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http://www.zoglo.net/blog/jinfansong 블로그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프로필

전체 [ 35 ]

15    베이징런(北京人)과 서울인의 음주문화 차이 댓글:  조회:3674  추천:166  2009-01-25
  베이징런(北京人)과 서울인은 같은 동양문화권에서 속하고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의 이웃국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부동한 사회문화와 생활습관 및 음식문화를 소유하고 있고 술 마시기를 즐기는 아시아인임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차이의 음주문화를 갖고 있다.   아래에 베이징과 서울에서 다년간 생활하면서 필자가 체감한 이 두 지방 시민들의 음주문화 차이점에 대한 소견을 몇 가지로 나누어 진솔하게 적는다.   베이징과 서울사람들은 대부분 술 마시기를 즐기며 음주량과 술상소비 역시 대단하다. 그들의 일상에서 음주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친구사귀기와 비즈니스 및 팀워크 결성에 술상이 결코 빠질 수 없다. 북경인들은 떠들썩한 술상 분위기를 즐기고 주위를 크게 의식하지 않으며 도수가 높은 배갈에 여러 가지 요리를 청해놓고 한 장소에서 긴 시간을 할애한다. 반면 서울인들은 한 가지 위주의 담백한 요리에 도수가 낮은 소주를 선호하며,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낮은 소리로 말하고 한 장소에서 오랜 시간을 소모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베이징사람들은 술상에서 상대와 정(情)을 논하며 관시(인맥)를 구축하는데 음주목적이 있는 반면, 서울인들은 팀워크를 돈독히 하고 일상에서 지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큰 비중을 둔다. 이 또한 한국에서 회식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베이징인들은 요리를 많이 먹고 술을 마신 후 식사는 나중에 한다. 그들은 술상 예절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술상에서의 흡연을 실례로 간주하지 않는다. 반면 서울사람들은 먼저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분위기에 따라 장소를 이동하면서 소주와 맥주를 번갈아 마시기를 즐긴다.   한편 북경과 서울사람들은 모두 지방특산(술)을 선호하는 ‘신토불이’ 경향이 강한 편이다. 대부분의 북경인들은 지방특산으로 도수가 높은 얼궈토우(二過頭)와 연경(燕京)맥주를 즐겨 마시며, 서울인들은 참이슬(소주)과 하이트 · 카스(맥주)를 선호한다. 요즘 서울사람들은 일명 ‘50세주(백세주와 소주를 섞은 술)’와 ‘소맥(소주와 맥주를 짬봉한 것)’을 즐겨 마신다.   평소 북경인들은 연장자와 술을 마셔도 곧 잘 어울리며, 선후배 관념과 위계질서가 상대적으로 박약하고 그것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비즈니스 술상에서도 직장상사를 크게 의식하지 않으며 분위기에 맞춰 돌아가면서 술을 권하고 술상의 만남(친분)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들은 술 권하기를 즐기고 권주하는 사람은 대개 단숨에 굽을 비우며, 가끔 요리를 손님에게 직접 집어주면서 친분을 과시하기도 한다. 북경인들은 술상에서 비즈니스와 관련한 부담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친절을 베풀면서 손님을 취하게 하고 자신도 취토록 마신다. 그들은 귀한 손님을 초대할 때 고급술과 많은 요리를 청하는데, 술 브랜드와 요리의 수량에서 주인이 손님에 대한 접대레벨과 친분관계를 알 수 있다.   반면 서울인들은 비즈니스 술상에서 상하 · 수직관계와 위계질서가 명확하며, 상사의 면전에서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과음을 삼가는 것이 술상매너로 지켜진다. 서울사람들은 보통 낯선 상대에게는 술을 권하지 않으며, 간단한 식사 후 그다음 본격적으로 술을 마신다. 그들은 장소를 옮기면서 술을 마시며, 분위기에 따라 양주와 소주 · 맥주 등 술 종류를 바꾸어 마신다. 대개 한국인들은 술보다 고기위주의 요리와 식사에 신경을 쓰며, 소고기와 회(膾) 요리를 고급음식으로 손님접대를 한다. 다만 평소 음식을 끊여먹고 생음식은 기피하는 중국인들에게 생선회 같은 요리가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한편 장소를 이동해 술 마시는 음주문화는 ‘빨리빨리’의 한국인의 성격과 성급한 기질에 적합하며 금방 술상의 분위기를 돋우는 데는 별로 문제가 없지만, ‘만만디(천천히)’의 기질과 늦게 끓어오르는 중국인들의 성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장소이동’의 음주문화는 술상의 분위기를 돋우는데 일정한 시간을 소요하며, 한번 달아오른 술상의 분위기를 끝까지 지키면서 술을 마시는 중국인들의 술 습관과 음주문화에는 저촉된다. 그것이 대다수의 중국인들이 한 장소에서 장시간 술을 마시면서 쉽사리 장소를 이동하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   베이징인들은 절친한 사이가 아니거나 초면일 경우에는 식당에 초대하지만, 상대를 친구 혹은 친분이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면 집으로 초대해서 술자리를 벌인다. 이때에는 부부가 함께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고 고급술과 찻물을 곁들여 풍성한 만찬을 준비한다. 그들은 온가족이 배갈과 와인 및 음료를 마시면서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며, 손님에게 번갈아 술을 권하고 요리를 집어주면서 친절을 베푼다. 술상은 오랜 시간 지속되며 가족 같은 분위기속에서 손님은 정에 못 이겨 저도 모르게 만취하게 된다. 따라서 식당 혹은 집에서 초대되었는가는 북경인들의 손님에 대한 친밀감과 친분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만약 외국인으로서 북경인의 집에 친구 혹은 귀빈으로 초대되었다면, 상대방이 당신에 대한 신임이 굉장히 두텁고 돈독한 친분이 이미 이뤄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주인의 친절에 못 이겨 과음하여 취중실수를 한다면 초대된 손님으로서 큰 실례가 된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음식은 집주인의 성의를 보더라도 골고루 많이 먹고 ‘잘 먹었다’는 인사치레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친구)집에 초대된다면 친구부인과 아이들에게 약간한 선물을 준비해가는 것도 외국인으로서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효과를 얻을 것이다.   반면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 친구를 초대하는 북경인들에 비해 서울인들은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해도 쉽사리 집에 초대하지 않으며, 흔히 고급식당이나 번화한 거리에 위치한 특식요리점에 손님을 초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인들에게 집이라는 사적 공간은 타인에게 쉽게 공개할 수 없는 사생활범주에 속하며, 웬만해선 집으로 손님을 청하지 않는다. 혹시 집에서 손님을 초대하더라도 식사와 술상을 구분하여 고기요리 등 풍성한 음식상을 마련하지만, 초대한 손님에게는 식사를 위주로 하고 권주는 삼가는 것을 예의로 간주한다.   한 · 중 양국의 사회문화와 생활습관의 차이로 인해 북경인과 서울인 사이에는 엄연한 음주문화 차이가 존재한다. 예컨대 평소 서울인들이 가까운 친구 사이에 술잔을 주면서 술을 권하는 (술)습관은 북경인들에게는 실례가 된다. 이는 손님의 주량과는 상관없이 연신 술을 권하며 본인 젓가락으로 손님에게 요리를 집어주는 중국의 술문화에 한국인들이 바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울러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는 북경인들은 음주 후 많은 찻물을 마시지만, 담백한 소주를 선호하는 서울인들은 음주 후 커피를 즐겨 마신다.   한 장소에서 도수 높은 배갈에 느끼한 볶음요리와 찻물이 동반되는 것이 북경인의 음주문화라면, 장소를 자주 바꾸며 도수 낮은 소주에 담백한 요리를 먹는 것이 서울인의 술문화이다. 한 · 중 양국 간에 현존하는 문화차이 인정과 수용이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돈후한 우의 증진에 가장 중요한 필수적 조건이라고 한다면, 소주와 삽겹살 조합의 술문화와 얼궈토우와 양고기 샤브샤브를 애용하는 음주문화 모두가 존중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요컨대 한 · 중 두 나라의 엄연한 문화차이를 인정하는 동시에 음주문화를 비롯한 식생활의 문화차이를 상호 긍정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줄이고 신임과 우의를 돈독히 하는 첩경이 되기 때문이다.
14    중국산과 신토불이 댓글:  조회:3403  추천:117  2009-01-22
  흔히 중국산은 한국인들에게 ‘값싸고 저질적인 싸구려’로 각인되어 있다. 최근 들어 중국산 먹거리가 한국시장에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고, 일부 문제점 및 사건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국산 ‘신토불이’를 죽이는 ‘주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 언론의 편파적 보도로 그 ‘피해’가 더욱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없는’ 많은 서민들은 중국산 먹거리를 여전히 애용하고 있다는 현실에, 심한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 의한 중국산 ‘문제점’은 해결되기는커녕, 그 파장이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미 한국인들의 식탁은 중국산이 점령한지 오래다. 특히 서민들의 경우 매일 중국산을 먹는 실정인데, ‘중국산은 무조건 저질 · 비위생적’이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빈익빈부익부의 한국사회에서 심한 갈등을 느끼고 있는 서민들에 대한 가배의 모욕이며, 소비자들에 대한 오도(誤導)이다.   현재 한국에서 서민소비층에 넓은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산 김치 대부분은 포장 김치로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음식점이나 학교 등 급식장(給食場)에 공급된다. 한국의 식당에서 먹는 김치의 절반 이상은 중국산 김치이며, 품질이 양호하고 값이 싼 중국산 김치가 한국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유통되고 있는 것이 현실상황이다.   일본은 중국산 농수산물의 최대의 수입상이며, 중국이 수출한 농산물 중 일본으로 수출된 것이 약 30%를 차지한다. 일본의 식품관련 대기업들이 대부분 중국에 진출해 있으며, 일본기업들은 예외 없이 중국 현지에 기술자를 파견해 식품공장의 품질관리 상태와 제품의 상태를 점검한다. 이들은 부두까지 나가 자신이 점검한 상품이 제대로 컨테이너에 실리는지 확인한 뒤 봉인작업까지 마치고 일본으로 보낸다.   반면 한국의 수출입기업들은 일본기업처럼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중국산을 다루지 않으며, 가끔 중국산이 ‘한국산’으로 둔갑하는 일도 벌어진다. 예컨대 중국산 황도(黃桃)는 흔히 반가공적 상태로 한국에 수입되는데, 이것을 녹여서 통조림을 만들면 이른바 ‘한국산’이 된다. 현지에서 만들면 더 신선하고 품질관리가 쉽지만, 중국산을 수입한다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이런 편법을 쓰면서 소비자들을 기편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현재 한국의 중국산 농수산품 시장은 저가(低價)시장만 열려 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산=저급품’이라는 대부분 한국인들의 인식은 실제로 한국의 식품 유통체계가 빚어낸 것이다. 중국산이라도 1급은 품질관리도 잘 되고 우수하다. 중국에서 일본과 유럽 등지에 수출하는 미역 · 표고버섯 · 멸치 · 조기 등 1급 수출품은 품질이 우수하며, 따라서 각국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현재 한국 유통업자들이 저가격만 선호하기 때문에, 중국의 업체들은 1급은 당연히 일본이나 유럽으로 보내고, 한국으로 보낼 것은 중 · 저급품 가운데서만 챙기게 되는 것이다.   일본 수입업자들은 먼저 품질기준을 제시한 뒤 가격 흥정을 하는 반면, 한국 유통업자들은 먼저 가격을 제시하고 거기에 물건을 ‘맞춰 달라’고 한다. 이것이 현재 한국시장에서 (중국산)저급품만 유통되는 주요원이며, 많은 ‘문제점’을 동반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한국 국내경기의 불황이 장기간 지속되다 보니, 국제수출시장에서도 ‘저가시장’이란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다. 이 역시 한국 유통업자들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21세기는 국제화시대로, 모든 국제무역과 교역은 WTO 룰(rule)이 지배하는 경쟁시대이다. 현재 한국 국내의 상품이 외국에 대량으로 수출되는 반면, 외국산 농산품이 국내에 대량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신토불이’ 국산은 ‘값싼’ 외국의 농산물과 가격 · 품질 등 모든 면에서 전면적으로 경쟁을 벌어야 하는, 국제화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국산(품)은 외국에 수출되어 이윤을 챙기는 것은 합법적인 것이지만, 외국산이 국내에 수입되어 국산과 경쟁을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한국인들의 사유는 글로벌시대에는 결코 용납이 안 된다. 이 또한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발상이다.   불행한 것은 한국인들이 그처럼 애용하는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이젠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의 농산물이 우리의 구미에 맞기에 (국산)농산물만 먹겠다’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이야기다. 이른바 ‘신토불이’ 이야기는 중산층이나 부유층에게는 통할 수 있겠지만, 생활난에 시달리고 있는 서민들에게는 결코 ‘통할 수 없는’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한국인들이 소위 ‘신토불이’를 고집하면서 우리농업을 살리려는 애국사상은 비난할 바가 못 되지만, 메이드인코리아(한국산)가 ‘세계최고’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는 국제화시대에 뒤떨어진 낙오된 사상이며, 최근에는 한미 FTA의 체결 등에 보수적인 저애세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세계화시대의 대세인 개방화에 걸림돌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국제화시대에 걸 맞는 경쟁의식과 열린 마음가짐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글로벌시대에 역행하여 ‘비싼’ 신토불이(국산)만 고집한다면, 궁극적으로 ‘값싼’ 중국산에 밀려 국내 · 국제시장을 모두 내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산 등 수입산이 서민의 식생활에 빠질 수 없는 현실을 정시해야 하며, ‘신토불이’·국산과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품질과 브랜드가 있다. 그것을 살려서 국제적인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언론이 ‘중국산’ 식품과 ‘광우병’ 쇠고기의 피해와 위험성을 부풀리는 것보다는 신토불이(한우 등)의 품질과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고, 나아가 국제적 경쟁에서 이기려는 노력의 선행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13    재중동포사회 아이덴티티의 다변화 댓글:  조회:3397  추천:162  2009-01-20
                     재중동포사회 아이덴티티의 다변화                        -인구이동과 가치관의 변화를 중심으로-                                        김범송(중국 흑룡강신문 논설위원)   중국동포 ·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 있지만,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자 한민족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이 중국조선족의 ‘공통분모’인 것만은 확실하다. 조선족을 ‘중국에 시집온 며느리’로 비유한 조선족의 석학이신 정판룡 선생은 조선족은 이중문화와 이중성격을 가진 한민족이면서도 중국의 소수민족일원이라고 말했다. 조선족은 “중국을 자기 삶의 고장으로 여기고 조선족과 중국의 운명을 함께 생각하며, 이중정체성을 가진 ‘중국조선족’이 되었음”을 명백히 저적했다.   한편 조선족학자인 김강일은 ‘시집’과 ‘친정’ 구별은 책임회피의 자세로 중국국민의 자세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변연문화론(邊緣文化論)”을 사용해 “조선족의 정체성은 중국과 조선(북한)의 문화와 정체성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특수한 정체성”이라고 설명했고, 조선족공동체는 “중국 내의 평등하면서도 구별되는 특수한 문화공동체이며 한반도와 혈연적인 유대가 있는 문화공동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 조선족학자들은 ‘키워준 정이 낳아준 정보다 크다’고 주장하면서, 민족정체성보다 국민정체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한국학자 윤인진은 이러한 조선족지성인들의 논의를 종합하여 ‘친가와 시가’, ‘낳은 정과 기른 정’, ‘며느리론’ 등은 민족정체성과 국민정체성이 서로 공존하는 관계로 보는 이중정체성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김강일의 “변연문화론”, 이른바 ‘중국과 조선의 정체성이 융합된 정체성’에 대해서는 “제3의 정체성”으로 분류하였다. 그 외, 중국조선족의 정체성과 조국·모국관의 개념을 정리한 “조국과 고국 및 조선족의 정체성”이란 필자의 졸문이 있다.   개혁개방 후 30년간 중국사회는 고도성장의 경제발전과 함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민족의 존폐와 관련되는 중차대한 사회문제로서 가치관의 변화와 인구이동에 따른 민족공동체의 해체와 조선족사회 아이덴티티(정체성)의 다변화를 꼽을 수 있다.   중국이 1978년 이후 시장경제시스템을 도입하는 체제개혁과 사회개방을 실시하고, 1992년에 한중(韓中) 수교가 이뤄지면서 조선족사회는 대변혁을 가져왔다. 최근 농촌의 민족공동체가 붕괴되고 민족어 기반의 민족교육이 위축되면서, 조선족사회의 존폐 및 정체성의 위기가 사회문제로 부상한 것은 조선족사회의 대량적 인구이동이 초래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개혁개방의 산물로서 도시화·산업화의 결과이며,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사회와 고국(한국)과의 새로운 유대가 이어지면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인구의 국내외의 대량 이동과 가치관의 변화를 중심으로 조선족사회의 정체성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인구이동이 조선족사회의 민족교육의 위기를 비롯한 민족정체성의 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주요인이며, 개혁개방 이후 시장경제의 충격을 받으면서 조선족들의 인생관 · 가치관의 변화 또한 민족정체성을 약화시키고 국민정체성을 강화시키는 또 다른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조선족의 집거지 연변자치주와 동북상성(三省) 산재지구 조선족의 국내이동이 지속되면서, 대도시와 연해도시에 이동한 인구는 55~60만에 달한다. 한중 수교 후 대량의 조선족 인구가 국외로 유동했고 2007년부터 재외동포정책의 일환인 방문취업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2008년 10월까지 한국에 진출한 중국동포는 40만에 달한다. 그 외, 일본과 미국 등에 진출한 출국인원 20만을 합치면 국외에 진출한 조선족은 60만에 달한다.   이러한 인구변동과 대량적 인구유실은 새로운 거주지 도시공동체의 특징을 나타내고, 조선족의 민족정체성이 약화되면서 전통적 민족문화가 상실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민족집거지의 해체에 따른 민족교육의 위축 및 주류민족에 동화되는 등 민족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국내이동에 따른 새로운 거주지의 조선족들의 민족정체성은 갈수록 약화되고, 중국국민으로서의 국민정체성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중국동포들의 취업 위주의 한국 진출에 따른 고국관의 변화 및 자아정체성의 확인은 기존의 조선족 이중정체성의 상호관계를 다변화시키면서,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한국에로의 인구유동이 급증되면서 중국동포의 이중정체성은 한국인의 단일정체성과 충돌, 한국 단일민족의 국가관과 생활관습 및 문화차이에 따른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국동포의 정체성은 복합적이고 다변화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개혁개방은 조선족사회를 크게 발전시켰지만 조선족사회로 하여금, 새로운 현실문제에 직면하게 하였다. 급속한 인구이동에 따라 조선족집거지 농촌인구의 격감과 수많은 부녀자들의 유출로 인한 인구감소와 성비 불균형, 전통집거지의 축소와 민족교육의 약화, 농촌총각들의 결혼문제와 장기출국에 따른 가정해체의 위기, 국제결혼의 증가로 인구의 자연감소 등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그 중 인구이동으로 조선족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집거지구의 해체, 민족교육의 위축 등은 조선족의 존폐와 관련된 심각한 문제로 주목된다.   분명한 것은 재중동포의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다는 현실이며, 인구이동과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중국동포 민족정체성은 약화되는 반면, 국민정체성을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중 관계가 21세기 전략적동반자로 격상되었고, 경제교류를 포함해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에게 있어, 200만 중국동포의 정체성이 다변화되고 민족교육의 위축 및 민족동화의 가속화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며, 재중동포는 한중 경제발전관계에서 중개 및 유대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또한 고국인 한국이 재외동포인 중국동포사회의 정체성의 변화와 민족동화를 중시해야 되는 ‘이유’이다. * 본문은 2008년 12월 (서울)재외동포정책-포럼에서 발표한 논문을 요약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12    한국영화 <조폭마누라> 중 ‘조선족여성’의 형상 댓글:  조회:4622  추천:208  2008-12-15
  최근 들어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속에 중국동포 · 조선족여성이 조연 혹은 주역으로 자주 등장해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과 중국 간의 스토리를 다룬 영화(드라마)에서 (중 · 한)이중정체성을 갖고 있는 조선족(여성)이 출현하는 것은 별로 이상한 것이 아니며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주목되는 것은 영화 · 드라마 속에 부각되는 ‘조선족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한국인들이 중국동포(여성)에 대한 ‘심상(心象)’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홍콩 최고의 조폭조직 보스의 외동딸 아령(서기)이는 조직간 세력다툼으로 잠시 한국으로 피신 왔고, 부친 친구인 (한국)조폭조직 두목의 도움으로 서열 3위 기철의 거처에서 생활하게 된다. 아령의 보호임무를 맡게 된 조폭 기철이와의 갈등과 화해 · 결합의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아령의 화려한 배경을 모른 채 ‘시시한 임무’가 불만인 기철 사이에 벌어지는 코믹이야기와 사랑스토리가 영화의 줄거리다. 주인공 아령이의 통역으로 ‘조선족여성’ 연희(현영)가 조연으로 등장한 것이 영화 <조폭마누라(3)>의 또 다른 관심거리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 ‘홍콩여인’ 아령이의 통역으로 등장한 중국동포 연희는 중국 ‘길림성’에서 왔다고 소개되며, 연희(燕姬)의 중국어 이름이 연변의 수부 옌지(延吉)와 발음이 같다는 점이다. 이는 그녀가 어김없는 ‘연변처녀’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준다. 연희의 역은 요즘 한국에서 잘 나가는 섹시스타 현영이가 맡았고, 얼마 전의 KBS(1) 드라마 “열아홉 순정”에서 등장한 ‘연변처녀’ 양국화 역시 미모의 배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소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조선족여성’은 남남북녀(南男北女)의 ‘북한여성’으로 착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영화를 통해 한국인들이 ‘상상’하는 중국동포 ·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조선족여성’ 연희는 ‘카멜레온’식 인물로 묘사된다. 주인공 아령이의 홍콩무술이 진가를 발휘하면서 그 지위가 변화됨에 따라 통역 연희의 ‘지위’도 동반상승한다. 당초 처음 조폭세계를 접촉한 ‘연변처녀’ 연희는 무서워 벌벌 떨지만, (무술고수 확인 후)아령에 대한 조폭들의 ‘공손한 태도’에 따라 통역 연희의 조폭들에 대한 태도도 일변한다. 그녀는 조폭들에게 ‘주인’인 아령과 ‘친구’라고 하면서, 반말하고 무시하며 ‘주인’의 행세를 한다. 이는 ‘호랑이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여우(狐假虎威)’를 연상시키며, 평소 한국인들에게 각인된 중국동포의 ‘중국인’ · 국민정체성을 통역 연희를 통해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한편 조폭들은 아령이의 말뜻을 자의적으로 해석 · 이역(異域)하면서 호령하는 통역관 연희를 반신반의하면서 믿지 않지만, 결국 아령이의 위세에 눌려 점차 연희의 ‘중요성’을 의식하고 그녀를 무서워하면서 ‘공경’하기 시작한다. 자기의 말을 임의로 ‘통역’하는 것을 눈치를 챈 아령이도 당혹해하지만,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연희를 지지하면서 짐짓 모른 체한다. 이것이 바로 남주인공 기철이가 ‘방자’해진 연희를 무시하면서, 그녀를 통역이라고 하지 않고 ‘전달’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오역(誤譯)하지 말고 사실 그대로 전달하라는 의미이다. 한국인들이 중국동포(통역)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남김없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조폭마누라’ 홍콩여인 아령이는 시종 남주인공 기철이보다 보스기질과 무술 등에서 ‘한수 위’이며, 사랑에서도 항상 주동(키스, 거침없는 손찌검 등)이 되는 절대강자로 군림한다. 반면 기철이는 시종 ‘한수 낮은’ 약자로 나타나며, 둘 사이에서 ‘조선족’ 통역 연희가 미묘한 (관계)조정을 한다. 한편 홍콩 무술고수 아령이가 땅콩과 젓가락으로 한국 조폭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리는 엽기적 장면들은 1980년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홍콩무술에 대한 신격화로, 이는 한국인들의 중국무술에 대한 ‘숭배’를 남김없이 드러낸다. 이 또한 최근 작고한 홍콩 무술대가 이소룡(李小龍)이 한국광고에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령이는 기철이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어머니를 확인한 후, 결국 모녀상봉을 포기하고 홍콩으로 돌아간다. 아령이를 배웅하는 공항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사랑은 ‘기약 없이’ 떠나가고 있지만 주인공 기철이는 무덤덤한 반면, ‘이별’을 더 슬퍼하고 애틋해하는 이가 바로 조연 연희이다. 그처럼 믿고 따르던 ‘보스 친구’ 아령이가 떠난 후에도 연희가 종전과 같이 조폭들에게 호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간 위풍당당하던 연희의 기세는 금세 사라지고 조폭들에 대한 태도도 급기야 공손해진다. ‘고국’에 남겨진 연희의 앞날이 근심스럽고 그녀를 기다리는 운명이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한 · 중 ‘조폭지간’의 사랑스토리를 코믹하고 드라마틱하게 다룬 한국영화 <조폭마누라(3)>가 한때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한편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연변처녀’ 연희는 통역으로서의 분수를 모르고 ‘오역’을 일삼는 교활한 ‘(호가호위)여우’로, 상황에 따라 재빨리 태도를 바꾸는 ‘카멜레온’식의 부정인물로 그려졌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통역’ 연희의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평소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조선족여성’의 (부정적)이미지와 현실 속 중국동포여성과 영화 속에 묘사된 ‘조선족여성’과의 괴리에서, 현재 한국인들이 이중정체성을 갖고 있는 중국동포들에 대한 단편적이고 편협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한국에 남은 ‘연변처녀’ 연희는 곧 ‘새로운 운명’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그녀가 드라마 “열아홉 순정”에서 주연을 담당한 ‘연변처녀’ 양국화처럼 재벌2세와의 결혼에 골인하면서 ‘부잣집며느리’가 되는 좋은 운명을 맞이할지, 아니면 현실 속 대다수 (재한)중국동포여성처럼 사회적 약자로 전락해 기시와 일상차별을 받는 ‘외국인노동자’로 취급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독자들은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시사점’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한국인들은 모름지기 불원천리하고 ‘코리안 드림’을 위해 고국을 찾아온 한민족 · 한겨레인 중국동포들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을 포용하고 공생공영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필자의 졸론이 사족 · 기우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11    짧은 人生, 위대한 삶 댓글:  조회:3740  추천:173  2008-12-11
                           짧은 人生, 위대한 삶                     중국땅에서 순직한 조계창氏를 추모하며   36세는 인생의 가장 ‘꽃다운 나이’로 황금시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중국 연길 출장취재 중 악천후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순직한 故 조계창 연합뉴스 중국주재 심양(瀋陽)특파원의 뜨거운 민족애와 치열한 기자정신이 한중언론과 동료들 속에서 회자되고 있다. 사람들은 짧은 인생이었지만, 위대한 삶을 산 한국기자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슬퍼하고 있다. 짧은 생애이었지만, 고인의 삶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위대한 삶’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故 조계창씨는 선각자 의식과 ‘발로 뛰는’ 기자의 치열한 삶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다. 이국땅에서 36세의 짧지만 빛나는 생애를 마감한 고인이 남긴 기사들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로운 삶과 분열된 한민족의 슬픔, 척박한 땅위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국동포의 치열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그가 고민한 것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기자가 해야 할 일이었고, 그들의 희구(希求)에 대한 정확한 반영 · 여부였다. 고인이 관심하고 우려한 것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민족의 평화로운 삶이었고, 분단으로 인한 한민족의 애환이었다.   그렇다면 고인은 왜서 사랑하는 가족과 갈라져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고 북경 · 상해 등 대도시가 아닌, 기후와 자연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동북땅을 선택했겠는가? 그것은 동북3성이 민족분열과 분단된 한반도의 비극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며, 200만 중국동포의 치열한 삶의 모습을 체감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인은 동북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중국동포의 삶과 한민족의 애환을 진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힘들고 고달픈 이국생활을 후회 없이 선택했고, 민족과 평화를 사랑하는 투철한 기자정신을 몸소 보여주었다.   2006년 6월 한국 언론 사상 최초의 중국주재 심양특파원으로 부임하면서 고인은 평소 자신이 품었던 뜻을 행동으로 실천해나갔고, 그가 남긴 발자취는 동북삼성의 오지를 포함한 ‘방방곳곳’이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동료들의 탄식과 애통 속에는 늘 부지런하게 ‘발로 뛰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고, 상상이 아닌 진실을 전달하려고 애써왔던 고인의 성실하고 치열한 기자정신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있다.   심양 현지의 한 교민은 고인을 기리는 (인터넷)글에서 “조 특파원은 사무실에서 번역한 뉴스재료를 기사화하지 않고, 직접 현장을 뛰어 확인하는 참으로 부지런한 기자”라고 칭찬했다. 평소 업무처리만 해도 빡빡한 뉴스통신사 기자인 그가 취재여건이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취재원을 직접 만나기 위해 동북3성을 누비고 다녔으며, 현장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출장을 많이 다닌 특파원이었다. 중국 사이트 온바오닷컴에는 “타국땅에서 알게 된 첫 한국기자로, 대한민국 언론을 대표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기자”라는 칭송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고인의 영결식에 참가하기 위해 불원천리하고 한국에 온 중국 흑룡강신문사 윤운걸 주임기자는 “조 특파원은 동포사회의 소식을 발로 뛰어 정확히 취재해 객관적으로 보도, 동포사회의 신망이 매우 두터웠다”며 “중국동포와 한민족을 위해 현장을 누비던 한국 최초의 특파원이 우리 곁을 떠나갔는데, 연변지역의 동포신문 기자를 대표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고 싶었다”고 (참가)이유를 밝혔다. 그는 연합뉴스와 한국 언론계는 동량지재를 잃었고, (생전)고인을 알고 지내던 조선족인사들도 갑작스런 비보에 모두 애통해했다고 말했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게 마련이며,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하지만 어떤 죽음은 홍모(鴻毛)보다 가볍고, 어떤 죽음은 태산(泰山)보다 무겁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아까운 청춘을 바쳤다면 이는 ‘고상한 삶’이며, 민족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바쳤다면 그것은 ‘위대한 삶’이 될 것이다. 이 또한 많은 이들이 ‘위대한 삶’을 칭송하고 기리는 이유이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민족과 평화를 위해 중국땅에서 순직했고, 위대한 삶을 산 평범한 한국기자 · 조계창氏를 잊지 말고 오래오래 기억해야 할 것이다.
10    남과 북이 ‘하나’ 및 ‘둘’인 이유(하) 댓글:  조회:4062  추천:162  2008-11-29
  남과 북이 ‘둘’인 이유:   1950년대 민족상잔의 동란을 거쳐 분단되었고 50여년의 냉전시대를 경험하면서, 남과 북은 부동한 체제와 이념 속에서 ‘두 개의 민족, 두 개의 국가’로 고착화되는 불행을 맞이했다. 오늘날 남과 북은 체제와 이념뿐만이 아닌, 경제발전의 차이와 부동한 생활신념 및 신앙차이를 갖고 있다. 이는 21세기 민족화합과 남북통일의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으며, 한민족 통일의 당위성과 함께 걸림돌이 될 것이다.   1. 1950년대 민족상잔의 6.25 동란을 거쳐 한반도에는 부동한 체제와 이념을 가진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섰다. 남과 북은 반공(反共)과 반미(反美)의 사상 · 이념으로 무장하면서 남북의 주민들은 적대적인 감정으로 충만하였고, 50여년의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두 개의 민족’으로 고착화되는 불행을 맞이했다. 서로가 상대를 ‘정복’해야 할 적대국으로 인정하면서 남한은 60만, 북한은 120만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고 ‘전쟁의 위협’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은 대결과 갈등 속에서 50년 간 냉전의 적대적 대립관계를 지속해왔다.   2. 분단으로 인한 부동한 이념 및 체제의 소유는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선군(先軍)정치와 주체사상 및 강성대국을 목표로 하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폐쇄적 자주(自主)’를 고집하는 ‘인치(人治)’ 국가로 발전되게 했다. 반면 자본주의체제를 인입한 남한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법치(法治)’ 국가로 발전했다. 이는 민족상쟁의 (이념)전쟁이 초래한 결과로, 한민족인 남과 북을 서로 다른 ‘두 민족’으로 역전되는 불행과 부동한 이념과 제도를 소유한 국가로 발전되면서 부동한 민족관과 국가관을 갖게 하였다.   3. 6.25 전쟁 이후 38선을 분계선으로 분단된 남과 북은 장기간의 냉전시대를 경유하면서, 부동한 정치 · 경제 · 문화적 시스템과 이념을 가진 ‘두 민족, 두 국가’로 발전되었다. 한편 냉전시기 이데올로기 대립에 따른 획일화된 사상 추구, 엄청난 국방비의 지출에 따른 사회적 낭비, 남북 모두의 군사문화화와 반공 · 반미의 이념적 사회풍조가 남북사회를 지배했다. 북한은 ‘수령체제’ 하에서 선군정치를 추종하는 핵무기를 ‘보유’한 ‘강성대국’으로, 반면 남한은 미국의 정치제도와 문화를 추종하는 ‘영어지상주의’ 국가로 발전되었다.   4. 시장경제를 도입한 남한은 1970~80년대 ‘한강의 기적’과 더불어 ‘아시아 네 마리 용(龍)’으로 부상,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 최근 ‘선진국 기준’인 1인당 GDP 2만 달러를 달성했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로 선진국 문턱에 와있다. 반면 계획경제체제의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경험했고, 최근 경제상황이 호전되었지만 여전히 경제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북한은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한 세계 최하위권 빈곤국가로, 이 또한 경제가 발전한 남한의 ‘흡수통일’을 우려하는 빌미가 된다.   5. 현재 부동한 체제와 이념 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남북 국민 · 인민의 종교적 신앙차이에는 현저한 차별이 존재한다. ‘종교의 나라’로 불리는 남한에는 미국문화의 영향으로 기독교(개신교)가 ‘국교’로 추앙받고 있고, 종교 신자가 인구의 절반이 되는 ‘다종교 국가’이다. 대부분의 남한사람들은 유교의 영향력과 패턴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종교적 신앙을 갖고 있다. 반면 북한은 주체사상의 이념 속에서 과거 사회주의국가에서 성행했던 개인우상화와 ‘수령님’에 대한 신격화가 지속되고 있으며, ‘무종교적인 신앙’이 신봉되고 있다.   6. 분단 이후 남한에서는 반공 이념과 친미(親美)적 사회문화가 형성되었고, 최근에는 대북관계에서 보수파와 진보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이 진보세력의 성과이었다면, 현재 보수 세력이 득세한 남한의 대북 · 정책은 포용정책에서 ‘실용’정책으로 변화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맞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북한 군부 내에도 개혁개방을 반대하고 대남 · 봉쇄정책을 주장하는 보수적인 완고파들이 현존하고 있다. 이들은 민족통일의 저애세력으로 장기간 존재할 것이다.   그 외, 남과 북은 삶의 가치관과 인생관 및 생활신념의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장기간의 분단 상황은 남과 북이 한민족 · 한겨레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하에서 비롯된 부동한 사고방식과 생활관습 및 언어 환경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가치관과 생활환경의 차이 및 체화된 이념적인 요소들은 21세기 민족화합과 남북통일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며, 이 또한 곡절 많은 통일 과정과 지속적인 상호 교류가 소요되는 주요인이다.   요컨대 6.25 민족 동란을 거쳐 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가 20세기의 냉전시대를 끝내고 21세기의 탈냉전을 맞이하면서, ‘두 민족, 두 국가’의 분열과 분단 상황을 종말 짓고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이룰 시기가 바야흐로 도래했다. 물론 남북이 ‘하나’인 당위성과 함께 ‘둘’인 걸림돌이 현재 공존하고 있지만, 21세기 민족통일의 대세는 그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다. 민족분열의 역사는 궁극적으로 민족통일로 귀결된다는 점을, 이미 5000년 한민족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9    남과 북이 ‘하나’ 및 ‘둘’인 이유(상) 댓글:  조회:4471  추천:162  2008-11-28
  남과 북이 ‘하나’인 이유:   한민족은 5000년 유구한 역사 속에서 분열과 통일, 불운의 식민지와 치욕의 군정(軍政) 통치하에서 동고동락을 나눈 한겨레이다. 21세기 진입 이후 ‘냉전의 종말’과 더불어 남북이 ‘하나(통일)’로 되는 당위성 및 그 주요한 이유를 아래의 몇 가지로 나누어 적어본다.   1. 5000년 유구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남과 북의 한민족은 피를 나눈 겨레이자 동포이다. 오늘날 7000만 한겨레는 민족상잔의 동란을 거쳐 남북으로 갈라졌고 부동한 체제와 이념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단군을 ‘시조(始祖)’로 하는 엄연한 백의민족의 후예이다. 한민족은 고려 · 조선조와 같은 통일시대와 백제 · 신라 · 고구려와 같이 3국으로 분열된 역사도 갖고 있다. 현재 한반도에서 분단국가로 있지만, 불원간 ‘하나(통일)’로 될 것이다.   2. 남과 북의 한민족은 20세기 불행한 역사와 환난을 함께 겪어온 한겨레 동포이다. 20세기 상반기에 우리민족은 일제 식민지시대를 경유하면서, ‘나라 잃은’ 설음을 겪어왔다. 그 후 3년간의 미군정과 전대미문의 민족상쟁 내전을 거치면서 한민족은 분열되었고,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로서 반세기 동안의 냉전시대를 맞이했다. 하지만 21세기 탈냉전을 맞이하면서, 불공대천의 ‘철전지 원수’에서 새로운 ‘통일시대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했다.   3. 21세기 지구촌은 이념의 대결과 체제의 갈등을 넘어 민족의 융합과 화합의 탈냉전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따라서 남과 북도 대결과 갈등으로 점철된 냉전 속에서 해탈되어, 획기적인 2000년 정상회담 이후 ‘20세기 분단’에서 ‘21세기 통일’로 가는 공생공존의 탈냉전 시대를 맞이했다. 주목할 것은 남과 북은 분단 60년의 ‘마지막 10년’을 상호 이해와 신뢰로, 대결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화해 ·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놓았다는 점이다.   4.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 남 · 북이 20세기 ‘치욕의 역사’가 남겨놓은 천만 이산가족의 상봉 및 700만 해외동포의 염원인 7000만의 화합(통일)을 실현한다면, 세계정치사와 한반도 통일역사에 중대한 한 폐지를 기록할 것이다. 남북통일은 잠시적으로는 여러 가지 딜레마와 문제점을 동반하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7000만의 화합은 ‘동북아균형자’로서의 강대국 도약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이는 분단의 역사를 종말 짓고 통일대국으로 거듭난 독일과 개혁개방에서 성공을 거둔 베트남의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5.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남북통일과 민족화합은 궁극적으로 침체된 남한경제를 부활시키고 경제위기에 직면한 북한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다. 즉 남한의 경제력과 선진기술이 북한의 토지와 값싼 노동력과의 결합, 북한의 풍부한 광물자원 개발과 이용 및 금강산과 백두산 등 이북 관광자원의 전면적 개발에도 활로를 열어줄 것이다. 게다가 남북 간 육로개통과 경의선 · 동해선의 전면적 개통은 중국 및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시켜,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중심’으로 발전 · 부상하는데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6. 현재의 남북관계 대결국면이 끝나고 한반도에서의 비핵화가 실현된다면, 외국투자자들의 한반도 안보와 위험부담에 대한 우려를 진일보 해소함으로써 남북의 해외투자유치와 외국자본의 인입에 크나큰 걸림돌을 제거하고 투자에 활로를 열어줄 것이다. 특히 이는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추진 우려와 딜레마를 제거함으로써, 개성공단과 신의주 경제특구의 활성화를 촉진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경제위기의 탈출을 목적으로 하는 본격적인 개혁정책과 대외개방을 단행시켜,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그 외에도 남과 북의 ‘하나(통일)’로 된다면, 현재 남북 정부가 엄청난 국방비(현재 남한은 약 200억 달라, 북한은 약 50억 달러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음)를 지출하는 경제적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따라서 (남북)정부는 그 막대한 자금을 사회복지와 국민(인민)생활, 즉 생활난에 허덕이고 있는 어려운 서민층에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울러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청춘을 ‘허송’하는 현유의 시스템 · 고역에서 해탈될 수 있으며, 냉전 이데올로기의 진부한 정신적 갈등과 고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남북이 ‘하나(통일)’로 되는 전제조건은 ‘과거 10년’과 같이 상호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남한으로서는 포용적인 대북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반면 북한으로서는 전면적인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을 단행하고 궁극적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전쟁위험이 상존하는 현재의 ‘정전(停戰)’ 상태에서 벗어나 완전한 ‘종전(終戰)’ 상태로 되어, 한반도에서 비핵화를 통한 전쟁의 위험요소가 철저히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8    인천국제공항의 ‘진풍경’ 댓글:  조회:5464  추천:256  2008-11-21
  2001년에 개항된 인천국제공항은 국제여객 세계 10위권, 국제화물 세계 2위, 공항서비스 3년 연속 세계 1위이다. 인천공항은 우질 서비스와 일류의 첨단시설 및 선진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겸비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세계 정상급의 국제공항이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은 하루에도 수천 명의 국내외 고객들이 드나드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관문(關門)’이자 대외창구로, 대한민국의 긍지와 자부심이며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의 체류수가 40만에 달하는 중국동포들을 포함한 외국인노동자의 대다수가 자기나라에 돌아갔다가 재입국(수속)을 하기 위해 반드시 들리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인천국제공항 1층의 중심위치에 있는 법무부출입국관리소이다. 얼마 전 중국 청도(靑島)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 참가차로 중국에 다녀온 필자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일류공항’에 어울리지 않은 ‘진풍경’을 목도했으며, 하마터면 탑승하지 못할 뻔한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안타까운 것은 인천국제공항 ‘진풍경’의 주인공들이 바로 현재 고국인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이라는 점이다. 한편 이 ‘진풍경’을 연출하고 사태의 조장에 일조한 출입국관리소 공무원들의 한겨레 · 중국동포들에 대한 적나라한 차별과 멸시적인 태도를 목격하면서, 현재 한국사회의 이방인으로, 사회적 기시와 일상차별을 받고 있는 재한중국동포들의 축소도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그리고 이 ‘일류 서비스’로 유명한 공항의 불협화음이 바로 ‘악명 높은’ 출입국 공무원들이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또한 중국동포들이 고국의 ‘불량한 이미지’로, 우선 출입국 공무원들을 떠올리는 이유이다.   평소 인천공항에서의 출국수속은 2시간이면 충분하다. 중국동포들이 인천공항의 출국수속 수순은 대개 이러한 절차를 거치며, 관련 수속에 필요한 시간은 대략 1.5~2시간이다. 공항 도착 후 우선 들리는 출입국관리소의 재입국수속 시간은 20~30분이며, 탑승권 수령과 수화물을 부치는데 20~30분이 소요된다. 그리고 안전·해관을 통과하는데 20분, 탑승구까지는 10~15분이 소요된다. 그 중 가장 큰 변수는 재입국수속에 걸리는 시간이다. 다른 수속 · 절차에서는 탑승시간이 다가오면, 사정을 말하고 먼저 수속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침 첫 출발인 5시 10분 인천국제공항의 리무진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6시 40분이었다. 재빨리 짐을 챙기고 1층의 출입국관리소에 들어갔는데, 좁은 관리소 안은 이미 많은 여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대기번호표를 뽑아보니, 앞에 대기하는 인원이 40명이나 되었다. 필자가 탑승할 비행기는 8시 45분에 출발하는 CA134(인천-청도)이었다. 아직도 2시간이 남았으니 별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위안하면서 대기 순서를 기다렸지만, 왜 이 이른 시간에 이렇게 많은 고객들로 붐비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필자가 떠난 날이 마침 토요일로 금년 7월부터 주2회 개통되는 인천-목단강 출발시간과 비슷한 시간대이었다. 현재 대한항공 전세기편으로 매주 토요일 8시 10분 목단강으로 출발하는 항공기의 주요고객은 목단강 · 연변출신의 중국동포들이다. 목단강행은 최근 방문취업제가 실행됨에 따라 방한(訪韓)하는 중국동포의 급격한 증가와 재한중국동포들의 출입국이 자유로워졌고, 출·입국하는 중국동포들이 급증함에 따라 신설된 항공편이었다. 그것이 이 토요일(아침)에 출입국관리소가 중국동포들로 ‘붐비는 이유’이었다.   아침 7시가 넘자 출입국관리소에는 더 많은 여객들이 들이닥쳤고 수속은 더 늦어졌다. 난해한 것은 손님은 그렇게 많았지만, 출입국관리소에는 단지 2명의 남직원이 재입국과 관련 (출국)수속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모두들 조급해졌고 여기저기에서 항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7시 반이 되자 8시 10분 출발의 목단강행 중국동포들이 수속을 재촉하면서, 불만의 목소리는 거세졌고 비좁은 관리소는 더욱 혼잡해졌다. 그러자 출입국의 직원은 ‘잠정 번호순서의 수속을 중단한다’고 하면서, 목당간행 여객들은 두 줄로 나와서라고 ‘명령’했다.   출입국 공무원의 ‘임시결정’에 필자를 비롯해 다른 항공기로 8~9시에 출발하는 여객들은 더욱 초조해졌고, 다급해진 그들은 더욱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탑승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더욱 급해진 여객들의 항의와 떠들썩한 소리로, 질서와 정숙을 보장해야 할 출입국관리소는 혼란과 무질서로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급해진 여객들이 먼저 수속하려고 무작정 카운터로 몰려들자 그 중 선배직원이 “모두들 조용하고 제발 줄을 서세요”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연신 옆자리의 후배에게 ‘빨리하라’고 짜증낸다. 그 와중 중국동포 중년여성 한명이 카운터 안에 들어가 큰 소리로 전화를 받다가 다른 직원에게 쫓겨난다.   ‘세계 1위’ 공항서비스를 자랑하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벌어진 희귀한 ‘진풍경’이 권위주의적인 출입국 공무원과 무질서한 중국동포들에 의해 연출된 순간이다. 바야흐로 선진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이지만, 중국동포들을 비롯한 외국인노동자들의 사회적 기시와 차별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외국인 차별 · 기시는 한국사회의 ‘숨겨진 치부(恥部)’이며, 인천공항의 ‘진풍경’은 현재 고국 · 한국에서 차별과 기시 속에서 살아가는 중국동포의 축소판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객들의 불만에 찬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고, 출입국 공무원의 언행도 거칠어졌다. 상호불신과 불만으로 팽배해진 반목질시의 험악한 분위기를 목도하면서, 필자는 중국동포들의 구체적 상황을 헤아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동포차별’의 재외동포정책을 출범시키는 한국정부의 관행을 연상했고, 출입국 공무원들의 권위주의적 태도가 인천공항의 ‘진풍경’을 연출·조장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울러 이방인 중국동포들이 이외의 피해와 불이익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회적 약자의 ‘불쌍한 신세’가 가엽게만 여겨졌다.   8시가 되어도 많은 여객들이 재입국수속을 못하게 되자 목단강행 비행기가 한 시간 연착된다는 소식이 전해왔고, (출입국)직원은 다시 ‘대기번호 순서로 수속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줄을 선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다급해진 기타 항공기 편의 손님들과의 몸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필자는 겨우 앞으로 비집고 나가 사정을 구해 (8시10분)입국수속을 마치고, 국제항공 탑승수속 카운터에 왔을 때는 이미 탑승 · 수화물 수속이 끝난 뒤였다.   필자가 카운터 여직원과 (상사)남자직원에게 재삼 사정하면서 (청도)학술회의에 필히 참가해야 할 ‘이유’를 어필했다. 결국 공항직원의 승낙을 받았고 그 남직원의 도움으로 짐을 가지고 다른 여객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양해를 구하고 먼저 통관했다. 탑승구까지 줄곧 뛰어가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하고 있는 공항직원에게 짐을 맡기고 급히 탑승했는데, 필자는 출발 10분 전에 도착한 마지막 여객이었다. 안도감과 허탈감이 교차되는 한순간이었다.   필자는 연길공항의 혼잡과 무질서, 음력설 연휴 기간 수많은 인구가 유동하면서 인파로 붐비는 북경역을 빠져나올 때 힘든 상황을 그 ‘유명한’ 인천공항에서 또다시 체험했다. 더욱 난해한 것은 인천국제공항 ‘진풍경’의 배경에는 ‘코리안 드림’을 안고 불원천리 고국을 찾아온 중국동포에 대한 한국정부의 등한시와 무시, ‘차별적 이념’이 깔려져 있다는 점이다.
7    중국동포 인상 속의 ‘고국이미지’[수정] 댓글:  조회:5265  추천:260  2008-11-14
  1992년 한 · 중 수교 이후 중국동포들은 고국인 한국에 대한 동경지심과 더불어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도경을 통해 한국에 다녀왔으며,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중국동포는 40만에 육박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재한중국동포들에 대한 이미지는 한겨레 · 동포이면서도 ‘중국인’으로 이중성격을 가진 한민족으로 각인되어 있다. 아울러 중국동포들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매우 복잡하며 한두 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일구난설이다.   최근 방문취업제가 실행되면서 한국행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국동포들이 고국인 한국에 대한 이미지 역시 애증후박(愛憎厚薄)이 뒤섞이고 엇갈리면서, 그 증애(憎愛)에 대해 한 두 마디로 개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고국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은 문화 차이로 인한 이질감과 위화감을 감지하면서,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하여 공동체적인 타운을 형성해 생활하고 있다.   가깝지만 멀기도 한 고국인 한국은 많은 중국동포들에게 꿈에도 가보고 싶은 곳이고 ‘부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동경의 나라이기도 하다. 또한 경제가 발전한 고국 · 한국이 있음으로 하여 대다수 중국동포들은 더없는 자긍심과 민족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이 2002년 한 · 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조하였을 때 많은 중국동포들의 열정적인 응원이 단적인 사례로, 이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을 실증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갖은 간난신고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고국 땅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느끼는 생소감과 소원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들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할 때, 출입국관리소 공무원들의 냉대와 가탈 부리는 언행들은 방금 전까지 비행기 안에서 곧 고국 땅을 밟는다는 부풀어진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만다. 난민입국을 심사하는 듯한 공항공무원들의 냉담한 태도와 불친절에 고국에 대한 이미지는 금세 땅에 떨어진다.   아이러니한 것은 같은 ‘붉은 여권’임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은 오리지널 중국인들은 무난히 통과되는 반면, 언어가 통하는 중국동포들은 무던히도 곤경을 치른다. 대개 공항사무소에서 재심사를 받는 이들은 중동국가에서 온 ‘테러대상’으로 취급받는 아랍인들과 중국동포들이다. 이는 (한국)공무원들의 편견과 불신이 작용한 것으로, 불원천리 ‘코리안 드림’을 안고 찾아온 한겨레인 중국동포들에 대한 지대한 모욕이다.   한국에 다녀온 많은 중국동포들은 ‘고국이미지’로, 불친절한 공항의 출입국관리소 공무원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차별과 기시를 거론한다. 또한 한국인들의 착잡한 눈길과 편견적인 언행에서 자격지심을 절감하면서, 한국인들에 대한 마음의 문을 더욱 굳게 닫고 만다.   오늘날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은 고국을 돈버는 ‘삶의 현장’으로 생각하고 있고, 반면 선입견에 찬 눈길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인들은 이색적인 중국동포들을 단순히 고국에 돈 벌러 온 외국인노동자,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의할 점은 현재 한국인과 중국동포 간의 관계는 고용과 피고용의 불평등한 관계이며, 노동력을 파는 일방과 돈을 주고 고용하는 관계로서 대등하지 못한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사회주의 계획경제시대에서 ‘편하게’ 일해 왔던 중국동포들은 고국 땅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과 잔혹성에 직면하게 되며, 동포의 정보다 이윤추구를 첫자리에 놓는 한국 업주들의 중국동포에 대한 편견과 몰인정을 절감하게 된다. 비록 언어가 통하고 음식은 입에 맞지만 부동한 사유방식과 생활스타일 및 노동여건과 강도에 바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고국에 대한 불편함과 괴리 및 소원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일부 악덕업주들의 인격기시와 임금체불 등은 중국동포들로 하여금 ‘비정한 고국’, 매정스런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만든다. 현재 주로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긴 노동시간동안 강도 높은 체력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보수는 한국인에 비해 퍽 적고, 업주로부터 수시로 잘릴 위험성을 감수해야 하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에 따른 중소기업들의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을 대량 고용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윤창출이 부진함에 따라 임금삭감과 체불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중국동포들은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자주 옮기게 되며, 한국기업과 업주에 대한 불신과 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과 임금보장은 중국동포들이 바라는 최대의 희망사항으로, 이는 한국기업과 업주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의 이유가 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중, 초기 조선족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기업은 거의 없다. 현재 한국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선족들은 현지사정에 밝고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들로, 2~3개의 언어를 장악하고 있는 우수한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월급은 (현지)한국인들에 비해 매우 적으며, 인격적인 기시와 불신을 받아 중용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한국(기업)인들은 사업이 잘못되면 진심으로 도와준 조선족들을 탓하면서, 그들을 무시하며 원망한다. 물론 일부 조선족들의 불미스러운 언행 및 사업태도가 문제되지만, 우선 그들을 인정·신임해주고 공헌한 만큼 대우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들어 북경·상해 등 대도시의 조선족 해외유학파·고급엘리트들이 한국기업을 사직하고 중국기업이나 외국기업에 취직하는 현상에 대해 한국인들은 모름지기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 외, 한국인들에 대한 중국동포들의 불신과 혐오는 여러 가지 원인에서 기인된다. 최근 조선족사회에 만행되고 있는 브로커들의 출국사기협잡에도 거개 한국인브로커들이 개입되어 있고,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이 출국을 미끼로 조선족들을 사기치고 기편하는 행위가 많은 중국동포들이 분개하고 경멸하는 이유가 된다. 일부 한국인들은 중국에 가서 동포들에게 무엇이나 다 해결해준다고 장담한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현재 많은 중국동포들이 한국인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그들은 가정부를 하인취급을 하고 있고 심지어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거부하면서, 중국동포들에게 난생 처음 받아보는 설움과 심각한 자격지심을 심어준다. 많은 선량한 중국동포들은 중국에서 평생 받지 못했던 수모를 한국에서 받고 있다.   현재 각종 원인으로 중국동포들과 한국인들의 관계는 경이원지(敬而遠之)로, 분열과 불신의 파열음은 커져만 가고 있다. 서로의 잘못을 상대에게만 찾고 자기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있어, 흡사 ‘이혼을 앞둔 부부’를 방불케 한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만 해도 서럽고 원통한데, 말로만 한민족인 우리민족은 ‘두 민족’으로 사분오열되고 있으니 실로 슬프고 통탄한 일이다.   한국정부가 해외동포인 중국동포들을 포용하는 재외동포정책을 실행하고, 한국인들의 중국동포에 대한 일상차별과 사회적 기시가 철저하게 사라졌을 때, 중국동포 인상 속의 고국의 심상(image)은 ‘숭고하고 친절하며 따뜻한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6    고국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댓글:  조회:5149  추천:440  2008-07-19
    현재 중국국적을 가지고 중국본토와 해외에서 살고 있는 200만 조선족(중국동포)들에게는 한국과 조선(북한)이라는 분단된 두 고국을 갖고 있다. ‘잘사는’ 한국과 ‘못사는’ 조선 모두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동포들에게는 소중한 존재로, 혈연과 문화 및 경제적인 측면에서 불가분리의 밀접한 유대관계를 지니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은 한민족의 일원으로 같은 조상을 가진 한겨레이며, 피를 나눈 백의민족이다.   최근 재한중국동포사회와 중국조선족사회에서 갈수록 팽배되어가고 있는 반한(反韓)감정과 고국에 대한 불신, 혐오와 반목질시에 많은 지성인들이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많은 동포들이 고국의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한중 조선족사회에는 고국에 대한 불만과 고국동포 한국인에 대한 지나친 염오 및 노골적인 적대감이 편재되어 있다. 현 (불신)상태가 지속되고 악화일로로 발전해간다면 가뜩이나 사분오열된 한민족은 또 다른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불행한 현실이고 걱정스러운 현황이다.     고국은 조상 적부터 대대손손 살아왔던 고향의 나라로, 문화적 뿌리와 역사적 혈연관계가 얽혀져 있는 곳이다. 현재 한민족의 문화와 생활습관을 보유하고 있는 조선족동포들은 한중 수교 후 그동안 격조했던 고국을 대량 방문했고, 노무송출과 친인척 초청 등 불·합법체류를 통해 경제가 발전한 한국에서 경제적 부(富)를 이뤘다. 한편 언어가 통하고 문화의 근저인 고국에서 조선족동포들은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감과 정체성을 확인하였고, 시장경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의식전환을 통해 ‘부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2007년 한국정부는 해외동포인 중국조선족들에 대한 우대정책으로 방문취업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따라서 한국에 친척관계가 없는 무연고동포들이 시험과 추첨을 통해 고국에서 합법적인 체류와 취업이 가능해졌고, 많은 중국동포들이 불법체류자 딱지를 떼고 그동안 전전긍긍하던 생활의 불안 속에서 해탈되었다. 현재 40~50만(귀화포함)의 방대한 중국동포들이 고국에서 타운을 형성해 떳떳하게 생활하고 있고, 자신들의 부지런한 노동으로 ‘코리안 드림’을 이뤄가고 있다. 이 또한 고국이 우리에게 부여한 혜택이다.   재외동포정책의 적극 추진 및 혜택 속에는 고국의 따사로운 동포지정과 사랑이 숨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해서는 안 된다. 물론 현재로선 일부 허점이 있고 보완해야 할 점도 적지 않지만, ‘주는 이’의 ‘당연한’ 배려 속에 ‘받는 이’의 감사함과 의무감이 동반되어야 한다. ‘잘 사는’ 고국의 인색함과 일상차별 및 사회적 기시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의 자세와 준법의식, 생활상의 비리와 저속한 언행들을 우선적으로 자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은 조선족의 발전에 무궁한 기회와 발전공간을 제공해주었으며, 많은 조선족들이 고국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경제이익을 포함한 실리를 챙기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이다. 현재 중국연해지역과 대도시에 50~60만의 조선족동포들이 진출하여 새로운 삶의 근거지를 개척하고 있는 것도 한국기업의 이 지역의 중국진출과 무관하지 않다. 1990년 중반 이후 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이 한국기업에 취직하여 한국기업이 중국에서의 발전과 성장에 도움을 주었으며, 점차 생활기반을 확장해나갔던 것이다.    조선족집거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하여 중국전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동포들은 한류의 전파자이자 혜택의 당사자이다. 중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선족엘리트들 중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 유학했으며, 고국에서의 생활체험을 통해 한중 경제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많은 조선족들은 안방에서 한국드라마를 시청하고 있고, 한류문화의 정수를 향수하고 있다. 중국동포들의 고국에서의 수입은 후대교육의 직접적인 경제내원이 되었고, 최근에도 많은 이들이 자식을 한국에 보내 우수한 고국문화를 배우게 하고 있다.     현재의 반목·불신관계는 장기적 관점에서나 단기적 시각에서 놓고 보아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국과 해외동포의 관계는 ‘물과 고기의 관계’로 서로가 원하는 불가분의 유대관관계이며, 고국과의 원활한 관계유지는 중국조선족들에게 있어 필수적이다. 게다가 최근 조선족사회가 맞고 있는 인구감소와 민족교육 퇴보 및 지역경제 슬럼프 등 위기상황에서 고국과의 교류와 상호의존 및 합작보완은 현존하는 조선족사회 위기를 극복하고, ‘제2 도약’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 및 발판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민족문화의 뿌리가 있는 고국은 700만 해외동포에게 소중한 존재로, 특유의 조선족정체성이 보전되고 타민족에 동화되지 않는 한 고국의 흥망성쇠는 민족의 존망과 직결된다. 중국국적을 가지고 중국공민으로 살아가는 조선족동포들은 ‘조국’과 고국 사이에서 명지한 선택과 함께 중개자·조정자 역할을 해야 하며, 현재 남북으로 분단된 두 고국 사이에서 민족화합의 성스러운 사명에 가교작용을 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가 부여한 숙명적 운명이다.    요컨대 200만 조선족과 7000만 고국의 상부상조·공생공영관계는 서로가 이익을 얻는 윈-윈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반면 반목질시와 사분오열은 공동쇠퇴를 불러올 것이다.    
5    한국 언론, 편파적인 對中 보도 자제해야 댓글:  조회:4632  추천:410  2008-05-26
    언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는 진실성과 보도자의 선입견이 가미되지 않은, 이른바 ‘가치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가치중립이란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지니는 중요성과 의의 및 역할에 대해 중립적 차원에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만약 사건의 어느 한 일면을 과장하거나 주관적 이념을 가미한다면 시청자(독자)의 혼란과 착각을 초래하게 되며, 언론의 생명인 공정성과 신빙성은 상실된다. 최근 한국 언론이 일관하고 있는 편파적 對中 보도가 ‘가치중립’을 상실한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최근 베이징올림픽은 중국국력을 세계에 과시하고 중국문화와 애국심을 고양할 수 있는 ‘호재’로 각광받는 반면, 호사다마로 자연(인위)적 ‘악재’들이 중국대륙에서 연이어 발생했다. 금년연초 세계적 이슈가 된 남방폭설재해, 최근 서방 언론의 쟁점으로 부상했던 ‘티베트사태’, 5월 12일 사천성 문천(汶川)지진 발생은 마치 ‘화(재앙)는 홀로 오지 않는다(禍不單行)’는 속설을 입증해주는 듯하다. 일부 서방 언론들이 이런 ‘악재’를 이용해 ‘反中’기류를 조성하고 있는데, 한국 언론도 동참해 對中 편파적 보도를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올림픽성화봉송활동 중 발생된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중국정부가 유학생을 배후조정’했다는 한국 언론의 편향 보도는 한중 네티즌 사이에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최근 한국의 지상파방송사들은 ‘티베트사태’ 과장보도와 함께 중국의 ‘인권’을 대거 거론하면서, 중국의 ‘올림픽개최국 자격’에 짙은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중국 사천성 대지진 발생 이후 일관되는 한국 언론의 편파적 보도는 자연재앙인 지진이 ‘인재(人災)’인 것처럼 왜곡되어, 한국의 시청자들을 오도(誤導)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대지진에 대한 한국 언론보도는 객관적 진실 여부를 넘어서 ‘악재’의 소극적 일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 언론에서 보도된 사망자수는 중국 언론보도와 상당한 편차를 보였고, 자연발생적 지진현상을 중국의 ‘자연환경 파괴’로 유발된 ‘인위적 악재’라는 인상을 각인시켜주고 있다. 한국의 방송3사가 시청률 높은 저녁 8~9시 황금시간대의 (중국지진)관련 뉴스에서는 지진발생 원인이 ‘중국정부의 장강삽협(三峽)댐 건설 때문’이라는 미국학자들의 ‘분석’을 그대로 옮겨와, ‘예고된 재앙(人災)’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지진참사에 대한 한국 언론의 편파적 보도는 아비규환의 ‘절망’ 속에서 울부짖는 이재민들의 모습이 크게 부각, 모든 중국인들이 여진과 ‘전염병’ 속에서 전전긍긍하고 실의 및 망연자실에 빠져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시종 재해현장에서 지휘해온 온가보(溫家寶) 총리를 비롯한 중국정부 노력과 무너진 건물 속에 깔려 있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투를 벌이는 인민해방군의 감격적 장면, 13억 중국인의 자원적인 헌금과 헌신적 지원 및 ‘곤란 앞에서 절대 굴복하지 않는’ 국민성 등은 철저히 무시, 간과되었다.     한편 (지진)피해 참상과 ‘정부 불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 언론은 국제사회가 재해지구에 급파한 구조대원과 의료진, 구호물품 원조와 물심양면의 지원은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실제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의 자연재해에 동정하고, 한겨레 등 진보언론들은 보수적 주류 언론들과 달리 “중국 지진피해 지원에 적극 나서자”라는 사설을 발표했다. 한국방송사들이 “구호품 비리의혹으로 이재민 시위, 유혈사태 발생” 등 정부 부패와 관료 비리에 집착하는 것은 新정부 출범 후 ‘친미소중(親美疏中)’ 외교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도 불구하고, 안재욱·장나라 등 한류스타들은 지진피해지구에 기부금을 전해 한류 훈풍을 전하고 있으며, 한국 내 화교단체와 유학생들은 성금을 모금해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의 “조선족동포들 지진재해지구에 온정을 보내”는 주목받을만한 기사이다. 실제 연변대학 사생들은 지진피해자를 돕기 위해 몇 십만위안(元) 의연금을 헌납했고, 흑룡강성 조선족들도 180만위안 성금을 재해지구에 보냈다. 사천성 재해지구에서 살아 돌아온 한 조선족대학생은 1000위안 기부금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이웃나라의 ‘재앙에 잘코사니를 부르는(幸災樂禍)’ 한국 언론의 경박한 언행은 모름지기 삼가야 한다. 또한 단일민족국가 시각으로 다민족국가 민족문제를 거론하면서 베이징올림픽 ‘비하’ 남발은 21세기 전략적동반자 ‘자격’을 상실하고 있다. 올림픽을 계기로 100만 교민이 중국에 진출하고, 현재 100만 중국인이 한국 체류·여행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좀더 중립적이고 적극적 보도자세가 요구된다. 최근 한국 언론이 편파적 보도로 ‘反中’정서를 확산시키고 있지만, 그에 따른 악과 및 이해(利害)득실을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방(友邦) 중국이 자연재해로 수 만 명 사망자를 낸 ‘악재’에 봉착한 것은 ‘순망치한’ 한국에게 결코 ‘행복한 일’이 못된다. 요컨대 이념이 가미된 편파적 보도는 국가간 우의를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국익에도 결코 도움이 안 된다. ‘가치중립’이 상실된 언론보도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소수인 이익에는 부합되겠지만, 다수인(국민)을 오도하는 ‘악과’를 초래한다. 가끔 ‘남 잡이가 제 잡이’로 반전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희망컨대 13억 중국인이 하나로 뭉쳐 자연 ‘악재’의 슬픔을 이겨내고, 힘들게 찾아온 ‘호재’·베이징올림픽을 잘 치르기를 내심 기대한다. 이 또한 대부분 한국국민들의 우방 중국에 대한 진솔한 축복이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 본문은 2008년 6월6일 『흑룡강신문』 주일특간에 발표된 바 있습니다.
4    방문취업제 개선책, 한국정부에 바란다 댓글:  조회:4384  추천:379  2008-05-23
    2007년 방문취업제가 그동안의 동포차별화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제정되었고, 시행 중에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방문취업제 추진 중 현존하는 문제점   첫째, 현재 취업대기 중 일부 중국동포들이 임시거처로 조선족교회 등 동포지원 시민단체 시설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저렴한 숙식비용과 취업정보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동포지원 시민단체의 열악한 재정·시설로 취업과 체류관리 및 법률상담 능력 한계 등 문제점을 갖고 있다. 최근 합법적 취업요건을 갖춘 사업체가 부족해 취업교육을 받은 동포는 10만이 넘지만, 취업가능 사업체 고용허용인원은 6만에 불과하다.     둘째, 정부가 허용하는 현유의 34개 취업업종으로 구직요건이 부족하다. 동포들은 취업교육 후 특례고용가능확인서를 발급받은 업체에 취직하지만, ‘확인서’를 발급받지 않은 업체에서 취업하면 불법취업으로 처벌대상이 된다. 사용자는 고용허가제법 제12조와 시행령 제20조에 의해 노동부 ‘확인서’를 발급받아 동포를 고용한다. 최근 들어 불법취업으로 처벌받은 동포들의 ‘취업허용업종’ 이의(異議) 제기 민원이 자주 발생하는 상황을 감안, 법무부는 불법취업 요인의 억제를 위해 현행 허용업종의 확대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셋째, 방문취업제 실시 후 사증신청 폭증으로 수수료를 챙기기 위한 브로커 개입의 서류위조가 빈번하다. 법무부는 친척관계 입증서류로 가족관계 외 친족관계 확인을 위해 가족사진 등 자료를 심사에 활용하지만, 실제 중국에서 친족관계 증명서류를 발급하지 않아 브로커들이 친족관계 입증서류를 위조하는 등 불법입국을 알선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브로커들은 고액의 수수료를 갈취하기 위해 초청자 호적등본과 주민등록증 및 피초청자 호구부 등을 위조하도록 사촉하는데, 결국 피해를 입는 쪽은 선량한 중국동포들이다.     넷째, 최근 노동부 외국인력고용팀 이태희 팀장은 “현재 사업주와 취업동포들이 합법취업 고용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2007년 취업교육 실적은 72,400명이지만 신고건수는 18.352건임)하다. 따라서 동포 취업실태 파악에 한계가 존재하며, (고용)사업장 관리가 미흡하여 동포들이 인권사각지대에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동포취업에 과도한 자율권이 부여(사실상 방임)되어, 불법인력 소개업자가 난립하고 있다. 얼마 전 발생한 이천 화재참사(2008. 1.7)가 이들 문제가 복합적으로 드러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다섯째, 방문취업제 혜택 수혜대상인 중국동포사회에서는 한국어 시험장소 배정의 불합리성, 브로커 개입 및 고액 수수료 갈취 등 문제점을 동포언론들이 지적하면서 해결책을 호소하고 있다. 2007년 중국동포밀집지역 동북3성에 배정된 시험장소 부족으로 동포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2008년 연길과 할빈지역에 추가(배정)되었지만,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시행과정 중 공정성과 투명성이 거론되면서 ‘시험’ 관련 비리는 (동포)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이는 점차 고국 원망과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방문취업제 개선방안 및 정책제언   첫째, 법무부의 동포 일시귀국 및 단계별 사회적응 지원     우선적으로 장기간 구직하지 못한 동포들에 대한 일시귀국 지원이 시급하다. 최근 법무부는 현장답사와 조사를 통한 무연고동포 체류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장기간 구직하지 못한 동포 귀국지원 및 단계별 지원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법무부는 일시귀국 동포에 대해 노동부 등 관계부처와 함께 귀국지원과 연락체계 구축을 강화하고, 취업지원과 취업알선 상담전문팀 설립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 무연고동포 취업이 힘든 실정을 감안해 정부는 취업절차 간소화와 소통을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민간단체와의 지원협의체 구성 및 체계적인 동포체류지원센터 설립·운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둘째, 노동부의 취업허용업종 확대 및 취업절차 간소화     우선 노동부 특례고용가능확인서 발급요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 동포고용 사업체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 완화와 제한적 규정을 개정하고, 인터넷 등에 의한 ‘확인서’ 발급신청을 허용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확인서’ 발급제도를 폐지하고, 단기적으로 내국인 고용기회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현행 취업허용업종 확대 및 취업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물론 ‘국내의 노동시장 혼란’을 피면하기 위해서는 법무부의 쿼터제가 단기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동포취업 활동이 수도권 중심의 건설업과 서비스업종에 집중된 점을 감안해 취업업종을 인력난이 심각한 중소기업과 외국인력이 필요한 농·어촌지역으로 확대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모든 업종에서 자유로운 취업활동을 허용해야 한다.     셋째, 사용주와의 ‘고용계약’ 폐지 및 취업자유화 실시     최길도 귀한동포연합총회 사무총장은 현행 제도 문제점은 “무연고동포들에 대한 취업업종 규제와 사업주의 동포고용 절차가 너무나 까다롭고 복잡한데서 기인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연고동포들이 입국 후 외국인등록증 신청과 취업교육 및 구직신청을 하는데 30~35일이 소요되지만 많은 동포들이 사전준비가 전무한 상태에서 무작정 입국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사전 홍보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현재 취업교육을 받은 동포들이 구직이 어려운 주요 원인은 사용주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취업업종 제한 및 동포취업 절차의 번다함 때문이므로, 특례고용가능확인서 발급제도와 문제가 되는 사업주와의 ‘고용계약’을 폐지하고 취업자유화를 빠른 기일 내에 실시해야 한다. 한마디로 취업절차 간소화와 모든 업종에서의 취업자유화 실시가 국내 체류동포들의 구직문제를 해결하는 키워드 및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구인구직 정보공유 및 동포 사회정착지원 강화   이우영 노동부 외국인력고용팀 사무관은 “정부는 동포들의 국내체류와 취업활동에 불합리한 제재조치에 대한 개선방안을 강구해야 하며, 동포들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 인력소개소 집중단속을 실시해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동포들의 안정적 취업활동을 위해 입국 전 근로계약 체결방안을 추진하며, 우선적으로 국내 동포(고용)기업과 현지 구직동포 간 정보공유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동포 노동력의 유입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면서 일반 외국인근로자가 취업하기 어려운 업종(서비스업 등)과 제조업 등 인력난이 심각한 업종을 중심으로 동포고용업종을 확대하고, 체류기간 중 동포 사회정착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동포지원 민간단체와의 네트워킹을 통한 서비스시스템을 구축하고, 최근 노동부 고용지원센터에서 시행하고 있는 구인구직 만남의 날을 온라인·오프라인으로 연중 상설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재외동포와 고국 간 유대강화 및 사회통합 차원 접근     윤인진 교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국국적동포 문제는 단지 노동력 수급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재외동포와 고국 간 유대강화 및 다문화시대에 걸 맞는 재외동포정책 추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사회통합을 준비한다는 통일정책 차원에서 접근을 모색해야 하며, 외국인력의 정주화와 사회문화적 통합문제까지 고려한다면 해외동포 인력에 대한 활용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동포 인력을 국내시장의 수요에 알맞게 활용하면 국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동포들의 민족경제와 민족공동체 발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해외 한민족공동체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방문취업제를 실시해 해외(무연고)동포 인력 비중을 늘리는 것은 단기적·장기적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 제3차 자진출국프로그램 실시 및 재외동포법 전면 실행     한국사회 외국인정책 아킬레스건은 외국인노동자 40~50% 차지하는 20여만의 방대한 불법체류자 집단이다. 이들은 통제 및 체계적 관리가 어려워 인권사각지대에 노출되고, 각종 사회범죄에도 연루되고 있어 정부는 사회통합 차원에서 심중히 고려해야 한다. 법무부는 이미 2차례 (동포)자진출국프로그램으로 좋은 효과를 거두었고, 제3차 자진출국프로그램을 실시해 불법체류 외국인들에게 자진출국 시킨 후 재입국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불원간 방문취업제를 폐지하고 자유왕래와 합법적 취업을 보장하며, 동포들이 국내 노동시장 수요에 근거해 자율적으로 입국시기를 조절하게 해야 한다. 또한 국내 취업지원단체가 동포사회 합법단체와 입국 전 취업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까다로운 취업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재외동포법 전면 시행 추진에 주력하며, 궁극적으로 중국동포와 모든 해외동포에게 고국 자유왕래 및 모든 업종에서의 합법취업을 보장해야 한다.
3    조선족의 미래는 중국에 있다 댓글:  조회:9250  추천:495  2007-12-22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시대를 맞이하면서 많은 이들이 대도시와 연해도시로 진출했고, 해외출국 붐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해외로 나간 조선족이 50~60만으로 추정되며, 연해도시로 진출한 조선족이 50만을 상회한다. 최근 방문취업제가 실시단계에 접어들면서 고국에 체류하는 중국동포수가 30만에 육박하지만, 몇 년 후 이들 중 대다수는 돈을 벌고 중국에 돌아와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많은 조선족들이 귀국해 서비스산업과 기업체를 설립, 바야흐로 ‘부자의 꿈’을 이루고 있다.   아래에 현재 해외에 진출한 50~60만 조선족동포 중, 대부분이 중국의 도시와 자기고향에 돌아올 것을 확신함과 더불어 그 ‘이유’에 대한 본인의 미숙한 견해와 사견을 피력한다.   20세기 파란곡절의 근현대사와 디아스포라(離散) 이주민의 불행한 역사를 경험한 조선족은 문화와 혈연의 뿌리는 한반도에 두고 있지만 현재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한민족이자 해외동포이다. 특히 중국에서 생장한 2~4세대들은 엄연한 ‘중국·조국觀’을 지니고 있으며, 갈수록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 일원’으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이 해외에서 이주노동자로서의 체류기간이 오래될수록 ‘차별과 기시가 없는’ 중국에 대한 동경심이 날로 깊어진다.   특히 중국국적을 가지고 중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중국의 문화와 생활환경에서 살아가는데 습관이 된 조선족동포들은 해외진출 후, 부동한 이념의 차이와 문화적인 차원의 이질감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현재 대부분 노동환경이 열악한 3D업종과 식당과 다방 등 서비스부문에서 근무하고 있는 중국동포들은 본국인들이 ‘외국인노동자’인 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기시 및 일상적 차별을 현장과 생활의 곳곳에서 체감한다. 중국에서는 크게 당해보지 못한 것들을 이국타향에서 체험하게 되면서 엄청난 소외감과 문화적 위화감을 감지하게 된다.   외국에서의 지친 심신과 ‘국적 없는’ 설음 및 일상차별을 직접 체감하면서, 자본주의사회의 인색하고 무정한 현실에 염오감을 느끼게 된다. 비록 열심히 돈을 벌어 경제적 부(富)를 이루었지만 정신상에서는 갈수록 공허해지고 ‘빈곤’해지며, 자신들을 생장시켜준 ‘가난’하지만 위화감과 이질감이 크게 없는 ‘조국’으로서의 중국을 더욱 그리워하게 된다. 이른바 ‘수구초심(首丘初心)’은 박정(薄情)하고 박애(博愛)가 결여된 해외에서 더욱 절감하게 되며, "잘사는 ‘타향’이 좋아도 ‘고향’보다 못하다(金窝银窝, 不如自己的草窝)"는 것을 실감한다.   한편 해외에서 자본주의사회의 치열한 경쟁의식과 상품경제시스템의 선진적인 측면을 직접 경험했으며, 게다가 그들이 갖고 있는 상대적으로 넉넉한 경제자금과 시장경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체험은 귀국 후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된다. 그들이 해외에서 체험한 선진적인 관리경험과 기술 및 (창업)자금 등 우세를 남김없이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바야흐로 경제발전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발전도상국이자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이 또한 (국내)타민족에게 '결여'된 조선족만의 우세이자 장점이다.   조선족들이 생장한 중국에는 그들에게 익숙한 생활환경과 체화된 문화 및 경제발전의 여건들이 두루 마련되어 있는 반면, 그들이 해외에서 체험한 문화적 이질감과 소외감 및 이념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일상차별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중심'의 중국에서 선진적인 (해외)경제문화를 경험한 조선족들의 강한 생활력과 '풍부한 자금력'이 더욱 각광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시장과 정책, (경제)환경과 여건이 마련되어 있으며, 해외에서는 차별대상이지만 중국에서는 '사장'이 될 수 있는 우세와 장점을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해외진출한 대부분의 조선족들은 중국에 낳아준 부모와 사랑하는 처자들을 두고 왔다. 소중한 가족들은 그들이 이국타향에서 돈벌어 '현대판 흥부'가 되어 하루빨리 환고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늘날 조선족동포들의 해외출국은 경제적 부(富)를 이루고 선진적 시장경제를 경험할 수 있는 이점(利點)과 가정파탄과 자식교육의 문제점, 농촌 황폐화와 민족정체성 위기를 맞고 있는 '사회적 폐단'도 안고 있다. 현재의 '방황의 역사'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득(得)보다 실(失)이 많은 '이소폐다(利少弊多)'의 불행한 결과로 이어질 것은 자명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조선족동포들은 해외에서 '떠돌이 · 품팔이' 신세에 불원간 종지부를 찍고, 가정이 있고 시장이 있으며 (우대)정책이 있는 중국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즉 해외에서 배운 기술과 습득한 관리경험을 이용해 안정된 생활환경과 정당한 경쟁 및 강한 생활력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떳떳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조선족사회는 (중국)국내에서는 대도시와 연해도시로의 인구이동이 가속화됨에 따라 주류 중국인사회에 점차 '동화'되어가고 있으며, 따라서 (민족)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해외(특히 고국)에서는 이념적인 갈등과 차별기시로 막심한 소외감과 위화감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조선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고국과의 문화적인 혈연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 속도에 발 맞춰 중국전역을 생존 및 발전의 활무대로, 타운을 형성해 뭉치고 자기의 우세와 장점을 발휘해 경제적인 힘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요컨대 민족교육의 중시와 경제적인 힘을 키우면서 민족정체성을 지켜나갈 때만이, 현유의 조선족의 우세와 장점을 이용해 향후 한겨레 통일과 (한중)경제발전에 가교적인 역할과 중개적 작용을 발휘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미래지향적인 결과로 가시화될 것이다.                                                                                                    -2007년 12월 22일 * 본문은 2008년 1월15일 『흑룡강신문』 주일특간에 발표된바 있습니다.   
2    조선족과 한국인의 상생관계 댓글:  조회:5761  추천:484  2007-12-05
    냉전시기 40~50년간 조선족과 한국인은 중국 국민과 대한민국 국민으로 각기 다른 이념과 제도 하에서 색다른 삶을 살아왔다. 이렇게 남남으로 살아오던 한민족이 민족동질감과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극적으로 해후상봉을 하게 된 것은 1992년 한중(韓中) 수교를 계기로 볼 수 있다. 그 후 한국기업의 중국진출과 조선족들의 고국방문을 통해 한동안 밀월을 보내다가 최근 들어 부동한 이념과 생활습관 및 사고방식의 마찰이 심화되면서 이들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현재는 서로가 상대를 원망하는 앙숙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족과 한국인은 같은 조상을 가진 엄연한 한민족이며, 한겨레동포이다. 한민족이란 개념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것으로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민족의 동질성을 찾고 타민족을 상대해 혈통을 강조한 것이 그 특징이며, 민족의 개념은 동일한 문화집단으로 공동한 생활풍속 및 가치관을 소유한 공동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민족도 부동한 이념과 제도 및 생활환경에서 장기간 갈라져 생활하게 된다면 문화적인 이질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오늘날 남북한의 실례와 한국인과 조선족간의 불신관계가 그 전형적인 보기이다.     한국인과 조선족의 상생관계를 밝히려면 우선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한다. 단일민족국가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흔히 민족과 국가의 개념을 동일하게 받아들이지만,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은 중국 국민으로서의 책무와 법률에 충실해야 상응한 보호와 혜택이 주어진다. 또한 조선족은 조상들의 살아왔던 한반도의 한민족(남북한 포괄)과 밀접한 문화적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중 정체성은 조선족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고(故) 연변대학 정판룡 교수는 "조선족은 출가외인으로 고국은 본가이고 중국은 시댁"이라고 조선족의 이중성과 고국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생동하게 지적했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성행된 조선족들의 한국바람은 평온하던 조선족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조선족들의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기 위한 출국 붐은 산업연수와 노무송출을 통해 급속히 진행되었고, 대량출국에 따라 농촌 황폐화와 이혼율상승에 따른 가정파탄, 교육문제 등 일련의 사회문제들이 발생되었다. 하지만 많은 조선족들이 해외노무를 통해 경제적 부(富)를 이뤘고,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전변 등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따라서 개혁개방과정에서 나타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현상들을 무조건 한국바람에 돌린다면 어불성설이다.     장기간 부동한 체제와 생활환경 속에서 살아온 조한(朝韓) 한민족은 서로 다른 장 · 단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이 바라본 조선족은 도전정신이 강하고 개척정신이 있으며 교육열이 높고 민족을 지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조선족은 일상의 예절이 부족하고 일확천금에 대한 미련이 강하며, 소비가 높고 직업의식이 박약하며 봉사활동이 정착되지 않은 단점이 있다. 반면 조선족이 바라본 한국인은 일상예절이 바르고 직업의식이 강하며 사업에 대한 책임감이 높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신용을 지키지 않고 지나친 우월감과 허영심이 강하며 성과 여색을 너무 밝히는 등 단점을 가지고 있다.     최근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팽배한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려면, 우선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긍정하며 단점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인들은 생활고로 고국에 온 중국동포들에 대해 이해하고 신임해주며, 한겨레의 따뜻한 정을 고국에서 느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선족들은 중국에서의 진부한 습관과 관념을 갱신하여 한국인들로부터 인정받는 노력이 필요하며, 한국인의 선진적인 경제의식과 생활상의 에티켓, 철저한 서비스정신을 따라 배워야 한다. 만약 조선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기업들이 중국시장 공략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중국에서의 성공도 퍽 어려워졌을 것이다. 반면 조선족은 한국을 통해 민족문화를 되찾았고 경제상에서도 많은 혜택을 보았다. 즉 조선족과 한국인의 관계는 고기와 물과 같은 존재로 ‘불가분리의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 한중 관계는 전면적동반자로 발전했고 현재 한국기업들이 대량 중국진출을 한 시점에서, 중국전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200만 조선족들의 존재는 귀중한 재산이 아닐 수 없다. 해외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와 (중국)국내의 유명대학을 졸업한 고급인력들이 중국전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발전에 무궁한 인적자원을 제공할 것이다. 그 외, 상당한 자본력과 자생력을 갖추었고 중국전역에 분포된 조선족기업들의 자본과 인맥 및 정보와 시장을 공유한다면 한국기업들의 성공이 보장될 것이며, 쌍방은 상호신임과 파트너십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면 분명히 윈-윈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한국과의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조선족들에게도 필수이며 미래지향적이다. 현재 조선족사회가 인구감소와 민족교육 퇴보, 지역경제 슬럼프 등 위기상황에서, 조선족사회가 한국과의 교류와 합작 및 상호의존과 보완은 현존하는 조선족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와 발판으로 될 수 있다.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은 조선족의 발전에 무궁한 기회와 발전공간을 제공해주었으며, 많은 조선족들이 직간접적으로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경제이익을 포함한 실리를 챙기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중국에서의 한국인 및 한국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조선족의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며, 반면 한국기업의 명성과 한국의 영향력이 클수록 조선족의 위치도 상승되는 상부상조 · 공생공영의 친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조선족과 한국인이 상생관계의 ‘이유’이며, 분열되면 서로가 패망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빌미’이기도 하다.      중국과 한국은 지정학적이나 역사적으로 볼 때 불가분리의 관계에 놓여 있으며, 중한 양측 사이에 미묘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 조선족은 한중 관계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조한 한민족 사이에 존재하는 불신과 갈등이 극복되지 못하고 진일보 악화된다면 조선족의 미래는 밝지 못하고, 중국에서의 한국의 이미지도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요컨대 조선족과 한국인의 상생관계는 서로가 득 되고 이익 되는 윈-윈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반면 분열양상은 서로가 상처와 타격을 입는 양패구상(兩敗俱傷)이 될 것이다.                                                                                  -2006년 11월 * 본문은 『흑룡강신문』 주일특간에 발표되었고, 본지의 ‘우수상’으로 선정된바 있습니다.                                                                
1    조국과 고국, 그리고 조선족의 정체성 댓글:  조회:6421  추천:466  2007-11-09
  중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은 한민족의 일원으로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는 고국인 남북한과 경제 및 문화적인 면을 포함해 여러 가지 방면에서 불가분리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원인으로 복잡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중국조선족은 중화민족이란 하나의 조국관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이나 국적과 민족을 하나로 생각하는 고국의 한국인들과는 엄연히 다른 조국관과 고국 및 모국관을 가지고 있다.   조국과 고국 및 모국은 비슷한 애정 및 감정유대를 가진 국가적 개념이지만, 분명한 차별과 뉘앙스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조국의 개념은 조상 때부터 대대손손 살아오던 곳을 이르는 말로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조선족들에게는 중국이 엄연한 조국이 된다. 고국의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의 (중국)조국관 인식에 대해 난해하고 섭섭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중국국적을 가지고 중국국민으로서 중국법률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조선족들은 중국을 당연히 조국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한국(조선)은 조상의 뼈가 묻혀 있고 민족문화의 뿌리가 있는 곳이지만 그들에게는 고국으로 간주되지 조국으로는 되지 않는다.     현재 고국에서 생활하면서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많은 중국동포들은 엄연한 조국관과 고국관을 가지고 있다. 고국인 한국은 조상들이 대대손손 살아왔던 고향의 나라로 문화적인 뿌리와 역사적인 혈연관계가 얽혀져 있는 곳이지만, 엄연한 국적 때문에 민족성과 국적을 동일시하는 ‘한국국민’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조선족은 중국국적을 소유한 중화인민공화국 56개 민족의 일원에 속하는 소수민족이며, 한민족의 문화와 생활습관을 보유하고 있는 한민족의 일원인 조선족동포들은 최근 고국에 대한 대량 방문 및 불·합법체류를 통해 한국에서 경제적 부(富)를 이루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고국은 한민족의 문화적인 동질감과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곳이며, 아울러 언어가 통하고 문화의 근저인 고국은 많은 중국동포들이 ‘코리안 드림’을 실현하는 노다지의 땅이지만 고마움과 섭섭함이 교차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고국인 한국은 생소한 이방(異邦)이 아니라 한겨레이자 같은 핏줄의 동포가 살고 있는 매정하지만 허물없는 ‘친정’이기도 하다.     또 다른 고국인 조선은 같은 사회주의국가이고 냉전시기에도 상호방문과 교류가 지속되었지만 개혁개방으로 시장경제를 일찍 접촉한 조선족동포들과 북한인들 사이에는 여전히 동포지정과 문화적인 유대감은 상존하는 반면, 삶의 가치관과 생활관념 및 이념적 차이가 현저히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생활고로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연고로 북한동포에 대한 조선족들의 시각은 매우 복잡하며, 이해와 편견을 동반한 동정과 관심 및 기시가 공존해 오늘날 한국인들이 중국동포를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조국이란 개념은 국가와 국민의 개념으로 국적과 태어난 곳을 강조하는 의미가 짙게 깔려있고 정치이념에 대한 충성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단순한 개념에서 조국은 공민으로서의 의무와 국가에 납세하고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는 국가적인 개념이다. 고국은 민족과 혈연의 의미를 많이 부여한 개념이고 선조의 고향으로 문화적인 유대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조선족들에게는 민족과 국가의 개념은 별개의 존재로 이는 역사가 남겨놓은 복잡한 정체성에서 기인되며, 따라서 엄연한 조국관과 고국관을 갖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모국(母國)은 외국에서 자기나라를 지칭하는 조국을 뜻하며 조국과 같은 의미로 통하지만, 고국과는 좀 차별된다. 현재 일부학자들이 한국을 고국이자 모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필자는 좀 견해를 달리한다. 물론 최근 일부 동포학자들이 고국인 한국(조선)을 ‘생모(生母)’로 중국을 ‘양모(養母)’로 주장하고 있어 조선족들이 한국을 고국이자 ‘모국’으로 인정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중국과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2~3세의 대부분 조선족동포들은 자기가 생장(生長)한 중국을 조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매우 크다. 이처럼 모국은 엄연한 조국관과 고국관을 가지고 있는 중국동포들에게는 변수가 많은 국가적 개념이다.     중국국적을 소유하고 있는 조선족은 엄연한 중국인이자 한국족의 일원으로 해외동포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조국관과 고국관 및 변수로 존재하는 모국관은 중국조선족만이 가지고 있는 민족특색으로 특유의 민족성과 국가관으로부터 형성된다. 특히 민족과 국가개념을 동일시하는 한국인들은 한민족이라 해서 모두 한국인이 될 수 없으며, 조선족이란 개념은 완전히 독립적인 민족개념이 아닌 중국국적을 가진 한민족에 대한 별칭으로 중국동포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조선족은 중국국적을 가진 700만 해외동포의 한민족 일원이다.     현재 중국공민으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조국인 중국에 충성해야 하며, 동시에 조상의 뼈와 민족의 얼이 묻혀있는 고국산천을 동경하고 고국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중국조선족들의 고민이자 딜레마이기도 하다. 한편 고국인 한국에서 한민족이면서도 이방인의 대우를 받고 있는 중국동포들의 현황에 대해 한국정부의 대책과 한겨레인 한국인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국의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의 민족관과 국가관에 대해 역지사지의 차원에서 관용적인 사고가 소요되며, 다차원적인 너그러운 이해가 필요하다.   요컨대 민족은 고유한 전통이고 문화이며 생활인 반면에 국적 및 국가관은 현상으로 정치적 의무이자 이념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현재 2~3중의 복잡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조선족들은 자기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지키는 한편 조국(중국)과 고국(한국·조선)관계를 원활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조선족들의 현명한 인식과 슬기로운 선택이 필요한 이유이다.                                                                                             -2007년 11월 9일    
‹처음  이전 1 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