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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젊다”와 “늙다”의 변증법 (서영빈) 댓글:  조회:1737  추천:0  2009-05-16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있어 동사와 형용사의 구별은 품사분류에서 언제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것은 원래 우리말에서 동사와 형용사가 구별 없이 쓰였다는 역사적인 사실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오늘날의 시대변화가 몰고 온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 된다고 하겠다.     대체적으로 보면 반대말은 같은 품사에 속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예를 들면 “가다”가 동사이기 때문에 그 반대어가 되는 “오다” 역시 동사에 속하게 되고 “좋다”가 형용사이기 때문에 그 반대말인 “나쁘다”도 형용사에 속하는 경우와 같다고 하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존재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있다”는 동사임에 반하여 “존재하지 아니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없다”는 동사가 아닌 형용사가 된다. 이럴 때 단어의 사용에서 혼동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단어오용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반대말을 이루는 두 단어가운데서 하나는 동사가 되고 다른 하나는 형용사가 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재미나는 것이 “젊다”와 “늙다”라는 커플이다.     결론부터 보면 “젊다”는 형용사인데 “늙다”는 자동사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나이보다 늙어 보인다”에서처럼 꼭 반대되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형용사, 하나는 자동사이다. 그것은, 사정에 따라 혹은 젊어 보일 수도 있고 혹은 늙어 보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늙어가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고 젊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늙는다”는 말은 가능함에 반하여 “젊는다”는 말은 불가능하다. 젊게 보일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젊어지는 것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조물주의 뜻이요, 자연의 섭리요, 우주만물의 법칙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젊어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국의 어느 유명한 학자 한분은 “내 나이를 단 한 살이라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명성과 부와 지식을 그 대가로 지불하고 싶다”고 공언하였다. 그만큼 나이라는 것은 먹기만 할 뿐 다시 토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옛날 황제들은 장생불로초를 찾아 세계를 샅샅이 뒤졌고, 여성들은 화장술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젊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확인해주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화장술을 무색케 하는 성형수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성형수술은 어느 화장품 광고카피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난해 20살이었는데 올해는 18살처럼 보여요”가 아니라 아예 18살로 뜯어고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외모는 뜯어고칠 수 있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인간의 오장육부를 18살로 뜯어고쳤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18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남자들이 비아그라의 도움으로 18세의 정력을 잠깐 회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18살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약 기운이 빠지면 40살이 오히려 50살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상 이치가 이런데도 사람들은 “젊어지는 일”에만 매달려 있다. 언젠가 누가 인간이 젊어질 수 있는 기술을 발견한다면 그는 단연 빌 게이츠를 초월하여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젊다”라는 형용사를 인위적으로 자동사로 만들어보려는 인류의 이런 피타는 노력은 숭고하고 거룩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가엽기 짝이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젊어지는 기술도 좋긴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늙어 가는 것이 좋을까 하고 고민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늙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없다는 현실이 나를 서글프게 한다. 어떻게 늙어 가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젊어지느냐 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이며 또 누구나 다 경험하게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한 사고는 하지 않고 되지도 않을 젊음에 연연해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소노 아야코(曾野绫子)의 《계로록(戒老录)》과 같은 작품들이 나와야 할 텐데…     우리말에서는 아이와 어른이라는 말로 인생을 두 시기로 나눈다. 여기에서 어른이라는 말은 첫째로 성인이라는 뜻이고, 둘째로는 시집 장가를 간 사람이라는 뜻이며 셋째로는 한 사회의 권위자나 덕망 높은 인사를 이르는 말이다. 성인으로서의 어른이 가장 기본적인 뜻이라면 시집장가를 간 사람이라는 뜻의 어른은 좀 더 확장된 의미가 될 것이며 세 번째 뜻은 단어의 기본의미에서 의미 폭이 가장 넓게 확장된 것이라고 하겠다. 성인은 나이만 먹으면 자연스럽게 되지만 시집장가를 가기 전까지는 진정한 어른취급을 받기가 어렵다. 부모가 되어보아야 부모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집장가를 가서 부모가 되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다 어른인 것은 아니다. 세 번째 뜻의 어른은 나이만 가지고 되는 어른이 절대 아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많이 있지만 존경스럽고 근엄하고 초탈한 어른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아졌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해득실에 연연해하고, 옹졸한 마음가짐으로 젊은 사람들을 재단하고, 현실적인 손익계산 때문에 바른말을 못하는 노인이라면 이미 어른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돌이켜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는 어른들이 많이 있었다. 가문에는 가문의 어른이 있고 동네에는 동네 어른이 있었으며 사회에는 사회의 어른이 있어서 그 어른들이 한 말씀 하면 대체로 결론이 나왔었다. 그분들은 이미 자신의 인생행로를 통해 공정하고 진실하고 합리적인 사유방식을 내면화하였고 그것이 또한 민중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그분들의 말씀은 늘 호소력을 지녔고 이러한 어른들과 함께하면 언제나 마음이 든든했다. 이러한 어른은 지식의 권위자나 행정적인 세력가가 아니더라도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인격에서 나오는 힘이 있기에 굳이 행정적인 세도나 학문적인 권위를 부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권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어른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것이 혹 하나같이 젊어지려고만 노력했던 탓은 아닐까 하고 반문해본다.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말이 옛말이 되었다고는 하나 오늘까지도 90세를 넘기는 생은 그리 많지가 않다. 90을 목표로 치더라도 어언 내 나이는 슬슬 내리막길로 접어든 시점이다. 지금까지 아득바득 위로 올려다만 바라보고 살아왔다면 지금부터는 내려다보며 사는 인생이라고 하겠다. 인생이 등산길이라면 지금부터는 산에서 내려오는 연습을 할 나이다. 원래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오기가 힘들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르막길에선 한두 걸음 잘못 디뎌도 큰 낭패는 없지만 내리막길에서 얘기가 다르다. 한발자국만 헛디뎌도 천길 나락으로 곤두박질친다. 부디 조심할지어다.     산에서 잘 내리려면 무엇보다도 과욕을 버리고 자신에게 맞는 보폭을 유지하며 속도조절을 잘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몸에 버거운 짐은 아쉽더라도 버리고 떠나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멋있는 하산이 되려면 오르면서 보지 못한 산의 진면목을 보는 혜안을 갖추어야겠다. 그래야 진정 헛되지 않은 등산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어쩔 수 없이 돋보기 신세를 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조석구의 《부분이 전체에게》라는 시를 음미하며 유쾌히 하산길에 나설 것이다. 어른이 되지는 못할망정 추한 노인이라는 평은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부분이 전체에게          조석구 책과 신문을 자꾸만 멀리 보게 되더니 마흔다섯에 접어들어 드디어 안경을 쓰게 되었다. 안과의사는 말했다. 원시가 되었다고 했다. 원시는 나에게 말했다. 가까운 앞만 보지 말고, 멀리 넓게 보라고 했다. 그동안 근시로 얼마나 많은 편견과 편협 속에 살아왔느냐고 했다. 나이값을 하라고 했다. 작은 글씨가 안 보이고, 큰 글씨만 보이는 것은 쩨쩨하고 시시하게 살지 말고, 선이 굵고 크게 살라는 것이라고 했다. 부분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라는 뜻이라고 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라는 뜻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4    왜 마을 운동회가 더 재미있을까- 아마추어의 변(서영빈) 댓글:  조회:1507  추천:0  2009-05-16
한국에 금방 나갔을 때의 일이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어서도 나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학교로 출근했었다. 그 날이 그냥 무슨 요일이라는 것만 알았지 그게 어린이날인지 공휴일인지 전혀 알 바 없는 나로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 날 강의책자를 챙겨들고 캠퍼스에 들어섰다. 캠퍼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별로 신경을 안 쓰고 강의실이 있는 동에 들어서니 강의시간이 임박했는데도 복도에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수위 아저씨한테 물어서야 오늘이 어린이날이라는 것, 어린이날은 공휴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은 ‘아동절(儿童节)’이라 하여 6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놓고 있지만 공휴일은 아닌지라 나는 허탕의 불쾌감보다는 뜻밖의 휴일을 챙기게된 은근한 만족감을 즐기며 연구실에 들어섰다. 그날따라 날씨가 왜 그리도 따뜻하고 포근한지,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둥실 떠있고 열어놓은 창문으로는 꽃향기를 실은 봄내음이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임어당이 그랬던가? 봄날에 독서함은 춘의(春意)에 어긋난다고. 나는 책상 위의 책들을 죽- 밀어놓고 춘의에 따르기로 마음을 정했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학교 운동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보니 그 곳에서는 어린이 운동회가 한창이었다. 초등학교 아이들로 보이는 ‘선수’들이 달리기 경주에 열심이고 그 응원단 사이의 대결도 만만치 않았다. 관람석을 빼곡이 채운 관중들은 가족 단위로 원족이라도 온 것처럼 모두 도시락을 준비하여 놓고 대단한 명절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봄날의 화창한 날씨에는 역시 독서보다 운동회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모든 걱정들을 잊고 지긋이 운동회 구경을 해 보기로 했다. 아마 겨우 초등학교 일학년이나 되었음직한 꼬마들이 달리기를 하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자주 하던 이른바 장애물 경주였다. 그렇다고 여러 가지 장애물을 설정하여 놓은 것은 아니고 다만 몇 십 미터 가다가 한번 씩 땅에서 뒹굴고 나서 다시 뛰는 경기인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특히 어떤 학생들은 뒹굴고 나서는 방향을 혼동해서 자기가 뛰어오던 방향으로 냅다 달리다가 선생님이 옆에서 길을 막고 주의를 줘서야 다시 되돌아서서 달리는데 그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어린이들의 경기만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학부모들의 경기가 더욱 일품이었다. 겨우 60여 미터를 달리는데 마음만 앞서고 다리가 말을 잘 듣지 않아 허우적거리다가 앞으로 넘어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어린 자녀들이 넘어지지 않는데 한창 나이의 어른들이 뛰다가 넘어지는 건 아무래도 균형감각이나 체질상의 문제 같지가 않았다. 방향을 혼동하는 어린애들의 경우를 동심이라고 한다면 어른들의 경우는 욕심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그 욕심이 조금도 추하거나 밉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래서 아이들에겐 어른의 지도가 필요하고 어른에게는 동심의 해맑은 거울이 필요한 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올림픽보다 더 재미나는 이 어린이 운동회를 보고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시골의 마을 운동회가 떠올라다. 어렸을 적 내가 자란 마을은 5백 가구 남짓한 조선족들이 집거하는 평원지대의 마을이었는데 일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마을 운동회는 그 어떤 명절보다도 즐거운 축제의 날로 기억된다. 마을 운동회가 열리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마을 전체가 술렁대면서 흥분을 잉태한다. 꼬마들은 벌써부터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에 나가 집안 어른들의 좌석잡기에 급급하고 노인들은 희끗한 수염을 날리며 젊은이들의 옹위 속에 운동장으로 향한다. 마을 아낙들이 한복을 입는 거의 유일한 날도 바로 이날이다. 학교 운동장을 제외하면 온 마을이 텅 비어버려 중학생들의 토마토 서리나 참외 서리도 이날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운동회라고 하여 어떤 특정된 경기종목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축구나 배구, 널뛰기, 그네, 씨름 등이 전부다. 때때로 새로운 종목이 신설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자전거 늦게 타기처럼 유희성에 지나지 않는다. 기록이란 것이 있을 수 없고 어떤 정확한 수치나 숫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관중의 참여도는 과히 열광적이다. 막판에 가면 으레 한두 사람이 술에 취해 심판의 공정성이요 뭐요 하며 시비를 걸게 마련이지만 그것도 웃음 속에서 유야무야되고  만다. 마을 운동회는 꼭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이 그냥 봄철의 모내기가 끝나서 하기도 하고 또 가을걷이가 끝나서 하기도 하고 날씨가 궂으면 한 주일 씩 미루기도 한다. 한해는 우리 고향 출신의 한 유명한 교수가 오랜만에 귀향하자 그의 일정에 맞추어 열기도 했다. 이런 마을 운동회가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더 재미있는 이유를 나는 여태껏 ‘선수’들과의 유대관계로만 생각했었다.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이 그 어느 명배우의 연기보다 자기 아들의 어설픈 연기를 더 재미있어 하듯이 나의 이웃이나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활약이 바로 마을 운동회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라고 확신하면서 거기에 일말의 의혹도 가져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생동하는 봄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한가롭게 어린이 운동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생각이 달라졌다. 이것이 바로 아마추어의 매력이고 힘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너무도 판이한 세계를 상상하면서 너무 오랫동안 아마추어의 세계를 잊고 있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왜 자기가 이처럼 오랫동안 허탈한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흔히 하는 말처럼 프로의 세계는 철저히 돈의 세계이고 과학의 세계이고 승부의 세계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항상 정확한 수치가 개입되고 기계가 개입되며 냉혹한 판정이 개입된다. 프로의 세계에서 인정(人情)이나 관용 또는 용서는 생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마추어의 세계는 유희의 세계, 정서의 세계요 낭만의 세계이다. 어차피 유희인 만큼 승부는 벌써 뒷전이고 중요한 것은 유희 자체를 얼마나 즐겼는가 하는데 있다. 인간의 즐거움이나 재미는 바로 이 유희성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프로 마라톤 선수들의 그 숨막히는 라스트 스퍼트 장면에서 우리는 물론 가슴을 저리는 뜨거운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재미가 아니고 즐거움은 더욱 아니다. 그 감동은 오히려 비극미에 가깝다. 우리 인생에서 재미나 즐거움이 중요한 건 아마 그것이 비극미에서 오는 감동보다 더 원초적이고 더 본질적이며 더 자연적인데 있는 것 같다. 그 어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나 유희이기 때문에 오히려 주동적이 될 수 있고 여유가 있으며 그러한 주동성과 여유가 바로 인간의 정신세계를 윤활하게 하는 이른바 예술의 모태(母胎)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이란 본래부터 아마추어에 그 기원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예술이 프로로 되면 자연히 상업화와 연결되면서 과학이 가미되는 반면 낭만이나 유희성은 자기 자리를 잃게 된다. 지난 20세기를 뒤돌아보면 참으로 과학의 세기라고 할만하다. 미국 타임지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물로 아인슈타인을 꼽은 것도 결국은 20세기의 성격을 과학이 대변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막 시작된 새 천년에도 과학은 역시 초고속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신문지상에 발표되는 과학가들의 예측대로라면 2025년쯤에는 그 공포의 에이즈도 극복이 가능할 것이며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태아 시에 벌써 각종 면역세포를 주입하여 병에 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그때에 가서는 과연 우리의 꿈처럼 인간이 장생불로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 중엽에 이르러 인류가 사망하는 제일 큰 병명을 ‘고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고독’이라는 이름의 병을 과학의 힘으로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어느 하나에 너무 치우침이 없이 과학과 낭만, 이성과 감성, 물질과 정서가 적절히 평화공존하는 그런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아쉽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마을 운동회나 어린이 운동회 같은 아마추어 모임이 자주 있는 한 적어도 우리는 재미와 즐거움을 좀 더 오래 누릴 수 있을 것이고 그러느라면 21세기의 ‘고독’이라는 이 악성종양에도 어느 정도 면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3    달력과 일력( 서영빈) 댓글:  조회:1392  추천:0  2009-05-16
또 한해가 지나간다.   연초의 계획은 그냥 계획으로만 남아있고 해놓은 일도 없이 또 한해가 지나간다.   며칠 전 조금 이르게 가진 망년회에서 한 스승님은 50세 이후의 세월은 급행열차라 하셨다. 지금까지의 세월도 내 기억으로는 특급열차 같았는데 50세를 전후로 시간이 기하급수로 빠르게 느껴진다니 인생을 일장춘몽에 비유한 선인들의 감회를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연말이 되면 여기저기서 달력을 보내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달력이 하나의 장식품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예쁘게 만든 달력이라 해도 별 관심이 없다. 달력은 그냥 달력일 뿐, 여기저기 널려있는 달력을 보면서 거기에서 생명이나 시간의 의미를 추적하려는 사람은 없다.   옛날에는 달력을 쓰지 않고 일력(日历)을 썼다. 하루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은 언제나 어머님의 새해맞이 쇼핑목록 제1호였었다. 집에서 눈길이 가장 잘 닿는 위치에 정중히 걸어놓고 그 첫 장을 뜯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하였다. 어린 시절 일력을 한 장 한 장 뜯어내는 재미에 나는 하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았고 그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면 저도 모르게 미리 몇 장씩 뜯어 내군 하여 어머님의 꾸중을 들을 때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 아버님이 일력을 뜯을 때면 언제나 일력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뜯어내시곤 했다. 그때 아버님 나이를 훌쩍 뛰어넘은 지금에 와서야 나는 아버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력의 한 장 한 장은 시간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시간과 구체적인 의미로서의 나의 삶이 만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내 일력에서 내가 뜯어내는 한 장 한 장의 일력은 내 인생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일력은 일기장과도 같은 삶의 기록이며 역사이다. 더구나 출장 같은 일로 며칠씩이나 건너서 한꺼번에 여러 장의 일력을 뜯어내게 되는 경우라면 가볍게 뜯어내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일력에는 오늘만 나타나지 어제와 내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한 번 뜯어진 “오늘”은 영원히 일력에서 제외된다. 아직 “오늘”로 변하지 않은 “내일” 또한 일력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일력은 철저하게 오늘의 가치를 고집한다.   그만큼 일력에는 인생과 궤를 같이하는 시간의 무게가 실려있다. 한 장의 일력을 뜯어낼 때마다 하루의 인생이 연소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느낌 -- 그것은 결코 얄팍한 종이장의 촉감이 아니라 생명의 질감 같은 것이다.   하지만 달력에는 그러한 생명감이 결여되어있다. 한꺼번에 한 달의 시간이 넘어가지만 찾고싶을 때에는 언제든지 다시 넘겨와서 찾을 수가 있다. 마치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려올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현혹시키는 게 달력이다. 또한 달력에는 어제와 내일이 공존한다. 매일과 같이 언제나 나에게 한 달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처럼 달력은 우리의 시간 신경을 마비시킨다. 달력에 익숙해진 우리는 지나간 시간이 아까운 줄도,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줄도 모른 채 자기최면에 빠져 “어제”와 “내일”을 오늘로 착각하면서 산다.   그것도 모자라 새로 나오는 전자달력에는 아예 자그만치 백년간의 역서가 들어있다. 시간을 세는 단위는 갈수록 커지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생명감은 갈수록 엷어만 지고… 그래서 가끔 가다가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로 살고싶을 때가 있나보다.   하지만 젊은 학생들에게는 그래도 디지털이 더 어울리는가보다. 주로 메일을 통해 새해인사가 많이 오는데 오늘은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 학생한테서 이런 메일이 와 나를 당황케 한다. “선생님, 아름다운 새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어처구니가 없어 한참을 바라보다가 장난기가 발동해 슬그머니 아내에게 보였더니 아내 왈: “헌 년도 아직 안 갔는데 벌써 새 년이라니...”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세모에 무더기로 들어오는 달력들 속에 혹시나 일력이 없나 살피지만 번번이 헛수고다. 구할 수만 있다면 새해부터는 일력을 걸어놓고 살고 싶다.
2    신사의 호주머니는 쓰레기통(허무궁) 댓글:  조회:1406  추천:0  2009-05-16
쓰레기통에 대해서 쓰고싶어서 쓰레기통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별로 참고될만한 자료가 없었다.정보의 쓰레기시대라고 하더니 쓰레기정보는 하나도 없는게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럴때는 내가 뭐라고 해도 누구나 반박을 하지 못할것이니 나름대로 쓰레기통에 대해서 피력하고저 한다.   쓰레기통이란 쓰레기를 담는 통이다.쓰레기란 쓸모 없는 물건,아니 버려진 물건을 쓰레기라고 할수 있다.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쓸모있건 없건 관계없에 버린 물건은 다 쓰레기인것이 아니다.정확히 말하면 쓸모있었던 물건이 이젠 쓸모가 없게 되여 버려진 물건이 쓰레기다.이를테면 다 마사진 자동차를 버리면 그것은 쓰레기이고 머리카락 한오리라도 밥상우에 떨어지면 그것도 쓰레기다.그것이 버려지기전까지는 자기에게 얼마나 중요한것이였던가 관계없이.    한편 원래부터 쓸모없던 물건도 사람의 손을 걸쳐서 버려지면 그것도 쓰레기가 된다.산에 널려있던 마른 나무도 그대로 두면 쓰레기가 아닌데 그걸 가져다 길에 널어놓으면 쓰레기로 된다.가을 락엽도 그대로 두면 쓰레기가 아닌데 사람이 쓸어모으면 쓰레기로 되는 일은 참 알고도 모를 일이다.그런 쓰레기가 좋은지 20세기초에 미국의 <<에이트(The Eight; 8인조)>>그룹은 <<쓰레기통 파(애시캔스쿨)>>예술까지 내왔으니 이 또한 더구나 모를 일이다.    쓰레기란 이렇게 인간이 만드는것이다.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담는 통을 만들었으니 바로 쓰레기통이렷다.중국에선 과일껍질통(果皮箱)이라고 하는데 이는 쓰레기에 대한 인식이 잘못 되였음을 말해준다.아마 그래서 중국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있는지 모르겠다.정확한 의미에서의 쓰레기통은 중국에 없는 것이다.대신 중국에선 과일껍질 널려있는걸 보지 못했다.하필이면 과일껍질에 집착하는 그 원인을 모르겠다.       다음 호주머니에 대해서 쓰고싶어서 나는 호주머니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 았더니 우리 말로 호주머니에 대한건 없고 영어로 포켓에 대해 남겨둔 자료가 있었다.    앵글로노르망어의pokete,중세영어의 poket에서 비롯되였다고 야후사전에서 해석하고있었다. 거기의 해석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포켓이 등장하기 전 서양에서는 소매·두건·목둘레 깃을 주머니 대신 사용하였으며 귀족은 오모니에르라는 실크제(製) 작은 주머니, 농민은 마제(麻製)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포켓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때 코드피스라는 주머니 모양의 장식을 남자바지에 달면서부터이다. 17세기에는 남자 웃옷의 몸판과 조끼에 달고, 19세기 중반부터는 바지에도 달기 시직하였다…여성복 포켓은 18세기에 등장하여 주로 주머니를 허리에 차거나 안쪽에 다는 형태였으며, 핸드백이 필수품이 된 뒤로는 보급되지 않았다. 20세기부터 포켓은 의복에 완전히 정착, 오늘날에는 실용성·유행·디자인이 고려되어 형태가 매우 다양화되었다.>>     한글표기법 그대로 인용하여 보기 불편할지 모르겠지만 그곳의 글을 인용하기에 그대로 적는다.    호주머니는 물건을 넣기 위해서 생긴것임이 틀림이 없다.그런데 이제는 패션의 하나로 존재하게 되였다.요지음 한국배우들은 포즈를 취할 때 한쪽 손을 포켓에 찌르고 비스듬히 서는데 그럴 때도 호주머니의 역할이 발휘되고있다. 그러니 호주머닌 이렇게 멋 부리는데에도 쓰이고있다.기실 손을 호주머니에 찌르고 다니면 신사답지 못하다고 하여 매너를 지키는데서는 역역할 하는 때도 있지만 잘 리용하면 호주머니도 매너지키는데 크게 도움을 줄때도 있는것이 다.쓰레기통으로는 쓰일망정말이다.   다음 나는 신사에 대해 쓰고싶어서 신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우리 말의 신사는 꼬부랑말로 젠틀맨이라고 하는가 보다. 십오세기중엽 영국의 귀족의 수가 전쟁으로 말미암아 많이 줄어들었는데 그후 의회의 빈자리를 채운 젠트리라는 신분집단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지주가 주축이였고 그후에는 여러계층의 성공자들이 망라되여 녀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정중한 매너의 상징적인 칭호로 된것이다.지금은 영국신사란말은 바람직한 남성상으로 통하며 녀성들의 리상형 이기도 하다.그래서 한국엔 백봉신사상까지 있는지도 모르겠다.      2004년 8월의 어느날,나는 방금 와세다대학교육학부장으로 부임된 와라가이 선생님과 함께 이탈리아료리점에서 식사를 같이 하게 되였다.독일류학생으로서 그는 우선 오랜 시간을 리용하여 붉은 포도주를 골라 주문하고 다음 료리를 시켰다.오랜만의 만남으로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일본경제,중국교육, 서양과 동양사람들의 의식차이 등등 그 화제도 넓었다.그러다가 나는 테블우 그의 앞에 있는 길고 가는 머리카락 한오리를 발견하였다.    <<아,선생님 잠간만…>>    내가 주으려고 하는데 어느새 와라가이선생님이 제꺽 주어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디서 생긴 머리카락인지도 묻지 않고 바닥에 버려도 아무런 불편이 없을 머리카락 한오라기인데,그것을 만약 내가 먼저 주었더라면 어김없이 바닥에 던져버렸을것인데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호주머니에 넣는 그 모습이 지금 새삼스레 떠올라 오늘 이 수필을 쓰고싶어졌던것이다. 쓰레기에 대해서,호주머니에 대해서 그리고 신사에 대해서 쓰고싶어 졌던것이다.      일본에선 쇼와29년(1954년)도에 <<청소법>>이 제정되였다고 한다.국회 의원들이 할일이 없어서 제정한 법은 절대 아니다.그러나 무엇이나 다 법으로 될수 있는것은 아닌줄로 안다.그래도 혹시 일본의 <<청소법>>에 머리카락을 호주머니에 넣어야 된다고 규정하였는지는 이제부터 조목조목 찾아봐야 알것 같다.       2006년1월26일 음력으로는 설3일전 날 도쿄에서
1    기억의 달력과 마음의 달력 댓글:  조회:1384  추천:0  2009-05-16
참말로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을 절감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하긴 인생 오십 지천명이라고 했으니 바야흐로 천기를 알 법도 하겠다. 사십을 불혹의 나이요, 경험 사십대라고도 하였으니깐 그만큼 인생공부도 착실히 한 것이다. 이쯤에 와서는 반백이요,  흰서리요 하는 수식어들이 별로 입에 잘 오르지 않는다. 그냥 문학공부를 할 때는 그것이 유식함을 나타내서 좋았던 것 같은데 인제 그것이 자기 인생을 확인하는 실용어가 되었음에 세월의 무상함을 체감하였기 때문이리라. 바다를 즐겁게 바라보는 사치한 소비의 여행자와 하루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면서 생존을 위해 공포의 출항을 하는 바다사람의 마음의 차이랄까. 언제부터였던가 일기를 쓰던 걸 절필하였다. 그리고 이미 쓴 일기들을 몽땅 태워버렸다. 그 속에는 소학교, 중학교시절에 썼던 학습 심득필기도 여러 권 들어있었다.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원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유와 박애를 인간성의 원색적인 질료로 인식하지 못하던 시절의 추한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념의 노봇이었고 투쟁의 무기였다. 일기는 달력처럼 고스란히 그런 흔적을 남겨두고 쓰라린 추억에 가슴만 아프게 하였다. 그래서 처방을 뗀 것이 망각의 미학이다. 지나간 일, 지나간 인생, 지나간 세월을 영영 망각의 뒤안길에 던져버리려는 것이다. 한 장 한 장 찢어버리는 일력처럼. 그러나 사람의 몸에는 영혼과 함께 하는 영원한 달력이 있다. 생각하는 인간은 오늘을 살고 내일을 동경하면서 지난 인생의 경험이든 교훈이든 때때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흔히는 무의식적으로 열리는 추억의 쪽대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도 역시 사유하는 특수한 동물인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의 섭리인 것 같다. 자연은 삶을 연습할 수 없는 인간에게 한번쯤 뒤돌아보는 여유를 베풀어준 것이다. 판단의 한계로 늘 실수를 하게 되는 인간은 그런 실수를 기억할 수 있어 ‘동어반복’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이다. 인간은 즐거웠던 괴로웠던 지나온 인생 여로에 흘린 발자국과 추억을 말끔히 지워버릴 수는 없다. 어제 오늘 내일,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에서 오늘 현재는 영원히 중간 시점이다. 오늘의 선택과 미래의 그림은 그 발자국과 추억의 끝에서 시작되는 것일 뿐이다. 이미 지나온 길은 선형적이지만 뒤돌아보면 거기에도 무수한 갈림길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가야할 길은 언제나 갈림길이다. 과거에 무수한 갈림길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길을 선택했던 경험은 오늘 내일의 길을 선택하는 밑그림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기록된 달력보다 기억된 달력은 영혼에 더 가까이 하고 있고 결국 영혼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만큼 기억의 달력은 영혼이란 여과기를 달고 있고 영혼의 정화에 의하여 기억을 걸러냄으로써 내용이 선택될 수밖에 없다. 더는 기억되지 않는 과거, 더는 추억으로 떠오르지 않는 사건은 내 인생에 무의미한 것이거나 승화된 영혼에 의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간혹 부끄럽던 일, 힘들었던 일, 괴로웠던 일, 안타까웠던 일, 괘씸했던 일, 격분했던 일들이 기억의 달력에 남아있더라도 이미 자각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오늘과 내일을 바르게 선택하도록 영혼의 거울이 비춰주는 계시임에 다름 아니다. 기억의 달력에 영혼의 선택을 받은 내용이 풍성할수록 오늘과 내일의 인생도 더 충실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기억의 달력은 영혼에 여과되는 마음의 달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이는 달리기에 앞서고 늙은이는 경험에 앞선다고 하지 않을까. 늙은이 타령까지 부르고 보니 아직까지 늦깎이 인생공부를 하고 있는 내가 좀은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가끔씩 학생증을 손에 들고 보노라면 대학의 젊은 시절이 눈에 삼삼하여 즐겁기만 하다. 서박의 일력 달력에 대한 글을 보고 생각을 몇 자 적다가 문뜩 작가(서박)의 일화 하나가 떠올라 아래에 이 글하고 크게 관련 없이 뱀 발처럼 그려 넣는다. 그래도 서박의 순진하고 천진하고 깜찍했던 대입 초의 생활모습이라 본인의 기억달력에 입력되어 있지 않았으면 이제 즐거운 추억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직 손바닥만한 연변 땅도 두루 다 밟아보지 못한 촌놈이 갑자기 10억 인민의 마음의 ‘심장’ 베이징에 가게 되니 그냥 격동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였다. 억만이 동경하는 수도에서 공부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마냥 부풀었다. 그러면서도 대도시에 대한 촌놈의 격세지감도 그만큼 크고 강렬하였다. 당연히 이제 함께 생활하게 될 새로운 가족에 대한 호기심도 약간은 떨리는 방어심리를 동반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심리적인 과잉반응은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초기부터 물가의 모래탑처럼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너무나 순수하고 편안하고 꾸밈없는 동기들이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 천진하면서도 꾸밈없는 모습을 보인 동기가 북극에서 온 ‘꼬마맹장’ 서영빈이었다. ‘꼬마맹장’이라고 하는 건 문화대혁명 때의 홍위병의 전투적 형상을 떠올려 하는 말이 아니라 너무도 여리고 앳된 모습에 군복을 입고 있었던 영빈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꼼수의 포장이나 계산된 반응이 없이 서영빈이란 원형질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그 꾸밈없음에 못지않게 천진함도 둘째가라면 첫째가 없을 정도였다. 첫 방학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새벽, 뭐 과음한 기억은 없는데 아무튼 배가 부담스러워 나는 잠에서 깨고 말았다. 화장실 가려고 이층침대를 내리는데 얼핏 눈길에 영빈의 침대가 비어있었다. 나의 소란에 깨어난 춘식이하고 영빈이 어디 갔냐고 물으니깐 모르겠다고 한다. 그때 무엇인가 아래쪽에서 시선을 끌어당기는 ‘전극’이 있어 내려다보던 둘은 그만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그때는 한창 젊은이들이라 이층침대를 오르내릴 때도 침대에 장치한 사다리를 사용하지 않고 침대 옆의 턱을 뛰어넘어 책상에 내려서곤 하였다. 그러니깐 책상 위에 내려서는 순간 침대와 책상 사이는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쩜. 글쎄 영빈이가 이불 반은 깔고 반은 감아서 몸에 덮은 대로 침대와 책상 사이의 바닥에서 행복하게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입가에는 어머니 품속에서 시름없이 달콤히 자는 어린애 같은 웃음꽃을 피우면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즐겁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후에 영빈이하고 물으니깐 그때 고향집의 따뜻한 온돌방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있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랬을 테지. 우리의 마음도 그와 다를 바 없으니깐. 이것저것 잡동사니들마저 버릴 수 없는 달력 같은 일기를 폐기처분한 오늘에도 동기들에 대한 기억들은 마냥 인정과 우정과 사랑과 함께 추억의 쪽대문을 열고 삭막한 세계에 갈증을 타는 나의 마음을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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