 김창석작가님, 세월이 멀리 가도 앞으로 내내 내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을 그리움으로 다가설 김창석선배님!     처음 연변병원에 주원했다고 하기에 우리 수필회에서 몇사람이 문안갔을 때만도 사람을 알아보려고 자꾸 머리를 들어 둘러보고 마침내 눈물까지 흘리시던 모습을 보며 적어도 정신만은 올똘한 사람으로 출원하리라 믿었는데 다시 중의원으로 옮겼을 때 찾아가 보니 사람을 영 알아보지 못했다. 그후 미국에 아들이 와서 양로원에 안치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려던 차 다시 하남병원에 주웠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호전되였으리라는 기대를 앞세우고 두 번 찾아갔는데 사람이 점점 글러갔다. 출원하여 양로원에 다시 들어가기전 한번 다시 찾아뵙는다는것이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9일 낮, 김선생은 지금 어쩌고 있을가 하고 생각을 굴려보기도 했는데 홍천룡 회장이 김선생이 돌아갔다고 전화를 해왔다. 마지막 소환에서 고통에 모대기리라 예상은 하면서도 락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우도 눈물을 흘린다는 이른봄 2월의 찬바 람이 옷깃을 스미는 날이 계속되고 있어서  혹한이 선생님에게 그토록 혹독하였을가? 근심도 고통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기를 기원합니다. 고이 잠드소서.                                                                      2017.2.10
774    (중편소설) 동토대의 인연 댓글:  조회:2222  추천:0  2018-03-27
                                                  동토대의 인연                                                       최 균 필(유작)                                                          호즈 쇼펑            세월이 흘러 흐르는 동안 이런저런 인연들로 얽히는 인생마당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만남과 또 그만큼 많은 헤여짐은 망각의 언덕에 묻혀버리는데 수난의 년대 북국의 동토대에서 맺은 인연들은 끈끈하게도 오늘에 이어지고 오래 살다보니 끊길듯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인연의 끝에서 다시 만남을 가지게 되였으니 감개무량하지 않으랴,     30여년전 어두운 밤, 흑하지구 손오군마사육장의 림업국운수잠에서 눈물로 헤여진후 그냥 편지거래는 있었지만 서로 살기가 바빠서였던지 만나보지 못하고 그리움만 간직하고 있는데 상해에서 살고있는 호즈-쇼펑(耗子-小鹏)이 지난 국경절기간 꼭 만나고싶다며 할빈ㅡ상해의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보내왔다. 우리 세식구가 상해유람을 할 기회가 생겨 기쁘다기보다 그토록 만나보고싶었던 쇼펑을 다시 안아볼수 있게 된것이 나로서는 격동 그 자체가 아닐수 없었다.      만리벽공에 날아오른 남방행 려객기는 구름을 헤가르고 나는 운해를 내려다보며 아득히 먼 저 곳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는 추억의 언덕을 찾는다. 세월도 많이 흘렀으 니 까막골의 앳된 홍위병들이 인젠 50대의 장년들이 되였을것이다. 사연도 많은 북대황에서 인생길의 시작부터 준엄한 시련을 겪다가 마침내 나서 자란 상해탄으로 돌 아간 그들은 각자 자기의 인생길을 멋지게 장식하였으리라. 고마왔던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노라니 까불이 쇼펑의 모습이 추억속에 떠오른다.           내가 손오군마사육장에서 상해지식청년 쇼펑과 생사지교를 맺게 된 계기는 그가 일컬어 “지주” 에게 복수한다며 엄청나면서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건이였다. 때는 화창한 봄날아침이였다. 그날도 여느때처럼 종자말에게 여물을 주고는 목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솔로 살뜰히 빗어주는데 말이 무슨 신호를 보내는듯 앞발을 탕탕 굴러댔 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엉덩이에 난데없는 칼자국에서 피가 방 울방울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리한 뾰족칼에 깊숙히 찔린게 분명했다. 어느 쳐죽일 놈이 말못하는 짐승에게 몹쓸 짓을 했단말인가?     상처가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혹여 파상풍이라도 들어가면 해방패세대와 맞먹는 종자말이 죽을수도 있다. 나는 겁이 더럭 나고 맥이 탁 풀려 주저앉고말았다.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육하고 훈련시키는 내 가 수쇠를 차게 될 판이다. 내 처지가 처지이다보니 입이 열개라도 해명할수 없고 해석한다 하더라도 내 말을 믿어줄 사람도 없었다.     나는 사색이 되여 가슴만 쥐여뜯다가 문뜩 범에 물려가도 정신만은 차리랬다고 어떤 생각이 뇌리를 때렸다. 말궁둥이에서는 그냥 피가 흐른다. 정신을 펄쩍 든 나는 소독수로 상처를 깨끗이 씻어내고 된장을 한줌 발라서 지혈시켰다. 그리고 붕대를 부착시켜놓았다. 말은 아픔이 좀 가셔졌는지 더는 갈개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한담? 보위과에 제보한다면 선의는 남천방이 되고 불낸 놈이 불이야 하고 소리치는 격이라고 단정짓고 나는 원흉으로 락인찍을게 뻔했다. 오묘한 범죄심 리학도 풀 필요가 없다. 목에 걸면 목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이 살판스러운 시국에 속절없이 당하게 되였으니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그저 사고를 미연에 방 지 못한 사업책임이 아니라 현행반혁명활동으로 간주될 엄중사고였다.     생각할수록 무시무시하여 숨이 꺽꺽 막히고 살이 떨렸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거늘 그저 당할수는 없었다. 자고로 궁하면 통하는 법 이다. 묘수가 떠올랐다. 원래 봄철이면 종자말들이 발정기라 진정을 못하고 울타리에 마구 궁둥이를 비벼대며 갈개는게 관례였다.     나는 낡은못 서너개와 망치를 찾아내여 말궁둥이가 닿일 기둥들에 못을 박아놓고 말털을 주어 못에 감아놓았다. 이른바 위조 범죄현장을 꾸며놓은것이다. 모든 일들을 눈깜짝할 새에 해치웠다. 하늘이 알고 말이 알고 내가 아는 일이였다. 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닌데 웬 신경을 쓰는가고 의문을 가질수도 있다. 어느 절에나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있다하지 않는가? 바로 내가 이 종마사양 장이라는 곳에서 원귀가 될수도 있으니 어찌 당황망조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울렁거리는 가슴을 눅잦히며 마라초 한대를 피워물고 얼없이 앉았다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제 저녁무렵 별명이 호즈(쥐)인 쇼펑이 별 요긴한 일 도 없이 사양실에 들와서 기웃거리다가 쫍쌀에 달걀을 터지워 버무린 여물을 맛갈스 럽게 먹고있는 종자말을 째려보며 무어라 욕질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그 자식이 한짓이구나!” 하면서 무릎을 탁 쳤다.     아니나 다를가, 조조를 말하면 조조가 온다더니 이튿날 어슬녘에 쇼펑이 슬며시 사양실에 들어왔다. 내가 의아쩍은 기색으로 덤덤해 있는데 호즈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권연두갑을 내들고 련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는 쇼펑의 심사를 모르지 않 지만 나는 짐짓 딴전을 부렸다.     “어이, 호즈야! 내가 너한테 좋은 일을 한적도 없고 더군다나 로유가 어마어마한 지식청년에게 좋은 일을 해서는 안되는 정치풍토인데 무엇이 감사하다는거냐?”     “따거야, 내가 저눔의 말엉덩이에 칼을 박았어, 저 짐승은 옛날 지주같이 맨날 계란 여나문개나 터치워 좁쌀에 버무려 먹는데 우리는 뭐야, 일주일 가도 달걀 한알 먹어보지 못하니 너무 억울해서 저 지주를 한번 투쟁했소. 지금 세상엔 투쟁만 잘하 면 출세하는 판에 이 까막골에서 명성을 날려보자고 그랬소. 그런데 숙사에 돌아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유치했소. 해방패자동차 세대와 맞먹는다는 저 쏘련의 돈하종자말을 해치려한것은 현행반혁명행위이니 무서워서 온밤 한잠도 못잤소. 오늘 새벽에 사양실에 가만히 와서 말을 살펴보니 따거가 치료해놓고 아무 내색을 내지 않으니 좀 안심되였소. 정말 따거의 도량과 인정에 탄복되였소.”     쇼펑은 나의 거친 손을 으스러지게 부여잡고 흔들어대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그는 바지주머니에서 귀한 술한병과 통졸임 한개를 꺼내여 고뿌에 가득 붓고 강호에 협객들처럼 한무릎을 꺾더니 두손으로 받쳐올렸다. “따거, 이 은혜를 잊 지 않을게. 우리 결의형제를 맺읍시다! ” 하고 말하는데 그의 거동이나 말에 조금도 거짓이 없어보였다. 우리는 이렇게 생사지교를 맺게 되였던것이다.                                  그립던 그 얼굴들        상해포동공항의 출구에 나서니 낯익은듯 서먹서먹한 전형적인 상해신사가 내 이름자를 큼직하게 쓴 종이판을 들고있었다. 뛸데없는 쇼펑이였다. 그 뒤에 잊혀진듯 채 잊혀지지 않은 그리운 얼굴을 한 신사들 몇이 서있었다. 이름은 일일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반갑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오래동안 헤여졌던 전우들, 아니 친형제들이 만난듯이 돌아가며 포옹하고 눈물을 머금었다.     쇼펑의 친구들이 으리으리한 식당에서 환영연회를 차렸다. 술이 몇순배 돌자 이야기판이 벌어졌다. 오래동안 격조하였던 지기들이 만나면 이왕지사들을 떠올리기 마련 이다. 쏘련 돈하의 종자말이였던 얼룩배기가 난산할 때 쇼펑이와 함께 애를 써주었던 고마운 친구들의 입에서 그때의 정경들이 다시 떠올려졌다. 역시 비상한 사연이였다.     해마다 봄철이면 망아지들이 세상에 태여나는 즐거운 시절이다. 갓 태여난 망아지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사람을 영 죽여주었다. 인공교배를 시켜서 밴 망아지들은 지 들은 자연생들보다 체대가 훌쩍 크지만 얼마나 온순한지 막 업어주고 끌어안고 뽀뽀해주고 싶어진다. 나는 오동통하고 귀엽게 생긴 사내애들을 보면 공소사에 들어가 개눈깔사탕이며 우유과자며 한봉지 사서 고사리같은 애들손에 쥐여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늙은총각이다. 내가 로유가 정상인이였더면 벌써 간장병이나 술병을 들고 심부름할만 녀석이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다른 락이 없고 말못하는 미물이지만 종자말을 알뜰살뜰 키워내는것이 다시없는 락이였고 사양실에서나 벌판에서 일에 몰두하는게 사는멋이라면 멋이였다.     어느날, 아침일찍 사양실에 나가보니 얼룩배기 103호 말이 양수가 흘러나오는것 이 곧 새 생명이 태여날 징표였다. 나는 마른 풀을 두툼하게 깔아주고 따스한 소금물 에 수건을 적시여 말의 목이며 등허리, 배아래를 닦아주었다. 말은 건초우에 벌렁 눕 더니 용을 썼다. 그런데 다리 하나만 나오다 말고 다른 발이 태줄에 걸려 나오지 못 하고있었다. 뛸데없는 난산이였다. 백에 하나나 있을법한 종자말의 난산을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무슨 마땅한 방도가 나지지 않았다.     급하면 부처님 다리에 매달린다고 나는 지식청년들의 숙사에 달려가 쇼펑이네를 사양실에 나오라고 명령아닌 명령을 내리고 천방지축 사양실에 돌아와보니 얼룩배 기는 땀벌창이 되여 버둑거리는데 보기가 안쓰러웠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 생명을 낳을 때 산고를 겪어야 한다는것을 상식으로 알고있었지만 너무 불쌍했다. 말은 안 깐힘을 쓸때마다 머리를 쳐들다가 마침내 기진맥진했는지 그냥 퍼더버리고 코를 벌 름거리며 단김을 뽑아올리는데 무슨 변이라도 날것같이 내손에도 땀을 흥건했다. 어떻게든 망아지의 뒤다리에 감긴 태줄을 끊어버려야 망아지가 순리롭게 나올것인데 묘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기사 늙은총각님이 이젠 말조산사까지 되였으니 내 인생 에 천방야담을 엮게 된것이 아닌가,     쇼펑이 동아리 일여덟명이나 데리고 달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바오래기를 나누어 주며 말의 뒤발을 단단히 동여매게 하고 힘깨나 쓸 애들에게 바줄을 단단히 잡으라고 당부했다. 말이 용을 쓰며 뒤발질 하다가 채이기나 하면 대갈통이 박살나지 않으면 옆구리를 걷어채이면 갈비뼈가 여러대 끊어질것이니 만일을 대비해 둔것이다. 다른 애들에게는 말의 모가지를 꽉 누르고 있으라고 명령하고 소금물에 팔목까지 깨끗이 씻은후 말의 자궁에 밀어넣 더듬어보니 태줄에 감긴 새끼말의 뒤다리는 어미말이 용을 쓰는 바람에 더구나 타래떡이 된것같았다.     손가위가 있다해도 한손으로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때 쇼펑이 내귀에 대고 태줄을 끊어놓으면 안되느냐고 말했다. 나는 무슨 수가 있으면 한번 시험해 보라고 하며 팔을 빼냈다. 쇼펑은 내가 땀벌창이 되여 태줄을 풀려고 끙끙거릴 때 궁리가 따로 있 어서 자기 손톱을 벽돌에 예리하게 갈아놓았다. 쇼펑은 아예 샤쯔를 벗어부치고 팔을 말의 자궁에 깊숙이 넣고는 태줄을 잡아쥐고 엄지와 식지의 손톱으로 가위질하였다. 한참 역사질하더니 피가 가득묻은 팔을 꺼내면서 태줄이 끊어진것같다고 했다.     나는 다시 손을 넣어 망아지의 뒤다리 두개를 가지런히 쥐고 어미말이 용을 쓰는 힘을 빌어 천천히 잡아당겨 인산했다. 성공이였다. 나는 말의 뒤발을 묶은 바줄을 풀 어주고 말의 목도 누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암말도 숨을 고르롭게 쉬기 시작했다. 아 침해살이 비쳐들면서 어렵사리 세상에 나온 망아지가 용케도 일어나더니 주정뱅이처 럼 휘청거리며 어미말의 머리맡에 쓰러졌다. 마치 제에미에게 건실하게 낳아주어 감 사하다고 절을 하는것처럼 느껴졌다. 어미말도 긴혀를 빼물고 제새끼의 머리와 몸에 묻은 양수를 말끔히 핥아주었다. 짐승의 모성애도 인간의 모성애보다 못지 않게 위 대한것이다. 성스러운 그 정경에 가슴이 찡해났다. 또 군마 한필의 탄생에 모두 환성을 질렀다. 나는 쇼펑의 어깨를 부여잡고 엄지를 내들며 눈물을 흘렸다. 천진해 빠진 그가 지주를 투쟁한다고 종자말의 엉덩이에 칼을 박더니 보배덩이같은 두 말을 살려내느라 땀벌창이 되여진 장한 모습을 보고 어찌 감동되지 않으랴, 나는 쇼펑이와 함께 애쓴 집체호청년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 흔들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햇다. 나는 사양실 한구석에 놓였던 궤짝을 열고 고량주 한병과 내가 담근 김치며 말리운 산나물무침이며를 꺼내놓고 축하연을 차렸다.     로유(누가 먼저 나를 로유(老右)라고 했는지 나의 두번째 이름이 되였다.) 처음으로 상해지식청년들에게 깊이 머리숙여 경의를 표시한것은 그 살벌한 분위기속에서도 그들에게 인정이 남아있고 동정심과 사랑의 감정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동되였기때 문이였다. 나는 쇼펑과 그의 동아리들에게 모두의 애정으로 태여난 망아지를 소상해 라고 이름짓는것이 어떠냐고 제의했더니 모두 대찬성이였다. 우리들이 저를 두고 웃고 떠들어치는줄 알기는 한듯이 제어미를 닮아서 미마인 망아지가 아장아장 걸어오더니 나의 어깨에 턱을 걸고 술한잔 달라듯 두눈이 올롱해 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런 망아지가 너무 귀여워 죽겠다고 서로 다투어가며 안아주고 어루쓸어주었는데 망아지는 능청스레 들이대고 있었다.     그런 비상한 사연이 있은후부터 우리는 진정 친하게 되였다. 앞으로 로유가 해방 도여 조선에 나간다면 따라가겠다고 예약하는 청년들도 있을 정도였다. 한것은 군마 사육장에서 조선예술영화 “꽃파는 처녀”,“남강마을의 처녀들”,“보이지 않는 전선” 등 영화들을 상영하였는데 수천명 지식청년들에게 대호감을 가지게 하였다. 중국에서는 살벌한 광란에 정신없을 때 수정주의라고 비난받는 조선에서는 천리마운동을 벌리여 공업화의 길로 내달리고 있었기에 동경하게 되였는지 모른다.                        밭고랑 타고 세계혁명하던 나날         서로 찧고 께끼며 이어가는 이야기판에 주역은 그래도 이름짜한 호즈였다. 아무 참새를 굴레를 씌울 꾀돌이였고 괴짜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여느때처럼 기음철이 되자 군마사육장의 직공들은 물론 가족들까지 총동원되였다. 군마사육장에서 경작 하는 콩밭은 사래가 어찌나 긴지 한다하는 실농군도 한고랑을 채나가지 못하고 허리가 끊어질듯 해서 휘청거릴 지경이다. 나는 제초전투의 림시지도원으로 농업대에 내려가 지식청년들을 이끌고 콩밭, 강냉이밭, 감자밭김을 맸다.     일에는 늘 베돌이던 쇼펑이 허리띠에 호미긁개를 차고 초모자를 상해탄에 건달처럼 엇비슴하게 제껴쓰고 제법 로농인양 밭고랑을 타고 스리슬쩍 매나가는것이였다. 풀을 매는지 어루쓸는지 매고 나간 자리에는 고개를 쳐든 풀들이 코웃음치고 있었다. 그래도 문화대혁명의 기치를 바싹 따라 할 일도 많은 광활한 천지에 용약 내려와서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며 밭고랑타고 세계혁명을 하느라 혁명기세가 충천하는데 누가 감히 이렇쿵 저렇쿵 시비를 걸수 있을손가!     황차 농업대에 대장이 한 말이 있음에랴, “지식청년들이 북대황의 밭머리에 나서는것만도 일대혁명이고 북대황의 만두를 먹는것도 혁명이다.”명창중에 명창이라 해 야 할것이다. 화제를 돌려 우리의 기특한 쇼펑동지의 뒤를 따라가 보자.     흰적삼깃을 깃발처럼 날리며 제일 앞장에서 김을 매며 나가는 쇼펑이야말로 선줄군이나 다름없었다. 헌데 기계화라도 이런 현대적기계화가 또 있으랴, 글쎄 쇼펑이의 호미날은 어떻게 분해했는지 옆채기 혁띠밑에서 쉬고있고 호미갈구리만 밭고랑을 이 리 긁적이고 저리 긁적거리는데 모르고 보면 아주 능숙하게 호미질하고 있는것같았다. 밭고랑에 마른 흙에 거죽만 헤집어놓아서 잠시 흙에 깔린 풀들이 가관이였다. 풀들은 마치 차라리 뿌리채 뽑아버리던지 중둥무이 하던 할것이지 이렇게 머리도 쳐들지 못하게 하느냐고, 보다보다 이런 괴짜는 처음이라고 비웃는듯싶었다.     후에 알고보니 쇼펑이 보란듯 앞장에서 한절반쯤 매여나가는데 재수 좋게도 호미날이 떨어져나간것이다. 호미날를 수리하려면 4,5리나 되는 농기계수리소에 가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생각해낸 묘수가 북대황의 콩밭에서 솜씨를 펴게 되였다. 아무튼 땅거죽을 핥튼 풀뿌리를 희롱하든 남보기에는 엄연히 기음을 매고 있는것이라 누가 감히 왈가왈부하며 지식청년들의 혁명열의에 찬물을 끼얹을수 없었다. 쇼펑은 눈감고 야웅하는 식으로 얼렁뚱땅 한고랑을 매고는 밭머리에 나가 큰대자로 나누어서 하늘을 바라보고있었다. 흰구름이 푸른하늘에서 뭉게뭉게 피여올라 궁궐을 짓고 밭머리에서 새들이 재잘거리고 있는 북국의 풍경을 보며 두발을 묶고 춤을 추둣 부자연스러운 청춘을 괴롭게 짓씹으며 몰래 눈물을 짓고 있었으리라.     인중승천이라 무릇 무슨 일에서나 은을 내는것이 인해전술이다. 사람이 많이 동 원되다보니 콩밭, 옥수수밭, 감자밭김을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아 후닥닥 해치웠다. 제초대회전이 대승리로 끝난것이다. 그다음은 련속작전이다. 호미를 벽에 걸어놓고 새판에 청초베기 돌격전이 벌어졌다. 청초를 기계로 베여 건조시킬만한 뉘연한 언덕배기는 모두 고무바퀴뜨락또르가 도맡고 기계가 들어가지 못할 늪가나 강가에는 사람 들이 갈구리같은 긴낫을 휘둘러 베여눞혔다.     풀베기작업은 콩밭김처럼 엉너리를 치며 겉둥치기를 할수 없었다. 한사람이 반 메터너비로 낫질하며 나가면 뒤사람이 또 반메터너비로 뒤따르는 작업이여서 뒤를 돌 아볼새 없이 바지런히 낫을 휘둘러야 하였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여 일손을 놓게 되 자 호즈는 식당운반차가 오기전에 모욕이나 한다며 빤쯔바람에 개울물에 뛰여들었다. 한두메터 너비의 개천은 물이 어찌나 맑은지 조약돌들이 환히 들여다보이고 물고기들 이 꼬리치며 발가락을 물어뜯는것도 빤히 내려다 보였다.     천년천년 수천년을 흘러도 사람구경을 못한 물고기들이 처음 사람냄새를 맛보더니 앞다투듯 모여들어 종아리며 허벅지를 툭툭 쳐대면 제멋이였다. 쇼펑이 종아리를 물려는 버들치 한마리를 잽싸게 잡아서 기슭에 냅다 뿌리였다. 쇼펑이 련신 물고기를 잡아올리자 탄성을 올리며 구경하던 다른 청년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빤쯔바람으로 내물에 뛰여들어 뒤질세라 물고기들을 잡아올렸다.      난생처음 오염이 없는 산골물에서 목욕하며 맨손으로 한뼘씩이나 되는 버들치며 붕어, 메사귀를 잡아보는 상해지식청년들은 신명이 나서 괴성을 질러댔다. 한여름에 도 뼈가 시리게 차디찬 산골물이라 오래 배기지 못하고 기슭에 올라와선 이발을 덜거덕거리면서도 좋다고 시시닥거렸다. 쇼펑이가 물고기 밸을 따서 버들가지에 꿰여 구 워먹자고 제기하자 여기저기서 삭정이를 주어다고 불을 지펴놓고 말몰이군들이 호주 머니에서 소금알을 꺼내 물고기밸속에 넣고 구우니 천하 별미였다.     대도시 상해에서 만리먼 북변의 까막골에 내려와 빈하중농으 재교육을 받으며 먹어보는 천렵이 이토록 재미날줄을 몰랐을것이다. 남녀청년들이 코밑에 수염을 그려가 며 서로 흉을 보면서 고기를 씹어대는 모습들이 얼마나 정겹던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풀베기로동판에서 물고기로 성찬을 먹은탓인지 로동열정이 충천하였다.                                 동토대에 피여난 애정꽃                                                                                                이야기판에 끼여들지 못하고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얌전하게 앉아있던 이 로유의 젊은안해도 추억의 한페지로 펼쳐졌다. 그도그럴것이, 자기가 주례를 섰던 비상시국 의 비상한 결혼식이 쇼펑을 비롯한 다른 상해지식청년들에게는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새겨져있었던것이다. 나로 말하면 더구나 어렵게 피운 소중한 사랑의 꽃이였다.       개똥밭에도 이슬 내릴 날이 있고 로총각에게도 결혼하는 날이 있게 될줄이야, 전 해 겨울 나는 친구의 연줄로 할빈도위구 송포조선족 마을에 색시가 있다고해서 선 보러 갔었다. 색시감은 한족중학교를 갓나온 김순이라는 처녀애로서 셋째딸이고 그 아래 13살짜리 머슴애, 9살짜리 남동생이 있고 김순의 아버지는 페결핵으로 고생 하다가 3년전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김순의 어머니는 남도태생으로서 일본말도 할줄 알고 일본춤도 잘 추는데 몇마디 주고받는 말에서 마음씨가 무던한 녀인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내가 할빈농기계학원 에 다니다가 우파모자를 쓰고 흑하지구 손오군마사육장에서 로동개조를 하는 불우한 청년이라는것을 들어서 알고있다며 지금 처지가 그래도 좋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좋은 사람이니 사위삼아 아들삼아 딸을 맡기겠다고 내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김순에게 손바닥만큼 큰 모주석휘장을 례물로 주었다.     전대미문의 동란시대에 우파분자인 나로서는 그저 육신이 살이있으니 말할줄 아는 로동기계일뿐인데 열여덟 앳된 처녀가 무슨 멋이나 알고 그러는지 서른살도 넘는 로총각에게 자기 인생을 맡기겠다고 하자 나는 내가 너무 리기적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면서도 약속하고 말았다. 그동안 그냥 꿈속에서 막연하게 동경하던 꽃같 은 처녀와 백년가약을 맺고 돌아온 나는 절망속에서 될대로 되라하며 자포자기하던 자신의 정신세계부터 재건설하였다. 사랑의 힘이란 참으로 어떠한 기적도 창조할수 있는가보다. 모든것을 얼어붙은 동토대에 이제 꽃피는 5월이 오면 꽃다운 색시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고 생각하니 깊이 묻어두었던 일만가지 욕망이 봄싹처럼 움터서 황페했던 나의 마음밭이 푸르러졌다. 나는 대번에 열살도 더 젊어진것같았다.     동북만주 맨 북녘인 동토대에 바야흐로 새봄이 기지개를 펼 때 김순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하늘아래 첫동네, 대낮에도 승냥이떼가 출몰하고 마을에까지 덮쳐들어 집 징승이랑 잡아가는 이 까막골에 흔인등록 증명서와 호구까지 아예 떼여가지고 제발로 걸어왔다. 이런걸 두고 움안에서 떡함지를 받았다고 해야 할것이다. 나를 그처럼 믿 어주는 장모님도 고마왔지만 나어린 김순이가 눈물나게 감사해서 사람들 눈이 아니 라면 막 안아올려 빙빙 돌며 춤이라도 추고싶었다.     이튿날 군마사육장 정공처에 가서 결혼증을 내러갔더니 정공간사는 나를 거뜰떠 보지도 않고 홍위병완장을 팔에 두른 김순이를 마치 우주인이나 보는듯이 아래우를 훑 어보더니 책상을 쾅 내리치며 삿대질까지 하며 욕부터 쏟아냈다.     “니야, 니! 너는 계급의식도 없느냐? 지금 어느때라고 매매혼인에 속히워 다니는 가? 뿌싱ㅡ먼저 조사해 봐야겠어…”    나는 서리맞은 배추잎같이 되여 해석 한마디 못하고 섰다. 속은 뻔했지만 처마가 낮으면 머리를 수그리라고 고양이앞에 나선 쥐인체 하기로 작심하였는데 김순이가 정공간사의 코밑까지 다가들며 당차게 맞받아쳤다.     “조사연구도 없이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요. 이 분이 우파라지만 모주석의 말씀처럼 인민내부모순으로 처리할 사람이지 계급의 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디까지나 쟁취해야 할 사람이구요. 우파분자는 결혼하지 못한다는 법이 있는가요? 게다 가 이분은 조선족인데 우리 조선족들은 옛날부터 매매혼인을 모르는 민족이라구요.”     그는 당지에서 떼온 혼인등록증명서를 척 내놓으며 결혼증을 내지 못할 리유가 없다고 도리를 캤다. 문화대혁명이 사람들을 웅변가로 만드는 모양인가, 원래 야물 딱지게 생긴데다가 혁명의 세례를 받아서 무섭고 두려운것이 없어보였다. 아직 중학 생티도 채벗지 못한 조선족처녀애가 너무 당차게 나서자 정공간사도 유관부문에 청시 해야 한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전화를 걸고 돌아앉은 정공간사의 퍼러딩딩하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곰상 스럽게 이것저것 업무적으로 물어보고는 붉은도장을 박은 결혼증을 내주었다. 그러 면서 혁명정신으로 남편을 잘 교육하며 잘 살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나의 가슴에서 무거운 널장이 뚝 떨어지는듯했다. 만사대길이였다.     후에에 알게 된 사연이지만 정공간사가 전화한통으로 일변한데는 그럴만한 까닭 이 있었던것이다. 군마사육장에 제일책임자인 오서기는 중국인민지원군에서 전업한 군관으로서 상감녕전투에서 2등공까지 세운 전투영웅이였지만 사선을 넘나들며 인 정사정을 남달리 터득해서인지 나를 대함에서 우선 인간적이였다. 그는 조선말도 잘 해서 나와 통하는 무엇이 있었다. 가끔 시찰을 내려오면 막사에 찾아와 말을 잘 사양 했다고 치하도 해주면서 함께 말을 타기도 하다보니 막역한 사이가 되여졌다.     오서기는 내가 성실하고 책임성있게 일한다는 보고를 받으면 비록 우파모자를 쓰 고있지만 문화수준이 높고 성품이 정직한 사람이라며 잘 교육하면 좋은 사람이 될수 있다고 긍정해주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번에 얼룩배기의 난산을 재치있게 처리하여 두필의 말을 다 구한 공로도 지도부에서 인장해주고 있다면서 쇼상해를 잘 키우라고 당부까지 하던 그였으니 정공간사가 전화를 걸었을 때 홍위병조선족처녀가 자진하여 시집을 올때는 그럴만한 사연도 있을것이니 실망시키지 말고 숙사도 크고 깨끗한것으로 배치해주라고 지시를 내렸던것이다.       후일의 얘기지만 나와 김순이는 오래 비워두어서 빈대가 많을것을 예상하고 66분가루를 밀가루에 반죽하여 벽틈서리를 메우고 흙으로 잘 매질한후 낡은 신문 지를 싹 뜯어내고 새로 신문지로 병을 도배하였더니 꽤 정갈한 신혼방이 되였다.  부뚜막도 뜯어 조선가마 두개를 걸어놓으니 조선족살림집맛이 풍기여였다…     각설하고, 나는 장모님이 기다리고 있을가봐 20리 큰길을 버리고 강을 건너야 하는 지름길에 들어섰다. 강가에 이르자 나는 이미 내사람이 된 이상 내우를 할게 없다고 생각하며 빤쯔바람으로 등을 돌려대며 김순이더러 업히라고 독촉했다. 김순이는 난생처음 당하는 일이라 얼굴이 홍당무우가 되여 돌아섰다. 지어내는 애교가 아니라 수집음 그 자체였다.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어린애처럼 와락 둘쳐업었다. 몽글거리는 처녀의 젖가슴이 등에 밀착되자 전기선에 닿인듯해서 몸이 부르르 떨리였다. 녀자의 단입김이 목덜미를 간지럽히고 내 목을 꼭 끌어안는 두팔이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고있었다. 그것은 이성에게서만 느끼는 사랑의 전류였다.                   잔치날은 “5.1로동절”날이였다. 일생에 여러번도 아니고 한번 하는 결혼인데 그 흔한 붉은꽃도 달아보지 못하고 수수한 곤색옷을 빌려입고 색시는 시대의 류행을 따 른 군복차림이였다. 호즈 쇼펑이 주례를 서고 음으로 양으로 친하게 지내던 상해지식 청년들이 제각기 녀자친구를 데리고 잔치객 겸 그 시기엔 천방야담같이 렵기적으로 결혼하는 제또래의 조선족홍위병처녀를 구경할겸 해서 모여들어 자리를 빛냈다.     그들은 세수대야며 보온병, 주전자, 세수수건 등을 결혼선물로 가지고왔다. 지금은 그런것들이 결혼례물이만 코가 삐뚤어지지만 그때는 조련치 않은 선물들이였다. 이날 잔치집마당은 김순이가 부른 “천안문의 붉은태양(조선말)”에 이어 아리랑을 부 르고 도라지, 노들강변 춤까지 추어서 인기가 대단했다. 상해처녀들은 영화 “꽃파는 처녀” 에서 주인공이 입었던 조선족 치마저고리를 한번 구경하자고 야단치는 바람에 김순이는 장모가 시집갈 때 입었다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마당에 나서니 상해처녀들은 김순 이와 서로 사진을 찍는다고 벅구작을 피웠다. 사람들은 이 군마사육장에서 로 유의 잔치날처럼 흥성하고 사람사는 냄새를 피우기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어린 나의 색시는 인차 상해처녀들과 잘 어울렸다. 휴가일이면 상해처녀들을 휘동하여 남산에 가서 개암을 따왔다. 개암밭이 지천인지라 벌방아낙네들도 개암철이 면 삼삼오오 몰려왔다. 안해는 넓직한 우리 집 마당에 말뚝을 박아 1호 2호…계선을  나누어 놓고 처녀들이 따온 개암을 말린후 키로 잘 까불려서 자루에 넣어주기까지 하 였다. 마음씨 고운 장모를 닮아서인지 안해는 이웃을 잘 도와주고 색다른 음식을 만 들면 나누어주었다, 가는 정 오는 정으로 인심을 얻은 안해는 군마사육장 직공가족들 속에서 인기인물로 되였다.     특히 김장철이면 장모를 모셔다가 배추김치를 큰독 다섯개나 되게 담그었다. 김 치를 담글때면 상해처녀들도 모여와 일손을 거들어주면서 김치를 담그는 기술을 배웠다. 상해에 돌아가면 한번 솜씨를 보인다면서 수첩에 적으며 까근히 익히는 처녀애들 도 있었다. 안해가 해마다 그렇게 많은 김치를 담그게 된것은 오서기부인의 부탁도 있고 지식청년들의 식당에도 보내주기 위해서였다. 깊고 넓은 김치움에서 조선족의 음식중에 명품인 김치는 담그는 사람의 인정과 함께 무르익었고 김치를 나눠먹으면 서 돈주고 살수 없는 아름다운 인연을 엮어가는 안해덕에 나도 인끔이 올랐다.                          아픔을 먹고 자란 사랑나무       우리 군마사육장의 농업대에서는 홍당무우, 배추, 감자를 많이 심었다. 검은 흙토지대라 땅이 비옥해서 밑거름을 주지 않아도 강아지만큼 큰 감자들이 바고랑이 터지 도록 달렸고 홍당무우도 팔뚝같이 길고 굵었다.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다람쥐처럼 바지런히 돌아쳤다. 그리고 채소를 사러오는 외지 자동차 들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특히 석유공인들이 많은 대경에서 배추며 감자를 실으려 오는 자동차들이 많았다. 여기서 꾸며낸 이야기같은 이야기가 엮어지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 대경유전에서 자동차를 몬다는 40대 중반의 낯모를 사람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 군마창에 로유라는 조선족우파분자가 홍위병처녀와 결혼해서 산다는 말을 듣고 희한하기도 하고 동족이라 반가워서 찾아왔노라고 구구이 해석하면 서 붉은손이 검은손을 잡고 흔들었다. 누구를 속심주고 사귀는 시대가 아니기도 하거 니와 생면부지의 사람이 불쑥 찾아든지라 격정같은것은 없었다. 그러나 동족이라는 그 한가지 리유만으로도 랭대할 마음은 없는지라 나름껏 후대해 주었다.     어색한 분위가 점차 화애로워지자 그는 전업군인으로 대경유전에 배치를 받아 운수대에서 일하며 안해는 연변녀자로서 공인식당에서 일하고 아들과 딸이 있는데 한 족학교에 다닌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이 까막골에 끌려와 10년이 넘도록 살면 서 처음으로 조선족을 만나 조선말을 하게 되니 저도모르게 지인같이 느껴져서 닭을 잡아 고아서 술상을 차렸다. 나는 자아소개를 하지 않았다. 이 군마사육장에 로유인 꼬리방즈가 하나 살고있다는것은 눈코가 있는 사람은 다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게다가 무엇을 자초지종 털어놓을 멋도 없었다. 내가 뿔이 세개 난 도깨비도 아니지만 사람마다 뱀을 만난듯 경계심을 가지고 슬슬 피하는 처경에서 길바닥에 나딩 구는 돌멩이처럼 이리 채우고 저리 채우는 자신을 부연해서 말할것도 없었다. 이 까 막골에서 말궁둥이나 따라다니며 사람 그리운 고생을 하다보니 남도 내마음처럼 생 각하며 곧잘 믿어주군 하는 민충이가 다되여 있던터라 마음속으로 믿어지기도 했다.     그는 닭곰을 얻어먹은 신세를 갚느라고 그랬는지 래일 아침에 마지막으로 감자를 실어가니 집사람이 혹 친정에 가고싶어한다면 태워주겠다고 선심을 썼다. 흑하ㅡ할빈 의 국도가 지나가는 곳에 있으니 다른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다며 좋은 소리는 다하였다. 하긴 안해는 가끔씩 엄마소리를 하며 친정에 갔으면 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하 던터러 나는 귀가 솔깃해졌다. 교통이 불편하기로 말이 아닌 여기서 할빈에 한번 나 간다는것은 꿈에 천보기였다. 시집이라고 와서 한번도 친정에 가지 못한 안해가 안 쓰럽기도 했거니와 이 역시 인연이라고 여기며 쾌히 응낙했다.     그런데 북두칠성이 서쪽에 기울어지고 삼태성도 조으는 한밤중이 되도록 웬일인 지 잠들수 없었다. 삼라만상도 잠에 곯아떨어지고 어디선가 부엉새가 청승맞게 울어 싸고있었다. 이제 날이 밝으면 결혼하여 석달, 밀월의 단맛을 만끽하지 못하였는데 잠시일지언정 안해와 갈라진다고 생각해보니 마음이 도무지 개운치 않았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도 머리에서 맴돈다. 장모님이 어리디 어린 귀한 딸을 나에게 맡기고 가셨는데 어찌 색시를 빈손으로 친정에 보낼수 있으랴싶어 한푼두푼 모아두었던 돈을 보짐에 챙겨넣고 개암이며 검정귀버섯이며 밀가루포대며 다 챙겼지 만 자꾸 무엇인가 빈구석이 있는것 같았다. 안해도 말은 내지 않아도 친정에 가서 엄마며 어린동생들을 만날 일을 생각하니 잠이 아니오는지 돌아누워 꼼지락거리더니 어깨를 달싹이고 있었다. 묻지 않아도 그 마음을 읽을수 있는 나였다.     큰동생은 열세살, 작은 동생은 아홉살인데 세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고생 하다가 마침내 옮겨앉을 생각을 하였는데 막내딸을 치우고 훗남편을 맞아들이려고 서두른것도 있겠지만 나를 진심으로 믿었기에 어리디 어린 딸을 밀어맡긴것이라 생각되였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몰래 울고있는 안해가 더구나 불쌍해졌다.    “얘, 너 지금 울고있니? 친정집에 간다고 하니 너무 좋아서 그래?”    나는 아내의 헝클어진 뒤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달래였다. 그러자 기다렸던듯이 내쪽으로 홱 돌아누우며 내목을 꼭 껴안고 엉엉 울어대는것이였다. 어찌나 서럽게 우 는지 나도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쳇, 너 좋은 길 떠나면서 왜 청승맞게 밤중에 울어? 무슨 일이야?”     “아저씨, 아니, 자기야, 왜 사람이 그리 민해요? 녀자는 문턱을 넘으며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는데, 그리구 처음 만나 좋은 소리는 다하는 사람을 어찌 믿고 천리길에 어린 안해를 딸려보내려고 생각했어?나 친정에 안갈거야, 나를 용서해줘요”     용서라니 이건 또 무슨 홍두깨냐? 돌이켜 생각해보니 짚이는데가 있었다. 김순이는 눈물코물 범벅이 된 얼굴을 내 가슴에 묻고 두손으로 내 턱수염을 어루만지면서 실토정을 하였다. 대경의 그 운전수는 자신이 김해김씨인데 김순이와 동성동본이니 녀동생을 만났다며 정이 철철 흐르도록 너스레를 떨었다. 어린각시가 닭곰도 맛있게 끓였다고 찬사를 개여올리며 술잔도 부딪치며 여간 살갑게 굴지 않았다. 외롭게 자란 김순이가 우연하게 친척을 찾은것이라고 나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웬걸, 이튿날 내가 말떼를 몰고 목장에 나간것을 낌새채고 그자가 도적고 양이처럼 우리 집에 기여들었다. 녀자는 제륙감각이 있다더니 안해는 바느질광주리에 서 가위를 찾아 팔소매에 감추고 고슴도치럼 가시를 치켜세웠다. 그자는 바깥사람은 벌써 일하러 나갔느냐며 련락도 없이 불쑥 뛰여들어 미안하다고 하면서 자리를 뜰듯 이 하면서도 슬밋슬밋 주저앉아 횡설수설하더란다.     몇번 감자실러 와서 묵어가며 우리들에 대한 좋은 얘기, 나쁜 얘기를 많이 들어 서 사정을 잘 안다면서 젊은각시가 어쩐 연고로 이런곳에 시집왔는지 알수 없으나 이 빌어먹을 까막골에서 힘겨워 어찌 살겠느냐며 아직 아이도 없는데 옮겨앉으라고 구슬리였다. 실은 친동생이 하나 있는데 스믈네살이고 월급쟁이란다. 3년전에 결혼 했으나 처가 딸을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그만 저 세상으로 간후 한살인 조카애를 자기네가 키우고 있단다. 애가 불쌍해서 마음씨가 고운 새엄마를 얻어주려고 하던차 마음에 딱 뜨는 김순이 를 만나게 되였으니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간곡히 권고하더란 다. 마음이 약해빠진 김순이라 애가 너무 안되였다싶어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혼자 결정할수 없으면 이번에 자동차에 태워줄테니 친정에 가서 엄마와 상의해 보는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자꾸 침을 놓더라는것이였다. 그때 그 시절에 농촌호구인 녀자가 월급쟁이에게 시집을 간다는것은 하늘에 별따기요 정말 시집을 가게 된다면 복이 넝쿨채로 떨어지는 격이였다. 그자는 궁벽한 이 까막골에 이런 봉황이 있는것을 보고 아마 고운 꽃이 소똥무지에 꽂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잘만 하면 좋 은 제수를 얻게 된다고 혼자 김치국부터 마셨던것이다.     그날 점심때 운저수가 술병이랑 챙겨가지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말로는 답례방 문이라고 하였다. 술한잔 입에 대였다가 떼도 얼굴이 관운장이 되는 나인지라 억지로 응수하고 있었다. 그와 김숙이가 어떤 의미로 눈을 마주치고 잔을 부딪쳤는지 알배없 는 나이지라 안해가 공짜로 차를 타고 신선같이 친정집문앞까지 가게 되였으니 좋은 인연에 복을 받게 되였다고 은근히 좋아한 나였다.    …어린 안해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난 나는 화가 상투밑까지 솟구쳤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저런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고 황차 꽃같은 어린안해가 잠간 마음이 흔들렸다면 그역시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많은 남편을 끝까지 믿고 따르겠다고 “죽어도 화냥년이 되고싶지 않았다”고 이실직고한 안해가 불쌍해졌다. 나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년장자로서 김순이를 포용해야 했다.    나는 하마트면 놓아버렸을 금쪽같은 나의 파랑새을 꼬옥 껴안아주며 어린애처럼 보듬어주었다. 세상엔 아비죽인 원쑤는 두고두고 복수해야 하지만 녀편네를 훔쳐간 원쑤는 어쩔수 없다고 하였다. 한것은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기때문이다. 김순이가 나의 동가슴을 북두드리듯 마구 두드리며 옹알거렸다.     “자기야, 순진한거야? 등신인거야?제 색시를 훔쳐가려는 꿍꿍이도 눈치채지 못하 고 그저 제맘처럼 믿어주었으니 민충이 아니고 뭐야? 나 몰라, 몰라!”     어린나이에도 때론 나보다 더 엉뚱한 궁리를 하고 당차서 험악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며 새 가정을 위해 일편단심인 김순이가 나에게는 안해이면서도 그냥 녀동 생같기도 해서 응석부리는대로 받아주기로 마음먹은 나였다. 나는 김순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또 인간적으로 고맙기도 해서 다시 한번 으스러지게 껴안고 사나이 피맺힌 한을 속으로 짓씹어서는 통채로 삼키였다.     닭이 울었다. 닭이 울어야 새날이 밝는가? 닭이 울지 않아도 새 날은 밝는 법이다. 하다면 나의 새 아침은 언제 밝아올것인가? 나는 새벽잠이 몰려와 눈을 깜빡이는 안해를 도닥거려 재워놓고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 밖에 나왔다. 하늘을 바라보니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내 별자리는 없었다. 늦가을 새벽 바람은 차디차서 몸이 으스스해났지만 나의 금쪽같은 어린안해가 잠들어있을 따스한 보금자리를 피부로 느끼며 나는 동가슴을 툭툭 치며 뇌까렸다. “인생나무는 아픔을 먹고 자라고 사랑나무도 아픔을 먹고 자라는 법이다. 그래 억세게 살아야지…”     드디어 날이 훤히 밝았다. 멀리서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당가에서 곡갱이를 찾아들고 기다렸다. 자동차에서 무슨 신호를 보내는듯 헤트라이트를  쩍거렸다. 그러기를 한참 반복해도 집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이 없으니 운전수가 차문 을 열고 내려서 이쪽으로 어정어정 걸어왔다. 나는 밤새 간신히 잠재웠던 분노를 화산같이 터뜨리며 성난 호랑이마냥 그자에게 덮쳐들었다. “이 개보다 못한 놈의 새끼야, 오늘 대갈통이 박산나봐라!” 벼락같이 소리소리 지르며 달려드는 나를 보자 그자는 “사람살리오ㅡ”하고 비명을 지르며 잽싸게 운전 대에 뛰여오르더니 차문도 닫지 못하고 자동차를 굴리였다. 나는 따라가다가 곡괭 이를 냅다 뿌리였다. 적재함에서 불꽃이 튕기며 쾅! 하는 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흔 들었다. 나는 발을 구르며 듣지도 못하는 욕설을 퍼부었다.     “개보다 못한 자식, 너따위도 조선놈새끼냐? 다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이제 다시 이 까막골에 들어서는 날에는 뼈도 못추릴줄 알아라…”     이듬해, 안해는 떡돌같은 아들을 턱 낳아주었다. 나는 상해지식청년들과의 인 연과 인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을 “상해”라고 명명했다. 조건이 그래서 그렇지 언녕 애엄마가 되였을 상해처녀들은 조선족애가 너무 복상스럽게 생겨서 귀여워 죽겠다며 만나면 서로 빼앗듯 안고돌았다. 애가 돌생진에는 실타래를 여나문개나 걸 어주며 무 병장수를 축원해 주었다. 그후에도 대경에서 감자실이 자동차들이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그 저주맞을 놈의 운전수는 대갈쪽을 내밀지 않았다…     더불어 살아가게 마련된 인간세상이라 인연이 없이는 살수 없는 인생이다. 그러나 인연에도 좋은 인연이 있고 나쁜 인연도 있는 법이다. 좋은 인연은 도움을 주고 나쁜인연으로 해서 골탕을 먹기 십상이다. 내가 비록 무리를 잃은 승냥이처럼 혼자 으르렁거리며 살지만 하늘이 불쌍히 여겨 점지해 주었는지 천실만실로 얽혀진 어린안해와 아름다운 인연을 맺을수 있었기에 삶의 용기를 되찾았고 호사다마라 그 나쁜 심보를 가진 운전수처럼 되는 호박에 송곳질하는 놈과 잠시 악연을 맺았기에 나 는 또 한차원 성숙해지게 되였던것이다…                                 호즈의 야간도주       이번에는 쇼펑이의 야간도주가 화제에 올랐다. 더러 알고있은 친구들도 있었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까막골을 벗어났는가를 이야기 하란다. 말하자면 길어지지만 아무 래도 유격전같던 그날밤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했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해, 청사료도 넉넉히 마련했고 밀가을도 끝냈는지라 군마사육장총부에서는 사흘간 대휴가를 내주었다. 군부에서 방영대도 내려와 구락부에서 련사흘 영화를 돌렸다. 김순이는 아이를 둘쳐업고 상해처녀들과 영화보러 가고 없을 때 나는 방목할 때 늘 쓰는 연장들을 손질하며 소일하는데 쇼펑이 무거워 보이는 큰가방을 들고 찾아 왔다. 무슨 깜투끈인 알지 못했지만 여느때처럼 무조건 반가웠다. 그런데 쇼펑은 무 슨 일이 있어서 왔으련만 낑낑 깝자르고 있었다.     “야, 이 앙큼한 호즈야, 이 따거에게 무슨 못할 말이 있다구 그래? 어서 말해봐!”     그제야 쇼펑은 울먹울먹해서 사정얘기를 털어놓았다. 상해에서 어머니가 병이 위 급하다고 세번이나 전보가 왔는데 정공처에서 종시 청가를 비준해주지 않고 있는데 집체호친구들이 너도나도 돈도 모으고 하향할 때 가지고 와서 고이 간직하고 있던 여 러가지 물건이랑 지원했다면서 현금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병치료에 보태겠다고 하는데 그 효성이 기특해서라도 발벗고 나서야 했다.     “쑈디야, 너무 속태우지마라, 상해는 병원도 좋아서 엄마병이 나아질거야,”하며 동생처럼 꼭 껴안아주고 힘을 내라고 고무격려해 주었다. 쇼펑이가 돌아가자 나는 선 자리로 보짐을 들고 간부주택에서 사는 중국인민지원군으로 퇴역한 텁석부리아저씨를 찾아가 쇼펑이가 지금 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자초지종 얘기해주고 도와달라고 청 탁했다. 한뉘 군대에서 몸을 담근 텁석부리아저씨는 성미가 괄괄하면서도 인정만은 후더운 사람이였다. 그는 이 일은 자기에게 맡기라며 가슴을 툭툭 쳐보였다. 그는 이 군마사육장에서 로기술원이여서 덕망이 있는지라 하루밤 사이에 후닥닥 처리하였는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털보아저씨는 돈묶음을 건네주며 장사얘기를 들려주었다. 필경 새 산품이 아니니 창부공소사의 가격보다 훨씬 눅게 하고 부표도 받지 않는다고 하였더니 베개수건, 타올, 런닝구, 침대보, 양말따위를 너도나도 다투어 사갔다고 했다. 오히려 사지 못한 사람들이 의견이 많았단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는 선자리로 달려가 쇼펑에게 돈을 건네주며 빨리 집에 부쳐보내라고 독촉했다.     나의 마음은 역설적으로 더없이 개운하였다. 돈을 인차 마련해준 기쁜 마음도 있거니와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는데 청가를 내주지 않는 불공평한 처사에 일 격을 가한듯한 기분이였다. 아무리 준엄한 비상시국이라도 인지상정도 다 말아먹으니 지랄도 네굽을 안고 하는 지랄발광이 아닌가! 입한번 잘못 뻥긋해도 천길나락에 떨어 지는 살벌한 시국이였지만 속에서 끓어번지는 불만을 누를수 없었다.     그런데 한 사흘이 지나서 멜가방 하나를 달랑 멘 쇼펑이 나를 찾아와서 작별인사 를 하러 왔노라고 눈을 씀벅이더니 룡진역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달라고 했다. 상부에서 청가를 내주지 않으니 목숨을 걸고라도 도망쳐서 엄마의 림종을 지키려 작심했 단다. 자유의 목숨이요 자유의 공민인 쇼펑이지만 군사생활같은 여기 종마사육장에서 도주한다는것은 그저 사민의 일반 탈주가 아니였다. 하지만 눈물이 글썽해서 나만 지켜보는 쇼펑이가 너무 안되여서 도와주겠다고 응낙했다.     대낮에는 어림도 없으니 밤에 어둠을 타서 행동하자고 다독여놓고는 내 숙소에서 한잠 푹자며 심리준비를 잘 하라고 일렀다. 나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지르 려고 하는지 모르지 않았지만 래일은 삼수갑산에 가더라도 이 효자를 30리 밤길에 혼자 내놓을수 없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힘세고 걸음이 빠른 적토마를 도적질 하듯 끌어내서는 안장을 얹고 배끈을 단단히 죄였다. 그리고 말을 먹일 강냉이알도 한가방 넣고 소금도 한줌 푼히 주머니에 넣었다. 쇼펑이가 길에서 먹을 만두 몇개와 짠지도 잊지 않고 그의 멜가방에 넣어주었다.    준비를 마친 우리는 말잔등에 올라타고 야간도주의 길에 올랏다. 밀가을이 끝난 들판이라 로출되기 쉬웠지만 밤안개가 엄호하여 주어 마음놓고 말을 달릴수 있었다. 자기 잔등에 올라탄 두사람이 갈길이 촉급한것을 알아주기나 하는듯 적토마는 걸음도 경쾌하게 잘 달려주었다. 나는 용진역으로 가는 길을 접어버리고 림업국운수잠을 목 표로 말을 내몰았다. 세시간 남짓이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합실에는 아침뻐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밤샘을 하며 기다리는 사람들로 벅적거 렸다. 나는 쇼펑이 뻐스에 오르는것을 보아야 시름놓을수 있었지만 안해에게 간다 온다는 말한마디 없이 떠나왔으니 알면 얼마나 속을 태우랴 싶어져서 섭섭한대로 돌아서야 했다. 갓스므살에 나는 앳된 쇼펑이와 30대 초반을 넘어선 나는 친동생을 떠나보내는듯 애절한 마음을 눈물로 적셨다. 앞날을 기약할 처지도 아니여서 더구나 마음이 아리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쇼펑을 굳게 안아주고 일로평안을 기원하며 말을 내몰아 어둠속을 내달렸다. 나는 도적처럼 집에 들어가 이불속에서 긴장을 풀었다.                                                                        못잊을 “8대금강들”       이번엔 내가 백골난망의 은혜를 입었던 그 날의 처절했던 정경을 떠올리며 집체호 “8대금강들”에게 술을 붓고 건배한후 이야기했다. 화두를 떼기전부터 눈물이 앞서며 목소리가 울먹울먹해진다.          쇼펑이 까막골에서 깜쪽같이 사라진지 사흘째 되는 날 한밤중에 누군가 우리 집 대문을 사납게 두드려대며 고함지를 소리에 나는 초풍하듯 놀라 벌떡 일어났다. 도둑이 제발저린다고 할가,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아닌보살을 하기로 작정하고 태연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인민민주전정이다!” 민병련장이 사납게 고함지르며 들이닥쳤고 그 뒤에 전공간사가 기간민병 세넷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대적과 맞다들린듯이 제쪽에서 공연히 긴장과 공포심을 키우며 큰대문을 지켜서고 정주문도 지켜선후 가택수색에 들어갔다, 민병련장과 정공간사는 도끼목수인 내 솜씨로 짠 허수룩한 궤짝을 열어젖히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헌옷가지를 일일이 털어보고 안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고리짝도 발칵 뒤집어놓았다. 수상한 세수수건 하나, 양말한짝도 찾아내지 못한 그들은 창고며 닭우리까지 뒤져보았지만 바라는 물건을 찾아내지 못했는지 나를 무섭게 째려보고는 바람같이 뛰여들었다가 바람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결국은 닭쫓던 개 울 쳐다보는 격이 되고만것이다.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였고 섬약한 안해는 놀란 새끼사슴처럼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제코가 석자인데도 싱거운 걱정으로 화를 자초하는 이 로유를 만나 아니할 고초 도 겪고있는것이다. 인간최하층에서 계급투쟁의 과녁이 되고있는 남편으로 하여 당당 한 빈하중농의 딸이 이런 수모를 받으니 얼마나 억울하랴, 결코 열화금강이라는 좋은 말처럼 문화대혁명의 세례를 받는것도 아니였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가, 이튿날 구락부에서 투쟁대회가 열렸다. 구락부의 두 벽에는 “우파분자를 타도하자!”, “하향지식청년재교육운동을 파괴한 반혁명분자 최××를 타도 하자!”, “조선수정주의 분자를 타도하자”라는 구호가 적힌 프랑카드가 높이 걸려있었 다. 나는 속이 얼어들면서도 황당한 현실에 역반심리가 꿈틀거렸다. 이 흥안령속 깊은 오지에 끌려와 사상개조를 하며 산송장이 다된 이 로유가 인젠 국제적요시찰 인물이 되였으니 얼마나 황당무계한가! 대단한 착상이고 기발한 창조였다. 아니면 제좋을 대로 엮어대는 국제롱담인가? 지랄도 가지가지라고 해야 할것이다.     상해집체호의 8대금강이 몽둥이를 거머쥐고 나를 둘러쌌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여기 까막골에 내려온 할빈지식청년들은 다 같은 할빈출신인데 동정심을 가지기는커녕 평소에 사사건건 걸고들며 못살게 구는데는 정말 분노가 끓어도 해볼 처지가 아니여서 그냥 죽여줍시사 하고 들이대고 있는 판이였다. 지나간 얘기지만 고리방즈 로유가 힘깨나 쓴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한번은 힘내기를 해보자고 걸고들었다.     180근짜리 밀마대를 련거퍼 열개를 삼층높이의 밀뒤주에 쏟아넣기였다. 나는 평시 밀포대를 량옆구리에 끼고 사양실로 씽씽 날라들였다. 그런 경력이 있지만 내기는 내기인지라 젖먹던 힘까지 다 내야 할 판이였다.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였다. 나는 숨도 돌리지 않고 밀포대 15개를 밀뒤주에 메여 올리고는 “날 좀 보소.”하는 심사로 뒤주우에 앉아 마라초를 말아 여유작작하게 피웠다. 그러나 꾸역꾸역 뿜겨나오는 담 배연기는 바로 터지지 못해 속에서 끓는 화산재였다.     나와 겨루는 자는 본래 체육단에 거중선수였다는데 체대도 거쿨지게 생기여 힘장수같이 보였다. 그런데 빛좋은 개살구였던가, 여섯개를 넘기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두손을 내들었다. 그런 그가 그때 수모당한 봉창을 하려고 그러는지 작두로 짤라버린 참대비자루로 내 얼굴을 찔러댔다. 옛날 농촌에서 지주부농을 투쟁할 때에도 이런 악착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역시 현대문명의 비애라고나 할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통봇나무를 둥근 칼판처럼 잘라서 만든 개패는 30근은 족히 되였다. 맨 목에다 건 바오리가 살을 파고들어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 자연히 머리가 숙여졌다. 그러면 고개를 쳐들라고 고함치면서 참대비자루로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대 였고 어떤 놈들은 무대에 올라 몽둥이로 대갈통을 부셔버려야 한다고 길길이 뛰였다.    그런데 나는 몽둥이 찜질을 당하지 않았다. 상해집체호 8대금강들이 그저 위세를 부리느라고 나를 둘러싸고 있은것이 아니였다. 그들은 겉으로는 동조하는체 하면서 뭇 눈길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게 교묘하게 나를 보호해주었다. 그들이 할빈청년들과 맞서는데는 그들이 터세를 내며 못되게 논데서 악감정이 생겼을수도 있었다.     내가 쇼펑을 남몰래 빼내준것을 알고그랬는지 몰라도 그들의 행동이 고맙기만 하 였다. 나는 그들 덕에 얼굴이 많이 상했지만 관동군에서 번역을 했다는 력사반혁명분자는 완고통이라고 몰아대며 때려죽였다. 사람잡이에는 개잡은 포수처럼 우쭐렁거리다가도 콩밭기음매기에서나 청초를 벨때면 땀벌창이 되여서 쩔쩔 매며 이 로유의 도움을 바라던 그들이 어찌하여 인성마저 다 잃고 날뛰는가싶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졌다. 인간은 참으로 어디까지 잔인해져야 하는지 나로서는 알수 없었다.     대개 짐작은 하고있었지만 총부에서 쇼펑의 딱한 사정도 아랑곳없이 청가를 주지 않은바람에 상해지식청년들이 속에서 원성이 높아지고 불평부리며 일터에 잘 나오지 않는것으로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영향도 영향인지라 바빠난 총부에서는 계급투쟁으로 그들의 정서를 전환시키고 지식청년재교육을 억세게 틀어쥔다는 취지로 나를 과녁 으로 내세운것이였다. 8대금강의 보호로 사지가 멀쩡해서 돌아와보니 이런 생사람을 잡는 지옥같은 곳에서 더는 못살겠다고 나를 마구 잡아흔들며 할빈으로 옮겨가자고 악바리를 썼다. 그의 심정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정서는 문제의 반영일뿐 해결방법은 못되였다. 나는 정책상 그렇게는 안될 일이니 참고견디노라면 좋은 날이 돌아올것이라고 자신도 확신이 없는 말을 횡성 수설 늘여놓으며 달래였다. 그맘때는 바로 신주대지를 쥐락펴락하던 “영원히 건강하 리”라던 주인공의 집단의 음모가 파탄되고 상승장군도 운드르한에서 야심에 종지부를 찍은때였다. 천지개벽할 징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영원한 진리는 모든것 은 변한다는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젠 정치풍도도 변해야 했다.                                                          그후의 이야기들         이야기판이 거의 끝날무렵, 내가 그후의 쇼펑의 인생일사가 궁금해서 물었다. 쇼펑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에게는 운명의 전절점이라는게 있고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새삼스레 되새기게 되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만해도 머리끼가 곤두서는 그날밤이 정경이 쇼펑을 또 다시 울리고있다. 말등에 오른 쇼펑은 네굽을 안고 질주하는 말에서 떨어질가봐 나의 허리를 꼭 껴안고 두눈을 꼼 감았단다.     그렇게 목숨을 내걸고 상해에 도망쳐온 쇼펑은 끝내 어머니의 림종을 지켰고 어머니의 마지막 길에 아들로서의 도리를 다했다. 아니, 금을 주고도 바꿀수 없는 효성이였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나서 뒤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해놓은 쇼팡은 피터지도록 비판투쟁을 받을 각오를 하고 까막골에 돌아오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쇼펑의 어머니가 다니던 상해 제8방직공장의 혁명위원회에서는 쇼펑을 어머니를 대신(顶替)하여 취직시키고 국가정식로동자로 만들어주었다. 쇼펑은 공장에서 전공을 배웠다. 상해하향지식청년판공실에서는 방직공장의 강렬한 요구로 쇼펑이 있던 군마사육장의 총부와 협상하고 호구와 량식관계, 로임관계, 당안을 상해에 넘기도록 하였다. 정공처에서는 찍소리 못하고 정치표현이 아주 좋다고 문건을 작성하여 상해에 부쳐왔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꼬치꼬치 캐며 각박하게 굴었지만 정공처간사는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식으로 쇼펑의 도주사건을 무마시켜버렸다.     다시 당당한 상해시민이 된 쇼펑은 미국에 류학간 누이의 도움을 미국의 선진기술을 도입하여 방직공장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개혁개방후, 상해자유무역구가 창설 되면서 쇼펑은 국영기업체제를 주식체제, 사인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얼마후 리사장으로 발탁된 쇼펑은 미국의 “내커”, 프랑스의 “아디다스” 체육단복장의 위탁을 받고 의류가공련합체를 세우고 국내외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원래 별명이 호즈(쥐)인것처 럼머리를 잘굴리는 젊은기업가로 거듭나서 전국에서 경공업중심지인 상해에서 동방 명주탑처럼 두각을 나타낸 전도유망한 대기업가로 성장하였다…     쇼펑이 나에게 그후 살아온 이야기를 하란다. 말이 난김에 그후의 나의 후반생을 간단히 서술하고 넘어가는것이 순리일것같다. 1976년 9월 9일, 모주석이 서거하고 강청을 두목으로 한 “4인방”이 짓부셔지 자 등소평시대가 열리면서 억울하게 짓눌려 살던 수백수천만의 수난자들에게 해방으 새봄이 왔다. 나도 우파모자를 벗겨주고 정책에 따라 안치금을 내주었다. 나는 이 로유와 함께 살면서 지지리 인간고를 치르던 안해 김순이와 군마사육장에서 태여난 아들 상해를 데리고 나는 13년만에 할빈에 돌아왔다.     아무도 간섭할수 없는 자유공민으로 된 나는 떳떳한 발걸음으로 할빈 중앙대가에 있는 정치감옥의 검은대문앞을 보란듯이 지났다. 그리고 할빈의 명물로 되여있는 “홍수방지기념탑”에 이르러 기념탑의 대리석기둥을 어루쓸어 보았다. 이 기념탑에는 나의 피와 땀도 스며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냥 지나칠수 없었던것이다. 지나간 옛이야 기지만 1957년 송화강이 홍수에 범람하여 할빈을 삼키려 들었다. 하여 전도시의 청 장년들이 총동원되여 도리(道里), 도외(道外)의 송화강뚝에서 모래주머니를 메여날라 제방뚝을 높이였다. 실로 생사관두의 전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래서 나는 할빈을 그처럼 사랑하는지 모른다.     화는 홀로오지 않고 복은 쌍으로 오지 않는다지만 그해 나에게는 복이 쌍으로 왔다. 내가 남강구에 있는 모교인 할빈농업기계학원에 강사로 취직하게 되였던것이다. 앞날을 바라고 한숨을 죽이며 살다가 이런 날을 맞게 된것은 당의 영명한 시책이 전 제이긴 하지만 그날 투쟁받으면서 육신이 성한대로 살아나서 오늘 날 해방을 맞게 된것은 살벌하던 그 어려운 시기 동토대에서 인연을 맺은 상해집체호청년들의 은정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     오랜세월 이 아들을 눈이 헐게 기다리며 눈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가 환갑나이가 되기전에 고혈압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 비보를 받고도 그저 동가슴을 치고 하늘을 우러러 통탄했을뿐 쇼펑처럼 림종을 지켜보지도 못하였다. 나어린 호즈는 효자였지만 나는 불효막심한 죄를 짓고 평생 후회하며 살아야 했다. 인생은 만남으로부 터 시작되고 그 첫만남은 나의 생명을 낳아준 어머니이시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사후청심환이라도 효성은 바쳐야 했다.     그해 8월 추석, 김순이와 아들을 데리고 금삼포 공동묘지에 오래동안 내버린채로 있어 스산하기 그지없는 어머니산소를 찾아가서 벌초를 한후 어머니령전에 술을 올리 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깊은 절을 올리고 또 올렸다. “어머님, 이 불효자식이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불러봐도 외워봐도 대답이 없을 어머님이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손자 의 술을 받으세요. 흥안력 까막골에서 망아지 쇼상해와 같은 날에 태여났고 상해지식 청년들의 은정을 기념해서 상해라고 이름지은 손자입니다.”    여기 이 젊은각시는 송포에 있는 조선족마을에서 열여덟 애어린 나이에 이 로유 에게 시집온 나의 안해입니다. 며느리가 술을 부어올립니다. 지각한 효성이라도 기 쁘게 받으십시오.” 술도 다 붓고 절도 올렸지만 만리장천을 우러러 허무한 인생을 개탄하며 굽이굽이 서리고 얽히는 만단회포에 눈물로 봉분을 적시였다.                                 아름다운 인연에 또 한매듭 짓다            더불어 살게 되여진 세상에 인연으로 얽히는 인생마당이여서 사람은 누구나 다 인연으로 산다. 좋아도 인연이고 나빠도 인연이여서 살아가면서 인연으로 웃게 되고 인연으로 울게도 된다. 인연으로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피해도 보기도 하기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좋은 인연을 맺고도 그것을 모르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좋은 인연인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이어간다. 맺아지고 풀어지는 인연속에서 삶이 좋아지고 힘들어진다. 그래서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라 하는것이다. 시작은 나와 상관없이 시작되였어도 인연을 어떻게 마무리하는가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고 하리라.                             2017년 2월 20일 생일날에 (청도에서)    
773    치욕의 력사 반복되는도다? 댓글:  조회:2526  추천:0  2018-03-19
                                           치욕의 력사 반복되는도다?                                                            진 언        뉴스를 인용하여 화두를 대신한다.      “지난 1일. 우리로 치면 삼일절이다. 셔먼 차관이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 기조연설자로 나와 한중일 과거사와 관련해 매우 민감한 말을 던졌다. 한국을 향해 던진 3.1절 메시지인 셈이다. 국무차관 개인 발언인양 위장된 ‘미국 정부의 3.1절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었다.”     “....한국과 중국이 소위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논쟁하고 있으며, 역사교 과서 내용과 심지어는 다양한 바다의 명칭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민족감정은 여전히 악용되고 있고,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의 적을 비난하면서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런 도발적인 행동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할 뿐이다…”     셔먼이란자의 발언취지는 크게 두가지로 인지된다. 하찮은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왜 자꾸 티격태격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냐며 비난한것, 과거사문제를 정치용으로 활용하는 정치지도자의 치졸함을 꾸짖은것이다. 그가 입을 너불거릴 때 념두에 중국도 있었지만 사실은 한국정부를 향한 메시지다. 골치아픈 과거사문제는 죄다 덮어야 한다는 제멋대로의 채근인것이다.    “한미일 공동전선”을 형성하여 마침내 깊은 잠에서 깨여나서 갈기를 날리고있는  아시아의 “호랑이”를 견제하려는 꿍꿍이속이 따로 있기에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과거사 문제를 꺼내는건 용납할수 없다는 말투의 으름장이자 과거사 문제를 자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해 온게 아니냐는 비아냥이기도 한것이다.     한국국민과 대통령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런 망발을 꺼리낌없이 지껄여댈가? 타국의 국민정서와 립장, 자존감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가 아니면 무엇일가? 미국식 국가리기주의가 얼마나 극단적인가를 단면으로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각이 있는 국민들이라면 분노하고 비난하는게 당연할법하다.     그런데 벙어리 랭가슴앓기격인 딱한 심사도 있을것같다. 비난을 하자니 목구멍에 생선가시 걸린것처럼 거북해질게다. 셔먼의 정치지도자들이“과거의 적을 비난해서 값싼 박수를 받는다”라는 대목에서 비난이 멈춰질수밖에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상당 부분 맞는 말이기때문이다.     그동안 일본의 가지가지 도발에 대해 이렇다하게 실효적이고 가시적인 대응을 보 여준적이 있었던가? 귀동냥하건대 하냥 구두신고 발바닥을 긁는식으로 가렵지도 아프 지도 않게 국내무마용처럼 말해왔으니 말이다. 로골적인 우경화와 군국주의 부활, 평화헌법폐를 시도하는 아베정권의 속심은 자국민들에게 군사대국화의 필요성을 주입시키고 나아가서 해외침략의 길에 합법적으로 뛰어들수 있는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려는데 있다. 세상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알아야 할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체 하는지…     다시 발톱까지 재무장한 일본이 대포를 쏘고 미사일을 날리려는데 조약돌을 쥐고 팔매질한 수준이라면 얼마나 우스운가? 그나마도 자발적인 격분라기보다는 세인들의 눈길의 여하에 따라 “봐라, 내 곧 던진다아!’하고 고아대서 세인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뒤 부스럭흙덩이 하나 던지는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방자한 일본을 향해 던진것이라기보다 세인들앞에 보여주기가 목적이 아니였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위험천만한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량국간 화해와 협력, 정치지도자들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여 흉내를 낸 작동이였고 “역사 인식은 그 나라가 미래를 가리키는 나침반”,“위안부 인권문제, 교과서 왜곡은 이웃에게 상처주는 일”이라는 따위의 덕담도 아닌 어불성설을, 그것도 외교적수사수준을 타파할세라 조심조심하며 다듬고 다듬어서 삼가 아뢰였던것이다.     동족을 대처하기 위해 백년숙적과 어깨동무하며 그자들이 원하는것들을 척척 들어준다. 대표적인것이“핵과 미사일 위협에 관한 한미일 3자 정보공유 약정서”에 서명한것인데 문외한, 일개 촌로옹이 보건대도 자칫 재다시 일본에 군사적으로 종속 될수 있는 길을 자초하는 작태임에 틀림없다. 결국 죽쑤어 개좋은 노릇이 아닐가? 개가 누구일가? 구태어 설명할것 없는 대서양건너 양코배기들이 아니겠는가?     이런 동화가 있다. 어느 잠풍한 날, 잠자리 한마리가 풀위에 내려앉아 조으는데 한 아이가 살금살금 다가가서 잠자리채를 홱 휘둘렀다. 촉기빠른 잠자리가 펄쩍 깨여 나서 날아올랐다. 다행히 사경을 벗어난 잠자리가 “나에게 날개가 없었다면 너한테 잡힐뻔했구나”하며 좋아하다가 그만 거미줄에 걸리고말았다.     날개를 파닥이는 잠자리에게 거미가 말했다. "너에게 날개가 없었다면 내 그물에 걸리진 않았을텐데…껄," 거미가 잠자리에게 다가갈 때 난데없는 새한마리가 내리 꼰지더니 거미를 물어올렸다. 산새가 말했다. "거미야, 미안해, 네가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만 않았어도 나는 너를 발견하지 못했을거야.…”     이 동화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원리”의 축도이다. 배달민족의 열혈지사들이 조선반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자유독립을 웨치며 선혈을 휘뿌린 “3.1운동의 날” 셔먼 친구가 무슨 배짱으로 망발을 내뱉았을가? 일개 촌부로서는 다 알수 없지만 곧 무소불위의 상전이니 하급앞에서 꺼릴것 없다는 그런 배심이 아닐가싶다. 어떻게 말해도 맞설 사람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기때문이다. 아니 그러한가?     단재 신채호선생은 일찍 력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단언하였다. 천만지당한 금언이다. 력사의 지혜를 섭취하여 미래의 길을 닦는것은 인류사회발전에서 필연적인 요구라는것은 주지하는바이다. 그런데 피로써 얼룩진 민족수난사를 아예 싹 잊으라니? 그런데 “사또님 말씀이야 늘 옳습지비!”라고 외운다면 비애가 아닌가?      미국의 알렉시스 더든이란 교수는 "력사란 편리한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것만 기억하는게 아니며 력사에 대한 인정은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하였다. 개체는 인류와 세계에 대한 각오에 앞서 자기 인생에 대하여 깨달아야 하고 민족은 군체의 흥망성쇠에 대하여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사분오렬된 민족은 자업자득의 슬픈 민족이며 자승자박으로 희망을 묶어버린 민족이다.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우선 력사적교훈에서 미래지향적인 도경을 모색해야 할것이다. 나라와 민족을 나무와 비유한다면 력사는 뿌리이고 현실은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이며 미래는 꽃과 열매이다. 뿌리가 건강해야 땅속 깊이 파고들어 자양분을 잘 흡수하여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에 수송할수 있다. 다시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에 수송된 자양분은 태양의 빛과 하늘의 영양과 서로 조화되어 화려한 나무로 자랄수 있고 나중에 그 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고 호함진 열매가 주렁질수 있다.    욱달부(郁达夫)가“영웅이 없는 민족은 서글프다. 그런데 영웅이 있으나 아낄줄 모르는 민족은 가련하다. (一个没有英雄的民族是 可悲的,而有了英雄 却不懂得爱惜的 民族是可怜的.)”라고 하였다. 우리 민족에도 력래로 영웅들이 있었으나 인재죽이기 악습의 희생자로 되고말았던것이 그저 서글픈 일인가? 가련한 민족은 아닌가?     영원한 적이 없고 영원한 친구가 없다고 할세 형제끼리 싸우다가 동네깡패를 불러들여 동생(형)을 두드려팬다면 누가 득을 볼것인가? 동족을 압살하려고 민족의 백년숙적, 천년숙적과도 입을 맞추며 돌아가는 장거에 타민족들이 웃지 않으면 이상한 일, 민족의 력사에 길이 남아 후손들까지“칭송”하리니!                                                                            2015년 3월 3일
772    (칼럼) 민족화해의 봄은 오는가? 댓글:  조회:2382  추천:1  2018-03-10
                                            민족화해의 봄은 오는가?                                                              진 언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들어서니 새 봄이 혹독하던 동장군의 시린 등허리를 써ㅡ억 밀어내고있다. 아직은 높은 산마루에, 골골에 적설이 흰누더기같이 널려있고 강물도 녹을가말가 주춤거리는 이른봄,동토대도 낮결과 저녁으로 얼자녹자 하지만 봄볕은 하루가 다르게 새롭다.     반가운 자연의 봄날과 더불어 분단민족화해의 훈풍이 솔솔 불어오니 반가울손 새 봄이 아니련가,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시내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와 “륙승정 련못가에 늘어진 버들은 실실이 날실로 늘여나 볼가》를 부른 웃동네 사람들이 어우러져 “해원(解寃)”한다면 이보다 경사스러운 민족의 대희사가 없으리라,        선 하나를 두고 세기를 넘기며 대결해 왔지만 한쪽이 없이는 존재할 리유가 없다. 우리 배달민족은 인류군체로부터 선별된 한 공동체로서 세상의 시작부터 종말까지 존재하면서 자신을 지키고 천세만세 이어질 하나인 운명적군체이다. 결코 모래언덕이나 모아놓 은 껍데기무지처럼 바람에 흩날려버릴 그런 민족공동체가 아니다.     민족인 각각의 개체들은 민족공통체의 구성원으로서 사적인 감정때문에 그 소속이 개변되는것이 아니다. 민족인 개체는 배달민족이라는 이런 특정된 군체안에서 상응, 갈등, 화해의 반복속에 자기 존재를 확보할수 있다. 이 공동체의 력사적현실 및 또한 그것의 내적인 관계는 어느 통치집단의 목적일수 없다. 실존안에서 민족인의 구실을 한다는것이 개체의 존재리유이다. 민족공동체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의취력을 가지며 또한 감화력은 민족성원들을 단합시킬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하여 진실로 세계민족지림에서 떳떳한 민족공동체가 되려고 모지름쓴다.     진실로, 민족공동체가 그 의취력을 확보할 때 배달민족의 기개와 힘을 실천으로 증실해야 희망이 있다. 물론 민족인 개체는 인간 일반인만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민족군체속에 존재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각자는 자기 민족공동체에 충성하면서 자아완성을 도모해야 민족인이라 말할수 있다.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를 속이는것이고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것이다.     젇가락 한모는 쉽게 부러진다. 그러나 몇개로 묶이면 단번에 꺾이지 않는다. 그것이 수천만개로 융합되면 아름드리 나무에 못지 않다. 민족공동체가 빛남으로써, 또 공동체가 글로벌세계에서 생존해 나감으로써 개체도 그 안에서 존재를 빛낼수 있다. 조선민족(한민족)은 전 인류적인 구성부분으로서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있는, 자체에 책임을 다하는, 앞을 내다보면서 화해를 이루는 민족공동체로 거듭나야만 세계 민족지림에서 당당하게 제 자리를 차지할수 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세계에 향하여 언제나 하나로 뭉친 민족공동체로 나서야 하며 작금의 불확정적인 안정과 불안정의 상태에서 대립, 갈등의 초한계선을 지워나가면서 최종적으로 민족융합의 지평을 향해 나가야 한다, 분렬의 아픔을 지속하지 말고 궁극적지평에 이르기 위해 너도나도 화해의 홰불을 높이 들어야 한다. 좋은 노래에 깨진 질긋을 두드리는것 같은 잡음을 화해의 협화음으로 짓눌러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호사다마이다. 혼사말에는 “흥”소리도 방간이라는데 배달민족이 어렵사리 민족화해의 봄을 열려고 하는 때에 간능한 일본정부가 “평창이후”의 대북 유화분위기에 배를 앓으며 남북을 견제하기에 로골적으로 설치고있다.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을 흘리는것은 이상할것 없지만 악어의 눈물은 가증스럽다. 일본내에선 “조선위기론”에 광란적으로 삽질하고있다. 남북의 유화에 금구를 파고있는것이다. 아베는 지난 2일, 트럼프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의 미소외교”에 끌리지 말고 압력을 최대한으로 높여가야 한다”며 싱겁게 군불을 지피고있다.       민족공동체안에 있는 개체들의 존재, 민족화해에 대해 옳바른 인식을 가지고 과거에서 쌓인 원한이든 선험적인 관념이든 민족화해속에 녹여버려야 한다. 각자 공동체 안에서(공동체의 사역을 통하여, 공동체의 사역으로) 맹동적이고 가당치않은 동족혐오증을 시궁창에 처박고 서로의 믿음으로 화해를 촉진하라. 하나의 민족이라는 큰 틀안에서 신뢰로 민족통일의 광장의 기초를 닦아나가야 미래가 기약된다.     민족화해는 말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가슴가슴으로 맺는 운명적인 묵결로 이루어진다. 해묵어 곰팡이 낀 적대적감정의 적설을 화해의 훈풍에 녹여버리라.  호상간 믿음은 우선 개개인 자신으로부터, 민족적사랑은 적대관념의 타파로부터, 남북 평화통일은 자신의 담보로부터 시작되여야 한다. 믿음, 사랑, 희망은 모두 민족공동체 안에서, 외세에 의한 분렬의 현상황속에서 시작될수밖에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족융합에 필수불가결의 조건을 화해의 존재론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민족화해는 분렬이 시작되였던 바로 저주로운 3.8선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민족의 정체성을 재건립하려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고질병인 배타성을 철저히 배제하여만 믿음, 사랑, 융합의 금자탑이 서서히 쌓아질수 있다.     해내외 배달겨레들 한마음 한뜻으로 진정을 다해 민족적 화해를 기리고있는 오늘, 남북이 분단 70년의 녹쓴 철조망을 헤쳐버리고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를 포옹하려는 자세로 마음의 문, 믿음과 사랑의 문을 활짝열기를 강건너서 기대해 본다. 리념의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다시 보라, 체지와 리념으로 하여 갈라져 반목하여 온 북녘의 사람들도 남녘의 사람들처럼 살아숨쉬고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분단의 아픔으로 쌓여진 증오심과 깊은 상처를 치유하여 남북의 사람들 모두가 관용하며 민족의 화해를 강대국들이 이루어주기를 바라지 말고 제민족끼리 해결할 담략이 있어야 한다. 내 먼저ㅡ네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로소 민족화해의 새싹이 움트고 마침내 꽃을 피울것이다. 온 세계가 분단민족의 화해의 봄을 환영하는 대변혁속에서 아직도 음으로 양으로 불신과 대립을 꼬드기는 무리들은 하늘이 돕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 시점에서 선의를 아전인수하며 악으로 응수한다면 조상을 탓할것도 없고 방애군인 외세를 원망할것도 없이 영원히 슬픈  민족이 되여질 미래를 통곡하라.     경제든, 문화이든 모든것이 리념갈등의 론리에 지배받는 남북의 현실에서 민족의 화해를 념원하고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실천적인 의지를 색깔론으로 무력화시키려는 것은 치사하기 그지없는 반민족적 아집이다. 세상의 모든 색을 다 합치면 전래의 불교색인 회색(灰色)이 되듯이 오로지 민족의 화해와 융합을 도모하는데 잡소리를 내며 기승부린다면 그는 근원적으로 배달민족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다.     배달민족의 불화고(不和苦)는 현재적 삼고(三苦) 중에서 가장 큰 시대적, 전 민족적 고통임을 절감하지 못하는가? 기득권자들은 어두운 사심을 버리고 민족화해의 봄마중에 나서라! 세기적인 숙망이였던 민족화해의 봄을 무르익히려면 민족적인 가슴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인위적인 “3.8선ㅡ동토대”에 봄볕이 무르녹게 하려는 대다수 민족인들의 숙망의 인절미에 초를 치려한다면 저주의 기둥에 매달릴것이다.     남북통일의 궁극적 의미는 더불어 함께 사는것이다. 비록 분단 70년동안 서로 다른 양상의 삶을 살아왔다 하더라도 서로의 다른 모습을 존중하며 서로 적대시 할것이 아니라 서로 보듬어주는 마음으로 참된 민족적 화해를 도모하며 통일의 큰 길을 열어가는 이 마당에 “뜨거운 마음들이여 어서 모여라!”                                                                                    2018년 3월 7일
771    “3.1절” 99주년 기념일 소고 댓글:  조회:2234  추천:0  2018-03-06
                                      “3.1절” 99주년 기념일 소고                                                      진 조합     “3.1독립운동”이라면 지금 젊은 세대들은 천방야담같은 옛이야기로만 알고 있을수 있다. “3.1절”이 무슨 날이냐? 1919년 3월 1일 일제로부터 조선을 되찾자는 광범위한 민중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의 독립을 웨치며 일제를 반대한 전민중적 항쟁으로서 이런 정의적항쟁의 물결은 일파만파로  미국을 비롯한 해외까지 퍼져나갔다. 세계 방방곡을 울린 3.1운동은 전민족의 단결, 단합을 과시한 거대한 민중투쟁으로서 우리 민족이 천추만대로 가슴에 아로새겨야 할 비장한 날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민족대표33인을 위수로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발포된후 삼천리땅 방방곡곡에서 어린아이들부터 아낙네들.  남녀로인들에 이르기까지 손에손에 태극기를 들고 일제침략자들에게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며 목에 피터져라 조선독립만세를 웨치며 일제경찰들의 총칼에 무참히 피를 흘리며 쓰려져간 피빛3.1절이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36년 처절한 식민지노예국으로 신음하던 력사를 어떻게 리해해야 하나? 랭정한 눈길로 력사를 투시한다면 “온순한 양처럼 국가를 넘긴 조선사람들이였다. 그러한 망국의 력사는 아무리 숨기고 미화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세계렬강들은 당시 일제의 식민지화를 어떻게 보았을가? 힘의 론리에 의해 일어날수 있는 남의 일로 생각했을것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은 멸망한 조선과 일본을 우리의 시각으로 보지 않았을것은 명약관화하다.    세계령강들은 일본이 나쁜 국가라고 생각하였을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점령하고 합병한것을 나쁘다고 생각했을가? 아니다. 당시 미국놈들은 조선인을 아메리카토착민 인디언과 같이 미개인으로 여겼다. 19세기말 조선을 보던 그 당시 미국인의 시각이 확실히 그러했고 지금도 달라진게 없다. 력사사건은 불변이다. 그런데 해석은 각 국의 리해득실에 따라 다를수밖에 없다. 약소국가에 세계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것은 력사가 가르쳐준 준칙이다. 세상은 자고로 약육강식의 준엄한 법칙으로 운행되였기때문이다.     힘없이 평화를 웨치는 사람들은 세상에 모두 선량한 사람들만 있다고 믿는 환상가이거나 아니면 우둔한 사람들이다. 부패무능했던 고종과 같은 최악의 매국노가 리조왕실과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여 조선을 팔아먹은 력사사실과 당시 즉시 무장항쟁을 하지 않았던 사실은 숨기고 “을사오적”과 강대국들의 간섭에서 원인을 찾는것도 편파적이다. 형편없던 필리핀도 19세기 말, 미국식민지가 안되려고 극렬하게 저항하다가 60만명이나 학살당했다. 이런 침중한 대가는 무엇을 설명하는가?     조선의 경우, 3.1운동당시 일제놈들의 피비린 탄압으로 10만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력사는 그후의 참상도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간악무도한 일본놈들은 일제시기 36년 동안 100여만명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하였으며 840여만명의 조선사람들을 강제로 로역장과 전쟁터로 끌고가 억울하게 무리죽음을 당하게 하였다. 또한 20여만명의 조선녀성을 일본군성노예로 끌고가 잔인무도하게 유린했다.     3.1운동은 온 겨레가 하나가 되여 일제를 반대한 불멸의 애국투쟁이다. 그런데 오늘날 친일파 잔당들, 소위 극우세력들은 3.1절 정신마저 외곡하여 민족간의 화합과 단결을 가로막고 동족대결을 조장하고 있으니 도대체 생각머리가 있는 인간들인가? 빼앗긴 조국의 자주독립을 웨친 3.1절 기념행사장에 력사의 죄인 일본과 미국국기를 흔들며 맹목적으로 남북화합을 반대하고 민중항쟁의 상징인 촛불기념조형물까지 파괴하는 막된 무리들의 만행은 참으로 불가사의하지 않을수 없다.     이 숭고한 력사적기념일에, 자유독립을 웨치다 쓰려져간 선렬들의 고귀한 피가 슴배여 있는 국토에서 남의 나라국기를 들고 광기어린 극우파시즘 이데올로기를 선동하며 리념갈등 부추키는 자들은 대체 어느나라 국민들인가? 99년 전 3.1절날에 어느 시골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싶다. 그날 일자무식의 지고지순한 한 농부가 마을길에 나서서 “독립만세”를 웨치다가 경찰놈들에게 체포당했다. 경찰이 “누가 시켜서 만세를 불렀는가?”하고 배후자를 추궁하자 그 농부의 대답이 천고절창이였다. “그래, 새벽에 우는 수탉은 누가 시켜서 홰를 치는가?”하고 반문했다. 이에 경찰이란 작자도 그만 실어증에 걸리고 말았다고 한다. 오늘 날, 소위 개명했다고, 제노라 우쭈대는 인간들이 일자무식의 시골농부보다 나은게 무엇인가?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하긴 생각해볼 사람들이면 그리하지 않겠지만,     온 민족이 일제에 맞서 저항한 기미년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3•1절, 그러 나100년이 다 되어가는 2018년에도 '매국노'들이 광란하고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비애이다. 일제에 맞서 싸운 항일기념일인데 일장기를 들고 나온다는것은 다른 나라 같으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나온것은 또 무슨 뚱단지같은 추태인가? 항일정신을 기리는 3•1절마다 이런 추태가 벌어졌으니 삶은 소대가리롣 웃을 일이 아닌가? 해방이후 민족반역자들 중용한 친일파 리승만을 찬양하고 하느님이 “대한민국”을 세웠다고 망발하였으니 참으로 천하귀재들이라 할것이다. 력사의식도 전무한가? 어리광대놀이도 유분수이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미국"이라고 고아대는 그런 사대관념. 노예근성이 너무 갸륵하다. 악명높은 '가쓰라-태프트 밀약'도 모르는 무지랭이들인가? 미국은 1905년 일본과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필리핀 지배권을 확보했다. 일본은 같은해 “을사늑약”으로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다. 미국은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식민지배를 불러온 원흉인데 상전으로 모시니 얼마나 황당한가? 항일정신을 기리는 날에 미국기를 흔드는 행위는 력사의식으로 보면 일장기를 흔드는것과 다름이 없다. 미국에 굴종하는 노예의식의 관성인가?     아니, 3•1절에 성조기를 흔드는것은 3•1운동의 항일정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민족적행위다. “북한체제”를 찬양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면서 100년숙적을 찬양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것은 그저 사이비가 아니라 언어도단이다. 일제를 옹호하는것은 동족을 찬양보다 더 비겁한데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광화문광장은 미국도 일본도 아닌 “대한민국” 땅이다. 민족의 항일정신을 기리는 3•1절에 일제 강점기를 불러온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를 흔드는 자들은 명백한 매국노들이다. 뜻깊은 기념일에, 그들이 신도를 동원하여 서울도심 한복판에서 활개치게 만드는것은 민족의 수치다. 저 민족패류들을 100주년에도 봐야 하는가?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는 일본놈들은 물론 3.1애국민중항쟁운동을 외곡시켜 동족대결로 치닫고 외세에 아부하는 매국노들, 적폐세력들이 저지른 반민족적죄악은 하늘도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3천만 동포들을 불구덩이에 밀어넣고 학살한 일제와 미국 침략군, 매국노,사대주의자, 반동파들은 언제가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것이다.     피눈물로써 기록한 이런 력사를 어찌 잊을수 있단 말인가? 삼천리 강산를 일제의 수탈지로 만들고 조선사람을 개돼지보다 못하게 취급하며 노예와 대포밥으로 내몬 일본놈들의 반인륜적 죄행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납함한다면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격이다. 그러나 일본놈들이 손톱과 발톱이 빠지도록 사죄하고 죄값을 치를 때까지 결코 용서해서는 안될 일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다. 바라건대 는100주년 기념일에는 배달민족을 망신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2018년 3월 1일
770    (칼럼) 기똥찬 “색문화” 댓글:  조회:3413  추천:0  2018-03-02
                                                                기똥찬 “색문화”                                                                        진 언            이른바 “성문화”가 변색했으니 잠시 “색문화”라 칭해보자. 칠정륙욕을 가진 인간으로서 마음속에 “색(色)”을 간직하고 있다는것은 결코 잘못된게 아니다. 색은 인간의 심성에 존재하는 진실로서 도를 넘어 황음무치하지 않으면 광명정대하게 용납되는 인간본능이다. 아무나 철저한 금욕주의자가 될수 없으니까, 색을 추구한다는것은 일종 미에 대한 취향이지만 도덕성이 없는 수욕을 뜻하지 않는다. 전통관념에서는 “색”이란 사람을 해치는 나쁜 욕념이라고 락인찍고 성을 입에 자주 떠올리면 “우추부레하다”고 질색했더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놓고 하는 담론을 회피할수록 문제는 더 발생했다. 마치 먹지 말라고 금식령을 내린것일수록 더 먹고싶은 심리와 같다. 이처럼 인성으로서의 “색욕” 을 왕가왈부할수 없는 노릇이지만 “성문화”가 문명시대, 문명인들에 의하여 변태적이 되였으니 사회문제거리가 된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성범죄가 하루에도 수천수만건씩 발생하니 “색문화”광란은 어디쯤에서 랭정을 찾을것인가?     지구상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가장 자유로운 인권천국 미국에서도 2017년 영화계에서 시작된 성추행, 성폭행 폭로 “미투(나도 당했다, 나도 말한다)” 운동이 일어나서 세계적 범위로 확산시키는 영광을 따냈다. 한국으로 말하면 미국이 천조국이라 곧장 닮아가는가? 최근 한달여 한국사회 최대 화제중 하나가 “미투(#MeToo·나도당했다)” 이다. 각계, 각층에서 성범죄 피해 사실이 드러나 진상규명과 처벌,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미투운동이 들불처럼 타번지고있다. 웅성중심의 외곡된 색문화, 수욕의 피해자가 오히려 기시당하는 권력형 성범죄의 오랜 병폐가 드디어 드러난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연극사의 아이콘, 연극의 자존심”이라던 이윤택의 성폭행이 2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배우 조민기씨가 청주대학교 연극학과교수시절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사실이 5년 만에 수면위로 올라왔다. 이어 원로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씨의 성추행 의혹도 터져나왔다. 마침내 원형이 드러나자 뻔뻔스럽고 구차한 변명을 늘여놓지만 “예술가” 의 비애이기전에 한국의 비애가 아닐수 없다.     상하 권력관계에서 권위자의 권한과 지위가 녀제자에게 미치고 녀제자의 인권은 그네들의 영향력아래 있다는 오판과 의식이 금수같이 만행을 저지르게 한것이다. 리씨 본인의 도덕성과 자질, 인격에 문제가 있었지만 본인의 변태적인 인격형성에는 외곡된 성의식과 성문화가 바탕이 되여 있었기때문이다. 재부, 지위, 명예는 인생의 내용이지 전부가 아니건만 그것은 도깨비 금방이로 휘둘러졌다.     무릇 스승이라면 불문률을 지켜야 한다. 이를테면 녀제자를 상대하여 색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고 권위로 녀학생의 순정을 강탈하지지 말아야 하며 어렵게 꿈을 이루려는 녀제자들을 상대하여 편의를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안하무인으로 잘난체 거드름 부리지 말아야 하고 제자를 상대로 권력봉을 휘두르지 말아야 한다. 명색이 무슨 교수라면 누구보다 자신의 본분을 잃지 말아야 하는 등. 색욕과 금전욕으로 도덕방선과 량심의 보루가 무너지지 않아야 명실상부한 스승님이시다.     교사로서의 직업도덕을 사덕(师德)이라 한다. 사덕은 교사와 일체 교육공작자가 교육활동에 종사함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덕규범과 행위준칙이다. 사덕이 있은 후에야 제자 배양이 있고 스승의 존재리유가 있다. 사덕상실자는 교수이기전에 인간패류이다. 신성한 교단에선 몸이라면 적어도 똥구멍으로 호박씨를 까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행실에 따라서 인간됨과 인격력량의 무게와 가치가 가늠된다. 고상함과 비렬함, 밝음과 어둠, 진실과 허위 등이 모두 그렇다. 이러한 요소에 의해 숭엄한 사덕이 형성된다. 이씨나 고씨나 소위 예술인생을 연극처럼 산 위선자들이다. 최저의 사덕이 없었으니 교육자로서의 일거수 일투족이 죄다 3류극이였다. 인생이 유희라지만 스승으로서 학생들과 성유희를 놀다니? 녀배우가 연출가를 안마하여 사정시켜주면 더 큰 배역을 얻게 되였다니 얼마나 치사하고 추잡한가?     각설하고, 곁에서 보아하니 미투운동은 법조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만연된것 같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권력이나 지위를 리용한 유명인의 성폭력 행태를 둘러싼 고발이 봇물터지듯 이어지고있다. 한국문단의 고은 시인, 연극계의 이윤택 연출가 등 내노라 하던 인물들의 성추행, 성폭행을 살펴보면 누리는 권위, 거머쥔 권력 등을 언제 지날지 모르는 “유효기” 내에 쓰거나 확인하려고 집착했던것 같다. 관료주의와 서렬주의가 고질화된 공무원 사회나 군대, 경찰은 물론 정계 ,재계, 학계에서도 조만간 미투운동이 벌어질것이라는 바람직한 전망이 나온단다.     대학가에서 교수와 학생의 상하관계에서 비롯된 성범죄 피해 사례가 잇따라 폭로 되고있다. 개별적인 성범죄 현상이 아니라 전 사회 각 기관에 범람하고 있는 외곡된 성문화와 권력형 성범죄가 어느 정도로 우심한가를 얼마든지 류추할수 있다. 법조계를 넘어 문화예술, 연예계로…사회 전반에 확산되였음을 알수 있다. 미투운동은 그간 눈에 띄는 동향이 없던 곳까지 번질것으로 관측된다고 한다.       이처럼 성비위에 련루돼 소속기관의 징계를 받은 국가공무원은 2012년 이후 4년간 모두 586명으로 한달 평균 12명에 달하고있다.아동청소년 성범죄부터 시작해서 싸이코 패스의 비정상적인 성범죄, 그외에도 비일비재한 성폭행, 성추행이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그 뿐인가? 직장내, 학교내 성희롱이, 심지어는 가정내에서의 성폭력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 되고있다. 친애비가 친딸을 성도구로 여기고 친오래비가 녀동생을 강간하는 사건이 련속부절이다. 동물도 근친상간, 란잡교를 하지 않는데 말이다.     동방례의지국의 후손들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가? 왜 이렇게 극악무도 , 파렴치한 범죄들이 남녘에서 유별나게 감행되는가? 잡다한 리유가 있겠지만 극도로 추악해진 성의식과 성문화가 요인이다. 력사적으로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라는 권력구조가 형성되여 발전된 계급사회는 수천년을 내리 남성은 우위에, 녀성은 렬위의 력사를 거쳐 녀성이 남성의 발설의 상대로 존재해 왔기때문이다. 이러한 사회구조가 오늘에 이르러 외곡된 남성상과 녀성상을 만들어버렸다.이럼에도 자유한국당 차명진 전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인간의 DNA, 남자 수컷은 많은 곳에 씨를 심으려 하고 있다. 이런 본능을 문화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공언했으니 한국의 성문화에 대한 의식의 심층을 보여주지 않는가?     지배적인 구조는 당연히 권력관계, 리해관계, 경제관계에 영향을 주었고 사회 저변에 외곡된 의식과 문화를 가져오게 되였다. 시대가 천방야담같이 변화되였지만 그 뿌리를 완전히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던차 썩어빠진 서구의 양문화의 침습까지 즐겨 받아들이면서 작금의 악과를 빚게 된것이라고 말해도 어페는 아닐것이다.     인류에게 성도덕은 최후의 방선이다. 전반 사회적으로 도덕성의 붕괴는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한국이 경제, 문화의 선진국일진대 이는 정말 자아풍자가 아닐수 없다. 성폭력은 표면상 남녀의 문제이지만 본질은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한 부당한 억압과 폭력이다.녀성의 의지를 짓밟고 강행하는 색놀음은 엄연한 녀권유린이다. 녀권인즉 인권사항이 아닌가?      하다면 “미투”운동이 한국사회의 심각한 인권문제로 다루어져야 명정언순 (名正言顺)이 될게 아닌가? 인류에게 성도덕은 최후의 방선이다. 녀성의 최후의 신성이 무참히 짓밟히는데 인권보장을 말할수 있을것인가? 개체적 인간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사회문제로 내놓고  칼질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김빠진 인권타령이라도 할수 있으렸다.                                                                                                                2018년 2월 28일
769    황혼소곡 2 댓글:  조회:2482  추천:0  2018-02-28
                                                                황혼소곡 2                                                                        최균선     산골에도 심심산골에 살아본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대자연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보군 했을 것이다. 두 팔을 펼쳐들면 량켠에 산봉들을 거머쥘 수 있 듯 좁디 좁은 산곡간, 우중충 푸르른 숲, 싱그러운 공기가 어울려 새소리, 계곡을 빠져 나가려 분주탕을 피우는 물소리, 자연의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어낸다.    시골 명동중학교에 몸을 담고 있던 시절, 벌방에서는 감촉하지 못했던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삼스레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절실히 느끼였다. 때때로 황혼빛 실실이 걸리는 두만강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매미가 우는 소리에 심취되여 있노라면 매미소리가 귀 속으로가 아니라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서 마치 몽롱한 꿈세계의 선률처럼 신비하게 느껴지였다.    평화가 깃드는 고요한 황혼녘의 자지러진 매미울음소리는 그렇듯 신비로운 대자 연의 음악이였다. 한여름 향촌의 합창단은 해해년년 지칠줄 모르고 울어쌌을 것이다. 세월과 더불어 부르고 부르는 저 서늘한 선률 속에서 향촌은 늙어갔고 사람들도 늙어 갔으리라. 평화로움과 안녕이 깃드는 해질녘의 향촌마을의 상공에 이채로운 풍경은 회백색 의 연기이다. 집집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저녁연기는 석양이 비낀 향촌에 생동한 풍속화를 그려주고 있다. 그 것은 결코 숨 막히게 하는 공기오염이 아니라 풋풋한 인정이 감돌아드는 사람 사는 냄새이기도 하였다.     기압이 한껏 낮은 저녁이면 굴뚝에서 머리를 풀고 나온 연기가 땅에 내려앉으며 마을 길을 휘돌아 동구밖 나무가지에 걸렸다가 미구에 하늘에서 굳어지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제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거의 사그라지는 것을 보고 놀음에 탐했던 마음을 접고 “얘들아, 밥 먹을 때가 되였다, 오늘은 그만 놀자!” 하고 짝짜꿍을 치며 제 보 금자리로 줄달음쳐갔다. 애들의 마음 속에는 저녁연기가 엄마 혹은 할머니가 애들에게 알리는 가장 의미롭고 다정스러운 부름이였던 것이다.     밥 짓는 연기는 향촌에만 있을 수 있는 특이한 풍경선이였다. 잠풍한 이른아침 밥 짓는 연기는 투명하고 석양의 황금색에 물든 마을에 피여오르는 연기는 엄마, 할매들의 냄새, 손맛 그 자체였다. 아침저녁으로 마을을 감도는 연기 속에서 향촌의 삶의 향기와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해 지는 들녘, 곱게 비낀 저녁노을이 고기비늘 같은 엷은 구름을 채단처럼 물들 이는데 풍년가을이 설레이는 밭길을 따라 농부내외가 소수레를 타고 돌아온다. 아낙 네는 무어라 자꾸 새살을 떨고 나그네는 빙그레 웃으면서 장알진 손으로 소궁둥이를 철썩 갈길 뿐이다.     “에라, 이 눔의 소야, 늑장부리지 말고 얼러덩 가자…이랴! 쩌쩌…”너무너무 평화롭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가적인 향촌풍경이였다.     저녁 상을 물리고 모기불 피워놓고 마당가에 나앉아 밤하늘 총총한 별들과 은 은한 달빛, 개구리와 풀벌레, 산새소리, 코끝을 스치고 머리와 어깨를 어루만지고 가는 바람결, 어둠 속에서 술래잡기를 하느라 떠들석 고아대는 아이들…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어도 소박하고 주어진 삶에 안주하는 행복이란 따로 있으리라.     조물주가 베풀어준 천상천하의 그 많은 경물 중에서 석양도 자체의 특이함으로써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붉게 물들다 못해 그냥 불 타고 있는 듯한 서녘하늘 구름 사이 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장려한 석양은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밤이 가까워지는 시각과 이률배반적인 정경이요, 그 아름다움이 너무도 잠간이여서 아쉬워서 눈물겨운지도 모른다. 아무튼 황혼은 누구와 리별하는 시각도 아닌데 그냥 슬프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시인과 문필가들이 해돋이를 두고 붓을 날려 불후의 걸작을 남겼던 것이 아니랴, 라고 한 옛 시구에는 까닭 모를 처량함이 담겨있지만 석양은 그래서 더 감상적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황혼이 찾아들면 매양 처량함이 앞서 온다. 이제 가야 할 멀지 않은 길에 황혼빛 서러워라. 꽃이 시들어짐에 바람을 탓할 수 없 듯이 청춘이 지기 로서니 황혼을 탓하랴만 황혼에 비애를 느끼지 않는 도끼등 같은 감정을 가진 늙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황혼에 림하여 각자의 느낌은 천차만별, 각양각색이다.     황혼은 생로병사의 수순을 가는 인생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만개 한 꽃에 눈물 짓고 어떤 이는 지는 꽃에 처연한 한숨을 토하고 혹자는 저녁새 우는 소리에 미묘한 정취를 느끼고 어떤 이는 애처로운 울음에 눈물 짓고… 옳거니, 세상사 영원한 번영을 확보할 수 없거늘, 누군들 황혼의 비애를 느껴보지 못했을 가부냐,     흔적없이 가버린 세월 속에 속절없이 미련은 남아서 비워야 채우고 버려야 얻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보니 황혼이 슬피 운다. 리별은 안타까움으로 기다림을 빚을 수 있다만 황혼은 비애로 어스름이나 빚을가, 노을빛 피같이 물들인 석양의 언덕에 넋을 놓고 앉다. 어째서 온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처없이 걸어온 인생길. 지나온 자국마다 후회가 콜짝인다.     고생 끝에 살만치 되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고 참다운 사랑을 느끼게 되면 사랑 하는 사람은 이미 떠나고 삶의 진실을 깨달으면 머리에 흰서리가 처량하고 삶의 진미를 터득한 듯 싶을 때 몸은 이미 로쇠했음을 절감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허황한 추억이 건만 늙으면 추억병에 걸리는 걸 말려내지 못하는 까닭이리라.     세월의 물레방아는 쉬임없이 돌고돌아도 산천은 유구하고 꽃은 지고 다시 피여도 생명의 꽃은 다시 필줄 모르는데 비켜갈 수 없는 세월의 언덕에 황혼은 날마다 도적 고양이처럼 슬밋슬밋 다가오고 늙음은 득달같이 달려온다. 기운은 점점 쇠락해지고 황혼이 슬픈 곡조로 노래할 때 바람 타고 들여오는 하늘의 소리, 황혼의 소리, 대자연의 소리를 고독으로 들으며 새겨보게 될 것이다.     청년시절은 누구나 거의 대동소이하게 살았지만 로년의 삶은 자신이 가꾸기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진다. 외모로 나타나는 격차는 별로 없지만 정신적인 차이는 말 몇마디를 해보면 금방 저울금이 보인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감성이 쇠퇴하지 않 았다면 내면 세계에는 청춘의 록지가 남아있다는 표징이다.    나이80에 미국 헌법을 기초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진심으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비록 나이 때문에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젊어 서 죽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프랭클린의 말처럼 만년을 살아간다면 인생의 일몰은 일출만큼이나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뒤모습은 더없이 아름답지만 우왕좌왕 방황하는 모습은 민망스럽다 하리라. 바람아, 구름아,황혼아, 말 좀 하려무나. 어디 로 가야 고고한지, 청춘시절도 아득히 잊혀지고 황혼만 눈앞에 생생하니 인생의 초행 길 걷고 걸으며 고래희고개에 오른 로옹의 마른가슴에 회한만 축축하구나.     섭리에 순응하며 현세에서 잠시 쉬다가 종착역인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황혼아, 천천히 가자꾸나. 인고의 세월을 불사르며 황혼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미련만 까불리니 어쩌냐? 마음으로는 스스로 추하게 늙지 말자고 벼르지만 황혼의 로신사가 내게는 인연이 없고녀.                                                     2018년 2월 22일                   연변일보
768    (칼럼) 띄여쓰기와 읽기, 말하기에서의 호흡관계 댓글:  조회:2644  추천:0  2018-02-20
                                             띄여쓰기와 읽기 말하기에서의 호흡관계                                                                                                           최균선     옛날 옛적 글을 처음 배울 때 띄여쓰기가 잘 안되여 선생님이 례를 들어 가르치던 일이 생각난다. 물론 그때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면 다들 아는 웃음거리 실례이다.     례 1.     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 가방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가방 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가방안으로 들어간다.     례 2.     아버지가 방안에서 나온다.                  아버지 가방안에서 나온다.                  아버지가방 안에서 나온다.                  아버지가방안에서 나온다.      이런 례는 띄여쓰기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것으로서 보편성이 적은것은 사실이나 띄여쓰기가 달라짐에 따라 의미전달 등에서 생기는 가능한 페단은 잘 말해주고있다.     조선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만도《띄여쓰기의 기본원칙을 단어마다 띄여 쓴다.》고 규정하였다. (《우리말과 우리 글》저자 ㅡ과학원 언어 문학 연구소 언어 문화 연구실 201페지 ) 하여《완수할 것이다.》《지도한 바를 보고할 것》이라고 써야 한다고 하였다. 불완전명사에 속하는 단어들과 그것이 쓰이는 례에서 살펴 보면《동이 틀 녘 부터 건설장은 청년들로 흥성거렸다.》거나《비가 올 둥 말 둥 하던 흐린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개였다》,《승냥이는 양으로 변할 수 없다》등등.     그러나 읽기에는 말째라고 여긴다. 례하여《조금만 늦었어도 길이 어긋날 번 하였다.》《나도 곧 갈 터이니 어서 떠나게》《제법 그럴 사 하게 이야기를 끌고나갔다.》등, 그리고 조선사람은 성이 따로 있고 이름이 따로있기에《김 동무》,《용식 동무》독립적인 단위 즉 하나의 단어이기에 띄여 써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렇게 띄여 쓴대로 이름을 부를 때 성을 부른 다음 쉬였다가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되게 웃기는 일이 될게 아닌가? 결국 띄여쓰기와 언어습관은 별개로 되여진 셈이다.          우리 중국조선어문에서도 초기엔 그때의 조선의것 지금의 (한국것)과 같이 띄여 쓰기를 하였다. 1.  명사들이 토없이 어울릴 때:      로동 계급(로동계급), 중화 인민 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붉은 기(붉은기) 당 앞에(당앞에) 2. 불완전명사와 일부 보조동사의 띄여쓰기:      나라의 것(나라의것), 아는 체를 하다(아는체를 하다), 한 개(한개), 읽고야 만다 (읽고 야만다) 보고 싶다(보고싶다) 3. 토 《아, 어, 여, 아다, 어다, 여다》가 붙을 때 띄여쓰기.     돌아 가다(돌아가다), 일어 나다.(일어나다), 뛰여 내리다(뛰여내리다), 건너다     보다(건너다보다), 젊어 가다(젊어가다) 무거워 보이다(무거워보이다) 등에서 괄호안에것이 현재 우리가 쓰는 띄여쓰기원칙에 따른 서사이다. 그러나 그때 띄여 쓴대로 읽지 않았다.     가령 띄여쓴대로 《중화 ㅡ인민 ㅡ공화국》으로 휴지를 두고 읽거나 말한다면 하나의 완정한 개념인《중화인민공화국》의 의미를 전달하는것이 아니라《중화》, 《인민》,《공화국》이라는 개개의 낱말을 라렬하는것으로 착각될수도 있다. 우리 말에서 음절군은 한번의 날숨에 의해 토해지는 소리마디로서 곧 호흡관계에 의해서 형성된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지금 다시 반세기전으로 돌아가서 한국식 (해방직후 조선식)띄여쓰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되돌아보면 결코 새로운것이 아닌것이다. 옛날식 혹은 한국식으로 띄여쓰기를 한 글을 읽을 때마다 읽기와 말하기에서 습관적인 휴지관계와 탈절되고 있다는것을 새삼스레 절감하게 된다.     옛날식(한국식?)으로 띄여쓰기를 한 례를 든다면《있다는 것은 》, 《정상 적일 수 밖에 없다》,《폭행 사건》,《있기 때문이다》, 《전달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것이》,《객관성인 것 같다》,《붙여 놓은 것입니다》,《많을 것으로 생각 된다》, 《대표할 수 없을 수도 있다》.《별로 안 좋습니다》,《크게 잘 못 이 아니라 고》, 《중국 인으로서》,《4대 까지 살다 보니》,《며칠 전》,《박 경선 씨에게》, 《잘 모르는 것에 변명하고 》,《할 것이다》,《있을 것이다》《몇 년이 걸렸소?》 등에서 어떤것은 한국식도 아니고 중국 조선어식도 아니게 뒤죽박죽이 된것도 있다고 본다. 례컨대 《잘 못 이》가 오타가 아닌가 의심할수 있는것처럼 말이다.     상술한 례에서 보면 단어를 기준으로 띄여쓴다는 규칙에 따른것이라지만 읽거나 말로 옮길때는 띄여쓰기는 띄여쓰기대로이고 읽기나 말하기는 따로라는것을 쉽게 보아내게 된다. 보통 《크게 잘 못 이 아니라고》를 읽을 때《잘 못 이》에서처럼 휴지를 두지 않게 될것은 자명하다. 다른 례로 《허 생원!》을 휴지를 두고 불러보라, 《허생 원인지》《허허, 이 사람아,》 하는 식의《허, 생원이!》인지 알수 없게 된다. 옛날식으로 띄여쓴대로 읽어보면 말더듬이의《떼떼》의 말처럼 되여지고 아무리 웅변식으로 말한다 해도 어불성설이 된다.     현재 우리 조선말띄여쓰기에서는 단어를 단위로 하여 띄여쓰기. 명사적단어결합, 학술용어, 굳어진 말은 붙여쓰기, 불완전명사,일부 보조적동사의 앞말에 붙여쓰기를 총칙으로 하고있다. 한국어에서도 단위를 기준으로 하는데… 어떤것은 왜 그렇게 꼭 띄여써야 하는지…전문 연구가 없다면 알쏭달쏭이다. 례하여《아버지사진》과《아버지 사진》은 단순히 띄여쓰기에 기준할 문제가 아니다. 전자는 아버지가 찍힌 사진 이고 후자는 아버지가 갖고있는 사진이란 말로서 속격토《의》가 생략된것으로 리해 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식으로는 달리 리해될수 있다. 옛날 조선식띄여쓰기 (후에는 변했지만)에서도 보다싶이 띄여쓰기에서 경제발달국가의 우월성이 체현된다고 말할수 없다. 1970년대 중기까지는 조선이  한국보다 경제가 우세였으니까.    필자의 천박한 생각에는 현재 우리가 쓰는 띄여쓰기가 말하기에서 습관적인 호흡조절 즉 말의 끊기와 억양을 살리기, 랑독에서 소리마루, 말의 속도, 말소리 흐름의 률동성 등에서 과학성은 두말할것 없거니와 호흡상 더 편리한것 같다. 물론 앞에서 지적했듯이 한국에서도 띄여쓴데 구애되지 않고 편하게 말하고 읽기에 습관이 되여서 결국 띄여쓰기가 인위적인 규칙으로 되여졌을뿐이다. 그러니 어깨춤 따로, 엉덩이춤 따로가 된셈이다.     글은 읽기를 전제로 하고 말은 소리를 전제로 하는데 편하게 읽고 편하게 말하게 된 습관을 인위적으로 탈절시킬 필요가 있는가? 기실 탈절되여질수도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언어는 발전한다. 그리고 그 발전방향에 따라 전통도 포기될수 있다. 문화발 전에서 보수는 자멸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체성을 잃으면 자기방황이 될 가능성도 많다. 지금 형편같아서는 어느것이 더 과학적이고 어느것이 더 문화적이라고 말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범벅이 되는 페단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새것이래야 결국 반세기전것이니 우스운 가치취향이 아닌가? 묻거니와 삼각지대에 선 우리는 몇번 발을 갈아디뎌야 하는가? 자기 부정도 한두번이면 족하다.                          2008.8.22
767    (잡감) 이래서 아모것도 안된다 아잉겨? 댓글:  조회:4303  추천:0  2018-02-14
                                      이래서 아모것도 안된다 아잉겨?                                                                                              엮음       대결의 극치에 이르러 전운이 무겁게 드리웠던 조선반도에 남북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화해의 상서로운 기운이 열리게 되였건만 한국 보수언론들은 마치 올림픽 망하라고 굿판은 벌이고있다. 아무리 현정부와 조선이 싫어도 이건 아니다. 한피줄을 이어받은 단군의 후손들이 맞나 싶다. 조중동을 비롯해서 잡다한 보수매체들이 사실 불확인 가짜뉴스,“묻지마”기사를 련일 람발하며 평화올림픽에 재를 뿌리고있다.     특히 감격적인 단일팀출전과 조선관련 보도는 목불인견이요 언어도단이다. 심지어 녀자화장실까지 쫓아들어가 사진을 찍는 변태적 테러행위는 기레기라는 오명조차 부끄럽게 한다. 조선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는 마치 심통이 비틀어진 못된 시누이같이 행악질이다. 이래도 탈, 저래도 탈, 잘해도 트집, 못해도 불만이다. 조선에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그냥 미운거다. 엄연한 현실을 사팔뜨기 눈 을 해가지고 보는 악습은 언론인이기전에 그 인간성, 도덕성의 밑바닫을 스스로 드러 내여 지구촌 사람들을 웃기고 있건만 그것도 모르니 인물짝들이 아닌가?     두부에서 뼈를 찾아내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쉬파리처럼 코앞까지 들이닥쳐 야단법석을 피우는 판에 북측인사들이 말을 아끼지 않을수 있으며 아무리 다정다감한  예술인이던들 표정이 굳어지지 않을수 있으랴, 그러나 그것도 말쌔질거리이다. 무슨 말을 해도 악의적으로 인용하는 보수언론의 악마적 심보를 세계인들이 알아줄거다.      례컨대 소위 북한전문가라는자는 북녘가수가 부른 는 곡이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는 정신착란적인 엉터리 분석을 아무 수치심도 없이 늘여놓았다. 뇌세포에 물이 들어가도 그저 물이 들어간게 아니다. 그리고가 누구를 흠모하는 곡이라는 황당한 해석으로 생억지를 부리니 넘,넘 기특하다.       북한(조선)에 대한 보수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행태는 어제 오늘이 일이 아니지만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더 광란적이다. 그들에게 저널리즘(보도활동)은 없다. 오직 저렬한 대결소동만이 있을뿐이다. 아무리 적대관계라도 온 세계가 주시하는 보도들이 이처럼 무치하고, 유치하고 비렬하니 어떤 풍자적인 수식어를 붙여서 질타해도 할 말이 없을게다. 무작정 걸고들며 남을 탓할줄밖에 모르는것은 그 됨됨이를 여실히 말해줄 뿐이다. 리얼틱한 “멘탈붕괴”, 기질적인 악습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것,     이런 비리한 언론은 무책임만이 아니라, 분단의 장벽을 더 높게, 더 두텁게 하는 비생산적인 추태이다. 겨레들 마음속에 분렬, 대립정서를 심으려는 음모술수는 반민족적 범죄행위다. 동족에 대한 혐오와 증오심을 세계인들은 애국심이라고 볼것인가? 남북선수단이 나란히 입장하는 장면이 그래 가장 아름다운 력사적 화면이 아니란 말인가? 이번 올림픽의 주재자 바흐 IOC 위원장도 "남북 공동입장에 소름끼치게 감동 (2018.02.10연합)"적이였다고 말했다. 바흐도 “빨개여서” 이렇게 말했는가? 충심으로부터 충고하거니와 누워서 침뱉기는 저능아들만 하는 멍청한 유희이다.     깊이 생각해 볼것도 없이 그네들이 경이로운 악의적 기사를 쏟아놓는것은 다 기득권의 리해득실로부터 인기된 위기감때문이다. 자신심을 잃고있는 반상적 맹동일뿐이다. 분단체제에 기생하면서 잡초같은 생명력을 유지해 온 보수언론들은 국가적, 민족적대의는 아랑곳없이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조선을 말밥으로 민족의 대잔치에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것이다.     눈이 사팔뜨기라도, 입은 비뚤어도 주라는 바로 불어야 언론인의 명색이 서지 않겠는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이 정상적인 시각이고 있는 그대로 표술하는것이 언론인의 언행이다. 쉽게 알아듣게 말한다면 즉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반영해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 조선을 보면 진짜 (북한)을 얼마든지 볼수 있고 삐뚤어진 인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될것이다.     그리고 옳바른 기준을 세워야 한다. 즉 한반도(조선반도) 평화, 남북의 화해, 협력, 통일을 기준으로 조선을 대해야 한다. 보수언론들은 북한의 모든 행위에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하는데 정치적목적이 없는 국가행위란 이 지구촌에 없다. 아무런 목적도, 지향도 없이 국가을 운영하는 정부가 있다면 무능하거나 무뇌아인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라는 존재할 수도 없다.    무얼 좀 알고 기사를 갈겨도 갈기자. 미쏘랭전 때 올림픽은 공공연한 체제경쟁의 장이었고 지금도 미국은 체제경쟁에 승리하기 위해 치렬한 금메달 경쟁을 벌이고있다. 한국이 금메달에 열광하는것도 '국위선양'때문이고 올림픽을 개최하는 리유도 '국위선양' 때문이다. 이는 상식이 아닌가? 아무리 비상식이 상식으로 횡행하는 이 시대라도 인간인 언론인으로서 량지만은 남겨야 한다. 량심이 없는 인간은 인간도 아니다. 정이 있는 금수만도 못하다는 말이다.     대방에서 어떤 동기로, 무슨 목적을 앞세우고 나왔든간에 우선 대화와 대립 타파, 민족화합의 기치를 들고 왔으니 조선의 정치적 목적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 협력, 통일에 부합되는가 아닌가만 판단할줄 안다면 그리 막나가지는 못할게다. 부합되면 환영하고 아니면 반대, 거부하면 된다. 미리부터 색안경을 끼고 관심법의 도술을 부릴 필요없다. 그래서 소기의 목적을 이룰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도 그런 오산이 없고 오판도 그렇게 천박한 오판도 없다.     조선(북한0의 참가로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의 '정치적 목적'을 이미 달성했고 력대급 올림픽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있다는 불보듯한 상황을 과연 청맹과니여서 보지 못한단 말인가? 보이지 않는다는것과 보지 않는다는것은 시력문제가 아니다.     남북 공동입장과 공동성화 봉송은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60억 인류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했다. 펜스, 아베와 조중동은 드러운 배알이 뒤틀려 무례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그런다해서 이미 성황리에 벌어지고 있는 잔치가 파탄났고 찬치상이 뒤집어라도 졌는가? 언제나 리성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자는 그저 충동에서가 아니라 비리성적으로 놀아댄다.     평창올림픽이 남북화홰의 분위기속에서 개막식을 올리게 된것은 남북 당국의 이 심전심의, 한결같은 노력, 그리고 온 겨레의 정성이 함께 빚어낸 소중한 결실이다. 배달겨레의 일원이라면, 적어도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한국인, 언론인이라면 남과 북이 힘을 합쳐 평창올림픽을 력사상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할 과제를 민족인 모두가 일심협력하여 완수해야 한다는것을 자각해야 하는데 소위 언론사회의 선도자적 위치에 있는 자들이 오히려 파토를 치려고 설치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랭철한 리성을 찾을수 없다면 가슴아래에서 멀지 않은 옆구리에 있는 렴치를 만져보라. 그런다음 가슴안에 량심을 불러보라,     언론인들이 그렇게 훌륭하게 행동하고 아름다운 말들을 쏟아내니 맹목성이 다분한 누리꾼들마저 때를 만난듯 얼씨구 절씨구 하면서 망언, 악담들을 마구다지로 쏟아내게 되는것이 아닌가? 바자굽 너머로 남의 잔치를 기웃거리는 처지라도 이런 바람직 하지 않은 악상황에 개탄이 아니 날가 아래에 인용하는 굉장한 댓글들을 일람하쟈. 우리는 댓글들에서 반도 남부의 민심의, 아니 인성의 밑바닥을 들여다 볼수 있을것이다. ㅡ바닥을 찍는 댓글 3151개 (이 글을 엮는 현재)에서 발췌함)                ……………………………………………………………………………………………………… ◎ 귓싸대기 한대씩 첬으면좋겠다 이년이랑 문재앙이랑 ◎ 쟤는 코트가 지난번이랑 똑같네 ㅋㅋ좀 성의라도 보이지.... ◎ 거지들 동냥 많이도 왔네 ◎ 저들 지나간자리 세스코가 나서서 기생충조사 철저히 해야하는거아닌가요? ◎ 아이고 똑같은옷 또 입었네 평창롱패딩 하나 줘라 ◎ 졸라게 못생김 ㅋㅋㅋ 오크인줄 옷이나 갈아입고오지...드럽게 ◎ 기생충 덩어리들.. 평창가지마라 기생충 다 옮는다 ◎ 빤스는 갈아입고 왔냐..현송월 옷좀 갈아입고 오던지... 북괴거지들 인정하네 ◎ 구걸하러온 거지들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시퍌냔이 어디 한국와서 도도한척하냐 ◎ 백성의 고혈로 명품백을 들고다니게 미친거 아니야? ◎ 서울오면 놀라서 집단으로 귀순할듯 ◎ 사각년 ○○이애첩여기가막히고코가막혀 주사파놀음에기분 겁나게허벌 나게 나뿌 구마잉 긍게도요타다이쥬제갈윤개돼증슨상 만세이 ◎ 돈주고 중국쓰레기공연보는수준 ◎ 기생충 몰고 다니는 것들 좀 치워라. ㄹㅇ극혐 ◎ 옷입은게 왜이리 촌스럽냐?시골사람이 잘차려입는다고 꾸미고 서울상경한 모습과 ◎ 흡사하다..옷이 촌스럽다. 요즘 누가 목에 저런걸하냐 ◎ 응 돌아가 왜 또 온거야? 또 소고기 먹고 싶냐 ◎ 북한 예술단 실세라는 기집년이 옷도 단벌이네 ㅋ 존나 거지년 ◎ 북괴년들 1명당 50만원 받고 여관바리로 팔면 개꿀 씝인정?? ◎ 초코파이 봉지안에 머 넣어서 주지마라 ◎ 4각턱 아줌마 저번에 왔을때랑 패션이 같네. 다른 좋은옷은 없어? ◎ 개 가튼 사각턱 넌아 니가 무슨 영웅이라도 된것같니 처올라가라 ◎ 저번에 입었던 그대로네? 드라이도 안하고 입었을듯ㅋㅋ ◎ 끄지라 이 가시나들아! 이런. 쌍. 뇬. 이. 뭘 쳐다봐. 눈 까러 ◎ 북방계 미인같은 소리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봐도 똥송한 사각턱에 광대 튀 어나온 70년대 촌티나는 면상이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네모반듯하게 넙데데한 현송월인지는 단벌숙녀라냐. 북괴놈들 구제역살균부터 ◎ 빨갱이 년들이 남한 사내들 후리러 온거냐? 헛튼 수작 부리지 마세요 북괴여러분들 ◎ 빨갱이넌들과 키스하면 회충들이 입속으로 나온다 시 발 구역질 난다 ◎ 북에서 처먹을게 없으니 악기하나들고 처먹으러 온 거지 ㅅ ㅐ키들 그걸 좋다고 ◎ 환영인파는 없고, 인공기 불사르러 나온사람들은 바글바글함ㅋ 이미 망했어ㅋ ◎ 이나라는 얼굴만 예쁘면 환장하는 나라니까... 이 얼굴 볼때마다 짜증난다. ◎ 지들이 아래면서 우리를 아랫것으로보는 눈치네 ◎ 거지같은게 샤넬쳐매고 있음 있어보일줄아냐?그짓 할 돈으로 인민들 배나 좀 채워 줘라.저 빽사고 옷 사는돈도 대한민국이 지원해줘서 산거겠지. ㅅㅂ거지시키들 ◎ 멀쳐다봐 ㅆ바 죽통 갈겨뿔라    단벌여자 여우목도리는 또햇내.. ◎ 현송월이 남한에서 태어났으면 젖소부인이나 자라부인 시리즈 주연감인데 아깝다 ◎ 자원 봉사자들은 물똥을 찍찍 싸가면서 몇시간씩 길바닥에서 버스기다리고 인민군 ◎ 이것이민주주의사회인가리허설도취재를못하나이것은완전개나라네기가차다기가 ◎ ㅋㅋ 단벌옷 들통났네 !!! ◎ 거지들왔냐 그래도최소한기름과 니들먹을식자지는 가지고 와 ◎ 거지 같이 당당한 저눈빛그만 봤음 좋겠다 ◎ 진심 저딴 사각형 주걱턱에 광대 튀어나온 면상바가지가 예쁘다고 느끼는 새끼 들은 뇌 검사 추천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북거지들 한우 먹으러 또 왔네 ◎ 빨갱이 쉐끼들 싹다 잡아다가 총살 시키라 ◎ 빨간맛을보면 답이없음 그냥지려버림 ◎ 북괴들 무진장 델꼬내려왔구만 ㅉㅉ문재앙이 참으로 문재다진짜 탄핵각... ◎ 와 돌던지고 싶게 생긴 면상이네~! ◎ 구걸하러 온 거지들이 오히려 당당하네 ㅎㅎ ◎ 사각턱이나 깎아서 언능 니들 공산당빨갱이 소굴로 돌아가거라 ◎ 얼굴에 싸주고 싶다 ◎ 똥이나 처먹어 이새끼들아 ◎ 관심없다 기사 내지마라. 저런 애들 볼려고 올림픽 유치한거 아니지 안나... ◎ 한우 쳐먹으러 옴 거지 새끼들 옷도 한 벌 밖에 없는 거지들 ◎ 저런 얼큰이 돼지 사각턱이 북한에선 미인 ㅋㅋㅋㅋㅋㅋㅋㅋ ◎ 사각턱 아줌 zOt 같이 생겼네~ ◎ 개털일수도 있을거같다. 그냥 내가 옷사주고싶다. ◎ 얻어쳐무로 왔나짜장면 한그릇묵꼬 가라 ◎ 거지나라 현송월만 어떠케 명품백을 들수있을까 ? 나머지들은 다 노예들이니까 ! ◎ 기생충 바글바글바글바글 대낮부터 기분 잡치게 면상치워라 ◎ 진짜싫다북한에 '북'자도 싫다 ◎ 저들도 아는거지 대한민국 언론이 거지 같다는걸...^^ 허위 가짜 기사를 밥 먹듯이 하는 ㅋ 여기는 문재앙 뽑은 훅두리미 없제 ◎ 북한 단장은 100만원이 넘는 호텔에서 묵고 우리 자원봉사자들은 쓰레기더미속에 구르게 하고...암튼 단단히 미쳤구나 ◎ 사각턱 돼지년 가방 팔아서 옷이나 좀 갈아입어라 ◎ 발전된 한국의 실상 많이 보고 북한에 가서 알려라 ◎ 돈 많이 벌어가.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문호구가 있잖아. 통치자금 떨어졌 다더니 니가 돈 버느라 고생이 많구나. 에구구~ ◎ 다른나라선수들은왔나중계해주는데아예없네왕따야 북한방송보는것같아짜증난다 ◎ 살다살다 빨갱이가 공식적으로 설치는걸 다보네.문재인 진짜싫다 ◎ 난방비 무서워서 보일러끄고산다, 저것들 돈줄거있음 난방비나 해결해야 ◎ 저런거 공연 돈 주고 볼 돈 있으면 어려운 우리 청년이나 더 지원하자 ◎ 꺼죠ㅜㅜ싫다..누가인사하냐?반기도안하는데?나라망신...ㅜㅜ ◎ 이왕 왔으니 눈 부신 대한민국 를 똑바로보고 가시요 ◎ 현송월 체구로 봐선 채소 65키로 이상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송월타올 왕비대접 밥한끼에 15만원 하루 숙박비 수십만원 다우리국민이낸 세금으로 ◎ 울동네 노래궁 창뇬들보다도 못해보임 ◎ 쟤네들 밤에 딴짓못하게 잘감시해주세요 밤에 간첩짓 할라... ◎ 송월아..사각턱주가리 좀 갈고 와라..면상이 우랄산맥에서 시간여행 온 바야바 같어 ◎ 사각턱 빨갱이 아줌마 옷이 얼마 일까? ◎ 저 사각턱 아줌마 안 보면 안되냐? 아베같이 토쏠림. 제발.... ◎ 돼지쉨히 똥걸레 턱주가리, 한 주먹 갈기고 싶다! 이 기생충 턱주가리 그만 띄워라, ◎ 구충제 먹여라! ◎ 반기는 사람도 없는데 부득부득 내려오는 것 보니 배고팠구나 불쌍하다 아!. ◎ 난 저 사람들 한국 오는 거 찬성한다 ㅋㅋ 배웠다고 배운 사람들이 한국 와서 충격 ◎ 먹고, 돌아가서 체제 무너뜨리는 1등 공신들 되길 바란다. ◎ 북한에 독감유해에서 사망사고 소식있었는데방역도안하고 사람만받냐 걱정된다 ◎ 머리속에 북한 밖에 없는 진정한 북한러버!그럴거면 월북해라. ◎ 거지들이 구걸하러왔네 벌레들 몰려왔네 ◎ 9년동안 굶주려 고사직전인 공산괴뢰집단에 한줄기빛이되는 재앙적 댓똥놈ㆍ주린 배 채우려고 환장하고 넘어왔네ㆍ ◎ 옷좀 갈아 입어라 송월아...냄새난다! 회충 방역하라 ◎ 미국보다 더 대우해주내 문재인 이 대빨갱이 쉐끼 어떻게든 북한에 퍼주고싶어서 ◎ 쥐롤이 났음 여자아이스하키 유니폼은 북한국기 바탕으로 만들어진건 아냐? ◎ 현송월 이는 단벌 코트 밖에 없는것 같은데 대통령이 코트한벌 하사하 심이~~~ ◎ 남한 냄비들 정신똑바로차리자진짜 너무 이쁘다 ◎ 존나 똥송하게 생김ㄷㄷ 그래서 똥송월인가? 닉값ㅆㅅㅌㅊ ◎ 뉴스에는 북한 얘기 밖에 안나오네...무슨 세계적 무용단이 오냐....평창은 노로 ◎ 얘는 옷도 없냐?저번에 입었던거 그대로네 저옷 목도리좀 그만 입어라 ◎ 북한놈들이 뭔데 버스에 경찰경호까지 해가며 쌀주고 기름주고 공연장줘가며 ◎ 뭐하는짓꺼리냐 하....같은년 ㅡㅡ죽이고싶네 빨갱이들 ◎ 얼굴 개큰거 봐라 .못생겼다 ㅋㅋㅋㅋㅋㅋㅋ눈깔 뽑아버리고싶다 ◎ 현송월 옷 한벌 밖에 없냐? 며칠 전 그 패션 그대로네 좀 빨아 입자 ㅉㅉ ◎ 아 제발좀 끄지세요 현송월인지 나발인지 사각턱주가리 오바이트 쏠릴라함 ………………………………………………………………………………………………………  “추운 날씨에도 달려나와 북녘동포들을 격정속에 맞이하는 남조선 각계층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되게 여러나라 취재진들이 붐비는 속에서 수치도 창피도 모르고 대결광란에 정신없이 돌아친 이 자들의 지랄발광은 세계적인 경악을 자아냈다.” “민족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간 사절들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지는 못할망정 웃는 낯에 침을 뱉는격의 불망종짓을 하였으니 이야말로 사람이기를 그만둔 인간 쓰레기들, 짐승만도 못한 무지무도한 깡패무리가 아닐수 없다.(로동신문)” ※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꼴뚜기들이 소수인겨? 동족들가운데 이렇게도 타락한 인성들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번 경악하면시리 “이래서 아모것도 안된다 아잉겨!”하고 쓴소리 드리곺다. 결코 나혼자 지성인인체 하는게 아니(이)다. (엮음이)                               
766    (칼럼) 용인자우 (庸人自擾)라 댓글:  조회:2530  추천:0  2018-02-10
                    용인자우 (庸人自擾)라                                      진 언    《신당서(新唐書) 육상선전(陸象先傳)》에 (庸人自擾)라는 성구가 나오는데 뜻인즉 본래 아무 일도 없음에도 용렬한 사람이 스스로 문제(걱정거리)를 만들어 번거롭게 한다는것이다. 우리 말에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속담들이 많다. 례하면 걱정도 팔자, 더운밥 먹고 식은소리,금주(禁酒)에 누룩 흥정, 남 떡 먹는데 팥고물이 떨어지는 걱정한다, 봉사에게 손짓하기, 더부살이가 주인마누라 속곳 베 걱정한다…     예로부터 속담 그른데 없다고 일러왔는데 살다보면 천만층의 인간세상에 더운밥 먹고 식은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출연해서 화제거리가 생긴다. 그 일례로 “머니투데이”라는 사이트2018년 1월 18일자의 뉴스에서 “아이 낳지 않는 중국 인..늙어가는 인구 대국” 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경탄해 마지 않게 되였다.       기자는 첫머리에  “작년 신생아 급감, 고령화 가속..'두 자녀' 허용 약발 끝, 젊은층 갈수록 얇아져..중국 경제 구조 재구성 될 것" 이라고 글의 골자를 서술하고 뒤이어 “세계 최고 인구 대국 중국이 늙어가고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크게 줄고, 부 양할 노인은 많아졌다.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 층은 갈수록 줄고 있다. 당장 출산 장려와 고령층 보호를 위한 사회비용이 크게 늘면서, GDP(국내총생산)의 3배 가까운 부채를 짊어진 중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후략)”이라고 표술하고있다.     이 기자만이 아니라 여러 사이트들에서“아이 낳지 않는 중국인..늙어가는 인구 대국” 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대동소이한 글을 입력하였는데 기자들이니까 타국의 이런저런 현상도 기사화할수 있을법하니 왈가왈부 할수 없으되 글줄사이에 숨겨진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왜냐? 필자가 알기로는 한국도 인구감소, 고령화 문제로 아우성치고있다. 내코가 석자인데 남의 나라 시야비야 할 겨를이 있는가?     기자는 기자여서 그렇더라도 문장의 뒤끝에 댓글이 따닥따닥 붙어있는데 무려 336개나 되였다. 콩짜개도 콩이라고 댓글도 글이요 표현의 자유라 하니까 무어라 말할 건덕지가 없지만도 댓글이 심중 팔구 혐중을 앞세우고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렝이 나가는지 모르고 나오는 대로 막말, 악담을 퍼붓는데는 경악에 앞서 곤혹이 내달아온다. 아무리 타국에 타민족이라 해도 어찌 이럴수야! 아래에 민감성문제를 고려해서 골라골라 일부분만 옮겨본다. ◎ 중국도 집도 없고 직장도 없는데 애를 어찌 낳니! ◎ 늙어 나이값 못하고 지만 잘살자고 어린애들 고생시키는 할애미애비는 죽어야 한다.숨쉬는 쓰레기라고 하는데 ◎ 짱깨박멸하지 못하면 맑은 공기/푸른 하늘은 없다.자동차에서 내쏘는 연기는? ◎ 중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심하지않나? 왜 쓰잘데없이 더럽디 더러울 짱//깨 놈들 걱정?? 우리나라 인구절벽이나 조사하고 그이유가뭔지 조사를해라.. 내발등의 불이 급한데 남의 코등에 묻은 똥을 걱정하냐?? ◎ 인간들이 솔찍히 너무많다. 인간으로인한 지구가 병들고 오염되어가고 있다. 1/2로 세계적 감축안이 마련되야된다.지옥에서 뭔 애? ◎ 미세먼지 구덩이 속에서 1700만명 태어난 게 안 믿긴다. ◎ 중국은 60세 넘기면 안락사시켜라 넓은땅에 미국처럼 좀 널널하게 살아라 ◎ 중국거정말고니걱정이나해라중국은망해야지구평화가온다 ◎ 짱깨 절반 배에 태워 아프리카나 중동사막으로 보내라 ◎ 러샤가 중국에 핵폰탄 세발만 쏴주면 좋겠다. 바퀴벌레 박멸 차원에서 ◎ 야 니그는 앞으로 100년 동안은 낳지마라. 아주 인류의 적폐들 생산 그만해라 ◎ 더러운 족속들, 진자 실제로 더러움. 남자나 여자나. 인구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겟다. 냄새 나~~지독해~~` ◎ 잘생각했다 중국인들아 거지 처럼 살아서 모하니. ◎ 지구상에서 없어져야할 족속입니다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 쓰레기같은 나라 미세먼지 쳐먹고 다 죽어서 없어져아됌 ◎ 짱깨 ㅅ ㄲ 들하고 인도 ㅅ ㄲ 들은 줄여도 한참 줄여야됨 지구가 무거워서 서겠다 니기리.... ◎ 중국 3억이하로 인구 줄여라 ◎ 아이들 낳아서 얻을 건 근심뿐이다 외롭겠지만 그냥 살다가 죽어라, ◎ 삥신.... 대국이 뭐냐....!! 미국.러시아는 소국이냐?? 대국이라 말 하는자..... 종 놈 근성이 있는겨... ◎ 짱께는 대가리수 줄어드는게 지구를 위한 길, 제발 12억은 사라지고 1억만 되어라 ◎ 중국은 너무많아 지금이라도 줄여야지 그렇게 늘어나봐야 인간취급도못받는다 ◎ 중국 인도는 아예 애를 못낳게 해야돼. 지금 저 두나라 때문에 인류문명 멸망의 시계가 가까워지고 있는건 알아야지. ◎ 거지소굴에 거지가 득실대는군    눈을 어지럽혀서 이만 략한다. 표현의 자유는 방종의 자유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망언들,그리고 이를 민주의 체현이라 착각하는 자들이 참 불쌍타. 도대체 공동체를 살아가는 인류의 당연한 권리가 무엇이고 긍정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허영심에 턱걸이하고 높이 계신듯 하지 말고 자신들의 처지를 한번 내려다 보아라. 한국 5000만 다 잘사는가? 한국도 출산감소로 호들갑 떨고있는데 내가 보건대 손바닥만한 땅에 인구과잉 상태가 많은 문제거리를 낳고 있는듯한데 웬 오지랖이냐? 남의 사돈이야 가거나 말거나….     뚫린 입이라고 해서 말이면 다 하는게 아니다. 표현의 자유란 악담패설과는 인연이 없다. 삭은 바자틈에 누렁개 주둥이 같다는 속담이 있는데 당찮게 남의 일에 끼어들어 주제넘게 말참견을 하는것을 비꼬는 말이다. 입이 사복개천같은 자들이 삼시 더운밥 먹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누운소 똥누듯 식은 소리를 내싸서 얻을게 뭔고? 막말은 관속에 들어갈때까지 삼가하라 했고 아무리 심기가 뒤틀렸더라도 말을 가려서 하라고 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 사람됨을 알수 있다. 제딴에 무슨 우월의식을 가지는데 웃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주구장창 남의 일에 콩팔칠팔하지?                                                                   2018년 1월 24일   
765    헐, 바닥이 드러나네 댓글:  조회:2450  추천:0  2018-02-07
                                                    헐, 바닥이 드러나네                                                               진 언       다음의 국민일보판 뉴스시에 “北 선수만 '삼성 올림픽 스마트폰' 못 받는 이유” 라 제목의 글이 났기에 스쳐보니 기자의 저의도 비리거니와 조선에 관한 기사라고  범벅이에 쉬파리떼 같이  달려들어 댓글(1636개)을 단 애국지사들의 쾌거가 어처구니 없다 못해 우습게도 눈물겨워질가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3000명가량의 선수들은 삼성 갤럭시 S8 스마트폰과 나이키 유니폼 등을 선물로 받는다. 하지만 북한 선수 22명은 이 선물을 받을 수 없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와 미국 등의 제재 대상 국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북한 선수단에 편의를 제공하면서도 각종 제재에 위반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이에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유니폼은 미국의 나이키사가 제작한 것이 아닌 핀란드 회사가 만든 유니폼을 사용하도록 했다. 하키 스틱 역시 핀란드 회사가 제작한 것을 사용하는데 ‘임대’ 형식이며 북한 선수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이를 반드시 반납해야 한다.…”     기자씨가 모쪼록 이런 글을 올린것이 선각자의 발견인지, 악어의 눈물인지 직접 물을수는 없으나 그 저의가 참 비릿함은 분명 느낄수 있다. 그건 그렇고, 댓글을 다느라 팔을 걷어부친 누리꾼들의 모습이 보이는듯 해서 경이원지하게 되는데 입을 벌리면 평화통일이니 민족융합이니 떠들어치는 국내상황에 비추어 보면 일본놈들이 이래서 “반도인”은 안된다구, 죠센징은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고 나발분 근거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아래에 참으로 경탄스러운 댓글1351개중에서 일부를 베껴본다. ※  개불쌍 뭐하러 줘? 가면 다 뺏어서 못된일에 사용할텐데. ※. 고마움도 모르고 또 뒤통수 칠 것들이다..줄 필요없다. 우리 국민들 냐눠줘라~~ ※ 줘봤자 외화벌이용으로 수거해 되팔겠지. 아님 고위간부가 가져다 쓰거나. ※ 지상낙원에서 왔는데 그게 무슨 소용있나 ※ 한창 휴대폰에 관심이 많을 세대인데 마음이 야좋네요. ㅠㅠ ※ 줘도 쓰지도 못하는 동네고 줘봤자 간부들에 뺏겨서 다 팔리고 그돈은 ○○은 사치품 사가는데 쓰이는데 당연하지. ※ 이젠 무상 지원 없애야 한다. 핵무기 만드는 잘사는 나라에 왜 공짜로 주는지 참 알수가 없다. 북한 선수들 잘 먹고 잘 산다. ※ 그렇게 퍼줄돈 있으면 국내어려운 가정이나 불우아동들에게 사용해라! ※ 저것들한테 숙소랑 식사제공하는것도 짜증난다 ※ 구충제나 주자 초코파이좀 던저주고 ※ 줘도 쓸줄도 모르고 가져가봐야 다 뺏긴다 외화벌이 해서 핵탄두 만드는데 보태 겠지,,, ※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하면서 이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건 뭔데? 니가하면 무죄이고 내가 하면 유죄냐? 뭐 이런 개 같은경우가 다 있냐?(량지가 있음) ※ 주지마 가져가봐와 ○○이줄텐데 왜주냐 북한애들주느니 우리영세민주시오 ※ 미친 빨괭이 따위에게 핸드폰이 가당키나 하나 옥수수나 던져줘 ※ 이런 취급을 받는 무리들을 상전으로 주공으로 모시니 나라의 운이 다 되었다.... ※ 걍 돌려보내 시끄럽게 하지말구 ※ 주는거 없이도 너희들 북한은 시르다 ※ 짝짝짝 지금 이라도 ♬♬ 는 쫓아버리자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걸치는       양아치 한테 무슨 대접을 해 ※ 초코파이나 처먹으라고 던져줘라 ※ 줄 필요없다 폰 아깝다 차라리 자원봉사에게 주라 ※ 아니 유니품도 대주냐 북이할수있는것이 뭐냐 그런걸왜 우리가 대주냐 이해불가다 ※ 이럴꺼면 뭐하러 올림픽 불러 참가하도록 한거니(어쩌다 인물났네) ※ 적국인 북한놈들한테 왜 비싼 삼성스마트폰을 준단 말인가? 뺨을 서너차례 때려주고 싶은데..... ※ 비용한푼안들이고 오는주제에도 모가지 힘주고 다니는데 안주는게 맞다.. 여기서 민족이란 단어 씨부리는넘들 아가리를 찟어버린다..민족이 뭐냐??? 족발이냐?? ※ 북한은 외국이라 본다. 언제까지 외국 북한에게 퍼주고 끌려 다닐건지?? ※ 적국국민을 왜 줌? 동맹국 미국민한테나 하나 더 주지 ※ 북괴놈들 폰 못 가져가는 것도 걱정이냐 별 더러운 기레기를 다보겠네 너 문빠냐 북한놈 챙기게 ※ 추운데 고생한 자원봉사자들에게 하나씩 선물로 주었으면 좋겠다. ※ 누구누구의 논리라면, 북한 선수단 밥도 주지 말아야 한다. 식사를 제공하면  밥 먹은 힘으로 ○○은 동지를 위해 충성하면서 핵무기 만드는 데 힘을 합해서 우리의 종주국 미국, 일본에 위협이 된다. 따라서 밥도 주지 말아야 한다. ※ 전세기허용,공연장 무료제공,유니폼 제공,체제비 all 부담하면 됐지,, 갤S8까지 줄 필요는 없어! 문재앙 주사파 촛불폭도들! UN제재 결의안 반하는 꼼수 부리지마라,, 국제신뢰 바닥인데 한미동맹마저 완전 파괴돼 수습불가능한 고립무원 국제왕따 된다! 이번올림픽으로 북한이 얼마나 괴씸하고 이기적인 놈들인지 다시한번 느낀다. ※ 당연하다 ᆢ적국 이라는것 잊지마라 ※ 하여간 희한한 짓거리 해대는 이상한 것들 땜시 대한민국이 엿같은 짓하는 나라가 됐으니...(그래도 생각이 올똘한 사람이 있네) ※ 잘한다 선은 확실히 긋는게 좋다 ※ 빨 개이라 재앙이가 줘라 같은 빨개이 고향 ※ 추접구로 뭐하는짓이고? 선수들한테 그럴거 뭐있냐? 초코파이 던져주라는것들 ~ 저질인지 ,수준이 낮은건지,어린애 인지...( 량지가 있는 사람의 당연한 질타) ※ 그 넘들 먹여 주고 재워 주는것 만도 고맙지 그런걸 왜 줘 ! 주면 그게 걔덜꺼 되니 ? 전부 압수 해서 똥돼지 떨거지 넘들이 가져 가겠지 ! 못 줘서 아쉽냐 ? ※ 주지마라. 임대형식이라도 줘서는 않돼. ※불쌍한 북괴선수!가장 좋은 휴대폰 갖을수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태여난 땅이 문제구나.그래도 몇일간 잘먹고 잘놀았잔여....    중구난방의 고견들을 여기까지 옮기고 접어두련다. 썩은 나무 몇그루를 보고 온 수림이 썪었다고 말하면 안되지만 일엽지추라고 작은 남녘땅에 “나라의 흥망성쇠는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고염무의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자기 국가앞에 책임지고 나서는 우국지사들이 저리도 많음에 감탄이 묻어나오고 한편 저리도 잘난 똑똑이들이 왜 댓글질이나 하면서 표현욕망을 만족시키는지 곤혹스럽기만 하다.     미운정도 고운정도 정이란다. 미워도 무서워도 한피줄 겨레이다. 장기간의 분단상황에서 이질화되였더라도 피는 영원히 물보다 진하건만 오히려 불구대천의 원쑤로 절치부심하며 이를 뿌득뿌득 가는 양자가 대견스럽지가 않지만 수많은 인재들이 초야에 묻혀 륙도삼략을 썩인다고 생각하니 싱거운 개탄이 나온다. 옆구리 터진 도토리만큼한 그릇들이니 그럴수밖에 있겠냐 하면서도…     조선민족의 전통속담에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거늘, 주지도 않겠다며 웬 성화인가? 아무리 삼성스마폰이던들 그것으로 일국의 재정을 보탤수 있단말인가? 스마트폰 22개 값이 얼마냐? 중국에서 웬간만한 사람이면 단번에 살수 있는것이 아닌가? 그따위로 네티즌들이 앞다퉈 목에 핏대를 세우고 쾌지나 칭칭하며 멋에 겨워있다만 인간성의 밑바닥을 드러냈다고 생각못하는가? 말한마디에 천냥빚도 갚는다고 한다. 그러나 말한마디로 말하는 자의 위인됨이 확인된다. 아무튼 그 놀라운 동족증오병에 열뜬 투사들을 두고 혀가 홰홰 내둘러진다.     트럼프가 알고 찾아와 어깨를 도닥여주고 엄지를 내흔들며 치하를 하지 않으면 공념불이 될듯, 그리고 한다하는 삼성이 고작 22개의 스마폰을 못주는 리유를 무슨 제재타령으로 뭉그리지만 결국 세계인들이 짝이없는 쪼잔함에 갈채를 보낼만도 하겠 다. 유엔총부에서도 유엔결의를 잘 집행한다고 큼직한 상장을 보내줄가? 아무튼 이를데 없이 찌질한 그 작태에서 국민의식의 수준을 가늠하게 된다. 어이 없지만 감탄하던차 동족증오병 환자들에게 곰팡이 낀 말로 일침을 가하고싶다. 알만한 사람이 다들 알고 있고 정설이 아니라 와전된것이라 하지만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소름끼쳤던 “예언”을 여기에 옮기나니 그저 코웃음만 치고 그냥 간과할것이 아니라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한번 다시 읽어 보시라. 그래도 아무런 감촉이 없다면 구제불능이구,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 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日本は敗れたが、朝鮮が勝利したわけではない。大言壮語ハゴンデ朝鮮が第我に返ってきらびやかで偉大な昔の朝鮮の栄光を取り戻すには、100年という歳月がはるかにかかるだろう。私たち日本は、朝鮮国民に銃と大砲よりも恐ろしいの植民地教育を植えて置いた。結局、朝鮮人たちはお互いに仲違いし、奴隷的な生活を送るのだ。見よ!実に朝鮮は偉大した絢爛だったが、現在の朝鮮は結局日本の植民地教育の奴隷に転落した。そして、私の阿部は再度もどって来る”      아베 노부유키가 패망하면서 조선국민에게 쏜 저주의 화살이 자신으로 향하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여줘야 하건만 오히려 그들과 합창하고 있지는 않는가 한번 생각해 보라!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우리 선조님들이 오늘을 내다 본듯 경계하여 남기는 경세지언일진대 일심전력하여 단합된 배달민족의 홍익인간을 세계만방에 떨친다면 아니 좋은 일인가?     모래알은 아무리 많이, 높이 쌓여도 그냥 모래무지이지 장성이 못된다. 뭉쳐도 어떨가 하는 위태위태한 판에 호시탐탐하는 외세에 어부지리를 마련하려고 광분하며 기세충천하니 타국에 백발로옹이라도 넘 감격해서 즉흥적으로 끄적거려 본다.                                             시끌한 인간세상 탈도 많다만                                            분단족 어쩌다 잘해 보자는데                                            천하에 몹쓸 잡것들 납뜨누나                                            옆구리 터진 도토리 심통이라                                            그리 보채며 성화를 부리느냐                                            뿌리 깊은 노예근성 못말려도                                            렬강들 멋대로 가지고 노는데                                            자존은 없더라도 치욕도 없냐                                               2018년 2월 4일
764    (칼럼) 헉! 호사다마로군!!! 댓글:  조회:3249  추천:2  2018-01-27
                                                         헉! 호사다마로군!!!                                                                      진언       금년 2월에 한국 평창에서 개최되는 동계올림픽대회에 조선이 참가하냐 마느냐  의론의 분분하다가 종당에 참가하게 되자 더구나 말썽이 그칠새 없다. 올림픽출전 단일팀문제, 한반도기를 들고 남북이 입장하는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과 반목은 세인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70여년을 내리 비극을 쓰고있는 분단민족이라서 그런가?     불가사의한 이런 현상을 보며 올림픽의 기원을 찾아보게 된다. 기원전 9세기 고대희랍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던 엘리스의 왕이 델프 신전의 계시를 받아서 평화로운 경쟁의 장을 만들고 그래서 거기서 마음껏 육체의 퍼포먼스를 펴기로 하였단다. 그게 바로 올림픽의 기원이고 따라서 올림픽의 정신은 바로 휴전의 정신이다, 그래서 고대희랍에서도 분쟁중이거나 혹은 군사훈련중이라도 올림픽이 열리는 그 기간만큼은 훈련도 접어두고 분쟁도 잠시 잠재우고 한자리에 모여서 평화를 얘기하고 평화로움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였다.     조선반도에 긴장국세가 최고조에 이르러 긴가민가 전운이 감돌다가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창조하였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 (眞所謂佳期難得,好事 多磨)ㅡ동해원(董解元)의 서상기제궁조 (西廂記諸宮調)”는 말이 경세지언이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전 세계가 평창을 주목하고있는 리유는 동계, 하계 합쳐서 2년에 한번씩 올림픽이 열린다는데 있지만 않다. 스포츠를 인간의 육체가 창출해 낼수 있는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퍼포먼스라고 한다면 인간의 육체가 만들어낼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가장 악착한 퍼포먼스가 전쟁이라 할수 있다. 이번 평창올림픽으로 남북의 대결상태에 물꼬를 트고 나아가서 제2조선전쟁을 막을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스포츠가 창조할수 있는 기념비적인 쾌거가 아닐수 없다.      그런데 온갖 망언들에 시위까지 진행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을 파탄시키려는것은 그야말로 국익을 해치고 평화를 방해하며 세계적인 망신살을 자청하는것인데 개최국으로서의 자격까지 의심받을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가? 진보단체들에서는 보수세력들의 망언, 맹동을 두고 “헌법에 나와 있듯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공공의 안녕과 질서, 우리 국민들의 생명권을 위협하고 평화통일을 가로 막는 행위를 제재, 통제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남북이 화해하고 대화하는걸 반대한 나머지 국가적 대사인 올림픽을 방해하는 몰지각한 매국 행위를 하는 조원진과 그 일당을 지켜만 봐야 하는가? ”하고 규탄, 질타하고 있는데 귀구멍이 꽉 막혀서 못듣는가?     "평창올림픽”은 누가 문장을 짓던지 세계인의 축제로서 조선반도 평화를 넘어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꽃길을 닦아놓은 마중물이 아닌가? 한국의 한 진보인사는 “솔직히 말하여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조선의 참가가 없다면 큰 어려움속에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진솔하게 표백하고있다.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되는것이 불만이고 파괴를 시도한다면 입이 열개라도 변명할수 없는 반인류적인 범죄행위가 아닐수 없다.     평창올림픽은 리념의 초한계선을 넘어 “평화의 올림픽”으로서 남북화해의 상징이다. 조선의 선수단과 대표단 등의 대거 참석으로 흥행이 걱정이 되고  실패할가봐 걱정하는 그런 올림픽이 아니라 당당하게 세계인 앞에 내놓을수 있는 자랑스러운 평화의 축제라고 가슴뿌듯해 하는게 당연지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평양올림픽'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평지풍파를 일으키려 하니 얼마나 무모한 작동인가, 스스로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자신심이 없다는것을 자인하는 행위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한번 되돌아보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조선선수 단이 참가했고 조선고위급 대표단이 경기를 관람했지만 누구도 “평양아시안게임 '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하늘이 무너지는듯 안달복달인가?     알촉즉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극적으로 맞은 올림픽을 통해 한민족끼리 잘 해보자는데 왜들 똥밸이 탈릴가? 홍익인간을 제창한 단군의 후손들이라면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함에서 너와 내가 등돌리고 네편,내편을 가를 하등의 리유가 없다. 사사건건 분렬과 대립을 고취할게 아니라 화해, 통합을 도모하는것이 정상적인 국민들의 옳바른 자세련만 보수세력들은 평화롭게 진행되여야 할 나라의 잔치상을 뒤엎으려 광분하면서 다 된 죽에 코를 풀고 있으니 어의상실인가? 언어도단인가?     이른바 보수세력들은 조선의 점검단이 서울역에 도착한 시점인 11시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평창동계올림픽이 북한 체제를 선전하고, 북핵을 기정사실 화하는 사실상 김정은의 평양올림픽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역설하고 조선국기, 조선 지도자사진을 불태우는 집회를 벌이는 등 망동으로 조선을 자극해 평창동계올림픽 파행을 기도하는데 표현의 자유와 방종을 구분못하니 참으로 코 를 열고도 답답할 인간들이 하리라.      남북이 단일팀 구성으로 화해를 도모하는 때 외국언론들은 남북한 단일팀, 한반도기 그리고 예술공연단 방문으로 조선반도에 전쟁의 공포가 가시고 그 자리에 평화가 다시 자리잡고 있다고 보도하고있다.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에서 “스포츠 외교는 득점하는것이지 총쏘는것이 아니다.”라고 하는데도 당사국내에 남북대화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극성을 부리고있으니 이런 수준급의 아이러니가 더 없을것이다.     말구유에 소가 대가리를 디밀듯 배달민족의 축제에 심기가 뒤틀린 양키마귀들도 백방으로 훼방을 놓으려고 지랄육갑을 떨고있다. 미언론은 “북한이 평창올림픽을 공중납치했다”고, “이번 올림픽이 북한 쇼가 되고 있다고”,“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음흉한 속셈을 털어내고있다. “눈처럼 하얀 평화올림픽, 그리고 검은 재를 뿌리는 미국과 반통 일세력들”이 천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양키아자씨네들은 새앙쥐들의 시각을 가지고있다. 지명으로 명명된 평창올림픽은 어떤 색으로 덧칠하든 한국 단독의 국가적 행사가 아니라 국제적축제인데 그게 “공중납치”되였다면 국제올림픽의 랍치가 된다. 흑백을 전도시키려 하다보니 궁리가 드나드는 구멍이 꽉 막혔는가? 그렇다면 랍치자는 세계초대강국이고 피랍자들은 핫바지, 저고리들이라고 자인하는 꼴이 되니 말이다.      미국은 조선의 예술단의 공연에도 앙앙불락이다. 덩치에 비하면 너무 쪼잔하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을 말리랬는데 조선반도에 화해와 협력분위기가 감도는 때에 벌이고 있는 군사적 움직임은 무슨 목적인가?한국의 우파진영의 반대를 위한 반대, 트럼프의 호전성에 맞춰 군사적 옵션을 부채질하고 있는 일본의 음모도 남북관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있다, 조선이 년초에 대화에 나설 때 가장 설레발친것이 일본이였고 남북단일팀에 대한 한국 반발 여론이 어떠하다고 너스레 떨며 붙는 불에 기름을 부은것도 역시 일본 언론이다.     각설하고,“좋은 일에는 어려움 많거늘 그 뉘가 풍파가 일어날것을 알겠는가? (誰知好事多磨起風波)”라는 옛글귀가 있더라만 되는 호박에 손가락질은 참으로 유치하다고 해야 하리라. 그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되였다가 10여년만에 만난 단비에 온 민족이 환호해야 미래지향적이 아니겠는가? 조선반도의 운명과 발전의 조종간은 그 주인인 배달민족의 손에 확고히 쥐여져야 한다. 이 기회에 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하여 “올림픽정신”으로 남북이 화합한다면 세계적인 대희사이기도 하거늘 이제 그만 리념갈등을 접고 통일의 광장을 닦아야 하지 않는가? 제군들!                                                                                              2018년 1월 24일    
763    (잡문) 이불안에 활개짓 댓글:  조회:2846  추천:0  2018-01-23
                                                          이불안에 활개짓                                                                      진 언       력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삼국시대의 쟁투를 담은 한국사극들을 보면“력사비틀기”로 인한“력사외곡론쟁”의 소지가 다분하지만 조선반도내에서 옛날 옛적부터 서로 죽이기의 혈극이 얼마나 심각하고 처절했는가를 단적으로 엿볼수 있다. 조선반도의 삼국간의 피비린 쟁투가 하도 오래동안 치렬하여 하나의 력사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졌을 가능성도 자연히 희박해졌다고 말할수 있겠다.     삼국의 항쟁은 4세기 이후 격화되여 5~6세기에는 한강류역을 놓고 조선반도에서의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졌다.《삼국사기》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백제는 4~6세기 동안 37회에 이르는 교전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백제의 시조 온조는 주몽의 셋째아들이고 고구려2대왕 류리와는 배다른 형제간인데 권력지반은 혈연도 네미덜머리를 만드는가? 아니면 세월이 형제간의 혈연도 빛바래게 하는가?     신라는 6세기에 백제와 련합하여 한강류역을 점령하고 백제의 점령지마저 갈취한후 통일시기까지 대고구려, 대백제와 전쟁하면서 대중국외교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고 서술하고있다. 신라통일이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결국 어디까지나 미완성품이였다. 이런 삼국통일의 배경과 진행으로 보면 김춘추나 김유신은 외세를 끌어들임으로써 천추에 시비거리 인물로 락인찍히고 말았다.     민족대통합이라는 의미를 제쳐놓고 소국의 리익을 앞세운 “통일”에서 기량을 떨친 김춘추나 김유신은 당군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한것으로서 성안에서 호통치는 다리 부러진 장수와 다를배없이 력사적으로 광채롭지 못하다. 누구든 이불속에서 큰방귀를 뀔수 있다.제똥무지우에서는 꽁지빠진 수탉이라도 홰칠줄 안다. 이불안에 활개짓하며 거센체 하는 그런 자들의 오기는 자신의 가장 취약한 점에 자족하면서 나중엔 자신을 대단한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우리 민족의 력사를 캐여 보면 많은 경우에 다리부러진 장수 성안에서 호통친격이라고 말할수도 있겠다. 김춘추나 김유신등이 신라안에서는 일세에 활개쳤는데 그 “빛나는 전통”이 수천년을 쭉 이어지고 있는가? 신라가 당군을 끌어들여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면서 수치스럽고 통탄스러운 수난의 민족사가 시작된것이다. 일찍 위나라 장수 관구검의 침입으로부터 시작되여 수,당군의 수차례의 고구려 침략, 고려시기 몽고의 침입, 리조시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잦은 외침 등2000년 반도력사에서 500번이나 침략당하여 거의 4-5년에 한번씩 침략당하였고 일설 3일에 한번꼴로 외세에 유린당했다. 국내에서 제노라 하던 귀족, 량반통치배들이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앞에서는 으시댔지만 그게 이불안에 활개짓과 무엇이 다를가?     그런데도 지금 신라의 통일을 대서특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론 모종의 근거가 있더라도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상잔하며 통일했다는 민족적수치를 전제로 하고있는것이다. 신라가 당군과 동맹을 맺아 백제를 멸했지만 백제의 곡창지대를 단 한평도 차지하지 못하고 당나라에 신하로서 엎드려 고스란히 받쳤고 백제의 쌀로 배를 채운 당군은 신라를 앞장세워 철천지 원쑤이던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하지만 당나라가 원산만에서 대동강이북의 거대한 고구려령토를 차지했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신라마져 삼키려 들었다.        신라를 신하의 부용국으로 치부하여 왕을 임명하고 당조의 관을 쓰게 하고 당의 년호를 사용하게 하였으며 조공을 받치게 하였다. 신라의 그런 “삼국통일”은 사대배족이 낳은 수치로서 리씨조선에까지 이어지다가 결국 속수무책으로 일본의식민지치하의 망국노로 전락되고 말았다.     배달민족수난의 근원은 력사적으로 강자에 기대고 무조건 섬기려던 지지리도 못나빠진 사대주의자들의 의뢰성때문이다. 고려는 그래도 나라간의 힘에 의한 사대일지언정 정신은 사대가 아니였다고 보고있는데 반면에 리조는 정신까지 사대였다. 그 뿌리의 시초는 신라가 아세아의 강국이였던 고구려를 멸망시킨데 있었고 명조의 부속국이나 다름없던 리왕조의 굴욕적인 력사로 발단이 되였다는 분석이다.       사료에 의하면 고구려 멸망후 고려때에 128 차, 리조때에 56차, 도합 184 차의 크고작은 수난을 겪었는데 고려가 건국된 918년부터 리씨조선이 망한 1910년까지 993년간 지속되였다. 동북아를 호령하였던 고구려가 굴강하게 외세를 맞받아친 장 거를 내놓고는 신라,백제는 이렇다할 항전사례가 없다. 세 동족국가가 힘을 융합되 여 통일강대국을 건설하였다면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의 수모도 없었을것이고 백성들의 원한서린 무리주검과  초근목피의 비참한 생활도 없었을터이고 일제식민지 36년이 종말을 고하자 뒤미처 분단된 세기적 비극도 없었을것이다.     삼국사로 보면 세쪽짜리 민족으로 서로 이불안에서 활개짓한것이다. 신라도 죽을 쑤어 개를 주고 작은 울타리안에서 활개치다가 고려에 의해 망하였다. 고려를 멸망시킨 리성계 조선은 명조의 눈치아래 설설기며 백성들만 못살게 굴며 이불안 활개짓만 하였다. 필경 국운이 다 기울어서야 제멋에 황제를 칭하고 대한제국이라 부르고 쓰며 장구치다가 유야무야 10년만에 일본식민지로 륜락되고…     명조, 만청, 일본, 미국등의 등쌀에 짓이겨진 배달민족의 수난사를 돌이켜보면 사대주의와 외세의침략때문에 허리한번 펴지 못하고 유린당한 너무도 쓰라린 비운의 력사였다. 사대주의와 침략자때문에 동학농민혁명도 좌절당했다. 일제때 독립운동을 탄압한것도 사대주의와 외세의 총칼이였다. 사대주의자들의 발바리짓과 침략자들의 잔혹한 탄압속에서 얼마나 많은 반일구국의 투사들이 한을 품고 순국했던가?       세계력사를 살펴보라. 단합된 민족은 타국을, 타민족을 정복함으로써 제국으로 군림했고 모래성같은 민족은 노예로 전락되였다. 그런데 현재도 반쪽짜리 민족으로 되여져서 세기를 넘기면서 동족상잔을 벼르는 민족은 우리 배달민족뿐이다. 게다가 호가호위한다면 총명한 여우인가, 우직한 호랑이인가? 아무리 기세차도 이불안에 활개짓은 왕창 슬픈 작태이다. 그런줄 모르는것은 더구나 광대극에 광대이다.     개체에 비유해 말해보자. 가령 형제간에 불화하여 원쑤지간이 됐더라도 동네방네 제혈육을 욕보이게 한다면 망본이 아닐수 없다. 다른 동네 깡패를 불러다가 제형제를 잡아치워달라고 한다면 잡아치워야 할 그 형제는 더구나 절치부심할게 아닌가? 세인들이 제형제를 헐뜯는 얄팍한 짓거리를 어떻게 생각할가? 같은 말을 반복하며 다른 결과를 바라는것은 바보들만이 하는 사유방식이다.     사회란 다양한 삶의 애환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이자 여러 층위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구조이다. 수평과 수직의 씨줄, 날줄로 얽힌것만이 아니라 한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구조이다. 의지는 의지자와 주변의 환경에 따라 류동적일 때가 있다. 통치자의지도 의지 주변의 환경에 따라 류동적일 때가 있다. 권력가에 있어서의 의지란 힘의 세기와 력학적으로 작용하는 욕심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우물안의 발정난 개구리는 우물밖의 엄동설한을 모른다. 그 추위와 바람을 견뎌내는 늑대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리가 만무하다. 꿰진 쪽박을 쓰고 벼락을 막을수 있는가? 조그마한 반도땅도 허리가 동강나 분단민족으로 세기를 넘어서면서도 서로 잡지 못해 으르렁거리나 성안에서 호통치는 절름발이 장수와 나을게 무엇인가? 결과 양키네가 어부지리를 하고 있으니 세상을 웃기고도 크게 남을 단군족들의 조우는 과연 누구의 탓인가?. 절로 나오느니 애재로다!                                                                               2013년 11월 30일
762    (사회칼럼) 병적인 콤플렉스 댓글:  조회:2655  추천:1  2018-01-05
                                                                       병적인 콤플렉스                                                                                  진 언           이 그림은 지난해 한국 ‘제 22회 우리미술대회’ 유치·초등부에서 대상을 수상한 한 초등학생의 작품. ‘쑥쑥 우리나라가 자란다’는 주제로 평화를 표현한 작품이다.     그림은 하나의 큰 나무 몸통에서 남한과 “북한”이 뻗어나가고 이 주변을 손을 맞잡은 어린이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둘러싸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나무주변엔 무궁화와 수국으로 보이는 꽃이 장식돼 있고 이 장면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을 뜻하는 상징으로 각각 태극기와 인공기가 그려져있다.     아직 세속에 때묻지 않아 순결무구한 초등학생에게 있을법한 평화에 대한 소망을 담은 그림인데 내노라 하는 정객들이 길길이 뛰고있다는 뉴스를 보며 그냥 허구픈 랭소가 피씩 새는것을 말려낼수 없다. 한 어린이의 미숙한 그림에도 말초신경을 살려야 할 심태라면 이 무슨 눈물겨운 콤플렉스냐?     다들 알고있지만 콤플렉스의 첫째 의미는 자기가 다른 사람에 비해 뒤떨어졌다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이다. 두번째 의미로는 어떤 감정에 의해 통합되여 있는 관점이나 기억의 복합체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정신분석학상에서의 협의적의미는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맺힌 감정을 이르기도 한다. 기본의미이든 파생적의미이든 콤플렉스를 가지게 한 진원지가 소학학생그림인데 그에서 소스라친다면 얼마나 가공할만한 심태인가?     심사평의를 맡은 대학교수는 “평화를 의미하는 통일나무에는 작은 가지와 잎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행복한 미소가 느껴진다. 아마도 다가올 미래에 이 평화로운 통일 나무가 스스로 움트고 자라서 행복한 미래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느낄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수작으로 추천한 리유를 밝히고있다. 백번도 지당한 심사평의이다. 내가 그림에 문외한이여서 그런지 확대경을 대고 생달걀에서 쉬파리앉은 흔적을 찾아보려는듯 아무리 살펴봐도 거대 공당이 ‘각잡고’ 비판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작인지 전혀 보아낼수 없었다.     그런데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고 콩팔칠팔 한다면 신경과민이 아니면 분명 병적인 콤플렉스에 자신을 가두는 웃기는 언동이요 한심한 작태라 할것이다. 한 야당대표씨는 더없이 심각해져서 “북한 국기가 한국의 시중 은행이 제작한 달력에 나온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싱거운 걱정이지만 색안경을 벗으시고 “허, 어린것이 정말 대견하데이!” 하고 치하해야 정계어른의 기본자세가가 아닐가싶다. 어린애의 그림은 보는만큼, 생각하는만큼의 그림이지 선동, 고무찬양도 아니다. 민족대통합을 웨치고 다니면서 “대한민국 안보불감증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고 덴겁한 소리를 내지르니 너무 아량이 없잖은가? 자라에 물린 놈이 솥뚜껑을 보고 놀래는것도 상황나름이다.     이 그림을 달력의 표지로 낸 “우리은행”을 타매하며 국가적인 안보차원에로 끌어올리지만 어린아이의 진솔한 랑만에 넘친 그림에 대역부도한 점이 나변에 있는가? 정계에 한 고명인사는 “이 그림에는 인공기가 태극기보다 위에 그려져 있고, 북한과 대한민국이 동등한 나라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며 질타하였다.     언감생심 묻거니와 유엔헌장 제2조1에 “기구는 모든 회원국의 주권평등 원칙에 기초한다.”라고 명백하게 씌여있지 않던가?  당시, 남북은 동등한 자격으로 동시에 유엔에 가입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국가간에 고하를 론한다는것은 무지의 소치가 아닐수 없고 아니라면 옆구리가 터져버린 도토리의 키재기인가? 미운 대상은 무조건 내 아래여야 한다는 오만과 편견이말로 얼마나 형페무인지경(농촌사투리)인가?       잡담 접어두고, 이 그림을 안보불감증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이에 대응하겠다는 어른들의 작태는 거국적인 장거인가?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더니 덩달아 격앙한 열혈지사들이 거리에 나와 야단법석인데 온 세계가 어찌볼가? 어느 지자의 말처럼 한국의 “국민들은 수준낮은 선동에 놀아나는 존재가 아니”라고 믿고싶은데…     아무튼! 아이의 그림을 두고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고, “이제 학생들은 미술대회 수상을 위해 인공기를 그릴 것이고, 미술대학 교 수는 이런 그림을 우수상으로 선정 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안보불감증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고 고아대는데 결과적으로 자아풍자가 되고 자승자박이 될것이 명약 관화한데 그것을 예상못한다면 참 “곤란”하지 않은가! 일컬어 “통일대박”론에 열광하 던 분들이 이 무슨 아이러니이신고? 과잉된 피해의식이 불러온 콤플렉스인겨?     융은 콤플렉스를 감정적으로 강조된 심리적 내용 또는 그 내용을 중심으로 한 심적요소의 일정한 군집이라고 정의했다. 콤플렉스가 병적이 아니라도 바람직한 심태 가 아니다. 콤플렉스가 심하면 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을 훼방놓고 공연히 당황하게 만들고 앉으나 서나 말초신경을 살리게 한다고 한다.     노이로제(신경성질활의 총칭) 증상을 만드는것도 콤플렉스에 의한 작용이며 콤플 렉스는 강박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게 하고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을수 없게도 만들며 또한 무엇을 두려워하게도 한다고 해석하고있다. 콤플렉스란 인간속에 있는 미지배 분야이고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령역이지만 이 류의 콤플렉스 현상은 가관이다.     융에 의하면, 병자든 건강인이든 누구나 콤플렉스를 품고 있는데 무의식화되면 될수록 강력하게 되여 병리성을 지니게 된다. 심오한 리론을 풀것없이 콤플렉스란 세속적인 언어로 간결하게 “마음속의 응어리”라고도 정의한다. 각종 콤플렉스는 보통 유년기의 갈등상황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유년기의 갈등상황에서나 그후의 관념표상에서 반복,회귀하므로 일련의 콤플렉스가 로출된다.     함, 그렇더라도 어린애의 천진란만한 그림을 놓고 시왈비왈 하는것은 어른답지 못하고 나아가서 정치인의 수준미달의 반증이다.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않으면 포용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서로 두 팔을 활짝 벌려야 포옹할수 있다는것은 유치원생들도 다 안다. 그런데 그냥 가시낀 몽둥이를 들고 화해타령을 부를셈인가?     보다싶이 기성세대의 조선에 대한 불신과 상습적 거부감은 불치병으로 굳었다. 무작정 불신의 불치병에 걸린 기성세대로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불가능하다. 이제 남북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협력과 상생의 남북이 되도록 어린이, 청소년들의 관념속에 민족대통합의 소망을 심어주어야 지극히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이라 믿어의심치 않는바이다. 필자의 생각이 천박한지 모르지만도,     사람이 늙으면 도로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 아니다. 아이의 질박한 그림 한폭도 용납못하는 흉금으로 어찌 국사를 론할수 있을고? 모두들 나이도 드실만큼 드셨고 인정사정 얽히고 서린 인생일사 파란곡절도 겪을만큼 겪었을 어르신들이, 더구나 일국에서 떵떵거리는 고명인사들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시러베처럼 우문은 던지지만 현답이 있을가? 코를 열고 심호흡해도 답답함!!!                                                             2018년 1월 2일
761    (칼럼) 정유년 묵시록 댓글:  조회:2692  추천:0  2018-01-01
                                                                   정유년 묵시록                                                                              진 언     예나 다름없이 덧없이 흘러간 이 한해, 나로서는 물질생활에 별로 달라진것이 없는 대신 심심찮게 사고나는 몸도 그렇고, 리해득실로 따져보아도 무의미한 중복의 하루하루가 점철된 한해이다. 딴에는 뭔가 도모하려던 일도 있었던지…결과는 미담보임, 하지만 생에 대한 욕망만은 왕성해서 희망이라는 사치스러운 기대를 잉태해 주는 마력에 턱걸이하고 가끔 웃기도 했던 한해였는데…     누군가 정유년을 두고 가라사대 정(丁)은 십간 가운데서도 불의 기운을 상징하는 붉은색을, 유(酉)는 닭을 뜻한다고, 닭울음소리와 함께 어둠이 걷히고 새아침이 밝나니 그래서 닭은 어둠속에서 빛의 출연! 만물과 령혼을 깨우는 개벽의 해!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 귀신과 마귀를 물리치는 힘도 있단다. 그래서 혹했던가! 나로서는 별로 바라는것이 없으면서도 공연히 기대되였던 정유년!     일년 열두달 365일을 찍어넣어 두툼했던 달력이 이젠 달랑 한장만 남아서  2017년, "붉은닭의 해"를 마감하고있다. 세월의 류수는 저만치 흘러가고 또 새해라는 년륜이 곧바로 시공의 문턱에 새겨지는도다. 신년차에 구곡간장에 서리고 얽히는 감구지회야 어찌 없으랴만 말해보아야 시시콜콜할것이니 이만 접어두고, 오지랖넓게 눈을 들어 멀리 풍물을 내다보나니…     붉은수탉이 잘못 울어쌌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피빛 사건들로 소름돋던 지극히 지독한 정유년이였다. 물론 올해에만 지독함이 새겨진게 아니지만 가도록 황산이라고 지난날보다 더 볼썽사나워진 지구촌이 된 한해, 다재다난했던 이 해가 어렵사리 지나갔다. 비록 미미한 민초라도 아슬아슬한 살얼음 판같던 국제정세, 자칫 일어날번했던 불구름속에 민족공멸을 피해간것이 천만다행 이라 놀랐던 가슴을 어르쓸며 갖잖게 묵시록을 엮어본다.     백성은 국사를 론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치가 개개인의 인간생활에 끼치 영향은 절대적이여서 아무도 초연하게 살아갈수 없다. 정치가 마치 다른 령역의 일이 기에 왈가왈부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지만 인류가 사회집단을 이루고  강력한 약속력에 얽매이지 않을수 없는게 정치이니 누군들 진공상태에서 살것인가?     시공의 장벽이 사라진 오늘 날, 세계의 질서를 누가 쥐락펴락 하는가? 물으나 마나한 우문이다. 국가지간, 민족지간에 대립,격화가 심각해지고있다. 과거처럼 직접 적이 아닌 교묘한 술책을 쓰지만 무자비하기는 이짝저짝이다. 피상적으로 중동지구의 아수라장이나 이판사판 조미대결의 아슬함은 미국이 제국주의적 독식야욕을 앞세우고 있기에 국제정치는 이상할것이 전혀없는 소용돌이였다.     강대하면 욕심껏 먹어치우고 약하면 막무가내로 먹히우는 력학구도는 지구촌 에서의 생존의 고리!! 그래서 약소국, 약소민족은 항상 초조해지고 불안해지는것이니, 그리하여 생존권 침해에서 벗어나려는 생사결판의 발버둥이질! 미제를 우두머리로 한 렬강들은 바로 이런 틈서리속에서 강성해졌고 지금도 그렇게 작동되고있다. 정글의 법칙에서 벗어난, 나만의 보호와 축복은 그 어디에도 없고 약자의 부질없고 허무맹랑 한 안깐힘을 강자들은 비웃으며 제멋대로 놀아댄다.     처칠이 영원한 친구가 없고 영원한 적이 없다고 했듯이 미국을 괴수로 한 서구 렬국들이 내키는대로 주무르며 리해득실에 따라 친구와 적이 번복되는 요상한 국제관계, 지구상에서 오로지 양키의 리익이 보장되여야 한다는 억지국(国), 생떼질 국(国) 에 무조건 순종하라는 횡포무도한 강도론리가 판을 치니 요상스럽다는것이다.    서구제국주의자들이 식민통치를 위해 내흔드는 위선적인 평화질서,인권타령은 철두철미 기편수단인데 그것에 취해버려 멸종된 인디안인들처럼 수많은 약소국들이 그것에 올인되여 자기도 모르게 어리광대질하고있다. 평화와 인권을 빙자한 극악무 도한 제국주의자들은 굴종을 강요하며 평화를 팔면서 최첨단무기의 세례를 안긴다.     양키는 욕심같아선 불복하는 적국들을 마구 두들겨패고 침탈하고 싶겠지만 평화 니 인권이니 세계질서니 하는 그럴듯한 미명하에 옴니암니 제리속만 챙기려들면서 우 선은 손쉽게 먹어치울수 있는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여 날치고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세계경찰행세는 어제나 오늘이나 그냥 그 꼴이라는것이다.     힘의 원리에 의해 주권이니 민족독립성이니 하는 념원은 갸륵해도 자강, 자립의 의지나 실력이 없으면 속고이마저 벗기우고 거세당하는 세상이다. 교활하고 음흉 한  양키들이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풀듯이 곰팡이낀 “이이제이(以夷制夷)”계략을 쓰 려고 하는판에 그런 얄팍한 수단을 간파하지 못하고 추종하는 세력들이 지구촌에 많으니 양키가 오만방자한것이다. 양키네들의 세계제패의 탐욕이 끝없는 한 최강의 군사력에 맞서는것은 절대 용허되지 않는데 누가 감히 맞선다면 대역부도한 일처럼 공인된다.     그리하여 날이 갈수록 국제사회는 편짜기에 올인하고있다. 서로 제편을 확충하 려고 리간계, 얼리고 닥치기 수법 등이 갈수록 간교해지고 치밀해지고있다. 동남 아시아 상당수 나라가 양키들의 제스츄어에 홀라당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자주, 자강을 지향하는 동방소국의 핵무장이 가지는 의미는 역시 리해득실로부터 합법여 하가 풀이된다. 본질은 핵보유 그 자체가 아닌, 그것으로써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지 향성을 객관적으로 투시해야 사리에 맞다. 왜냐?     지금까지 "핵균형=패권주의=적대적 공생"이였다. 그러나 이것을 작금의 조미대결 의 방정식에 그대로 대입하려 든다면 틀린 답이 나올수밖에 없다. 동방소국의 핵무 장이 미국을 괴수로 한 해양세력의 침탈에 맞서는것이기에 무작정 타매할 일이 아니 라고 본다. 강도가 문앞까지 쳐들어와 칼춤을 추는데 집안에서 식칼이라도 가는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몽둥이를 들고 서있는 사람은 개에게 물리지 않는다"는 속담은 경세지언이기도 하지 않는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로 작금의 국제시비를 비유하기에는 창백무력하다. 독립자주라는 슬로건이 탈선하지 않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당할수 밖에 없다. 누구처럼 편들어주는 큰형니미 없다면 곤두박질 하면서라도 내가 나를 지킬수밖에 없기때문이다. 단군족의 생존권과 번영창성의 권리를 누가 곱지 않게 보는가? 전 인류의 공생공존과 충돌되지 않는데 왜 동네방네 콩팔칠팔인가?     속담에 매를 이기는 장수가 없다했거니와 그게 “모든개매”일 경우 아무리 깡다 구(악착같은 기질이나 힘)가 있다해도 난당이다. 그렇다고 자진하여 바지를 벗고 볼기짝을 들이댄다는것도 말이 아니되고…이래저래 설음과 속으로 삼키는 분노는 약자의 숙명인가? 그러나 시시비비가 생뚱같이 뒤탈리는 현시대에도 영구불변, 정해 진 틀이 따로 없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달리 해석되고 달리 체현될수도 있다.     개체는 물론, 한 국가의 생존권의 주인은 바로 “나”이다. 역경도 타격도 나의 판단과 내가 맞서는 태도에 따라 타개될수도 있다. 강자에 굴종할것인가 항거할것 인가가 아니라 자강할것인가에 달린 일이다. 이 대천세계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살아 가고있다. 존재리유도, 살아가는 방식도 제가끔이다.     인간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한다. 결코 강자의 특허가 아니다. 내 리익이 있으면 타자에게도 나름의 리익이 있을법한데 제리익을 잣대로 가로긋고 세로 그으며 매사에 왈가왈부한다는것은 강도론리이다. 그러나 모든 약자에게 통한다고 생각한다면 유치 하다고 해야 하리라. 모든것이 변화한다. 이것만이 절대진리이다. 흥망성쇠의 섭리 에서 미제인들 자유로울고?     유엔제재를 빈대떡 빚듯 내키는대로 주물럭거리는 미국을 따라 웨치려 할진대 미국의 피비린 침략사를 한번 돌이켜보라. 미국은 적국이 없으면, 제1산업, 군수산 업이 돌아가지 못하는, 피를 먹고 사는 흡혈국이다. 미국의 태생지가 어디냐? 인종청 소를 당한 인디안인들의 피바다속에 시체산이다. 조선침략, 베트남침략, 리비아침략, 아프카니스탄침략, 이라크침략, 이란의 소요…끝없이 적을 만들고 침탈하여 비대해 졌다.          강도론리앞에서는 시비가 네미덜머리다. 이스라엘은 핵탄이 200여기인데 눈감아 주고 있는 미국이다. 리비아,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속아서 당한 참화를 똑똑히 못보 았나? 침략자 양키가 평화가 보장해 준다는 환상은 유치하다. 승냥이는 결코 양으로 진화하지 못한다. 불문곡직 힘으로 대방의 항거능력 자체를 말살시키는게 양키네 목 적인데 구세주인듯 이 목을 매고 끌려다닌다면 그 모습이 아니 처연할가!     우리 민족의 얼속에서 번뜩이는 슬기와 지혜를 보라! 돈은 없어도 자존만은 지키 려는 지조! 그게 인간의 참된 가치를 지키려는 배달민족의 본성이고 그게 민족다운 자세이고 천세만세 물려줄 참모습이다. 빌어온 고양이는 사흘을 못넘긴다. 호가호위 도 일종 방편일뿐이다. 지정학적으로 복받은 땅이건만 루루천년을 내리내리 잡다 한 외세에 침탈당하였던 배달민족, 자고로 정글법칙이 운행된 민족지림에서 꿀리는데 한점없이 공생공존을 웨치려면 자강하는 길외에 다른 길이 없다. 정의에 나서란 약자도 용감해지나니!!!                                                             2017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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