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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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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소유와 소유 댓글:  조회:2263  추천:2  2011-09-23
최근 미국의 부자들로부터 시작된 “내 세금을 더 거두세요”라는 훈훈한 바람이 유럽으로까지 번져 유럽의 부자들도 세금을 더 내겠다고 해서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무소유’란 개념에 대하여 관심이 점점 깊어진다. 무소유란 말 그대로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소유하지 않는단 말인가?   인간은 삶을 위하여 무엇이든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가지는가가 매우 중요한데 ‘욕심을 내지 말고 필요한 것만 가진다’ 는 것이다. 가진다는 의미는 자기가 가져도 되는 것,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것 등등의 정당한 소유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감동을 주는 사람이 많고도 많다. 짠지장사로 한푼두푼 모은 돈을 몽땅 기부하거나 불우이웃 아이들을 위해 쓰게 하는가 하면 독거노인들의 식사를 무료로 공급하는 사람,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이름도 밝히지 않고 사회에 헌납하고 떠나는 사람. 심지어 돈과 재산을 몽땅 기부하고 죽은 후에는 자신의 장기마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기부하고 떠나가는 사람도 있다.   전세계가 이런 기부문화에 자주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을 보면 이제 무소유란 이 숭고한 개념이 그 얼마나 인심에 진리와 영광으로 누적되어 있는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기부는 인간이 아름답게 사는 하나의 방식으로 돋보이고 있다.   많거나 적거나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소유들을 아낌없이 털어놓는 무소유를 말없이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민족사업이 유지가 되고 발전돼온 것이다.   한편 비교가 있어야 변별할 수 있다고 이런 감동적인 기부를 보면서 인간의 다른 한 현상 지나친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탐욕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가져야 한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소유해야 한다.물론 그렇다고 가지고 또 가지고도 만족을 모른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필요 이상의 한계를 넘어 욕심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은 끝없는 탐욕에 집착하는 사람들로 하여 사회의 공동재산인 재물이 한쪽으로 몰려 소수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게 되고, 다수 사람들이 가난하게 되는데 정녕 재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가진자는 너무 많이 가지고 없는 자는 너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도의 한 보통 인간의 말이 새삼스럽다. 그는 돈이 많은 한 부자가 아주 인색하여 돈을 자기 손에만 움켜쥐고 내놓으려하지 않자 “너의 손에 돈이 있다하여 그것이 네 것인 줄 아느냐? 하느님이 잠시 네 손에 맡긴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젠 인류는 사랑이 아닌 탐욕으로 하여 인류자체가 멸망한다고 경고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럴 때 일수록 무소유란 말이 그 얼마나 신선하고 의미있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인류의 재앙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은 인간이 가진 탐욕을 버리고 무소유로 접근해 가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기 마련이고 죽으면 그만인데 왜 자꾸 욕심을 낼까? 지금껏 욕심내고 산 사람 가운데서 죽지 않고 산 사람이 있던가?   무소유와 허무는 통하면서도 다르다. 허무는 삶의 욕망에 대한 부정으로 자칫 실의에 빠질수 있다. 하지만 무소유는 삶을 깨끗하고 아름답고 편안하게 산다는 거다.   가령 사람마다 무소유의 사상으로 자신을 절제하고 마음을 비우며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 사회를 보다 건전하고 깨끗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많은 것을 얻는 것이다.   이런 무소유는 더불어 사는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소유다.
3    한국문, 드디어 조선족에 활짝 열리나? 댓글:  조회:2773  추천:3  2011-09-20
문은 드디여 활짝 열리는것인가?  ㅡ코리안 드림과 중국조선족 삶에 대한 또 하나의 사고 한국법무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기사에 따르면 만 25주세 이상 조선족은 한국에 친족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입국 신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전산당첨을 실시하여 당첨자에게 3년 유효한 방문 복수비자를 발급한다는 것이다. 이에 동포언론매체들에서는 즉각 “시험치지 않고도 한국갈 수 있다”고 대서특서로 보도했고, 전문 한국행을 취급하는 여행사들에서는 이제 누구나 가고싶은 사람은 다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는 광고를 펴내면서 요지음 한국에 가고 싶어도 조건과 기회가 없어 안달아하던 많은 중국조선족들의 행렬이 줄을 서고 있다. 돌아보면 9십년대초부터 시작된 코리안드림은 이를 바라보는 중국조선족의 시각에 득과 실, 희와 비라는 엇갈리는 평가를 산출했다. 어떤이들은 한국행은 중국조선족에게 경제적실리뿐아니라 시장경제에 대한 관념을 갱신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사고방식과 생활방법을 개진하여 한평생 밑바닥에서 소외받고 기시받던 많은 민초들이 새로운 시대 진정한 인간가치를 찾아 향수하게 되였다고 긍정한다.그런가하면 이와 반대로 어떤 이들은 얻은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절규하면서 지어는 한국행때문에 중국조선족이 망한것이나 다름없다고까지 한다.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지금 중국조선족은 중국이란 이 땅에서 새로운 시대적 어려움에 직면하고있다. 민족 존재의 구심점이나 다름없던 농촌집거지가 점차 해체되고 학교가 문을 닫으며 도덕수준이 하강되는 등 조선족들 삶의 지반이 날로 흔들리면서 이 땅에서 그토록 앞서가려 노력하던 조선족들이 창조적정신이 많이 쇠퇴해지고 대신  찰나주의와 향략주의 등등 잘못된 가치관이 점차 팽창하면서 중국조선족의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하강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조선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의 처지만을 놓고보아도 지금 농민들은 대부분 코리안드림을 믿고 농사를 짓지 않는데 설사  농사를 짓는다해도 많은 토지를 임대했거나 소유한 “지주”가 아니고는 수입을 올릴수없다. 그 밖에도 조선족지구에 가 보면 생태자원도 이젠 대부분 조선족소유가 아니다. 워낙 가진 것이 많지 않은데다 상품경제시대를 살면서도 타민족에 비해 장사머리가 떨어지는데다 인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해 창업을 하는데도 적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고있는것이다. 설사 이러한 것들이 코리안드림으로하여 중국조선족에게 오랜 세월 잠식되여있던 찰나주의 한탕주의가 가져다준 병페적인 발로하치더라도 이미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여서 우리는 부득이 현실을 정시하고 현실에서 그 해결책을 찾는 수 밖에 없는데 그 지당한 해결책이 바로 지금까지 지속된 코리안드림이 아닐가. 헌데 만일 지금까지 한국정부가 경제적인 면과 사회혼란을 빙자하여 중국조선족이 열심히 행해온 코리안드림이 멈추어서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올수도 있다. 비록 연해지구나 대 도시에 진출하여 성과를 올리는 조선족들이 적지 않고 그 밖에  두터운 로임계층이나 기업이나 장사에 미립이 트고 경제기초가 튼튼한  개별적인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고는 하나 아직 중국조선족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수 많은 농민들이 숙련된 기술과 자본이 없어 도시에 와서 경제활동에 종사할수없는 한  얼마 안되는 토지에 매여달리기보다는 한국행이 훨씬 더 빠른 치부를 가져다 줄수있다 는 세인이 다 긍정하는 것이다.이제 가난은 어디나 통하지 않는다.그런데다 조선족은 경제적으로 대민족에게  뒤지고 있는데다 오늘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것마저 위협받고 있으니 중국조선족의 미래 운명에 빨간불이 켜진것은 아닌가. 현실처럼 각박한것은 없다.오늘 중국조선족존재의 승패는  많이는 코리안드림과 련관되여있음을 경시할 수 없다. 지금 경제적급장성에 힘 입은 데다 워낙 부지런하고 일욕심많은 주체민족이 앞서 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실력마저 뒤떨어진다면 우리는 더 빨리 대민족에게 먹히울 수 있는바 이 땅에 와서 수고는 많아도 워낙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다 상품경제시대를 살면서 장사머리도 별로 뾰족하지 않고 게다가 인맥조차 없는 조선족이라 애써 중국땅에서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귀중하지만  다른 뾰족한 치부방법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래도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은   한국에 가서 부지런하고 건강한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체력로동에 종사하여 돈을 버는 것인데 그것도 다른 나라보다는 같은 언어,같은 풍속습관을 가진 한국이 가장 적임한 것이다.  하여 어찌보면 한국에 가서 로무에 종사하는것은 중국조선족으로 말 할때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할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최종의 목적은 아니고 돈을 벌어다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잘실기위한 과정으로 되여야하지만.… 한편 코리안드림은 우리가 잃어져가던 정체성을 살려가는데도 좋은 밑거름이 아닐수없다.지금 민족집거지가 점차 사라져가고 교육과 문화가 쇠퇴되여 가면서 중국조선족은 심각한 정체성갈등을 겪고 있다. 솔직히 말해 아무리 정책이 좋다해도 소수민족으로써의 동화는 피면할수없다. 이것은 강박이 아니라 자연동화다. 우리 자신이 한족중심권의 주류사회에서 보다낳은 삶을 살기위해 자신을 변신시키는 방법의 하나이다. 하여 타민족으로 동화가 되느냐? 아니면 그냥 조선족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준엄한 갈림길에서  중국조선족의 대량적인 코리안드림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런 자연동화를 많이  지연시키거나 막아 소수민족을 상실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폭제로 작용할수있다 할때 정체성의 흔들림으로 날따라 심각해지는 민족동화의  위험앞에서 이를 해소하고 민족의 의지를 새롭게 가다듬을수있는 환경적여견이 또한  한국행일수도 있겠다. 하여 먹거리로부터 시작하여 언어 문화에 이르기까지 많은것을 배워 알게됨으로하여 정체성이 크게 고양된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것을 위해서도 우리의 코리안드림은 지속되여야 하는데 최근 한국법무부가 사이트를 통해 밝힌 사실에 의하면 만 25주세 이상 조선족은 한국에 친족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는것, 다만 전산당첨을 실시하여 당첨자에게 3년 유효한 방문 복수비자를 발급한다는것이야말로 한국정부에서 실시하는 또 하나의 동포애적 배려가 아닐수없다. 이에 이름없는 한 언론인으로써 새로운 조치에 감사를 드린다. 누구는 한국에서 문을 열면 열수록 가뜩이나 침채상태의 조선족사회가 이로하여 더 침체될것이라하고 우려하지만 나는 이번의 새로운 조치는 조선족이 조선족으로 살아가는 것에  새로운 활력을 부어넣을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앞으로도 중국조선족의 보편적경제리익과 그리고 정체성공고를 위한 미래 전략적비전을 감안하여 길이 막혀서는 안된다.하면 이제  그처럼 오래 기다렸던 자유왕래의 문은 드디여 열리는것인가? 2011,9,17일  
2    책가방부터 메게 하라 댓글:  조회:2779  추천:1  2011-07-26
요즘 아이의 등하교길을 함께 해주는 부모들을 보면 거의가 아이의 책가방을 대신 들어준다. 큰 아이나 작은 아이나 예외가 아니다.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란다.   어느날 큰 손자를 학교에 바래다주는 길에 아이의 책가방을 메고 가는 어른에게 버릇 들이지 말고 아이 스스로 메고 가게 하라고 일렀더니 부모가 하는 말이 가방이 무거워서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전에 없이 요즘 아이들의 가방이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는가? 아이들이 메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의 건강상태로 보아 그만한 가방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아이들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과잉보호를 하고 있다.   그것을 보니 문득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중.일 세 나라 어린이들이 여름캠프를 가는데 비록 부모들이 함께 가지만 일본의 아이들은 자기짐을 자기가 지고가면서 끝까지 부모에게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부모들 역시 중도에 대신 짐을 들어주지 않더란다. 헌데 중국이나 한국의 부모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힘들어 하는 아이가 애처로워 갈수록 대신 가방을 들어 주는 부모들이 늘어나더란다.   어느 명인은 이런 말을 했다. "아이들에게 아무일도 시키지 않는 것은 기실 도둑을 배양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이들에게서 최고의 스승은 고난이라고 했다. 고난속에서 단련되어야 비로소 강하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숙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렇게 어른들의 보호 아래 자신이 메야 할 책가방마저 메지 않고 약하게 자란다면 필연코 창의력과 독립성이 모자라는 약자가 되어 험한 세상에 도전하며 역경을 헤쳐나가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현재의 가방을 맨다는 것은 곧바로 미래를 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책가방 안엔 미래의 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헌데 자신의 꿈이 부모의 어깨에 짊어져 있다니? 언젠가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살아야 할 때가 오게 될 것이니 그 날을 대비하여 미리부터 미래의 짐을 질 수 있게 단련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부모들에게 말한다. 자식들이 커서 인생의 큰 짐을 지고 가게 하려거든 미리 가방부터 메게 하라고.
1    [수필] 엄마의 존재와 가치 (강효삼) 댓글:  조회:2040  추천:35  2007-10-20
수필 엄마의 존재와 가치 강효삼 가정에서 엄마(어머니)의 존재와 가치가 얼마나 대단하고 귀중한지 (아주 섬약한 녀인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욱 절실하다. 내가 여덟살되던 해 엄마가 집을 뛰쳐나갔기에 한창 엄마의 사랑을 무르익히고 살아야 할 나이에 사랑을 모르고 자랐다. 듣는 말에 엄마가 집을 뛰쳐나간 리유는 애정이 없는 혼인이기때문이라고 한다. 부모가 (외할아버지) 독단한 혼인이기에 비록 아들딸을 낳고 살지만 아버지와 엄마사이엔 사랑의 기초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아버지는 늘 섬약한 엄마를 개패듯했고 엄마는 그 매를 견디다 못해 목숨을 살리기 위해 할수없이 집을 뛰쳐나가게 되였다고 한다. 나는 어려서 엄마의 비참한 사정을 몰랐기에 집을 나간 엄마를 미워하고 저주하였었다. 후에 철이 들면서 남들로부터 이런 사정이야기를 듣고 엄마에 대한 미움은 사라졌고 대신 엄마를 동정하게 되였다. 엄마가 곁에 없었기에 부딪치는 온갖 난관과 불행을 나는 일찍부터 뼈저리도록 체험하게 되였다. 어찌 보면 한 가정의 행복지수는 엄마의 존재여부에 달려있지 않을가? 우리를 낳고 키우면서 언제나 곁에서 사랑을 챙겨주어야 할, 세상에 제일 친절한 엄마가 곁에 없었기에 우리 4남매는 얼음장 같이 찬 구들에서 손바닥만한 이불 한채를 덮고 그 추운 겨울을 지내야 했다. 엄마가 없기에 나는 중학교를 다닐 때 그 추운 북방의 겨울에도 솜바지도 변변히 못입고 여름운동화를 신고 덜덜 떨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당시 숙사는 모두 널판자를 깐 《방》이였는데 나는 솜이 낡을대로 낡아 또글또글 뭉쳐있는 헌 이불을, 그것도 크지 않은 이불이지만 절반을 덮고 절반을 깔고 자야 했다. 옷을 입고 자는데도 밤중이면 너무 추워서 잠을 못이루고 일어나 불길이 점점 사그러져가는 난로곁에서 그나마 온기를 채우려고 앉아서 밤을 지새운적이 한두밤이 아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보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여 호르몬분비가 잘 안되여 한창 키가 클 나이인데도 크지 못해 지금도 겨우 난쟁이나 면한 체구이다. 아, 엄마가 있었으면 이런 고통은 겪지 않았겠는데. 엄마가 있었으면 당신이 이불을 못덮어도 나에게는 꼭 두툼한 새 이불을 덮게 했을것이다. 비록 아버지가 있었다 하지만 자식들한테 정이 없어서인지 너무도 데면데면하고 몰인정하여 이런 자세한 고통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없으니 성년이 되여 교육사업을 할 때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입맛이 떨어져 입술이 말라터질듯 까칠까칠해도 누가 살뜰히 음식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힘든 교원사업을 하면서도 때론 굶고 한두개의 과자로 끼니를 에때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이른봄 반찬이 너무 귀할 때는 (그때는 가난한 60년대 초) 점심밥을 싸가지고 갈 반찬이 없어서 마른 고추를 반찬으로 했다. 그것을 입에 넣고 씹노라면 무섭게 혀바닥을 자극하여 매운 김에 모래알 같은 밥을 넘길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엎친데 덮치기로 키가 작은데다 약골이 되여 장가가기 힘들었다. 선보러 가면 모두가 퇴짜를  놓는 원인이 바람에 날려갈듯한 약골이라는것이다. 엄마가 없으면 자식들은 결혼에도 지장을 많이 받는다. 나는 60년대에 30이 다되였어야 장가를 갔는데 솔직히 엄마만 곁에 있었더면 좀더 일찍 마음에 드는 대상을 골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이따금 해본다. 가정에서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엄마가 없음으로 하여) 웬만하면 참고 견디고 살아야 했으니 이 역시 엄마의 존재와 가치가 나에게 준 피의 교훈이라 하겠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애정이라는 이 청신한 에너지를 배부르게 흡수하지 못하고 늘 굶주리고있는 사람들은 심신에 병이 들기 마련이다.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과 숭고한 령혼이 더욱 큰 사랑을 낳아 건실한 인간을 만드는데 그런 원예사가 곁에 없으니 어떻게 꽃씨앗이 튼튼하게 자랄수 있으랴. 가정의 해볕은 엄마의 미소에서 넉넉해진다. 엄마가 없으니 우리 형제들은 자애를 배우지 못하여 늘 불안과 우울속에서 살았기에 가슴이 넓고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으로 크지 못했다. 엄마는 사랑을 만들뿐만아니라 사랑을 가르쳐주는 최초의 스승이다. 스승이 없이 제자들이 어떻게 사랑의 지혜와 능력을 배울수 있겠는가. 가정의 평화는 대부분 엄마가 심고 키우며 가꾸고 지킨다. 엄마는 주요한 변수가 된다. 물론 아버지의 작용을 홀시하는것은 아니다. 엄마가 곁에 없었기에 우리는 가정의 평화를 거의 느껴보지 못했다. 모든 사랑과 관용은 대부분 엄마께서 몸으로 행동으로 가르치는것이다. 엄한 교양과 옳바른 례절을 배우지 못하여 저도 모르게 이따금 버릇 없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할 때 이것이 정신적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손실이 아닌가싶다. 단순히 먹이고 입히고 자래우는것도 사랑이지만 사랑하며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것이 가장 큰 사랑이다. 이런 사랑은 엄마의 가슴에서 솟구치는 교양의 샘물이다. 물론 모든 엄마가 다 사랑을 배워주는것은 아니다. 비록 엄마가 곁에 있다 해도 사랑을 가르쳐주지 못하여《에밀레》 자식이 화를 입게 되는 슬프고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것이라 생각한다.(아버지에 비교해서 말이다.) 엄마의 존재는 늙고 병들어 누워있어도 의연히 가정에서 귀중한 존재이다. 한 불효자가 나에게 진솔한 고백을 하기를 엄마가 장기간 반신불수로 누워계시기에 귀찮아서 어서 세상을 떠버렸으면 하고 바랬는데 정작 세상을 뜨고 엄마께서 계시지 않으니 집이 갑자기 텅빈것 같더란다. 그러면서 설사 누워계신다 해도 가정에는 엄마가 계셔야 바람벽에 기대인듯 믿음이 있게 된다는것이였다. 이젠 없지른 물이라며 평소의 불효를 그토록 후회하는것이였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너무 무시해서는 안된다. 엄마가 주추돌이라면 아버지는 그우에 세운 기둥과 같은 존재이다. 기둥이 세워져야 비로소 집을 짓게 되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가정엔 그래도 엄마가 있어야 한다. 근로와 인내와 사랑과 흉금으로 식솔을 어우르고 보듬어주는 조용하지만 자상하고 소박하지만 웅심깊은 엄마의 가슴이 없다면 밖에 나가 일을 저지르고 들어와도 누가 따뜻이 위안해줄것인가. 혹시 먼 길을 떠난다 해도 누가 제일 자식의 안위를 근심하고 걱정하는가. 어릴 때 엄마의 등에 업혀본 사람들은 평생 기억할것이다. 바람 세찬 날 엄마의 등이 얼마나 큰 바람막이가 되는가를. 그 등에 업히면 얼마나 편안하고 미덥던가! 아버지의 엄격함과 엄마의 자상함이 잘 결합된 가정을 우리는 리상적인 가정이라 할것이다. 이런 가정이면 더욱 좋고 설사 아버지가 계시지 않거나 아버지의 인품이 모자라더라도 좋은 엄마만 있으면 리상적인 가정이 될수도 있다. 이제 다 같은 부모인데도 엄마를 더 따르는 리유를 알만하겠다. 항상 가슴을 열어놓고 그 넓은 가슴에 자식을 심어 키우며 자식에게 모든것을 다 바치는 엄마는 《녀인은 약해도 엄마는 강한》 부류에 속하는 녀자들이다. 아마 자식들더러 막부득이한 경우에 엄마와 아버지중 누구를 선택하려는가 물으면 모르긴 해도 대부분 엄마를 선택하겠다 할것이다. 이는 다 같은 부모로써 아버지의 슬픔이기는 하지만 어찌하랴. 자식들한테는 그 누구보다 엄마가 제일 귀중하고 필요되는것을. 나도 자식들한테 아버지도 있어야 하지만 우리 가정엔 엄마가 없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엄마를 더 따르고 생각해주라고 솔직히 말한다. 엄마는 흙이고 온상이다. 자식의 수양과 덕성이 많이는 엄마에게서 유전된다. 약하지만 강한 엄마의 존재, 《작지》만 큰 엄마의 가치, 엄마의 사랑이 없으면 착하고 옳바른 인간으로 거듭나기 쉽지 않다. 특히 딸들이 그러하다. 그래서 예로부터 딸을 보려면 그의 엄마를 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엄마가 현숙해야 자식도 현숙하다. 그래서 남자들이  안해를 맞을 때 인물도 보지만 그보다 지혜롭고 교양 있는 녀자를 맞아들이고싶어한다. 그것은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서이다.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세번 이사를 간 맹자의 어머니, 그리고 한석봉의 어머니… 세계의 걸출한 명인들과 인재들이 배출된 리유중의 하나가 엄마의 영향과 작용이 컸기때문이다. 가정에서 엄마가 잘못하면 그 멀리 후손들한테까지 나쁜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나는 며칠전 출가한 딸애한테 처음으로 아버지로서 교훈적인 전화를 했다. 이제 엄마가 되였으니 꼭 노력하여 현숙하면서도 강하며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만들어 사랑을 가르칠줄 아는 능력 있고 교양 있는 엄마가 되라고. 그래야 자식이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할수 있다고 가르쳤다. 일거수일투족― 엄마의 행동이 아버지보다 더 가까이 더 일상적으로 아이한테 다가서기에 그 누구보다 엄마가 본보기로 된다. 지금껏 많은 가정들이 혼란을 거듭하던 끝에 파렬까지 되는 리유의 하나가 아버지의 문제도 있겠지만 엄마 의 책임이 크다. 요즈음 우리 민족의 가정파괴의 문제점이 어쩌면 엄마의 역할이 하강된것이 아닌가싶다. 물론 남자들이 제 구실을 못해 생기는 련쇄반응이라 하지만 확실히 조선족 엄마들의 인간적인 자질이 도시진출과 해외나들이로 하여 많이 색바래지고있지 않는가. 하여 엄마를 잃은 많은 자식들이 물질적으로는 넉넉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사막 같이 허허로운 고통을 감내하고있다. 바라건데《에밀레》하는 뼈저린 하소연과 목갈린 분노를 자식들로부터 받지 않게 엄마다운 처신을 잘해야 할것이다. 녀성이 잘되여야 민족도 잘된다는 말이 이제 절실할 때다. 엄마는 분명 최초의 스승이고 또 마지막 스승이다. 엄마의 소질이자 자식의 소질이고 자식의 소질이자 민족의 소질이거늘 엄마의 존엄과 가치를 더더욱 피부로 감안해야겠다. 2007년 1월 10일 연변문학 2007년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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