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연변국제무역(延边国贸)에서 연길시 북쪽에 새로 오픈한 유원지에 간 적이 있다. 골짜기로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인공폭포 앞 광장에서 한족들이 한참 연지곤지 찍고 해괴한 옷차림을 하고 팔다리를 너풀너풀 거리면서 양걸 춤을 추고 있었다. “쟁쟁” “쾅쾅”요란한 꽹과리 소리와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두드리는 북소리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금방 자리를 뜨고 말았다.
아래로 내려오니 수목원 앞에서 정년퇴직한 조선족 아줌마, 아저씨들이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한참 노래하고 춤추며 흥에 겨워 있었다. 자기민족의 노래와 춤이어서가 아니다. 조선족의 율동과 리듬을 타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는 타민족이 없고 도취되지 않는 이방인이 없다. 관중석에서는 숱한 내지관광객들과 외국관광객들이 황홀한 눈길로 공연을 보면서 연신 샷타를 눌러대고 있었다.
“쿵더덩 쿵덩” 이번에는 경쾌한 북소리가 울리자 관중석에 앉아서 박수를 치며 어깨를 으쓱으쓱하던 한 무리 또 한 무리 조선족들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춤판을 벌리며 “좋다!” “좋아!”를 외친다. 이것이 조선족의 모습이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조선족의 선율과 리듬이고 민족의 취향이며 민족의 낭만과 긍지이다. 한족을 왈가불가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조선족의 선율과 춤사위는 한족에 앞서 있고 문화와 전통도 서로 다르면서 한결 밝다.
뿌리가 같고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자기의 생활방식을 추구하고 자기의 언어문자를 계승하고 자신들의 생활터전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민족의 속성이다. 그러나 누가 춤추자고 말하는 사람도, 노래를 부르자고 말하는 사람도, 애들을 조선족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도, 조선족이니까 민족의 전통문화와 풍속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도 없다. 민족자치의 권리도 내 팽개치고 민족자치의 정당한 사업도 행해지지 않는다.
▲ 주덕해
민족문화를 전파하고 민족문화의 매체작용을 해야 하는 조선족문화관들이 구실을 못하고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야 하는 문화인들이 선전부와 안전부의 눈치를 보느라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며 조선족간부들은 천안문만 바라보고 아이들은 한족학교에 보낸다. “애들이 한족 애들을 닮아 꽛꽛해서 어디 쓰겠읍데.”라고 넌지시 말하면 “중국에 사는데 어쩌겠소.”라고 씁쓸하게 대답해 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선족은 줄 끊어진 연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서로 나 몰라라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모이면 서로 믿음이 없고 웬만한 일을 가지고도 서로 삐지다보니 불편하게 만나느니 서로 안보고 사는 게 편하다며 뿔뿔이 흩어져 제멋대로 산다. 당연히 한복을 입은 사람만 봐도 가슴이 뭉클해 오르고 조선족노래를 듣고 조선족 춤을 추는 것만 보아도 눈물이 글썽해진다.
어제 연변박물관에서 주덕해의 일생을 담은 사진전을 보면서 그가 자치주의 성립을 이끈 장본인이고 연변대학과 새벽농민대학을 비롯한 당대조선족교육의 창시자이고 조선족사회의 형성과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신 조선족사회의 지도자였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아직도 그의 혁명정신만 고취되고 그의 인간성, 민족에 쏟은 애정은 홍양(弘扬)되지 않고 있다. 조선족간부들이 주덕해를 본보기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방법을 터득했으면 좋겠다.
▲ 김학철
문화인들은 타협하지 않고 애증이 분명한 창작태도와 민족을 사랑하고 불의에 맞서 싸운 김학철선생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서울에서 “너희들이 한국에 시집을 다 와 버리면 우리네 농촌총각들은 어떡하나.”고 낙루하시며 마지막 모습을 남긴 김학철선생이 요즘 따라 자나 깨나 그립다. 오늘의 조선족문화인들이 김학철선생을 본보기로 문화인으로써 소임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선족들에게는 3강5륜을 다시 한 번 정중히 권장하는 바이다. 부자유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친함이 있어야 하듯이 서로 도리를 하고 장유유서,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졌다고 연장자, 손우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손아래사람을 사랑하여 존중을 돌려받을 줄 알아야 하며 붕우유신, 벗과 벗은 서로 믿음이 있어야지 괜한 일로 오해와 불신으로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껌 씹듯 씹어 버릇하는 습관도 고쳐야 한다.
알고 보면 조선족처럼 정이 많은 민족도 없다. 심성이 착하고 밝고 사람을 진투로 대하여 일찍이 중국사회가 부러워하며 존중해마지 않는 민족이었다. 비록 늦었지만 역사적 환경과 시대적 환경에 걸맞게 주변정리부터 잘하고 작은 일에서부터 착수하여 조선족의 명예와 자존심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