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조선족문화발전의 현황 및 대책
정신철 중국사회과학원 민족학―인류학연구소 교수머리말
개혁개방이후 중국사회는 몰라보게 변해가고있다. 더우기 중국속의 소수민족사회는 과거의 페쇄로부터 개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당면한 새로운 문제들로 하여 많이 고민하고있다. 소수민족문화의 발전도 인구의 도시화와 경제의 시장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족의 경우 과거 그들의 경제와 문화교육발전상황이 중국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이후 그들 역시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고있으며 문화발전상황도 락관적이 못되였다. 그럼 아래 조선족문화의 과거를 회고하고 현실을 점검하며 미래를 위한 대책을 검토하는 과정을 통하여 중국조선족문화의 바람직한 발전상을 그려보려 한다.
조선족문화발전에 대한 회고 1) 중국공산당의 민족문화에 관한 정책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당과 정부는 중국내의 각 민족은 모두 평등하다는 원칙하에 비교적 정확한 민족정책을 제정하고 중국 각 민족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방면의 발전에 관심을 부여하였다. 당과 정부는 민족지역자치정책하에 동일민족이 집결한 곳에 민족자치지역을 세우고 민족내부의 사무를 민족 자신이 처리할수 있게 조건을 마련해주었으며 각 민족의 언어와 문자, 풍속습관 등을 존중하는 정책을 실행하고 각 민족의 언어, 문자의 자유로운 발전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1949년 9월 중국정치협상회의에서 통과한 당시 헌법역할을 담당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통강령》의 제50조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경내의 각 민족은 똑같이 평등하고 단결과 협조를 실행하고, 제국주의와 각 민족내부의 인민의 공적(公敵)을 반대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을 각 민족의 우애와 합작의 대가정으로 건설한다》고 규정하고 제53조에서는 《각 소수민족은 모두 자기의 언어문자를 발전시키고 풍속과 습관을 보존 또는 개혁하며 종교신앙의 자유가 있다. 인민정부는 응당 각 소수민족의 인민대중을 도와 그들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건설사업을 발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民族政策文件匯編》第一編, 人民出版社, 1958, p1
민족평등정책가운데 민족지역자치제도는 민족전통문화의 보존과 발전, 민족교육의 실시 등에 중대한 의의를 갖고있는 정책이다. 민족구역자치법은 중국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정책이며 국가의 중요한 정치제도의 하나로 한족 이외 기타 민족이 집결한 지역에 해당민족자치지역을 설치하는 정책이였다. 당과 정부는 이 정책을 실시하기 위하여 일찌기 《공동강령》에서 《각 소수민족의 집거지역에는 응당 민족의 지역자치를 실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1952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민족구역자치실시강요》를 반포하였다. 1954년에 제정한 중화인민공화국헌법은 민족지역자치를 하나의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시켰다. 1984년에는《중화인민공화국 민족구역자치법》을 제정, 공포하고 국가의 하나의 기본법으로 취급하였다.민족자치지역의 특징은 자치민족의 민족화이다. 민족자치정책에서는 민족자치정부의 인원은 자치민족 인원을 위주로 구성하고(12조) 정부기관의 직권 행사에는 주요하게 지역내에서 통용하는 민족어를 사용하며(16조) 자기 민족의 언어문자를 사용하여 민족의 문화교육사업을 발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16조).《中華人民共和國 民族區域自治實施綱要》, 《民族政策文件匯編》, 제1편, 人民出版社, 1958년, p68-69또 민족구역자치법에 의하면 민족자치지방의 자치기관에서는 《민족문화의 우량한 전통을 계승, 발양하여 민족특징이 있는 사회주의정신문명을 건설하며》(제6조), 《본 지역 각 민족이 자기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고 발전하는 자유를 보장하며》(제10조), 《자주적으로 민족교육을 발전시키고》, 《민족사범학교, 민족중등전업학교, 민족직업학교와 민족학원을 설립하여 각 소수민족의 전문인재를 양성하며》, 《소수민족학생 위주의 학교에서는 여건이 되면 응당 소수민족문자로 된 교재를 채용하고 소수민족언어로 수업하여야 한다》(제37조)고 규정하였다. 민족문화면에서는 《자주적으로 민족형식과 민족특징을 구비한 문학, 예술, 신문, 출판, 방송, 영화, 텔레비죤방송 등 민족문화사업을 발전시키고》, 《민족서적을 수집, 정리, 번역, 출판하며 민족의 명승고적, 귀중한 문물과 기타 중요한 력사문화유산을 보호한다》(제38조)고 규정하였다. 《中華人民共和國 民族區域自治法》, 國家民族事務委員會 中共中央文獻硏究室 編《新時期民族工作文獻選編》, 中央文獻出版社, 1990, 237-245 참조.
이러한 민족지역자치정책은 중국 각 소수민족 민족문화의 전승과 민족교육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중국공산당의 민족평등정책과 민족구역자치정책에 의하여 조선족 집결지역에도 민족자치정부를 건립하였다. 민족자치지역에서는 자치정부기관를 세우고 자치권리를 행사하였다. 그리고 조선족이 비교적 많이 집결한 향에서는 민족향을 건립하였다. 민족향정부는 민족자치정부에 속하지는 않지만 민족이 상대적으로 모여있기때문에 역시 일반 향과는 다른 특수정책을 실시하였다. 현재 조선어로 근무를 집행할수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1952년 건립)와 장백조선족자치현(1958년 건립) 등 지방정부도 있고 동북의 조선족집결지역에는 민족언어로 수업하고 민족의 언어, 문자를 배우는 조선족유아원으로부터 대학교까지 있다. 그리고 우리말 잡지, 신문 출판, 방송 등이 있다. 이러한 여건들은 중국조선족의 민족문화와 민족특성을 보존하고 민족교육을 발전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 조선족문화의 발전조선반도 주민들이 중국 동북에 이주, 정착하면서 민족문화계승과 민족교육발전을 위하여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마을을 중심으로 집중거주하였기때문에 그것이 가능하였다. 하지만 과거 일제의 통치과 현지 관헌 및 봉건지주들의 압박과 착취 등으로 생계유지에도 힘든 그때 민족문화조직과 민족학교의 운영은 자발적인 상태로 아주 어려웠다. 단지 이국 타향에서도 민족문화와 민족교육이 단절되지 않고 맥을 이어왔다는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1) 1945년에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까지 1945년 일본이 패망한후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또 여러 원인으로 중국에 자리를 잡은 조선인도 적지 않았다. 특히 동북지역의 조선인들은 그 지역을 개척한 연유로 많은 조선인들이 정착의향을 보였다. 하여 조선반도로 돌아가지 않은 조선인들은 중국 국내전쟁의 환경속에서도 민족의 문화와 교육발전에 열정을 보였다. 당시 동북지역의 조선족사회는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진행한 토지개혁과 더불어 민족 전체의 노력하에 문화교육에도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당시 조직된 문예단체들로는 연변지역의 《불꽃극단》, 《길동군구정치부문공단》(연변문공단의 전신), 흑룡강성의 《목단강민주련맹문공단》, 통화지역의 《료녕군구 리홍광지대 선전대》 등이 설립되였다. 문예지로는 《연변문화》, 《대중》, 《해방》, 《건설》, 《불꽃》, 《신청년》 등 민족문학잡지들이 발행되였다. 그리고 민족의 방송, 신문, 출판 등 사업도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다. 일본의 투항직후 《연길신화방송국》(연변인민방송국의 전신)이 연길에 설립되여 민족언어 방송이 가능하였다. 이외에 조선문신문들이 발행되였는데 연길에는 《연변일보》, 목단강에는 《인민신보》, 할빈에는 《민주일보》, 단동에는 《단결보》 등이 있었다. 1949년에는 상술한 신문들이 여러차례 합병을 통하여 《동북조선인민보》로 출간되였다. 또 1947년에는 연변교육출판사가 연길에 설립되여 동북 조선족 중, 소학교의 조선어로 된 교과서와 기타 서적들을 책임지고 출판하였다. 조룡호 박문일 주필:《21세기로 매진하는 중국조선족발전방략연구》, 료녕민족출판사, 1997, p199-204 참조.
(2)중화인민공화국성립이후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중국공산당의 민족평등정책과 민족문화교육발전에 대한 지원정책으로 조선족문화과 교육은 더욱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먼저 조선족문화기관인 문화관, 예술관 등이 중화인민공화국성립직후 동북3성의 조선족지역에서 재빨리 설립되였다. 1949년말에서 1953년까지 길림성 소속의 연변 각 현, 시와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 흑룡강성의 할빈시조선족문화관과 료녕성 심양시, 무순시의 조선족문화관이 륙속 설립되였다. 조선족문화관외 대중적인 문화보급시설 례컨대 문화실, 선전대 등도 조선족농촌에 많이 세워졌다. 연변 농촌에만 하여도 1300여개의 문화실이 설립되였고 300여개의 농촌선전대가 조직되였다.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6 《창업》, 민족출판사, 1994, p5401949년이후 조선족의 문학창작활동을 위한 기구들도 많이 설립되였다. 1950년 연변문예연구회가 조직되고 1953년에는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가 구성되였으며 1956년에는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가 설립되였다. 그리고 문예잡지로는 1951년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가 《연변문예》, 《장백산》 등 조선문 문예월간지를 창간하고 1956년에는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에서는 《아리랑》문예잡지를 창간하였다. 조선문신문으로는 1955년 《동북조선인보》가 《연변일보》로 개칭되고 이외에 《연변청년보》, 《연변소년보》가 창간되였으며 연변대학, 연변의학원, 연변농학원 등 대학 신문들도 발간되였다. 기타 지역의 조선문신문으로는 흑룡강성에서는 《목단강일보》,《흑룡강신문》이 발간되였고 료녕성에서는 《료녕신문》이 발간되였다. 조선족을 대상으로 한 조선말방송도 중앙과 동북지역 지방방송국에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51년 연길인민방송국이 연변인민방송국으로 개칭된후 중앙인민방송국의 중요한 프로를 중국어로 중계하는외에 전부 조선말로 방송하였다. 이외에 1950년에 중국국제방송국 조선말방송이 개시되였고 1956년에는 중앙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이 시작되였으며 흑룡강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은 1963년에 시작되였고 길림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은 1965년부터 개시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조선문 출판사업도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 건국전에 세운 연변교육출판사가 1949년말에 민영출판사로부터 국영출판사로 되였고 1951년에는 연변인민출판사가 따로 나왔다. 그리고 북경민족출판사에서는 1953년에 조문편집실을 내왔다. 중화인민공화국성립이후 상대적인 안정속에서 민족문화사업은 빠른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민족문화사업은 1950년대 중반이후부터 들이닥친 《반우파투쟁》, 《민족정풍운동》 등 정치운동가운데서 많은 좌절을 당하였다. 특히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가운데서는 민족정책이 소외되고 민족특징을 말살됨으로써 민족자치구역은 유명무실하게 되였고 민족교육, 민족언어와 문자 및 풍속습관 등도 완전히 무시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원래 민족자치정책에 근거하여 각 행정기관에서 조선어가 우선 사용되는 관례를 없애버리고 대부분 행사에서 한어를 우선 사용하였으며 각종 공식장소에서도 민족특성을 거의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그리고 민족문화사업의 명의하에 진행된 사업들은 거의모두 철폐되였거나 크게 축소되였다. 민족문화사업의 현황 1) 개혁개방과 중국조선족문화발전에서 제기되는 문제개혁개방이전 중국은 계급투쟁리론의 지도하에 많은 정치운동을 겪어왔다. 이러한 정치운동은 사회주의로선과 공산당의 령도를 견지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정치운동가운데서의 계급투쟁의 확대화, 절대화 경향은 조선족의 많은 우수한 인재, 지도자들이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 《반혁명분자》, 《반역자》 등 모자를 쓰고 박해받았고 눈을 감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차 제3기 전체회의에서 등소평을 비롯한 1세대 혁명가들이 당내에서 주도적지위를 확립하고 당의 사업중점을 경제건설에로 전환하면서 중국 대지에는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하였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조선족사회도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였다. 더우기 시장경제의 물결속에서 원래 계획경제의 틀에서 보장받던 조선족문화, 교육 사업은 준엄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개혁개방이후 중국조선족의 사회변동은 다방면이나 민족문화, 교육 분야에 미친 영향은 아주 엄중하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중국조선족에게 있어서 언어, 문자는 민족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중국조선족의 민족정체성유지와 민족공동체발전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민족의 언어, 문자를 보존, 발전시키는 민족문화사업과 민족교육사업이 사회적, 경제적 원인으로 빠르게 축소되고있다. 그 주요한 현상을 렬거하면, 조선족 집거지역 농촌에 많이 분포되여있던 문화관 등 문화시설의 점차적인 소실, 조선문 도서 출판의 급격한 축소, 조선문 신문, 잡지 발행량의 급격한 감소와 운영의 어려움 그리고 민족학교 학생래원의 고갈과 교육질의 하강 등을 례들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시장경제의 충격과 조선족의 인구이동, 인구감소 등이 제일 큰 원인이라 하겠다. 따라서 현재 조선족문화사업은 그 특수성과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많은 애로사항에 부딪쳤다. 그러면서 여기서 특별히 더 제기해야 할 문제는 우리 조선족문화기관이 직면하고있는 엄중한 재정난이라고 할수 있다. 과거 민족문화기구들과 매체들은 모두 각급 정부 재정에서 책임지고 모든 사업비용를 지출하였는데 현재는 그 체제를 바꾸고 민족문화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이 점차 줄어들고있는 형편이다. 거기에 정년퇴직인원들의 월급지불, 생활복지 등 원래의 체제가 남겨놓은 문제, 물가상승이 사업경비에 반영되지 않는 등으로 하여 사실 현재 신문, 출판, 방송, 문화관 등 민족문화기관 등은 현상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다. 그리고 민족문화사업의 불경기와 더불어 이 분야의 유능한 인재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것도 하나의 큰 문제라고 볼수 있다. 민족문화기관과 조선말 매체들의 경영난, 자금난과 집거지역의 조선족인구의 감소 등은 민족문화사업의 불경기와 하락을 초래하고 그것으로 하여 또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유능한 인재들은 많이 《하해(下海)》 또는 다른 분야로 전근하고 새로운 인재들은 모집하기가 어려워져 현재 우리 민족문화사업은 일종의 악순환에 빠져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의 대책
1) 민족문화의 중요성민족이란 그가 지닌 여러 특징에 의하여 존재한다. 한 조상을 모시고 같은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며 그리고 어느 한 민족집단에 함께 속하여있다는 의식 등은 한 민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이다. 언어, 문자를 포함한 민족문화는 한 민족이 기타 민족과 구별되는 주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사실 한 민족이 기타 민족에게 동화되였다는것은 그 민족의 문화가 소실됐다는것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민족문화의 보존과 계승은 민족이 살아남고 발전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라고 할수 있다. 중국조선족의 경우 백여년 동안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의 민족집단으로 민족정체성을 지키며 떳떳이 살아갈수 있었던것은 바로 우리 언어, 문자, 예술 등을 지키고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를 내렸기때문이였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련대감을 강화시켰다. 2) 민족문화발전의 제 여건중국은 한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다민족국가이다. 중국 소수민족중의 하나인 조선족은 지금까지 중국공산당의 민족평등정책의 지원하에 끊임없는 자기 노력으로 자기 민족문화의 발전을 도모하여왔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문화의 발전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희망도 없지 않다. 첫째, 현재까지도 우리 민족문화의 기반이 든든한것이다. 민족문화발전의 기초로서 민족교육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동북지역에는 조선족교육이 유아교육에서 대학교교육까지 민족교육의 체계화가 형성돼있고 민족성원들의 노력으로 동북조선족 집거지역에는 많은 조선족문화관이 설립돼있다. 그리고 현재 많은 조선족들은 중국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는 동시에 자기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보전하려고 노력하고있다. 대부분 조선족은 자기가 조선족임을 잊지 않았고 혼인에서 배우자를 조선족가운데서 찾는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식생활에서는 여전히 자기들의 전통적인 식습관을 따른다. 둘째, 당과 정부의 민족평등정책이 있다. 이는 우리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법적보장이다. 당과 정부는 소수민족 경제, 문화, 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매 시기마다 상응한 정책과 제도를 내오고 소수민족사회의 발전에 힘을 기울여왔다. 가령 당과 정부의 민족평등정책과 소수민족사회발전을 위한 지원이 없었다면 민족학교, 민족출판, 민족신문, 민족방송 등 사업이 현재처럼 발전되지 못하였을것이다. 때문에 당과 정부의 민족평등정책과 각종 지원은 민족문화와 교육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수 있는 유력한 보장이다.셋째, 한국 등 국외 조선민족사회와의 활발한 교류는 우리 조선족문화의 발전에 적극적인 요소가 된다. 중국조선족은 조선민족의 한갈래로 이미 중국 다민족국가의 일원으로 되였지만 고국이 있는 과계민족(跨界民族)으로 력사적으로 형성된 본 민족의 기본적인 의식과 감정을 국외 조선민족과 공유하고있다. 한국의 경이로운 경제성장과 중한 량국의 경제, 문화 등 방면의 활발한 교류는 중국조선족들에게 민족동질성을 자각하게 하고 민족적자존심과 자신감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현재 전국적으로 부는 《한류》바람은 중국조선족의 민족문화발전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기여하고있다.3) 민족문화발전을 위한 대책우에서 보다싶이 현재 조선족의 민족문화 발전과정에는 많은 어려움도 있지만 유리한 여건도 적지 않다. 도전과 기회가 우리 앞에 동시에 기다리고있다. 우리는 유리한 조건을 활용하여 도전을 무사히 넘겨 민족문화의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 첫째, 튼튼한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 경제는 모든 사업의 기초이다. 개혁개방이후 조선족사회 발전과정에서 생기고있는 일련의 문제들은 거의 모두 인구이동에서 비롯되였으며 그것은 또한 경제생활의 취약함에서 기인된다. 조선족부녀들이 낳으라는 아이를 낳지 않는것도 경제문제가 주요한 원인이며 특히 한족이 절대다수 차지한 중국에서 소수민족들이 민족 집거지역을 떠나 타지역으로 떠나는것도 경제가 주원인이였다. 가령 본고장에서 수입을 높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수 있다면 누구도 낯설고 동포가 없는 타민족지역에 돈 벌려 나가지 않을것이다. 따라서 민족경제를 발전시키고 조선족지역의 경제토대를 튼튼히 하는것은 우리 선조들이 개척하고 생활의 뿌리를 내린 민족의 전통적인 집거지역에서 민족의 얼을 지키며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민족집거지의 재조성과 새로운 형성도 경제와 밀접히 연결되여있으며 민족문화사업도 튼튼한 경제토대가 뒤받침되여있으면 더욱 확대발전시킬수 있는것이다. 둘째, 조선족의 상대적인 집거지를 조성하는데 노력하여야 한다. 민족의 일정한 집거지역은 민족성과 민족을 보존, 유지하는 근거지라고 말할수 있다. 현재 조선족사회는 인구이동과 인구감소에 따라 민족 집거지역이 점차 축소되고 민족교육이 위기에 직면하였으며 민족문화의 보존과 발전에도 큰 제동이 걸렸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좋은 방법은 원래의 민족 집거지역을 지키고 또 새로운 민족집거지를 건설하는것이다. 민족 집거지역 지키는 방법은 기존의 인구가 비교적 집중한 마을을 중심으로 인구가 많지 않고 산재한 조선족마을사람들을 그곳에 집결시키는 일을 참답게 추진하는것이다. 다른 한면 우리 민족이라고 한평생 농촌에서 오리처럼 논밭에서 헤매라는 법은 없다. 현재 도시화과정은 하나의 필연적추세라고 할수 있는바 농촌인구가 도시로 흐르는 추세는 막지 못하고 또 막을 필요도 없다. 문제는 소수민족성원으로서의 도시진출이 민족인구의 분산화를 초래하므로 도시에서 민족성원들의 상대적집거를 위하여 새로운 민족 집거지역을 만드는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도시로 진출한 조선족들을 될수 있는대로 모여 살도록 민족사회 내부에서 여론을 조성하고 함께 모여 생활할수 있는 여건마련에도 힘을 기울려야 한다. 셋째, 자기주체성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 중국조선족은 조선반도 거주민과 동일민족으로서 심리, 성격, 언어 등 다방면의 동질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말그대로 우리 중국조선족은 우선 중국 국민이다. 때문에 조선족은 중국 국민으로서의 자기주체성을 명확히 세우고 《감상적인 동포정서》에 집착하지 말고 선조들이 개척한 땅을 영원히 지킬 각오를 하여야 하며 이 땅의 주인으로 민족의 우수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소질향상에 힘을 기울려야 한다. 그리고 과경(跨境)민족의 특수성을 하나의 우세로 리용하여 조선반도와의 각종 교류와 협력이 민족문화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길을 모색하여야 한다.넷째, 민족문화 보존, 계승의 토대는 민족교육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민족사회에서 민족성원들 모두 민족교육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을 널리 조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민족성원들의 의무감과 책임감을 강조하여야 한다. 민족문화와 교육발전에 당면한 문제에 관하여서는 누구나 할것 없이 민족 전체가 힘을 합쳐서 해결하여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성원들이 자각적으로 민족문화보존과 민족교육발전을 위하여 할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다섯째, 민족사회 네트워크형성이 시급하다. 현재 우리 조선족은 우리가 지닌 문화적우세 그리고 기타 여러 우세로 중국의 개혁개방과 도시화과정에서 앞장선 양상을 보이고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구이동에서 비롯된것이다.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국내 어느 민족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활약적이다. 도시화과정에서 소수민족인구가 자기 집거지를 떠나 도시 진출하는것은 민족인구의 분산화와 희석화를 말하며 이것이 민족경제발전과 민족교육실행 및 민족문화 보존, 계승에 많은 제한을 주고있는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민족사회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민족사회 네트워크형성에 더욱 힘을 기울려야 한다. 더우기 글로벌시대에서 있어서 민족사회 네트워크형성은 민족문화을 보존하고 민족교육을 발전에 크게 기여할수 있으며 격렬한 경쟁속에서 민족이 살아남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도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