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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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남북축구, 조선족은 누굴 응원할까? 댓글:  조회:8056  추천:7  2014-10-15
남북축구, 조선족은 누굴 응원할까? 지난 세월 한국인은 조선족이 중국과 한국이 축구하면 누굴 응원할까? 궁금했고 큰 화제 거리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만약 중국을 응원한다면 조선족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같은 핏줄 나눈 민족인데 그럴 수 있느냐며 매우 서운해 하였고 조선족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요즘 필자는 이와 비슷한 새로운 화제 거리를 만들어 보았다. 10월 2일 저녁 8시 인천문학경기장에서 ‘2014인천아세아게임’ 축구결승전이 열렸는데 묘하게도 남과 북이 금메달 놓고 생사결판을 내는 승부를 펼쳤다. 결과는 남한의 승리로 끝났다. 필자는 재한조선족이 남과 북 누굴 응원했을까? 궁금했다. 가. 나이 많을수록 조선(북한), 나이 어릴수록 남한을 응원 주변인 20여 명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해보았다. 40대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다수 조선족이 북한을 응원했다는 대답이고, 30대는 거의 반반이고 20대는 남한 응원수자가 더 많았다. 결론적으로 조선족사회 연령층이 높을수록 북한을 응원하는 수가 많고 연령층이 내려올수록 남한을 응원하는 비례가 늘었다. 만약 이 ‘설문조사’ 결과가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사회 반응이라면 얼마든지 수긍이 가겠으나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재한조선족사회에서 이와 같은 반응이 나온 것은 조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하게 말해서 70만 명에 육박하는 조선족이 남한의 덕분에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져 자녀 대학공부 시키고 중국에 집 사놓고 어느 정도 노후를 보장하고 있으면 남한의 신세를 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왜 아직도 이북을 응원하고 있을까? 나. 조선(북한)을 응원하는 이유들 중국과 이북은 같은 사회주의 체제로서 공산주의 이념과 사상 교육을 공유해 왔기 때문에 조선족사회 40대로부터 위로 올라가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아 뿌리가 굳건히 내려 아직도 이북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어 이북을 응원하는 수가 많다는 것이다. 남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굳건히 하였고 중국과 반세기 동안 문을 닫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민족이긴 하나 남한에 감정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감정을 단지 코리안 드림을 통해 돌려세우기는 너무 멀리와 있어 앞으로 더 긴 세월이 필요할 것 같다. 그 외 언어를 비롯해 문화적으로 중국조선족은 이북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기 때문에 이북을 지지하는 수가 많다고 볼 수 있다. 또 일부는 이북에 연고가 있어 그 영향에 의해 이북을 응원하고 있다. 이른바 안쪽으로 불리는 흑룍강성이나 심양에서 온 조선족도 부모가 이북출신이기에 이북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다. 또한 일부는 남과 북이란 개념을 떠나 축구팬으로서 약체를 응원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에 북한을 응원한다고 말한다. 즉 이북은 열악한 경제 여건 속에서 결승전까지 올랐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응원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일부 20대 젊은이들은 이북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기에 현실에 충실하여 남한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다. 다. 한국은 좋은데 한국인이 싫다 많이 들어본 말이다. 즉 한국인이 미국에 가면 미국은 좋은데 양키가 싫다, 일본에 가면 일본은 좋은데 쪽발이 싫다는 식으로 조선족도 한국은 좋지만 한국인이 싫다는 것이다. 잘사는 나라 사람이 못사는 나라에 가면 대접받고 거꾸로 못사는 나라 사람이 잘사는 나라에 가면 무시당하는 것이 인류사회 보편적인 흐름이일진대 조선족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으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이 그리 이상할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조선족은 대한민국을 할아버지가 살던 고향으로서 같은 피를 나눈 족속끼리 너무 무시하는 것이 싫다는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조선족으로 하여금 정서적으로 한국은 좋지만 한국인은 싫다는 심리를 키워왔던 것이다. 또 한국정부가 조선족을 외국인 취급하면서 불법체류자는 그렇다 치고 열심히 일을 해 잘살고 있는 조선족 일부를 비자문제(F-4)로 벌금 때리고 강제추방 시키는 등 너무 각박하게 대해 싫다는 정서도 만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라. 조선(북한)을 응원하나 한국을 떠나지 않는 조선족 이유가 어찌되었든 남한 신세에 의해 돈을 벌면서 잘사는 조선족이 북한을 응원한다면 남한 사람들의 감정이 좋을 리가 만무하다. “당신들, 북한을 응원하겠으면 남한을 떠나 북한에 갈 것이지 왜 가지 않고 남한에 머무르고 있느냐?”고 질타를 받아도 사실 할 대답은 없다. 재한조선족은 참으로 남과 북 사이에서 심리적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매우 비극적이다. 이 비극이 오로지 통일로 치유되는 길밖에 없다. 언제 통일이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조선족이 하나의 코리아를 응원하는 세상을 맞이한다면 현재에 비해 어깨에 힘주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 조선족이 조선(북한)을 응원하는 것은 미래의 큰 자산 남한정부와 국민들이 북한을 응원하는 재한조선족이 많은 것을 단지 서운해만 할 일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 오히려 득이 되는 자산이라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유지인사들은 조선족의 고국에 대한 기여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독립운동에 기여하였고, 한국기업 중국진출에 기여하였고, 남북통일에 가교역할 기여를 할 것이다. 조선족 집단이 남과 북 통일 가교역할을 하려면 신세 지고 있는 남한에만 치중하고 감정적으로 이북을 멀리하거나 심지어 싫어한다면 다리역할에 나서지 않을 것이나, 북한과의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면 가교역할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점 한국정부와 한국국민들이 상기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55    박근혜대통령을 악용하는 악덕상술 댓글:  조회:5422  추천:1  2013-03-29
박근혜대통령을 악용하는 악덕상술 일부 행정사, 여행사 동포 상대로 사기행각 극성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동포를 상대로 업무를 취급하는 행정사사무실이 500여 개 있고 여행사가 행정사사무실 숫자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포들이 모여 거주하는 곳이면 행정사사무실과 여행사가 있어 동포들의 출입국업무를 비롯해 고충상담이 쉬워지고 비행기티켓 구매 등 많은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행정사사무실, 여행사는 정상업무취급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 동포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다. 법무부에서 10년 이상 불체자구제정책을 실시하면 5년 이상이면 구제받는다는 거짓말로 돈을 받고는 돌려주지 않는 사례가 많다. 방문취업(H-2) 5년 만기자는 귀국하지 않고 체류연장을 보장해준다 하고, 위명여권 경력자도 본인이 신고하지 않고 돈만 내면 자기네가 알아서 해결한다는 등 사기항목이 가지각색이다. 보통 1인당 300~400만원, 수십 명의 돈을 받고 도망간 업소들이 나타나고 있다. 사기수법도 점점 더 교묘하게 변화되고 있다. 정부교체시기를 악용하여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이다. 2012년 12월 19일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불법체류자를 구제한다. 선착순으로 해결하니 빨리 접수해야 빠르게 구제받을 수 있다.”는 거짓말로 돈을 받는다. 일부 업소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위명여권 경력자든 위장결혼이든 심지어 형사범죄자든 동포를 다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접수받는다. 하얼빈에서 온 심모 여인(48세)은 부모 호적이 한국에 있지만 친척을 찾지 못해 인우보증인이 없어 국적이나 영주권신청을 제출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여러 곳 돌아다녀보았는데 불가능하다는 답이었다. 이쯤 되면 포기하는 것이 마땅하나 요행심리를 버리지 못해 Y구 소재 00행정사사무실에 찾았더니 영주권신청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100% 문제가 없다는 큰소리를 듣고 맡겼다. 처음 200만원 내고, 며칠 지나 또 다른 명분으로 80만원 주고 한 달 지나 100만원, 이제 마지막 관문에 이르렀으니 60만원 더 내야 한다 하여 모두 440만원을 주었으나 아무런 해결이 없다. 돈을 돌려줄 것을 요청하니 박근혜 정부 출범이 안정되면 해결이 될 것이니 3개월 더 기다리라는 대답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해도 법 테두리 안에서 동포문제를 다루는 것이지 결코 대통령직으로 법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구제정책을 펼 수는 없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이다. 신청요건부족도 박근혜정부가 해결해준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동포를 상대로 하는 사기행각은 사기 치는 자가 있기 때문에 사기 당하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기당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사기 치는 자가 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동포들의 요행심리 때문이다. 물론 사기 치는 자가 나쁘지만 동포사회도 스스로 반성이 필요하지 아닐까.
54    외국인등록증발급 너무 늦다 댓글:  조회:5294  추천:1  2013-01-28
한국에 처음 입국하거나 3년 만기되어 재입국한 동포들이 외국인등록증발급을 신청할 시 본인이 직접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방문하면 3주정도 걸리고 행정사 대행으로 맡기면 보통 4~6주 걸린다.  동포들이 지리를 잘 모르고 또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늘 붐비기 때문에 행정사대행으로 맡긴다. 행정사대행제도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번중한 업무량 해소와 동포들의 편리를 위해 마련되었으면 마땅히 개인접수보다 시간이 더 단축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겠으나 현재 거꾸로 되어 있어 유감이다. 한국 현행법상 일반 민원접수는 늦어도 통상 14일 이내 처리된다. 왜 동포들의 외국인등록증발급 민원접수처리가 그토록 늦어지는 건지? 외국인등록증발급이 늦으니 잇따라 생기는 부작용이 많다. 동포들이 방문취업비자(H-2)로 한국에 입국하면 3일취업교육을 받게끔 되어 있다. 만약 교육받지 않고 일을 하면 불법취업이다. 2012년 7월 1일 전에는 여권만 갖고 교육신청이 가능했지만 그 이후로는 반드시 외국인등록증이 있어야 교육신청이 가능하다. 교육신청을 하면 곧바로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1주내지 10일 기다려야 한다. 교육을 받고 취업하려면 고용안전센터에 구직신청을 제출하고 적어도 1주 기다려야 한다. 입국하여 취직하기까지 적어도 1개월 반 혹은 2개월이 걸려야 되니 정신상 지친다. 6주기술교육생의 경우 교육수료증을 발급받아야 외국인등록증신청이 가능하고 취업하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3개월 넘게 걸린다. 학비 내고 생활하고 이 비용, 저 비용을 따지면 돈을 벌기 전에 약 300만 원쯤 있어야 한다. 6개월 교육 시에는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에만 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반공반독이 가능하여 정신적으로는 힘들어도 경제적인 부담은 없었다. 그래서 일부동포들은 현행 6주교육이 과거 6개월 교육보다 못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북아신문
53    재한 동포교육 동포출신이 맡는게 더 효율적이다 댓글:  조회:5396  추천:7  2012-12-01
동포교육 강의는 동포출신이 맡는 것이 효율적이다   현재 다문화교육프로그램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다종다양하게 활성화 되어 있다. 이에 비해 동포교육 프로그램으로서 방문취업(H-2)비자 소지자 입국 후 3일 취업교육과 기술교육이수자격(C-3)으로 입국하여 6주(처음에는 1년, 점차 9개월로 축소되었다가 6개월 현재는 6주)동안 교육받고 H-2로 변경 받는 것 외에 동포교육이 활성화 되지 못했다. 2012년 들어 법무부가 국가 공인 기술자격증을 취득한 동포들에 한해 재외동포(F-4)자격을 부여하기로 하여 이미 수천 명에 이르는 동포들이 자격증을 취득하여 혜택을 받았고 다가오는 12월 초 있을 금속창호기능사 시험 신청자만 8천여 명이고 정보처리기능사, 미용, 요리 등 다양한 기능사공부를 하고 있는 동포 합치면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다문화교육은 절대다수가 무료교육인데 비해 동포교육은 (사)이주·동포정책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무료교육 외에 절대다수가 동포들이 학비를 부담하는 유료교육인 것이 큰 차이점이다. 다문화교육은 정부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원어민 강사들이 많은데 비해 동포교육은 한국인 강사 일색이다. 원어민 강사는 자국문화와 한국문화의 비교를 통해 강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수강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 효율이 굉장히 높다. 반면에 동포교육은 한국인 강사 일색이다 보니 비교문화강의가 이뤄지지 못해 일방적인 이론교육으로 끝나 교육효과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주민교육프로그램은 법률과목이 빠지지 않는다. 3일 취업교육프로그램에도 한국법률과목이 필수이다. 그런데 아무리 한국의 유명 변호사 혹은 유명법률 교수가 강의해도 일방적인 이론 강의에 지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 이주민은 한국법을 잘 몰라 자국의 법처럼 믿고 행위를 취하면 쉽게 사건에 휘말린다. 그러므로 동포의 경우 중국법과 한국법이 다른 점을 짚어 강의한다면 범죄율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당방위는 중국법에도 있고 한국법에도 있다. 그러나 중국법은 정당방위가 사건처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하게 비중 있게 작용하지만 한국법은 정당방위가 실제사건처리에 있어서 있으나 마나다. 한국경찰은 사건수사 시 절대다수가 같이 때려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열 매 맡고 한 매를 반격해도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중국법은 원인 조성 자를 엄중 처벌하는데 한국에서는 원인 조성이 뒤로 밀리고 결과만 중시한다. 중국에서는 살인미수의 개념이 상대방을 죽일 의도가 있어 흉기로 가격했는데 죽지 않을 경우 살인미수죄인데 비해 한국에서는 무릇 흉기로서 상대의 위험부위를 가격하면 살인미수죄를 적용한다. 한국에서는 도둑놈이 집에 뛰어들어 주인이 도둑놈을 때리면 오히려 주인이 폭행죄에 걸려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중국법은 원인 조성 자를 엄중 처벌하는 일방통행식 법이라면 한국법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책임을 고루 추구하는 쌍방향식 법이다. 이것이 민주국가의 법률 특징인데 동포들은 이러한 한국법을 모르고 있어 범죄율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만약 동포출신이 법률과목을 강의한다면 이러한 실제 사례를 들어 진행하기 때문에 동포들이 한국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동포소양교육에 쓰레기처리문제를 언급하는데 중국에서는 검은 비닐봉투든 아무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넣어 아파트 자기 집 입구에 내놓으면 청소부가 알아서 가져간다. 한국에서는 일반쓰레기, 음식쓰레기, 재활용쓰레기를 분류하여 규격봉투를 사서 처리해야 한다. 이런 상식을 몰라 쓰레기무단투기 현상이 많아 한국사회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 정보처리기능사를 비롯해 많은 기능사공부는 외래어가 굉장히 많은데 동포출신 강사는 중국어로 번역하여 설명하면 동포들이 습득이 빠르다. 유기농기능사공부는 용어90%이상이 한자어인데 동포출신 강사가 한자판서로 설명하면 효과가 굉장히 좋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동포교육 강의는 동포출신이 맡아서 진행하는 것이 굉장히 효과적이다.    
52    중국동포 무질서한 지하철이용 댓글:  조회:8782  추천:40  2012-11-01
중국동포 무질서한 지하철이용   한국에 온 중국동포는 절대다수가 동북삼성출신이다. 동북삼성은 지하철이 별로 없는 지역으로서 중국에서 지하철을 접해보지 못하다가 한국에 와서 지하철을 타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하철이용이 서투르고 무질서하다는 평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중국에서 몸에 배인 소질이 낮은 시민의식을 한국에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ㄱ. 부정승차 2호선과 7호선이 교차하는 대림역은 동포들의 이용률이 가장 높다. 7호선대림역의 경우 하루 평균 부정승차 적발건수가 1명이 된다. 만약 단속을 가강한다면 적발건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이 역장의 말이다. 문제는 적발된 건수 중 열에 여덟은 중국동포라는 것이다. 사회공공질서를 교란하고 유료 이용자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고 운임원가를 증가시킨다. ㄴ. 무질서한 출구이용 2호선 대림역 여러 출구는 밖에서 이용이 편리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중국동포가 운임구역에 침입하여 출구를 빠져나가려고 한다. 그럴 경우 진짜 지리를 잘 몰라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부정승차하려고 그러는 것인지?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이 역 직원들의 고충이다. ㄷ. 쓰레기 무단투기 밖에서 피던 담배를 역내까지 와 꽁초를 이리저리 버리는가 하면 역사 안의 도처에 담배곽을 버리고 또 휴지를 버려 쓰레기가 널린다. 출구 밖의 담뱃재털이와 휴지통은 더욱 가관이다. 통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마구 버려 환경이 어지럽기 말이 아니다. ㄹ. 무절제한 주정행위 주말이나 굳은 날씨를 만나면 대림역은 주정뱅이들 때문에 소란스럽고 곤혹을 치른다. 아침부터 술에 만취해 역내 벤치에 누워 코 고르며 잠을 자거나 지나가는 손님과 시비를 걸고 다투거나 자기네끼리 싸우는 경우도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리저리 음식물을 토해내 역내 환경을 어지럽히고 있다. ㅁ. 화장실이용이 어지럽다 소수이긴 하지만 어떤 중국동포는 양변기와 좌변기 사용이 서툴러 변기 밖에 대변을 누는 사례도 있고 휴지를 휴지통에 넣지 않고 대변이 묻은 휴지를 아무렇게 버려 기타 고객사용에 지장을 주고 청소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ㅂ. 역내 직원을 믿지 못한다. 일부 중국동포는 안내원에게 말을 묻는다. 모르면 묻는 것이 당연하지만 두세 번 돌아서서 묻고 또 묻는다고 한다. 안내원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여 재차 삼차 묻는다면 힘들다. 한국의 직원들은 서비스정신이 투철하다. 그러므로 안내원의 말을 믿고 따르면 낭패를 보지 않는다. ㅅ. 행동이 과격하다 한국 공무원은 법집행에 있어서 내국인이든 외국이든 공정하게 대한다. 부정승차가 적발되면 승차요금의 30배 되는 부과금을 안긴다. 독일은 100배, 홍콩은 60배이니 한국은 경한 편이다. 물론 내국인도 적발되면 어김없이 부과금을 안긴다. 그러나 일부중국동포가 적발되면 중국에서 왔다고 부과금을 안긴다면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그리고 한국인의 경우 잘못을 지적하면 금세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이에 비해 일부 중국동포는 잘못을 지적하면 사과는 고사하고 “네가 뭔데!”하면서 과격하게 대응한다. 중국동포밀집지역 지하철역의 직원들은 다른 기타 지하철역의 직원들에 비해 상기 원인에 의해 여러모로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 중국동포가 한국 사회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증거이다. 물론 상기 여러 가지 폐단이 한국인에게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비례로 따지면 중국동포가 훨씬 많고 따라서 이주민으로서 불량한 행위를 하면 쉽게 표적이 되고 더욱 비판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라는 도리를 명심하자.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라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중국동포들은 중국에 있을 때 낙후된 공공질서문화를 한국에서 답습하지 말고 한국질서를 잘 지켜 한국 사회에 피해가 되지 않는 모범시민이 되기를 바란다.        
51    한국을 바라보는 조선족의 시각 댓글:  조회:14062  추천:7  2012-08-22
냉전시대 조선족이 바라보는 한국은 미제국주의의 수하에 있는 헐벗고 굶주리고 못사는 막연한 남조선이었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굳게 닫혔던 국문이 빠금히 열려 한국 소식을 풍월로 들을 수 있어 조금 잘사는 나라로 인식되었으나 여전히 막연한 남조선이란 시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60·70년대 가만가만 라디오를 듣던 시절 한국이란 나라는 말투가 부드럽고 간을 녹일 듯 고운 여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부러울 뿐이었다. 1992년 한중수교를 계기로 가짜초청이 성황을 이루며 많은 조선족이 한국나들이를 하게 됨에 따라 막연했던 남조선은 점차 ‘한국’으로 변하면서 조선족에게 한발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다.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 처음 접촉할 초창기엔 이념과 사상의 갈등이 큰 작용을 하지 않았고 서로 간에 동족의 입장에서 기대치가 컸었다. 그런데 희망이 크면 실망이 큰 법, 한국인은 조선족을 재미 혹은 재일 교포가 갖고 있는 고국관으로 조선족을 바랐으나 그것이 영 빗나갔다. 이를테면 중국과 한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조선족이 중국을 응원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실망감이 컸다.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한국인은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만 알뿐 이 세상엔 난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는 또 다른 하나의 진리를 알 수가 없어 더욱 서운해 하였다. 조선족이 한국 나들이가 엄청 늘어나고 세월이 흐르고 한국에 정착하는 수가 대폭 증가되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뀔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바람이 20년이 넘었고 한국에 장기체류하는 조선족이 50만 명(국적 취득자 포함)이 되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조선족의 시각이 큰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한국 측의 이유를 살펴보자. 이른바 한국인이 조선족을 상대로 벌인 초청사기는 전반 조선족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조선족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영 삐뚤어지게 만들었다. 숱한 돈을 팔고 어렵사리 한국 땅을 밟았으나 불법체류라는 딱지를 쓰고 인권적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길가에서 경찰이 눈에 띠여도 일제시대 조선인이 일본순사를 만나듯 가슴이 두근거리는 삶을 보내게 되어 한국이란 나라를 믿지 못할 나라로 각인되었다. 김해성 목사의 지적에 따르면 “고국에 찾아온 동포를 불법체류라는 이유로 강제로 추방시키는 나라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한국뿐이다.” 그리고 10년 동안 동포를 불법체류로 방치한 나라는 아마 한국뿐일 것이다. 재외동포비자를 부여하지 못해 임시방편으로 채택한 방문취업비자(H-2)가 실시되어 자유왕래가 이뤄졌으나 노동부는 조선족을 백 프로 외국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2008년 1월부터 재외동포비자(F-4)가 실시되어 조선족유학생출신이 한국에 체류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엔 석·박사를 졸업해도 전부 중국에 돌아가야 했으니 아마 동포인재를 체류문제로 본국에 돌려보낸 나라도 한국뿐일 것이다. 요 몇 년래 체류가 조금 안정되어 한국에서 가게도 운영하고, 전세도 근사한 집을 구하고, 한국체류가 오래되어 중국에 가족이 없거나 삶의 터전이 없는 자, 한국에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사는 등 뿌리내리고 정착해보려던 동포들이 10여 년 전 위명여권이 문제가 되어 강제퇴거 조치를 받고 있으니 한국이란 나라에 도저히 정을 붙이려고 마음먹었다가도 스나미에 밀려가듯 사라지고 만다. 한편 한국만 탓하지 말고 조선족자체가 스스로 반성해 볼 문제도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한국체류가 10년이 되고 20년이 넘어도 조선족이 진정 한국을 고국, 한국인을 동족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중국인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다 보니 친근감보다 오히려 한국을 폄하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문화와 한국인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이 쩍하면 중국과 비교하면서 한국을 하찮은 시각으로 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돈도 벌고 삶의 질을 추구하며 잘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에 대한 흉을 지나치게 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한국을 이러쿵저러쿵 흉보지만 정작 본국에 돌아가라면 갈 생각이 없으면서도 불구하고 스스로 다가서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재한조선족의 올바른 한국정착은 갈 길이 멀고도 멀다.      
50    살인사건에 대한 한국의 두 얼굴 댓글:  조회:6515  추천:3  2012-08-02
살인사건에 대한 한국의 두 얼굴     지난 7월 18일 12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추모집회가 대한문 앞(덕수궁)에서 열렸다.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열린 추모집회의 슬로건은 “이주여성들이 죽지 않을 권리”였다. 참으로 몸이 오싹해나는 비장하고 처절한 슬로건이다. 한국에 시집오는 외국여성들은 한국이 본국에 비해 여러모로 발전하여 좋다는 동경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낼 부푼 꿈을 안고 입국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상당수가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는커녕 지옥과도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소수이긴 하지만 한국인남편들의 경제수입이 없다든가, 알코올중독자이든가, 정신이 이상하거나 등등의 이유로 비인간적인 삶을 보내고 있다. 남존여비관념이 뼛속까지 스며든 전통유교국가에서 살아온 외국인여성과 결혼한 일부 한국인 남편들이 자신의 주제가 말이 아니면서도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로 아내를 무시하고 폭력을 밥 먹듯 한다. 폭력이 심하면 살인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올 한해만 보아도 3월 7일 베트남 여성이 강원도 정선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남편에게 살해당했고, 6월 30일 강원도 철원에서 조선족 결혼이민자(김영분, 81년생)가 남편에게 맞아 4일 동안이나 뇌사상태로 있다가 7월4일에 사망했고, 7월 2일 또 다른 조선족 여성(강동구 리선옥씨 53년생)이 남편이 휘두른 칼에 찔려 죽었다. 이날 추모집회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리스트” 10명의 사연을 공개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결혼이민자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추모집회에서 있었던 연설문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우리 이주여성들의 두려움과 다르게 한국 사회는 너무나 조용합니다. 이주여성이 남편에 의한 폭력으로 죽어갈 때마다 남편의 도움 없이 이주여성 스스로 체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국제결혼 하는 남성들의 신원을 확실히 하여 위험할 수 있는 남성의 결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재한조선족이 한국인을 살해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체 대한민국이 시끌벅적하게 떠든다. 물론 한국 언론이 선두에 서서 마치 조선족을 하나의 무시무시한 범죄 집단으로 몰아가고 네트진들이 추방하라는 목소리를 높이며 그야말로 난리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마저 오원춘의 살인사건을 정쟁에 써먹는다. 재한조선족사회에서 언론이나 단체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신분이면 조선족이 한국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화통이 불이 나고 인터뷰에 응하느라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이와 정반대로 한국인이 조선족을 살해하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아주 조용하다. 조용할 뿐 아니라 인터뷰하겠다고 찾아오는 기자가 없고 아예 전화 한 통도 걸려오지 않는다. 인간이 사는 동네는 범죄가 있기 마련이고 살인사건도 발생할 수 있다. 같은 살인사건이지만 한국인이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즉 조선족이 살인하면 조선족집단이 범죄의 소굴로 둔갑되고 한국인이 조선족을 살해하면 떠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조선족한테 살해되면 큰 난리가 나고 야단법석을 떨고 조선족이 한국인한테 살해되는 것은 그저 그렇거니 넘어가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약자인 외국인이주여성들의 법적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이른 것 같다. 한국 언론들이 조선족이 한국인을 살해한 사건에 대한 관심의 절반만이라도 기울인다면 법적보호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49    아름다운 도전, 꿈은 이뤄진다 댓글:  조회:5309  추천:2  2012-07-31
아름다운 도전, 꿈은 이뤄진다   “합격이란 소식을 듣고 너무 흥분되어 아이처럼 펑펑 울었어요.” “꿈인지, 생신지. 어리벙벙해 아무 생각도 안 나네요.” “나 같은 사람은 무조건 불합격일 것이라 생각하고 귀국 비행기티켓까지 샀는데 의외로 합격되어 요즘 드라마틱한 삶을 보내고 있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한국생활에서 아무것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아요.” “이젠 자녀들한테 큰소리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합니다.” 중국동포타운신문 평생교육원에서 정보처리 교육받고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한 동포들의 폐부지언(肺腑之言)이다. 지난 4월 10일 한국 내 공인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한 동포들에게 재외동포비자(F-4)를 부여한다는 법무부의 정책이 발표된 지 단 3개월이란 짧은 시간이 경과된 지금 아름다운 결실을 보고 있다. 한국의 각종 기능사자격증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동포들이 취득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외래어가 많은 종목이라 동포들한테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동포들은 단 3개월 만에 기능사자격증을 받아 안았다. 대졸은 고사하고 고중(고등학교)학력도 미달인 자가 다수. 초중(중학교)학력, 게다가 수십 년 책을 놓았던 동포들이 한국에서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방야담(天方夜談:아라비안나이트)과 같은 드라마였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한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 연변 훈춘에서 온 안병일씨는 1955년생이다. 문화혁명 때 초중 학력이고 직장의 추천에 의해 기술전문학교를 다닌 것이 그의 전부 학력이다. 58세 나이에 컴퓨터를 다루는 정보처리기능사에 도전한다는 것은 정말 무리였다. 그러나 그는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비결이 무엇이냐고 기자가 물었더니, “저와 같이 공부에 전혀 노하우가 없는 사람이 무슨 비결이 있겠습니까. 그저 밤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지요.” 소감을 묻자, 그는 “일본에서 박사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애한테 부끄럽지 않는 아빠가 되어 가슴이 뿌듯하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수준을 테스트(검증)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 교육에 참여한 동포들이 전부 체류만기일을 눈앞에 두고 비자변경 목적으로 공부에 뛰어들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착각이다. 흑룡강성 오상시가 고향인 심계화씨(47세)는 H-2 3년 만기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부에 누구보다 열정히 굉장했다. 그녀에겐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으나 경제난으로 고중을 중퇴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공부하려던 꿈이 무산되어 가슴에 한을 묻고 살아왔다. 법무부 정책에 의해 스스로 자신을 테스트 해 볼 기회가 왔다. 그녀는 주저 없이 도전했다. 끈질긴 노력에 의해 합격했다. 합격소감발표 시 그녀는 너무 흥분되어 눈물이 나고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감이 생긴 것이 무엇보다 보람이 크다. 기자가 만나본 30대 합격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어려운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한국생활에서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을 것 같아요. 자신감이 생긴 것이 무엇보다 보람이 있네요.” 당당하게 속심을 털어놓았다. H-2소지자 부모초청으로 한국에 온 25세 이하 동포젊은이들이 단 45일 만에 정보기기처리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한 자가 수 명 된다. 그들은 한국에서 노무에 종사한 부모들이 넉넉히 송금해준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세월을 보내왔다. 중국에서 대학에 못 가 부모에게 미안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부모에게 뭔가 보답할 수 있어 홀가분한 심정이라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나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무엇보다 가치가 크다고 말한다.   재한중국동포사회가치 상승 한국에 온 동포들은 지금까지 자녀들한테 학비 대고, 생활비 대고, 시집 장가보내고, 집 사 주고 하는 돈 버는 기계에 불과했다. 공부는 지적인 활동이다. 한국에서 공인 기능사자격증 공부는 동포사회의 가치가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지적 활동이다.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한 동포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자녀에게 큰소리 칠 수 있는 당당한 부모로 살아갈 수 있게 되어 감개무량하다고 눈시울을 적신다.
48    기술교육생들의 빛과 그늘 댓글:  조회:5270  추천:2  2012-05-31
기술교육생의 빛과 그늘   법무부가 동포신규입국제도를 실시함에 따라 2011년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 한 달 사이 24만 명의 조선족이 신청했고 1차 추첨에 의해 방문취업(H-2) 3만 명, 기술교육생 1만2천 명이 한국에 오게 되었다. 기술교육추첨에 있어서 나이를 만48세로 제한하여 평균연령이 젊어졌고 실제로 20대 중후반부터 30대 초중반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한국에 많이 입국함에 따라 재한조선족사회가 한층 젊어지고 있다. 모택동은 젊은이를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에 비유했다. 젊은이들은 앞으로 재한조선족사회를 이끌어 갈 주력이다. 젊은 기술교육생들을 보면 희망이 보인다. 긍정적인 면이 많다는 뜻이다. 동시에 어두운 면도 있다. 그것을 빛과 그늘로 표현하고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기술교육생으로 한국에 온 젊은이들은 외모가 세련되었다. 한국드라마가 중국조선족 안방에 진입된 지가 20년이 흘렀다. 현재 20대중후반부터 30대초중반 조선족젊은이들은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성장해왔고 알게 모르게 한국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그들 중 일부는 어릴 때 HOT를 비롯한 한류스타들의 사진을 집에 모셔놓는 등 한류에 대해 굉장한 동경을 안고 성장해왔다. 따라서 지금 조선족젊은이들은 패션이 세련되고 언어도 기성세대들과 달리 방언이 적고 한국어표준어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한국에 오자마자 다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어 더욱 세련되어 보인다. 부모형제자매 및 삼촌고모이모들의 후광을 업고 있어 경제난에 쪼들리지 않아 외모가 더욱 세련되어 보이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 버스, 길거리 등 공공장소에 나타난 조선족은 한눈에 알아볼 만큼 촌스런 ‘티’가 물씬 났다. 이에 비해 현재 조선족젊은이들은 공공장소에 나타나도 한국인인지, 조선족인지? 티가 나지 않는다. 세상이 그만큼 재빨리 변화되고 있고 젊은이들은 그만큼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다. 외모와 언어 면에서 한국에 빨리 적응해가고 있고 세련된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에 속이 여물지 못한 어두운 폐단도 있다. 기술교육생 중 2/3의 수는 열심히 수업을 들으면서 배우려는 자세가 좋다. 이에 비해 1/3의 수는 수업에 굉장히 게으르다. 아예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 소질도 큰 문제이다.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끄지 않고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스마트폰을 갖고 노는 등 영 말이 아니다. 강의 도중에 들락거리거나 지문을 먼저 찍으려고 수업이 끝나지 않는 상황에서 맘대로 뛰쳐나가는 등 소질이 형편없다. 소수이긴 하지만 점심이면 술을 잔뜩 마시고 교실에서 헛소리 하는 자도 드문드문 있다. 6주라는 아까운 시간을 중이 종 치듯 아무 의미가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안타깝다. 수업에 있어서 사회통합프로그램이 한국생활에 도움이 크다. 하지만 1/3의 수는 전혀 관심이 없다. 아무리 강의가 재미있어도 강의자체를 체질적으로 거부하는 학원생들이 과연 한국생활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개개인의 자아소개 프로그램을 실시하면 1/4의 수가 밖으로 뛰쳐나가기 바쁘다. 사람이 사람 앞에 선다는 것은 큰 단련의 기회가 된다. 그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면 회피한다. 이런 소질을 갖고 앞으로 취직하여 일정시간 경과 후 하다못해 팀장, 반장, 등 어떻게 ‘장’노릇 하겠는가? 한평생 ‘머슴’으로 살 수밖에 없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약 1/4의 수가 조선족가문전통으로 이어온 ‘본’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본’도 모르고 있는 젊은이들한테 과연 정체성을 운운할 수 있을 것인가? ‘본’도 모르고 있는 젊은이들은 과연 조선족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젊은이들의 탓만 아니고 조선족부모들의 자녀교육이 따라 가지 못한 것이 큰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족부모들이 자녀를 한국에 보내는 것이, 혹은 한국에 있으면서 자녀를 데려오는 것이 돈 벌 목적도 좋지만 고국에 보내면서 혹은 데려오면서 최저한도로 ‘본’을 가르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얼굴이 고와야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는 노래 가사가 있듯이 외모가 세련되면 사람이냐? 속이 여물어야 사람이지. 한국에 입국하는 조선족젊은이들은 ‘表’를 가꾸는 동시에 ‘里’도 채우기를 바란다. 그래야 앞으로 재한조선족사회를 짊어지고 갈 수 있지 않겠는가!
47    조선족출신 국회의원 왜 없나? 댓글:  조회:8961  추천:2  2012-05-16
조선족출신 국회의원이 왜 없나?   지난 4월 11일 치러진 제19대 총선에서 필리핀출신 이자스민씨가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따라서 이자스민씨의 이번 당선은 외국인출신으로서 최초로 대한민국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의미로 언론들에서 대서특필하여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130만 명이며 다문화사회에 진입하였기에 외국인출신국회의원이 등장하는 것이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외국인인구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는 조선족출신국회의원이 나오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조선족과 친분이 있는 한국 분들이 역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당신네 조선족출신 중 마땅히 국회의원이 나와야 하는 데 안 되고 있는 이유가 재한조선족이 단합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부 식견이 부족한 조선족도 한국인의 이와 같은 지적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다. 재한조선족이 흩어진 모래알과 같이 단합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사실이니 이의가 없다. 그러나 조선족출신국회의원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재한조선족이 단합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 근본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단합을 들먹이자면 필리핀사람들이 한국에서 단합되고 있는 것을 한국 분들이 눈으로 목격하였는가? 그러므로 필리핀출신 외국인이 국회의원이 되고 조선족출신이 국회의원이 되지 못한 것은 단합의 문제가 아니고 인물론과도 다른 정치목적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즉 다문화사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다문화사회를 굉장히 중시한다. 조선족은 다문화에 포함되는 같기도 하고 포함되지 않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존재이다. 물론 학계에선 조선족을 역사적인 문화맥락으로 볼 때 조선족을 다문화에 포함시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어찌되었든 2011년 한국정부가 다문화에 쏟아 부은 예산은 무려 2,800억 원인 데 비해 조선족에 할당한 예산은 고작 1,200만원이다. 이 수치를 보면 한국정부가 조선족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가 있다. 2,800억 원이란 거액을 쏟아 붙는 다문화에서 국회의원이 하나쯤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마침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외국인출신 국회의원을 비례대표로 선출하지 않았는가! 고작 1,200만원의 예산을 주고 있는 조선족한테 비례대표를 고민할 필요성이 뭐가 있겠는가! 인물론을 말하자면 필리핀출신 이자스민씨가 괜찮다는 데 수긍이 가지만 조선족 중에 발굴하면 이자스민씨에 비해 더 훌륭한 인물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조선족출신 국회의원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조선족사회가 단합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인물론과도 관련이 없다. 다문화 중시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46    동포살인사건, 어떻게 볼 것인가? 댓글:  조회:8838  추천:4  2012-04-25
최근 한 달 사이 수원, 영등포구, 금천구에서 연속 세 차례 동포살인사건이 일어났다. 4월 21일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조선족이 편의점 여종업원을 칼로 여덟 번이나 찌른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한국은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게 한바탕 떠들고 재한조선족사회는 가슴을 조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범죄동기가 무엇이든 범죄행위는 정당화 될 수가 없다. 허나 이번 연쇄 동포살인사건과 살인미수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와 동포사회가 어떤 반성이 필요하고 사건발생을 줄이는 대안은 무엇인지를 시리즈로 짚어 보려고 한다. 1. 한국 언론이 동포사회를 범죄집단으로 몰고 있다. 사람 사는 동네에 범죄행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 같은 선진국이나 발전도상국에 있는 중국이나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한국도 마찬가지. 하지만 각 나라마다 살인사건에 대해 방응이 다른 것이 현실이다. 특히 살인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 외국인의 경우 더욱 반응이 다르다. 미국 같은 나라는 전 세계 여러 나라 인종이 이민으로 모여 사는 국가로서 지성인들이 특정 범죄자를 인종이나 종족을 들먹이며 매도하지 않는다(최근을 놓고 하는 말). 중국도 역사적으로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범죄자가 속한 민족 집단을 매도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한국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탓에 이방인에 대한 배타심리가 지나치게 강하다. 심지어 같은 민족도 출신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방인 취급하며 배타적인 행위가 심각하다. 한국사회의 이러한 배타적행위가 심각한데는 언론이 붙는 불에 키질 했다고 생각한다. 5년 전의 일이다. 서울시 구로구 남구로역 부근에서 조선족 남자가 칼로 한국인을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다. 며칠 후 방송3사 중 모 방송국 기자가 필자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흔쾌히 대답했다. 그런데 한국기자와의 대면에서 필자 보고 “다수 조선족들이 습관적으로 칼을 차고 다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조심하라.”는 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대뜸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극소수 조선족이 칼을 차고 다니는지는 몰라도 다수 조선족이 습관적으로 칼을 차고 다니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7년경 국민일보를 비롯해 수많은 언론들이 ‘연변흑사파’에 대한 관련기사를 다루었다. 그 중 어떤 언론은 “연변흑사파가 가리봉동시장골목에서 백주에 도끼를 차고 다니며 보호비 명목으로 자영업 하는 가게 주인들의 돈을 뜯어 내 이 일대 상인들이 방탄복장을 입고 영업한다.”고 했다. 가리봉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필자이지만 이런 일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래서 한집, 한집 돌면서 확인해 보았다. 결과 상인들이 모두 필자처럼 금시초문이란다.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기사이다. 다수 한국 언론은 조선족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강냉이 뻥튀기 식으로 잔뜩 부풀려 보도한다.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지 않고 주관억측으로 지어낸 기사들은 결국 한국인이 조선족사회를 미워하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모 보수언론의 기사내용을 부분적으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제목의 글에서 “좌파 정권 들어선 뒤 외국인 우대 정책 고수…범죄에도 ‘관대’ 전국 수백 곳 ‘지원센터’가 불법체류자, 범죄자 실질적으로 도와”, “일부 언론은 붙잡힌 중국인을 ‘조선족’ ‘재중동포’라고 부르며 마치 중국인이 아닌 듯 표현했다. ‘좌파진영’ 법까지 제정하며 중국인 지원…범죄 급증에는 외면”, “좌파 진영은 ‘조선족 중국인’ 등을 위해 다양한 지원제도도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외국인 지원센터’다. 2000년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외국인 지원센터’는 이제 ‘이주노동자 지원센터’나 ‘다문화 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연간 수천억 원에 이르는 정부 예산을 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벌겠다며 자기 발로 온 외국인들에게 무슨 ‘지원’이 필요할지 의문이지만 좌파 진영은 ‘자칭 인권단체’나 ‘종교단체’를 내세워 수많은 ‘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좌파 진영의 ‘중국 짝사랑’이 수원 토막 살인사건의 토양 길러”. 2011년 한국정부가 다문화지원예산에 쏟아 부은 돈은 총 2,800억, 조선족에게 배정된 금액은 고작 1,200만원뿐이었다. 위 가사를 작성한 한국기자는 사실과계도 확인하지 않고 마치 조선족이 한국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는 줄로 착각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언론의 부풀린 보도와 삐뚤어진 보도들은 결국 한국인과 조선족사회 사이에 장벽만 높이 쌓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소수 언론들이 “한 개인의 범죄행위를 갖고 전체 조선족사회를 범죄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 “조선족은 우리 이웃”, “조선족은 대한민국이 안고 가야 할 존재” 등등의 명석한 보도들도 있었다. 이와 반면에 “조선족에 대한 출입국심사를 강화하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조선족을 추방해야 한다.”는 등등의 일부 네티즌들의 댓글을 빌어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 악감정을 조장하는데 언론이 한 몫을 하고 있어 씁쓸하다.  
45    재외동포(F-4) 자격부여확대, 동포들에겐 좋은 기회 댓글:  조회:5863  추천:0  2012-04-17
재외동포(F-4) 자격부여 확대   기술도 배우고 체류도 해결하고, 재한중국동포에겐 좋은 기회   법무부는 지난 4월 10일자로 안내문을 발표하였다. 이번 발표에 있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재외동포(F-4) 자격부여 확대이다. 중국동포에 대한 한국정부의 재외동포법은 여러모로 우회곡절을 겪어왔고 2008년 1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행 초기에는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국내에 있는 유학생 등 그 대상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실제 혜택을 받은 자는 극히 소수였다. 그 후 점차 공무원, 4년제 대학본과졸업생 및 그 가족까지 재외동포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범위가 급격히 늘어나자 가짜가 급증하여 2011년 7월부터 공무원과 4년제 대학본과졸업생 가족에게 부여했던 재외동포 자격을 중단하였다. 한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방문취업(H-2) 소지자로서 지방제조업, 농축어업에 종사한 자는 부분적으로 2009년부터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받았다. 이래저래 현재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받은 중국동포의 수가 6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전체 재외동포 자격 10만 명에서 절반이 넘는 수치이다. 그러나 문제도 없지 않았다. 즉 재외동포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한 중국동포는 단순노무에 종사할 수 없다는 규정으로 발목을 묶어놓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또 국내에서 방문취업(H-2)소지자로서 지방제조업, 농축어업에 종사하는 조건으로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받은 자들은 취업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는 폐단도 있었다. 새로운 정책이 출현하여 정착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폐단들이 있을 수 있다. 어찌되었든 법무부는 재한중국동포에게 재외동포 자격 부여확대에 힘쓰고 있으며 이는 중국동포에 대한 배려라 보아야 한다. 법무부의 이번 발표에 의하면 국내 이공계 전문학사 학위 소지자(2년제 전문대학 포함), 국내외 4년제 대학 이상 졸업자 및 국내 공인 국가기술자격증(기능사 이상) 소지자에게 재외동포 자격을 부여하기로 하였다. 이 정책의 실시로 하여 기존에 방문취업(H-2) 소지자가 5년 만기가 되어도 기술자격증을 취득하면 귀국하지 않아도 된다. 이 기회가 동포들의 배움의 열기도 일으키고 체류문제도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매번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정부가 규정한 범위를 벗어나 동포들을 사기 치는 일부 부도덕한 업체들이 설치고 있었다. 이를테면 10년 이상 불체자 구제 실시 때 5년 이상 불체자도 돈만 내면 해결해준다는 것, H-2 만기자가 돈만 내면 귀국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 지난 1월 1일부터 지문의식에 의해 검거된 위명여권사용자도 천만원 내면 풀어준다는 등 벼라 별 사기행각이 다 살판치고 있었다. 이번 정책이 발표되자마자 역시 돈만 내면 공부도 하지 않고 시험도 거치지 않고 기능사자격증을 발급해준다면서 동포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시작하고 있다. 동포들은 이러한 사도에 현혹되지 말고 공신력이 있는 기관을 찾아 문의하고 올바른 선택으로 정도를 걷기 바란다.  
44    배움의 길은 동포사회의 희망 댓글:  조회:5618  추천:11  2012-04-02
배움의 길은 동포사회의 희망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득을 쫓는다. 군자는 이익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나 소인은 이익을 보면 의리를 잊는다. 군자는 인격과 수양에 힘쓰고, 소인은 편하게 살 수 있는 방책만 찾는다. 군자는 정도에 어긋나지 않을까 조심을 하고, 소인은 공짜와 은혜를 바란다. 이것은 공자님의 어록이다. 그런데 군자와 소인은 신분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소인이라 할지라도 배우면 군자가 될 수 있다. 공자님은 또 ‘배운 자는 남을 다스리고 배우지 못한 자는 남의 다스림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조 518년을 통해 유교를 뼈가 절도록 받아들였고 선비를 지고무상한 존재로 간주해왔다. 신분제사회가 타파됨에 따라 우리민족은 부모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을 공부시켰다. 농경문화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키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이는 우리민족의 배움의 열기를 말해주는 좋은 유행어이다. 우리조선족은 부모님들의 이런 훌륭한 전통에 의해 중국 56개 민족 가운데서 유일하게 문맹이 없었고 대학진학률도 가장 높아 문화수준이 제일인 민족이란 칭찬을 받고 살아왔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의 문화제일 자랑은 묵은 터에서 이밥 먹던 얘기로 되어버렸다. 특히 한국에 온 조선족은 평균 문화수준이 낮아 절대다수가 어렵고, 힘들고, 더러운, 이른바 3D업종과 음식점, 간병인, 가사보조로 근무하고 있다. 물론 한국정부의 동포체류합법화가 불과 5년이란 시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일부동포들이 갖고 있는 장점을 발휘하지 못했던 원인도 있겠으나 어찌되었든 재한조선족사회는 중이 종 치듯 하루하루를 허송하면서 배움의 길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재한조선족사회가 이대로 흘러가면 희망이 없다. 이젠 소인에서 군자로 되기에 노력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소인이 군자가 되는 길은 배움밖에 없다. 오로지 배움을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 가령 한국에서 뿌리 내리고 살지 않고 고향에 돌아간다 해도 배워야 면장도 해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은 컴퓨터를 이용하면 각종 인터넷 강의가 수없이 많다. 마음만 먹으면 배우고자 하는 것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또 여러 가지 기술업종 자격증 취득을 돕는 학원도 많다. 배움의 환경이 잘 마련되어 있다. 배우고자 하면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중국용정이 고향은 이정숙 씨(56세)는 가사보조 일을 하면서 운전면허증 2종(승용차와 화물차), 사회복지사자격증, 한자자격증, 한자한문지도사자격증 등 많은 자격증을 취득하여 현재 한국 학생을 대상으로 한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정숙 씨는 50대 중반 나이에 열심히 공부하여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어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현재 한국에 오는 동포들의 평균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체류하고 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부모한테 얹혀살면서 노력할 궁리를 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고 일부는 한창 배울 나이에 단순노무에만 종사하면서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연길이 고향인 장모(33세)는 10년 전 한국에 와서 원예기술(꽃재배)을 배워갖고 고향에 돌아가 꽃가게를 오픈하였는데 장사가 번창하여 젊은 나이에 ‘화왕’으로 불리고 있다. 동포들은 싸구려 단순노무에서 탈피하려면 배워야 한다. 배움의 길이야말로 동포들의 희망이다.  
43    주머니가 두툼해야 소리도 높아진다 댓글:  조회:6416  추천:15  2012-03-20
중국어 사자성어에 ‘재대기조(財大氣粗)’란 말이 있다. 며칠 전 중국이 ‘국제경찰’ 노릇하는 초강대국 미국에 중문으로 된 공문서를 보냈는데 미국이 영문으로 보내달라고 하니 중국이 “그럼 당신네들 앞으로 중국에 보내오는 공문서를 영문이 아닌 중문으로 보내오라.”는 대답으로 맞받아 쳤다고 한다. 중국이 미국과 밀고 당길 수 있는 힘이 바로 ‘재대기조(財大氣粗)’의 배짱이라 생각한다. 금전이 만능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경제시대에 한 국가, 한 민족, 한 집단공동체의 힘은 경제력에서 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년 전 길림신문이 코리안드림을 주제로 작품공모활동을 벌여 80여 편의 글을 연재했고, 한국에서 이란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코리안드림에 의한 부작용, 이를테면 집거지 해체, 정체성방황, 자녀교육문제, 가정파탄 등 조선족의 아픈 상처 투성이었다. 2011년 길림신문이 한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 중에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30인을 골라 그들의 사적을 담은 책 을 출간하였다. 이는 재한조선족사회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5년 전 한국정부가 조선족의 합법체류를 공식적으로 허락함에 따라 요 몇 년래 정신적, 물질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따라서 현재 재한조선족사회는 단체와 협회 및 동아리모임 형식으로 형성된 조직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나타나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동포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11년 들어 동포들이 한국선거에도 큰 관심을 보여 한국사회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재한조선족사회는 비록 여러 단체나 협회 및 동아리모임들이 우후죽순마냥 생겨나고 나름대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 화려하게 보이나 전반실상을 살펴보면 목자가 없는 양떼, 흩어진 모래알과도 같다. 그래서 뭉치는 것은 좋은 일이고 또 반드시 뭉쳐야 힘이 생긴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십만 팔천 리나 떨어져 있다. 재한조선족사회는 양적으로는 귀화자를 포함해 53만 명이란 거대한 집단이지만 질적으로 따지면 여느 해외 동포사회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재미나 재일 조선족사회에 못 미치거니와 청도조선족사회에마저 비교가 되지 못한다. 관건 문제는 역시 경제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운동을 펼쳐 맘에 드는 한국인 지역국회의원을 밀어주거나, 조선족출신 정당비례대표가 나오거나, 지역국회의원이 나온다 해도 재한조선족사회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믿는 것은 큰 착각이다. 정부로부터 일정한 예산을 따오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것으로 재한조선족사회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지난 3월 6일 길림신문 한국지사가 주최하고 연변냉면의 후원으로 가 열렸다. 참석자들이 서로 성공과 실패의 교훈담을 나누고 앞으로 공동 발전하는 길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참으로 재한조선족사회발전에 힘이 되는 유익한 모임이다. 앞으로 참석자들의 대상범위를 확대하고 교류가 활발히 이뤄진다면 재한조선족사회에 훌륭한 기업가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고 결국 재한조선족벌전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때 가면 재한조선족사회를 이끌어 갈 유망한 리더가 나타날 것이다. 현재 재한조선족사회 근본문제는 ‘재소기세(財小氣細)’이지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재대기조(財大氣粗)’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강력한 카리스마에 재력을 겸비한 리더가 나타나면 재한조선족사회는 파워가 스스로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42    재한조선족의 불미스런 택시문화 댓글:  조회:9166  추천:39  2012-02-16
  “중국사람(한국인은 조선족을 중국 사람이라 부른다)태우기가 겁나요.” 서울 대림동에 살고 있는 한국택시기사의 말이다. 실제로 가리봉을 낀 남구로역 부근과 조선족이 가장 밀집된 대림역일대에서 한국택시기사들은 조선족을 태우기 싫어하는 사례가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리봉 혹은 대림 일대에 살고 있는 눈뜬 조선족이라면 한국택시기사들이 조선족들의 불미스런 행위 때문에 겪고 있는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한국택시기사들은 손님이 차에 오르면 “어디로 모실까요?”라고 묻고 손님이 목적지를 말하면 “어떻게 갈까요?”라고 예의적으로 묻는다. 가는 길이 여러 갈래이니 손님이 알고 있는 길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이럴 경우 일부 조선족은 “알아서 갈 것이지 왜 그런 걸 묻는가?”고 버럭 화를 낸다. 아무 일도 아닌 걸 갖고 걸고 드는 식으로 기사를 대하니 기사는 기분이 나빠지기 일쑤이다. 가령 출퇴근시간 때에 막히는 길을 피해 다른 길로 가면 사기라고 난동을 부리는 경우가 많다. 또 가령 택시요금이 전번에 탔을 때에 비해 몇 백원 혹은 천원쯤 더 나와도 사기라고 지랄지랄 하며 싸운다. 한국택시는 금연이 많다. 일부  조선족은 택시에 앉으면 금연을 무시하고 담배를 태우는 경우가 많은데 기사가 한 소리 하면 제쪽에서 화를 내며 싸운다. 몇 시간을 타는 것도 아니고 길어야 이삼십 분 되는 사이도 참지 못해 금연을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하니 정말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다투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한국택시기사들이 하소연한다. 술 만취해 차 안에 오바이트 해놓고도 세차비를 내라면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 쪽에서 큰소리로 을러멘다. 남구로역과 대림역 일대를 지나는 경험 있는 택시기사들은 안으로 문을 잠근다. 술 취한 조선족이 달리는 차마저 문을 열어 제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기다리던 손님이 택시가 도착하면 먼저 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조선족은 자기 앞서 택시를 잡아탄다고 입에 담지 못할 상욕을 한다. 또 먼저 기다리던 손님이 차에 오르면 밀쳐내고, 타는 무지막지한 술 취한 조선족도 가끔 있다. 택시기사가 무서워 태우지 않으려고 하면 차에 발길질 해대고 기사에게 한바탕 상욕을 퍼붓는다. 이런 저런 마찰로 기사가 경찰에 신고하면 한국경찰을 우습게 여기는 조선족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강에 가면 강에 맞는 노래를 불러야 하고 산에 가면 산에 맞는 노래를 부르라는 속담이 있다. 뜻인즉 인간이 다른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반드시 당지 풍토(사회질서를 포함한 모든 문화)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은 조선족에게 있어서 할아버지 고향이지만 반세기 넘게 다른 이념과 사상을 포함한 중국이란 타문화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낯설고 이질적인 것이 굉장히 많다. 그러므로 조선족은 한국 땅에서 정착하려면 반드시 중국에서 지니고 온 낮은 차원의 문화를 버리고 선진적인 한국문화에 적응하기에 노력해야 하며 특히 한국 사회질서를 잘 지키기에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한국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가 있다. 그렇지 않고 몸에 배인 낙후한 문화를 고집하면서 불미스런 일을 저지르면서 살아간다면 한국인과의 융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인으로부터 미움을 사 두 집단 간의 벽만 점점 더 높아가고 있다. 그중 일부는 택시기사와 분쟁이 생겨 협박죄, 파손죄 혹은 폭행사건으로 입건되어 형사처벌 받는 사례도 있다. 결과를 따지자면 손해 보는 쪽은 조선족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41    불안해 출국 못하겠다 댓글:  조회:7031  추천:1  2012-02-01
비행기표 샀다가 환불, 대량 불법체류 양상 우려   희망찬 '흑룡의 해'를 맞아 가슴이 벅차있던 재한중국동포사회는 새해벽두부터 불안에 휩싸여 크게 술렁이고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 지문제를 실시함에 따라 과거 위명으로 한국에 입국하여 체류 한 경력이 있는 동포는 재입국 시 공항에서 입국불허 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6일 하루만해도 입국불허가 된 동포 15명에 달하였고 매일 수명에서 10여 명이 한국공항에서 중국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연변에서 온 김모 씨는 현재 합법으로 4년 넘게 체류하고 있다. 오는 구정에 집에 볼 일이 있어 잠깐 다녀오려고 비행기표를 샀다가 8년 전 위명으로 한국에 입국한 경력이 맘에 걸려 도저히 불안해 귀국을 포기하고 환불을 요청했다. 김모 씨와 비슷한 경력이 있는 친구가 중국에 임시귀국하였다가 며칠 전 인천공항에서 입국불허가 되어 본국에 쫓겨 간 사실이 있어 출국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환불이유를 토로했다. 앞으로 김모 씨와 같은 동포경력자들이 출국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빤한 일이다. 임시귀국을 주저하는 동포는 그렇다 치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3년 만기 혹은 5년 만기 되는 H-2비자 소지자, 또 일부 F-4로 변경된 동포 중에 과거 위명여권사용경력이 있는 자는 재입국이 불허되는 것이 두려워 결국 불법체류할지언정 출국을 포기하는 사태가 대량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동포사회는 “한국정부가 합법으로 체류 자격을 부여하여 잘 지내고 있고 정부 정책에 따라 자유왕래를 보장받아 기뻤다.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은 만큼 정책에 의해 3년 만기 혹은 5년 만기가 되면 따르기로 결심했었는데 과거를 들추어 입국불허를 실시하니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크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2011년 7월부터 외국인등록증 발급 시 지문제가 실시된 이래 과거 위명여권사용 이유로 적발되어 체류연장이 불허 되어 출국명령을 받거나, 2012년 1월 1일부터 입국하는 외국인 지문도입에 의해 과거 위명여권사용동포가 임시귀국 혹은 만기자 재입국 시 적발되어 강제퇴거 될 동포 수가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많은 수가 출국을 꺼린다면 새로운 불법체류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2006년 법무부의 실시 시 경찰조사를 거치고 검찰청으로부터 불기소유예처분을 받고 실명으로 출국했다가 1년 뒤 재입국한 동포는 문제가 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출입국할 수 있다. 현재 민간단체 명망 높은 분들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법무부와 대화중에 있고 중국대사관이 나서 한국정부와 교섭하고 있다고 하니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40    한류의 優와 劣(김정룡) 댓글:  조회:6270  추천:112  2008-06-16
 제8부 부  록 한류의 優와 劣김정룡  한류라는 말을 얼핏 보면 문자 그대로 현재 중국을 비롯한 아세아지역에서 한창 거세게 불고 있는 한국바람의 현상을 지칭하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기실 그 유래를 따지고 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우선 한류라는 말은 한류의 주역인 한국인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수년 전에 중국인이 지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보자. 즉 왜 중국인은 1972년 중일국교정상화를 계기로 일본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가 서서히 중국에 밀려들기 시작했고, 특히 1978년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을 선포한 후 일본의 가전제품을 비롯해서 자동차, 영화, 소설, 잡지 등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는데도 그 당시 중국의 그 어느 지식인도 그러한 현상을 ‘일류(日流)’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중국에서 ‘일류’라는 말을 지어내지 않았던 이유는,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급속히 자본주의대국으로 부상하였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중국의 장개석, 노신, 곽말약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재들이 일본유학을 다녀왔고, 또 근세부터 일본인이 서양의 것을 번역한 철학, 과학, 화학, 물리, 지식인 등 술어들이 중국에 역수입되었으며, 그리고 뼈아픈 일이기는 하나 일본침략을 받는 것까지 경험한 중국인의 머릿속에는 ‘일본제품’이 중국에 밀려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19세기 말부터 일본의 모든 것에 대해 별로 신기하지 않을 정도로 면역력이 생겼기 때문에 ‘일류’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한국드라마, 가요, 전자제품, 자동차, 라면을 비롯한 식료품 및 대중국투자붐 등 일련의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바람이 마치 1970년대 말부터 약 20여 년 동안 중국대륙에서 불고 있던 일본바람과 똑 같은 현상이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에 대해선 ‘일류’라는 말을 쓰지 않은데 비해 한국에 대해 ‘한류’라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문제부터 풀지 않고 한류를 운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빈종이장만 놓고 군사를 논하는(紙上談兵) 것에 지나지 않는다. ‘류(流)’란 일종 시대적 흐름이거나 시대적 현상을 나타내는 말인데,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우리는 그 파급효과를 영향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 ‘류’가 내적으로 산생된 것이 아니고 외적으로 흘러들어온 것이라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자(일본)에게 ‘류’를 붙이지 않고 후자(한국)에게 ‘류’를 붙이는 것은, 전자의 영향은 필연인데 반해 후자의 영향은 우연이라고 인식하는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즉 일본이 그만큼의 실력을 갖춘 것은 필연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중국에 흘러들어온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는 당연한 일인데 비해 중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별로 볼꼴이 없는 것으로 인식해왔고 따라서 최근 몇 년 사이에 흘러드는 한국바람은 생각 밖의 우연이라 인식하는데서 ‘한류’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인지상정으로 말하자면 갑자기 흘러드는 한 흐름이거나 현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필연이라고 인식할 때는 충격을 적게 받거나 받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우연이라고 인식할 때는 충격이 크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류’라는 말은 중국인이 한국인에 대한 콤플렉스 및 그로 인하여 받은 충격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단 중국 측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역시 한국 측의 생각이기도 하다. 즉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측과 한국 측 모두가 한국의 것이 그토록 빨리 중국시장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러므로 받는 입장에 있는 중국이든 주는 입장에 있는 한국이든 한국바람에 대해 당황해하는 분위기에서 서로 다른 각도로 한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중국인은 한국의 문화전통에 대해 매우 낯설다. 그리하여 한류연구에 있어서 한국인의 고유한 민족적인 소질보다 한국이 어떻게 단시간 내에 빨리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는가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연구하다보니 온전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정작 한국인은 자기네 민족적인 문화전통과 민족소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필자가 보기엔 매우 부정적이다. 한국인은 기껏해야 한류에 대해 ‘현대기업경영 마인드와 노하우, 제품의 질과 브랜드, 몇몇 배우의 인기, 중국시장에 대한 성공적인 답사’ 등등의 요소를 갖고 연구하다보니 역시 온전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중앙대 총장이신 박범훈 교수는 “한류 속에 한국이 없다.”고 지적하고 본대학에 한류아카데미를 설치했다. 이는 실로 정곡을 찌른 지적이며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박범훈 교수처럼 실질적인 태도와 조치가 있는가 하면 또 한류연구에 있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을 하는 분들도 있다. 이를테면 00교수 분은 <<조선일보>> 기고문에서 “‘한류’는 일시적인 유행을 뜻하기에 한류를 살리려면 ‘한류’를 죽여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한류’라는 말이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뜻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결코 ‘한류’의 전부의 뜻이 아니다. 중국인이 ‘한류’라는 말을 지어낼 적에 한국 것이 중국에서 일시적으로 유행하다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지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류가 일시적일 수도 있고 얼마동안 지속될 수도 있고 또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국인이 아닌 한국인이 한류를 일부러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분이 한류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고 마는 것을 막자는 의도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말이다.  중국이 수천 년 동안 주변국에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수출해왔으나 종래로 ‘한류(漢流)’ 속에 중국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이 20세기를 통털어 주변국에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수출해왔으나 종래로 ‘일류(日流)’ 속에 일본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구열강들이 지구촌에 이르는 곳마다 식민지를 개척해왔으나 ‘구류(毆流)’ 속에 그들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일까? 중국은 유교와 도교라는 문화전통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신도(神道)적 신념이 강하기 때문에, 서구는 기독교의 이념이 강하기 때문에 모두 나름대로 민족적인 전통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왔기에 자기네들의 대외영향은 당연한 것이라고 굳게 믿어왔다. 이와 반면에 유감스럽게도 한국과 한국인은 반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민족이라고 하지만 종래로 역사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린 적이 없으며 또 자민족의 종교문화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한국인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연구가 매우 인색할 정도다. 그리하여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한류열풍에 대해 당황해할 뿐만 아니라 한류의 힘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명확히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곧 한류의 열세이자 비극이다. 필자는 한류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데는 필경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숨은 힘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아울러 그 힘이 한국인의 문화전통에서 생겨난 것으로서 세상의 그 어느 민족보다 못하지 않는 훌륭한 문화전통이라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류 속에는 필경 한국이 있다.” 이 명제를 증명하자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한류의 루트를 두 가지로 나눈다면, 그 하나는 한국 땅에서 벌어진 ‘사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의 대외수출이다. 전자의 경우 <2002년한일월드컵> 시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붉은악마의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고, 후자의 경우 현재 중국을 비롯한 아세아지역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이다. <2002년한일월드컵>에 앞서 있었던 <88서울올림픽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이 지구촌에 전해지자 수많은 나라들이 쇼크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수많은 나라들에서 코리아란 나라가 도대체 지구의 어느 구석에 박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크를 받은 나라들에서는 코리아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면밀하게 분석했다. 특히 구쏘련을 비롯한 동구공산권에서 가장 크게 쇼크를 받았는데, 왜냐하면 코리아는 자본주의 길을 잘못 선택한 탓으로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주제에 무슨 자격과 힘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큰 잔치인 올림픽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가는 의문 때문이었다. 백문불여일견이라고 자기네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결심하고 운동선수보다 각 분야의 전문가 고찰단 성원을 더 많이 파견했다. 실제 눈으로 확인한 결과 전에 소문으로 들었던 것은 전부 거짓이었고 자기네들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는 것을 보아냈다. 당시 그들은 귀국하여 사실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나라에 바쳤다. 결과는 한마디, 즉 “<88서울올림픽대회>는 구쏘련을 비롯한 동구공산권의 몰락을 불러오는 촉매제였다.” 다른 한 측면으로부터 볼 때 한국인은 <88서울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므로 인하여 세상에 이름 없던 코리아가 국제무대에 명함을 올리게 되었다. 코리아민족은 본래 훌륭한 문화전통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왕조정치의 탄압과 군사정권의 압제 하에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오다가 민주화바람이 정착하기 시작해서 드디어 21세기 벽두에 <2002년한일월드컵>을 통해 자신들의 장끼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었다. <88서울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2002년한일월드컵>을 순리롭게 치를 것이라는데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월드컵을 통해 코리아를 세상만방에 잘 알려지게끔 하는가는 것이 당시 한국인의 중심과제였다. 결과는 붉은 악마의 사건을 통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으며 한류열풍의 기폭제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렇다면 붉은악마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먼저 표면에 드러난 형식적인 것부터 살펴보자. 첫째 붉은색의 의미 월드컵 당시 운동장에 직접 가서 응원하는 붉은악마만 홍색유니폼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길거리응원에 나선 무려 700만에 달하는 축구팬들도 전부 일색으로 홍색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니까 붉은악마의 대오는 700만인 셈이다. 이는 인류역사 이래 최초의 사건이다.  붉은색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코리아민족은 복식선택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흰색 옷을 입기를 즐기기 때문에 백의동포라고 부른다. 그러나 전투에 임하여서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동양의 색문화전통에 있어서 붉은색은 생명의 색이며, 승화의 색이며, 상승의 색이며, 발전의 색이며, 전진의 색이며, 투쟁의 색이며, 의지의 색이며, 분투의 색이며, 승리의 색이다. 축구는 일종 평화적인 전투이다. 그러므로 전투의 승리를 바라기 위해 붉은색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악마는 모든 것을 두려워함이 없고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이므로 역시 전투의 승리를 바라기 위해 선택된 호칭이다. 둘째 응원구호의 의미 “대~한 민국! 짜자장 짱짱!”의 율동은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대’를 길게 뽑아 2박으로 하고 ‘한’과 결합시켜 본래 2박이던 ‘대한’을 ‘대~한’인 3박으로 만들고, ‘민국’을 2박으로 만든 것은 3박과 2박의 조화인데, 3박의 율동은 코리아전통에 있어서 천지인삼재사상에서 유래된 것이고, 2박의 율동은 음양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당시 서구지역에서 온 축구팬들이 “대~한 민국! 짜자장 짱짱!”하는 율동에 감동을 먹고 따라 외쳐보려고 애썼으나 도무지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한다. 왜일까? 서구지역의 음악전통은 4박이 위주이며 또 코리아민족음악처럼 굴절이 심한 율동이 없기 때문에 갑자기 따라 외치자니 입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인은 3박과 2박의 조화율동을 쉽게 따라 외칠 수는 있으나 왜 하필이면 중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코리아민족이 3박과 2박의 조화율동으로서 응원열기를 북돋았을까? 당시 동시개최국인 일본의 응원구호의 율동은 코리아에 비해 참으로 초라했는데, 이것이 곧 일본인과 코리아민족의 음악예술기교의 차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코리아인의 응원구호의 율동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것이었다. 셋째 붉은악마의 자발적인 참여 의미 이북에서는 쩍하면 10만 명이 동원된 집단체조행사를 펼친다. 그 예술기교를 놓고 보면 역시 세상에서 가장 멋진 표현이다. 하지만 이북의 집단체조행사는 타의(他意)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에 반해 붉은악마의 경우 수백만의 팬이 거리응원에 참여하였으나 정부의 간섭도 없었고, 그 어느 단체의 동원활동도 없이 순수하게 자발적인 참여였다. 이는 인류역사 이래 초유의 사건이었으며 당시 전파를 타고 그 열광적인 모습이 세상만방에 알려져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그 많은 인파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건의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정말로 인류역사 이래 최초의 기적이다. 이 사건을 통해 코리아민족은 얼마나 문명한 민족인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축구종가인 영국, 터밭이 없이는 살아도 축구장이 없이는 못산다는 브라질, 국내리그로 세상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에서도 여태까지 한국인과 같은 그렇듯 멋진 광경을 연출해내지 못했다. 필자는 붉은악마의 사건에 대해 한국의 일부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일시적인 유행이다.”, “할일이 없는 젊은이들의 소행이다.”, “군국주의의 부활조짐이다.”, “파쇼의 위험이다.”, “천시 지리 인화가 그러했기에 한국인은 천지개벽을 이루어냈다.”는 등등의 견해와 달리하고 싶다. 즉 붉은악마의 기적적인 사건은 코리아민족문화전통의 힘이 표출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연세대 유동식 교수는 저서 <<풍류도와 한국인의 종교사상>>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풍류도는 비록 종교는 아니지만 한국인의 사상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해왔으며 풍류도의 핵심의미내용이 곧 ‘멋’이다.” <<추한 한국인>>의 저자 가세히데아키(加漱英明)는 “‘멋’이란 어휘는 같은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필자는 한중일 삼국언어에 익숙한바, 확실히 ‘멋’이란 말은 중국어와 일본어로 정확히 번역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말 ‘판’이란 어휘도 역시 우리민족만 사용하는 특수용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우리민족은 ‘멋’을 추구하고 ‘판’을 벌리기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것을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붉은악마의 사건도 역시 코리아민족의 특유한 ‘멋’과 ‘판’의 문화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코리아민족은 일상생활에서 무엇이든 멋지게 하려하고 ‘판’에 대한 참여도가 그 어느 민족보다 높고 또 기왕에 판을 벌리는 바엔 한바탕 떠들썩하게 하는 것이 생활특징이다. 붉은악마는 확실히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관을, 가장 떠들썩한 판을 탄생시켰다.  확실히 붉은악마의 사건은 한류를 절정에로 끌어올리는 견인차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유감스러운 것은 한국학계에서 그렇듯 멋진 한류를 일으켜놓고도 그것을 한류라고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벼라별 당치도 않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것이 또 하나의 한류의 비극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중국의 청년남녀들이 한국에 관광갔었는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한일월드컵> 때에 감동을 먹고 일부러 배우러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가서 열심히 연마해서 2008년북경올림픽 때에 써먹을 타산”이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붉은악마의 사건이 중국대륙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에 얼마나 큰 견인차역할을 하고 있는가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음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한류열풍에 관해 논의해보자. 한국의 것이 외국에서 호평 받는 이유는, 한국음식은 맵고 얼큰해서 쨍하게 위까지 자극하는 ‘멋’이 있고,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제품은 브랜드가 ‘멋’이 있고, 한국가요와 드라마는 연예인들의 세련미와 한민족의 특유한 미, 즉 한민족의 특유한 ‘멋’이 있기 때문인데, 그 ‘멋’은 중국인과 일본인 및 기타 여러 민족에게서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는 ‘멋’이다. 한국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 있는 이유는, 중국이 문화혁명 때문에 전통적인 유교식 가족분위기가 깨지고 또 1970년대 후반부터 한 자녀만 낳게 하는 산아제한정책 때문에 한국인과 같은 가족적 분위가 사라졌으므로 한국드라마를 통해 잃어버린 전통가족분위기를 심리상에서나마 되찾아보려는 마음에서 매우 즐겨보고 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력과 미적 감각 및 스토리가 재미있는 등 요소들도 인기 있는 요소들이다. 한국역사극, 예하면 <대장금>이나 <명성황후>가 중국에서 인기 높은 이유는 중국역사극은 매우 딱딱한 분위기가 짙은데 반해, 한국역사극은 활발한 분위기가 있으며 인간미가 돋보이고 또 배우들의 패션도 아주 ‘멋’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 높은 이유는, 주로 일본여성들이 냉혈동물과도 같이 정이 메마른 남편들과의 생활에서 질식할 것만 같은 가족분위기로 살아온 심리상의 고통을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멋지게 반영한 한국드라마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인의 고유한 물처럼 따분한 생활분위기에 비해, 한국인의 활기 있는 멋진 생활에 도취되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과거시대와 달리 그 어느 특정민족이 지어낸 특정종교에 열광하는 시대가 아니다. 거꾸로 사람들은 삶의 질을 다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그 어느 민족보다 한국인이 외모를 가꾸는 멋진 세련미가 가장 돋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아울러 한국인의 역사적인 외왕(外王)과 내성(內聖)을 중시하는 ‘멋’의 전통이 중국인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한국인의 외왕 추구에 있어서 개별적으로 돈깨나 있다고 폼 잡고 중국인이 가난하다고 시기하거나, 체면의식 때문에 없는 게 있는 체, 못난 게 잘난 체, 모르는 게 아는 체하는 등 허세를 부리는 부정적인 면이 한류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으나, 이러한 현상은 개별적인 것으로서 한류에 있어서 극히 미세한 열세일 뿐 큰틀에서 말하자면 역시 중국인은 한국인의 세련된 멋진 삶을 본받으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류가 장기간 계속 지속되게 하려면 물질적인 상품에 동반하여 그 만큼의 정신적인 상품이 따라서 수출되어야 한다. 현재 중국에서 한류열풍이 아무리 거세다고 하지만 필경은 물질적인 것에 치중되어 있을 뿐 정신적인 것이 매우 취약하다. 혹자는 가요,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이 정신적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필자가 말하는 정신문화는 곧 한국인의 문화전통을 반영하는 서적이다. 중국은 서구와 일본의 정신문화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그에 대한 대안도 마련해왔다. 그러나 현재 한류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한국문화전통에 관한 연구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한류의 주역인 한국인이 자신들의 문화전통을 많이 연구하고 아울러 수출해야 한다. 중국이 일본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 후 서점가들에는 일본에 관한 서적이 한 개 코너를 거뜬히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에 비해 한중국교정상화가 된지 13년이 넘는 오늘날에도 중국서점가에는 한국에 관한 서적이 한 개 코너는커녕 달랑 몇 권정도 뿐이다. 중국 젊은 대학생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류, 한류하고 떠들지만 정작 한국문화전통을 알 수 있는 책이 보이지 않으니 한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는 천만번 지당한 말씀이다. 지난해 <<동아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중국대학생관광단이 한국에 갔는데, 간판, 푯말, 비문 등에 한자가 적혀 있는 것을 목격하고 “엉, 한국에서도 한자를 쓰고 있네!”라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중국인이 한국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거꾸로 일본에서 한자를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중국대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은 한국을 어느 정도로 알고 있을까? 2003년 일본고등학교 부분적인 민의측험(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고등학생 중 30%가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고 여기고 있고, 무려 50%가 한국은 대만처럼 중국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20%만 한국을 독립국가로 알고 있다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반세기 동안 한국인이 철석 같이 우방이라 믿어왔던 미국도 고등학생과 대학생 30%가 한국은 대만처럼 중국의 일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한류열풍이 어쩌고저쩌고해도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 및 한국인이 종주국처럼 50여 년이나 받들어왔던 미국이 한국에 대해 그 정도로 생소하게 느끼고 있다면 기타 나라들이야 더 말치 않아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중국이 낙후하고 어떻다할지라도 한국에서 학교 문을 나왔다는 사람치고 <<삼국지>>를 읽지 않은 자가 없고, 일본에서는 <<삼국지>>를 읽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상대도하지 말라는 유행어가 있다. 현재 일본에서 <<삼국지>>를 만화, 영화, 소설 등을 통해 해마다 2억 엔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한국도 매년 수억 원에 달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한국과 일본에서 <<서유기>>와 <<수호지>>가 <<삼국지>> 버금으로 읽히고 있다. 이 삼대소설 속에 중국의 전통문화가 다 담겨져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중국이 어쩌고저쩌고해도 절대 무시 못한다. 서구각대학교 도서관과 국립도서관에는 중국책이 수없이 많다. 일본책도 적지 않다고 한다. 허나 한국 책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고 한다. 지난해에 미국하버드대를 우습게 여기고 있는 영국옥스퍼드대에서 한국학과를 폐지하느니 마느니 하는 풍파가 있었다. 멀리 말고 일본 동경대학에조차 한국철학과가 없는 실정이다. 총적으로 말하면 한류열풍은 근근히 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으며 정신적인 것이 전무한 상태이며, 한류가 앞으로 계속 장기간 지속되게 하려면 한국문화전통과 전통문화를 많이 수출해야 한다. 한류는 낙관적이면서도 앞으로 걸어 갈 길은 멀고도 험악하다. <<문학과 예술(2006.1)>>                         
39    나는 왜 조선족문제에 관한 글을 쓰는가?(김정룡) 댓글:  조회:7278  추천:114  2008-06-16
 2. 나는 왜 조선족문제에 관한 글을 쓰는가?-칭찬과 반성에 대하여 김정룡  미국에서 두 학자를 유럽에 파견하여 미국이 유럽한테서 뭘 배워야 하나를 고찰케 했다. 그 중 A란 사람은 전체유럽을 고찰하고 나서 돌아와 유럽은 우리미국보다 많이 낙후되어 있어 배울 것이 전혀 없다고 회보했고, B란 사람은 우리미국은 유럽한테서 여러모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추한 미국인>>이라는 책을 지어냈다. 결과는 A란 사람은 밥통을 잃게 되었고 B란 사람을 승진시켰다고 한다. 이것이 곧 미국인의 열린 도량이며 오늘날 왜 미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는 좋은 이야기꺼리다. 1960년대 아르헨띠나 대사를 지냈던 일본인이 <<추한 일본인>>이란 책을 지어서 파직 당했다. 이유는 일본인은 체면을 중히 여기므로 스스로 자기얼굴에 먹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추한 미국인>>의 저자는 승진하고, <<추한일본인>>의 저자는 파직 당했다. 이것이 곧 열린 미국인의 도량과 막힌 일본인의 속 좁은 표현이 아니겠는가! 1986년 대만작가 백양이 <<추한 중국인>>을 대륙에서 출간하였는데 굉장히 호평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외국의 선진적인 것을 배우려 한 동시에 국민들이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는 도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인이 <<추한 미국인>>을 썼고, 일본인이 <<추한 일본인>>을 지었고, 중국인이 <<추한 중국인>>을 펴냈다. 이에 반해 한국인을 포함해 우리민족은 스스로 ‘추한 한국인’을 쓰지 않았다. 아예 쓸 생각마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한국인이 스스로 쓰지 않으니 1990년대 초 가세히데아키(加漱英明)란 일본인이 <<추한 한국인>>을 썼는데 일본 내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었고 한국 내에서는 굉장히 반발이 심했다. 같은 시기에 전여옥이 <<일본은 없다>>를 지어 <<추한 한국인>>에 맞불을 놓아 한국 내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우리민족은 수천 년 동안 남의 속국 혹은 식민지로 살아왔으나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는 데 대한 스스로의 반성이 없이 오로지 남만을 탓해 왔다. 가령 누가 민족문제에 대해 반성의 글을 좀 쓰면 공격의 표적이 되어 매장된다.  한국인과 같은 피를 물고 난 조선족도 체면의식이 강해 한때 56개 민족가운데서 뭐가 제일이었고 하면서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개혁개방 이래 낙후민족으로 전락한데 대한 반성이 적다. 가령 그 누가 반성의 글을 써내면 조선족을 팔아먹는 자로 몰아붙인다. 물론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 말이 있듯이 칭찬이 일시적인 진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허나 칭찬은 남한테서 받아야 하고 반성은 스스로 해야 한다.  인간은 본래부터 내 주제는 어떻든 간에 남이 나의 흉을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반발심이 생기는 법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최근 나의 글 <<답답한 재한조선족>>이 발표되자 어떤 조선족 관련 사이트에서 독자들이 전부 나를 한국인으로 착각하고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만약 한국인이 이런 글을 썼다 해도 우리는 마땅히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참고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글의 저자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분들 중에 “왜 같은 조선족으로서 조선족을 욕하는 글을 많이 쓰는가?” “더 한심한 한국인이 많은데 왜 한국인의 추한 것을 쓰지 않고 조선족만 욕하는가?”라고 나를 공격하는 분들도 있다. 물론 내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분들 중 나의 글을 찬성하는 비례가 훨씬 더 많다. 독자들의 관점이 찬이든 반이든 어떻든지 나의 글에  관심 있게 읽어준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 기회를 빌어서 나는 왜 조선족문제에 관한 글을 쓰는가는 입장을 밝히려 한다. 나는 2006년 3월부터 현재까지 신문과 잡지에 85편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58편이 조선족문제를 주제로 한 글이다. 이글들이 독자들에게 읽히면서 찬반양론이 많았다. 문제는 나의 글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고 현실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당신의 말이 맞지만 너무 꼬집는다.”고 말한다. 나는 ‘너무 꼬집었기 때문에 맞는 것이 아닐까?’고 생각한다. 내가 조선족문제를 꼬집는 이유는 이렇다. 조선족은 한때 확실히 중국에서 우수한 민족으로 인정받고 살아왔다. 허나 오늘날 조선족은 확실히 낙후민족으로 전락되었는데 나는 조선족의 일원으로서 이 점에 대해 몹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과거 우수한 민족이었다는 타이틀을 되찾을까? 이것이 나의 가장 큰 고민이며 고민 끝에 조선족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꼬집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다음 나도 조선족의 일원으로서 조선족이 안고 있는 공통된 열근성이 나의 몸에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나도 ‘답답한 것’들을 고쳐보려는 마음에서 글을 많이 쓴다. 지난주에 가리봉의 00노래방에 갔는데 한 아가씨가 나를 보더니 “어마나, 김선생님도 이런 장소에 다니세요?”라고 마치 희한한 일을 발견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작년 자진출국 때 나의 손을 거쳐 갔다가 무사히 재입국했다. 그녀 외에도 손님들은 나를 신문사에서 근엄하게 글을 쓰고 정직하게 일만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천만에 말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겨우 지난해부터이고 과거는 옛날사람들이 “남자는 지랄 외에는 다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면, 나는 마약을 대지 않은 외에 벼라 별 ‘지랄’을 다해보면서 살아왔다. 그날 저녁 나는 술을 많이 마셨다. 밤 12시경에 우리 일행 중에 나와 이견(異見)이 있어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리봉시장 안이라 나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면서 나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본다. 한 가게 주인(조선족)이 나를 보고 “김선생님도 답답한 조선족이구먼!”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정신이 벌떡 들었다. 아차, 그렇지! 내가 <<답답한 재한조선족>>이란 글을 썼지만 오히려 내가 참으로 답답한 사람이구나! 사돈이 남말을 하고 있었네.  내가 이런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재한조선족들이 차원이 낮고 나는 차원이 높아서 조선족문제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도 똑 같은 조선족의 일원으로서 나의 몸에도 조선족이 안고 있는 공통된 열근성을 갖고 있기에 공동으로 고쳐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다는 입장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나는 1990년도 여행업으로부터 현재까지 줄곧 한국인과 생활해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인의 추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를테면 한국인관광객들이 중국에 가서 아가씨를 잘못 건드려 대신해서 사과하러 다녔고, 효도관광으로 중국에 가신 할머니들이 호텔의 타올(수건)을 몰래 훔쳐 대신 사과하러 다니는 등 중국 땅에서의 한국인의 추태상을 쓰자면 정말 책 한 권은 족히 써낼 자신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데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 개별적인 한국인의 추태를 떠벌려봐야 우리에게 차려지는 실리가 무엇인가는 것이다. 멀리 말고 우리 센터입구에는 매일 한국인 노숙자들이 술을 마시고 오줌을 갈기고 하면서 거처하고 있다. 대낮에 내가 밖에 나가 바람을 쏘이면서 담배를 피우면 한국인 노숙자들이 네댓 명씩 담배를 빈다. 여지껏 가리봉에서 조선족노숙자를 보지 못했으며 낯모를 조선족이 나한테 담배를 빈 적이 없다. 자아, 그렇다면 개별적인 한국인의 추태상을 마치 전체 한국이 형편없는 것처럼 떠벌려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는 한국과 한국인이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조선족사회보다 많이 앞서 있다는 것을 과감하게 인정해야 하고 배울 것은 허심하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조선족문제에 대한 글만 쓴다고 해서 조선족은 우수한 면이 없는가? 천만에! 조선족도 우수한 면이 많다. 다만 칭찬은 남이 해주고 우리 스스로는 반성을 하는 것이 민족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꼬집는 글을 쓰는 것이다. 또한 백양이 <<추한 중국인>>을 쓴 것이 중국인이 미워서 그렇게 했을까? 아니다. 중국어에 “恨鐵不成鋼”이란 격언이 있듯이 나는 조선족도 ‘철’이 ‘강’으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선족문제를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씀에 있어서 아래와 같은 몇 가지를 고수하고 있다. 첫째 나는 정치나 거창한 글을 쓰지 않는다. 둘째 나는 뉴스에 보도되었거나 남들의 손을 거쳐 흘러가는 글을 쓰지 않는다. 셋째 나는 현실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 넷째 나는 내가 쓴 글에 대해선 누가 뭐라든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책임진다.  조선족문제는 민감한 문제다. 허나 건드릴 것은 건드리고, 꼬집을 것은 꼬집고, 파헤칠 것은 과감하게 파헤쳐야 한다. 상처가 아프다고 덮어두면 점점 더 곪아 간다. 곪아 터지기 전에 손을 보아 상처를 고쳐야 한다. 이것이 우리조선족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38    ‘생감자’의 엉뚱한 고민 (김정룡) 댓글:  조회:6589  추천:83  2008-06-16
제7부 수  필 1. ‘생감자’의 엉뚱한 고민  김정룡   지난해 나는 잡지나 신문 지상에 48편의 글을 발표했다. 서울의 중국동포타운신문사에 취직해 글도 쓰고 동포들의 자진출국도 도와주었으며 중국동포정책민간연구소에서 동포들의 고충도 들어주고 해결해 주었다. 꽤 바쁜 한해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의 별 볼꼴이 없는 이름이 재한조선족사회에 조금 알려짐에 따라 나름대로 고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상관없이 찾아오는 조선족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어떤 기대를 갖고 찾아왔으나 내가 들어주지 못해 본의 아닌 실망을 안겨주었거나, 혹은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데 대해 대답이 시원치 못하다고 나를 건방지다고 뒷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보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중국에서 온 연세가 지긋한 분이 한국00단체의 소개에 의해 나를 찾아와 한국에서 책을 내려고 하는데 도와달라는 것이다. 무슨 내용의 글을 쓰셨냐고 물었더니 조선족사회 문제와는 상관없이 한국사회의 어떤 현상(경제방면)을 갖고 썼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글을 발표한 적이 있냐고 했더니 아예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잔 글을 써본 일이 없이 문뜩 장편을 세상(한국)에 발표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명색이 고중졸업생이란 렛델을 달고 있었으나 이과는 인식분해가 뭔지, 1·2차방정식이 뭔지도 제대로 몰랐고, 문과는 지리를 한 페이지도 배우지 못해 해와 지구 중 어느 것이 더 큰지조차 모를 정도였고 또 학교 때 외국어를 한마디도 배운 적이 없지만 일본어를 독학해서 대학(일본어 전공)에 가다보니 대학시험을 7년 본 경력이 있고, 지금은 동서양의 역사, 종교, 문화, 철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악착같이 공부했기 때문에,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려고 하는 분들이 찾아오면 정말 내심으로 존중하고 반갑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책을 낸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이 조선족사회와의 교류의 필요성, 또 40여 년 헤어져 있던 해외동포를 ‘귀엽게 봐주는 차원’에서 조선족들의 글을 한국에서 출간해준 일이 꽤나 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특히 IMF이후 호황을 누리던 출판업계가 1/3이 파산되었고, 이젠 조선족이 한국인한테 더는 ‘신기’하거나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최근 들어 극히 개별적으로 정말 탄탄한 글을 제외하고는 조선족이 한국에서 책을 낸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하물며 중국에서 쟁쟁했던 조선족학자나 작가도 아니고 더욱이 잔 글조차 발표해본 적이 없는 분이 한국에서 책을 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라비안나이트’와도 같은 일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글을 전혀 발표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갑자기 세상을 놀래 울만한 명작을 내놓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과거 명함’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글에 대해 아무 경력이 없는 조선족이 책을 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한국출판업계의 몇 분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지만 그분한테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래도 나를 믿고 찾아온 분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참으로 미안함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 중국조선족사회에서 글을 꽤나 쓰시던 분들이 여러 명 나를 찾아 왔는데, 그분들은 통상적으로 나보고 처음 하는 얘기가 “조선족작가 중 누구누구를 아느냐? 누구누구와 친하느냐?”고 묻는다. 이러한 질문을 받는 순간 나는 굉장히 난감하다.  왜냐하면, 노실하게 말해서 나는 14년 전에 ‘연변일보’에 세 편의 글을 발표하고는 10여 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6년에 갑자기 운이 좋아 48편의 글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쓰는 글에 대해 내용은 확실하게 알고 있을 뿐 무슨 문체에 속하는지조차도 모른다. 글쓰기 공부를 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에 겁도 없이 무턱대고 그냥 쓴다. 분명한 것은 나는 평생 시 한 구절, 수필 한 편도 써본 적이 없고 소설에 신경 써본 적도 없다. 문학에 대해 제로라는 뜻이다. 그래서 ‘문학의 물’에서 놀아본 일이 없기에 중국조선족사회 문학인들을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을 모르거나 문학인들을 모른다고 콤플렉스를 가져본 적도 전혀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내 방식대로 살아간다.  설사 앞으로 내가 어느 날인가 문학에 뛰어든다 해도 그것은 나의 인생전환점을 추구하기 위한 것일 뿐 결코 문학에 대한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지난 해 ‘연변여성’과 ‘문학과 예술’이란 잡지에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지만 나는 잡지사의 주필님들을 전혀 몰랐다. 그렇다고 나는 나의 글을 발표하기 위해 제3자를 찾아 인맥을 통해 나의 목적을 이루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냥 무턱대고 찾아가 내가 이런저런 글을 몇 편 썼는데 맞으면 그렇고 맞지 않으면 말고······. 결국 그분들이 나의 글을 발표해주었으나 나는 그분들과 술 한 잔 나눈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와도 그분들을 안다거나 친한다(실제로 친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없다. 지금 중국동포타운신문사도 내가 제3자를 통한 일이 없이 무턱대고 김용필 편집국장을 찾아 인연이 되어 같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이렇다.  그런고로 나를 찾아오는 분들한테 사실대로 ‘문학인들을 아는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면 나의 개성을 모르고 있기에 ‘나를 건방지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흐리며 다음 대화가 껄끄러워진다. 또 나는 문학에 대해 제로이기 때문에 문학인들처럼 감성적이지 못하고 온화하지도 못하다. 나의 성격표현은 나의 글처럼 직설적이므로 문학인들과는 거리가 멀다. 뭔가 잘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문학인들이 갑자기 튀어나온 ‘생감자’인 나에 대해 실망을 갖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약점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나의 개성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막무가내라 생각하고 일부러 고치려고 들지도 않는다. 만약 내가 나의 개성을 고친다면 나는 죽은 사람과도 같기 때문에·····.  그다음 내가 쓰는 글은 대다수가 조선족문제와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에 찬반양론이 많다. 혹자는 직접 나를 비판하기도 하고 혹자는 독자끼리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이는 독자들이 나의 글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증거이기에 어떤 방식이든 나는 반갑게 생각하고 있다. 더욱 나는 작년부터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한 ‘생감자’이므로 부족한 점이 많아 타인의 지적이 매우 필요하다.  유감스러운 것은 내가 ‘중국동포타운신문’에 <김정룡의 역사문화 이야기> 시리즈를 싣고 사이트에 올리고 있는데 여태껏 독자들로부터 이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역사문화 이야기는 역사, 종교, 문화, 민속, 철학 등 다방면의 지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만은 사실이다. 사실 내가 역사문화 이야기를 기획시리즈로 잡고 시작하게 된 것은 우리조선족이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는 말들의 유래와 민속, 풍속 및 생활전통의 유래에 대해 잘 모르고 있고 또 역사와 종교지식이 많이 결핍하기에 100편을 예상해서 써낸다면 조선족사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필을 움직이게 되었던 것이다. 헌데 나는 학자도 아니고 문학인도 아니므로 내가 써내고도 확실한 신심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로부터 많은 지적이 필요하나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생감자’의 고민이다. 만약 이 방면의 스승이 나타난다면 나는 겸허하게 지도를 받고 나의 수준을 제고하려고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다. 첫째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글을 쓰고 싶으면 현실적인 것과 실리적인 내용을 담아 쓰시면 하는 바램이다. 그렇지 않고 이 경제적 시대에 ‘엉뚱한 글’ 수십만 자에 정력을 몰붓는다면 발표가 힘들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수지가 많지 않는다. 둘째 조선족 문학인들이 물론 우리민족의 정 많은 전통 때문에 그럴 수는 있겠으나, ‘누구누구를 아느냐? 누구누구와 친하느냐?’는 구태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현실 적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셋째 재한조선족지성인들은 분발하여 조선족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에 적극 동참해주시길 바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 ‘생감자’가 참으로 웃기는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오뉴월에 참외를 거꾸로 먹는 것도 제 나름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남이야 어떻게 살아가던 무슨 자격으로 왈가왈부하느냐고 한다면 나는 사실 아무런 할 말이 없다.    
37    ‘목자가 없는 양떼’…‘영모’는 수수방관? (김정룡) 댓글:  조회:5980  추천:79  2008-06-13
3. ‘목자가 없는 양떼’…‘영모’는 수수방관?   -H-2무연고동포시험장소 선정에 대하여   김정룡   작년부터 현재까지 조선족사회를 한바탕 요란스럽게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방문취업제가 난산 끝에 드디어 시행에 들어갔으나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특히 지난 3월 28일 이후 방문취업제에 관한 가장 큰 화두는 시험장소 선정문제이다. 즉 한국정부와 중국고시당국이 협상해서 지정한 시험 장소에 조선족이 집결되어 있는 연변과 흑룡강성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조선족 과련 신문과 인터넷신문들에 수많은 문인학사들이 그 폐단을 지적했으며, 그 대다수는 한국정부를 비판공격하고 일부는 중국고시당국의 잘못된 처사를 지적했다.  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여타 조선족문인학사들의 보귀한 지적에 찬성하는 전제하에서 조금 견해를 달리하고 싶다.  조선족에게는 ‘양모(중국)’, ‘생모(고국)’, ‘영모(領母-필자의 신조어, 조선족을 이끄는 행정지도자를 지칭함)가 있는데 이번 시험장소 선정문제에 있어서 한국정부와 중국고시당국이 ‘영모’를 홀랑 빼놓고 임의로 결정해버렸다.  그런고로 시험장소 선정이 조선족 실제정황이 고려되지 않고 배제되어 결국 방문취업제는 조선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인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조선족 문인학사들이 떠들고 있는 것이다.  허나 예로부터 ‘소인’의 백 마디가 ‘군자’의 한마디를 당하지 못한다는 격언이 있듯이 조선족들의 이익을 직접 대변해야할 ‘영모’가 잠자코 있는데 문인학사들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무슨 효과가 있는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정부와 중국고시당국이 조선족 관련 신문과 인터넷신문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아무리 떠들어봐야 ‘간에 기별이나 가겠는가는 것’이다. 만약 ‘영모’가 나서서 한국정부도 찾아다니고 중국고시당국도 찾아다니면서 불합리적인 것을 직접 제출한다면 조선족의 실제이익에 맞게끔 상황이 반전될 가능도 전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상황이 변하지 않더라도 조선족의 가장 큰 관심거리인 방문취업제에  ‘영모’가 실제행동을 보여준다면 조선족들은 그나마 우리를 이끌어주고 우리이익을 대변하는 믿을 곳이 있다는 위안이라도 갖고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번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한국정부와 중국정부가 조선족에 관련된 새로운 정책마련에 있어서 ‘영모’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수년 전에 연변대학 00교수가 ‘조선족은 목자가 없는 양떼와도 같다’는 글을 발표했다. 필자는 이번 방문취업제의 시험장소 선정논란을 통해 조선족은 확실히 목자가 없는 양떼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그리고 매우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다.  현 시점에서, 이제는 영모-지도자가 나설 때라고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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