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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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호랑이도 파리도 다 때려라! 댓글:  조회:4140  추천:2  2013-04-01
                                                                  호랑이도 파리도 다 때려라!                                                                                                                                      2013-03-31 지난 1월 22일 제18기중앙기률검사위원회2차전회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부패를 징계함에 있어서 호랑이건 파리건 한방망이에 때리라고 력설함으로서 반부패 전선에 후련한 훈풍을 일으켰다.큰 놈이나 작은 놈이나,큰 건이나 작은 건이나를 막론하고 사실을 근거로 법률을 준칙으로 해야하며 법률 앞에서 사람마다 평등해야 한다는 법제의 기본원칙을 재천명한 것이다.이는 우리나라의 반부패 현실에 안성맞는 비론(比論)이 아닐 수 없다.   현실에서 큰 놈과 작은 놈은 항상 어울려 생존하며 큰 부패와 작은 부패는 생장의 토양이 동일한 것으로서 그들 사이에는 찰떡궁합의 상생관계가 존재한다.그들은 서로 결탁하여 련동하며 공공재산으로 사복을 채우고 서로 야합하여 자기들의 튼튼한 방어망을 구축하면서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파괴하고 법제에 대항하고 있다.이런 엄연한 사실은  범과 파리를 한꺼번에 답새기지 않으면 틀림없이 심각한 사회적 위험를 몰아오게 될 것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큰 것은 작은 것 속에 있고 작은 것들이 모이어 큰 것을 이루듯이 큰 부패란 무수한 작은 부패의 고밀도집합이고 거물급 부패분자도 무수한 작은 부패의 집적으로 이뤄진다.큰 부패가 없는 작은 부패가 없으며 작은 부패를 방치하면 기필코 큰 부패를 량산을 초래한다.그러므로 큰 부패를 치게되면 반드시 작은 부패를 때리게 되고  작은 부패를 파고들면 자연히 큰 부패가 적발되게 된다.부패를 치는 과정은 크고작은 부패를 동시에 치는 과정이 되어야 할 뿐이다.이 객관적 규률성이 범과 파리를 같이 잡아야 하는 철학적 근거가 된다.   부패 안건의 발전 과정을 보면 전부가 작은 사건이 그 발단으로 되며 일정한 시간을 거치면서 작은 건들이 합류되어 이뤄진 것이다.작은 부패가 제멋대로 자라나고 루적되면서 큰 사건으로 전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패는 발견하는 족족 처리하고 작고큼를 막론하고 즉시에 법의 처분을 받아야 한다.부패 범죄를 최소화하고 방지하는 장원한 목표의 실현을 위하여 모든 부패는 어느때어디서를 막론하고 동시에 얻어맞는 대상이 되어야 천만지당하다.이것은 호랑이와 파리를 동시에 쳐야 하는 극단적인 필요성이다.   량변과 질변의 법칙으로부터 살펴본다.어떠한 큰 부패 안건이나 모두 작았던데로부터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성질이 변하여 범죄로 구성되고 그는 또 부단히 다른 작은 부패를 만들어 낸다.부패 분자들의 전부가 이 과정을 걸어온 웅변적인 사실은 부패를 다스림에 있어서 큰 것을 잡는다고 작은 것을 무시해도 안되고 작은 것을 잡는다고 큰 것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방증한다.부패의 과정으로부터 봐도 범과 파리는 똑같이 마땅한 징벌을 받아야 한다.   일정한 시기의 일정한 조건에서 부패의 타격 중점은 부단히 변화한다.호랑이가 득실거리면 그를 먼저 죽이고 파리가 득실거리면 우선 그 소멸에 나서야 한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단계에서의 사업 중심을 말하는 것일 뿐 어느 쪽을 소흘히 하라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반대로 큰 것을 치는 것은 작은 것을 더 힘있게 치는 계기가 되고 작은 것을 치는 것은 큰 것을 소멸하기 위한 필수적 단계로 될 뿐이다.그러므로 언제나 대소경중과 경중완급을 잘 구별하며 주요모순을 틀어쥐고 입체적으로 타격하며 전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부패를 징계함에 있어서 호랑이도 치고 그의 몸체에 붙은 파리도 쳐야하며 그가 숨겨논 파리도 잡아야 한다. 범을 안치면 사회에 재앙이 생기고 파리를 안치면 범을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미래의 큰 범을 길러내는 악과를 빚어낸다.범과 파리는 늘 서로 대방을 자기 존재와 번식의 조건으로 삼는다. 진정으로 범을 친다면 자연히 파리를 치게 되며 파리를 치게되면 불가피 범을 치게 된다.이것은 범과 파리를 동시에 치게 되는 필연성다.   법제원칙의 관철, 법제권위의 확립, 법제교육의 실효화를 위하여 반드시 범과 파리를 동시타격해야 한다.법제의 관철은 철저성,일관성,정확성,투명성을 요구하는바 이 과정은 법제의 권위를 수립하는 과정이고 유권자들이 교육을 받는 과정이 된다.만약 법률이 차별적으로 적용된다면 그는 대뜸 공신력을 상실하고 사회에는 법제와 도덕적 기준에서 혼선이 발생하여 부정세력이 득세하고 인심은 이지러진다. 사회건설의 목표를 실현을 위하여 반드시 대소 부패를 한몽치에 뭉개쳐야 한다.   호랑이도 파리도 얼러치는 반부패는 인간사회의 영원한 과제이며 전사회의 절절한 희망이다.이 성스런 사업은 해당 기관의 힘으로만 역부족인바 반드시 전체 인민의 참여를 고무하고 보장해야 한다. 인민의 민주권리가 남김없이 발휘되고 권력이 새장에 들어가는 투명한 시민사회의 제도적 시스템을 건설하는 것만이 반부패의 결정적인 대책이다.이때가 되면 호랑이는 애시당초에 둥이채로 부서지고 파리도 음지에서 산란하기 직전에 소멸되는 법치사회를 이뤘다고 말할 수 있다. (끝)  
63    권력을 새장에 가둬라. 댓글:  조회:4300  추천:1  2013-03-17
  이것은 지난1월 22일 중기위제2차 전회(中紀委第2次全會)에서 습근평 주석이 부패의 정곡에 창부리를 겨냥한 금언(金言)다. 공권력의 람용(濫用)、란용(亂用)、망용(妄用)、오용(誤用)의 방비책을 일언페지(一言蔽之)로 개괄한 이 한마디 실증적 론단은 권력부패의 싹쓸이를 갈망하는 인민들에게 권력의 정위(正位)를 재인식시키고 공정하고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에 대한 사람들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권력이란 사회의 통제와 관리에서 필수적 공구이고 핵심적 수단이다. 그를 새장에 가둔다는 함의는 우선 권력과 권좌(權座)는 모두가 새장속에 있어야 하고 권력을 쥐었으면 반드시 법율이란 날줄과 도덕이란 씨줄로 짜여진 조롱(鳥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더 말하면 권력가는 새장이라는 관객의 속에서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보이며 극히 제한된 은사(隱事)외의 모든 것을 들의 시야에 투영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리하여 귀인들은 이 가상공간 속에서 대중의 호불호(好不好)  평판과 권선징악(勸善懲惡)、입송축출(入送逐出)의 대접을 받는 것이다.   새장 속, 혹은 밖이라는 부동한 환경에서 권력의 작용은 천양지차로 나타난다. 실례로 새장에 같인 권력에 귀중한 목재를 맞긴다면 그것은 현인군자들 손에서 청사에 길이 남을 건물의 건축재료로 되지만 새장 밖의 권자에게 맞긴다면 벼락 맞은 소고기 격이 되어 도둑창고를 짓기에 드러난 거저먹기 상등품이 되어버리며 사회에는 혼탁이 일어나 살 재미가 없어진다.생선을 고양이에게 맞긴 셈이다.권력이 새장 속에 있으면 인민에게 복신을 모셔오고 새장 밖에 있으면 화신(禍神)을 불러온다.이 극명한 차이는 현대사회의 어디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새장을 트는 세공사(細工師)는 누구이고 그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헌법에는 고 명시한다.이는 새장 리론의 기본적 법률 근거이다.인민은 이 신성한 권리로 법률을 하고 적임자를 선택하여 집행권을 주는 동시에 위임권,사정권(査正權),감독권,질의권,파면권을 가지게 된다. 이 공공권력의 산생은 사회 대다수가 자원적으로 거기에 복종한다는 사회적 념원의 개괄적인 표현이다.이런 행위가 집행법으로 규범화 되면 강제성이 확립되고 매개 유권자들의 지켜야 할 의무로 전화한다. 그러므로 권력이 새장에 넣는 것은 인민의 민주권리의 행사이고 권력이 새장에 들어가는 행위는 수권자(受權者)의 신성한 사명이다.   인간의 본질을 살펴본다.인간은 욕망이란 무형물의 집합체이다.이 욕망은 천생적으로 매개 사람을 자기중심이게 한다. 이 욕망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삶을 포기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 욕망의 실현과 억제 이것이 인간 생활의 시종을 관통한 중심선이며 인간 실존의 딜레마이다.사회란 바로 리익사회 즉 개인의 리해타산을 기초로 결합된 공동체란 말이다. 인간이란 이런 물직적 존재이기에 누구던지 사회적 제약을 리탈하고 타인의 침해에 대해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하는 현실적 위협이 없게되면 무절제한 욕망은 그의 행위를 자신의 욕망에 부합되게 행하도록 펌프질하게 된다.이것이 바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사상을 결정한다는 말이다.그러므로 감독과 견제를 일탈한 권력은 구조적으로 만만불측(萬萬不測)의 행위를 야기할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새장 속의 충복들을 둘러본다.그들은 공적인 사업에서 영예를 따내고 인생가치를 실현하려는 숭고한 현인군자들로서 새장은 그들의 더없는 창조의 장이고 자아실현의 장일 것이며 사회에는 더없는 행운일 것임이 틀림없다.구경군들의 고무, 찬반 평가와 경고는 그들의 체질을 다져주는 비약(秘藥)이고 병을 치료하는 성약(聖藥)으로 되기 때문이다.허나 이들이 새장밖에 있다면  아집과 독선에 빠져 좌충우돌하면서 에너지를 랑비하거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공공재부를 가로채고 사복을 채우거나 한다.많은 경우 알게 모르게 호인이 악인으로 변하기도 한다.그러기에 진정 인민을 위해 복무하려는 권력자는 기꺼이 새장 속으로 들어간다. 새장은 유능한 사람을 더 총명하게 하고 리상을 실현하게 하는 최호의 광활한 활동 무대이다.   세인이 저주하는 공권력의 부패를 본다. 권력을 새장에!라는 의미는 습근평 주석의 말대로 를 건립하는 것이다.부패란 결국은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고 사회에 독소를 퍼뜨려 복합공해를 일으키고 사회발전의 동력을 무력화시킨다. 그러나 랭엄한 새장 속에서는 각종 무서운 금계(禁誡)의 속박으로 악행을 최소화 할 뿐만 아니라 속이 음특하던 사람들도 맡겨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감독,평가,고무,비평,상벌의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악인에서 호인으로 전화할 수 있다.새장은 인간 교육의 성당이다.    새장은 거대한 경기장으로서 여기서는 모든 권력자들의 재능과 품성이 백일하에 드러난다.매개인은 능력이나 됨됨이나 사회공헌의 여부에 따라 유권자들의 공정한 평가를 받게 되고 남던지 쫓기던지 걸맞는 대접을 받는 것이다.이 안의 모든 사람들은 사업이란 경기속에서 우수한 자는 살아남고 렬후하거나 뒤지면 등외상을 받고 아쉬운대로 퇴장해야 한다.잘하면 그만큼의 호대접을 받고 뒤지면 푸대접을 받아야하는 기능은 새장의 독특한 강점이다.결국 새장은 권위자의 시험장이고 천리마를 발견하는 최고의 마당이다.새장은 권력자들의 무릉도원일 수 밖에 없다   권력을 새장속에 가두는 기능은 결국 인민의 민주권리를 충분히 보장하고 발휘시키는 현대 인류의 이상적인 사회적 장치이다.공권력이 새장 밖에 있으면 민주권리가 새장안에 있게 되고 사회의 공공리익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더 말하면 권력이 새장에 들어가면 민주권리가 활개를 치고 민주권리가 새장에 들어가면 권력이 무소불위 행사를 하게 된다.권력과 민주권리의 대립과 통일은 어느 사회를 물론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기본모순의 하나이며 그의 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개혁개방은 13억의 인구대국에서 진행되는, 부동한 리익과 리념의 상쟁이 넘쳐나는 거창한 사업이다.이 는 격랑 속에서 암초를 에돌아 나가야 하며 매 한번의 방향전환은 엄청난 회전반경을 수요할 뿐만 아니라 자체의 거대한 관성을 극복해야 한다. 이 인류 력사상 미증유의 바닷길 위에서 권력이 새장 속에 들어가 진정으로 효과적인 작동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이 개혁개방의 고급 단계가 아닌가 지레짐작해 본다. (끝) 2013-02-24  
62    새해 복 더 많이 받으세요 댓글:  조회:3738  추천:1  2013-02-11
새해 복 더 많이 받으세요   늦었다고 말하자니 아쉽습니다.   멀리 지나버린 기억은 차곡차곡 쌓아 튼튼한 나이테를 만드십시오.   한 해를 보내며 후회도 있겠지만 다가올 시간이 희망으로 있기에 천지에 감사한 경의를 가지십시오.   행복할 줄 아는 지혜의 가슴에 기쁨과 사랑을 가득 채우시고 굳건한 자기가 되십시오.   새해에 세운 계획을 헛되지 않게 하시고 요지부동하는 두 다리를 가지십시오...   가시는 곳마다에 원하시는 단꿈을 꽃피우시고 형안(炯眼)을 번쩍이며 대명천지로 가십시오.   -壬辰年 세모에 癸巳年을 기원하다-
61    좀 알고 먹고 적게 먹자. 댓글:  조회:3859  추천:0  2013-01-25
좀 알고 먹고 적게 먹자.   김인섭   2013-01-08     돈을 벌어야 살아가는 세월에 인목(人目)이 피눈이 되고 세상이 바닥나기로 이런 한심한 일도 있다니 허탈감을 못견디고 한참 혀를 찼다.   엇저녁 CCTV의 토픽포커스(焦點訪談) 시간이다.좀 한다하는 식당들에서 대량 팔리는 고급 료리라는 상어지느러미(鱼翅) 반찬이 거의가 가짜라는 기자들의 현장 취재였다. 그 원재료 원가가 30원/봉지인데 여섯 사라를 만들어150~190원씩으로 팔아버린단다.상가의 웨이트리스들이 환영광림(歡迎光臨)하고 양금채 소리를 지르며 메뉴를 들이대면 허영을 뽐내는 신사숙녀들이 최고라는 감언리설에 깜쪽같이 얼리우고 돈을 뿌린다는 귀신이 하품할 일이다.   제일 보신제라는 이 먹거리의 영양은 돼지발쪽,닭껍질,물고기껍질과 별반 차이가 없으면서 되려 인체에 해로운 여러가지 중금속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전문가들의 얘기다.그런데도 장사치들은 소비자들의 불감증과 일그러진 소비습관과 사회관리 미비의 틈새를 교묘하게 헤집고 들어 수월수월하게 팔고도 톡톡한 마진을 올리는 판국이다.업계내에선 공개된 비밀로 된지도 한참이라며 빤빤스럽게 고백하는데 눈도 깜짝 안 하는 천연스런 모습에 보는 사람이 무색할 지경이다.   근간에 식품의 안전 문제로 매체가 쉴새없이 시끌버끌하는데도 수그러지는 조짐이 안 보인다.가짜식품,독식품,독고기,독야채,독우유뿐만 아니라 가공식품에 첨가제의 과량으로 집어넣고 사용금지된 호로몬제와 항생제도 주저없이 쳐넣고 암을 유발한다는 화학제품마저도 돈이 된다 싶으면 마구 퍼넣는다고 소문이 파다하다. 현대 기술로 무장한 상인들의 묘수에 의해 무수한 미식옥식이 되어 식탁에서 몸매를 과시하는데 당장 죽지만 않는다면 인간생명의 몇 할 정도 앗아가는 것쯤은  씁쓸해 하는 별사람들이다.   인간의 이 백화현상(白化現象)을 바라보며 불법이요,부덕이요,부패요 고함지르며 톡톡한 내리조기기도 현재진행형인데 끊임없이 당하기만하는 서민들은 아연하기만 하다.서민들의 순백한 마음과 과시욕에 손이 근질거리는 신사숙녀들은 사냥물이 된 줄도 모르고 분수없이 먹어대니 장사치들은 태평스레 고가호가(高價呼價)를 해댄다는 배곱이 웃을 일이다. 요 고약한 짓거리들에 입가진 사람이면 뿌드득 이를 가는데 감소세커녕 오히려 더 증가세 일로인 이상한 일이다.   거리에 나가면 벼라별 음식가게가 줄느런하고 먹을 것들이 지천이고 천지이다.발전을  대변하는 인간의 왕성한 식욕과 먹음새 기호와 생활양식에서 엄청나게 신장한 경제력과 시대적 변화가 감지하게 된다.그렇지만 다채로운 식생활로 사람의 미각기(味覺器)가 즐거워지고 체격이 향상되었어도 운동량의 수직 하강과 영양의 대폭 과잉으로 먹은 만큼 질병이 겉잡을수 없이 늘어나는 현실이다.거기다 유해식품이 대대적으로 가세되어 과거 듣기만해도 눈이 뒤집히던 난치병,불치병이 성인병,류행병으로 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는 오늘이다.   고기,생선이나 단맛이 없으면 밥이 목에 걸리는 사람들에게서 현대병으로 불리는 고혈압,당뇨병,심장병,백혈병 환자들이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원인은 소식결식(小食缺食)이 아니라 과식다식(過食多食)과 불량식품에서 오는 것이다. 건강의 비결은 담박하고 조금 모자라게 맑게 먹는 데 있다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더더구나 유독,유해,가짜식품이 줄을 잇는 세태라 건강을 챙기려면 수고가 들더라도 골라먹고 자그만치 먹어야 한다고 늘 말하는데도 인간의 각성은 퍼그나 뒤지는 같다.   세상이 천지개벽했다고 외쳐도 인간의 몸통은 아직도 1만년전 구석기시대의 육신이다.인류가 오늘 같은 만복포식(滿腹飽食)의 식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진화하려면 10만 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학자들이 말한다. 그 유전자를 그대로 가진 현대인들은 소모가 따르지 못하는 고영양 음식을 매일같이 먹어대고 넘쳐나는 칼로리는 고스란히 몸속의 병으로 전화한다는 과학적 호소이다.하물며 공해 음식이 잔뜩 위장속에 들어가는데야….   말이 길어지니 빗나가는 같다.재언이지만 알맞게 먹고 되도록 적게 먹고 깨끗이 먹는 것이 최상의 식복(食福)이 아닐가 생각해본다.부언한다면 알고 먹고 작작 먹는 것이 우리 백성들이 식품시장의 구겨진 상혼(商魂)을 다스리는 최상의 무기가 아닐가 되풀이해본다.   (끝)
60    견지망월、견월망지(見指忘月、見月忘指) 댓글:  조회:9624  추천:3  2012-12-24
견지망월、견월망지(見指忘月、見月忘指)                                          2012-12-21 묵은해가 희열이 조금 섞인 감구지회 속에 회한과 아쉬움을 남기며 저물고 있다.지천명이 되면서부터 사세(辭歲)가 되면 내내 혼돈과 불안으로 얼룩진 시간이었는데 올해도 한가지로 마찬가지다. 들썩거리며 헤매이던 인생사가 투영된 한 해 걸음을 돌아보니 로고무공(勞苦無功)으로 서 있는 내 모습이 어쩐지 여느 해보다 한결 초라하다.   증년(增年)하면서 차차 더 먼 뒤를 본다더라.요즘은 지나온 인생사(人生事)의 편린들을 뒤적이며 이 삶이 어쩌면 이리도 피곤하고 은 늘상 적자만인 오그랑장사였는가는 묵념에 잠기군 한다.부지세상 빨가숭이로 인생길에 올라 어섯눈을 떠서부터는 제딴에 거드럭대며 며 휘돌아다니다  때로는 남의 흉내도 본따면서 무언가 이루려 피와 땀에다 살까지 바쳐왔다.그래도 사배공소(事倍功少)의 심상과 실망의 연속이던 그 날들을 돌아보며 그 실착이 어디었던가 때 늦은대로 어불싸 같은 반성이나마 해 본다.   요즘엔 견지망월(見指忘月)이란 사자성구에 내포된 철학적 리치를 곰곰히 음미했다.견지망월은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본다. 좀 더 말하면 타인의 카리침의 진의(眞意) 소흘히 한다는 뜻이다.류추하여 견월망지(見月忘指)라 조어(造語)한다면 달을 찾으면서 남의 가리킴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 되겠다.전자는 가르침에 엇나가는 덜렁쇠이고 후자는 가리침을 외면하는 고집쟁이라는 말이 된다.이렇게 보니 어쩐지 부평초 인생을 사는 내 인간상이 여기에 신통히도 안성맞을 성싶다.   이를만큼 빼어남이 없는 무명색(無名色) 주제꼴에 세월을 미당기며 맞이했던 세상살이 시절은 아집의 노예가 되어 앞으로만 치닷던 도전의 세월이었다.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자만의 늪에서 신기루 같은 성취의 야망에 사로잡혀 밤새우며 나를 잊엇던 욕망의 세월이 아니었던가.또 알량한 경험과 어설픈 지식을 무기로 여기저기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자기본위에 집착한 업보였는가 늘 백사지판(白沙之板)에 내뿌리워 나뒹군 것이 차례지는 였다.   소탐대실이라 할가 리기주의라 할가,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풍진세계의 형형색색의 유혹에 넘어가 사회의 정의와 공리를 일탈하는 행위들이 오늘 뒤돌아보니 진짜로 너저분히 널려있다. 참된 리치가 아닌데도 되레 그것을 바른일、바른길이라 억지를 부리며 덜먹게 나아갔으니 뭇사람들의 삿대질 뒷욕은 꼬리표 같이 따랐을 건 빤하다. 친호,친구,친척들의 작은 정리(情理)에 이끌려 정의를 잊고 대도를 저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몰상식한 탈선행위로 뭇사람들의 찬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환하다.   이순의 문턱을 디디고 되생각하니 세상만사는 지위의 높낮음이나 지식의 다과나 빈부의 차이 같은 부질없는 편가름이나 불신의 벽을 뛰어넘어 어느때 어디서나 한결같이 포용,존경,겸허를 바탕으로 하는 화합과 공존을 공동체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는 뉘우침이 자꾸 어른거린다.더 생각해보니 세상을 사는 원초적 시비를 가름하는 일에서마저도 안개 속을 헤매듯 종잡지 못한 내가 태날 때부터 어디가 좀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라는 같다.   살아오면서 부모、형제、선배、고친、절친들의 수많은 충고와 쓴소리를 많이 들어왔으나 이 위인은 내치기가 일수였고 귓등으로 흘리기가 례사였다.그래도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리는 옹색한 처지는 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었지만 오늘의 내 인생 편력이 이 모양새로 남의 눈에 각인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되게 편찮다.그 때 그 말을 들었더면 하는 자아비판도 늘 되풀이 된다. 타인의 교시에 내포된 평범한 리치마저 깨닫지 못했다는 뼈저린 성찰이 로년이 되어서야 나온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덧없는 세월이라 했던가.묵은해가 력사의 뒤안길에 뭍히고 새해의 초일(初日)도 동천(東天)으로 발돋음하고 있다.지난날의 모든 것은 세월의  앙금속에 묻는다 하더라도 견지망월과 견월망지의 진솔한 의미만를 새겨보며 나를 포함한 모두가 선현들의 명언을 항시 어천만사(於千萬事)의 지침으로 삼기를 소원한다. 여기는 나 같은 풋내기들에게 걸음마다 행동거지를 명심해야 됨을 넌지시 알려주는 따끔한 충고가 배어있다.이래서 쪽도 못쓰고 나이 하나를 꿀꺽 삼키며 내 아이들에게도 이 철학을 설교하였다.   삶은 실전일 뿐 련습이 없다. 살아보니 자기에 대한 세평과 타인의 비평에 늘 귀를 기울이며 차문(借問)하며 사는 것이 인생살이에서 백익무일해(百益無一害)일 것임이 틀림없다. (끝)  
59    동천술회(冬天述怀) 댓글:  조회:4026  추천:3  2012-12-02
수필-동천술회(冬天述怀)                                                       김인섭   2012-11-18   오래만의 주(周休)휴라 늦잠에서 깨어일어나 창너머 뒤산의 혼성림 숲을 건너다본다. 북온대 해양성계절풍기후의 지역이라 소설(小雪)이 눈앞인데 산색이나 나무잎 매무새는 아직도 내 고향 연길의 만추 자태이다.올해는 풍조우순(風調雨順)의 호천후도 아니었는데 가을날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단풍잔치를 벌이던 매무시가 여전히 력력하다.해마다 되풀이되는 화사수류(花謝水流)의 기묘한 순환은 그 유혹이 집요하고 은근하였다.그 꼬드낌에 싱숭생숭하여 입노릇이나 대충하고 천리(天理)의 궤적을 드팀없이 따라가는 산림과 이신전심(以心傳心)의 기맥상통이나 해보려 신끈을 조이고 나섰다.   겨울 숲속의 정취를 만끽할 심산으로 유산객들의 발길로 다스러진 오솔길에 들어선다. 길 량옆은 여러 가지 활엽수들과 간혹 끼인 침엽수들로 울밀(鬱密)하게 푹 우거졌는데 능선길에는 아직도 만미(滿尾)의 풍엽에 두툼히 깔려있다. 짓수굿이 도렬한 수간(樹間)으로 텃새들이 날아돌며 적막을 깨뜨리고 약동하는 감흥을 일으켜 무척 정겹다. 풍겨오는 태고의 땅내음을 기껏 빨아들이며 묵묵히 걷다가 무심결에 낙엽 위에 드러난 바위돌에 앉아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자연은 이리도 아름다운데 철없는 세월은 창조주가 하사하신 내 년치를 한 살이나 매몰차게도 썰어 먹는다.   나무에 엉성하게 매달려 찬바람의 조화를 서슴없이 감내하는 잎사귀들을 바라보니 그들에게는 지금이 한해살이를 정리하고 새 소생을 기약하는 장엄한 조락의 시절임이 틀림없다. 이것은 이들이 새봄에 신록을 펼치고 력동적인 여름의 번성을 이루다 오늘은 가을의 결실을 안고 지난날을 반추하면서 한살이의 대미(大尾)를 수자(繡刺)하며 떠나는 슬픔을 감추려는 몸부림이 아닐까. 바로 어제가 춘초의 환생이었는데 매정한 계절의 재촉은 되려 사람의 가슴도 버겁게 한다.한 해 동안 뭘 했기에 이리도 빠를가 아쉽다는 허허탄식이다. 시들한 심경은 서글픈 망향가를 떠올리기도 한다.   가파른 언덕에서 두발을 겨끔내기로 내디디며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솔바람을 실컷 먹어본다. 잡다한 일상으로부터 비켜서서 가슴을 허비는 속사잡사들의 번거러움에서 벗어나 건뜻한 마음만을 가지려는 욕심도 어른거린다. 거룩한 꿈을 가지고 성현들의 반열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거저 입살이가 목표인데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녀도 년년이 소망이 굽질리고 뒤틀어지어 는 촌극을 되풀이하는 연유는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항시 티없이 매서운 바람같은 수련을 받으며 심적 오예물(汚穢物)들을 실시로 털어버렸더라면 이토록 멋쩍지는 않았을가 생각해 본다.이 겨울날 하늘이 나를 비춰야 할 몸거울이 되기에 제격이다.   세월이 또 만물에 나이바퀴를 한 겹 둘러놓는다는 속마음도 여느 해보다 허우룩하다.저 추레해진 고엽(枯葉)들도 천체의 회전을 따라 새 숲의 벅찬 부활을 위하여 정숙한 동면을 위해 붙살이 하던 나무에서 미련을 털어 버리고 떠난다.이듬해 새 생명의 밑거름으로 기꺼이 되어진다.인간도 세속의 다툼이나 명리를 과감하게 내려놓고 그들과 같은 삶의 궤적을 좇는다면 주제넘는 욕기나 기를 쓰고 토하던 망언망동도 싸악 버리고 기꺼이 새 도전에 마주할 것이다.   앙상한 가지들의 세찬 몸부림은 인간에게는 혹심한  시달림으로 각인되나 그들에게는 돌아오는 봄날의 찬란한 재생을 위한 기꺼운 통과의례(通過儀禮)이리라.틀림없이 일년생(一年生)을 거뜬히 마치고 풍성한 창조와 결실을 윽벼르는 드센 몸짓이다.늘 아집과 독선의 성채에 같혀 항간에서 시야비야를 주문하는 인간에겐 이 삭풍의 담금질이 안성맞춤이 아닌가 싶다. 만물의 령장이라 뽐내대는 우리들이 이 나무들처럼 배부른 투정이나 오기가 없이 살았더면 해마다 에돌아오는 랑패감은 없을 것이다.     이 계절은 우리들이 한풍같은 자기 성찰로 스스로를 봐야 할 길목이다.비망(非望)의 굴레에 매여 드잡이하다가 배낭에는 캐캐묵은 구닥다리만 꽉 채우고 허허로운 빈손이 쑥스러워 자꾸 뒤로 감추는 나를 살펴보니 애처롭기만 하다.늘 세속의 천박한 가치기준에 연연하며 헤매는 내가 타고난 어디가 약간 모자라는 축이 분명하다.잘 아는 사람들이 올해는 뭐하며 살았냐고 물을텐데 외면하고 빠져나갈 구멍이 어디에 있나 찾아놓아야겠다.만나면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민망스런 면판은 어디 둘 것인고!   허방지방 해매던 해가 바야흐로 지나간다.마음은 서글퍼도 새해의 볼일들과 하고 싶던 일,사랑하는 일에 얼마 안되는 에너지라도 쏟아야 한다. 떡판같은 바람이나 번뇌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이 겨울나무의 서릿발 같은 정진을 한다면 행운과 축복이 닿으리라 희망해 본다.   뉴톤의 말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전력을 쏟으라.   (끝)  
58    조선족만의 강점 댓글:  조회:5526  추천:2  2012-11-29
조선족만의 강점 김인섭  2012-06-17 도시에서 오래 살며 조선족 인재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어느 대학의 60대 후반의 교수이다.지난 세기 70년대 말에 동경대학의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조선어、중국어、일본어、영어가 류창하고 로씨야어도 상당한 수준이다.교학、과학연구、정보수집,、대외교류 등 면에서 언어를 무기로 화려한 역할을 일으켜 뭇사람들의 흠모를 자아내고 있다.   또 하나, 40대의 박사과정을 끝낸 대학 교수이다.조선어,중국어,일본어가 류창하고 영어 역시 상당한 수준이다.교학 이외에 일본、한국의 학자들과 합작하여 많은 연구 성과를 올려 과학기술부,교육부,료녕성 과학기술위원회로부터 큼직한 영예들을 받아 안았다.언어가 밑거름이 되고 있었다.   다음 하나 30대 후반이다.대졸 후 일본에서 10년간 근무하다 대련지사의 법인대표로 파견 받았다.그는 일본과 한국의 학자들과 합작하여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출중한 성과를 올려 지역의 일류 일본독자기업으로 발돋움하였다.역시 중일한 3개 언어가 류창하고 영어 역시 상위 수준이다.   40대 초반인 친구는 한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다 자수성가하여 한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상당한 규모의 회사로 발전시켰다.처갓집에서 단돈 300원을 빌어가지고 도시에 들어와 말단 사원으로부터 회사 성공의 길을 걸어왔다.그의 친구들은 맨주먹으로 성공한 모델이라고 이란 별호를 달아 주었다.중일한 3국어와 비지니스영어 합격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고중까지 조선족학교를 다니고 일본어가 류창하다는 것이다.또 언어를 많이 다루며 보니 영어 공부는 어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으며 여러가지 언어가 서로 참조가 되면서 영어기능도 단시간에 확보할 수 있다는 일치한 견해이다.물론 노력이 전제로 되겠지만 일본어를 배우면서도 영어를 배우는 충분한 여유가 생긴다는 방증이다.   한족이 일본어를 선택하는 주요 리유는 일어에 한자와 한어 어휘가 많기 때문이다.한국인이 일어를 선택하는 이유의 하나는 두 언어가 교차성이 강하고 어순이 같고 일본어의 난점인 동사의 활용을 쉽게 리해하고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현재 세 나라의 경제、문화교류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원인의 하나가 바로 언어의 근접성이다.   그렇다면 조선어를 장악한 조선족은 일본어 공부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의 장점을 동시에 거뜬하게 가지고 있다.일본인들은 조선족의 일어 수준을 경이롭게만 생각한다.자기들 나라에서 웬만한 수준의 조선족을 한 명 고용하면 중국인 통역과 한국인 통역 두 사람을 고용한 효과를 릉가한다는 것이다.동일한 조건이라면 조선족은 타민족보다 일본어 배우기에서 가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명증이다.   타민족 일본어생들의 말이다.한족인 자기들은 좋은 성적을 따려고 죽도록 노력해야 되는데 조선족들은 빈둥거리며 노라리를 치다가도 시험만 치면 우리를 릉가하는데 괘씸할 정도로 잘 한다는 말이다.회화에서는 애초에 상대가 안된다며 툴툴거린다.한국의 일본어 전문생들도 조선족의 일본어 수준에 혀를 내두르며 감탄한다.   미국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자기들에게 가장 어려운 언어는 중국어、일본어、한국어、아랍어 순인데 조선족들은 이 중 세개를 알고도 영어수준 역시 상당하다는 찬탄이다.제들은 하나의 외국어를 아는 것만으로도 늘 장하다고 뽐내는데 당신네 사람들이 이 어려운 언어 3개에다 영어까지 잘 구사한다는 사실은 귀신이 하품을 할 우주의 신비란다.   조선족은 조선어를 잘 해야만 배운 중국어 가치가 한 배로 증폭한다. 다른 면을 차치하고 두 언어를 동시에 배우면 적어도 일본어가 누구보다 배우기 쉬운 여건이 제바람에 움튼다. 기성세대들은 조선어와 중국어가 조선족의 최대의 무기라는 점을 명념(銘念)하고 일본어 공부에서도 상대가 없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후대들에게 강조해야 한다.결정은 본인일지라도…   약동하는 중국,생기발랄한 한국,튼튼한 경제실력과 과학기술의 저력을 보이는 일본,이 3국간의 교류의 장은 조선족이 우선 자리매김할 부유로운 고지라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이것이 또한 조선족의 드센 경쟁력이다.우리는 언어 우세만으로도 세계의 광활한 문화 천지를 자유래왕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질을 지닌 민족이다. (끝)  
57    코리안드림의 승화 댓글:  조회:5093  추천:2  2012-11-23
코리안드림의 승화                                                 김인섭         2012-05-13 이란 후진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면 떼돈을 벌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몽환경에 도취된 상태를 이르는 90년대 초반의 신조어이다. 이 말은 전쟁 직후의 한국인들이 미국이 대몽을 이룰 땅이라며 네오내오없이 도미(渡美)를 시도하던 의 파생어라는 설이 근리(近理)일 것으로 본다.     1992년8월의 중한 수교는 조선족 사회의 중대한 전환이었다.두 나라 국경의 장벽에 구멍이 뚫리고 래왕의 다리가 놓임으로 하여 신비롭기만 하던 한국은 조선족에게 있어서 황금 산맥이 뻗은 무릉도원으로 홀변하였다.거기에 한국민의 포용이 가세되어 한국행 이목지욕(耳目之慾)은 토네이도마냥 세차게 일어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숱한 사람이 기회를 노리는데 생사마저 도외시한 담력과 교묘한 수단에 귀신도 곡하며 도망 갈 정도였다.지겨운 가난속에서 한국이 고난 탈출의 최단의 지름길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금전만능과 적자생존의 가혹한 론리가 살판치는 랭혹한 세월에 이 철심(鐵心)을 품고 있었기에 사랑하는 고향과 자식을 뒤로하고 타국에서 온갖 고통과 서러움을 감내할 수 있었던 우리 겨레들이었다.   근 20여년의 꿈 펼치기 작전의 된고비를 지나 우리의 사회도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났다.외적으로, 다수가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 도시에 아파트 쯤은 사놓고 애들을 공부시키고도 용돈의 충당엔 무리가 없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내적으로, 한민족 사회와 세계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세계속에서 자기 삶을 영위하는 마인드를 갖춘 보다 건강한 문화적 모습을 키웠다는 사실이다. 코리안드림이 초급단계를 지나 단순한 돈벌이로부터 미래의 세계와 조화롭게 공생하는 가치관으로 성숙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이 꿈꾸기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한국은 여전히 희망의 땅이다. 단적으로 조선족 사회는 불가피적으로 한국과 직결되며 등변화선을 이루게 된다.현실적으로 한국의 해외동포정책, 한국에서의 조선족의 역할,한국민이 조선족에 대한 시각,조선족이 한국에 대한 인식, 조선족의 한국에로 이동은 실시간으로 련동되며 동시적인 변화를  보인다.이 경향의 대두는 우리에게 여세추이(與世推移)의 철학으로 지난날의 득과 실의 을  잘 해보며 코리안 드림을 한 단계 승화시키는 차분한 성찰의 절대적 필요성을 넌지시 알려준다.   가난에 찌들었던 지난날, 기성 세대들이 피땀으로 한국의 땅에 삶의 기반을 구축하여 조선족 사회의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면 오늘은 우리의 뜰안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놀라운 것은 급한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인구통계수자와 해체 직전이라는 공동체의 궁상맞은 모습이다. 따라오는 공동체의 재건,후대의 교육,문화의 부활 등 력사적 짐은 우리에게 무겁게 떨어진다.빈곤 해탈을 위한 대탈출과 대이동은 시대적 몸부림으로 봐야 하지만 새 시대의 분기점에 선 우리에게는 분실된 귀중품을 다시 색출하고 다듬질해야 하는 강도 높은 로동이 요구된다. 아니라면 갱무꼼짝하고 민족이 사라진다는 멸종의 대접을 받게 되는 한계상태이다.   개중에서도 절박한 부분이 교육이다.인구의 급감으로 민족 교육이 위재조석(危在朝夕)인데다 학부모들의 불견식으로 다량의 애들을 타민족 학교로 보낸다는 사실이다. 한민족 사회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마저도 끊어버리는 게 남이 아닌 우리 민족의 젊은이들이다.그 거친 처사의 은 친자식이지만 나라는 찬란하던 한 민족의 자원을 잃어가고 민족은 후계를 잃어가는 짙은 그늘 속에 잠기고 있다. 이들에게 후대들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코리안드림을 업그레이드시키자고 호소한다면 씨알이나 먹힐가? 진짜 한근심이다.   우리는 어둠속에서 광명한 앞을 봐야 하다.한국인과 조선족은 문화적 이질감으로 남스럽던 단계를 어렵사리 뛰어넘었다.지금은 동질성을 토대로 이질성을 수용하며 적극적인 부분을 활용하는 새 기류가 숙성되고 있다.해외의 한민족들 속에선 조선족 사회가 중국 사업의 성패의 큰 변수로 작용한다는 리성적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중국인들이 우리 민족과 문화의 가치를 추앙하는 시각이 날로 높아 간다. 이것이 바로 조선족이 비전을 밝게하는 두터운 사회 기반이다.조선족에게 있어서 바로 지금이 당찬 문화민족으로서 중화민족의 무대로의 찬란한 복귀를 서둘러야 하는 시기이다.민족의 화원을 찬란히 꾸려가는 호시절이 지금이다.   한국에서, 다국어에 능통하고 두 나라 문화에 익숙한 조선족 후예들이 산업계에서 인기를 일구월심 높혀가는 참신한 기상이 일고 있다.두 문화를 꿰찬 우세로 두 나라간의 교류에서 겨룰 대상이 없는 독점적 우세가 있기 때문이다. 일진일신(日進一新)하는 세계화의 마당에서 140여개 나라에 7000만 동포를 둔 광활한 천지인데  여기서 우리 후대들이 뿌리가 들리고 퇴색한다면 숱한 사람을 웃겨도 한참은 웃길 일이다. 우리 후계들이 중국내 한민족의 튼실한 교두보로 우뚝서기 위하여 그들에게 활무대를 지어주고 조선족 문화를 고양하면서 후계자로 자라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역시 기성세대의 몫임을 명기해야 한다.   란 속담을 음미하며 우리 터전를 키우는 이 문화라고 인유(引喩)해 본다. 우리는 이 를 기껏 관개하여 생신한 새천지를 개척하고 건실한 자손들을 길러내자.우리가 생계전쟁의 시대를 거뜬히 넘어 신조류 문화민족으로 거듭난다면 조선족이 중화민족의 우수 민족으로,글로벌 한민족의 차이나(China) 구심점이 된다는 꿈은 결코 일장춘몽은 아닐 것이다.  (끝)    
56    삐뚜렁소리에 바른소리 댓글:  조회:4751  추천:6  2012-11-18
삐뚜렁소리에 바른소리 김인섭 2012-03-28 2012年3月26日 저녁,CCTV 핫이슈담론(焦點訪談) 시간에 백암송(白巖松) 아나운서가 말문을 열었다. 3월 23일 에서 18세 되는 청년이 흉기를 들고 란동을 부려 일사삼상(一死三傷)의 참안을 빚었다는 찌르릉한 뉴스였다. 지극한 사소지사로 인명에 칼부림을 들이대어 메체가 물론 만민이 우끈하고 불안의 나락에 떨어졌다.한심한 것은 턴센트사이트(騰訊網TENCENT)에서 사건의 앙케트 조사로 동 사건에 대해 희비 양자택일의 코너를 만들었는데 참가자 6161명 중 기쁨을 선택한 사람이 무려 4018명인데 65%란다.어떤 말빠른 친구는 (应该举国欢庆啊!鞭炮响起来!小酒喝起来!音乐开起来!)는 을 올렸는데 36100개의 중에서 하나지만 쾌재를 부르며 맞장단 OK를 친 심술보들이 5172명이란다.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사람이 생벼락을 맞았는데도 깨고소해 하는 세상이다,한참은 노이로제에 빠지고 말았다. 오늘 사망자 학교에서 추모회를 여는 동시에 위생부 고관이 범법자를 엄벌하라고 호소했다는 기사가 보이기에 리플란을 번졌더니 3만여개의 리플이 쏟아지는데 아닌 게 아니라 거개가 야멸찬 쓴소리고 간혹 반론도 뒤섞이어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데 내용은 대체로 병원이 환자를 볼모로 돈 짜내기에 혈안이고 죽는 사람에게도 약바가지를 가차없이 씌우는데 왜 이건 외면하고 분개한 사람만 그르다는가?는 주문이다. 상상 극치인 병원 부패부터 징벌하라는 요청이었다.그 진의를 음미해 보니 비아냥거려도 죽음에 대한 찬사는 아니고 는 삐뚜렁소리었다. 병원에 가면 약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터무니없는 돈을 털리우고 가난하면 병원 엄두도 못내는데 의사가 약으로 뒷돈을 챙기고 사례금을 꿀꺽하고 돈이 없으면 짐승 취급을 받는 등등, 병원의 비리에 대한 소문이 항간의 풍경이 된지 오래다.테레비,신문 지상에서 일부 병원의 비리를 적발한지 한두 번이 아니다.우선 사실의 진부는 차치하고 참사 앞에서 만민이 이런 악평을 내놓는다는 자체는 누구도 한 번 쯤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가 싶다.장엄한 생명 찬가가 울려야 할 성역인데 대중의 안목에 음지로 되었다면 슬쩍 넘어 갈 일이 켤코 아니다. 의료 부패는 소수인에게 발생한다고 자위(自慰)하는 부류들도 꽤 있었다.시야비야를 떠나 례를 들어 보자.당신 밥공기의 밥이 10000 알이라 할 때 4999알이 변질한 밥알이라도 소수이다.당신의 소수란 무슨 개념의 소수인가? 그 밥에 썩은 밥알이 10개라면 0.001%인 극극소수인데 당신이 그 밥을 그냥 먹을 것인가?당신의 육신이 이 쯤한 병균과 독이 대수롭지 않은 초특급 체질이면 몰라도 완전히 썩은 밥이라 와락 쏟아버릴 것이다.이것이 인간사이다. 물론 동 사건은 의료 분규가 아닌 악성 형사 사건인 만큼 범법자의 치죄는 물론이고 무책임한 네티즌들도 시비의 판가름을 받아야 마땅하다.그러나 귀책사유를 당사자의그름으로만 치부말고 사건의 역사적,사회적 원연과 근인,현상의 내인과 외인 전부를 미시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옮음직 하다. 제도의 미비,공정공평의 이상(異常),인문정신의 부족,사회신임의 결손,빈부격차의 확대,자률정신의 결여,법률의식의 약화,의료분야의 부패 등 다수 요소들이 복합한 결과일 것이다.아까운 생명의 타계,노축암(怒蹴巖) (분한김에 바위를 찬다.) 만용을 부린 유치한 범죄자,몽니부리는 네티즌들의 가시 돋친 말 속에서 우리는 차분히 성찰해야 할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가! 이 철학으로 사건의 종횡을 조감한다면 가해자,피해자와 전민은 나란이 피해자 반렬에 서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병보기가 비싸고 어렵다는 난제를 푼다고 외친지도 오래다.물론 국가의 대량적인 자금 투입과 정부 노력도 만만치 않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병원을 법제화된 민주 감독의 시야에 놓인, 련민과 사랑이 넘치는 청정세계로 탈바꿈하고 자격 미달자는 즉시 수시로 몰아내는 체제를 건립하는 것이다. 좋은 제도가 있으면 악인도 호인이 될 수 있고 제도가 부실하면 호인도 악인으로 쉽게 변질한다. 생명의 수호천사 앞에서 암만 우직한 울뚝배기도 가해 공격의 예봉은 움추릴 것이다. 곤봉을 찬 경비원을 잔뜩 늘리고 감시카메라를 은밀히 장치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명기해야 한다.참신한 의료체제의 확립, 오직 이것만이 위생사업 발전의 탄탄대로이다. 어느땐가 해맑은 이 체제 구조가 건립된다면 병원은 전민의 성당이 되고 병원직이 숭봉하는 성직이 되고 의사는 하느님의 사자로 추앙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민의 갈망이고 력사의 필연이다.세상을 들썽한 이번 사건 처리가 간단한 범죄자의 치죄로 끝내는 룡두사미식 마무리가 되지 말고 인민병원의 지붕에서 찬란한 인간애 기발이 휘날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끝)  
55    <코리안드림>찬 댓글:  조회:4563  추천:1  2012-11-17
찬 Korean dream 赞 김인섭 2010-12-15 요전, 이모사촌누나 부부가 한국의 노무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집의 노모를 배안하려 왔다.그런데 자형은 들오자 바람으로 노인의 손을 잡고 늘키기 시작하는데 한참 동안 어깨를 들먹이며 를 되풀이한다.방랑에 걸맞는 구명도생의 삶을 접고 돌아와 감구지회에 젖어있는 자태가 가긍하여 곁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사람이 체면이 있어야지 남자답잖게 이게 머야?는 생각에 나는 되려 심드렁해 났다.   저녁에 술잔을 나누면서 주고받는 회고담에서 지난날 생활고로 받은 강타에 멍든 가슴을 열어놓고 간신간신하게 살아오던 삶의 길을 훑어 볼 수 있었다.   18년 전, 자형은 파산 직전인 어느 향진기업(농촌기업)의 공장장을 떠메고 사업하다가 초미의 부족자금을 해결하는 구급책으로 자택담보차관을 한 것이 빌미로 되어 둥지를 잃는 맹랑한 처지로 급전하였다.막다른 벼랑에서 부부는 적수성가(赤手成家)의 재출발로 보따리장수로부터 돈이 된다는 일이면 다 덤비면서 기가재기(起家再起)에 도전하였다.그러나 칠전팔기의 사고팔고를 해도 지워진 빚에다 이자까지 얹힌 짐짝 해탈이 예삿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불의의 강타와 지리한 곤경속에서 자형은 알콜로 일그러진 속내를 달래며 비칠거리는 차수가 날따라 늘었던 과거사도 있었다는 것이다.   마누라가 묻어논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이 고비판에서 육친의 구구스러운 고생 장면을 보며 누나집 식솔들은 끈질기게 이혼을 부추기며 아직은 늦지 않으니 새길을 선택하라고 집요한 권고에다 핍박까지 들이대며 몰아쳤다는 들으니 첫소리다. 그러나 머리서방은 못 버린다는 누나만의 송죽지절은 변함이 없었다.그는 불행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기어이 남편과 손잡고 참신한 가정을 꾸려간다는 단호한 결의로 타인들의 강권을 내쳐버리었다.   자형이 대책없이 헤매이고 있는데도 그를 과녁으로 파상공격을 되풀이 하는 때 집의 노인이 무슨 생각이였는지 는데 그래도 부부간이 금슬이 좋으면 차차 잘 살 날이 올 것이니 믿어주라는 한마디 충언을 던졌다는 것이다. 로인이 무심중에 내뱉은 한 마디는 궁지에서 몸부림치는 자형에게 더 없는 축복이었고 삶의 용기를 부추기는 금언이 되어 큰 편달이 되었단다. 오늘 노인을 만나니 들이쌓인 설움이 암장같이 분출해 못 막겠더란다.   고난속의 부부는 이체동심으로 고생줄을 타다가 어린 아들을 자취시키고 빚더미를 지더라도 한국에 가 돈을 번다는 지독한 비원을 굳히었다.생명의 전부를 걸어놓는 각오로 코리안드림팀들의 전렬에 가담한 것이다.입국 초기에는 쌀알을 훔치는 생쥐처럼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침불안석으로 나날을 보냈다.천우신조인가!? 때를 맞춰 노무현 대통령께서 따뜻한 시책을 펼치면서 활개를 죽 펴게 되었고 착한 사장님들도 관심과 동정을 베풀어주시면서 앞길을 안내하시고 수땜을 해 주시었다.어둡기만 하던 앞길은 트이었다.열심히 일만 하면 더 바라볼 것도 없었다.   원래 그들은 더 체류할 심사였으나 결국 아들의 채근에 끌려 노무현 영전의 참배를 대단원으로 가족 단란의 귀향을 단행하였다.사랑하는 아들과의 재회가 12년 만이다.저간에 10대 초반이었던 아이는 옥죄는 고독과 신고를 이겨내고 대학문을 나와 열심한 회사 생활로 자생자결이 꺼뜬한 제살이 길에 들어섰다. 게다가 국가중점대학의 고학력 색시를 데리고 대도시의 덩실한 아파드 단지에 자택까지 마련해 놓고 팽글거리는 딸애까지 두고 있었다.심신이 지쳐진 시부모를 맞아 놓고 며느리는 자기들에겐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으니 로인들은 건강하게 잘 살기만하면 된다고 우줄거리는가 하면 달마다 시간을 맞춰 생활비와 보건비를 쪽쪽 바친다는 곧이 들리지 않는 자랑인데 슬그머니 뒷조사를 하였더니 불궈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이젠 뭔가 더 바라는 것도 없고 과거지사를 말하자 해도 목만 멘다는 내외의 말이다. 가슴에 박힌 것이란 생계를 이유로 두고 떠난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설음이고, 결혹식마저도 두 손으로 치러주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은 부부의 20개 손가락으로 풀 수 없는 가슴속 회한이란다.가리산지리산하는 나날에 따뜻한 손길을 벋쳐주신 노무현씨와 대책없이 헤매이는 내외간을 받아주시고 지켜주신 사장님의 은정은 맘속에 정히 갈무리해 둘 것이란다.   코리안 드림의 대망을 안고 이 땅의 겨레들이 한국 땅에서 무더기로 전전한다는 소리를 들은지도 오래지만 감동적인 실체험은 처음이다.   한국에서 체류하는 어느땐가 이 애주가, 호주가(豪酒家)에다 골초 흡연가인 남편이 문뜩 금연단주(禁煙斷酒) 거장으로 되였더란다.누나는 어디가 불편한 게 아니냐 의심하면서도 우둥푸둥하게 말짱한데 간대로야 하고 불문에 부쳐버렸다.   어느 날 남편의 집물을 정리해 주러 숙소에 가 이것저것 뒤지다 무심중에 뭐가 적힌 노트가 보이기에 번져보니 는 글발이 눈에 비치었다.누나는 심중을 덮어놓고 한참 관찰하니 실로 회사 회식이든, 연회석이든, 친구 모임이든 모든 식사 장소에서 술 한 방울 안 대고 담배 한 고치 안 태우더란다. 대고 싶은 욕망도 이젠 깡그리 사라졌다 하길래 거짓말도 빨갛게 한다고 은근히 관찰했더니 실로였다는 돌돌괴사(咄咄怪事)이다. . 이 전설 같은 실화를 코리안 단꿈의 텃마당에서 참사랑이 엮어내었다.만약 누가 가능하다면 이 사랑의 소산물을 의 제목으로 미문을 만들어 두면 좋겠다고 별궁리도 해 보았다.   참말로, 남편의 실명은 만산(萬山)이고 마누라의 실명은 송죽(松竹)이다.오늘,남가일몽에 심취한 저 땅의 조선족 프롤레타리아들이 만수가 휘감은 천산에 도열한 창송취죽[蒼松翠竹]마냥 한결같이 짙푸른 빛을 내뿜는 그 날을 바라본다. (끝)  
54    수요와 필요 댓글:  조회:4352  추천:2  2012-11-17
                                                        김인섭  2012-10-31 사이트를 뒤져보다 나를 답답하게 하던 기사 몇 건을 라렬해 본다.   몇십 년을 고위급에서 우뚤거리던 친구가 권력오용에다 천문수자의 돈을 꿀꺽하고 녀색에까지 푹 찌들어 버젓한 를 쓰고 권좌에서 곤드두박질 쳤다는 스캔들이다.매체는 는 화려한 슬로건에 기대어 허궁치기 딴전을 부리며 무소불위 행세를 해 왓다고 대서특필하였다. 만민의 심기에 재를 뿌리는 들썩하는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수호(搜狐) 사이트①의 기재이다. 과학자들의 고찰에 의하면 연해 지역에 물부족이 심각한데 52개 도시중 극도부족이 18개이고 엄중부족이 10개이고 과부족이 9개이고 상당부족이 9개이고 전체의 90%가 정도부동하게 물이 모자란단다. 거기다 가심화 일로만 걷고 있다는 부연 설명인데 원인은 물자원의 랑비와 물의 오염이다.   역시 이 사이트②에 내지에서 백혈병 환자가 급증하는데 그 요인은 물,공기 등 환경 악화와 농약의 과도한 사용이라는 기사가 실렸다.환자 증가수가 원래의 4만명으로 부터 지금은 년8만명을 훌쩍 웃돌고 있다는 주장이다.병원의 혈액과는 보편적으로 만원을 이루고 고액치료비의 부담으로 환자와 가족의 애간장을 안달복달 태우고 있다.   매체는 어젯날보다 얼마나 장성했고 잘 산다는 뉴스로 늘 꽉 찬다.발전을 하였으니 그럴 법도 한데 번영한다는 화려한 뒷뜰에 이런 징그러운 일들이 줄느런하니 잘 산다고 포식한 배를 슬슬 만지는 우리가 차분히 성찰을 해 볼 일이 아닌가 생각이 맴돈다.말이 있은지도 오랜 소문들인데 결코 슬쩍 지나칠 범사가 아닐 것이다.   하나는 사회 공복의 자리에서 야단독장(惹端獨場)을 치며 인민이 내준 권력의 마당을 부정축재、부화방탕의 환락가로 만든 방탕아이다.그 다음은 수자원을 무절제로 랑비하고 더럽히며 돈을 번 대가로 후대의 터전을 오물천지 불모지로 만드는 들이다 .이 다음은 물과 공기에 유해물을 토해내고 식물에 독물을 뿜어 팔아버리는 밀살 들이다.여기의 원흉은 생물적 욕망을 원색적인 발로이다.   잘 산다는 명제를 되풀이 해 본다.공직자가 충신이 된 공동체에서 청정한 물과 청신한 대기를 마시며 살 때 이것이 행복한 시민사회이다.흥청망청 먹어대며 무한정 욕심만을 부리며 자원을 랑비하고 환경을 더럽힌다면 이것은 동물적 욕구 만족일 뿐 인간의 복된 살림이 결코 아니다.   적자생존의 가혹한 정글법칙을 고취하여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떼돈을 벌어 부자인 것이 아니다. 발전과 행복의 기반이란 사회성원들지간의 공생공영의 뉴대가 확립된 데 있고, 진정한 부자적 현대화는 수요되는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어떻게 값지게 쓰고 불필요한 것을 어떻게 최대한 줄이느냐 하는데 있다.   과학적 발전이란 명제를 실현하기 위하여 방탕한 오직행위, 자원랑비의 생산행위,건강파괴의 경제행위는 엄정한 징계와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현실속에 있어야하고 전 사회는 햇살이 쏟아지는 당양지지(當陽之地)로 조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조화사회 건설의 대전제이다. 공생공영과 필요를 무시하고 자기의 수요만을 추구하는 무한경쟁의 세상에는 진보가 아니라 공도동망(共倒同亡)만이 유일한 탄탄대로이다. (끝)       주: ①2012-10-27일, SOHU(搜狐)사이트     ②2012-10-29일  위 사이트
53    수필-사라지는 고향 댓글:  조회:5041  추천:1  2012-11-11
사라지는 고향                                                      김인섭  2012-0-07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사자성어는 동물의 귀소본능과 일부 어별들의 회귀본능과 맥을 같이하여 인간의 애향심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생물체의 귀가성으로부터 인출한 인류의 망향 정감도 동물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시류에 밀려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바닷가의 어디에 삶터를 잡은 역마살(驛馬煞) 나그네가 돌탄막급(咄嘆莫及)의 신세를 호소하기 위함이다. 만 사람이 한결같다는 향수의 발로이겠다. 장구한 나날 타향에서 헐떡이며 다녔어도 고향에 대한 모정(慕情)은 달아오를 뿐 식은 적이 없다.인제는 인생의 이순으로 바이없이 끌려가며 차차 여가도 많아지니 가슴속의 회향병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태생지로 내몰군 하였다.   늦가을 어느 날 용무차 시간을 내어 유소년 시절의 애환이 서려있고 생의 꿈을 키워주던 산간벽촌을 찾았다. 타지를 떠돈지 오래지만 마냥 고토를 등지고 지냈던 것은 아니다. 공사다망으로 부랴부랴 왔다가도 무심히 지나쳤을 뿐이다.여태껏 고향땅 모습이 아수라장이란 수풀 같은 소문에 귀를 주고 있다가 이번은 쪼아보기를 작심한 방문이었다.   내 고향은 연변의 어느 골짜기에 있는 안골 마을이다.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조선반도의 무자비한 인재(人災)와 가공할 천재를 대피하여 이 고장에 울짱을 박으려고 좁쌀 한 말의 대가로 풍수지리에 족집게라는 명풍을 모셔다 살자리의 택지(擇地)를 위촉하였다.두둑한 매복료(賣卜料)를 얻어챙긴 그는 여기저기 사곳을 누비다가 이 골안을 둘러보고 남녘 하늘을 향해 앙천축수하면서 가파롭게 올리벋은 뒷산은 서북쪽의 액귀를 막아주는 토지신이요 동남을 향해 탁 틔인 밋밋한 비탈은 풍년를 갖다주는 곡신의 놀이터인데 당신들의 명당이 다른 곳일 수 없는 바로 이 곳이란다.거기에 부연하여 윗쪽에서 흘러오는 석간수는 후손만대의 생명수요 앞쪽의 골개천 옹달샘은 장수를 키워내는 억겁의 령천인데 둘이 없을 길지라 간권(懇勸)하니 개척자는 귀가 번쩍 뜨이어 삽을 콱 박았다는 전설이다. 실로 그 천우신조의 은총이였던지 이 안동네에 해해년년 풍년이 찾아오는데다 아이들이 망백초(忘百草)로 건강하고 로인들이 학령(鶴齡)으로 장수하여 농사고장에다 장수촌이라 린근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왕견(往見)하니,원래 간선도로에서 들어가는 토사도는 포장길로 멋진 탈바꿈하여 격세지감이 불끈 솟아올랐다.그래도 빛바랜 추억을 살리려고 승용차는 세워놓고 8리 길을 걸어 오른다. 마가을이라 갈걷이를 끝낸 들녘은 쓸쓸해도 경사진 곡저 량편에 계단을 이룬 전답이 예와 같이 정겨웠다. 헌데 지레짐작이 동인인지 지나치는 낯익은 동네들을 보면서 이 터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고단한 삶이 엿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직하였다.기억에 아련한 농가들이 세월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하고 땅쪽으로 푹 가라앉아 그 모습이 구슬프기만 하다. 심란해진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다 개울을 가로지른 줄다리에 앉아 다리쉼을 하며 내리다 보니 때는 갈수기여서 작은 물줄기가 까까스로 흐르는데 뿌유스름한 물색이 눈깔스럽다. 그 옛날 구갈이 나면 시름없이 마시던 일급수가 탁수로 되어버려 마음이 읍읍불락(泣泣不樂)이다.어쩐지 세멘트 길바닥도 무척 서먹서먹하였다.   굶주리던 모진 세월과 발빈전쟁(拔貧戰爭)의 세파 속에서 끈끈한 정을 나누던 옛 이웃들을 마주하려 마을에 들어선다.허나 회억은 가슴에서 숨쉬나 눈앞의 현실에는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다.삼십여 호가 모여살던 터전이었는데 인적기 보이는 집은 대여섯 호 정도이다.거거의 대못으로 처깔한 집들 마당은 풀 풍년이고 돌담은 허물어지고 주저앉았고 어느 집은 기둥까지 썩어내려 눈이 호되게 시렸다.동네 탄생의 기념수인 아름드리 버들 밑은 한 길 되는 잡초가 꽉 서 있다. 가축들의 기척은 귀를 씻어도 안 들리는 마을에서 으쓱 무엇이 엄습하여온다. 장수촌이 몰락촌으로 일변하였다.   허전함에 헐헐거리다 죽마고우 옛친구와 마주했다.70고개가 보이는데 최년소라 촌민조장이란다.반짝이는 기억을 더듬으며 옛 이웃들의 안부에다 잡다한 일상까지 한담을 나누는 중 원주민들 거의는 외국으로, 도시로, 혹은 자식을 따라가고 남은게  6호인데 그 식솔이 합해야 11명이란다.그것도 로자,환자가 아니면 하느님의 분부대로 움찍거리는 약자들이다. 두메산골에 고고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린지 십년이 넘는단다.거자(去者)들이 버린 땅은 타민족들이 다루는데 이젠 그들이 가난티를 다 벗고 자가용으로 통근 농사를 하는 모양이다.세상이 이러하니 자기들은 입살이만큼 농사나 지으며 이럭저럭 살다가 때가 되면 떠날 생각이라고 속내를 꺼내 보인다. 내 고향 마당지기들이 씨가 바짝 마르고 있었다.   개혁개방이 경직된 낡은 체제를 수술대에 올리자 만백성은 가난의 사슬을 끊으려고 지동지서하며 치뛰고 올리 뛴다.약진하는 산업사회의 뒤를 따라 더 많은 점유와 신분 상승을 꾀하며 끝머리도 모르고 고공 줄타기를 한다. 이들 중 셈이 빠른 날파람군들은 마력을 발휘하여 부를 쌓았거나 도시민으로 기틀을 잡아가고 다부분은 소강상태에서 앉은걸음으로 어정거리는데 일부는 살인적 경쟁에 못배기어 고군약졸로 굳어지는 형국이다. 각자위심(各自爲心)으로 변혁에 둔감했던 이들과 바이없는 순정파들, 역운을 탄 힘없는 사람들은 가난 설음을 감내하며 탯자리 지킴이로 전락하였다.   친구는 무척 반기며 마누라에게 음식 대접을 주문하고 아랫 마을의 옛 친구도 불러온다.근처에 가게가 없어 엉뚱한 장면이나 때우려 시내로 갈 때면 상비로 갖췄다는 비축분을 꺼내어 초졸한 술상을 차리고 백주잔을 나누었다. 하는 이야기란 집체화 나날에 추위와 기근에 허덕이며 이 산골에 동잇땀을 쏟던 이야기와 팽글팽글 돌아가는 세상을 따라 못간다는 이야기에다 누구는 어쩌고 나는 저쩌고 하는 한담객설인데 어쩐지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처량한 행여소리로 들리며 가슴살이 찌근거리었다.실로 는 속담이 이게 아닌가는 생각을 거뜬 올렸다 내리웠다.그래도 이 선량한 향토민들이 최후의 동네파수군들이고 이 사회를 떠받친 의 영예로운 직원들임을 속저리게 느끼었다.   해넘이가 되어 발이 무거운대로 자리를 떴다. 친구의 작별 인사말이다.유서깊은 이 땅은 만고불변이겠는데 이 나그네는 바야흐로 완벽한 실향민이 되고 있다.    호텔에 돌아와 고향을 잃고 친구를 잃고 회억의 까지 깔끔히 잃는다는 상실감에 허우적거리며 저녁을 굶었다는 사실을 밤중에야 의식했다. 현대인들이 고향에 대한 련민의 깊이는 얼마일가!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하게 변해버린 고향을 어찌해야 할 지 앞이 오라가락하였다.오붓하던 그 산촌이 무너져 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휘영휘영하는 마음을 꽉 잡고 있을 수 밖에 도리가 없었다.   용무로 만든 술자리에서도 동네 이야기가 이어졌다. 근디말이여! 여출일구(如出一口)로 네 마을만이 아닌 조선족 사회가 끝장이라며 한결같이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질러댄다. 북적이는 중생들이 돈방석을 노리고 태평세월을 찾아 맹이동하는데다 출산기 여인들의 대탈출과 생육 기피로 하여 민족의 관산이라 불리는 이 뜰이 인구의 격감.교육의 황페,경제의 기형이란 한파가 몰려와 위태로운 사지판에 오른지 한참 된다. 온 민족이 된 몸살을 해대는 이 터자리에 이 들었다는 실감이 머리를 짓누르도록 몰려왔다.   리향민들 다수는 나름대로 물질적 포만감에 쌓여 급제했던 반가 도령의 금의환향보다 못할 게 없다고 배를 만지며 자부하고 있다. 가난이 덕지덕지했던 궁상을 벗어내치고 풍요의 시대를 즐기며 세시의 행사 때나 경조사 때면 멋있는 차림에 자가용으로 포장도로를 내달리니 옛적의 고을 원님도 부럽지 않으리라.그러나 번쩍이는 외형의 안쪽에서  득은 무엇이고 실이 무엇인가를 생각이나 할가. 금전만에 샛별눈을 박고 있으며 잃은 것들의 귀중함이나 후대의 훗날은 꿈에나 꿀가!   이국 땅에서 말 못할 천대와 기시를 받으며 번 아까운 돈을 술놀이,카라오케,외적인 과시에 마구 날리며 전통과 문화의 계승에는 뒷전이고 후대의 민족언어 교육마저 시원히 팽개치는 게 남이 아닌 우리의 숱한 갑남을녀들이다.그렇게 귀한 애들을  반숭건숭 인간으로 전화시키는 싸가지결핍증 행실을 보며 이다. 가부간 조선족 공동체가 꺼져 내리고 그 문화가 불티나게 사라지는 게 확연한 모습이며 민족 절멸의 동녘이 보일보 다가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돈 번 뒤에 민족 상실이라면 이는 적자 장사에다 이다.   어느 땐가 철학 교원이 사회 발전은 파도식, 라선식의 전진상승이라고 력설하던 기억을 더듬는다. 이 영구진리와 조선족 사회에 등식을 세우려는데 이 둔한 머리로선 해법이 없었다.해진 군복에 낡은 총검을 차고 세계의 최강이라 뽐내던 일본 관동군을 향해 당장 네 땅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치던 주덕해 선생이 보고 싶었다.그는 애국애족의 불굴의 정신으로 당찬 조선족 사회를 건설하여 중화민족에 불후의 업적을 남기었다.그 본전을 후손이라는 뭇사람들이 빡빡 긁어 먹는 때 이 영걸이 재출현한다면 작게 반가우랴.   그러나 이는 푼수데기의 토막생각 이상은 아닐 것이다.급진급변을 거듭하는 디지털 시대에 사회의 변혁과 진보를 어느 한 카리스마적 호협한에 기대어 실현하다는 환상은 구시대적 정치 유물로 된지도 이슥하다.다름 아닌 조선족 공무원들의 의 탁월한 지혜, 지성인들의 창조정신과 민족의 신념각성이 더없이 필요하다.설법은 간단하나 심중한 심혈의 대가를 치러야 될 것이다. 고향과 문화가 사라지고 후대까지 사라진다는 오늘, 단결기래도명천(团结起来到明天)!※ 을 웨칠 때가 래일이 아닌 지금이다.   타향에서 삶을 꾸리는 내 같은 무리들은 생계 전쟁이 미완의 과제이다. 다만 기한에 허덕이며 동년을 자랐고, 섬찍한 동란에서 청소년을 보내었고, 개혁개방 시기는 지동지서로 헤매이는 긴긴 날이었는데 인생의 저녁엔 고향의 상실과 민족의 리산이란 고배를 마시며 개팔자 인생을 보낸다는 기분에 오늘도 가슴앓이 시련을 받고 있다.   자기의 무능함은 애써 숨기는 뒤소리군이지만 고향만은 사랑스럽다.그 이 든 땅에 라도 없을가! 파아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시내가의 실버들이 춤추던 동네에 사과배꽃,살구꽃,아기진달래가 활짝 피는 그 날을 돈수재배하며 기원한다. (끝)      
52    촌지주기 촌극(寸志 寸劇) 댓글:  조회:4290  추천:2  2012-11-10
촌지주기 촌극(寸志 寸劇)                                                       김인섭 2012-10-02 9월10일은 교사절, 중소학교 부모측은 주나안주나의 고민에,교사측은 받나안받나는 걱정으로 허덕이며 부형과 선생들 사이에서 촌지를 수수(授受),사양,거부,반납하는 촌극이 음으로 양으로 년례행사처럼 벌어진다. 아무튼 교사를 존중하는 념원을 표시하는 절중한 선물을 제외하면 이 시비총중의 촌지는 학부모들이 교사를 도덕의 시험장에 밀어넣고 항간에 시야비야를 불러오는 엄연한 현실이다.   촌지(寸志)의 어원은 일어인데 일본어사전에서 의미는 작은 정성,변변찮은 선물,자기의 뜻 혹은 선물의 겸사말이다.한국어에서는1. 어떠한 특별한 혜택을 받기 위해 뇌물로 주는 금품인데 흔히는 선생이나 기자에게 주는 것.2.자그마한 정성을 표시하는 선물.3.속으로 품은 작은 뜻이라 해석된다.시대의 산물인가 그 본래 뜻은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는 낯가림 선물이었으나 현재는 뢰물에 가까운 부정적인 뜻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변의 어느 사이트에서 는 설문 코너에 들러보았다.오늘 현재로 찬반이 48:52 비례인데 반대편은 일색으로 반기를 드는데 대비해 찬성편은 대개가 남들이 다하니 수중축대(隨衆逐隊)로 받아도 무관하다거나, 소수이니 문제 없다거나, 선생들은 월급도 적은데 좀 받으면 뭐냐 등 반숭건숭의 대답일 뿐 가표를 던진 누리군은 없었다.확실한 것은 참가자 전체가 아니곱살스레 보는 시선이라는 점이다.인간의 최고 희망이라는 후대육성의 성역에 고행(高行)이 고스란히 넘쳐야 할 대신 촌지라는 부조리가 불문률로 되었다니 정토락원에 탁수가 흘러든다는 씁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요즘의 촌지는 답례품의 성격을 떠나 걷잡을 수 없이 체적증대의 상승선을 긋고 있다.촌지를 넘기는 부형들의 요구는 자기 자녀를 다른 애들보다 더 잘 봐달라는 대가성이고, 거부했으면 모를까 받은 쪽의 교사는 그 촌지의 두께에 따라 부모의 요구에 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할 처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결과물은 교육이란 이 성당의 의 위반을 대가로 이 애들에게 소위 가 돌아간다는 것이다.더 말하면 덕육,지육,체육,미육이 겸비한 인재를 육성한다는 학교,가정,사회의 의 엄중히 위반하고 애들의 건전한 성장을 무시하는 탈선행위를 한다는 것이다.실제로 수해자는 자식이 되고 사회는 수치계산이 안되는 무형손해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부모측에서 본다면 촌지는 도리어 자식을 잘 키우려는 자기 희망을 릉멸하고 애에게 특수심리,투기심리,라태심리,개인주의 사상을 키워주는 우둔도깨비짓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서릿발 같이 휘둘러야 할 교사의 교육채찍을 무력화시키는 촌지가 바로 부모의 이다.진정 부모라면 돈봉투로 자녀의 공부、진학、편안을 사려는 비분의 욕심을 버리고 장점은 표양받고, 잘못은 벌을 받고, 곤난은 극복하는 의지를 길러 주도록 해야 마땅하다. 이 인생의 대목을 넘지 못하는 어린싹들의 앞날이 암울하지 않을가 지레짐작을 해본다.   물론 촌지 의미의 변질은 사회적 요인과 직결이 된다고들 말한다.그러나 더 정확하다면 학부모의 이기심과 교사의 사명감 부족이 빚어낸 합작품으로 봐야 마땅하다. 암만 어디가 변해도 후대들의 요람이 오염되는 변화는 없어야 할 것이다.학부모들이 교정에 촌지를 살포하고 혼돈속에서 교사들이 신성한 신분을 잃는다면 이 오리무중 속에서  애들은 면역이 떨어지고 겉보기는 강골이나 속내평은 섬섬약골인 의지결여증(意志缺如症) 로 자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력설하지만 촌지의 본색을 되살리고 뢰물에로의 악변을 두절하기 위하여 사회적방지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교원들의 자률정신 수립이 전제가 된다.허나 제도의 미비와 교사의 도덕 높낮이만을 가지고 가타부타 한다면 과분히 편파적인 시비이다. 학부모들이 인민교사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변질된 촌지를 찔러주는 을 금지해야 한다.부모들이 촌지의 한계선를 잘 분별하고 진정 교사를 존경하면서 그 위상에 손해가 가지않도록 분촌을 잘 따지는 지혜를 수립해야 한다.   훌륭한 스승이 뛰어난 학생을 양성한다는 란 말이 있다.선생은 학생들의 제일 훌륭한 본보기이고 정신적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교사의 존엄성과 륜리성에서 부족의 빈구석이 비친다면 학생들은 들을 말을 잃게 된다.아무튼 교사들이 학생들 앞에 숭고한 모습으로 서려면 촌지의 시련도 가파른 고개를 넘듯이 넘어야 할 같다. (끝)  
51    조물주의 <잘잘못> 댓글:  조회:4545  추천:1  2012-11-07
                                                   김인섭  2012-09-03 일전에 급한 용무로 충남의 대전시로 갔었다.   대낮인데도 찌는 듯한 더위에 질려 호텔에 드러누워 심심소일로 텔레비를 돌렸다.바로 나오는 프로그램은 CMB대전지방방송의 이란는 실화 방송이었다. 사건은 지역의 어느 농촌에서 80대 후반의 부부가 60이 넘은 지체장애자 아들을 데리고 어렵사리 보내는 화면이다.   운신이 불편하고 몸놀림이 어설픈 아들은 울바자 안쪽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아버지는 아들의 먹을 것을 위하여 밭일과 잡다한 일로 하루종일 시간을 흘리신다.완벽한 곱사등인 로체를 이끄시며 일만 하시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미스터리이다.할머니는  아들을 수시로 보살펴야 함으로 집 근처를 전전하시며 채소밭을 다루지 않으면 산나물 채집과 마을의 파치물들을 모아서 푼돈을 만들어 살림에 보태며 쓸쓸한 나날을 보내신다.가난이 우환일 따름이지 궁기에 잔뜩 찌든 촌살림의 리면에는 보이지 않는 끈끈한 뉴대가 얼기설기 얽혀 있음이 확연히 꿰비친다.   동네의 뭇사람들은 아들은 장애자센터에 보내고 로인들은 로인복지센터에 가시면 얼마나 편하시냐 간곡히 권고해도 딱 잘라 거절한단다.저런 아들을 거기 보내고  남의 놀림을 당하고 빈축이나 사면 그걸 어떻게 눈 뜨고 보는가는 것이다.그래도 얼마간 되는 구제금에다 노력을 좀 보태면 아들이 하루라도 시름없는 나날을 보낸다는 얘기이다.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진담일 것이다.비애와 사랑이 헷갈린 하소연을 하시는 할머니,그 초점을 잃은 우묵한 눈에서 내리사랑의 찬란한 빛줄기가 흐른다.   자기는 원래 처자가 있었는데 의외의 사고로 잔페가 되니 안해는 가버리고 아이들도 서울에 있다고는 하는데 평시의 련락은 없고 간혹 일이년에 한 번 정도나 얼핏 왔다 사라지면 고작이라는 장탄식이다.애들이 그립잖은가는 물음에 아들의 막연한 대답이다.   난감한 일가였다.울적하게 보고 있는데 문뜩 해괴하고 야릇한 생각이 불쑥 떠올라 가슴을 헤집고 들었다.조물주께서 이 땅에 인간을 하사하신 은정은 더 이를데 없지만 하시는 바에야 차라리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늙고 세상도 먼저 하직하도록 만들어 주셨더라면 너와 나와 갑남을녀들은 영원히 티없는 부모의 사랑만 받으며 살아가고 부모공양의 부담을 떠안고 있을 번민이 없었을 것이다.어느 누구는 부모를 어떠어떠하게 대접한다는 비아냥거리는 야유 소리를 들을 걱정도,누구는 여차여차하게 어시를 박대한다는 항간의 찬 시선을 들쓸 근심도 싹싹 없어질 것이다.로인들에 대한 가족의 부양 기능이 나날이 쇠약해지는 풍진세상인데 사회는 경로라는 난제에 부심할 일도 없고, 거금을 쏟아 경로원 따위를 지을 필요도 전혀 없다.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에서 막대한 부담이 덜어질 것도 불보듯 빤하다는 명약관화(明若觀火)가 아니겠는가?! (끝)  
50    소수론리와 돌밥원리 댓글:  조회:4301  추천:3  2012-10-11
돌밥이란 뭐냐는 물음에 누군가 돌로 지은 밥이라고 대답했다면 희한한 웃음거리로 되여 차세대까지 전해질지도 모른다. 인간계에서 돌밥이든 콩밥이든 쌀을 모재(母材)로 한다는 것 쯤은 욕토미토(欲吐未吐)의 철부지까지 중소공지(衆所共知)하는 례사이다.그런데 필경 쌀밥인데 딴 밥이라 이르니 여기서 경계를 분명히 해야하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세월이 좋아지고 경작、타작、정미 기술이 발달하여 요즘엔 돌을 가리는데 신경을 별로 안 쓰고 밥을 지어도 돌을 씹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말을 꺼내니 춘풍추우의 지난날 물함박에 쌀을 일며 돌가리기에 마음을 사리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선하다.그래도 밥을 먹으며 돌을 씹을 때가 푸술하여 간혹 한 개가 씹힌다면 그래도 뱉아버리고 마는데 두개를 넘기면 이거 진짜 돌밥이라며 툴툴댔다. 3개가 넘으면 물에 휭구어 돌을 가라앉이고 먹는 촌극도 벌어졌었다.만약 다섯 개 정도라면 이게 진짜 돌뭉치라고 내버렸을 것이다. 어느 밥점에서 모래가 한두 알이 있는 밥을 두세 번 팔았다면 가게가 사지판에 오를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서 모래알을 겻들며 중언부언 해대는 리유는 그릇의 밥알 개수와 그 모래알의 비례를 티적거리며 설명하기 위함이다. 쌀알이 만알 정도인데 모래알이 세개라면 돌밥이 되고 5개 정도라면 버려야 할 쓰레기라는 점이다. 다섯알의 모래와  쌀알의 수자를 대비하면 소수도 극소수도 아닌 리호(厘毫)의 량으로서 1/2000이 된다. 엄연한 사실은 이 정도라도 돌밥이라 취급하는게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요즘은 모래 한 알이 들어가도 밥의 성질이 개변되고 그 질과 상품가치가 쫄딱 다운되는 세월이 되어버렸다. 조글로 사이트에서 “교사절의 촌지(紅包),이대로 좋은가?”는 설문 페이지를 무심히 번져보았다. 대부분 애플러로 봐야 할 댓글 중에 “몇몇 반주임이 가지는 돈을 가지고 수많은 교원을 욕하니...정말 리해가 안된다.”는 리플이 달렸는데 그 론리가 눈귀에 거슬려 한참 머리를 굴리다 필을 들었다. 이 소수가 어느 소수를 말하는가 생각했다. 교육에 주는 가해는 도외시하고 그 정도면 괜찮다는 용서중심의 “리론”이 아닌가? 다수가 아니면  문제가 안된다는 시각이다. 만인이 질지이심(疾之已甚)하는 병페를 놓고 그게 뭐 대수냐고 방심하며 나긋한 용인술(容忍術)을 발휘하는 것이다. 대명천지를 어지럽히는 불량품마저 관대하는 성향이 만연하는 현실을 직지하며 촌지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말이다. 번져나가는 비리를 방치하는 얼빤한 사상로선이 아닐 수 없다. 이 친구분께서 그 소수론리를 필자가 꼬집는 돌밥원리에 대입하고 되풀이 해 보시기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날 일반에서 행해진다는 촌지가 심해진다는 소문은 들어왔지만 그 량과 폭이 량적으로 얼마인지는 알길이 없거니와 구구히 이야기할 생각도 없다. 다만 후대를 키우는 해맑은 성역을 잠식하는 이질물을 평가하는 방식이 시류를 거스르는 발상이 아닌가 뇌까리고 싶어서이다. 모래알이 얼마간 들어있다거나 또 몇 개 뿐이니 그래도 쌀밥이  아니냐는 사고방식의 무리한 답에 항변할 뿐이다.  정보화시대에다  지식화시대라는 디지털시대이다. 우리는 두루뭉실하게 지내던 전세월의 리념에서 벗어나 고속도로 회전하는 격변기의 엔진속에서 티끌 하나도 파멸적인 후과를 초래한다는 현대적 감각을 수립해야 한다. “천리 언제도 의혈에 일결한다.(千里之堤,毁于蚁穴)”는 경험철학을 되살리며….  
49    송충이면 솔잎을 먹어라. 댓글:  조회:3862  추천:1  2012-08-15
  자기 분수와 정도에 알맞게 처신하라는 의미로 는 속담이 있다.이 명구는 인삼,녹용이 인체 보신에는 고급 한방약이라도 송충이에게는 사약(死药)이라는 자연 섭리의 반증이다.이는 인간이 살아가는 리치에도 역시 적중하는 보편진리라고 고집해 본다.   해마다 일제히 폭주하는 학교 졸업에 동반하여 되풀이되는 구직 시즌이다. 그중에서 명마(名马)급 좌석을 점거한 친구들은 거물 업체가 최혜대우의 화려한 조건을 나부끼며  부랴부랴 가로채 간다.일부 동무들은 금권(金权)이란 를 교묘하게 리용하여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구멍이나 문틈새를 날쌔게 비집고 들어 량반의 반렬에 새치기한다.그래도 대다수는 나름대로 화려한 리력서를 혁명군 기발처럼 치켜들고 도전하는데 굴뚝 같은 마음이나 직장의 선택에서 미숙한 새내기들의 공통성을 늘 엿보게 된다.   인생의 첫 취직은 잠간 다리쉼 하는 농막을 짓듯이 손뼘재기나 걸음짐작으로도 취급해야 할 일이 아니다.이것은 밥그릇만에 아닌 한생을 두고 심각한 영향을 일으키게 되므로 심사숙려를 대전제로 해야 할 중대사이다.대체로 사회의 상류에 서 있는 유능인들을 보면 첫 직장부터 상승일로를 걸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인생의 려로에서 쓴맛단맛을 싸지게먹어댄 기성세대들의 진언(眞言)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늘 고개를 쳐들었다.   진로의 선택에서 최우선은 자기가 어느 부류의 재료인가를 파악하는, 보기에는 여반장(如反掌) 같은 어려운 과제해결이다.말하자면 자신을 투철하게 료해하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명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누구도 바라던 바의 일은 멋지게 한다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환경요인과 부딪치면 엉뚱한 결과를 빚어내는 게 다반사이다.그러므로 유심적인 어리석음을 피하고 이란 잠언을 명기해야 한다.   사회 진출하려는 젊은 지성들은 미리부터 자신에 대한 자아적 평가, 사회적 평가와 바라는 희망을 집합시켜 완정한 자기를 설계하고 직업 선택에 들어가야 된다.일단 결정되었다면 주어진 조건에 충실하고 직임에 전력을 몰부음으로서 잠재능력을 최대한 현실화시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이것이야말로 일신의 사용가치가 목적하는 인생가치로 전화하는 힘찬 첫 걸음이다.   전력투구하면서 창의성을 키우고 발휘하는데 공을 들여야 한다.이것은 자기의 신분을 상승시키고 만족된 삶을 영위하는데서 첫째의 조건이다.어느 집단에서도 충실성과 창조성을 가진 일원이라면 늘 승진이 뒤따르고 상등석을 넘겨받는 건 천인일양(千人一样)이다.남을 위하여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다는 통설은 디지털 시대에 한 치도 어김없는 세상 리치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예의가 바르고 성실한 태도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구축해야 한다.세간인 전부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평등하게 존중해야 한다.인생의 행복한 변화는 흔히 거창한 계획에서가 아니고 작은 일, 작은 존경으로부터 파생된다는 현실을 간파해야 한다.눈앞의 큰일 작은 일 일체를 정갈히 끝맺어야 큰 일을 감당한다. 는 옛 현인들의 충언은 대충 들어둘 말이 아니다.   인생의 길은 길지만 자생하고 창조하며 사는 시간은 한 찰나이다.이 사이에 변신의 기회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 오고간다. 허나 그것은 잡아쥐려 로심초사해 되는 것이 아니고 흔히는 오늘을 열심히 살고 오늘의 일을 예의전심(锐意专心)으로 하는 어느 순간에 발견되고 찾아온다.매일에 최선을 다하고 매사에 정성을 부어넣는 이것은 기회 창조의 최고 비결이다.특히 사회 입문의 첫시작이 인생을 장식하는 제일의 황금기라는 성공 인사들의 경험담은 사회 생활에서 좌우명으로 기억해 랑패될 일이 없다.   자력갱생의 초입에서 세도(世道)에 어두운 햇내기들이, 산전수전을 겪은 로병사들의 실토정을 들어두면 적자생존 칼바람이 몰아치는 세상을 살아가는데서 플러스된다는 점, 숙지하면 노력의 성과가 배증된다는 점을 억지로도 알아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  
48    조선어, 미래 지향형 인재의 조건 댓글:  조회:4047  추천:3  2012-07-18
일전에 대련의 한 교수가 한국의 모 대학에서 인재 양성의 취지로 학교의 조선족 중에서 연구생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정작 적격자를 찾고 보니 전부가 조선어를 몰라 완곡히 사절하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재 상당수의 조선족들이 자기 언어를 모르는 탓에  진로가 어려워지고 있다. 2, 3년 전만 하더라도 조선족들은 거의가 조선어를 알았고 적잖게는 일본어까지 잘 하여 졸업 즉시 일터로 내빼더니 요즘 교문을 나서면 대책없이 헤매는 애들이 다수란다. 그렇다고 영어나 한어 수준이 이전의 학생들보다 높은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민족 인재에 대한 수요는 왕성하지만 역으로 학생이 줄어들고 조선어를 모르는 수가 꾸준히 늘어난다는 이야기이다. 비록 한 학교의 현상이지만 민족사회 내의 심각한 모순을 반영하는 축도가 아닌가 싶다. 현재 조선족학생의 급감으로 학교의 규모가 작아지고 페교의 극한 상황까지 계속 번져지고 있는데다 다수 학부모들이 으로 애들을 타민족 학교에 진학시켜 교육의 위기에 부채질하는 심각한 현실이다. 신성한 부모의 권리로 자식을 위한다는 구실로 자기 문화를 포기시키고 민족의 을 긁어버린다는 극명한 선언이다. 오늘까지 조선족의 발전은 언어를 바탕으로  한 문화가 기반이 되여있었다. 아쉽게도 그  은혜를  톡톡히 보는 기성세대(전부는 아니고)들이 살 만할  때가 되니 반전하여  제  자식들은  민족사회에서  “축출”하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목표가 따로 있을테지만 시대의 변화에 둔감한 이 부류들은 일취월장하는 세월의 새 기상을 꼼꼼히 살피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오늘의 조선족은 중국을 기반으로 하고 한국과 세계 곳곳에 삶의 터전을 구축하였고 중국의 곳곳에서 개혁과 발전의 선두주자로 야심차게 사회무대에 오르고 있다. 조선족이 재도약하는 강력한 에너지가 배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과 문화의 발전에 새로운 기반이 조성되고 있다는 청신호임이 틀림없다. 중한 문화에 익숙한 조선족 인재들이 날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세계의 한민족들은 대 중국 사업의 성패에서 조선족들이 큰 변수로 작용한다는 인식을 다져가고 있다. 한국에서 조선족의 활동 마당은 넓어만 가며 조선족의 위상과 역할이 날로 높아가는 현실이다. 이는 우리들의 전 지구적 교류에서 갈수록 많은 기회를 지어주고있다. 수많은 민족의 지성인들은 전 지구적 한민족네트워크 건설에 혼신의 힘을 쏟고있으며 빛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차세대 젊은이들이 지역과 리념의 담벽을 허물고 통합과 협력의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결의를 한결같이 다지는 모습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여기에서 공동한 인식의 근간은 우리 민족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이미지를 승화시킴으로써 국제적인 경제, 문화 공동체를 건립해아 한다는 시대적 사명이다. 중국을 구심점으로 한 동북아 지역에서 국제 협력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력사적 변화에 직면하여 조선족은 중국이라는 광활한 천지를 무대로 빛나는 역할을 일으키게 될 것이 전례없이 기대된다. 이런 불가역변화의 정세 속에서 조선족 인재에 대한 수요는 날로 증가되고 있으며 관련 국가, 단체들과 기업들은 중국과의 교류와 미해결 현안을 뛰어넘는 일차적 선택으로 조선족 사회에 눈을 돌리고 미래 지향적 조선족 인재들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이와 같은 유리한 고지에  서 있음을 명기해야 한다. 적어도 10년, 20년후의 앞날을 바라보며 후예들의 앞날을 그려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책임이라고 단언을 내린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상당한 부모님들이 자기의 금지옥엽들을 민족어와 차단시키고 있어 가뭄든 민족의 뜰에선 인재들이 바싹 말라들고 있다. 민족문화와 중국문화를 동시상장(同時上場)시키는 것만이 조선족이 가진 강력한 세계적 경쟁력이고 민족의 무한한 가치이고 나라와 세계에 공헌하며 살아가는 탄탄대로임을 설파하는 말이다. (끝) 원 제목:조선족 인재의 가물  
47    조선족의 드림 댓글:  조회:4692  추천:5  2012-07-06
지난 90년대 초의 중한 수교는 조선족 력사에서 중대한 전기를 맞아왔다. 조선족 한국행의 획기적인 서막이 열린 것이다.   20여년의 변천을 거쳐 오늘의 한국은 명실공히 우리의   반경 안에 놓여 있다. 조선족이 한국 붐에서 전례없는 실리를 챙긴 것도 확연한 현실이다.그중의 다수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한국의 출국,한국 문화의 향수, 한국 산품의 소비는 생활화되어있고 심지어 범조선족이 한국에 턱을 대고 발편잠을 자는 소강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보다 더 값진 수확은 조선족이 한국 사회의 진수를 리해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삶을 영위하는 노하우를 키웠다는 기꺼운 현상이다.낡은 가치관과 관습은 이국 땅의 고통속에서 무너지고 적자생존의 찬바람 속에서 얻은 처세의 지혜는 우리 민족의 삶의 지평을 대대적으로 넓혀 주었다.생존경쟁의 잔혹한 론리가 살판치는 이국이지만 중국땅에서 지켜온 민족문화의 가치의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허나 한국행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얻은 수확에 반하여 상실한 대가도 만만치 않다. 인구의 격감으로 공동체의 해체,문화의 황페,교육의 위기가 민족의 뿌리를 쾌속으로 잠식하는 엄혹한 사실이다.이 생사존망의 된고비를 넘지 못하면 민족이 이 땅에서 사라진다고 아우성소리가 높아만 간다.조선족은 금의옥식(錦衣玉食)을 얻은 대가로 민족적 을 잃어 버린 것이다.   희비가 헷갈리는 코리안 드림의 싸움판에서 우리의 민족사회는 재정립이냐,사멸이냐 하는 혼돈의 시대를 맞아왔다.지난날에 살아가야 하고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원인으로 이국을 찾은 것은 시대적 몸부림으로 봐야 한다.그렇다면 절박하던 생계 문제가 차요화 된 오늘 조선족은 더 높은 단계에서 지난 세월과 판이한 청사진을 그려야 마땅하다.   조선족에게 있어서 한국과 한반도는 영원한 희망의 땅이다.한반도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조선족의 발전과 정비례의 관계를 이루게 된다.지금의 조선족은 돈을 번다는 원초적인 목표를 넘어 매개인이 진정 한국에 도움이 되는 파트너가 되고 전체 민족은 지구상 한민족의 믿음직한 집단으로 되어야 한다는 굳은 결의를 가져야 한다.이것이 중한 두 나라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 속에서의 조선족의 일차적 작용이다.   조선족은 나라의 발전에 기여하고 타민족과 공생공영하는 례의 바른 민족으로 되어야 한다.위해서는 우선 완벽한 조선족이 되어야 한다.시대에 바싹 따르고 타민족과 잘 단결하며 공적인 사업에 애정을 보내는 슬기로운 민족이어야 남에게 돋보인다.이리하여 우리 민족의 공동체를 타민족과의 융합이 진정을 실현된 중국특색의 민족문화 공간으로 건설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전사회가 조선족에게 바라는 기대이다.   후대들의 교양은 가장 절박한 문제이고 시급한 문제이고 심난한 문제이다.많은 지성인들의 노력은 필수이겠지만 전 민족적인 자각과 행동이 필요하다. 약동하는 중국에서 세계7000만 한민족의 당찬 집단이란 이것이 조선족의 최고 값진 재산이다.후대들에게 이 문화를 완전무결하게 전승시키는 것이 잘 살아가는 첫째 비결이고 남의 존경을 받는 첫째 리유이고 나라에 대한 위선 공헌이라는 이 점은 기성 세대들부터 명기해야 할 요체(要諦)이다.   조선족 공무원들이 사회 사업관 민족 단결에서 찬란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민족의 인문 자원을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가치로 실현시키는 사업은 공무원들의 몫이다.오늘에 민족적 삶에 경제 기반이 구축되었다면 튼실한 민족산업과 출중한 비지니스 사회를 건설하여 세인에게 펼쳐 보여야 한다. 많은 어려움도 따르겠지만  우리 공직자들의 노력과 지혜로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중한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는 것은 조선족의 영원한 과제이다.세계화 시대에 효률적인 소통을 위하여 지배적 언어의 지위가 높아질 것이지만 이럴수록 민족언어가 수요되는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조선족이 꿰찬 두 나라의 언어와 문물은 기필코 선진생산력의 힘찬 활력소로 전화되어 무한한 재부를 창조할 것이다.   새 시대의 조선족이 중화민족의 화원에서 우수한 민족구성원으로 되고 전세계 한민족의 차이나(China) 교두보로 된다면 속절없는 꿈은 아닐 것이다. (끝) 2012-06-10  
46    개방 소고(開放 小考) 댓글:  조회:3982  추천:3  2012-06-09
                                                                      개방 소고(開放 小考)                                                                                                                           김인섭     2012-06-04 이란 단어가 뒤에 따라붙어 인구에 회자된지 긴 시간이 흘러갔다.아마 중국 력사의 한 전성시대를 대변하는 벽어로 청사에 각인될 듯 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이란 의미를 유달리 고심하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한국어 사전에서 개방은 로 씌여있다.중국어 사전에서 등의 뜻으로 풀이된다.오늘 우리가 말하는 개방은 대외와 대내적으로 서로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생산력의 발전을 저애하던 모든 사상적, 제도적인 질곡을 타파한다는 것이다.이 시각에서 보면 개방은 역시 개혁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된다. 개방이란 페쇄를 상대하여 말하는데 한 개 사회제도의 서로 모순되는  두 개 방면이다.절대적 개방과 절대적 페쇄란 존재할 수 없다. 개방사회도 부분적인 페쇄가 따르고 페쇄사회도 일정한 개방이 존재한다.사회는 개방과 페쇄의 유기적인 결합가운데서서 발전하는 것으로서 개방은 필연적으로 제한적인 페쇄와 병립하게 된다. 사회는 부단히 개방과 페쇄라는 이중적 과업에 부딪치게 되는데 이것은 사회 발전에서의 영원한 명제이다.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개방이란 문호개방,경제개방,문화개방,사회개방,정치개방 등이 망라된다.개방은 시대적 내용을 가지는 바 현실을 리탈한 무분별한 개방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고 무작정한 페쇄는 사회의 질식을 초래한다.간단히 말하면 개방할 것은 전부 개방하고 패쇄할 것은 전부 페쇄해야만 사회가 순리롭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방 사업은 고도의 과학성과  민주성을 수요하는 시스템 공사이다. 개방이란 어의(語義)에서 보면 열어놓고 풀어놓는다는 뜻이나 모든 규제의 환화와 제도의 해제가 무조건 정확한 것이 아니며 반대로 모든 페쇄 자체가 무조건 착오인 것이 아니다. 그의 정확성 여부는 그것이 활력있는 사회를 재정립하고 생산력의 발전을 추진하려는 요구에 부합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법제도적인 개페(開閉)의 균형을 맞추는 사업은 사회모순을 해결하는 주요 사업의 하나로 된다. 개방은  내부적 개방과 외부적 개방이 있는데 내부적 개방은 외부적 개방을 결정한다.정확한 내부적 개방이 없이 성과적 외부 개방이 있을 수 없다.내적 개방은 외적 개방의 기초이고 외적 개방은 내적 개방의 표현이고 그의 발전이고 전개이다.내적 개방과 외적 개방의 유기적인 결합은 과학적 개방의 핵심 과제이다. 우리가 말하는 개방은 경제개방과 사회개방(외교,문화,정치 포함)인데 경제개방은 사회개방의 귀결점이고 사회개방은 경제개방의 보증이다.정확한 사회개방이 없는 경제개방은 성공할 수 없고 경제목표를 떠난 사회개방은 도비심력(徒費心力)에 불과하다.인류 사회는 영원한 사회개방과 경제개방의 상보상제(相補相制)의 교호작용 속에서 발전한다.지도자의 걸출한 지혜는 이 량자의 관계를 정확히 처리하는데서 표현된다. 개방은 리익을 조절하는 사회적 운동이다.그 과정에서 부동한 사람과 집단은 자기의 리익과 가치관에 따라 그를 평가하고 인식하게 되는데 그 실천에서 그들의 태도는 천양지차로 나타난다.개방이 자기 이익과 가치관에 배리되면 필연적으로 반대하고 제애하게 된다.그러므로 개방 사업은 다수인의 이익을 보증할 수 있는 제도적으로 확보된 사회개방이 전제로 되어야 한다.오로지 진보적 력량이 우위를 점한 사회만이 생기있는 개방사회로 될 수 있다.   개방의 목표는 전체 사회성원이 평등하게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법치사회를 건립하는 것이다. 진정한 개방사회는 전체 인민들의 도덕적 감정과 사회적 각성의 최고치를 불러낸다.이 사회의 표지는 과학적인 개방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다수인의 의사에 따라 조화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구축된 것이다.
45    개혁 주석(改革 注釋) 댓글:  조회:3412  추천:1  2012-06-08
                                                                        개혁이란 말을 몇십 년 되풀이하다 요즘에야 내포된 함의를 한참 숙고해 보았다. 한국어 사전에서 개혁은 으로 씌여있고 한어 사전에서는 고 풀이하고 설명한다. 간단히 개혁이란 사회 수요에 배리되는 제도적인 조직과 구조 및 그에 상응하는 법률과 정책에 대한 인간의 주동적인 개정 및 재정립을 말한다.포괄적으로 말하면 개혁이란 새로운 법적 제도의 건립으로서 그  범위와 심도에 따라 개혁,혁신,혁명 등 용어를 늘 사용하게 된다. 개혁은 광의적 개혁과 협의적 개혁으로 나누는데 전자는 개혁의 일반성 즉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혁신 행위를 말하고 후자는 그 개혁의 상대성 즉  그 시대의 특수성이 담긴 혁신을 말한다. 사회는 영원히 진보와 퇴보,진보와 보수간의 모순 속에서 발전하므로 인류문명의 력사는 변혁과 반변혁간의 투쟁의 력사라고도 말한다.결국 개혁이란 전진이냐  퇴보냐 하는 승부 겨룸이다.   허나 모든 개변이 개혁이 될 수 없다.그 개변이 사회 발전에 유리하면 개혁이고, 낡은 것을 지키려 한다면 보수이고, 옛것을 복고하려 한다면 반동이다.결과적으로 그 진보 여부의 객관적 기준은 그 개변이 생산력의 발전에 부응되는가 하는 것이다. 개혁의 핵심은 경제적  리익관계를 조절하는 분배구조의 재구성이다.그는 부동한 이익을 반영하는 주장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개입하는 사회적 합의 사항이기에 각자는 자기의 이익에 따라 부동한 태도를 가진다.대체로 개혁이 그의 이익을 건드린다면 반대 세력이 되고 그 상대측은 추진 력량이 된다. 그러므로 개혁의 사업엔 대량적인 진보 력량의 후원하는 인재 집단이 선두주자로 서야 한다.개혁의 주도권을 누가 잡는가에 의해 그 결과는 운니지차(雲泥之差)로 나타난다.  사회적 개혁의 추진은 정확한 결책을 내리고 강유력히 추진하는 권력을 수요한다.그러나 반드시 두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첫째는 모든 권력에 한계선을 그어 놓고 누구를 막론하고 그 테두리 내에서 강력하도록 해야하고, 둘째는 그 라인을 침범하거나 넘어선다면 즉시 견제하고 심각한 처벌을 가하는 독립적이고 강력한 권력이 있으야 한다. 법제화된 민주적 결책,강력한 집행, 강력한 감독의 유기적인 결합은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삼대 요소이다. 개혁은 신구교체의 과정으로서 늘 불온정의 요소를 가지게 되는데 모든 권력 행사는 민주감독과 여론감독의 시야에 놓여야 한다.특히 집행자들은 권력람용, 권력오용,부정축재(不正蓄財)의 비행이 있을 경우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현실적 위협 속에 있어야 한다.어떠한 개인이나 사회 집단이던지 한결같이 리기본위의 경향을 가지므로 그들의 모든 행위는 전사회적 감독과 비판이란 타률(他律)의 위력이 있어야만 손인리기(損人利己)의 비행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다. 실시간으로 권선징악(勸善懲惡),론공행상(論功行賞)하는 사회 시스템은 개혁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공구이다. 사회는 영원히 량변에서 질변에 이르는 운동,변화 과정이다.그러므로 개혁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이며 그 과정은 부단히 경험을 총화하고 교훈을 섭취하며 자아 성찰을 진행하는 과정이어야 한다.이 과정을 이탈한다면 개혁은 중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또 어떠한 개혁이던지 그는 전반 력사의 한 단락일 수 밖에 없으므로  한 개혁의 도착점은 다른 한 개혁의 출발점으로 된다는 점을 명기하여야 한다.  개혁의 목표는 사회평등,경제평등,정치평등이 보장된 조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그 외적 표현은 사회의 모든 성원이 충분한 민주 권리와 공민 권리를 향수하고 진정으로 법률 앞에서 사람마다 평등하다는 법제 원칙이 실현되는 것이다.전체 인민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개혁의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 그의 최종 결과이다.   (끝) 201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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