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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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장인정신이 몸값을 올린다. 댓글:  조회:2040  추천:2  2016-07-12
요즘 이 동네의 대중 매체들에서 장인정신(工匠精神)이란 합성어가 기록의 빈도수(频度数)를 높여가며 핫워드(Hot word-热词)로 되고 있다.선진적 로동문화를 대변하는 이 단어는 우리 나라가 제조 대국에서 제조 강국으로 부상하는 필요조건이며 현대사회를  건설하는 불가결의 정신요소라며 그 의의를 설파한다.현재 장인정신으로 민족성의 높낮이를 평가하는 성향을 보며 조선족이 더 우수한 로동 민족으로 부상할 수 없는가는 우자천려(愚者千虑) 를 해봤다.   원초적인 장인정신의 의미는 수공업자들이 어느 한 손재주에 정통하고 정교하고 섬세하게 제품을 다듬질하는 태도를 말하였는데 세월의 변천에 따라 그 의미에 새로운 뜻이 부가되고 내용의 폭이 증가되면서 현재는 모든 제조업、서비스업과 행정직에까지 확장되어 인간의 사업 정신를 수식하는 미사려구로 되어있다.분해 해석을 한다면 이것이다.이 정신은 수요자의 최대의 만족을 끌어내는 직업 륜리이지만 최고 제품(서비스)으로 등량의 보상을 받는다는 등가교환적 경제 리념이 포함되기도 한다.   생산력의 발전과 더불어 제1、2차 산업 분야에서의 로동력 수요는 대폭으로 줄어들 것이지만 상응하는 새 서비스 일터는 지식과 장인정신을 동시 구비하고 기술을 생산력으로 능란하게 전화시키는 대량의 일꾼을 수요하게 된다.정보지능사회가 발전할수록 하등 직업의 전반에서까지 완벽한 기술을 장악하고 충실한 로동 관념을 소유한 자가 고용주의 우선 선택으로 되게 된다. 학력의 고저를 과신하던 낡은 습관을 버리고 모든 일터에서 전력투구하는 정신이 수요자들의 우선 조건임을 알아야 한다.현재 선직국들에서는 단순로동、기계로동과  행정로동 등 직업 사이의 차별(급여포함)이 대폭 줄고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예의전심(锐意专心)으로 투신하는 일군들이 선발에서 우선시하고 있다.   취직이란 시점에서 장인정신의 필요성 언명해 본다,요즘 박사생마저도 직장 찾기에 고민이 깊어지며 일자리 창출이 정부의 중대 과제로 상정되어 있다.그러나 절대적 취직이란 여래불이 통치자로 군림해도 만능 묘책이 있을 수 없는 현실이다.이 문제를 슬기롭게 타개하는 데는 학력 고저를 불문하고 직업에 귀천을 두지않고 림하는 자태가 전능 묘약이다. 이 관념을 보편사상으로 토착화시키는 실천이 취직의 골목를 대통로로 전화시키는 결정적 대안이고 구직자들이 장인정신으로 생계와 안락의 길을 찾는 것이 최선책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이름 날리는 일본인들의 제품이 세인의 찬탄을 불러낸지 오래다.그들을 쑬쑬하게 보는 부류들마저 억지로라도 머리를 뒤로 끄덕이며 그렇다고를 표시한다.지진의 위협 속에서 덜덜 떨며 살아가는 그들이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는 최대의 충성과 정력을 쏟아 최대 정밀을 실천하는 범민족적 장인정신이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그들의 령혼 심처에 뿌리내린 이 정신은 사회 대격동 속에서도 경제 강국으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인류가 공동히 추구하는 절대가치라는 시점에서 진지하게 배워야 할 바이다.   조선족은 일거에 빈곤을 내칠 수 있었던 행운의 민족으로서 난의포식(暖衣饱食)의 초요(稍饶) 시절에 들어선 지가 한참이다.이젠 물질적 추구로부터 직업 관념과 륜리를 전환시켜 물질문화생활의 전면적 향상에 눈길을 모아야 할 때이다.특히 소문이 많던 민족의 단점과 결점들이 지금도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어디에 가도 피부로 느끼게 된다.충성심의 결여、기술의 부족、향학열(向学热)의 저하、직장의 빈번한 교체、사고방식의 경직、포용정신의 빈약、한탕치기 냄비 관습 등등은 무성하게 쉬쉬한 소문이다.거기다 심지가 삐뚤어진 언론인들이 간혹 뛰어나와 매체에다 이타저타해 놓으면 그 추종자들이 뒷따라 침소봉대(针小棒大) 과장을 하고 가시 돋힌 추문을 살포하여 우리 얼굴들이 심심찮게 고쳐지기도 한다.생계가 절절하여 눈코 뜰 새 없었던 시대적 불미(不美)이리라.일단 민족의 공익을 잠식하는 해코지군들의 쓴소리는 제쳐놓고 우리에게는 확실히 반성하고 때닦이해야 할 비문화적 병집들이 많다는 점은 수긍해야 할 바이다.핵심은 장인정신의 부족이다.   두루 돌아보면서 로동문화를 승화시키는 작업이 우리 민족이 새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 자세라는 점을 절감하였다.매개 민족 구성원은 충직、최선、최고를 지향하는 소신을 물질 문화 생활에서 전통으로 만들어 나가야 디지털 사회와 동행하게 된다.경제적 시각에서 보면 장인정신을 수립해야만 로동의 질과 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는 안로취수(按劳取酬)의 목적을 이룰 수 있고 세인과 공존공영하는 살길을 넓혀갈 수 있다.   조선족이 춤노래에 능란하다는 소문은 두었다가 할 옛말이다.우리 민족은 구시대에 도취되는 태고연한 모습에서 벗어나 자기를 장인정신이 구비된 로동자 집단으로 업그레이드시켜 민족의 새 지평을 열어야 한다.약소 민족이 시대의 앞장에 서지 못하면 바로 세월 속에 침몰되고 사멸하고 만다는 력사의 교훈은 살려야 할 바이다.최고 품질의 상품과 최선의 봉사를 사회에 헌납하는 민족이 될 때에 전도가 무궁하다.숭고한 장인정신을 조선족의 민족정기로 키워간다면 가능성이 없을 것인가!!! (끝) 2016-07-06 연변일보
103    고향이 '없는' 세대 댓글:  조회:2521  추천:7  2016-05-12
설이 박두하니 직원들은 육신만 사무상에 않혀놓고 제정신은 설쇠기에 보내버렸으니  하는 일이란 얼렁뚱땅 오류 투성이다.명절이면 생기는 명절증후군(综合征) 증세의 하나다.딱딱거리는 회사에서 갈망,고민과 방황이 헷갈린 혼돈 속을 헤매며 사고팔고(四苦八苦)의 풍타랑타(风打浪打) 고초를 겪는 생둥이들이다. 풍요로운 시대를 타고나 인간고란 뭔지 모르는 청춘들의 오금이 들뜬 행동거지에서 이것은 피곤한 생계현장을 해탈하여 잠간이나마 마음의 탕개를 풀어보려는 뭇생각의 발로라고 측은하게 생각했다.   가고파 생각에 덤벙거리는 한 고향 친구의 의중을 떠볼 료량으로 고향이 가고 싶냐 물었더니 이다.부연하여 출생 미구에 부모를 따라 내지에 가 자랐으니 고향이란 자기에게 있어서 이력서 등에 기입하는 원적지일 뿐 그 이상 의미가 없는 그저 출생지란다.아파트촌에서 태어나 금지옥엽으로 자란 외동자인 그에게 형제자매 정이란 있을리 없고 사촌형제란 말도 들어둔 잠꼬대다.말그대로 그에게는 어드메 어느 모체에서 분리되어 탈락했다는 생물학적 고향이 있을 뿐이다.고향을 잃었으나 회향(怀乡)의 향수(乡愁)도, 망향(望乡)의 동경도, 애향(爱乡)의 정감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이 친구 뿐이 아니고 유사한 력사적 원인으로 맘속에 고향이 없는 세 세대가 형성되었다.   기성세대의 인식에서는 태어나 자란 고장이 고향인데 그가 내포한 의미는 간난고초와 희노애락의 극인 장면으로 꽉 채워진 일기장이다. 하여 그 시대의 소설,시,극,영화,노래등 문예작품에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정서가 꽉 차있었고 사람들은 울적하면 고향을 읊조리였으며 매체들은 심심하면 내 고향이여!를 들먹이었다. 그 터전을 가꾸는 것이 숙명으로 되었던 우리의 령혼 심처에는 고향이 평생을 두고 고양되고 갈무리되어야 할 귀중한 존재이다. 더구나 경직된 세월을 뒹굴어온 우리에게는 시도때도없이 고향애에 휘말리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나라와 조상이 고집스럽게 건설하던 고향의 이미지는 여지없이 퇴색해 가고 자신의 삶과 고향의 뉴대성에 그냥 덤덤한 고향불감증 세대들이 한 세대를 이루고 있다. 고향! 조상! 민족문화! 같은 화두에 사명감일가 련대성마저 느끼지 못하는 세대, 이들이 민족사회의 계승자 대렬에 들어섰다는 현실이다.현직의 사회 멤버들은 고향의 상실감에 가슴앓이를 하기에 앞서 새 시대의 민족문화를 번영시키는 물결을 일으켜야 할 때이다. 이 후세들의 리상과 념원에 부응되도록 민족의 고향을 재건하여 그들의 새 미래를 열어주는 집단적 행동을 보여야 한다.   세찬 흔들림 속에서 영고성쇠(荣枯盛衰)를 거듭하는 고향의 현실을 두고 수많은 지성인들이 공방(攻防) 대안을 제시하고 돌파구를 찾으며  물심량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그러나 기성세대와 가치관과 희망과 의지를 확연히 달리한 후손들이 이 사업에 동참하여야 목적을 이루게 되어있다.개방의 전성시대를 누리며 물질적 도취와 자아실현의 개성을 주창하던 자손들이 다시 집합하여야만 진정한 민족 특색의 사회학적 고향이 존속하게 된다.선제 조건이라면 고향에는 물질과 문화적 흡수력이 있어야 하고  시대화된 공공서비스 환경、경제 환경、삶의 방식、륜리와 규례、관습과 풍습 그리고 선진적 사회시스템이 고착되어야 한다.전망이 어둡고 먹을알이 없다면 오던 사람도 발길을 돌리게 된다.   나라의 장구한 전략의 수립과 진부한 호구제도개혁을 표지로 하여 도농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성시와 농촌의 2차원적 관리구조가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우리 조상들의 헌근지성과 예지가 돋보이던 마을 문화가 사라지는 것도 언녕 기정 사실로 되었다.민족사회의 이런 재분화와 재조합은 우리 민족이 도시민으로 정착하는 새로운 력사과정을 가속화하고 있다.도시화란 이 시대적 물결 속에서 우리 민족의 지리학적 고향에는 중국 특색의 민족도시가 우뚝 서야 할 것이고 설 것이다.   조선족 사회는 현재 역류를 향해 나가야하는 위기와 기회의 림계점에 처하여있다. 역류행주,불진칙퇴(逆流行舟,不进则退)이다.고향민들이 무리 단위로 고향을 탈출하여 공동체는 공동화되고 민족문화는 사막화되어 거칠기 짝이 없고 고향은 쓸쓸하기로 말도 안되는 오늘,고향의 흥망에 감흥을 잃고 무심한 전자게임 세대들에게 기성세대의 이 애절한 부르짖음이 그 고막이나 건드릴가? 맘속의 고향을 사랑하는 후예들이 그 터전을 어떻게 꾸며갈지 좀 궁금하고 수상하다.좀 불안하다.   (끝) 연변일보 2016-5-11  
102    알파고에서 본 미래의 조선족 댓글:  조회:2519  추천:2  2016-04-28
-알파고(AlphaGo-알파고바둑프로그램-程序) 인류의 진화사와 미래상에 대하여 한다하는 학문가들이 자설(自说)을 제가끔 우겨대며 내세우고 있다.그러나 인간은 어느 창조주의 피조물(被造物)로서 그의 뜻을 어기지도 말고 그 론리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원론(原论)에는 반론이 없다.여기서 류추하여 인간도 자기 제조품은 자기의 뜻에 순응하며 복종한다고 확신해 왔다.그런데 요즘 이 억만년의 불변칙이 변화의 무게를 감내하지 못하고 리론 외곽에 균렬이 생기고 있다..   2016년 3월 15일, 한국의 바둑 9단 이세돌(李世乭)과 알파고바둑프로그램 간의 승부대결에서 1:4의 점수로 후자의 완승을 세상에 선고하였다. 알파고 인공지능(AI)의 개발자인 구글딥마인드 회사가 백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펼친 금번의 인간:AI의 각축은 인류 진화사에서의 하나의 획시기적 사건이라며 세간이 수런대고 있다.지금까지 1000번이 넘는 우승을 따냈고 국제경기에서만 18번 왕좌를 제패한 천재가 AI 앞에 무릎은 꿇은 장면을 지켜보며 구경군들은 악연하였다.인간의 생물지능이 물리지능에 패배,이것은 하나의 시대를 가름하는 제야종소리가 아니일가 본다.   인간의 최고 지능을 요한다는 바둑에서 사람을 재끼는 소프트웨어라면 이것은 그가 인간 생활의 거의 상당하 부분을 그가 대신 가능하다는 방증이고 인력만의 령역 거의를 대체하여도 무난스럽다는 례시(例示)이다. AI가 속세에 몰고 올 파장에 대비하여 사람들은 어기채기으로 화제를 만들어 탁상공론으로 올리기도 한다.각국의 수많은 기업들은 전통적 사업들을 인터넷과 결합시키는 인터넷+ 단계로부터 승화시켜 인터넷+인공지능+의 높이에서 시각을 조절하고 있다.나가는 세월과 동행해야 한다는 살아난다는 세월, AI시대에 도래할 생산、분배、소비、류통 그리고 사회구조와 의식구조를 전망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알파고의 승리는 전대미문의 기술혁명의 상징으로서 인류사상의 제4차 산업혁명으로 규정하는 위인들도 상당수이다.멀지않아 길 위의 자동차 70%가 무인차이고, 인간의 수명은 100년 이상이고, 인공지능로봇이 생활의 거의 전부를 대체하며, 재택근무로 지역 제한이 없는 취직이 가능하다는 등등  화제들과 새로운 지능 제품들도 물밀듯 나오고 있다. 보자보자하니 결국 AI가 인간의 전통 생활구조를 뒤집듯 바꿔버린다는 것이고 기존의 가치관은 뭉그러지고 만다는 이상한 소리이다. 그렇다면 재래로 내려오든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거나 양태를 바꾸며 새 서비스들이 우후죽순처럼 발생할 것인데 이것이 인간이 미구에 마주해야 할 엄연한 현실이다.   거창한 의론은 접어두고 그 때의 조선족 상을 그려본다.하늘이 땅이 돼도 인간사회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행·어(語)만은 영구불변이다.생명의 필수인 의식주행은 차치하고, 사회 구성의 핵심요서인 언어에도 심각한 변화가 도래할 것도 령락없다. 현재 구글이 개발한다는 만국번역기(万国翻译器)가 출시되면 언어 생활에는 상상조차 못하던 편리가 조성되고 언어문화가 질적변화를 초래할 것이지만 동시에 AI에 대한 의뢰성으로 인간들의 언어 수준은 기능저하의 심각한 도전을 불러오게 된단다.그와 반대로 즉시성,무상성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다원화된 고수준언어의 수요가 더욱 절박해 질 것이란다.그렇다면 태나부터 중한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조선말은 하늘이 하사한 천복(天福)이 아닐 수 없다.   알파고와 이세돌이 누가 이기든지 결국은 인류의 승리이다.세상이 천선지전(天旋地转)으로 변해도 이 세상은 인간이 주도하도록 되어있다.조선족들은 언어의 보루를 더 다지고 확고히 해야 한다.지리적으로나 국가 정책적으로나 언어 발전의 감제고지(瞰制高地)에 서있는 조선족에게 있어서 그는 교류와 비지니스를 전개하는 값비싼 기초시설이고 막강한 민족적 소프트파워이다.결국 민족에 대해 말하면 경쟁 속에서 공방(攻防)의 검순(剑楯)이 되고,악천후 속에서 항로리탈을 막는 수호신이 되고,문화후생 생활에서는 벅찬 정신생활을 도입하는 매개물로서 작용을 하고도 남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요즘 몇몇 친구들과 한담을 나누는 중 사회가 어떤 혼선을 빚더라도 조선족들은 언어 우세로 언제나 노란자위를 선취득하는 기득권자로 될 것이라고 춰주었다.비위에 맞추려 주어대는 감언리설이 아닌 같았다.두개 나라와 민족에 동시에 향인설화(向人说话)가 가능한 언어기능,이것은 어떠한 AI도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공동한 판단이다.그렇다면 지능시대의 조선족은 조선말(중한이중언어)의 신세를 톡톡히 볼 것으로 내바다보인다. (끝) 연변일보 2016-4-27
101    미래의 아이를 키우세요! 댓글:  조회:2222  추천:2  2016-04-14
20여 년 전, 목에 목침같은 핸드폰을 매달고 바지춤엔 무선호출기(BB机)를 차고 량반걸음을 치며 영광을 과시하던 위인들 작태가 딱하여 눈을 감았던 기억이 아련합니다.그 때 값으로 만원 위아래인데 일반인의 일년 반 급여상당이니 그럴 법도 했겠습니다.사무실의 팩스기도 사치품이었던 시절입니다.세상의 변천이 빨라 이젠 손바닥 반반의 천원짜리 스마트폰에다 회사를 담고 다니며 회의,영업,통신,결제,공부,쇼핑,촬영까지 무난히 즉시처리하는 세태입니다.과학기술의 박진력은 경제,정치,군사,문화,외교 등 모든 분야와 사람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마저도 변화불측의 맴돌이 속을 맴돌게 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정보요,인터넷이요,디지털이요 하다못해 빅데이터(大数据),클라우딩(云计算,사물인터넷(物联网),립체프린터(3D打印机) 등등 신조어들이 줄줄 쏟아지는데 아닌게아니라 어리어리한 세월입니다. 머지않아 컴퓨터,스마트폰은 뒤에 밀리고 또 로봇,생물로봇이 인류 기능의 대부분을 대체하는데 무생명 기기들마저도 인터넷에서 서로 연락을 한다는 등등 인류문명사는 또 한차례의 대전환을 맞아 온다며 과학계가 법석을 이루고 있습니다.이를 지능시대 아니면 개념시대라 한다는데 그 때면 민족 국가간의 장벽과 거리는 현재의 의미를 거의 상실하고 전지구는 대개방 대융합의 력사 항선을 꼭 타야만 한답니다.어제는 탈탈걸음 일일십리, 오늘은 질보질속 일행천리인데 오래잖아 무인 승용차를 타고 어슬렁거릴 인공지능 시대,이런 판국인데 우리의 앞날 특히 우리 아이의 인생 대사는 결코 둘둘 뭉그려 조치할 일이 아니되고 있습니다.   세계 소프트웨어(软件) 우두머리 빌게이츠는 지능시대의 인간은 우선 모변모처모시(某边某处某时)에 무작정으로 존재하는 뉴스와 동정들을 집중시키고 맥락화시키면서 산재(散在)하고 점재(点在)한 쇄편(碎片) 정보들을 하듯 꿰매는 기능을 갖춰야 시세에 따른다고 말합니다.여기서 최우선 필요한 기능은 언어 수준이며 언어 기능자가 사회의 선두주자로 된다고 과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이 예언하며 긍정하고 있습니다.생산력의 눈부신 발전 앞에서 인류는 또 자기를 적응시키기 위해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하고 오늘 같은 변신과 탈피의 진통을 겪어야만 합니다.이런 물결 속에서 된고비를 무난히 넘을 행운은 조선족(이중언어자)이 타고났다고 남들이 부러워하고 있습니다.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민족어를 열심히 주입하여 물들게 하고 민족의 전통 문화에 푹 젖도록 해야 합니다.   여담(余谈)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만 전일 한국에 간 친구가 대졸생 아들의 취직을 부탁하기에 그 애가 조선어에 새까만 모습이 애처로워 뭔가 뇌까리기 싶었습니다.그는 소학교부터 조선어를 리탈하였는데 부모들이 앞으론 조선어가 쓸모없다는 판단이였다 합니다.사회에 진출하고 보니 취직의 어려움은 제외하고 생활의 곳곳에서 조선족 화자들과 엄청나 차이가 생긴답니다.그들에겐 취직 근심이란 걱정은 전혀없고 월급이 높다할가 해외 출장도 삼시 먹듯 해대고 인생의 청사진도 구성지게 그리는데 자기는 되려 먹고살기가 급급하여 고민이라 합니다.돌이킬 수 없는 현실은 철의 흐름이 그들에게 남긴 시대적 상흔이겠지만 유물사관에 대한 무지와 민족문화 가치의 오판으로 남은 가슴 아픈 회한으로 봐야  하겠습니다.   인생은 나아갈 뿐 돌아오지 않는 편도(片道) 렬차입니다.어찌보면 어쩔수없이 부모가 주도하는 어린 시절의 향도가 그의 남은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말이 됩니다.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위해 무슨 기적적인 처방을 탐낼 것이 아니라 뒷날 세상은 무엇을 필요하는가? 혹시 내 아이가 무엇을 가장 잘 할 수 있는가 하는 인식론적 혜안이 있어야 합니다.골수에 박힌 문화 유전자를 추출하고 민족어를 리탈시키는 소행은 너무 근시안적 조치입니다. 급진하는 세상에서 중한 두 언어를 병용(并用)하고 합용(合用)하는 우승자로 만드는 이것이 조선족에게 부여된 최적의 선택이며 최우선 선택지(选择肢)로 되고 있습니다.   유소년의 첫걸음이 인생에 대한 심대하고 장구한 영향은 교육 분야에서도 시시각각 긴 경적을 울리고 있습니다.아이들의 세포핵 속의 문화뿌리를 송두리째 뽑던 교훈을 살리어 어시들은 변화의 노예가 되고 훗날 판단의 선견지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당신의 아이를 사랑하라 권고한다면 두말 잔소리지만 급변하며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앞날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뒷날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두말없이 정확한 책임 리행이라는 점 경종처럼 울려드립니다.   사막의 송엽국(松叶菊)이 고결한 생명을 자랑한다고 옥토에 심으면 즉사하고, 죽순을 먹어야 하는 귀중한 판다에게 귀중 약재 인삼을 먹이면 즉살된다는 소박유물론적 리치를 언명합니다. 미래의 아이를 키우세요! (끝)   연변일보 2016-4-13
100    민족언어의 업그레이드 댓글:  조회:2848  추천:2  2016-03-07
고고성을 울리며 인류의 대렬에 가담한 순간부터 이날이직까지 조선어를 주요 언어로 듣고 배우고 활용하여왔다. 이 언어는 내가 세상 사물을 인식하고 사고하는 도구였고 사회생활을 받쳐준 버팀목이였으며 외부 세계와 호류(互流)하는 징검다리로 되어왔다. 비록 세월의 변천으로 그의 교육, 보급과 응용이 곡저에서 밑돌며 변화의 혼돈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지만 그에대한 애착과 집착만은 만고상청(万古常青)으로 한결같다. 최근 회사 직원이 한 한국 거래업체의 중한 서류 번역의 부탁을 받고 역문을 건네주었는데 그는 조선어식이어서 리해가 어렵다며 재수정을 요청하였다. 하여 중국 생활의 오랜 경험자인 한국인에게 감수를 간청하였더니 그는 별문제 없다며 약간 수정하고 다시 넘겨 주었다. 그 어른은 보는척하더니 만족이라며 함지박 입이 되더란다. 우리를 낮추보는 선입견이 속가슴에 깔린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한참 웃어주고말았다. 멸시하는것쯤은 그런대로 재롱으로 보는데 자체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무지한 배타적 관행의 발로인지라 뒷맛이 씁쓸하였다. 이 시들한 언동은 동민족 언어에 족쇄를 물리는 소행이 틀림없으나 조선어가 아직 저급수준인 현실이므로 상한 기분은 접어두고 용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 매체에서 자주 들먹이는 동의어인 등 명사가 무슨 뜻이냐고 한국인들께 물은 적이 있었는데 몇사람 모두가 그런그런 의미일것이라고 얼버무리며 명답을 내지 못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서울에서 선별없는 외래어가 분탕질하여 토착민마저도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라던 현지인들의 불만이 헛소문이 아니었다. 순수성과 교류성이 탁월한 자기말들을 소외하고 외국어로 우리말을 죽이는 행태에 시효정지를 붙혀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관행이 지역 언어사이의 이질성을 부추기고 호상간의 격의를 심화시켰다는 교훈은 명기해야 할바이다. 비록 지금은 문화격돌의 시기를 뛰어넘어 서로간의 리해도 심화되고 있지만 한국 자체의 외래어 범람이 조선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어의 한국어화 경향은 더욱 확연해지고 있다. 조선족이 중국의 발전과 더불어 세계로 향하는 조류속에서 민족어의 이러한 언어문화의 변화는 대세의 흐름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채로운 중국문화에 파묻힌 생활에서 조선어가 어떻게 고급화로 변신하던지 자신만의 개성을 띨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므로 전체 한민족은 언어의 지역적 차이성을 인정하고 서로간의 교류를 넓혀가는것이 력사적 숙명이고 문화발전의 큰길이란 절대적 진리를 명기해야 할것이다. 내가 주류 언어이니 네것은 전부 없애라는 편협한 관념을 포기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이란 대동 차원에서 서로 배우고 보완하며 친화적인 발전을 시도해야 한다. 남들이 낮추보며 경멸한다고 대들며 반발해도 우리 언어생활의 현실을 보면 그야말로 어깨가 축 처진다. 요즘 이 동네에서 조선어 인재를 뽑는다는 정보가 무시로 전해오는데 적격자들이 실로 드물다. 지난 시기의 인구의 격감, 인구의 대이동, 조선어의 홀대, 공동체의 공동화, 민족의 리산 등등 민족 은 오늘의 인재의 단층으로 적라라하게 로출되고 있다. 인구수가 적고 수준이 내려간데다 언어규범이 혼란한 상황도 조선어 응용의 심각한 방해요인이 된다. 언어교육의 수준을 제고해야 할 절박성이 박절히 제기되는 동시에 지역언어들 사이의 가름막을 해소하는 표준 확립도 긴급사항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조선족은 이중언어교육의 국가적인 노력에 적극적으로 합류하면서 민족언어규범을 재분석하고 그 차원을 승화시켜야 한다. 조선어는 민족문화의 캐리어(载体)이고 민족사회의 존재와 발전의 기본적 인프라이다. 우리는 중국 문화와의 공존속에서 우리말을 주류 언어의 규범이 구현되고 향토색이 짙은 민족어로 업그레이드시켜 그의 사회적 작용을 부단히 극대화해야만 무한경쟁 시대의 시류에 동승할수 있다. 첩첩한 장벽과 겹겹한 형극이 가로막더라도 우리가 주동자로 되어 민족정책을 슬기롭게 락실하면서 지구적인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사회가 조석으로 변하는 오늘은 언어생활과 언어문화에 교차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종합검진을 진행하고 집단행동을 단행해야 할 시기이다. 정확한 정책과 과학적 규범이 치차같이 맞물려야 할 이 세기적 문화창업을 누군가 주축이 되고 어느 주역이 떠메고 가겠지만 그래도 는 기우(杞忧)가 뒤따른다. 연변일보 2016-3-2  
99    년말년시 한마디 댓글:  조회:2479  추천:5  2016-02-07
묵은해가 가고 새해를 맞는다는 년말년시입니다.해마다 이때면 지난해 회한같은 뭇생각을 뒤집으며 새해는 뭔가를 이뤄달라며 도깨비경 외우듯 곱씹었었습니다.그런데 행방없이 어째봤자 복된 운수는 귀신같이 피해가고 쏟아놨던 너스레들은 번번이 공념불이 되어버렸습니다.하여 올해부턴 부질없었던 헛짓은 접어두고 무상무념(无想无念)의 상태로 한해한해를 넘겨가려 작심하였습니다.그런데 오늘 모니터의 한 장면이 나의 생각을 발작적으로 뒤집어버리고 체념했던 속마음을 불어살궜습니다. 2015년12월22일, 운남성고등인민법원에서는 사실이 불명확하고 증거가 부족하다는 리유로 운남성소통시교가현(云南省昭通市巧家县) 에서 독극물투입죄로 무기형 언도를 받았던 전인봉(钱仁凤) 소녀의 법죄사건을 재심하고 의사봉을 내리치어 무죄석방을 선고하였습니다.17세 꽃나이에 13년 옥살이를 치른 끝에 자유라 부르는 자유를 되찾았습니다.어린 딸의 출옥을 기다리지 못하고 끝내 타계하셨다는 그의 어머니에게 련민을 보내기 싶었습니다.딸을 낳아 키웠던 어미들이야 그 속을 알고 있겠지요! 그래도 소녀를 행운아로 봐야만 했습니다.그의 형벌이 확정되는 때는 그가 17세 나이로서 미성년이란 형사책임한계로 무기형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1년 앞서 태여났더면 생명 처분이 가해지지 않았을가?는 아슬아슬한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더 하나,그가 자라는 바로 지금은 나라가 법치를 지향하는 사회건설에 가속페달(油门踏板)을 내리디디는 국가적 영광의 시대라는 현실입니다.소녀는 그래도 팔자치레만은 했다고 봐야 합니다.소녀가 물결처럼 흘리는 눈물을 보며 그가 흘리는 눈물은 물이겠으나 너무 흘린 눈물은 무색의 핏물이라고 느껴졌습니다.그 피눈물이 바로 인민력사를 끌고 가는 렬차의 에너지로 전화되고 있으며 수천만 인민의 법제나라를 건설하려는 강대한 의지를 철로 다져주고 있습니다. 견디기 어려웠을 지리한 감옥살이 속에서 설욕의 신념을 굳게 다진 소녀, 가난한 오빠의 드팀없었던 후원,정의의 기발을 추켜들었던 사심없는 변호사,시대의 물결을 탄 수만만의 네티즌(网民),신성한 의무에 충성하는 법조인들의 법치정신과 인간량심은 한 줄기의 세찬 물결로 합류되어 소녀의 섬약한 손목에서 무거운 철쇄를 끊어버렸습니다.소녀가 사랑하는 오빠와 정의로운 변호사 손목을 잡고 법정의 문턱을 넘어 자유를 향해 걸어 나올 때, 이 나라에 잠재한 정의와 량심의 력량이 얼마나 큰가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이 아름다운 화폭은 우리나라가 법제나라로 향해 매진하는 찬란한 력사적 장면이었음을 실감하였습니다.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가 부강과 태양을 향해 나가는 축소도이며 명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살고보니 주제도 모르고 도를 넘는 욕심을 가지고 있었겠습니다.이젠 로령인구에 편입되고 육신에 가려진 하드웨어(硬件)도 마모지시음(磨损指示音)을 심심찮게 내보내고 있으니 희망도 따라가며 소박해 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디에 애정을 쏟고 열정을 불살라야 한다는 원생적 념원이 잔재한게 원인일가요! 내 사는 내 나라가 번영하고 창성하라는 일념은 더워질 뿐 차가와지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는 내 아이들, 내 친인들과 내 버팀목이 되고 지렛대가 되던 정든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살아가게 됩니다.이들을 위해서라도 내 나라 륭성을 돈수재배(顿首再拜)하며 기원하려 합니다.이마 껍질이 몇번 벗겨지고 고래고함을 질러 그들에게 도움된다면 부끄럼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꺼리낌없이 납함(呐喊)하겠습니다. (끝) 2015-12-25 동북아신문
98    조선족의 <얼치기말> 지키기 댓글:  조회:2589  추천:2  2016-02-07
누가 두 개 언어에 능란하다면 영어로 바이링거리스트(Bilingualist)라 부릅니다.어느 땐가 미국과 일본 친구들이 니는 얼마나 좋겠냐? 그 값비싼 언어를 두 개나 공밥 먹듯 먹었으니…라는 찬사를 들으며 볶은 깨처럼 고소하던 기억이 아련합니다.언어 장악의 어려움과 귀중성의 방증 사례입니다.   조선족 언어란 조선족의 중한 두 언어의 동시장악이란 의미로서 조선말이라 정의합니다.조선족은 숙명적으로 두 언어(双语)를 가지는 민족으로서 바이링걸네션(双语族)이라 불러도 명실상부합니다.조선말은 중국의 생활에서 형성된 두 모국어이고 조선족에게는 쌍방향으로 리용되는 두 외국어로 되어 민족사회 발전을 힘차게 떠미는 추동력으로 되어왔습니다. 특히 개혁개방의 물결 속에서 전민족이 사회 격변기를 무난히 뛰어넘도록 뒷받침한 창조신(创造神)이었습니다.현재의 조선족 발전상이 바로 빛뿌리는 명증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언어를 놓고 이타저타 시비가 지속되는 지금입니다.   지난 세기 90년대,중한 교류의 봇물이 터지면서 다량의 조선족들이 통번역을 주도하였습니다.그런데 협력의 초기부터 조선족은 중국어도 조선어도 다 반숭건숭한 얼치기말을 한다고 야유하는 잡음이 심심찮게 울려왔습니다.조선족을 맞대고 고아대는 장면도 많이 목격하였습니다.이 땅에서 태나살며 그까짓도 모르냐!는 것입니다.언어의 성격,법칙과 인간의 언어 장악 한계를 무시하는 무지의 소치(所致)이고 나라 실정을 엉뚱하게 외면하는 아다모끼의 극치(极致)었습니다.말 공부를 상추쌈 먹듯 싸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동화세계의 천진란만한 해자(孩子)들의 단세포적 발상이라 하겠습니다.   하여 한 때 타민족 전문생을 채용하는 바람이 일었었습니다.그러나 솔선하여 도섭부리던 위인들부터 도저히 불감당(不堪当)이라며 조선족 찾기에 반전하였습니다.한국 생원들은 중국어→한국어 번역에서 강세이고 한족 생원들은 한국어→중국어 번역이 강세인 것 사실입니다.그러나 동시통역의 현장과 맴돌이쳐야만 되는 업무 마당에서는 상대방에게 즉시 의사를 전달해야 하고 두 언어로 업무를 속단 속결해야 하고도 술좌석까지 관여해야 합니다.이것은 한 사람이 여럿을 당한다는 일인다역(一人多役)으로서 상당한 시간적 문화 담금질이 필요합니다.그런데도 는 억지를 부리니 기막혀진 젊은이가 한둘이 아니였습니다.   요즘 동네의 공공기관이나 회사에서 타민족이 중국어나 한국어 전화를 받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틀에 박힌 상투어 몇마디는 수준급이나 몇개 복문(复句)을 들이대면 단통 입귀가 막혀 저레 조선족에게 대신을 부탁합니다.우리에게는 조상이 물려준 문화 세포핵이 있고 이 땅의 물질문화와 정신문화 장독에서 숙성되고 수련된 날카론 언어 감수성이 있기 때문입이다.화려하게 겉발린 말 수준으로는 언저리에 붙자해도 뼈를 녹이고 피를 태우는 힘을 내고도 모자랍니다. 조선족은 이중언어란 쌍검을 휘두르며 사업,통신,상담,분쟁해결 등 상무잡사들을 자의(自意)에 따라 처리할 수 있습니다.두 언어를 종합리용하는 최종 우승자나 패권자는 조선족이라 해도 충족리유률로 설득할 수 있습니다.   분수없는 자화자찬인지 모릅니다만 조선족의 조선말 수준에 확실히 고민이 깊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요즘 년차로 열리는 학우회 모임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100여명 참석자 중의 연설자 숱해가 웬일인지 한어 수준을 대대적으로 과시하며 열변을 냅다 쏟는데 온통 착어(错语)투성이고 바닥을 기는 수준인데 조선어마저 대수 무치고 버무리는 초급생 정도였습니다.이상한 것이라면 조선어가 능한 남녀들의 한어 수준이 다 갑급을 웃돌았다는 실정입니다.자리에서 민족어의 홀시,이중언어교육의 성과,민족문화의 생명력 등이 교차되면서, 헷갈리는 민족의 명암(明暗)을 실감하였습니다. 이 민족은 제풀에 제 언어를 줴뿌리며 제 문화 옥토를 사막화시킨다는 란상(乱想)이 자꾸 반짝거렸습니다.   북경의 어느 조선족 학자의 력설입니다.조선족에게 날리는 이 납함(呐喊)은 조선족 생사존망의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으로 들어둬야 합니다.민족의 사멸이란 언어의 상실이 발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존의 조건과 민족 정책만을 리용하며 슬렁슬렁 조선말 장사를 해도 세계 한민족의 교두보로 될 것은 불보듯 빤하다는 명약관화(明若观火)입니다.피타는 노력이라면 세계 최강의 이중언어 민족으로 될 것으로 자신합니다.지금 우리 민족의 수많은 트레이링걸(三语者)들은 맹위를 떨치며 세인을 놀래우고 있습니다.그 중 4개어 5개어를 겸용하는 많은 영재들은 남들을 악연하게 만듭니다.타민족에 누가 있었던가 세어보는데 손가락이 곱히지 않습니다.건데 누구는 제절로 언어 리탈을 감행하며 후세의 언어 유전자마저 제거하는 행각을 벌이는데 이것은 는 인간성에 잠재한 취약점의 발로인가요! 말마따나 있는대로 때려먹는 찰나주의(刹那主义)란 조선족의 허무한 민질(民疾)의 산출물인가요!   조선족은 공동체의 재분화 재조합의 불운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도 하지만 이것은 급변의 충격에 부딪쳐 내뿜는 유심적 탄식일 뿐입니다.리성적으로 본다면 이 위기는 발전도로에서 지나야 할 단계이며 현세대들에 부여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우리는 세계경쟁의 릴레이트랙(接力赛跑道)에서 문화와 언어의 계주봉을 후대들에게 넘겨주어 그들이 미래 시대의 선두주자로 되게 해야 합니다.아니라면 조선족은 력사책에나 몇 줄 남아 도서관 구석에 매몰되야 할 것입니다.   인구는 격감인데 인재 수요는 급증하고 언어 가치가 반등하는 시대가 지척에 다가오고 있습니다.장사판에서는 공급이 딸리는 공부응구(供不应求) 시장이라 부릅니다.매개  민족성원은 언어 수준을 재점고하고 부응할 대안을 세워야 합니다.내 사는 나라의 발전과 국제교류의 물살 위에서 혹시 잠시는 안 쓰더라도 두고 써도 얼마던지 써먹을 민족어입니다.후대에게 뿌리를 심어준다면 그들에게서는 이미지,몸값,돈벌이가 동반상승하는 시너지(协同效应) 효과과 솟구칠 것입니다.   이 땅에서 키워온 조선족의 은 민족의 천량 재산이며 우리나라와 인류의 불멸의 재부이기도 합니다.기성세대의 어깨에는 이를 승화시키고, 개화시키고, 번영시켜야 할 천직(天职)이 있습니다.까딱하면 후세들에게서 얼방둥이 조상이었다는 쌍욕을 뒤집어써야 합니다.조선족이 언어를 잃고 웃다 울며 사라지는 커뮤니티(共同体)로 되어서야 안되지요! (끝) 2016-02-04 연변일보
97    그 절에 가면 그 중이 되라 댓글:  조회:2702  추천:1  2016-01-21
서울에서 래일 추석인데 뭘 먹고싶냐고 회사 어른들이 주문한다.언녕부터 있던 생각이라 가리봉동이 어떠냐고 청구했더니 그는 펄쩍 뛰며 “무슨 쪽팔리게 조선족 동네야,그 오물장 같은 곳에 가서 뭘 어떻게 먹는단 말이야!”며 무작정 끌기에 속은 꼬이지만 무가내로 따라가 한끼 퍼먹는것으로 때웠다.욕은 듣는 놈이 먹는다더라. 이 눔들이 말씀질인지 말새질인지 언설질을 해도 너무한다고 가슴이 불편해지며 래일 기어이 가보려 작심하였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한국 분들을 욕한게 후회되고 말았다. 그 친구들의 악평이 좀 과분하였을뿐 말그대로 말이 말도 아니었다. 바로 눈에 띄는것은 길에 온통 널린 담배꽁초이다.어떤 길모퉁이에는 한층이 실히 깔렸는데 길청소가 어느땐지 몰라도 우리 사람들이 꺼리낌없이 마구 던져버린게 확실하다. 담배꽁초의 무단투기로 시비가 많은 서울에서 이토록 무개념적 행세를 부리니 현지인들이 한심하다고 하는 비난이 절대 그르지 않았다. 마치 죽을 각오로 마음을 풀어헤친 의 놀음터가 방불하였으니 핀잔이 란무하는 리유를 단통 알게 되였다. 그리고 구석구석과 나무밑에 버려진 냄새신경과 시각신경을 자극하는 쓰레기 주머니이다. 지정한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발작을 아껴 코앞에 던져버리는것이다. 빈곤에서 해탈하려 그 땅을 밟았으면 조금이라도 지역민들의 눈치도 보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해야 마땅한데 이처럼 무책임하고 있으니 토착민들의 심중은 리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구 짓밟아도 전혀 무관계인 로 치부하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악인상은 료식업체의 렬후한 위생 환경이다. 들어간 식당중 다가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가게인데 구석마다에 덕지덕지 진때가 눈에 보이고 주위 건사가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중국인들은 그런대로 사먹더라도 한국인들이면 코를 싸쥐고 뭐라 할것인데 사먹는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으로 보일 것인가. 남의 땅에서 안하무인격으로 활개치는 미개한 으로 비치지 않을가. 가리봉동에는 중국인 대상의 서비스 업체들이 들어차 있다. 바로 의 발원지라 불러지는데 이 곳엔 조선족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동병상련 정보를 교환하는 집결지이기도 하다. 이런 특성으로 조선족들이 흩어져 일하다가 때가 되면 모여들어 향수를 달래고 서러움을 삭이는 만남의 장소였고 지친 팔다리를 뻗는 휴게실이기도 하였다. 하여 이 곳은 조선족, 한족과 한국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동북아 문화결집의 력동적 축소판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러나 각지 사람들이 엉켜사는 곳이라 대소 사건들이 많고 시비거리도 쉴새없다. 더우기 조선족을 반해(半解)한 한국인들 속에서는 앞말 뒤말에 쑥덕공론까지 가세하여 비하가 섞인 찬반량론이 수풀같다. 게다가 조선족 범죄가 있다하면 매체들이 대서하고 특필하며 부산을 떠는데 반지하방에서 코리안드림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선량한 품팔이꾼들은 범죄집단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불안감에 떨고 있다. 그 때마다 가리봉동은 숨을 죽인다. 거기다 추한 도당으로 백안시되어 그야말로 평판이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서는 가리봉동 일대를 조선족과 중국의 문화를 재현시키는 관광명소로 구축할 계획을 몇번이고 세웠다는 기억이 생생하다.그러나 소식이 알려지면 주민들이 왈딱 일어나 반발하여 더이상 공론화하지 않고 범죄예방시스템 적용과 주거환경을 개선해 나가는데 초점을 맞추기로하였다는 소리다. 우선 주민들 수용이 어려운 상황을 해소하고 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은후 사업을 추진한다는것이다. 반대자들이 눈에 빨간 불을 켜고 덤비는 주요원인이 비위생적 생활관습이었다는 전언이다. 자기의 추락된 이미지변신을 위해 조선족 지성인들의 움직임도 열렬하게 활발하다. 그들은 가리봉동을 화합과 공존의 동포타운으로 조성하자며 대림동 곳곳을 누비며 편견깨기에 나선다.공존의 해법을 찾기에 앞서 담배꽁초 버리지 않기, 내집 문앞쓸기, 쓰레기무단투기 방지, 범죄 방지에 주력하고 있다는 메세지다. 일상 생활에서부터 현지인들의 조류에 합류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현대인의 개명한 모습으로 한국 앞에 나선다면 적어도 절반 이상의 불편한 이미지를 불식한다고 웨치는 사람이 다수이다. 한국인의 멸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조선족의 반감 정서도 상당하다. 물론 원인은 복잡할것이나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 그 땅을 밟은 우리들은 하듯 곁사람을 나무랄 처지가 아니다. 우선 나로부터 어수선한 생활습관의 향상에 목숨을 걸고 노력해야 한다. 주민들은 가슴을 열고 포옹할것이다. 깨끗한 놈 욕하는 세상은 없다더라. 자기 사는 뜰의 가꾸기 여부에는 그 내면세계의 정서, 취향과 생활에 대한 태도가 투영된다. 정갈한 모습으로 문명한 환경정신을 내비칠때 조선족은 위상이 향상되고 가치가 승화될것이다. 조선족은 가리봉동의 환경 보전을 위해 주인다운 무한책임을 질 때이다. . 전개해 말한다면 모범 중이 되라! 결국은 돈이 될것이다. 연변일보 2016-1-20  
96    초겨울날의 늦은 반성 댓글:  조회:2453  추천:1  2015-12-26
누가 꾸몄는지 라는 격언이 글 마당에서 간혹 오르내린다.나름대로 뜻풀이 해보니 여인네는 봄의 흐름과 젊음의 실추를 겹쳐보며 애석해 하고 남정네는 일개년계획이 락공(落空)하여 가는 가을을 미련한다는 뜻이겠다.그래도 이맘때면 입이 귀밑까지 째지는 위인이 다수이고 대운이 텄다고 호들갑을 떨어대는 녀자팀도 푸슬하니 이 설법이 꼭 이렇지는 아니하고 확증성도 부족한 것만은 틀립없다.그런데 어디의 누구는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비추의 에 시달리군 한다.   말머리를 돌려,상강이 지나고 립동에 들어서니 이 동네 산간의 나무 무리들이 낳아키우던 이파리를 사정없이 락엽시키며 년차 환절의 자연순환을 연출한다.년부년(年復年)으로 되풀이되는 우주 조화는 세월을 초동에 밀어붙이는데 어떤 사람은 환절의 언덕에서 처연한 심정이 되어 서산락일을 넋없이 바라보고 있다.본능욕에 좌지우지되어 뭔가 차지하려고 애면글면하다가 기진하고 맥진하여 어깨를 처지우는 것이다.농사를 망친 농부가 고생스럽던 한해의 삼시삼농(三時三農)을 돌아보며 락심하는 기분이다.어깨에 걸려있는 훌쭉한 망태도 보기 민망하여 쑥스런 모양을 짓는다.식물계가 한해의 결실을 정리하고 천시운회(天時運回)를 재촉하고 있는데 그는 이지러진 욕망의 환멸과 무능함의 자학으로 꺼지는 탄식을 작년과 똑 같이 반복한다.   그는 남들의 화려한 리력을 부러워한 적이 수도 없이 많을가 뭔가를 더 점유하고 어딘가 더 나으려 아득빠득 애를 얼마나 써왔는지 모른다.허나 달려와 보면 늘 원점과 꼭같아 번번이 랑패감에 쌓여 속앓이를 랭가슴 앓듯 해야 한다. 할일과 안 할일에 분별이 명석하고 가당찮은 번뇌는 쓸어내고 뒤틀린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도리는 입버릇처럼 되뇌인 그 사람이다.그런데 하고보면 무엇인지 모자라 종당에는 헛물켰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거듭되는 지난해 케이스다.   남다르게 무언가를 쌓으려면 무수한 잔노릇을 출중하게 해야 한다.비범이란 완미한 평범의 집합이다.변증법이란 공구로 그 리치를 분해하면 비범이란 무수한 평범 속에 내재하고 소원이란 비범한 평범을 끊임없이 창조할 때만이 성취되고 절호의 기회는 당신을 용납하고 성공이란 피안은 그 상륙을 허락한다.큰일 작은일 모두에 정성을 다하는 품격이야말로 립신양명의 기본 자태일 것이다.허나 이 친구는 일한답시고 늘 징검다리 건너뛰듯 이리저리 오가면서 뚱땅대며 만든 것이란 구멍난 항아리고 우쭐하고 하는 짓이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인생을 떵떵대며 살자면 더 가지려는 갈퀴질 잔꾀보다 불필요한 무엇을 먼저 버리는 재치를 키워야 하고 문뜩문뜩 앞을 가로막는 위기를 해소하는 림기응변의 기지를 갖춰야 한다.위급하면 꼬리를 잘라버리며 위험에 대처하는 도마뱀의 눈물겨운 생존전략과 촌퇴(寸退)하고 척진(尺進)하는 기는 벌레의 지혜로움은 두고두고 배워야 할 본보기이다. 진퇴의 슬기로운 종합기법을 잘 습득해야 한다.그러나 그는 고루하고 편협한 마인드를 고집하는 것이 상투적 수법이고 콧대 목대가 벽창호같아 유아독존의 게지레한 모습이 불변의 자본이다.허심해야 하고 남을 존중해야 한다며 버릇처럼 되뇌이면서 고쳤나보면 그냥 원모양이다.   인생길을 자기 두 발로 걸어야 할 것은 인간의 피치 못할 숙명이다.그 친구는 이 세상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판단하고 자기 푼수가 진짜 부족하다는 명철한 자아인식이 있어야 한다.오늘이 추하더라도 일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듯 정화한다면  약간은 곱게 달라질 것이다.막연히 뭘 바랄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해야 한다.   올농사도 헛농사라며 긴 숨을 쉬는 그에게는 설익은 꿈의 환영이 상심을 자초한 장본인이리라.이젠 무가내로 인생의 모년을 걸으면서 만각(晩覺)의 아쉬움도 있을 것이지만 그래도 전심전력이란 의지를 살리고 무언가 희망을 품어야 한다.   허나, 욕심은 퍼럿게 살았어도 정수리가 듬성드뭇하고 귀밑머리에 흰눈색이 비꼈는데 아랫다리도 늘크데해졌다. (끝) 2015-11-12 동북아신문-2015-12-04  
95    남이 본 조선족 댓글:  조회:3311  추천:3  2015-12-24
중한 자유무역협정(FTA)이 오는 20일부터 발효한다. 이 상리공생(相利共生)적 조약의 체결을 계기로 두 나라 경제문화 교류에는 전례없던 가속이 붙게 될 전망이다.중국으로 말하면 국가별 무역에서 포괄된 범위가 제일 넓고 교역액이 최고인 량자무역일 뿐만 아니라 대외경제교류 분야에서도 본보기도안과 대표적모델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그 득실에 대하여 각자위심(各自为心)으로 여러가지 견해가 있으나 두 나라 관계의 발전에 긍정에너지(正能量)가 만재될 것이란 시각만은 일치하다. 돛을 다는데 순풍인가.이 동네 보스들은 그 나라 귀빈들이 온다하면 길을 쓸어 안내하면서 지역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이 고장은 이란 부귀영화 3대 요소가 갖춰진 무릉도원인데 이 옥토에 돈씨만 뿌리면 십중팔구 어거리풍년이라고 호언한다. 셈수가 빠른 장사군들도 뒤를 따라 잰걸음하며 래빈들의 손을 잡고 파트너십(合作关系) 건립에 열을 올린다. 여기로 큰길이 지나는데 바로 유러시아대륙의 실크로드 요충지가 된다며 합작지려(合作之旅)의 슬로건을 게양하기도 한다.몸놀림이 잽싼 약보들은 두 나라 우호발전의 전성기가 도래했다며 치밀한 합동작전계획을 짜고 있다.   덩어리일감을 앞에 두고 많은 업체들이 업무를 감당할 조선족 인재물색에 나서고 있다. 항만의 한 회사는 한국 업체와 교류사업 확대에 시동을 걸었는데 기존 담당자들의 언어 기능의 미달로 업무들이 들이닥치면 임무 완성이 안되고 차질을 연이어 빚는다고 투덜거린다.어느 대외경제무역 부서에서도 중한교류 관련업무는 폭증하는데 기존 담당자들의 일처리 지연되고 착오가 빈발하는데 그 비상책으로 조선족에게 위임하였더니 맡은 일을 해버리고 놀아버린다며 실토정하였다.할일이 많아 적임자인 조선족에 눈길이 모아지는데 언어의 숙련자 물색이 어렵다 한다. 그건 그렇고,오늘의 조선족 사회는 인구격감과 문화위축으로 하여 민족존망의 고민이 깊은지 오래고 역시 현재진행형이다.90년대 초반부터 벌어진 조선족의 대이동은 인구의 격감,생육의 기피,민족어의 외면,공동체의 해체 등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민족은 몸부림치고 외부세계는 네가 살아 가겠냐!라며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력사 변화에 동반한 진통이라고 말하지만 확연히 보는 손해는 조선어 천대의 결과로 민족 인재의 단층(断层)이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언어를 위시한 민족문화의 자산을 상속할 승계인이 없다면 민족의 멸망 이외의 결과는 없을 것이다. 이런 때, 중한FTA의 체결로 조선족 사회가 가파른 하강선을 그리다 밑바닥을 치고 반등(触底反弹)한다는 기대가 부풀고 민족사회 재도약의 세기가 도래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진다.조선족이 살아가는 나라적 우세와 이미 보유한 경제력과 문화력(언어가 핵심)을 잘 결집하여 종합민족력(综合民族力)을 재형성시킨다면 FTA는 우리가 우수 민족으로 발돋음하는 새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조선족 사회가 오래동안 저조의 늪에서 헤매였다면 자유무역이 뒷바침된 국제교류에서 우리의 경제력,문화력,지정학우세란 장점은 민족사회를 이끄는 삼두마차(三头马车)로 되어 그의 혁명적 변혁을 초래한다고 인정하는 사람도 푸슬하다. 중한FTA는 민족문화 회귀의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다.동네 유일한 조선족 학교에서는 희망생들이 급증하는데 비해 시설의 태부족으로 걱정인데다 타민족마저 어거지를 쓰며 들이민다고 하소연한다.조선어를 배워두면 이익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판단이다.하물며 교학질이 높고 진학률이 높기로 정평이 나있는 데야….우습게도40대 친구가 제 골이 얼마 큰 것도 모르며 민족어 공부를 한다하기에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무정세월에 생계가 급하여 사위를 볼사이가 없었다면 오늘에 나타나는 이런 단면은 그 사회의 소생을 불러오는 조짐이 아닐가. 일전 대외교류분야에서 몇십년을 몸을 담갔던 친구와 조선족에 대해 담론한 적이 있다.그는 조선족의 언어와 문화는 중한 두 나라 교류의 마당에서 누구도 비교 안되고 대체도 안되는 보귀한 자원이라며 혀를 찼다. 조선족은 자신의 문화가치만으로 중국 내지는 세계에서 부자로 살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찬사를 쏟으며 부러움을 나타냈다.문제점이라면 제절로 제 문화의 가치를 홀시하고 자기 사회를 발전시키려는 의지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현시대는 국경선이 나날이 희미해지고 공간거리도 무의미해 지는 디지털시대이다.조선족은 자신의 고유문화 특히 언어란 무기를 잘 활용한다면 경제강족(经济强族)에다 문화강족(文化强族)으로 급격히 부상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을 발전시키고 나라에 기여하고도 남의 존중을 받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둘 것이다. 세계화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부침하는 조선족 사회에 발전의 새 전기(转机)가 열릴 것인가!  (끝)2015-12-15 연변일보 2015-12-23
94    잃은 것,잃는 것,잃을 것 댓글:  조회:2773  추천:0  2015-12-10
     김인섭   “사회발전에 동반하여 낡은 물건에 대하여 구닥다리 처분을 진행하고 새 건물을 신축하는 개발은 불가피할 것이나 선조들의 지혜와 지성이 담긴 유적 전부에 불도저를 마구잡이로 들이댔다면 이것은 력사와 문화를 산산히 짓부시는 우행이 아닐 수 없다.” 1966년 7월,선생님의 작별인사를 뒤로하고 소학교 문을 나설 때 우리는 이것이 정규교육의 종막이었다는 것을 알수 없는 10대 초반 철부지었다. 이후는 10년의 문화혁명, 인생의 유일한 황금기인데 우리는 어쩔수없이 이 이벤트 속에서 방황과 혼돈의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더덜이없는 봉시불행(逢时不幸)에다 재수도 없는 타조세대라 말한다.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 허탈감으로 하여 동기생들이 모인 장소마다에서는 이 아픔을 호소하는 넋두리가 다반상담(茶饭常谈)으로 되었다.하여 소학교는 우리 맘속의 영원한 성당이고 추억을 낚아올리는 조어대(钓鱼台)로 되는 것이다. 근간에 볼일로 고향에 갔다가 모교가 문뜩 그리워져 찾아보고 말았다. 학교는 연길 서쪽의 작은 진에 있는데 1928년 설립된 유구한 력사와 수많은 후대를 키원낸 성공탑으로하여 졸업생들에게는 애시적의 자긍과 회억을 담아놓은 회고의 호수로 된지 오래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 기억을 더듬으며 보니 옛적의 모습이라면 그 때의 벽돌 한 조각도 없는 것이고 파란만장의 력사를 자랑하던 아름드리 백양나무와 운동장 주위를 감쌌던 수목들도 깔끔하게 흔적을 감추었다. 으리으리한 기세를 자랑하는 교사는 분명 유적지를 전부 잃은 현재의 학교일 뿐 맘속의 학교가 아니었다. 옛모습을 안고 떠나며 모교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는 상실감으로 쓸쓸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분명 내 유소년 시절의 희노애락이 숱하게 담겨 있었다. 사회발전에 동반하여 낡은 물건에 대하여 구닥다리 처분을 진행하고 새 건물을 신축하는 개발은 불가피할 것이나 선조들의 지혜와 지성이 담긴 유적 전부에 불도저를 마구잡이로 들이댔다면 이것은 력사와문화를 산산히 짓부시는 우행이 아닐 수 없다. 늘 되뇌이는 리치대로 말하면 도시 개발에는 력사의 보존이란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고 건설과 보존은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 중에서도 일반 상식일 것이다. 이것은 누구가 아닌 누구나 지켜야 할 사명임을 알아야 하는데 지내 몰라 이랬을가? 치적이나 돈에 혈안이 되어 이러이러하다면 어디가 어지간이 잘못된 것이다. 지금 현재도 돈벌이를 위한 무차별 철거가 비일비재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력사와 전통문화를 보호하는 건설 이 역시 현대화 건설이라는 점과 이는 당사자들의 신성한 책임임을 더 부르짖어야 할 때인 같다. 변혁이 목표로 되었다면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에 대한 보호도 목표중의 목표라는 이 진리를 망각하지 말아야 마땅하다. 눈앞의 리익만을 위하여 문화의 가치를 걸레쪽 같이 취급한다면 현대 하등인의 발상 이하는 아니이다. 세세대대 인민들의 노력과 세월이 쌓아온 침적물을 두두려 마슬 때 약간의 사정이라도 본다면 력사를 이어갈 후세에 무가지보의 정신 유산을 남겨줄 수 있다. 현실을 보면 도시 개발의 충동이 계속 암장마냥 꿈틀거리다가 세차게 분출하군 한다. 허나 력사를 릉멸하는 비문화적 작태가 후세들에게 전승된다면 오늘의 이 학교도 때가 되면 누가 휘두르는 함마의 강타에 배기지 못할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오늘 행실이 력사 훼멸의 악성 순환을 자초할 것은 자명하다는 것이다. 살아온 흔적을 싹 지우고 선배의 업적을 빈손 털듯 털어버린다면 이 방자한 행동에 누군가 시비를 걸고 트집이라도 잡았다면 응당하다.도시개발을 표방한 떠들썩한 파티 속에서 문화 전승과 력사의 보존이라는 현대문명의 하한선만은 지켜야 한다. 심리 상태가 일그러진 욕가마리 착상인지는 모르나 고대광실 같은 교사가 엄청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잃어버린 문화유산이 너무도 가석한 것이다. 우리 후대들은 영고성쇄의 력사속에서 우수한 것은 양기하고 저렬한 것들을 포기하면서, 숭고한 전통의 혼을 잃고 콩크리트 궤짝 같은 껍질만 움켜쥐고 살아가는 문화 가난뱅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다. 잃은 것이 아깝고 잃는 것이 안타깝고 잃을 것도 군걱정이다. 선조의 고적과 내 살던 흔적을 넘겨주기 위하여 돈에 눈이 뒤짚이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모두가 도정신해야 한다. 성야(星夜)에서 성광(星光)이 반짝이듯 사람이 사는 곳마다에 력사 모습을 감입(嵌入)시키자 한다면 터무니없는 남가일몽이라고 누가 삐쭉거릴지는 모르겠다. 연변일보 2015-12-9  
93    근로빈곤자 댓글:  조회:2889  추천:1  2015-11-11
근간에 난감한 로동 장면을 목격하고 건강해서 근로해서만 실로 치부하는가?고 머리를 굴리며 생각했다. 우리 동네 뒷산의 산사태방지 공사 현장에서 60대 경비원의 잠자리가 하도 보기 구차하여 눈을 감고 싶은 적이 있었다.천막은 기름떡칠이 된 방수포로 되고 4㎡ 정도 면적에 높이가 1m나 될가 하는 공간이였다. 그는 맨땅에 널판자를 깔고 헌 이불 위에서 자고 먹고 하는 모양인데 구석에 페트병과 숙식(熟食)이 무더기로 쌓인 것을 보아 배를 채우는데는 분명 지장이 없었다.때는 무더운 때라 밤이면 모기 성화이고 대낮은 찜통 더위인데 안에서 견디기 어려워 서성거리다가 토끼잠으로 졸음을 쫓는 것이 하루의 수면이란다.모기장 사려면 돈이 30원이 아깝고 목욕도 과분한 사치인데 수건을 음료수에 적셔 대충 문지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그래도 3000천원 정도의 임금을 받을 수 있으니 모자람은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생존을 위하여 실망스러운 로동환경을 감내하고 용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 존엄을 상실한 로동이겠으나 그 수입으로 의식(衣食)에는 족할 것이 뻔하다.허나 이들의 마주하고 있는 것은 로동의 안전과 보장 권리의 빈곤이고 그 고용주 도덕의 빈곤이다.번영과 번화를 자랑하는 이 도시에서 현지인들의 양상과 천양지차를 보인다. 거기다 천민의 취급을 받으며 응분의 권리를 잃은 착한 막벌이군들,이들을 신빈곤 계층으로 봐야 하지 않는가는 정서의 물결이 일었다.눈부신 발전을 표방하는 오늘 빈곤의 발생,개념,대상과 범주에서 분명 과거와 다르게 나타난다는 방증이다. 우리 50년대 출생자들과 빈곤이 뭔가고 묻는다면 거개가 배고파 기아에 허덕이던 때라고 말한다.고픈 배를 채우려고 파먹던 풀뿌리가 맛있던 기억이 새삼스럽고 누가 데려다 쌀밥을 먹여주던 과거사도 짙은 감동으로 남아있다.부모님들은 초근목피로 허기를 달래며 무거운 로동에 부대끼시고 동네 어르신들이 영양부족으로 부종을 앓던 모습 같은 눈물겨운 사연들이 기억 속에 천첩(千叠)으로 쌓여있다.바로 이 빈곤을 내치려는 궁칙사변(穷则思变)의 천리가 개혁개방의 장엄한 새 장막을 열었으리라.우리의 첫 목표는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난의포식(暖衣饱食)이었다. 그 허기지던 과거사를 안고 몇십년 동안 혈한을 쏟은 결실로 현재 사람들은 떡배 같은 배를 슬렁슬렁 만지며 덜먹기를 외쳐대는가 하면 살찐다고 다이어트에 정신이 빼앗겨 굶어대는 친구들도 부지기수다.이들과 빈곤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아이를 섬기기 어렵다거나 남들이 멋진 아파트에 자가용을 과시할 때 짝지어 수사납다거나 혹은 남들이 호화 결혼식을 올리는데 힘이 모자라 맥이 풀린다거나 아니면 남들이 호화유람을 가는데 가담하지 못하여 마음에 씨운다거나 등등을 말한다.새 형태 가난의 구제는 새로운 리념과 해법이 아니라면 풀어낼 실마리가 없을 것은 뻔하다. 앞에서 제기한 사례와 같이 물질의 부족으로 생기는 절대 빈곤과 타인과의 차별 혹은 권리박탈과 인위적인 사회적 소외에서 야기되는 상대빈곤이 오늘의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만포식에는 근심 걱정이 없으나 법권과 기타 사회적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빈곤 이것은 발빈치부(拔贫致富)의 새로운 국가적 난제이다. 생존과 직결되는 물질로부터 보는 절대적 경제관점과 권리부족,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비경제관점을 결합하여 빈곤 해소의 방침과 방법론을 과거보다 달리하여야 되지 않을가. 신빈곤 문제는 소득의 증가만으로 해소가 불가능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권리보장,사회보장,법제보호 등 비소득적 요소의 결핍이 소득의 함금량 높낮이와 생활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데서 일으키는 작용의 중요성은 너무 명백하다.지난날보다 복잡한 생활요소의 유기적 결합과 사회 다원화의 시점에서 빈곤문제 해결에 착안해야만 정확한 측정기준과 해결의 정책방향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근근히 소득의 증대로 비곤해탈을 부르짖는다면 적어도 과학적 발전관이란 명제를 리탈하게 된다. 지난 세월에 빈곤을 바라보던 렌즈를 교체해야 될 때임이 분명하다. 소처럼 일하고 돈벌레처럼 돈을 모아 잘 산다는 상식의 진리성은 권리보장이 없는 로동자의 어처구니 없는 로동 현상에서 무너지고 있다.단순한 화페 소득으로 빈곤을 가늠하는 측정법도 탈시대적 유물로 되어 버렸다. 위하여,새 시기 빈곤을 뿌리치는데 필요한 사회적 인프라(基础设施)를 재건하고 절대빈곤과 상대빈곤 상태가 뚜렷하게 투영된 변이곡선(变异曲线)을 그려내는 걸출한 대안이 따로 없을 것인가. (끝) 2015-11-12일 延边日报
92    부패하기와 부패당하기 댓글:  조회:2717  추천:2  2015-10-17
요즘 누구는 공권력을 이용하여 톤(T)단위 현금회뢰를 받았고 거기 달라붙었던 가족,친족,친구들과 정부(情婦)들까지 뭉칫돈 돈벼락을 맞았다는 소문이 파다하여 항간에서는 혀바닥을 차며 쯧쯧거린다.듣다 첫 소리인 부패 범죄가 응분의 징계를 받을 것은 마땅할 것이나 음미해 봐야 할 될 바라면 부패에는 부패와 부패 사촉의 요소가 불가결이라는 것이다.곱씹어 말하면 부패의 발생은 깊은 문화적 토양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패자와 부패제공자 유착의 결합물이라는 것이다. 올해 초 거액의 수뢰죄로 언도를 받은 원 남경시 시장-계건업씨의 법정진술을 듣고 개살구 씹은 듯한 느낌이었느나 내가 이 처지라면 부패를 얼마 멀리하였을가?고 언뜻 생각한 적이 있다.그 범죄의 대부분은 20여년 동안 호형호제하던 절친들을 도와주고 반대급부를 얻었다는 것이다.그는 며 친구들에게 마지노선을 격파당했다는 회한의 소리를 구절구절 곱씹었다.의리가 불의를 저지르는 부패균으로 돌연변이했다고 피력한다.전화 한 통이나 눈기짓 하나로 떼돈을 좌우지할 고관대작이 우리들이 숭상하는 의형제 문화에서 보면 엄큼한 생소리는 아닐 같다.그는 부패했지만 당하기도 한 기본형으로 홍보하기 싶었다. 지금의 모임터에는 부패자들이 락마하여 씨원하다는 소리가 곁들이 화제이다. 요즘 고향에서 친구들과 회합을 가졌는데 아니나다를가 반부패 쾌재를 부르는데 아이러니라면 공직에 있던 친구들을 말밥에 올리고선 누구는 부탁만 하면 묘수를 써서라도 해결해 주는데 누구는 능갈치며 꾀를 부린다고 이러쿵저러쿵 운운한다.전자는 의리파이고 후자는 배신자라는 것이다.옛날 누군가 친구의 청탁에 부대끼며 며 딱한 사정을 호소하던 장면이 선히 떠올랐다. 계건업씨도 친구들과 한통속이 된 것이 말썽의 단초가 아니었겠는가. 만약 리권을 탈취하기 위한 경쟁에 친구 권력이 리용되였다면 그에 대한 대접은 무엇이었겠는가는 불보듯 뻔하다.이런 구태연하고 고질적인 우정이 바로 부패하기와 부패당하기의 양날검(双刃剑)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무수하다. 우리의 체면지키기 문화는 유교문화 중의 인의례지신(仁义礼智信)이란 도덕을 최고선으로 하는 의리관념이 원인(远因)이라 주장하는 데는 별로 반론이 없다.이리하여 유교권을 인격주의 사회라고 론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주의적 서구사회에서 획일적인 계약관계를 지향한다면 우리 사회는 의리(義理)라는 체면과 정으로 얽힌 정감관계를 선호한다.대폿잔을 함께 나누면 갑을은 친구에서 형제가 되고 리익이 공동하면 동지에서 테거멀(铁哥们-절친)이 되어 공생관계를 제꺼덕 건립하는 우리들이다.이런 공동체가 형성되면 즉시 음밀한 갱도진지로 전락하여 그 속내평과 속사정을 공략하는 데는 어떠한 쾌도리검(快刀利剑) 도 찌르기 어려워진다.조금 더 기후가 조성된다면 권력은 리익공동체와 안전망 속에서 무소불위의 지랄룡천도 불사한다. 공공권력은 일종의 특수한 사회적 력량으로서 그는 강대한 지배력,제어력과 강제력을가진 사회관리의 무기이며 인간관계의 특수한 지위에서 집행자의 의도에 따라 리익제공,자기방어,음페보호 가능의 막대한 기능을 동시 발휘할 수도 있다.만약 이것이 개인적 목적에 이용된다면 막대한 이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은 물론 그 꽁무니만 따라다녀도 먹을알이 대단하다.그러기에 그는 특유의 매력을 가지게 되며 돈벌이에 이골이 난 숱한 친구들이 동맹을 맺아보려 벼라별 수작질을 다 한다.영양분이 많은 음식물이 쉽게 부패하듯 권력이란 이 영양단지에서 부패가 쉽사리 발생하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유교문화 사회에서 권력의 주위에 친구 동아리가 형성되었을 때 그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는 신통한 반부패 조요경(照妖镜)이 비춰져야 한다. 부패의 근절이란 어떠한 정치구도 속에서도 불가능하고 여하한 견제와 감독도 상당한 한계가 있다. 권력을 새장 속에 가두고 그가 밝은 햇빛 아래서 움직이는 메카니즘(机制)을 형성하여 최대한으로 조기 혹은 초기에 적발하는데 주력해야 한다.특히 의리 문화에 젖어있는 사회에서 공권력을 틀어잡고 손버릇이 변질하는 행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자타 누구도 공동책임을 지고 노력해야 한다.이리하여 우리 의리 문화의 토양에서 부패 바이러스가 번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을 반부패 작전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의리란 인간 관계를 돈독히 하는 윤활제이지만 권력이 뒤섞인 의리는 한 치만 넘어도 부패의 촉매제、부패의 배양기、부패의 토치카로 변해진다.동아리를 만들고 부패해지고 부패당하는 교훈은 귀감으로 두고 봐야 할 교육교재이다. (끝) 2015-11-26日 延边日报
91    개천의 룡도 룡으로 된다 댓글:  조회:2888  추천:2  2015-10-15
  어려운 환경이나 가난의 설음을 극복하면서 혁혁한 업적을 일궈내고 비범한 천재성을 도두보이면 사람들은 이라고 말합니다.그런데 탈없던 이 말이 호의호식한다는 오늘에 진부한 잠꼬대라는 메시지가 자주 전해옵니다. 지금 돈이 없으면 개천의 룡은 미꾸라지 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빈부격차가 늘어나고 돈이 맹위를 과시하는 때 교육과 인재 양성에서 나타나는 이상 상황을 빗대어 말하는 것입니다. 빈자와 부자 사이의 가름막이 커지고 두 계층 사이에 저지선이 형성되어 세불량립으로 고착된다는 사람들의 걱정도 모아산 만큼은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젊은 친구에게 는 속담을 설교하다가 코를 떼운 적이 있습니다.돈이 있으면 귀신과도 테거멀(铁哥们-절친)을 만들어 무소불위 행세를 할수 있고 끈끈하던 사랑도 돈이 따르지 못하면 속절없이 무너지는 세태인데 구차한 놈은 고생해도 차례지는 것은 고생바가지라며 그럴듯한 억지를 부렸습니다.이 세월엔 금전만능은 몰라도 금전오천능은 된다며 빈정거렸습니다.이것은 보이는 사실이지만 보는 시각에 큰 편차가 있다고 생각되어 무언가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확실히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돈의 홍수 속에서 몸부림치며 하나뿐인 목숨을 돈에 걸고 사는 듯합니다.고고성을 울리며 세상을 본 시각부터 돈이 나가는데 그 위력에 굽신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돈뭉치를 휘두르며 거만을 떠는 위인들도 상당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가로보고 있습니다. 돈으로 사회정의마저도 마구 짓밟고 남을 해치는 음해행위도 종종 발생하여 정직한 사람들의 눈이 찌프러지기도 합니다. 돈의 힘으로 욕망과 욕정을 기껏 휘두르며 권력도 자가용 핸들 움직이듯 하는 부류들이 백일하에 폭로되어 비싼 대가를 치르게되는 뉴스도 빈발합니다. 마치 이 사회의 일상일사를 표준화 해줄 수 있는 건 돈 밖에 없는 같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짓거리들의 야비함은 발가도리 아이들도 다 아는 몰상식 행위입니다. 그래도 돈이면 다 되는 세월이 아닌 같습니다. 전일 산서성 장치시 한 산골의 극빈 가정에서 두 남매가 동시에 명문대에 입학하여 심심 산골은 흥분의 도가니에 들어갔습니다. 중병에 사로잡힌 부모님이 생사를 걸고 모은 돈이 학비 어방도 안 되는데 지역 사회에서 지원의 손길을 뻗쳤고 어느 기업의 업주가 헌금을 내밀었습니다. 가난한 촌민들도 한푼두푼 각출하여 애들이 대학 꿈을 이뤄줬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뜨거웠습니다.그 토굴막 집안을 보니 텔레비도 없었고 헌 나무조각을 무어만든 침대 위에 헌 이불 몇채가 보이였습니다. 그래도 낡은 벽을 감싼 애들의 상장이 어두운 삶에 빛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등교하는 날 초라한 촌민들의 환송리에 무거운 걸음을 내디디는 가난한 아이들의 뒤모습에서 이 사회의 심처에는 얼마나 위대한 인류애가 암장되었는가를 보았습니다. 이 사랑의 파도 앞에서 재부를 뽐내는 슬기럽지도 못한 짓거리는 얼마나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소행인지도 모릅니다. 사회의 복잡한 모순 속에는 인재가 나갈길이 갈래갈래로 있고 미래의 사회는 당신을 위하여 광활한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명증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축도이기도 합니다. 한 개인의 돈이란 원래 의미의 로동 소득으로서 많다적다 가타부타할 시비거리도 아닙니다. 문제는 돈으로 공공 원칙이나 권력을 사 가지고 비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돈으로 정의를 릉멸하며 돈을 받고 반칙에 눈은 감아 준다거나 심지어 두 다리로 뛰어야 할 달리기경주임에도 불구하고 모터지클로 앞지르며 리속을 챙긴다는 것입니다. 분명 해빛 그늘에서 발생하는 역류이고 음지에서 자라는 독버섯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회 물결 속의 하찮은 존재로서 인간의 지탄과 법제의 강타격을 받으며 존속하고 있습니다. 개구쟁이 동자들까지 손가락총질하는 비행들이죠. 는 본 화제로 돌아옵니다.룡이란 이름을 날리고 권력을 거머쥐거나 떼돈을 번 쪽으로 시각을 돌린다면 그 보편개념의 의미를 일탈하게 됩니다. 거물을 말한다면 몇 명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시대가 말하는 룡은 자기 기능으로 업적을 쌓았다는 인재들이고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출중하게 한다는 인걸입니다. 보검이 보검일진대 구멍을 뚫는데는 끌에 비견이 안되고 봉황이 찬란한 모습을 보여도 진드기 잡이에서는 참새와 병견이 안되는 사실입니다. 정보시대의 룡의 표준은 산데미 같은 재부를 점유하거나 이름을 날리며 불호령을 내리는 힘장수가 아닙니다. 최고 정밀도와 최고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 낸다면 바로 룡인 것입니다. 가난이 인재가 못되는 리유가 절대 아닌 디지털 시대임을 반복합니다. 현시대에서는 대소를 막론하고 그 분야의 최고라면 동일한 룡의 가치가 부여됩니다. 지금 재부로 인한 기회의 불균등이 많이 화제로 되고 있습니다. 기회균등이란 어느 사회나 바라는 리상이지만 완전무결하게 이뤄진 력사나 시대는 없습니다. 아무튼 돈의 힘에 따라 여러가지 차이와 차별이 생기는 건 불가피적이고 누구나 감수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교육과 인재 문제에서의 불민한 행실은 그 독성과 악취가 아무리 진동하더라도 인재의 나갈 길을 막은 적이 없습니다.동일한 조건에서 권력과 금력이 음성적 작용을 할지라도 결국 노력 의지와 지혜가 있어야만 성공을 이뤘다는 력사였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노력이 운명을 개변시키는 무수한 사례는 두고봐야 할 귀감입니다. 개천의 룡을 룡으로 만드는 국가적 노력이 멈춰진 적이 없고 인민이 인재에 대한 기대도 작아진 적이 없으며 사회의 여러 갈래의 지원도 많아질 뿐 줄어든 적이 없습니다. 비록 여러가지 여의치못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력사에서 룡의 사회적 진출에 푸른등을 켜고 있다는 사실이 영구불변하였다는 사실(史实)만은 확신하여야 합니다. 뜻이 있는 자라면 는 진리를 곰곰히 새겨두고 기정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합니다 . 에 나라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연변일보 2015-10-15  
90    잃은 것,잃는 것,잃을 것 댓글:  조회:2924  추천:1  2015-09-13
1966년 7월,선생님의 작별 인사를 뒤로하고 소학교 문을 나설 때 우리는 이것이 정규교육의 종막이었다는 것을 알수 없는 10대 초반 철부지었다.이후는 10년의 문화혁명, 인생의 유일한 황금기인데 우리는 어쩔수없이 이 이벤트 속에서 방황과 혼돈의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더덜이없는 봉시불행(逢时不幸)에다 재수도 없는 타조세대라 말한다.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 허탈감으로 하여 동기생들이 모인 장소마다에서는 이 아픔을 호소하는 넋두리가 다반상담(茶饭常谈)으로 되었다.하여 소학교는 우리 맘속의 영원한 성당이고 추억을 낚아올리는 조어대(钓鱼台)로 되는 것이다. 근간에 볼일로 고향에 갔다가 모교가 문뜩 그리워져 찾아보고 말았다.학교는 연길 서쪽의 작은 진에 있는데 1928년 설립된 유구한 력사와 수많은 후대를 키원낸 성공탑으로 하여 졸업생들에게는 애시적의 자긍과 회억을 담아놓은 회고의 호수로 된지 오래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 기억을 더듬으며 보니 옛적의 모습이라면 그 때의 벽돌 한 조각도 없는 것이고 파란만장의 력사를 자랑하던 아름드리 백양나무와 운동장 주위를 감쌌던 수목들도 깔끔하게 흔적을 감추었다.으리으리한 기세를 자랑하는 교사는 분명 유적지를 전부 잃은 현재의 학교일 뿐 맘속의 학교가 아니었다.옛모습을 안고 떠나며 모교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는 상실감으로 쓸쓸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여기에는 분명 내 유소년 시절의 희노애락이 숱하게 담겨 있었다. 사회발전에 동반하여 낡은 물건에 대하여 구닥다리 처분을 진행하고 새 건물을 신축하는 개발은 불가피할 것이나 선조들의 지혜와 지성이 담긴 유적 전부에 불도저를 마구잡이로 들이댔다면 이것은 력사와 문화를 산산히 짓부시는 우행이 아닐 수 없다.늘 되뇌이는 리치대로 말하면 도시 개발에는 력사의 보존이란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고 건설과 보존은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 중에서도 일반 상식일 것이다.이것은 누구가 아닌 누구나 지켜야 할 사명임을 알아야 하는데 지내 몰라 이랬을가? 치적이나 돈에 혈안이 되어 이러이러하다면 어디가 어지간이 잘못된 것이다. 지금 현재도 돈벌이를 위한 무차별 철거가 비일비재라는 소문이 무성하다.력사와 전통문화를 보호하는 건설 이 역시 현대화 건설이라는 점과 이는 당사자들의 신성한 책임임을 더 부르짖어야 할 때인 같다.변혁이 목표로 되었다면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에 대한 보호도 목표중의 목표라는 이 진리를 망각하지 말아야 마땅하다.눈앞의 리익만을 위하여 문화의 가치를 걸레쪽 같이 취급한다면 현대 하등인의 발상 이하는 아니이다.세세대대 인민들의 노력과 세월이 쌓아온 침적물을 두두려 마슬 때 약간의 사정이라도 본다면 력사를 이어갈 후세에 무가지보의 정신 유산을 남겨줄 수 있다. 현실을 보면 도시 개발의 충동이 계속 암장마냥 꿈틀거리다가 세차게 분출하군 한다.허나 력사를 릉멸하는 비문화적 작태가 후세들에게 전승된다면 오늘의 이 학교도 때가 되면 누가 휘두르는 함마의 강타에 배기지 못할 것이다.바로 우리들의 오늘 행실이 력사 훼멸의 악성 순환을 자초할 것은 자명하다는 것이다.살아온 흔적을 싹 지우고 선배의 업적을 빈손 털듯 털어버린다면 이 방자한 행동에 누군가 시비를 걸고 트집이라도 잡았다면 응당하다.도시개발을 표방한 떠들썩한 파티 속에서 문화 전승과 력사의 보존이라는 현대문명의 하한선만은 지켜야 한다. 심리 상태가 일그러진 욕가마리 착상인지는 모르나 고대광실 같은 교사가 엄청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잃어버린 문화유산이 너무도 가석한 것이다.우리 후대들은 영고성쇄의 역사속에서 우수한 것은 양기(扬弃)하고 저렬한 것들을 포기하면서 선배들을 초월한 새 세대여야 할 뿐 숭고한 전통의 혼을 잃고 콩크리트 궤짝 같은 껍질만 움켜쥐고 살아가는 문화 가난뱅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다. 잃은 것이 아깝고 잃는 것이 안타깝고 잃을 것도 군걱정이다.선조의 고적과 내 살던 흔적을 넘겨주기 위하여 돈에 눈이 뒤짚이지 말고 오늘부터라도 모두가 도정신해야 한다.성야(星夜)에서 성광(星光)이 반짝이듯 사람이 사는 곳마다에 력사 모습을 감입(嵌入)시키자 한다면 터무니없는 남가일몽이라고 누가 삐쭉거릴지는 모르겠다. 2015-09-12 흑룡강신문
89    콜택시(滴滴打车)의 철학 단상 댓글:  조회:2712  추천:2  2015-08-25
이 동네의 길이 막히어 형편없다고 타발을 늘어 놓은지 어느 땐데 더 형편없어질 뿐 나아질 낌새가 안 보인다.그런데 시민들의 태도는 이상하게도 더 덤덤해 지고 두덜렁거리던 불평이 구름같이 사라지고 있다.길에 나서면 차량의 동작이 꿈뜨기로 쩔뚜배기 거북의 걸음이 부러울 구경감인데도 차에 실려 승객들은 말하다 맥빠졌는지 용케도 감내하는데 아마 불가피적 당연지사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생물이 환경의 변화에 응화(应化)하는 적응형질(适应形质)의 작용이겠다고 생각했다. 각설하고,차타기와 주차가 힘들어 근자에는 택시를 부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그런데 체증이 심해지다 보니 택시마저 찾기 어려워지고 혹시 불러세워도 행선지를 묻고는 손사래 치며 안간다!가 례삿일로 되어 버렸다.막히는 곳이라며 구실을 둘러대기가 일수이고 내빼기가 다반사이다.이런 시세가 원인인지 디지털 정보통신기술을 리용한 콜택시 애플리케이션(앺-应用软件) 다수가 나들이객들의 봉사에 리용되어 편리를 봐주고 있다.생산력 발전했다는 정보시대의 산물이라 하겠다. 어느 날인가 핸드폰으로 전용차(专车)를 불렀다. 길옆에서 잠간 기다리니 년배되시는 어른이 산뜻한 닛산(日産) 승용차를 세우고 깍듯한 초벌인사를 올리고는 짐짝을 훌쩍 들어 트렁크에 넣고 목적지를 안내한다.한담에서 아들에게 사 준 차인데 교통이 어렵다보니 아들은 차라리 버스로 출퇴근하고 주말이나 부득이한 경우에만 몰고 나갈 뿐이란다.그러니 세워두면 어쩌고 차라리 콜택시에 등록하고 이른바 경영을 하는데 퇴직한 몸이라 소일거리가 있고 수입도 생기는데다 고객들도 기뻐하니 늘 즐겁다고 말한다.행선지에 도착하여 지피에스(GPS-卫星导航系统)로 거리를 계산하고 원 택시 비용의 9할을 받는데 가슴 쪽이 따따샜다. 택시도 호출하였었다.말말결에 운전사와 전용차를 화제에 올렸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불법이라는 열변을 토하는데 택시 시장을 교란하며 자기들의 장사를 빼앗아 간다며 죽으라고 욕한다.내가 매일매일 어려지는데 그들까지 끼어들면 죽도 먹기 어렵다는 고충이다.빈발하는 승차 거부에 대하여 슬쩍 물었더니 침체가 심한 곳으로 한 번 들어가면 하루의 장사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드니 막부득이한 선택이라는 당당한 리유이다.그러면서도 콜택시를 취체 조치를 대야 할 관리 부문이 무능하다며 육두문자 쌍욕을 퍼지른다.발바닥에 불이 일도록 뛰어야 사는 세월인데 다니기에 얼기설기 꼬인 난해한 모순들에 해결책이 절실함을 뼈저리게 느끼었다. 요즘 콜택시의 활약에 대하여 기존 택시업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심지어 파업으로 유관부문에 압력을 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지방에서는 현행법에 기록이 없다는 리유로 불법이란 딱지를 붙이고 퇴장시키는 레드카드(紅牌)를 내 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적잖은 지역 정부는 자신의 관리 플랫홈에 올려놓고 질서있게 유도하면서 시민의 생활에 편리를 도모하는 한편 내포된 각종 부정적 현상들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다수의 지도자들은 이는 과학 발전의 결과물인 신생사물로 긍정하고 그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법제의 궤도에서 사회에 융합되도록 마당을 내주고 길을 열어주고 있다.동일한 현상에 대하여 리익,인식,가치관과 세계관의 차이에 의하여 발생하는 부동한 태도에 대하여 그 원인과 결과를 곰곰히 짚어봐야 할 일이다.. 콜택시의 류행은 전통적 교통방식에 대한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경쟁 환경을 조성하여 업자들의 서비스 수준을 제고하도록 추동하는 정보통신기술과 교통도구가 결합된 새 업종이 틀림없다.이는 사회 발전을 상징하는 새싹이며 디지털 사회의 추세로서 누가 가로막고 왈가불가하는지를 불문하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산생과 존재의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지난날 개혁 방향을 놓고 자본주의냐,사회주의냐(姓社姓资)며 시야비야가 분분할 때 등소평이 3개유무익여부(3个有利于)의 실사구시를 주창하며 밥을 죽이라고 우기는 친구들의 말문을 막아버리던 장면이 생생하다.유물론적 론리가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이 론리를 콜택시 시비 마당에 대입시켜도 무난할 것이다. 맑스주의를 견지한다는 주장이 실천면에서 그의 세계관과 방법론인 유물변증법과 유물력사관을 이탈한 공념불이 되어서는 안된다.사물이 부단히 변화발전하는데 자기 기득권을 고수하고 낡은 규제에 안주하여 대처한다면 필연적으로 사회 전진을 가로막고 심지어 뒷걸음 치게 된다.과학적 발전은 리론적 사고가 선행해야 하고 그 기초로서의 철학 사상이 무기로 되어야 한다.모택동의 는 명언이 감회가 깊다. 사회의 진보란 경제만이 아닌 정치,문화,의식형태의 동반발전을 의미한다.바로 여기의 전후시말 전반에서 맑스주의 철학이 지침으로 되어야 하다.금전만능의 수전노(守钱奴) 가치의식과 유물변증법을 도외시하는 형이상학적 혹은 편의주의적 사고가 자원랑비,환경오염,빈부격차,부정부패와 불평등을 량산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멀어져 가는 철학을 가까이 해야 될 때이다.이것이 사회주의 핵심적 가치를 확립하는데서 전제가 아닐가! 과학적 사고를 도외시하는 철학의 절대적 빈곤과 현실의 변화에 방만한 철학의 상대적 빈곤에서 탈피해야 될 때다.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철학의 번영을 만끽하고 싶다. (끝) 2015-06-27 2015-08-22일 흑룡강신문
88    여세추이(与世推移)는 사는 길 댓글:  조회:3035  추천:0  2015-05-29
기한 속에서 태여나 몸부림치며 살아오다 녹신해진 우리를 개피(Gappy)세대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 실로 60년대 동네 어느 집에 라디오가 있다면 최고부자 이하는 아니었고 쇠줄을 단 유선방송을 보고 좋아 죽겠던 회억도 아름답게 남아있다.70년대는 벤또 만한 반도체를 들고 다니는 것도 상당한 멋쟁이 행세었다.30년전 집전화를 가설하니 뿌듯하였었는데 20년 전에 목침만한 핸드폰을 들고 거들거리던 친구들이 지내 씨만했다.10년 전 지능핸드폰(스마트폰)이 나오더니 볼품없이 어줍짢은 물건이 통신도구를 훌쩍 뛰어넘어 사업,홍보,교제,독서,공부,통신이 결합된 현대 생활의 신기한 상징물로 되는데 세월의 변화를 종잡을 수 없다. 어제는 정보시대라더니 난데없이 디지털(數字)에다 디지털을 불러대니 탈빈곤 전쟁에서 머리를 굳힌 세대는 느낄 여유도 없이 흐리멍텅 현기증의 시련을 받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에서 소요 물품을 주문하고 지불까지 완성하여 택배업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쇼핑 다니는게 딱 질색이란다.앉아서 사고 앉아서 받고 게다가 물건이 눅겠다 서비스도 좋겠다 오죽 좋으랴.사이트를 보면 지구의 뒷등도 마주보는 이웃일 뿐 먼촌 친척이 아니다. 국경은 희미해 지고 무수한 기업들과 개인들이 시공간 제한이 없이 지구 전역에서 자신만의 터전을 만든다.아직도 니 죽고 내 사는 혈투가 끝없어도 격렬한 리합집산(离合集散)의 싸움 속에서 사람 사이의 가름막이 얇아지고 알륵을 융합에로 선도하는 력사적 격동이 일고 있음이 틀림없다.정보기술(IT)과 디지털(DT)기술의 발전이 천지개벽의 암장(岩浆)을 녹여내고 사회는 대변혁은 림계상태라고 코를 세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인터넷 기반의 전자상거래는 전통적인 유통업에 직격탄을 날린다.유명세를 타던 백화점이 매상이 푹 떨어지어 깊은 고민이고 가게들이 속속 장사를 접으며 부동산 임대업자들은 어이없어 두두벌거린다.컴과 핸드폰에 의한 구매가 유행되는 센 바람에 방대한 유통체제는 휘청거리며 엄동을 맞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약간 멀리에선 생산구조에 혁신이 일고 생산자-소비자의 직거래로 하여 새 생활방식의 싹이 우후죽순처럼 키돋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핸드폰 말단에서 은행계좌의 조회,송금,결제가 이뤄지고 모든 은행 업무를 취급할 수 있다.전통적인 은행업은 새로운 형태로 두각을 내밀어야 한다.요즘엔 인터넷상의 간편하고 수수료 없는 송금과 결제가 이뤄지면서 실리와 편리를 바라는 고객들의 더욱 새로운 양식의 서비스가 기대되고 있다. 하여 경제 명맥인 은행은 쪽도 못쓰고 사이버 은행의 도전에 응전해야 한다. 책이 없는 독서가 생활화된다.가는 곳마다 핸드폰을 들고 독서하는 진풍경이 일어난지 오래다.수만 페이지의 백과사전도 씨디(光盤-CD)한장이면 충분히 수록되고 수천만 권의 장서(藏书)가 몇장 씨디에 기록되고 있다.종이책들이 외면당하고 이동 정보기기로서 임의의 시간과 장소에서 기록 전달과 보존을 완수한다.출판시장,도서시장과 문화시장은 진통을 참아서라도 구시대적 구투구체(旧套旧体)를 교체야만 한다 팩스기,전화기,녹음기,타자기 등등 사무도구는 물론 가전을 포함한 모든 기계들에 원거리 제어가 가능해 진다. 요즘엔 와이파이(wi-fi),위쳇(wechat),인공지능(AI),클라우드컴퓨팅(云计算)등등 이상한 말이 속출하고 있는데다 인터넷 시대를 넘어 사물인터넷(IOT-物联网) 시대에 들어선다는 고함소리도 들린다.이동 가능 모든 기계는 자기만의 인터넷주소를 가질 수 있게 되어 18000km 떨어진 집의 밥을 간단한 클릭(点击)으로 짓는다는 짐작이 거짓말이 아니된다.기존 산업체들이 그 더블펀치(連打)에 어쩔수없이 시달리고 있다. 새로운 고신기술은 핸드폰 액정면에서 생면부지 인간들끼리 자유롭게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상대의 위치마저도 정확히 파악하면서 만남의 장을 만들게 한다.임의의 시간대에 리념과 나라 제한이 없는 다양한 형태의 가상사회가 우후죽순마냥 탄생하며 전 지구가 급속히 다원화되는 모습이 확산되고 있다. 신기술은 확실히 정치,경제,사상,이념,사고방식,사회구조와 생활방식마저 송두째 개변시킬 태세이다. 이것은 사회 진보의 발단이다.맑스주의 유물사관의 기본적 의미는 생산관계 및 상부구조 전 령역은 생산력 발전의 수요에 따라 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던 과학은 사람의 의지를 불문하고 자기의 고유 법칙대로 나가고 있다.18세기 후반기의 증기기 발명이 사회 대변혁의 시작이었다는 사실(史实)이 새삼스럽다. 력사 발전을 적극으로 맞아오면 력사의 선구자이고, 주동적으로 순응하면 력사의 주인공이고, 어영부영 뒤따르면 력사의 추수자이고, 편안히 안주하면 력사의 보수자이고, 가로막고 역동(逆动)하면 력사의 반동파이다.과학적 론리를 뒤따르고 과학적 무장을 부여잡아야 살아 남는다.물론 취사선택(取舍选择)은 각자의 선택일 것이지만 이게 여세추이(与世推移)를 부르짓는 리유이다. 바늘 끝에 전자눈을 달아놓는 세월인데 울끈불끈 근육을 자랑하며 금강도끼를 휘둘러 힘을 과시해 뭘하랴.뿌린 바늘에 눈이 찔리면 그만이다.실로 시대인가. (끝) 2015-05-27 연변일보
87    싱거운 소리 댓글:  조회:3446  추천:0  2015-05-18
사이트에서 자색을 자랑하는 어느 미인의 과거 사진을 보고 어제오늘의 왕청같은 생김새에 놀란게 아니라 경악했다.오리를 백조로 탈바꿈시켰다는 옛말도 현실로 되는구나는 느낌을 새삼스레 받으며 창상세계의 변화불측을 직감하였다. 그런데 걱정도 팔자인 싱겁쟁이 발상인가 이런 탈바꿈식 성형이 도를 넘지않냐는 생각이 뇌리에서 굴러다녔다. 원초적인 성형은 인체 조직의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기형이나 변형을 조절하고 회복시키기 위한 외과수술로서 인체의 기능을 제고하고 본인의 렬등감을 해소하고 그들의 사회진출을 추진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어 왔다. 이는 인간 생활에서 불가결의 의료 행위로서 과학과 사회적 면에서 일진월보를 지속하고 있으니 찬미할지언정 시야비야를 주문할리가 없다. 건데 요즘 좀 이상해지고 있다.어느 탐미(耽美)적 마니아는 의사에게 부탁하여 유명 탈렌트를 본따 시술하였는데 쌍둥이일 정도로 흡사하여 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수다한 사람들이 이른바 아름다움을 위하여 멀쩡하던 외모마저 마구 뜯어고치는 성향이 갈수록 세지고 있는가하면 이젠 사회일반에 확산되어 신신펀펀한 얼굴에 도메스를 마구 들이대는 경향이 범람하는 추세이다. 가타부타 해봐야 될일이 아닐까 본다. 성형을 감행하는 류행은 연예인들이 선두주자라는 일반적 소문이다. 그들의 상당수는 탈렌트 위치를 점거하기 위하여 거금을 쾌척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변용하며 성별전환마저도 서슴없이 단행하고 있다. 아무리 외모가 으뜸이라도 등단의 경쟁에서 외모지상주의가 관철된다면 자연미모의 후보자가 탈락되는 상황이 불가피하다. 이것은 륙상경기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우승하거나 수영경기에서 모터보트를 몰고 이기는 경우와 흡사한 비정상적 불공정경쟁이 아니겠는가. 취업성형이란 말이 있다. 취직이나 사회서열의 결정에서 생김새가 우선 작용을 한다는것이다. 그렇다면 실력과 외모가 버금버금하는 두 경쟁자중 성형한 상대가 뽑히게 되는데 미성형자는 기준 이외의 불합리 요소에 의하여 탈락자로 전락하는 것이다. 외모가 암묵적으로 작용하는 세상사는 부인할 수도 없겠으나 일의 효용을 무시하고 허영을 추구하는 내허외식적 가치관은 무작정 정상적 생리를 짓밟는 현상을 부추기게 된다. 일이 더 고와야 할 세월이다. 어느 나라의 미인 선발에서 승석한 얼짱의 거의 전부가 용모가 비슷하여 인조미인천국이라던 대중들의 비아냥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그 나라를 한데 싸잡아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그곳의 미인이라면 무작정 모조품이라 정평을 내리는 부정적 이미지가 이 땅에서 고착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수한 전통 문화에마저 먹물을 튕기고 있는 것이다. 이란 별호가 따라오고 민족적 순수미가 흐려지고 있으니 고민할바이다. 과학으로서의 성형은 건강과 행복을 가져오고 문화 향기를 뿜어내는 도구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된다. 이는 생활에서의 필수이고 인간의 천부적 추구를 만족시키는 문화 으로서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지만 개인적 합법적 권리내의 행위이다. 그러니 누가 암만 수군거리며 소리굿을 하여도 법적이나 도덕적으로 참견하거나 말릴 수도 비난할 수도 없다. 하물며 내 돈으로 내 몸을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야…. 사실이 이러하니 여기다 누가 빈정거린다면 자색을 위하여 광분하는 멋쟁이들과 그 서비스에서 실익을 챙기는 부류들의 면박이 앞뒤로 비거비래(飛去飛來) 할 것은 리소당연(理所當然)이다. 다만 라는 궁색한 답변뿐이다. 연변일보 2015년 5월 13일자  
86    을미 초하룻날 대담(对谈) 댓글:  조회:3043  추천:0  2015-03-06
젊음을 불사르며 고생에 생고생이 거듭되는 세고(世苦) 속을 살아오다 나이가 들면서부터 세신(岁新) 때면 매나니 밸이 꼬이었습니다.이란 허수한 심통이었던지 원인불명의 심술이 났었습니다.그런데 이 음력설의 내가 이상해 졌습니다.차례진 밥이나 제구 먹는 주제에 밝아온 을미년을 맨발로 뛰어나가 맞아 오고 천하를 굽어보는 용맹을 부렸습니다.거기다 내밀 게 없는 빈손을 뒷등에 감추면서도 이 한 해 이 땅에서 동정식(同鼎食)하며 살아갈 지인(知人)들과 제인(诸人)들에게 축복을 보내는 허세를 부리고 싶어졌습니다. 신년의 지지(地支)에다 선조들은 청양해란 띠이름을 따다 붙혔지요. 양들은 성품이 착하고 온화하며 있는 대로 나눠먹고 추우면 도리뭉치어 차진 몸을 녹이면서 단란하게 살아갑니다.그들은 인류와 다른 갈래이지만 친목만 주장하는 평화의 신봉자로서 인간에게 각인된지 오랩니다.연유하여 양띠 태생은 어질고 유순하며 관용、성실、인내로 넘칠 인간이라 사람들은 점을 치죠.이대로 류추하면 올해의 사람 무리는 양순한 양처럼 뭉치어 상부상조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이해의 우리 세상이 함께살이 태평성세가 되라고 기원한다면 잠을 자야 보게되는 몽세(梦世)의 꿈일가요! 혁신을 거친 우리나라에는 뽕밭이 호호바다로 된 변천이 일어났습니다.사람들은 부른 배를 슬슬 만지며 호의호식 시대색을 홍두깨 같이 자랑합니다.좀 출출한 기분이라면 GDP(국내총생산)를 최고선으로 압축성장을 해온 뒤안길에 이상발효(异常发酵)의 적폐물이 적치되어 훔쳐 볼 수만 없다는 것입니다.적자(适者)만 생존한다는 생물리론을 신조화하고 인간사회에 대입하여 일부는 벼락치듯 부를 쌓았는데 그에 밀려난 근로층들이 외면당하여 빈부 갈등의 박테리아가 상생한다는 인간가치를 속식(速食)하고 있습니다. 돈에 혈안이 된 장사치들은 하늘을 희뿌였게,식수를 독스럽게,공기마저 혼탁하게 휘저어 놓는데 사욕에 무감각해 진 두손을 아직도 떼기 아쉬워합니다.무수한 성장통(成长痛) 질병들,우리는 아픔을 참고 병집을 도려내야 하며 단결애국이란 국가철학을 추켜들고 개혁의 기정 목표를 향해 나가자! 3창을 불러야 되겠습니다. 이라 흐물거리는 량반들은 철부지 잠꼬대라 코웃음을 칠 것이지만 그래도 검은손이 조금이야 떨리겠죠! 요즘 오르 듯 부패 응징의 빅뉴스들이 매일 전해와 기분이 개운합니다.음습한 그늘에서 남의 돈에 거친 손을 뻗치는 벼슬아치들을 가시눈으로 봐온지 언제던가요.이 간세지배들이 된매에 얻어맞고 눈물범벅이 된 난감한 모습도 심심찮게 보이지만 무작정 바쳐야 할 죗값이기에 용서쯤이야 잠나라에는 있겠지요.그쯤 자리에 올랐으면 뢰봉、초유록을 따라 배우라며 선량한 백성을 얼마나 몰아세웠을까요. 당신네 부패 귀족들이 로 패거리를 지어 세력을 확충하며 피운 야비한 수작은 말이 안되고 있습니다.망치가 무르면 못에 찔린다 합니다.우리는 결연한 다짐으로 시정잡배들과 세차게 부딪쳐야 되겠습니다.이 말세 인간들이 쓴 면사포를 양파껍질 벗기듯 야멸차게 까발라버려야 대동단결의 사회가 흩어짐이 없다고 선구자들이 천청만촉(千请万嘱) 하셨지요! 내 후대를 락락장송으로 키우는 건 세상 부모들의 해맑은 기대일 것입니다. 사랑 전부를 한데 달이어 애정을 고아내주고 싶은 아이들이죠. 그래도 을미년 서광이 아이들의 구석구석을 어루쓴다면 더 큰 홍복(洪福)은 바라지 마십시오. 물론 내 자식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싶다는 애자지정은 세포조직으로부터 솟아난 사랑의 엑기스입니다.오늘도 하늘 아래 어시들은 제 피땀이 후대들 내일의 선단 묘약이 되라고 쉴새없이 되뇌일 것입니다.존념(存念)하셔야 될 바라면 무모한 사랑은 쥐여짜도 별로 득이 안 될 것이고 기성세대의 뭉쳐진 뒷모습을 애들께 보여주는 것 역시 값비싼 축복이라는 조상의 당부입니다. 인간의 장수나 무고는 하늘의 소관인데도 어디서는 백세가 청춘일세!라며 어물한 노래를 만들어 냅니다.속절없이 먹는 나이를 숨기려고 상발(霜发) 머리색도 감추려 애를 쓰는 세월이니 그도 그럴 것이라 리해가 갑니다. 피애망상(被爱妄想)은 아니라도 젊음을 만류하려는 유심적 사상과 몽환은 인간의 한결같은 선천적 의지로서 사람에게 영생의 단꿈을 실어다 주고 있지요. 삶은 만들어가며 산다는 징표가 아니일가요. 우리는 생명에 반짝이는 꾸밈새를 끊임없이 감입(嵌入)하며 보기 좋게 살아야합니다. 인생길에서 어느 때 주저앉고 싶다싶으면 더 기를 쓰고 달려가 한살이 최후만찬에 참석해야만 자식들과 남들의 갈채를 받아냅니다. 천하를 굽어봅니다.신선도 못 말리는 테로 복수의 순환극이 끊임없고 질시와 반목으로 네죽고 제죽자의 살륙전이 멈추는 날 없습니다.그 수라장에서 수많은 녀인들과 아기들이 차디찬 이슬로서 사라집니다.눈에 핏발을 세운 추물들이 폭탄을 거머쥐고 으르릉거릴 때 당신의 생모 같은 어머니와 그대의 애기 같은 젓먹이들에게 털의 끝만한 련민이라도 베풀지 못할가요! 용서하면 사라질 증오이고 리해하면 삭아질 분노인데 한치의 련민도 없는 찬피동물 못난이들입니다.이 백장들을 깨우칠 절대자가 그리워집니다.천하가 굽어보는 백일하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참수하는 참극의 극작가들과 슈퍼급 하수인들의 잔학무도를 치유하는 극약은 초강도 물리력 이외 따로 없는가요! 청양의 해,양무리의 생존법칙에서 인류는 뭔가를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평화만이 이시대의 공동강령입니다.새 리념을 앞세우고 구태의연한 구각을 깨버려야 골치아픈 유아독존식 대항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공존、공생、공영이란 세기적 혁명의 길에서 새출발을 해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이를 위하여 멀리를 보되 발부리 돌을 명심하고,발전을 하되 윈윈번영을 추구하고, 립안을 하되 또박또박 실행하는 개명한 모습으로 급변하는 세월과 마주해야만 진정 잘 사는 세상이 만들어 집니다. 움직임이 만만디라고 느림보 아호(雅号)를 달았어도 제노릇이야 건뜻 해재끼는 황소처럼 의젓하게 나간다면 행복이 안 찾아올 리유가 없지요. 초하룻날의 첫 단추가 잘 끼이었는지를 재확인 하시지요. 청양해 행복주의의 실현을 위하여 우리는 타종봉(打钟棒)을 굳게 잡고 풍진세상을 향해 자유종을 세차게 울려야 하겠습니다. (끝) 2015-03-04 연변일보
85    결혼메모리 댓글:  조회:2848  추천:0  2015-02-23
심심하니 쥐이는대로 책 하나를 빼들고 소일하다가 결혼기념일 이름을 찾아보기 싶어졌다.찰떡금슬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표현력을 길러주려 생각했다. 1주년을 지혼식(紙婚式 : paper wedding)이라고 한다. 선물은 종이로 된 그림이나 책 또는 상품권 등으로 한다. 2주년이 고혼식(藁婚 : straw wedding) 혹은 면혼식(綿婚式 : cotton wedding)이다. 상징 보석은 우애, 총명, 불변, 진리를 뜻하는 가넷(garnet)이고 선물은 무명이나 밀짚으로 만든 제품으로 한다. 3주년이 과혼식(菓婚式 : candy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청순, 순결, 건강, 장수를 뜻하는 진주(pearl)이고, 선물은 과자나 사탕 종류로 알려져 있다. 4주년이 혁혼식(革婚式 : leather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청렴, 결백, 장수, 미, 지성을 의미하는 토파즈(topaz)이고, 선물은 가죽제품으로 한다. 5주년이 목혼식(木婚式 : wooden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행운, 진실, 불변을 뜻하는 사파이어(sapphire)이고, 선물은 나무 제품이다. 10주년이 석혼식(錫婚式 : tin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영원한 사랑, 순수, 고귀를 뜻하는 다이아몬드이고, 선물은 주석(朱錫) 제품이다. 15주년이 동혼식(銅婚式 : copper wedding) 혹은 수정혼식(水晶婚式 : crystal wedding)이고 상징 보석은 열정, 진실, 사랑을 상징하는 수정이며, 선물은 동이나 수정 제품으로 한다. 20주년이 도기혼식(陶器婚式 : china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성실, 친절, 신의, 행복, 행운을 함축하는 에메랄드(emerald)이고, 도자기류를 선물로 준다. 25주년이 은혼식(銀婚式 : silver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은이며 선물 또한 은제품을 준다. 30주년이 진주혼식(眞珠婚式 : pearl wedding) 혹은 상아혼식(象牙婚式 : ivory wedding)이며 상징 보석은 순결, 청순, 건강, 장수를 뜻하는 진주이다. 이 때 선물은 진주나 상아 제품을 준다. 35주년이 산호혼식(珊瑚婚式 : coral wedding) 혹은 비취혼식(jade wedding)이며 상징 보석은 부부의 금슬, 화합을 뜻하는 산호이고 선물은 산호나 비취 제품으로 한다. 40주년이 벽옥혼식(碧玉婚式 : sapphire wedding)이고 상징 보석은 사파이어(靑玉)이며 선물은 사파이어를 준다. 45주년이 옹옥혼식(紅玉婚式 : ruby wedding) 혹은 명주혼식(明紬婚式 : silk wedding)이고 상징 보석으로 루비(鋼玉)이며 선물은 루비나 견직(絹織) 제품으로 한다. 50주년이 금혼식(金婚式 : gold wedding)으로 상징 보석은 금이며, 선물은 금제품으로 한다. 55주년이 취옥혼식(翠玉婚式 : emerald wedding)이고 상징 보석은 에메랄드(綠柱石)이며 선물도 비취 종류를 한다. 60주년을 회혼식(回婚式) 또는 회혼례(回婚禮)라고 한다. 한편, 75주년을 금강혼식(金剛婚式 : diamond wedding)이라고 하며, 상징 보석은 영원한 사랑, 순수, 권력, 성공, 안정을 뜻하는 다이아몬드이고 선물도 다이아몬드 제품으로 한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잘 살려면 “3가지의 갑(甲)”을 누려야 한다고 했다. 첫째로: 60살을 살아 ‘회갑(回甲)’을 맞이해야 하고, 둘째로: 결혼하여 부부가 60년을 해로하여 ‘회혼례(回婚禮)’를 맞아야 하고, 셋째로: 과거(科擧)에 합격한 방(榜)이 붙고 벼슬길에 나서 60년 나라의 녹(錄)을 먹는 ‘회방(回榜)’을 맞는 것, 이라고 일렀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한다고 좋은 세상이라는 현실에서 이들 3가지 중에서 몇 가지나 누린 것인지 혹 누릴 것인지 잠간 생각하는 것 쯤도 유머러스한 자아도취일 것 같다. (끝) 2015-02-24일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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