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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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刘备的高明可贵之处 댓글:  조회:10204  추천:3  2012-10-29
  《三国志》永远是国人的教科书。真诚而谦和的刘备手下强将如林,马超、赵云、关羽、张飞、黄忠等,还包括诸葛亮、徐庶、庞统等超级谋士,而世界级大师“诸葛亮手下无大将、廖化冲先锋”,不管不问其对选人用人工作有多高深理论论述、制定多少政策性文件和多么细化频繁考核。 比起诸葛亮,刘备只有真诚而谦虚的心和最朴实的言行,平易近人、平等待人、待人接物诚信有加,以志向聚人、以感情留人、以事业用人,他与团队中的人之间永远是真诚、信任和温暖的,没有诸葛亮的雄韬大略、高谈阔论、机敏睿智、细微观察和频繁考核调岗,按现在的话说就是“细化考核、竞聘上岗、择优选用、优胜劣汰”,但除了吕布外的马超、赵云、关羽、张飞、黄忠等三国时代最著名的超一流强将绝大多数都心甘情愿在刘备手下发挥才智、尽职尽责,就是因为他们之间诚信、信任与关怀永存,无需多言,需要现在的各级组织人事部门各级领导干部们放下身段虚心、好好学习、借鉴和改进。 诸葛亮对振兴蜀国有功,但他一生事无巨细、事必躬亲,弄得他的下属不知做什么好,诸葛亮忙得要死,而其他人又闲得要死,也是手下无将才、无人才、庸人当道、国力迅速衰竭的主因。对蜀国来说,成也诸葛亮败也诸葛亮。 中国有句“事事诸葛亮”、“三人行必有我师”的话,很有道理。作为领导人首先要谦虚、多听取不同意见、多当听众,才能做出正确的判断和选择。人无完人,刘备的一生有过重大失误,但完成了最重要的兴国大业,最大的成功在于知人善用,在一生中大多没有自以为“事事诸葛亮、处处诸葛亮、时时诸葛亮”,始终以“谦虚、谦和、诚信”为言行举止的座右铭,这是现今最大的发现,而诸葛亮的致命失败在于与其恰恰相反,在刘备的身上完美地体现了中华文明之精髓经典“厚德载物、上善若水、不为而治、大智若愚”。 2012.10.28  
204    홍일대법사의 이름은 리숙동(李叔同) 댓글:  조회:7904  추천:3  2012-10-17
중국근대사에서의 저명한 홍일대법사(弘一:1980-1942)는 중국천진(天津)의 한부호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네번째측실이었다.일본동경에서 유학을 했고 일본인 부인세츠코(雪子)와 함께 귀국해서 항주의 절강성 제1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었다.서양의 음악 희극 미술을 중국에 처음들여 온 사람이었다.   뛰어난 재주였지만 인생의 3단계(1단계는 물질생활 2단계는 정신생활 3단계는 영혼의 생활)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사랑하는 부인과 가정 및 풍요로운 교직원생활과 결별하고 산속에 절속에 깊이 들어가 마음을 닦아 불교율종을 깊이 연구해낸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미국의 노래 '꿈에서 본 나의집 우리어머니'와 일본의 노래 "애수에 찬 여행"에 맞추어 "송별"이란 중국인들이 애창곡 절세의 노래를 창작했다.   홍일대법사의 이름은 리숙동(李叔同:리쑤퉁)이고 근대중국사에서 불교율종의 최고 권위자었다.절식으로 시작해 "정신이 한결 맑아짐"을 감지하며 탈태환골하여 모든 영화부귀를 마다하고 산속으로 자연속으로 민중의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일단 결정된 사연을 알고 귀국하는 세츠코는 홍일대법사와 다른 배를 타고있었다.애정이란 무엇인가의 세츠코의 물음에 리숙동은 자비라고 대답했다.   가난할땐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활달했을땐 세상을 구제한다는 이념도 몸소 실천했다.중국불교의 최고 권위였던 조푸추(赵朴初)선생은 그를 "밝은 달처럼 하늘의 마음을 비추었다"라고 평가했고 저명한 영화감독 천쟈린(陈家林)선생이 그의 일생을 "밝은 달"(一轮明月)이란 영화에 담았고 전문위원들이 평의한 대상을 받았다.   늘 허심하게 다른 법사들께 가름침을 받는 홍일대법사는 일제의 침략으로 온나라가 대란을 겪을때 불교문화로 어떻게 나라를 구할수있느냐는 의구심에 "선유선보 악유악보"(善有善报,恶有恶报) 란 대답을 얻었고 잠자다가 발견된 이불속에 기여든 벌레를 놓아주며 모든 생령을 소중히여기고 가난과 일생을 같이한다.   그의 제자로 중국에서 유명한 만화가 문학가인 펑즈카이(丰子恺) 선생이 있고 그의 만화그림은 지금도 불티나게 잘 나가고 있다.그의 스승은 중국최고권위의 교육가 차이왠페이(蔡元培)북경대총장과 친구중엔 건국후 부총리까지 지낸 황앤페이(黄炎培)가 있다.
203    연변입쌀 판로는 어디에? 댓글:  조회:8402  추천:7  2012-10-11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경험이 있을것이다.젊을 땐 남방쌀이든 북방쌀이든 차려지는대로 먹어도 별 탈이 없고 군소리도 없었지만 지금은 맛없는 쌀로 밥해먹으면 채익지 않은 가지를 먹은것처럼 위가 쓰리고 종일 기분이 언짢다. 국가에 바쳐 저장한 벼는 적어도 2년~3년후에야 출고된다.그동안 벌레가 생기고 쥐가 먹고 습기가 차 변질할가봐 방부제에다 농약성분같은것을 뿌려 마당에 내다말리운다. 일본과학가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벼겨성분과 겨내가 쌀속에 장기간 스며들어가면 쌀맛이 대폭 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선 현미로 정미한후 건조하게 말리워 창고에 보관하기에 몇년되여도 쌀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시장경제체제가 미흡할 경우 성실하게 쌀장사하면 돈이 안된다 하니 묵은벼를 보다 낮은 값으로 사들이고 정미후 향료, 표백, 빛갈내기(재가공할때 희고 투명하게 기름 혹은 화학성분으로 씻어냄)를 첨가해서 햅쌀보다 더 보기 좋은 가짜햅쌀을 만들어낸다. 동북쌀은 비싸 리윤이 잘 안나오니 싸고 맛없는 하북 등 북방지역의 묵은벼를 정미한 쌀을 섞어서 동북쌀로 포장해 고가로 팔기도 한다. 농산물시장엔 거의다 이러한 상황이라해도 과장은 아니라 한다. 몇해전부터 연변분이 룡정시 동성용진 태평촌 "황토마을"쌀을 트럭으로 운반, 주위에 있는 아는분들과 단위에서 사간다 하니 몇만근은 쉽게 나간다 한다.한번은 출장가 연길시장에서 한근에 2원넘게 주고 50근 사서 부쳤다는데 찾는데 쌀값보다 더비싸 운반하는 사람이 먹으라구 찾지도 않았다. 동북의 조선족농민들은 고생스레 쌀농사를 해 풍작을 거두어도 판매경영이 미흡하다보니 가정소득을 올리는데도 항상 어려웠다. 기업이 찾아가 투자해주고 가공회사를 꾸리면 틀림없이 우에서 말한 가짜입쌀이 뒤섞인 혼합쌀을 가공,포장해 판다. 언젠가 성실한 조선족의 어느분이 포장이 좀 떨어진다해도 조선족촌의 햅쌀을 트럭으로 대도시에 날라오고 북경왕징 남호시장같은데다 매장(다른 장사를 겸사해도 되고) 하나 위탁 합작해 자리잡고 팔면 얼마나 좋겠나 제좋은 생각을 해보군 한다. 왕징남호시장엔 된장, 고추장, 명태,떡 없는게 없다.그런데 유독 연변입쌀만 없다. 물어보면 맛없어도 그냥 하남성아줌마가 파는 값싼 "동북쌀"을 사먹는다 한다. 조선족들은 인맥,인내성, 경영노하우가 없어 힘들게 가꾼 좋은 쌀, 맛있는 쌀을 제자리에 앉아서 팔지도 못하고있다. 하남성아줌마는 향미는 어떻게 나오느냐 물으면 향료를 한포대에 얼마씩 넣는다 한다.희고 투명하게 잘 정미돼 보기 좋아도 직접 밥을 지어 먹어보아야만 밥맛을 알수 있다. 일본에서는 쌀은 어디서 사나 다 마찬가지로 맛있고 비싸다. 하여 땅에 떨어진 쌀 한알 두알 주은적도 있다.식은 밥을 다음끼에 먹어도 그냥 맛있다. 일본 고시히카리와 사사니시키 품종은 최고이다. 노랗게 성숙되기 시작하면 비바람에 잘 넘어가 도복(倒伏)이 되지만 맛있고 비싸니 재배면적은 줄지 않는다. 중국의 대중도시에 진출한 한국이마트에서 인젠 한국쌀, 중국동북쌀을 팔았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혼자 생각해본적도 있다. 고향이 광동인 한 한족은 자녀가 일본서 9년 공부했다며 맛있는 쌀을 제법 잘 알아본다. 내가 연변쌀을 소개해주면 한해에 50포대씩 사서 집에서 먹고 자식들에게 나누어주군 한다. 며칠전 왕징남호시장에 가보니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시히카리"라고  적혀있는 일본쌀 5킬로(10근)에 380원 내라 한다.한근에 3,4원하는 쌀을 38원에 판다.깔푸스퍼에서 일본쌀1킬로에 99원에 판적도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춤 노래와 술놀음은 잘해도 제일 현실적인 조선족농민입쌀보호운반경영도 할 능력이 없어  제값에 팔지 못하고 또한 사지못해 초조해하는 조선족사회가 안타깝다.
202    韩国的魅力在哪里? 댓글:  조회:10836  추천:3  2012-10-08
  ——韩国自由行体验 (发表于光明日报‘光明网’、网易、凤凰网) 比起我国周边其他国家,中国版图犹如大公鸡,北京、天津是政治、经济、文化、科技、教育中心,每天睁开眼就能看见韩国人拿的新手机、穿的新鞋、新衣帽,用的新化妆品,十分显眼,因此国人非常关注和敏感,尤其是追寻时尚的年轻人。香港经济学教授郎咸平几年前就曾预言韩国的科技、企业、教育、文化、经济、国家创新能力全面超越日本,因此将自己的孩子送往韩国留学。 通过中青旅4晚5昼的短暂旅程,亲眼目睹韩国首尔市政府大楼前的市民广场文化,体验了广场文化带来的大众文化活力和亲和力,看到了以民营、私企为核心的社会创新力和活力,看到文化与企业的竞争力所在,亲身体验到了公平正义与和谐文明带来的和谐文明的社会效应,这是在过去多次公务考察中所未曾有过的体验,这也算是长期深入研究韩国的学者对一些专题的重新认识和新的发现,读起来应该有所新的启迪和受益。 去的时候乘坐国航空客,比回来时的波音大,一排坐8人,飞得也快,报1小时25分钟,实际飞1小时30多分钟,而波音飞了1小时50分。经多次比较,仁川机场秩序井然,有条不紊,最大的印象是乘机后很快能起飞。到了仁川机场,先办理入境手续,记得过去分为韩国人、外国人窗口,出于人文考虑改为持有韩国护照和外国护照者,人排得多就增加窗口,还算比较快,偶尔看见持有问题护照或非法入境者。与仁川国际机场相比较,国内主要的京上广大机场的差距也不是一两处,要从整个管理与服务系统和细节上找差距弥不足。仁川机场在在历年的国际机场评比中首屈一指,这一荣誉,如果亲身体验就会觉得并不虚传。 托运的行李出得很快,人到行李到,取出行李后就出大门,出前可兑换韩币,后来发现在南大门、东大门、地下商街都可以自由兑换,而且比银行汇率高而核算。到市中心就是市厅大街,可乘坐6005、6001、6015等,一小时左右,快时只有40分钟,也可以乘坐电车,电车有座,没有国内那么拥挤。 市中心有首尔广场,韩国的广场文化是国家软实力的最好象征与体现,国人最好去体验。紧挨着首尔市政府大楼(叫市厅)和PLAZA饭店、总统饭店的小草坪场地就是韩国市民文化的中心,重大国际赛事,如伦敦奥运会的韩日比赛时就聚集几万之众,鸟叔的公演也在这里举行,聚集8万之众,可惜提前一天回来没有看到,但从中秋节到10月7日,每天都有公演,放烟火,走墙壁舞的叫“帕坡莫斯”,十分精彩,可见在市场经济国家和社会也十分需要大众的免费午餐广场文化,增强亲和力、解酒力(缓和社会矛盾)和凝聚力。看见男女老少聚集在广场而如痴如醉,充分说明这一点,北京、上海、天津、深圳市政府一定要去考察这里的奥妙,在政府文件和学者书本上找不到的市政建设的成功秘诀。 光化门广场也是市民文化广场,更是政治、文化中心,塑有朝鲜时代抗日名将著名的龟甲船发明者李舜臣和半岛历史上最开明的君主世宗国王名叫李裪,在某些方面和清朝康熙皇帝的功绩比美,在韩国历史上最享有盛名,是政治、文化、经济、教育、科技、民生、福祉最开明、发达时期,发明《训民正音》即韩文。新迁建的韩国首都叫世宗市,可见其威望所在。在这里一年四季都有各种活动,地下和旁边有博物馆、展览馆,从市厅再往前走几分钟即到。紧挨着景福宫,韩国有景福宫、昌德宫、德寿宫,都在附近,可以体验电视剧《大长今》、《明成皇后》、《女人天下》的历史、文化氛围。   离市中心很近的购物市场有南大门,只有几分钟距离,乐天百货,9——11层为免税店,小女孩很多,据说化妆品便宜一半,还有名牌手表、挎包等,心想北京机场空港商贸区为什么不建免税商店?南大门比较热闹,据说都是街道工厂生产的衣物、手工艺品,但质量上乘,买纪念品是最好的地方,价钱不贵大都一万韩元上下也就50到100元人民币,比百货商店便宜许多。东大门和平市场更便宜实惠,衣帽类应有尽有,可以尽情挑选。 从东大门走下去,就能看到清溪川,走20、30分钟即可回到市厅大街。这也是值得国内市政建设部门仔细考察和学习、借鉴的地方,真是感慨万分。虽然,北京也有穿过市内的小河流,但建设理念和实效差距很大。清溪川是名副其实地贴近市民与生活,人文价值很高。人们无论男女老少都可以顺着清溪川慢步行走,回归大自然、回到故里,进入世外桃源和精神家园,体会到人与自然天人和一的人文关怀,忘记了城市与生活的烦躁、烦恼和忧伤,拉近人与人的距离,和市民广场文化一样,增加亲和力、解酒力(缓解社会矛盾)和凝聚力。这里既要考虑历史古迹,还要考虑国际化开放精神,大自然元素多于民族与国家元素,世界各国人民都可以尽情享受这种人文、精神、生态家园释放的人文情怀和关怀。 如果住在市中心,到想去的地方打车也就一万元韩币50元人民币上下,而且司机非常友善仔细讲解,黑颜色车叫“模范车”,因价钱很贵而没人坐。梨花女子大学、弘益大学、延世大学都在相近之处,其中梨花女子大学值得一看,是培养领袖级女精英的学校,历史悠久。校园很美。弘益大学周围咖啡店很多,是电视剧《咖啡王子》等影视剧的重要拍摄场地。首尔大学也很好,就是远了一点。 到永登浦乘船游览汉江也不错,但去了后发现租用自行车漫游江边更有意思。首尔的空气好,如果遇到晴空万里心情会更好。除了黄沙天气,首尔的PM2.5数字大都低于70,韩国的标准是低于50,加上有一点湿润,很舒服、很开心。很多人全家来游玩放松,还搭上小帐篷休息。看见不少专业自行车手。PM2.5的标准化和清溪川的建成,加上市民广场文化,的的确确、实实在在为首尔市民带来了和谐与幸福感。 梨泰院是外国人一条街。在首尔发现外国人很多,据说居住在韩国的外国人已占全韩国人口的2%,相当于在中国有2600万人。因此,韩国致力于“多文化教育”,就是对定居韩国的外国人,包括与韩国人结婚的配偶及子女的文化教育,也是建设和谐国家与社会的重要一环。 仅在首尔一游,还觉得有些遗憾,就拿出一天时间去远处,远处有爱宝乐园、民俗村,这两个都在龙仁一处,爱宝乐园有些像迪斯尼乐园和动物园的结合,市内的“乐天世界游乐园”也不错,还有精彩表演。民俗村名副其实是韩国原生态农夫、农村、农业劳动与生活的真实写照。江原道的首府春川市虽不大,但是《冬季恋曲》、《秋天的童话》、《初恋》等韩剧的主要景点,地方特色食品有春川刀面和鸡肋骨烧烤。在乘坐火车过程中的上车、在车内、下车出站都不检票,正如北京、上海机场取行李不查验行李编号一样,形成自觉、诚信、守法的文明社会,人少不拥挤,到车站现买车票不用排很长的队,买了票就有座位,也是特色之一。 美食也是韩国特色之一。虽说喜欢炒菜热菜油水的国人不妨品尝一下油水相对少而利于身的韩餐,如青菜或芝麻叶包饭、参鸡汤、烤排骨、韩国冷面、拌面、炒年糕、米肠、米酒、石锅拌饭、各种泡菜等。吃肉多,一定要配吃圆葱、青菜、大蒜,在韩国不像日本可以吃大蒜。常喝大麦茶有降低血糖、血脂、血压之功效,荞麦冷面、拌面也有这种功效,与国内常吃燕麦片一样。韩国人喜喝凉水,但不是凉开水、生水,都是矿泉水或纯净水,据说对肠胃好些。喜欢喝茶的朋友可以自带些绿茶,红茶、咖啡、乌龙茶韩国也有,韩国绿茶特清香,但比较贵些,最具特色的茶是糙米绿茶混合袋茶。 仁寺洞是工艺美术品一条街,类似于北京的荣宝斋,但路边小店摆放的商品种类更多些、更精美些、更时尚些,游人还真不少。北村或南村韩屋村是很有特色的景观,据说还能住宿,小胡同、小街道、房前门后的柿子树、富有韩国特色的民居,想起了家乡、想起了兄弟姐妹和父老乡亲。 韩国的魅力在哪里?在韩国“爱”与“恨”是国民精神脊梁,有首歌曲叫《恨五百年》,就是爱与恨的经典之作,但不是宣扬民族仇恨。是饱受日本帝国主义列强侵略压榨而爆发出的民族精神与情怀,是具有同样经历与痛苦的中国人民最能理解和同感的,在这个国度殖民地、附庸国、附属国、小国的词汇及居高临下般轻易表达是最忌讳的,很容易引起举国之民极大的反感而积怨。 韩国的魅力在哪里?就是出自这种健康的民族精神,如今化作追寻民主化、国际化、开放化、先进化的创意力、创造力、革新力(创新力)的文化、科技与企业。 科技是第一生产力。并非极端民族主义的民族精神,衍生出文化创造力和爆发力,以K——POP为代表的韩流文化名副其实地走向世界,电视剧、电影、歌曲、舞蹈、饮食文化也如此,最近一夜爆红而风靡世界的鸟叔《江南风范》就是一个见证。这种文化创新力又陪伴出超强的文化、科技、企业的创新力,曾引领世界最时尚文化的迈克尔杰克逊、麦当娜是否将在韩国出现?除了资源规模型企业外,如三星已挤进美国独霸的世界前十名企业,首尔大学和开发研究院大学也正挤进世界著名大学前50名,韩国还要培育十个三星这样的超强企业,不是说说而已。日本索尼、松下等世界级超一流企业等九个电子企业的产值、销售额、利润合起来不如三星一家,可见韩国的科技与企业竞争力。和人类说息息相关的电子产品如手机、电视机、汽车及其核心基础部件半导体、存储器都由韩国科技、企业引领,这足以说明韩国不是昨天的韩国,而是虚心学习型、不断创新型国家。尽管,我国在航天航空等领域的国内技术高于韩国,但国内媒体鼓噪一时的造船技术也只是在规模总量上一时超越韩国,但在高精尖技术、高附加值豪轮制造上还有不小差距,在半导体、存储芯片、电视机、手机、汽车、高铁等民用核心技术上也有不少差距,需要虚心学习和真诚合作。 韩国文化人常说韩国通过几代人的努力,成功实现了捕捉两只“兔子”,一只是民主与法治,另一只是自由市场经济,值得关心国政设计的人深入思考。韩国人在经济社会升级换代的过程中付出巨大的牺牲和代价,但大都平稳转型过渡,让人们十分忧虑的中等收入陷阱,也通过举国齐心重视与投入于文化、科技、教育、企业和社会发展而平稳过渡。 长期在日本留学、生活过的人,会深入比较。韩国与日本最大的区别在哪里?在于韩国人非常即兴、感性和忧患的国民特性,没有预定的周密计划、设计与路线,往往来自于瞬间即兴灵感与爆发,叫“神风”,也叫“酱块”文化。鸟叔风靡世界的歌舞《江南风范》的关键词就叫“走到哪儿算那儿”。他们有日本人的精细,有中国人的诚实、自尊、大度和粗犷,也有独特的快捷和敏捷性格,比日本人更有眼力价和人文情怀,虚心学习美国人的实事求是和包容、宽容精神,但比美国人更勤奋,更用功,更敏捷,更有集体与奋发精神与意识。具有团队精英的三星超越单打独斗的苹果只是时间问题。 三星在西安投巨资建设最新半导体存储器生产线,足以证明韩国作为友好邻居,积极参与中国的西部大开发,与中国共命运、共存亡的决心和实际行动。在科技、企业、文化、教育、旅游、传媒、影视剧等诸多方面中国和韩国携手引领世界并不是空想虚构,而是实实在在的宏伟蓝图,这里需要欧美的合作与支持。中韩两国的文化界、艺术界、科技界、教育界、新闻界、企业界要以更开放的胸怀和姿态拥抱对方,不受意识形态、冷战意识与陈旧历史的枷锁束缚,不挑拨矛盾,相互学习、借鉴、交流与合作,一起携手走向经济全球化和国家民主与法治建设,成功捕捉两只“兔子”,平稳走出中等收入陷阱,做出不同国家制度和意识形态的邻国友好合作的世界典范。                               2012.10.7
201    다시 보는 드라마 "장백산기슭의 우리집" 댓글:  조회:7815  추천:6  2012-09-27
1.기꺼운 일 즐거운 마음: 최고권위인 중앙TV방송제1채넬 저녁 황금시간에 우리 민족생활의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 "장백산기슭의 우리집"을 방송하니 마음이 기쁘다.비록 내용상에서 좀 어색한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매일 저녘 저도모르게 리모콘을 눌러 찾아보거나 지나간 방송을 다시 보게 되니말이다. 감독이나 극본작가 이름은 별로 들어본적이 없지만 탤런트 손천(孙茜), 총산(丛珊:주인공 박순옥의 이모 김정숙의 시어머니 윤명월,영화의 주인공) 왕아군(王亚军:순옥의 외할머니,모택동의 부인 허즈전 贺子珍역을 역임)  항일영웅 이창선역엔 진일항 등 인기탤런트들이었다.강조하고싶은것은 극본작가 리팅(李汀)이 남다른 시야와 관찰력으로 례의밝고 화목한 두가정을 배경으로 그려낸 연변조선족가정과 조화로운 사회의 표정을 아름답게 부각시켰다는 점과 조선민족의 성격과 특징에 맞는 탤런트들을 발견 발굴해낸 점이다. 다른 드라마보다 조선족마을, 초가집, 뜨락, 논밭, 오솔길, 산과 들  노래 무용학교 경관 등은 정말로 볼만했고 탤런트들의 연기는 출중했다. 특히 진일항, 총산,왕아군 등 주연의 연기가 그들의 련예생애에서도 새로운 창조와 정점에 도달했다. 볼수록 그들만의 피타는 노력으로 북방민족 조선족의 성격과 특징을 심도있게 부각해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민족 모두가 즐거워지는것은 연변조선족인민들의 생활을 반영한 드라마가 중앙제1TV황금시간에 방송된다는 이 자체가 축하해야 할 대단한 경사가 아닐수 없다.토지와 함께 자연과 함께 고향마을과 오늘의 생활을 사랑하는 연변조선족인민들의 현실과 정신면모를 부각시킨 이 드라마는 당과 정부의 정확한 민족정책을 그대로 반영했고 우리 민족의 마음을 한결 즐겁게만 달구어준다. 앞으로 더 좋은 조선족스토리를 담은 드라마가 나와야 하고 방송되여야 한다. 문화대혁명전엔 장춘영화제작소에서 조선족항일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빙설진달래"(冰雪金达莱.)"김옥희"(金玉姬,탤런트백양:白杨) 우체국의 이야기를 담은 "기러기"(鸿雁)같은 예술영화를 제작해냈다.아름다운 추억으로 같은 이름으로 그려낸 중국의 국보인 그림책 (련환화)을 가끔 꺼내 보기도 한다. 이 드라마를 계기로 앞으로 연변당위선전부 문화국에서  은을 내서 더 좋고 더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했으면 좋겠다. 2.류의하고 개진해야 할점: 드라마 "장백산기슭의 우리집" 은 “떠나가는 연변” 이 아니라 “돌아오는 아름다운 연변”을 부각하기에 립각했다지만 무엇때문에 흉금을 때리는  감명이 좀 부족했을가? 인력과 자금도 많이 들었고 중국의 유명한 탤런트도 나오고  노래, 음악도 괜찮은데 왜서 각별한 감동이 부족했을가? (1)드라마 매집과 총체적내용의 줄거리가 희극의 기본인 모순격돌이 뚜렷하지 않아 관중을 당기는 인기가 부족한것 같다. (2)내용은 조심스레 가꾸었지만 가장 중요한 대목은 조선족의 가장 큰  관심사인 "코리안드림"(해외로 나가나, 연해지역으로 나가나, 고향마을을 잘 건설하나?할아버지 할머니의 고충과 희열, 아버지 어머니의 고충과 희열, 아들 딸들의 고충과 희열, 마을 사람들의 슬픔 기쁨과 희망이 심도있게 반영되지 않았음 )이 빠졌기에 줄거리 내용이 마음속 깊게 닫는것이 부족했다. (3)조선족의 옷을 입고 조선족의 초가집에 미풍량속의 외형을 그려내고 민족례의와 교육문화를 존중했지만 주요인물중 민족배우를 등용(적어도 주요인물중 한두사람이 있어야함, 민족인재를 배양하기위해서라도 채용해야함)하지 않아 도해(图解)에 불과해 보여 조선족군중의 현실생활과 좀 거리가 있었다. (4)절주가 너무 느리여 답답하다(느리여도 볼거리가 있다면 괜찮을것이다).(5)촬영사전,사후,홍보가 없어 찰영과정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몰라 미봉할 여지도 없다.(6)극본은 문밖에서 들여다 보며 쓴것이 많아 조선족의 현실생활, 군중과도 좀 거리가 있었다. “인민의 총리”주은래는 청년시절 일본, 프랑스, 로씨야 등 여러 나라에서 류학을 하면서 많이 보고 체험했기에 세계 최고급 문명인 “인문정신과 배려”라는 걸 잘 알았다.그의 지시하에 소수민족의 이야기와 내용을 담은 영화나 희극, 가극중  제1호 남녀주인공은 반드시 내용과 일치한 소수민족, 정 없으면 다른 소수민족이라도 꼭 채용하는것이 그 당시 원칙이였다.그래서 "다섯금화", "아스마"(五朵金花,阿斯玛)"오레이이란"(傲蕾一兰)등 영화의 주인공은 어김없이 소수민족 출신인 양려곤(杨丽坤)등 탤런트가 주역으로 나섰다.그후 문화대혁명으로인해 박해받아 전중국을 울린 감격적인 탤런트이기도 했다.하지만 문화대혁명이 시작된이래는 주은래총리의 이 현명한 지시는 지속적으로 관철되지 않았고 소수민족 연예계인은 점점 드물어갔다.군중배우에서 좀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지금 중국영화계엔 김염같은 저명한 조선족탤런트는 없어지고  드라마 "빠빠더퉁즈러우"(爸爸的筒子楼)의 어느 여스푸외엔 찾아볼 수도 없게 되였다. 저명한 조선족 가수인 최경호, 김학봉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물론 시장화표준으로 보면 전부 전국적으로 유명한 탤런트를 기용하면 그만큼 인기와 감명도 클수 있다. 하지만 소수민족과 지방특색내용을 담은 문예작품은 당의 민족정책의 일환으로서 좀 다르다. 조선족을 위한 드라마나 노래로서 조선족군중의 감명을 일으킬 수 없다면 기대할만한 사회적효과가 있을수 없다.민족령도가 경축연설에서 자기 민족말을 외면하는것과 마찬가지일것이다.국부적이고 너무 섬세한 일 같지만 당사자의 립장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만큼 각급 당위선전문화부문에서 이 내연을 알아 두어야하고 진일보 개진하여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드라마로서 이번 방송된 드라마가 "어머니의 장국집"에 이어 두번째이니 세번째 네번째로 촬영된 드라마엔 상술한 결함을 부단히 수정,개진해가며 조선족군중들의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명과 환성을 일으키는 더 좋은 작품이 촬영되리라 믿는바이다. 2012-09-04
200    중한관계 댓글:  조회:50103  추천:42  2012-08-24
---중한수교 20주년을 기념하여 중한관계의 전망에 대하여 대체로 비관론과 낙관론으로 나뉜다.비관론은 듣기 거북하고 암울하겠지만 문제해결엔 도움이 될 수 있고 낙관론은 과장적일 수도 있지만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갈 수 있기에 들어 볼만도 할것이다. 1.밝은전망:가장 현실적이고 가능한 길은 중한경제교류와 협력발전의 탄탄 대로이다.중한두나라는 시장경제와 글로벌경제의 단맛을 본 나라이다.한마디로 말한다면 노선은 중한두나라가 번영발전의 길로 나갈 수 있는 가장적합한 선택이므로 앞으로 중한경제협력사업은 그 누구도 가로 막을 수없어 거침없이 줄곧 대폭 성장 할 것이며 두나라무역액은 3천억불로부터 5천억불로 대폭 증가될 전망이다.1조달러를 예측하는 학자도 없지않다.중국의 주강 빈해 장강삼각주로(珠江、滨海、长江三角洲)부터 서북 서남 동북지역 대중도시화 에 이르기까지 한국기업의 투자와 협력이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중한두나라가 지속적으로 성의있는 개방개혁과 평화발전을 추구한다면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사회 교육 과학 문화 관광 인적교류도 대폭 증가될 밝은 전망이다.     국가경제발전과 국가안보는 두마리의 토끼라 한다.중한경제관계는 급격히 뜨거워지지만 정치 특히 국가안보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는 학자도 적지 않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중일 두나라는 아시아에서 치열한 경쟁구조를 가진 나라이므로 두나라가 손잡는다는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려울뿐더러 미국이 달가워 할 리 없다.중국과 한국은 이러한 구조적 치명적 모순과 장벽은 없어 서로 적극 포옹하려 할것이고 자유무역협정체결이나 전략적 동반자협력관계에서 보다 주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현실적이다.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한두나라가 서로 잇고 세계로 통하는 지상 해저 항공 길을 부설하면 동북아 여러나라는 가기 좋아도 싫어도 모두다 실려간다.경제나 안보가 모두 윈-윈효과를 보게될것이고 민감한 문제는 다 쉽게 풀려간다. 한국의 이러한 특수한 지정학적이고 현실적 정치안보외교정책을 미국과 국제사회의 이해를 받아내야 하고 자신의 성의있는 행보로 중국을 하는 국제동맹에 적극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해상 및 항공운수선을 포함한 국제질서와 남북대립에서 자국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의 국제질서 유지와 에 있어서도 중국은 한국을 통하여 미국과의 화해와 협력의 출로와 진로를 찾으려 할것이다.한국은 중국의 소프트파워인 구축의 가장 적합한 파트너이자 실험장이기도 하다.남북경제수준격차가 현재 40배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에 정상적이라면 중국도 한국과 손잡고 동북아지역과 한반도관리에 있어서 적극 협력하려 할 것이다.한국도 중국의 도움으로 한반도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친형제인 조선정부와 북녘동포들과 손을 잡으며 점차 평화통일을 기획해 볼 수 있을것이다.천년 만년 지나가도 피는 언제나 물보다 진하다. 중국은 한국과 등지면 주변의 모든 국가  및 서방국가, 나아가 국제질서와 등지게 될 수 있고 참혹한 대가로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 버리게 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신중하여야 할것이다. 중한 두나라와 지성인과 지도자들이 냉철하고 이성적인 정치판단과 현실적인 조치로서 두나라는 공동한 경제사회발전과 국가안보에서 윈—윈효과를 거둘 수 있다.하지만 비현실적이고 일방적인 환상은 반드시 버려야한다. 2.유의할점:어두운 그림자:한국정치가 잘못 판단하여 중국안보에 악영향을 줄때 어두운 그림자가 어김없이 찾아 올 것이다.중국에 있어서 어두운 그림자는 호금도주석이 지적한바와 같이 개방개혁노선과 글로벌시장경제에 동요하는 극단사상 극좌세력 특권계층이 존재하므로 1950년대 60년대 문화대혁명 구소련시대에로 복귀하려는 사조와 움직임은 중한관계발전에 늘 그림자를 띠운다. 한국과 중국이 극좌사상 극단민족주의, 봉건제왕사상 주변국가들과의 국경 및 국지 전쟁, 냉전의식 이데올로기의 그림자와 악순환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중한관계는 급격히 냉각하거나 악화될 수도 있다.하지만 낙관론으로 보면 시장경제와 글로벌경제에 대거 의존하는 중한두나라는 해상운수통로 국제무역 금융협력체제 국내취업확장을 거부하고 제로섬(zero-sum) 게임을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제로셈게임을 하게되면 그 어느나라도 경제침체 사회모순 내란내지 폭란으로 이어지고 국가가 부도나고 정권이 무너질 수 있기때문이다.  3.가장 우려할점:미국의 가장 권위적 전문가의 판단에 의하면 중미 두 나라가 큰 실수로 서로 잘못 판단해 제로셈게임을 벌릴 때 동북아 한반도가 바로 각축장으로 변할 수 있다.즉 중미두나라가 상대를 적대국가로 인정하고 미국은 중국을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중국은 미국은 급격히 쇠망해 자신의 경제나 군사실력이 이미 미국을 초월해 싸워도 이길 수 있다고 판단 할 때 충돌과 전쟁도 폭발할 수 있을 때이다.그때 한국도 부득불 동맹국행열에 참여해야 하고 지금 진행중인 중한두나라간의 모든 우호적인 경제사회교류합작과 발전사업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될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비관적이지만 오늘의 실수가 내일의 현실로 되지 않기를 평화와 발전을 갈망하는 중한두나라국민들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대하는 바이다.중한 두나라도 경제사회발전과 국가안보에 서로 크나큰 도움이 되고 파괴력이 없는 좋은 이웃이 되기를 갈망한다.이는 중한두나라의 친자식인 우리조선족동포들에게도 더욱 간절한 마음과 절실한 기대이다.
199    '20-50'을 실현한 한국 댓글:  조회:21720  추천:40  2012-07-20
'20-50'란 1인당 소득 2만달러(20K, K는 1000을 의미), 인구 5000만명(50M, M은 100만을 의미)을 동시에 달성한 나라들을 뜻한다. 국제사회에서 1인당 소득 2만달러는 선진국 문턱으로 진입하는 소득 기준으로, 인구 5000만명은 인구 강국과 소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각각 통용된다. 한국은 2012년 6월 23일 오후 6시 일본•미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영국에 이어 세계 7번째로 클럽 국가가 됐다.   1. 이 가지는 의미:   필자는 20여년전 해외에서 유학할 때 일본의 한 경제학자가 쓴 저서에서 인구 5000만을 가진 나라가 세계를 리드하는 기본조건을 갖추었다는 대목을 읽은 적이 있어 평생 잊혀지지 않아 나의 발언에서도 자주 인용했었다.먼 옛날이거나 오늘의 현실이 증명하고 미래도 그러할것이라 믿으면서 인구 5000만 이상을 가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국가는 처럼 영원한 강대국의 존재로서 세계를 리드해왔고 또 리드 할 것이지만 인구가 이보다 적은 스페인(현재인구:4021만) 포르투갈(1010만) 네덜란드(1615만) 등 여러나라도 한때 세계를 리드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지금도 국토면적은 크지만 인구가 5000만에 미달해 강대국의 역할을 해낼 수 없는 캐나다, 호주가 있다.이와 반대로 인구가 훨씬 많은 대국인 중국, 인도, 파키스탄,브라질, 러시아, 인도네시아는 1인당 소득이 오르지 못한채 늘 국내모순으로 고통과 혼란을 겪어왔다. 에서 을 실현하는데도 10년가량(한국은 5,6년필요)의 시간이 필요하므로 이미 역력히 보여지는 현실이다. 한국은 제2차세계대전후 그것도 원 식민지나라에서 신흥국가로서 이 목표를 실현했다는 점이 훨씬 역사적 시대적 현실적 보편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이로서 한국과 전세계의 한겨레들은 신바람 날 시대에 들어섰다.   2.국제비교   나라간의 강대국과 부유국 정상국 비교는 매우 복잡하여 어렵다.정치논리를 제외하고는 두가지 표준으로 평가하게 된다.하나는 시장경제국가인가 법치민주국가인가이다. 두 번째로는 숫자로 보는 과 이다.인구 자원 역사 재난(전쟁을 포함) 등 요소가 국가발전에 큰 영향을 주겠지만 제일 간단한 방법은 동등급으로 나누어 비교할 수 있다.힘장수 스모선수와 10살짜리 남자애와 씨름을 붙여 누가 더 센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가장 적합한 표준으로 (1)도시국가간 비교: 인구는 비슷하지만 싱가폴, 홍콩(지역) 과 핀란드, 이스라엘, 몽골과 비교할 수 없다.왜냐하면 도시국가(지역)와 도시 농촌 산간벽지 사막지대를 가진 몽골, 핀란드,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홍콩, 싱가폴은 파리, 런던, 뉴욕, 도쿄, 서울, 베이징, 상하이, 모스크바와 비교할 수 있고 몽골 ,스위스, 이스라엘, 핀란드, 대만(지역)은 서로 비교할 수 있다.(2)인구별로 나누어 비교:도시 농촌 산간벽지를 가진 나라가 대부분이지만 인구차이가 너무 많으므로 1000만 안팎의 나라간에 비교가 되고 2000만 이상의 나라간에 비교가 되고 5000만 이상의 나라간에 비교가 된다. 하지만 1억이상의 나라는 인구대국으로는 볼 수 있겠지만 부유한 강대국이라 부르기엔 적합하지 않아 비교가 잘 될 수 없다. 1억이상 인구를 가진 나라로는 중국(13.5억) 인도(11.9억) 파키스탄(1.6억) 러시아(1.4억) 방글라데시 (1.6억) 인도네시아(2.3억) 브라질(1.9억) 미국(3.2억) 일본(1.3억) 나이지리아(1.5억) 멕시코(1.0억) 등 나라이므로 나라간 격차가 심하고 모든 사정이 복잡하여 같은 등급에 나눌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다. (3)선진국과 발전도상국간 비교:제2차세계대전후 선진국 강대국과 발전도상국 원 식민지국가간에 전혀 비교가 될 수 없지만 한국이 처음 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성공사례이다.   3. 을 실현한 한국의 전망   1970,1980년대 일본의 발전모델로 중의 하나로 한국이 부상했다.대만, 홍콩 ,싱가폴, 한국 4개 지역 혹은 국가였고 그중 3곳이 중화권의 나라와 지역이었다.그때만 해도 대만은 중소기업이 강해 돈을 제일 잘 벌어들이는 지역이라 평가 받았지만 사실은 봉폐된 중화권의 시장규모의 혜택을 빌어 보다 쉽게 시장과 수출을 늘려왔고 빠른 속도로 부를 축적했으며 일본의 대거 투자도 한몫했다.하지만 남북이 대립되고 세계의 어느곳에도 의거지가 별로 없이 고독한 한국은 오직 글로벌의 길과 일본 독일 미국의 기술과 경영을 허심하고 진지하게 배우는 길, 그리고 두눈을 부릅뜨고 악전고투하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지만 그것이 오늘에 와서 보약이 되고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힘의 원천 노하우가 되었다.이와 대조로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남아메리카의 여러나라는 1960년대만 해도 한국보다 더 잘사는 나라였지만 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일인당소득이 2000달러에서 만달러 정도에 멈추거나 맴돌며 별로 발전하지 못했다.지금 많은 나라에서는 이란 공포와 위협을 느낄 정도로 초조해하고 있다.   한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로 (1)글로벌-창의력, 이노베이션 (2)위기감-허심함(3)개방성-학습형(4)포용심-다원화 (5)비빔밥혼합성-선진화(6)성급함-속도전(7)실사구시-규제와 형식타파(8)자아점검비판-조정과 개진 등이었다.앞으로 한국이 이러한 장점을 지속적으로 발휘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인구성장정책을 펴고 일류의 인재 교육과 기업, 남다른 창의력 역발상 이노베이션을 적극 육성하고 배출한다면 삼성 엘지 현대와 K—팝 같은 세계초일류 기업과 문화산업이 더 많이 나온다면 단순한 이 아니라 세계를 리드하는 초일류의 국가로도 성장해갈 수 있을 것이다.   복지함정에 빠진 유럽병, 과 상당한 국내시장규모에 만족되어 느슨해진 일본병, 크나큰 중화권시장에 만족해진 대만병,한국은 한시도 잊을 수 없을 것이며 는 금물일 것이다.노키아가 무너지니 핀란드는 없어진다.삼성이 무너져도 한국은 무너지지 말아야 할 대책이 필수이다.한국의 지속적이고 눈부신 발전과 번영은 전세계의 평화와 발전에도 더없는 도움과 공헌이 될 것이라 믿는다.우리동포들에게는 더없는 기회와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198    조선족사회 소도시건설에 박차를 가해야 댓글:  조회:8470  추천:15  2012-06-29
무엇때문에 조선족사회는 소도시건설을 다그쳐야 하는가? 이는 가장 현실적인 중국실정과 조선족사회의 실정에 근거한 발상이다. 중국의 “3농”정책을 바탕으로 “새농촌건설”, “현대농업”, “도농통합발전” 등 무게 있는 조치를 추진해 형제민족에겐 발전의 계기로 되고있지만 조선족농촌엔 분산되고 빈틈이 많아 별로 인기 없는 대안으로 탈락되여가고있다. 이는 조선족사회의 “코리안드림”과 엇갈리기때문이다.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가난했고 진로가 막혔던 농촌생활에서 탈출해 연해지역으로 한국으로 “떠나는것”은 단순한 돈벌이보다 “자신만의 꿈을 이룰”수 있기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족사회의 가장 큰 변화이고 발전과 해체의 원동력이다. 모두가 인젠 한국에서 돈을 벌어 귀국할것이라 여길 때에도 필자는 이러한 판단이 잘못되였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사회는 반드시 소도시건설을 다그쳐야 하는 중요한 원인이 바로 이 “떠나 가는” 코리안드림으로 하여 가족이 흩어지고 인구가 줄고 학교가 무너지고 마을이 없어져 조선족사회가 해체의 위기에 직면했기때문이다. 조선족들이 해외를 제외하고 중국의 600여개 대중도시에 흩어져가도 모래밭에 뿌린 물과 같아 한개 도시에 천여명밖에 안된다. 백만인구를 가진 큰 도시에 1000명이란 수치는 쌀독의 뉘만큼이나 될가. 해외에서 돌아온다해도 옛날의 그 낡고 락후한 농촌으로는 돌아가지 않을것이라 생각한다. 당면 조선족사회의 해체를 막고  민족경제문화를 구출하는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다.     한국이나 해외에서 10여년의 로무생활을 마치고 귀국한다해도 청도, 북경, 등 대도시에 주택을 사서 로후를 보내려 할것이다. 하지만 조선족들이 대거 모이는 한국과 일본회사는 그 지역의 로동력급여수준이 오르고 회사가 어려워지면 다른곳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중국연해지역에서 서부지역, 동남아시아로 이전할것이다. 한국이나 일본회사를 삶의 기반으로 한 조선족들의 생활터전은 이처럼 회사를 따라 옮기려해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 대련, 청도는 지리나 기후 등 환경이 좋아 한국회사가 없어져도 조선족사회가 남아있을수 있지만 기타 사천, 섬서, 신강 등 서북지역뿐만아니라 북경, 상해에 진출한 조선족들도 성공한 극 소수를 제외하고  점점 살아가기가 어려워질것이다. 그리고 도시생활에도 정착했다 하지만 뛰여넘는 물가상승과 문화적, 정신적, 심리적 불안요소로 불안이 가셔지질 않는다. 대기업직원과 공직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조선족들은 고정수입과 사회보장이 거의 없어 물가가 높아가는 대도시생활에 점점 힘겨워진다. 뿐만아니라 다년간 조선족사회에서 자랐거나 생활해오던 조선족들은 너무도 다른 생활문화환경에 낯설어 거부감도 적지 않다. 한때 조선족이 집중된 민족향의 향정부소재지에 소도시건설을 다그치자는 발상이 있었고 이것이 조선족지성인들의 공동한 인식으로 부상했다. 다시 정리하면 로무수출갔다가 로후기를 맞이한 조선족들에겐 가장 큰 사회보장이자 복지인 설 땅이 있고 농지와 주택지가 있으며 주택가격이 싼 고향의 땅이 있다. 이곳에 조선족들이 행복하게 모여살수 있는 소도시를 건설하는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말이다. 만여명 이상 규모를 가진 조선족소도시가 건설되면 소비시장이 생기고 이에 맞는 생산구조가 이루어진다. 1~3차 산업이 포함된 생산과 소비구조를 갖춘 시민사회엔 음식문화, 체육, 오락 등 시설과 서비스산업  소비시장도 생기게 된다. 소도시 규모로 조선족이 모여사는 곳엔 “문명시민공약”과 “민족거주지역관리규정”을 제정하여 조선족들의 생활풍속, 문화풍속에 맞는 정신, 문화, 체육, 오락 등 사회관리규약을 제정할수 있으므로 문화갈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원만히 해결해갈수도 있다. 해외, 연해지역에서 돌아온 조선족들중 기술과 경험자본을 들여 투자할 사람도 적지 않을것이며 조선족사회의 교육, 문화, 기술, 양로 등 모든 업종에 투자경영할 사람도 나설것이니 소도시가 자연 활성화 될것이다. 가장 미력적이고 현실성, 가능성을 가진 소도시(진)는 대중도시근교, 민족향정부소재지, 교통, 문화, 기후, 환경, 기반 등 조건이 이미 갖추어졌거나 앞으로 국가와 지방정부에서 건설할 프로젝트지역이다. 민족향정부소재지에서 소도시건설을 다그치면 주위의 조선족마을의 농지, 삼림, 수원 등 자원도 계속 확보하면서 경영활성화를 추진할수 있다. 바로 지금이 조선족사회 소도시(진)건설을 다그쳐야할 시기이다. 이는 남녀로소를 막론하고 조선족사회의 민족경제문화활성화를 통해 “코리안드림”을 련결, 귀속, 지속, 현실화, 활성화 할수 있는 옳바른 길이자 대안이다. 민족현향촌정부와 기업, 대학 연구소, 신문방송매체에서는 이 시대의 발전추세에 맞추어 과학적인 기획, 설계, 실행, 추진에 조속히 나서야 할것이다. 중국3농교육전문가 2012.3.24 
197    '남조선'은 멀어져가고 한국은 떠오르며 다가온다 댓글:  조회:8270  추천:15  2012-05-06
중한수교20주년을 기념하여 부모님 세대를 포함하여 우리 세대까지만 해도 고국인 한국을 그냥 남조선이라 불렀다.   1960,1970년대는 한국방송을 남몰래 듣곤했으나 한밤중에 마을민병들이 어느 간부의 지시에 따라 집집마다 도청감시를 하고 있었다.간혹 남조선의 재미나는 드라마와 흥겨운 '새마을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너무나도 신기했다.   '4인무리' 가 물러나자 너무도 많고 신기한 소식들이 연속 날아왔다.홍콩을 거쳐 날아온 남조선 친척들의 문안 편지와 KBS라디오방송에서 들려오는 친척 찾는 애절한 부름이었다.   그후 4년간 하얼빈에서 대학공부에 여념이 없었지만 어느날 거리에서 옛날 하얼빈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이 양복에 카메라를 들고 한국보다 10년 먼저 거리에 나타났다. 처음 외국인을 보는 시민들은 눈이 둥그래서 따라다니며 구경을 했다.처음 남조선사람을 본 것은 1984년 8월이었다. 중국농업부 시찰단일행은 일본호쿠리쿠(北陸)농업과학원에서 처음으로 중국대표단을 동반하며 안내해주고 도와주는 한 남조선농업연구원을 보았지만 단장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말을 건네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중국공민들은 남조선이란 말엔 익숙했지만 한국은 너무도 생소했고 한국이란 칭호에도 아직도 거부감이 없지 않아 있다.중국에 초대된 일본교토대학교수를 북경에서 맞이할 때 무엇 때문에 남조선을 한국이라 부르는가 물었더니 일본식민지시대의 아픔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힘차게 일어나기 위해 한국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중국과 한국간의 서신이나 인적왕래는 모두다 홍콩을 거쳐야 했고 다른나라와 전문가를 보내고 초청하는데는 이미 각부에 권한이 갖추어졌지만 남조선전문가를 초청하는데는 농업부의 비준 외에 외교부에 다시 신청해 비준과 도장을 받아야 가능했으니 매우 힘들었던 이전이 이젠 옛말이 되고 중한 두나라 공민들은 그 어느때보다 더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중한수교가 이루어지기 일년전인 1991년 처음으로 한국농기계회사가 베이징전국농업전람관에서 열린 국제농업기계전시회에 참석하게 되어 농업분야에선 처음으로 한국국기가 중국땅에 선을 보였고 한국대사관 전신인 한국대표부에서도 전시회에 참석했다.   그후 베이징농업대학 원 당위서기의 추천으로 한국새마을운동자문위원이자 동국대학교수인 이병동 선생을 녹색증서농민교육베이징심포지엄에 초청했다.이 교수의 노력과 한국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의 초청으로 중국농업부에서 처음 10명의 중국농업부와 지방정부공무원을 선발해 연수 겸 시찰로 한국을 방문했고 서로 배울점이 너무 많아 해마다 중한농업농민교육교류와 합작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복잡한 중한무역 외에도 중한 두나라 국민들은 매일 일상생활에서도 중국문화와 한국문화에 푹 젖어있어 피부에 와닿는다.아침에 일어나면 페리오치약으로 이를 닦고 죽염비누로 세수를 한다. 톈진에서 제조한 한국삼성모니터 앞에 앉아 인터넷에 들어가 국경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쇼핑을 한다.전화벨소리가 들려와 삼성핸드폰을 들고 하루의 일정이 시작된다.손님들과 한식점에 가서 한국요리를 맛보며 업무상담을 하기도 한다.휴일이 되면 한국산 된장으로 장국을 끓여 먹는다. 뉴스를 본 후 한국의 인기드라마를 감상한다.봄과 가을엔 한국친척들이 관광으로 중국을 찾아오고 휴가를 이용해 서울 부산 제주도를 유람하며 쇼핑도 하는 중국공민들이 무척 많이 늘어난다. 한국에 가 유학하고 사업하며 노무수출로 자식을 공부시키고 있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수저우, 선양,톈진, 칭다오, 선전,광저우, 베이징, 상하이엔 한국과 조선족기업이 넘쳐난다.연해지역엔 물론 중국의 '서부대개척'(西部大开发)에 맞추어 고도서안(古都西安)에도 삼성전자가 진출한다.거리엔 현대자동차가 씽씽 달리고 있고 TV, 냉장고, 세탁기, 핸드폰엔 삼성, LG가 최고라 평가되고 삼성카메라도 일류제품으로 도약하고 있다. 등려군(邓丽君)의 노래와 같이 한국의 국민가수 현철, 주현미, 이미자의 노래와 '가요무대''아침마당'같은 인기방송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 제작한 드라마 '서울에 있는 임스푸'(林师傅在首尔)가 한국과 중국에서 방송되고 중국의 저명한 탤렌트 탕웨이(汤唯)와 한국의 현빈이 주연한 영화'만추'(晚秋)가 상연된다.   '일의대수'(一衣带水)란 중국과 한국이 너무 가까워 간격이 옷끈(一条衣带)만큼 좁고 가까운 수역거리라는 말이다.너무도 많이 찾아오는 관광객과 유학생 그리고 기업가 과학자로 즐거운 비명이 절로 나오는가부다.이젠 '남조선'이 중국에서 멀어져가고 한국이 떠오르며 다가온다.   중한 두나라 공민들은 저마다 무엇이던 두나라의 우호교류와 합작에 적극 기여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고 내일이다.
196    대지의 봄 댓글:  조회:7250  추천:7  2012-04-12
나는 항상 대지의 봄을 그려본다.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받들어주는 대지는 고향이자 어머니였다.그 누구도 모두 이 대지에서 태여나 이 대지에로 돌아간다. 아침노을이 비껴오는 해돋이를 바라볼 때마다 마냥 태양을 마주하면서 하늘을 떠이고 받들고 세상만물을 보듬어주고 키워주는 대지는 한결같이 아름답고도 장엄하기만 하다. 대지(大地)의 지(地)자는 바로 토지의 지자이고 역시(也) 토지의 토(土)자이기도 하다. 아마도 드넓은 토지가 대지로 보이고 씌우는것 같다. 흙이 불을 만나 돌과 산으로 되였고 물을 만나 늪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로 되였는가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하늘(天)을 떠받들고있다고 씌여있지만 인간이 굳건히 서있는것은 분명히 토지이자 대지이니 결국 하늘과 모든 생명을 떠 받들고 지탱하고 있는것도 이 토지로 구성된 광활한 대지인가보다. 농민들에겐 대지이자 토지이자 농지이다. 농지가 있어 그우에 집을 짓고 채마밭을 일구고 배자를 두르고 집식구가 먹고살아갈수 있는 채소와 과일나무를 심고 수확하며 또 가축과 가금도 길러 별로 돈들여 사지 않아도 생계가 유지된다. 농지가 있어 벼, 밀, 콩과 옥수수를 재식(栽植)하고 수확해 우리들의 식량이 자급되고 나라와 시장에 팔아 농가소득이 나오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먹여살린다. 토지가 있어 공장을 짓고 주택을 지어 지역 주민이 모여든다. 토지가 있어 학교를 짓고 길을 닦고 상점과 병원을 짓고 화초를 심어 공원을 만드니 사랑과 가정이 이루어지고 자녀를 공부시기고 만년을 즐겁게 보낸다. 토지가 기본인 대지가 바로 이 조화롭고 문명한 사회를 떠받들어가고있다. 아침해가 솟아올 무렵 대지가 부르니 생명이 소생하여 대지의 아들딸들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가고 대대손손 전해만 간다. 농촌에서 살든 도시에서 살든 산기슭에서 살든 바다가에서 살든 우리는 분명 이 땅우에 서있고 앉아있고 누워있는다. 흙을 오래간 밟지 못하면 온갖 병이 생긴다하여 옛날 중국의 황제는 가끔 맨발로 땅우를 걸어다니며 대지의 기맥을 받아들였다한다. 흙이 몸에 좋다 하니 일본의 도시주민들은 자금이 넉넉해지면 농촌에다 흙집을 집고산다. 아파트를 제외하고 사택은 층집이라해도 거의다 흙벽으로 만든 주택이였다. 저명한 문학가, 예술가, 철학가, 과학가나 국가지도자라도 오래동안 이 땅과 흙을 밟지 않으면 몸에 병이 나고  학문과 나라도 “탈”이 난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고향을 찾아, 산간벽지를 찾아 집을 짓고 살면서 그곳의 원주민들과 어울리며 말과 춤 그리고 그곳의 문화, 언어, 풍속을 배워가고 그들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창작, 창조와 발명을 해가고 인생을 새롭게 출발한다. 자연, 생태, 환경을 잘 보전하니 인간의  생활 생태적의 활력과 발전출로를 찾는다고 한다. 토지가 회생되고 확고하며 활성화된다는것은  우리의 삷터인 고향에 봄이 찾아온다는 기꺼운 알림이다. 해마다 봄을 맞이하면서 진달래 곱게 피여오르는 대지는 자랑스러운 아들딸을 부르고있고 대지를 사랑하는 아들딸이 모여드므로 올해의 봄도 분명히 다가오고있었다. 나는 이 따스한 봄기운에 푹 젖어가면서 “대지3부작”중 마지막 시나리오(영화극본) “대지의 봄”을  완성하였다.     중국3농교육전문가
195    등소평 “92남훈”의 봄바람은 불어온다 댓글:  조회:7311  추천:15  2012-04-05
 등소평동지의 1992년1월19일 남방시찰담화가 발표된지도 이미 20년이 흘러간 지금 등소평 “92남훈”의 봄바람이 중국의 주요매체와 언론계에 다시 불어오고있다.  많은 사회문제가 쌓여 온 오늘날의 중국에서 오직 개혁개방으로만 난관을 뚫고 새로운 활기를 가져올수 있다는 판단이였다. 1989년 천안문정치풍파가 지났지만 중국에서 투자건설중이던 외국기업이 대거 철거하고 경제발전은 하강선을 긋기시작했으며 국내에선 성이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에 대한 무의미한 쟁론이 끊이지 않아 사상언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였다. 이 관건적인 시각에 등소평동지는 8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광동, 심수 등 여러 지방을 순찰하면서 많은 담화내용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가장 핵심적인 발언은 “중국이 사회주의를 견지하지 않고 개방개혁을 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길을 걸어도 죽을길밖에 없다”, “발전이야말로 의심할바 없는 굳은 도리이다”, “우경에 경각성을 높여야지만 주요하게 좌경을 반대해야 할것이다” 등이다. 그후 강택민동지를 수반으로하는 당중앙에서는 등소평리론과 개혁개방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확립에 박차를 가했으며 WTO에도 성공적으로 가입하였다. 등소평리론을 계승발전하는 과정에서 선진적인 생산력, 선진문화의 발전방향이 제일 광범위한 인민군중의 근본리익을 대표로 하는 “세가지 중요한 사상”도 제시되여 경제발전 특히 글로벌경제에서 거대한 발전과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가져오면서 나타나는 각종 심각한 사회문제도 쌓이기 시작했다. 빈부격차, 대기오염, 정부부패, 관료주의, 경제발전구조조정, 사회복지, 정치체제개혁 등면에서 개혁이 점차 어려워지고 침체되여 사회불만과 갈등이 더욱 많아졌으며 국제환경도 험난해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금도동지를 총서기로하는 당중앙에서는 “과학적인 발전관”을 제시하여 균형적이고 효률적인 발전을 도모했으며  국가의 경제와 사회발전에 전념하게 했다. 호금도동지가 제기한것처럼 시종일관하게 개혁개방을 견지하면서  절때로 동요하지 않고 뒤흔들지도 않으며 후퇴하지 말고 각종 위험을 이겨내야 한다. 1950년대나 60년대 문화대혁명시대 구쏘련 쓰탈린시대에로 되돌아가려는 사상은 개혁개방을 포기하는것과 다름없고 각종 봉건주의, 관료주의, 형식주의 극좌적인 사상도 개혁개방을 가로 막는다.          30여년전의 개혁개방은 농촌토지도급제로부터 시작하여 농촌에서 도시로, 해외로 불어쳤다. 당과 정부까지 실사구시정신으로 사상을 해방하고 착오를 수정하며 심도있는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경제, 사회, 정치체제개혁3단계를 밟아가면서 지금까지의 각종 심각하고 복잡한 사회문제를 풀어갈수 있었다. 등소평동지는 위대한 정치가로서 앞으로도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그 어떤 길을 걸으려 해도 실패할것이니 오직 개혁개방을 견지해나가야 중국의 밝은 앞날이 다가올것이라는 정치적판단, 당의 기본로선과 국가적핵심리념을 전 중국인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심어주었던것이다. 등소평 “92남훈”의 봄바람은 개혁개방을 다시 불러오고있다.  
194    개혁개방 댓글:  조회:7581  추천:16  2012-03-30
       우리는 중국의 개혁개방의 목격자며 참여자이자 수혜자이다.1970년대 말에 발족하여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은 크나큰 발전을 이루었다. 모든것이 안된다는 문턱을 뛰어넘어 되게 만든 것이었다.농지는 농민들에게 다시 돌아가고 '자본주의 꼬리'(资本主义尾巴)라 불려왔던 부업을 활성화시켜 농민들의 소득을 올려주었다.'구린내나는 아홉째'(臭老九)라 늘 멸시받던 지식인들은 전문인재로 인정받게 되었다.수정주의, 자본주의 문예라 비판받던 국내외 소설 영화 음악이 조수처럼 밀려들어와 '8대본보기극'(八大样板戏)만 보던 대중들은 머리가 한결 맑아졌고 생전 처음으로 외국에도 가보게 되었다.쌀, 식용유, 고기, 비누, 성냥마저 배급제를 실시해 몇시간씩 줄을 서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현실이 옛말이 되었다. 또한 정치신분제와 계급투쟁 정치운동이 종지부를 찍었고 중국공민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모두들 등소평의 개혁개방으로 하여 중국이 이제야 비로서 허리를 펴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1990년대의 개혁개방은 눈부신 발전을 거두었다.항상 이데올로기로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계획경제냐 시장경제냐 하며 민심을 산란하게 졸라매던 때 1992년 등소평의 '남훈담화'(南巡谈话)를 계기로 중국엔 사상해방과 개혁개방의 두 번째 봄이 찾아왔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확립시켰으며 WTO에 성공적으로 가입함으로서 국제화 글로벌체제에 들어섰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보다 과학적인 발전을 거두었다.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들어선 후 '진학난' (上学难),'간병난'(看病难),'주택난'(住房难)등 끔찍한 후유증으로 몸살앓고 있을 때 후진타오를 수반으로 한 당중앙의 '인간을 중심으로 한 과학적인 발전관'을 정립함으로서 성장과 분배를 중심으로 한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다그쳤다.하지만 국토가 드넓고 도농 및 지역 격차가 심한 중국에서 보다 균형적인 경제사회발전을 이룩하는 데는 매우 어려운 사회과제가 쌓여 있다 보니 빈부격차, 환경오염, 관료경제, 사회부패,도덕성상실 등 사회모순도 누적되고 일각에서는 개혁개방을 부인하고 동요하며 침체되거나 뒷걸음 치는 등 사회경향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등소평 동지는 '3단계 발전구상' 즉 2000년, 21세기초, 21세기중엽 세단계를 거쳐 중국의 경제와 사회를 세계중등 발전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었다.현재 중국의 지성인들은 중국의 현대화에 대해 '경제개혁―사회복지건설―정치개혁' 이란 새로운 구상을 펼치고 있다.즉 지금 진행 중인 경제개혁을 완비하며 양로제도를 포함한 사회복지와 빈부격차해소에 중점을 두고 이를 위한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는 방안이다.12차, 13차 5개년국가발전기획엔 경제발전에 큰 손상없는 전제하에서 사회복지사업에 보다 많은 무게를 둘 것이다.하지만 지금도 가장 어려운 과제는 정치개혁이다.많은 문제가 서로 엉켜져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난제이다. 완벽한 민주와 법치제도를 기초로 한 '헌정국가'(宪政国家)모델을 제안하는 지식인이 많아 이 과제를 에워싸고 세계문명에 인식을 모으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가 지적한 것처럼 중국이란 사회엔 봉건사상과 문화대혁명의 잔존사상이 작간하고 있어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1950,1960년대,구소련시대와 심지어 문화대혁명시대에 미련을 두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에 동요하면서 들볶거나 퇴보하고 제2차 문화대혁명이 다시 일어날 위험도 있다는 우려와 판단이다.발목을 잡는 정치개혁엔 '3가지 탈피'가 필수이다.첫 번째로는1978년이후의 개혁개방사상과 대립되는 동요, 퇴보, 극좌사상에서 탈피되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현대문명의식구조와 대립되는 봉건왕조 제왕사상 및 역사 문화관에서 탈피하여야 하며 세 번째로는 인접국가와 발생했던 불행한 국경전쟁 국지전쟁의 근대역사와 경직된 냉전시대 이데올로기식 국제관념에서 탈피되어야 한다.첫 번째 탈피는 성공적으로 완성되어 30여년의 개혁개방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이제부터이며 진행중이다.이 탈피는 정치개혁으로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지금 어려운 국면에 처한 국정문제와 국제관계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와 11차3중전회의에서 제정한 개혁개방의 사상노선과 기본노선 및 등소평'92남훈담화'내용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공유제냐 민영제 사유제냐란 허구한 쟁논보다 '실사구시'와 '사상해방'이란 개혁개방의 핵심가치관으로 모든 난제를 풀어 갈 수 있는 것이다.
193    중,일,한 문화삼국지(2) 댓글:  조회:7324  추천:14  2012-03-21
  중,일,한 문화삼국지(2)                           저자:이수산      '삼국연의'를 본 사람이라면 위, 촉, 오 세 나라의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어떻게 나라를 위해 지혜롭게 손을 잡거나 싸워서 어느 나라는 흥해지고 어느 나라는 망해가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현시대의 중 일 한 세 나라를 보아도 이러한 추세일까? 아니면 모두가 손잡고 나란히 부강하고 행복한 나라로 나아갈까?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냥 좋은 일만 생길 수 없듯이 선의와 악의의 경쟁도 계속될 수 있으니 세나라 국민들이 그저 쳐다만 볼 수 없다.   중 일 한은 친밀한 동반자일뿐만 아니라 늘 질투하는 경쟁자이다.누가 잘 나아가느냐엔 세가지 요소가 들어있다.   첫 째로는 위기감이다.항상 제자랑을 하기 좋아하고 남을 내려다 보거나 업신여기는 나라나 민족은 정상적인 위기감이 있을 수 없다.이점엔 한국의 점수가 일본과 중국보다 높을 수 있다.지진이나 화산폭발로 일본인들은 위기감의식이 높다고 1980년대엔 호평이 자자했지만 그후에 경제가 잘 나가더니 미국마저 사들이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부터 결국 내려앉기 시작했다.중국도 최근에 와서 위기의식이 많아지고 있지만 몸속에 깊이배긴 우월감의 잠식으로 위기의식이 절반 축소된다.한국이 지금 정신을 차리고 발빠르게 움직이는데는 역사적, 지리적,현실적 위기감에서 온다.이 위기감도 어느때 가면 스스로 풀어질 수 있다.'한국제일'이란 의식이 나오고 '평균주의'로 인해 전나라가 느슨해지면 앞으로 중국이나 일본에게 밀려날 수도 있다.   두 번째로는 비판정신이다.위기감은 자아비판과 타인비판에서 나온다.국내에서의 끊임없는 자아비판과 점검 조절,그리고 주변국과 세계 각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난,조소, 비판, 공격 등이 분발심으로 나올 수도 있다.늘 감싸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지혜와 용기가 없듯이 칭찬만 받은 아이는 커서 곤란에 봉착하면 어쩔줄을 모른다.지금 신사의 나라 영국과 유럽이 '부귀병'에 걸린 것과 같다.일본과 중국의 뉴스를 보면 그래도 자신감과 지혜에 북받치지만 한국뉴스를 보면 매일 망하는 것 같아 보인다.관중들의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 같지만 빨리빨리 고치지 않고 개선하지 않고 빨리 뛰지 않으면 당장 무너지는 것 같다.빨리 달리는데는 속도, 근면, 창의력, 위기감이 관건이다.   세 번째로는 전국민의 독서의식과 '열독능력'이다.한마디로 말하면 어느나라 국민이 더 많은 책을 읽었고 더 빨리 책을 읽어 가고 있는가이다.이 세나라 모두가 한자의 혜택을 받았지만 열독력이 사뭇 다르다.평민교육이 발달한 일본의 평균교육수준이 가장 높았지만 지금 한국하고 비슷해졌다.중국의 영재교육은 발달되었지만 양극분화로 인해 전반국민의 교육수준이 제일 뒤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사람들은 등급관념, 금전만능, 향락주의 의식에 물들어 책을 읽기 싫어한다. 하지만 인재교육의 국책으로 영재교육을 받은 인구가 일본, 한국보다 점점 많아진다는 점은 밝은 앞날을 제시해 준다.한국인은 세종대왕이 만들어준 한글에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한글로 이 세계를 가장 빨리 읽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의 국제시험시합(PISA)에서 한국학생들의 열독력이 항상 제1위로 달리고 있다.   꼭 같은 한편의 문장이라해도 한글로 내려 읽고 알아 보기가 제일 쉽고 중국보통어가 그 다음이고 어려운 한자와 일본가타카나로 뒤범벅이된 일어가 가장 어렵다.영어식 외래어는 그래도 새로운 지식정보이기에 공부엔 도움이 된다.   한글로 과학 기술 경영 노하우 아이디어를 담뿍 담은 천자폭의 글 한편을 2분내에 읽고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경제시대에서 과학기술정보소유가 보다 많은 국민이 더 창의적이기 때문이다.   중,일,한 삼국지는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192    재일동포들의 기쁨과 설음 댓글:  조회:8950  추천:16  2012-03-04
   최근 재일동포들이 제작한  (血と骨) (사랑과평화 爱与和平)등 예술영화를 감상깊게 보았다.재일동포들을 제외하면 일본의 연예계는 무너진다해도 장담이 아니라한다. 좀 과장이겠지만 일본의 탤런트와 영화감독중 1/3내지 절반을 차지한다는 말도 있다.    과거의 민족차별에서 그들은 자신의 피와땀이 슴배인 노력으로 일본사회에서 성공하였다.그들은 확실히 일본에서의 선진적인 문화발견과 조선문화의 정수를 현실에 잘 결합시킨것이다.이미 성공한 연예인의 이름을 꼽느라면 일본사람들도 깜짝이야 하고 소리친다.미소라히바리(美空ひばり)는 일본에서 한때 천황페하보다도 더 인기 높았었다.그가 부른 (사과나무밭의 갈림길)는 일본사람들로 하여금 1950,1960년대로 돌아가 전쟁의 아픔을 이겨낸 고난과 격정으로 벅차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한다. 미야코하루미(都はるみ이춘미)가 일본 기모노를 입고 라는 엔가(演歌)를 부르면 일본사람들의 속간장을 다 녹여낸다.역도산(力道山)은 물론 다아는 사실이고 중국에서도 1980년대 힛트로된 일본영화 카마타행진곡>( 莆田进行曲 Kamata koshin-kyoku 1982)중의 주역인 코나츠( 小夏)역에 그처럼 아릿다운 마츠자카 케이코(松坂慶子) 피의 이혹(血の疑惑)중의 야마쿠치모모에(山口百恵)도 (人证)중의 주역 일본경찰역인 松田 勇作,가수이자 탤런트인 沢田 研二 (李研二) 재일동포라한다. 미소라히바리와 야마쿠치모모에는 아버지가 한국계라한다.    그외에도 현대판 코리안도 많고많다.영화 이오지마에서온 편지(硫磺岛家书)에 나오는 인물 올림픽마술경기에서 챰피언을한 일본군중좌역에 이하라 츠요시(伊原 剛志 본명윤원강)  ビートたけし安田 成美(鄭成美),유명한 엔카(演歌)가수 和田アキ子(金現子)西条秀樹  五木ひろし 八代亜紀 야구선수張本勲  영화감독사이요-이치 (崔洋一 )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井筒和幸). 그외에도 본인은 확인안하지만 인터넷과 여론이 떠들썩하는 연예인도 많다.高仓健 小柳ルミ子  杏 里  工藤 由貴   伊東ゆかり   沢口 靖子    宮下 順子  축구선수인中田英寿등많고 많다.사와쿠치 야스코(沢口 靖子)는 너무 이뻐서 40이넘었지만 독신이라한다.하지만 키무라 타쿠야(木村拓哉) 후지하라 노리카(藤原纪香)까지  근거없이 추측하는것은 아마도 타당치 않을것이니 꼭 성공해야 동포이라는 생각도 나약한 정신토대가 안바침하고 있다.보다 더 많은 사람은 그 어느 민족과도 꼭 같은 인간서민의 일생활을 하고있는것이 정상일것이다. 영화 에서 나오는 대화내용처럼 왜서 연예계에서 재일동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되느냐고 조선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경자(青山涼子,탤런트 나카무라 유리 中村 ゆり)가 물으니 같은 동포이지만 일본학교를 나와 훨씬 먼저 이름날린 다른 여 탤런트가 고 대답했다. 재일동포인사실이 밝혀지면 꽃다발이 물병과 쓰레기로 바뀌여 날아온다.이렇듯 일본사회가 완전히 열리자면 아직도 시간과 노력이 걸릴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재일동포들중 모두가 꼭 나와서 자신의 신분을 밝힐강요를 할 필요는없다. 그나라 그 지방과 본인의 사정과 의향에 따라 가야한다. 그보다 일본사회가 일본이란 나라의 다원화 문명정도에 따라 그 환경이 훨씬 개선되여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될수있다고본다.국제사회는 이러한 역경에서도 불굴의 노력으로 온갖 설음을 이겨내고 성공한 동포들의 기쁨과 행운을 축하할것이고 그만큼 일본사회도 열렸다는 의미에서 일본이란나라에도 박수를 쳐주어야할것이다. 이와 대조로 1980년대 초기에 흑룡강에온 일본의 유명한 벼전문가 하라쇼이치(原正市)선생을 마을의 조선족농민들이 반갑게 자주 찾어와 자아소개할때 너도나도 조선족이라하니 선생도 일본과 대조로 이마에 나는 조선족이다라고 쓸 정도로 자신의 민족을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하였다.배동하는 어떤 현간부는 옆에서 이마를 찌프릴때도 있었지만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이 좋아  별로 장애와 주저없이 교류를했고 일본선생도 그러길 갈망했다.  중앙테레비죤방송국의 아나운서 백암송(白岩松)은 몽골족이고  예쁜 해하(海霞)는 회족이며 탤런트 영달(英达)은 만주족이다.그러듯 중국은 은페할 필요없이 오히려 내놓고 말한다.저명한 작곡가 정율성(郑律成) 1930년대 중국의 영화황제김염(金焰) 화가 한락연(韩乐然) 무도가 최미선(崔美善 ) 가수(金曼) 김해성(金海星)은 조선족이고 작곡가장천일(张千一) 록크황제 최건(崔健)도 조선족이고 저명한지질학가 리사광(李四光)은 몽골족이다.소수민족가수는 더많다.한족과 기타민족을 포함한 중국국민이라면 오히려 나라와 민족의 자랑으로 소수민족을 소개한다. 우리가 중국의 민족정책에 감사를 드리는 한편 재일동포들의 분발정신도 따라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그들은 공무원 교원 경찰등 정규직에 들어갈수없지만 매자신의 노력으로 누구나 다 취직하고 창업하며 대학교수 연예계 스포츠 기업에도 진출한다.신격호 손정의는 롯테 소프드뱅크등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기업의 신화를 창출했다.     이것이 과 을 품은 울분이요 슬기이요 용기이요 신념이자 파워이고 지혜이다.이것이 바로 정신이고 자신이 세속의 온갖 치욕과 짓밟힌 신세 운명에 대한 궐기이다.이 정신과 영혼이 살아 있는 한  우리민족공동체가 이 곡절많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분발하고 매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외로운 설음이 분발의 동력 만남의 기쁨과 인생의 행복으로 전환될수있는 인간철학일 것이다. 2007,11,14
191    등려군과 가요무대 댓글:  조회:9081  추천:16  2012-03-01
   한 할머니가 “가요무대”관람석에서 “우리 한국사람은 가요무대가 없으면 다 죽어요”라고 고백했다. 그만큼 문화가 한 민족의 생활에 뿌리깊이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아리랑”, “꿈에 본 내고향”, “물방아 도는 래력”, “섬마을 선생님”과 같은 노래는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이미 깊숙히 스며있다.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도 마찬가지이다. ”붉은 신호등(红灯记”, ”위호산을 지혜롭게 탈취하다(智取威虎山)” 등 8개의 본보기극(八个样板戏)만 몇십번 보고 또 보았던 젊은 세대들이 개혁개방을 맞이한 1980년대 대학시절 등려군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도 있구나!”하고 감탄했었다. 그때만해도 어느 한 령도는 등려군이 부른 “당신은 언제 다시 오나요(何日君再来)” 노래가 항일전쟁시기 중국인민들의 투쟁 의지를 마비시킨 노래라면서 시비를 걸어왔다. 지금은 누구나 마음대로 부를수 있는 노래이지만.     매주 한국TV방송에서 나오는 “가요무대”도 1970년대엔 모두가 가만히, 그것도 아주 친한 친구끼리만 남몰래 들었던 노래였다. 그중 “홍콩아가씨”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이 남아돈다. 개혁개방으로 하여 재생된 “모스크바 교외의 저녘밤”, “카츄샤”같은 “쏘련수정주의”노래가 당연히 부모세대들로부터 중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였다.    일상 민간생활에서 우러나온 민족노래는 문화중에서도 가장 생명력을 지닌 문화였다. 지금 명곡으로 널리 알려진 많은 한국(조선)노래는 일제강점시기 작사, 작곡된 노래들이다. 일제가 총뿌리로 한민족을 억압할수 있어도 그 민족의 정신과 마음을 모두 짓밟고 빼앗아갈수는 없었다.     문화는 인민대중이 생활속에서 창조하고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정신적으로 간직해야 영원한 생명력을 과시할수 있다. 금전과 권력, 정치에 오염된 노래나 문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문화대혁명동란은 중국인민들에게 깊은 재난과 고통을 가져다주었지만 “4인방”은 “문화대혁명은 그래도 좋아요” 란 노래를 지어 대중들에게 부르라고 강요했지만 1976년 “4인방”이 타도되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인차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인민대중들에겐 어느 노래만 부르라 강요하고 저희들끼리만은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남녀사랑을 주제로 한 서양영화를 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중앙인민정부는 이러한 영화들을 모두 공개해 시민들이 다 볼수 있게 되였다 인민들과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고락을 같이 하는 당과 정부는 민심을 얻게 되였다. 전번주 북경농업전람관에서 “전국비물질문화전시회”가 열렸고 리장춘 등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도 참석했다. 연변에서도 우리 민족의 악기인 가야금을 선보였다.    문화는 개방됨에 따라 생명력이 더욱 강해진다. 우리는 중국 내륙과 대만동포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등려군의 노래를 즐겁게 부를수 있고 가요무대에 나오는 우리 민족의 노래도 즐겁게 부르면서 형제민족에게도 소개해주고 배워주며 인류의 경제, 문화, 사회의 국제간 교류와 합작에 적극 헌신해야 한다.                       
190    문명과 예의 댓글:  조회:7369  추천:16  2012-02-24
       술에 몹시 취한 마을 나그네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발로 걷어차고 온갖 욕설을 해도 여관집 문이 열려지지 않아 담벽을 따라 거늬는 사이 머리가 좀 깨여 조용히 정문에 다가가 노크하니 문이 열렸고 여관집 주인은 반가히 맞이해 주었다 한다. 예의의 가치를 깨달은 나그네는 그후 마음을 바로 잡고 모든 처사에 예의를 갖추며 문명하게 행동하니 주위사람들이 모두다 인정해주고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이루었다 한다.   이처럼 예의는 모든 문제를 열어주는 금 열쇠이고 문명은 인생의 날개이고 축복이다. 우리는 농민이던 직원이던 간부이던 교수이던 한국이나 해외를 다녀 온 분들로 부터 문명과 예의에 관한 기본상식과 이야기를 많이 듣고 공부가 되었다.   우리가 전화를 걸거나 받을때 먼저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느 직장의 누구입니다라고 말을 떼면 인차 대화가 이루어지고 잘못걸게 되면 인차 알 수도 있다.대화를 나눌때 자신의 기분과 요구, 의사대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꼭 상대방의 처지 심리와 생각에 맞추어야 말이 통한다.   구들에 오를때 내릴때를 생각해서 신을 바로 신을 수 있게 방향을 잡아 정연하게 놓는다.명함을 받을때 두손으로 공손히 받고 내용도 읽어보며 반갑다는 밝은 표정이고 자신의 명함도 드리거나 없으면 없다고 대방의 양해를 구한다.   친구와 만나려 해도 문뜩 찾아가면 실례이니 먼저 전화로 연계해 보고 대방의 동의를 거친후 편리 할 때 찾아가야 한다. 대방을 청해 식사를 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항상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처음 만난 손님에게 술을 억지로 권하거나 자신이 만취해도 안된다.처음 만날 땐 시간이 있으면 샤워도 하고 옷도 깨끗하고 정연하게 차려입어야 한다.여성손님에겐 남성이 먼저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지 말고 여성손님이 손을 먼저 내밀어도 그분의 손 절반정도를 가볍게 쥐며 악수해야 하고 꼭 잡으면 큰 실수이다.   아무리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해도 길거리 복판이거나 공공장소에서 남의 갈길을 막아서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레스토랑에서도 큰 소리로 제 좋은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주위엔 많은 눈과 귀가 있고 입이 있다. 제집이라해도 친구들과 술을 마이며 즐겁다고 요란스레 떠들지 말아야하고 특히 아파트엔 아랫위층의 거주민을 고려해야 한다. 정심시간과 저녘시간에도 휴식하는 이웃을 반드시 고려해서 요란한 소음을 내는 진공청소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길가와 집 바깥이라해도 점심시간과 저녘시간엔 거주민들에게 소음과 지장을 주는것은 반드시 삼가해야 한다.   버스, 지하철, 유람선, 여객기, 백화점, 영화관, 공원등 공공장소를 이용할때 줄을 꼭 서야 하고 앞에가 끼여 들지 말아야 하며 큰소리로 대화를 하거나 전화를 걸면 다른 사람들에게 지장을 주는만큼 조용히 이야기를 하거나 조용히 독서하는 편이 좋다. 아무곳에나 가서 쪼크리고 앉아 있거나 중국대륙에서는 괜찮아도 홍콩이나 해외에 가서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나 길을 가면서 음식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 엘리베이터나 층계를 오르내릴 때 반드시 그 나라의 규칙대로 왼쪽이거나 오른쪽의 어느 한편으로 움직여야 한다. 차량운전 교통질서와 마찬가지이므로 화재같은 재난시에도 상호 구조엔 큰 도움이 된다.   침과 가래 코물이 나올때 휴지로 잘 싸서 쓰레기통에 넣는다. 대소변을 본 뒤 꼭 물로 깨끗히 내려가게 한다. 실험실, 목욕실, 화장실 등 공공장소를 이용한후 다른 사람이 계속 사용할 수 있게끔 꼭 원래 그대로 깨끗히 잘 정리해 놓아야 한다.   담배를 아무곳에서나 피워서는 안되고 길을 걸을때도 담배불을 휘저으며 걸어서는 안된다.어린이의 눈을 찔러 큰 사고로 이어질 수 도 있다. 담배꽁초를 아무곳에나 함부로 던져서는 안된다. 껌도 씹다가 아무곳에나 내 뱉으면 안되니 꼭 휴지로 싸서 쓰레기통에 넣는다.싱가폴에서는 껌을 아무곳에나 뱉으면 중벌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정치사상학습은 자주 오랜기간 배워 정치의식과 정치구호엔 눈과 귀가 밝았지만 인성 도덕 문명 예의에는 모르는 상식이 너무나도 많다. 대학교수 과장급 간부라해도 마찬가지이다.무지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쑬쑬하고 텁텁한게 좋아'하며 비문명 비예의행실을 '간고소박'한 미풍양속으로 간주하는 것이 더욱 나쁘다.아프리카에 가서도 이러한 생각과 행위는 통하지 않는다.   문학작품에 나오는 인물이지만 우리 선조들의 본보기로 흥부가 있다.비록 가난하고 비천한 몸이였지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운 마음씨 착한 마음씨가 세상만물을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는 문명과 예의를 갖춘 마음과 실천으로 나중엔 인생의 복으로 돌아왔다.
189    为什么要顶层设计? 댓글:  조회:11898  추천:6  2011-12-08
为什么要顶层设计?这很简单,这好比饮水源枯竭或设施发生故障,遥远的水闸放多少水都到不了居民区,因为在上游管制、加码、截留的实在太多。于是,就改用汽车直接将水箱运到社区,就像阳光雨露不约而至。 这上游管事、加码、截留的实在太多,于是问责下来,还委托管水的行业部门、各级地方官吏、相关行业部门,这“九龙治水”该有水喝、放心喝了吧。不料,在现实中竟然变得更少、更慢、更不安全,甚至没有水喝。可能我们的管理体制出了问题。出了事情,老子教训儿子,叫老大去管,但因盘根错节的利益链条难割舍而不了了之。 三聚氰胺、瘦肉精、地沟油、高铁、石化、通讯,住房难、看病难、上学难、行路难,诸多难题都出在这里,这个庞杂体系的中间环节太多,而且各自垄断、相互抵制。因此说,这顶层设计既简单又见效,牵一发动全身,但需要决心和魄力。 顶层设计,越来越成为科学发展观的重要内容。汶川、玉树大地震,就是顶层设计的经典范例。人民军队、兄弟省市救援队迅速赶到现场,不需要层层报批、动员、号召和下达,不受既定模式和条条框框的制约,讲科学、求实效,就像那空降兵直插最需要的地方。 顶层设计,最显而易见的就是蔬果直销车进社区,过去委托诸多相关行业部门“九龙治水”的“农超对接”、“项目投资”、“资金补贴”、“联合攻关”,都消耗在庞杂的中介环节和路途中,超市、百货、菜店那贵于产地十倍甚至几十倍的蔬果就是不能降价和畅销,苦的是农民和市民,怎么也见不到这中央决策的雨露阳光。直销车一来就好了,产地价或略高于产地价的蔬果直接与城市最普通的市民见面了,下一步是如何解决排长队和更宽阔场地,要预防的是只允许近郊蔬果进城,而禁止外省最便宜的蔬果进城,这又是封闭和垄断,垄断则必然出问题。 顶层设计,还体现在“扫四害除恶霸”,食品造假、药品造假、黄赌毒、拐卖人口的黑工厂、黑作坊、黑窝点、黑市场,不需要“九龙治水”和拖泥带水,而是公安部门的依法治理,特立独行、快刀斩乱麻、速战速决即可见效,人民群众拍手称快,需要的还是顶层设计的决心和魄力。 顶层设计,还体现在如何解决“以药养医”、“挂号难”、“小病都到大医院”和“全国人民都要到大城市大医院看病”的难题。医院、邮政、民航、铁路、教育能否法人化、企业化、民营化、私营化,不应该是禁区。 顶层设计,还要体现在土地新政,完成“耕者有其田”的制度创新,不至于和尚多、庙宇多,农民不仅喝不上水,还失去赖以生存土地和家园而背井离乡,被“上楼”、“进城”。 顶层设计,还要体现在高考制度的改革,改变诸多弊端的现行教育体制,一般院校能凭据考生高中毕业会考及综合成绩招录,名牌大学以部分比例、高职院校以更大比例自主招生。实行社会化一年多次考试,考生可以最佳成绩报考最适合自己的大学,改变一考定终身的弊端。 顶层设计,一定要体现在人才与人事工作。各大专院校、科研院所自主招生、招聘、授学位、评职称,这是人才与人事工作最需要的制度创新,杰出人才和重大研究成果将随之流动、激活而喷薄而出。 顶层设计,还在于建设资源节约型、环境友好型、生活舒适便捷而宜居的农村和城市,还在于经济发展、社会福利、政治文明均衡、统筹、协调发展的文明、和谐社会。 新文化,上善若水、厚德载物,海纳百川、容养生灵,润万物而无声,是崇高的思想境界、开阔情怀和精神家园。 顶层设计,讲科学、求真务实,决定着诚信、道德、公平、和谐、民主、文明国家与社会的建设与发展。                                    2011.11.23 
188    文化大发展要从小人书着手 댓글:  조회:12276  추천:5  2011-12-02
大国做事要有大思路、大手笔,但世界上任何事物无不从小事立足、切入并扎扎实实做起。上一世纪五、六十年代中国最知名的小人书画家华三川的作品堪称国内一流,但是并没有发育成世界一流的动漫艺术与动漫产业。据说如今的动漫产业可与汽车、生物、医药、IT产业相媲美,可见其潜在的巨大威力和魅力。 日本的动漫产业堪称世界一流,但仔细观察分析日本早期动漫作品,那构思、画面、笔法、风格,都有华三川的影子,也许我太喜欢华三川的小人书了。当年只有几毛钱一本的小人书,为什么没有发育成年产上千亿美元的动漫产业呢?这是发人深省的巨大问号。 我们有很好的创意、思路和起点,也有很好的政府支持和社会群众基础,更不乏开头所说的大口号、大思路,但是往往被淡忘了,疏远了,夭折了,雷声大、雨点小,什么原因呢?很多人会说那是文化大革命破坏的呗!回答很干脆利落,说穿了是大环境和别人的罪过,但是这个沉重的代价和失落的滋味却自己要持久承受。 的确,那个时代什么事都要突出政治,讲政治,讲阶级斗争和无产阶级专政,文艺要为政治服务,为工农兵服务,最后结局是艺术的生命和巨大潜力及价值被大口号政治边缘化了,实际上也是败笔。豪情、激动的人们恰恰忘记和违背了我们日常的口头禅“大处着想、小处着手”的至理名言。 这次,文化大发展的时机又来了,这是“从大处着想”的舞台大背景,而小处呢?那就是“从小处入手”,即从小人书着手,这是大发展的立足点、结合点和切入点,万万不可再玩什么轰轰烈烈的运动了,大口号后烟过云散,一阵风。 从小处着手,就是要有具体措施,这才是带来文化大发展的关键:一是培养小人书作者队伍,即文字作者和绘画作者,因为人才是关键,而且要有梯队。 二是精益求精。上一世纪五、六十年代的小人书很受读者和收藏者的欢迎,主要是因作品精益求精,出的都是精品,尤其上海人民美术出版社的小人书深受读者青睐,原因也在于其上乘的质量。 三是大众化、普及化。追求商品化、产业化并没有错,但不能盲目追求高档化、贵族化,那只能是极少部分人才能看到和买到。人民美术出版社的小人书是经典代表作,不仅艺术精湛而且低成本,老百姓买得起、看得起,还便于携带,每本低于10元,甚至只有5、6元。 四是与时俱进、开拓创新,不能炒冷饭、新瓶装旧醋。虽然上一世纪五、六十年代的作品好,但我们在21世纪的今天不可能还在迷恋高度政治化或过时落后甚至错误的旧观念中,如合作化运动、公私合营、阶级斗争、上山下乡。随着改革开放,如今有很多新时代先进的文学艺术作品,还有诸多国外经典作品,有必要组织专业作者去创作反映这一时代精神和世界文明的崭新作品,与时俱进、开拓创新,不应再满足于炒作陈旧东西。要时时刻刻铭记当今世界和中国先进文化的发展方向在哪里、是什么?不能只喊“走出去”,却不知道人类世界共同创造的文明和共鸣是什么? 五是与动漫、游戏、IT产业紧密结合,小人书和动画片、游戏软件同时创作和经营运作。总之,要生产出最广大人民群众喜闻乐见的体现先进生产力、先进文化的发展方向”和科学发展观的新作品。 六是国内少数民族出版社和外文出版社,要组织翻译出版最经典的中国、世界名著和畅销作品,让文化程度参差不齐的每个公民读完厚重而难懂的经典名著不大现实,但人手一册的小人书,可以以最简洁的方式和最快的速度看懂名著要点,这对世界文化发展是多大的贡献啊。 古人创造的“上善若水、厚德载物”,既是至理名言,也是对人类文化精髓的最精辟解读和概括,脱离了这一崇高思维境界,给其挂上很多不切实际和过于繁重的负荷,追求任何功利,那会迷惘和失败,如同我们的小人书走的弯路一样。 还是那句话,文化大发展,一定要从小处着手,就从小人书抓起,做好每一件事。                          2011.11.20
187    文化大革命,人类不可能忘记 댓글:  조회:12400  추천:8  2011-11-24
      文化大革命,人类不可能忘记。1966年的“五一六”,中国的悲惨故事从这一天开始,也为中国的改革开放埋下了伏笔。 我们今天提起这个时代,绝不是为了回味、留恋或赞赏那个时代,不是想揭开国人的伤疤,也不是贬低这个时代过来人的经历,我们大家都是那个时代过来的人,虽然当时还很小,正上小学或在襁褓之中,但深恶痛绝那个时代,更不喜欢那个时代的思维、行为方式及沿袭做法。 从这个时代过来的人,即使痛恨那个时代,但有时代的烙印,有时有意无意地回忆、怀旧、拾起、重复和延续那个时代的思维和行为方式,这对改革开放的今天是没有任何益处的。如果只是对青春和时代的回忆还能理解,但我们不能忘记过去的极端、愚昧及毁灭性的破坏带给人类世界的伤疤和痛苦,更不能回归“史无前例”和“倒行逆施”的蹉跎岁月。 早年在西欧街头看见来自原东欧国家的“浪女”,再听到原南斯拉夫国内发生的骇人听闻的种族残杀的真实故事,还有文化大革命的动乱经历,让人难以相信这是上一世纪50年代日本进步人士考察社会主义国家后描述的“思想高度集中统一,人们没有一点私心杂念,街上没有一只苍蝇,那样干净、文明、整齐的国家”,一旦内外环境恶化,一夜之间竟然出现让人难以想象的荒唐、残忍、违背人类常识的打砸抢杀之事,我们缺少什么样的精神、思想、文化和建设?文革时期的思维方式还会死灰复燃吗?   一、文革时代的思维和行为方式     1、政治口号:那是容易激动、扇情、偏激和狂躁的年代,政治口号、爱国口号喊得震天响,高举拳头,怒发冲冠,怒目喷火,历历在目。夜以继日地敲锣打鼓,传达最高指示,高喊无产阶级专政、阶级斗争与成分论。红色标语贴到所有街道和建筑物上,主席像刻到家家户户的窗前窗后,吃饭前、上课前、开会前都要背诵语录,还要祝福万寿无疆,最生硬、最难看的还是津津有味的小说页面上赫然出现黑体大字的伟人语录,而且每隔几页又出现,真是大掉胃口。最荒唐的口号是:人有多大胆,地就有多大产;路线正确后,没有“棉猴”(衣帽连体的棉袄)的农民也会有棉猴穿。     2、群众运动、形式主义:实际上是人海战术,不讲科学,不要专家,不要知识,不要技术,不要程序,不要分工,不要理性,而是红旗飘扬,锣鼓喧天,千炮齐鸣,万人欢呼,人山人海,大帮大轰,排山倒海,地动山摇、一泻千里。群众运动和形式主义是一对“孪生兄弟”,紧密结合后愈演愈烈,无孔不入、无处不在,成为全国各地干部、群众的日常生活和家常便饭,正常的国家经济、社会秩序遭到严重破坏。如果这样的做法,照搬在现在的市场经济中,就是开大会、说大话,一人讲话,全体举手,那会出洋相闹笑话,离世界文明越来越远了。     3、阶级斗争:以阶级斗争为纲,阶级斗争年年讲、月月讲、天天讲,阶级斗争压倒一切。树欲静而风不止,在我们取得胜利的时候,敌人绝不会善罢甘休。“苏修”(苏联修正主义国家)亡我之心不死,一有风吹草动,他们就乘机破坏,妄想颠覆无产阶级政权,这是阶级斗争新动向。阶级敌人每隔七、八年会自己跳出来。牢记阶级仇、不忘民族恨。与天斗,与地斗,与人斗,其乐无穷。 4、教条主义:宁要社会主义的草,也不要资本主义的苗。凡是敌人拥护的我们就要反对;凡是敌人反对的我们就要拥护。宁可饿死、冻死,也不要资产阶级的人性和怜悯。我们千万不能忘记,世界上还有三分之二的受苦人民,保卫新中国,解放全人类,建设红彤彤的新世界。     5、政治学习:学习毛泽东思想,宣传毛泽东思想,贯彻毛泽东思想,捍卫毛泽东思想。毛主席的话,一句顶一万句。读毛主席的书,听毛主席的话。热烈欢迎活学活用毛泽东思想的“讲用代表”,掀起学习毛泽东思想的新高潮,突出政治,政治挂帅,政治是每个中国人的生命线。 6、文化专制:全国人民学唱8个样板戏,学唱语录歌,学跳忠字舞,高喊万万岁。全国人民喜欢看的电影只剩下《新闻简报》和三战,即《地道战》、《地雷战》、《南征北战》,仅这几部电影还要强行在样板戏之后放映。优秀的古典名戏、红色经典作品、地方传统戏曲与少数民族文化被强行取替,打入冷宫,遭受最严重的破坏。 7、科技教育遭到空前破坏:体力劳动和思想改造代替了科学研究和教育。大学停止招生,工宣队、贫下中农进驻学校,老师靠边站,知识被“手茧”(简单劳动)所取代,知识分子是“臭老九”,人才被贬低改造,学校开门办学,漫长而无休止的支农劳动,少先队员被红卫兵、红小兵取替,阶级斗争进入课堂,学唱样板戏,简单的体力、社会劳动代替了课堂教学和科学实验,接受贫下中农再教育,争当阶级斗争的急先锋,批判资产阶级,“灭资兴无”,狠斗一个私字,成为教育的全部内容。     8、个人崇拜:爹亲娘亲,不如毛主席亲。毛主席挥手,我前进;毛主席指向哪里,我们就打向哪里。毛主席是我们心中最红最红的红太阳,我们衷心热爱您。毛主席万岁,万万岁!助长了领导干部终身制、官僚主义、家长制、一言堂、个人崇拜和专制文化政治,国家经济、文化、教育和民主宪政濒临崩溃。     9、改造思想、改造人:限制资产阶级法权,狠批资产阶级思想。自留地、搞副业都是资本主义的温床和尾巴。割除资产阶级的尾巴。要斗私批修。拔掉资产阶级的白旗。知识越多,越反动。不能只顾埋头拉车,要看路线和方向,突出无产阶级政治,倡导“三突出”。狠批资产阶级的人性论,揭穿资产阶级的伪善人皮。不能埋头只读圣贤书,两耳不闻窗外事,走资产阶级白专道路,要投身于火热的革命斗争当中去。战天斗地,改造思想,灭资兴无。下放改造,灵魂深处爆发革命。上山下乡,接受贫下中农再教育,成为整人、害人手段与工具。      10、上山下乡:这也是群众运动、人民战争的思维方式在处理知青工作中的另一表现形式。把安排不完的大中学毕业生集体安置到农村,是一种集政治运动、思想改造、就业安置、解决农村与城市问题对策的大成,是经过血泪教训宣告失败的做法。广阔田地,大有作为,虚心接受贫下中农的再教育。到农村安家落户,扎根草原边疆,做新时代的新农民。实践证明,城乡建设与统筹发展,不能违背经济、社会发展的客观规律,靠政治运动、群众运动和行政命令解决。     11、不破不立:这个流毒至今深广。哲学中的精髓扬弃、继承、发扬、光大,这在中华文明中家喻户晓的文明智慧,被文革彻底颠覆。一代新人、新一届领导班子、新技术攻关小组、新施工小组、工人作业班、农民作业组一上来,破除旧体制、原方案,全部重来,人为制造新气象、新景观、新政绩,既声势动众,又劳民伤财。一万人集体劳动或“攻关”,一代接一代、一年又一年、一次又一次重复建设,无效劳动,折腾大家,筋疲力尽,劳而无功。靠“赶超世界水平”的“不破不立”,数字升官,靠假象升迁,劳民伤财,群众无奈和畏惧。如今,有些地方政府强行拆迁、抢占土地、赶农民进城,浮夸、急躁的农村城市化、城市无序化,将成为加剧城乡及社会矛盾的导火索。     12、强权逻辑,两极分化:这不仅是文革遗毒,而是文革极左思想与新时期西方新自由主义思潮、极端民族主义的完美结合。强调“优胜劣汰”的森林法则,强调效率优先法则,强调强者逻辑,强调“霸王”实力,实际上是主张长官意志和行政命令,助长官僚主义和形式主义,客观上倡导弱肉强食,无视公平、和谐、文明。一边批判帝国主义侵略本性和狼子野心,一边又欣赏森林法则,赞美封建帝王,宣扬富国强兵,穷兵黩武,鼓噪“虎狼之师”,美化“野性”与“狼性”,搞乱国家伦理道德,破坏和谐文明发展,斯文扫地,使青少年浮躁、偏执与盲从。     以上所述,都是违背党中央、国务院提出的以人为本的科学发展观。群众的眼睛是雪亮的,人民心中始终有杆秤。人民,只有人民创造历史。有知识与良知的人书写历史,并不是谁权力大、力气大、嗓门高,施武力,扩势力,谁就可以随意捏造历史。人死了,历史也不变,千秋功罪,只有后人评说。     二、新世纪新千年和谐社会文明公民的文化意识构造 学者们根据“新世纪新千年世界各国的发展变化,对公民提出的新要求”的理论与实证观点,提出了新时期和谐社会现代人性教育与文明公民意识的理论依据:(1)以国际化的视觉看问题;(2)个人在社会中的责任与合作意识增强;(3)树立公民、平等意识,宽容和包容不同民族与文化;(4)以批判与全局的观点思考;(5)以非暴力解决各种争端的意识和能力;(6)树立资源节约型和环境友好型的消费与生活意识;(7)树立维护人的权利的敏感性和自觉性;(8)积极参与社区、国家、世界事务的意志与能力;(9)自觉维护社会公德与秩序的意识和能力。 面向世界和未来,加强包括青少年的全体公民的文明市民、世界公民和先进性、国际化的和谐、理性的人性教育和文化建设,加强自主创新教育,树立公民意识,维护社会秩序,建立和完善就业与创业社会,培养与经济全球化、信息一体化发展趋势相适应的各类人才,使参与者人人都分享成功的喜悦。传统的政治思想教育和道德教育向人性教育转变,并不是一概排斥和取代政治思想教育和道德教育,而是向多元化、个性化、人性化、国际化文化教育发展,也正是以人为本的思想、先进生产力、先进文化和全体公民的意愿在科技教育和文化建设中的正确反映,也是面向和顺应世界发展趋势的正确、理性选择。 1966年的“五一六”,中国的悲惨故事从这一天开始,也为中国的改革开放埋下了伏笔。纪念“五一六”,总结文化大革命,反思一下我们每个人身上有无上一世纪五、六十年代甚至文革大动乱时期的错误、偏执、教条、愚昧的思想和潜意识在沿袭、干扰现在和未来的中国,为的是进一步解放思想、实事求是、改革创新和与时俱进。 文化大革命,人类不可能忘记。                              2008,3,26草稿;2011.5.15修改
186    开放而与时俱进的文化才是先进的 댓글:  조회:11370  추천:8  2011-11-22
2011年10月21日,利比亚总统卡扎菲在他的故乡被捕打死。波尔布特、齐奥塞斯库、米洛舍维奇、萨达姆、穆巴拉克、卡扎菲,可能后边还有继承者,独裁者的命运是相同而可悲的,贪婪的一人家族,封建世袭统治还不够、还要再活五百年,最后镜头都是人民群众的欢腾雀跃,而我们的有些媒体一直在叫亿万国内观众揪心紧张,似乎我们的球队被击垮打败一样。 最近,北大朱锋教授写了一篇题为“影响我们准确、科学认识世界的五个因素”的文章,很有启发,因为传统、僵化、落后的文化及其价值观指导下的学者与媒体无法正确、理性、准时解释现今世界瞬息万变的风云事件,这对于广大人民群众是不公正的。 传统文化与社会主义文化不断吸纳人类创造的世界共同的文明和现代文明并不断吐故纳新和与时俱进,才有生命力,才能面向世界和未来。正如邓小平在改革开放初期所说的虚心学习和借鉴包括资本主义国家先进科学技术和管理方法的人类创造的一切先进文化与文明成果,否则难以把握时代的脉搏和代表最广大人民群众的根本利益及意愿,更不可能代表先进文化的发展方向。 中国文化,从纵向来看包括传统文化、近代文化和现代新文化,从横向来看包括各地区域文化、少数民族文化和不断吸纳的世界各国各地各民族的文化。落后的传统文化被“五四”新文化批判后,没有很好重组、更新和提高,近代史中的戊戌变法、辛亥革命、“五四”新文化和孙文、鲁迅、胡适、毛泽东等几代人塑造的近代文化虽屡近人类共同的“普世文化”,但经过几十年持续不断的阶级斗争、政治运动和文化大革命遭到极大破坏,更谈不上重组、修补、更新、提高和升华,互不衔接、相互抵消、肆意破坏而残缺不堪,不能与时俱进的核心文化价值也乏力,甚至连传统道德与近现代文明底线都被动摇而断裂坍塌。 自改革开放初期举国上下开始求知于天下,虚心学习、借鉴和吸纳国外先进文化而艰辛构筑并与时俱进的现代文化,最具划时代的开放性和渐进性,最接近世界文明,虽有新的生命力,但也没有一以贯之、融会贯通而不断完善和提升,没有走出不同的经典文化要素的分散、割裂、无序、重叠、对峙和冲突的状态,始终未能把传统经典文化、近代与现代文化和世界文明精髓有机、科学、合理结合重组,不时受到“中国模式”和“中国特色”的干扰,没有带来太大的进展。远离和隔绝世界文明的一国一族、一城一池的文明很难生存与发展,背离于世界文明甚至发生对峙和冲突,其代价更是惨重的,现实和未来都在警示着。 人们有意无意地习惯于用五、六十年代盲目学习和效仿苏联模式的思想与方法,惯用六、七十年代极左文革偏激思想方法,自觉不自觉地用近期形成的极左或极右、极端民族主义、国粹主义、权贵主义思想与方法,看待和描述这个风云变幻的世界,看待和评述国内诸多社会问题,都可能做出偏激、扭曲、荒唐而愚蠢的分析与结论。 有一点可以肯定,继承和弘扬改革开放初期邓小平、胡耀邦所力主倡导,第三、四代国家领导集体提出的“三个代表”重要思想和“以人为本的科学发展观”,继续以解放思想、实事求是、有错必究、拨乱反正、改革创新、与时俱进的思想、方法和视觉,重新、理性反思和分析历史、现实和未来,就可能得出相对客观、科学、理性、开明的结论。 文化是上善若水、厚德载物,承载和容纳百川万物而不争,是至高无上之思想境界和开阔胸怀。非宗教、非民族、非传统、非军力、更非意识形态,从文化入手,另辟途径、海纳百川、博采众长,就能做出正确、理性、明智、开阔的选择,就能沿着时代的脉搏和先进文化的发展方向不断前进,这样的文化世界会欢迎。                                     2011.10.22 ——发表于《光明日报》光明网理论频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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