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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국과 김수로왕
천지개벽이래 이 지방은 아직 나라 이름이 없었다. 나라 이름은 물론 임금과 신하의 칭호도 없던 시대였다. 이때 가락지역에는 아홉개의 부족이 들이나 산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이 주족을 거느리는 족장을 간이라 했는데 ,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신귀간, 오천간이 족장의 이름이였다.
후한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년 3월의 계욕일이였다.
<너희들은 모두 모여라.>
북쪽에 있는 구지봉에서 사람을 불러모으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구지는 산봉우리가 마치 거북이 엎드린 모양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아홉족장들을 비롯한 수백명의 주민들은 이 신기한 소리를 듣고 구지봉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사람목소리는 나면서 형체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군 그래.>
<아무도 없는데 누가 말을 했을까?>
<글쎄..............>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수군거렸다. 이때 하늘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리면서 산봉우리를 울렸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소리는 들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족장들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입을 모아 대답했다.
<저희들이 여기에 있읍니다.>
<여기가 어디냐?>
<구지봉이라 하옵니다. >
족장들이 대답하자 다시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천제가 나에게 명하여 이 땅에 내려가 나라를 열고 왕이 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늘에서 여기로 내려왔노라. 그러니 너희들은 산봉우리를 파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어먹으리라. > 하고 노래하며 춤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는 기쁨을 맛보리라.>
아홉 족장들과 주민들은 그 가르침대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보니 보랏빛 새끼들이 하늘에서 스르르 내려와 땅에 닿았다. 새끼줄 끝에는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궤가 하나 있었다.
<금궤로군! 금궤속에 뭐가 들어있길래 말을 했을까?>
아도간이 이렇게 말하며 다른 족장들을 보았다. 그러자 족장들과 주민들은 한결같이 금궤를 열어 보기를 원했다.
이윽고 아도간이 금궤를 열었다. 그 순간 금궤속에서 찬란한 광채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유심히 보니 그 속에는 태양처럼 둥근 황금알이 여섯개 들어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스러운 알이다. 그러니 모두 절을 드리도록 하여라. !>
사람들은 놀라며 기뻐하다가 공손히 알에게 절을 올렸다. 그런후 알이 담긴 금궤를 다시 보자기에 조심스럽게 싸 가지고 마을을 내려왔다.
<신령스러운 알을 아도간의 집에 모시는것이 좋겠습니다. >
신천간이 말하자 다른 족장들도 찬성을 하였다. 그리하여 알이 담긴 금궤는 아도간의 집 사랑에 두에 되였다.
그런지 12시간이 지난 이튿날 아침에 여러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모두 모였으니 어서 금궤를 열어 봅시다.>
아도간은 금궤를 열었다. 이때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금궤를 열자마자 가운에 있던 알이 깨지
면서 한 옥동자가 나왔던것이다.
<아니, 알에서 아이가 나오다니.........>
족장중의 누군가가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미처 끝나기전에 나머지 다섯개의 알도 모두 깨여지면서 동자들이 나왔다.
동자들도 용모는 모두 수려하면서도 신령스러웠다. 특히 맨 처음 알에서 깬 동자는 그 중에서도 돋보였다.
족장들은 여섯 동자들에게 절하고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했다. 동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불과 십여일이 지났을때 키가 구척이나 자랐다. `
키가 큰것으로 말하면 탕왕같고 얼굴이 용의 모습과 같은 것은 한나라 고조와 같고 눈썹이 여덟 팔자로 근엄한 것은 당나라 고조와 비슷했다. 또한 눈동자가 겹으로 된것은 우나라 순임금과 같았다.
사람들은 여섯 아이중에 맨 처음 알에서 나온 아이를 보름만에 임금으로 모셨다. 그는 여섯 알중에서 처음으로 인간세상에 나타났다 하여 이름을 수로라고 지었다.
그리고 나라이름도 대가락 혹은 가야국이라 지었다. 황금알에서 나온 나머지 다섯 아이도 자라 임금이 되어 6가야를 세웠다.
동쪽은 황산강, 서남쪽은 창해, 서북쪽은 지리산, 동북쪽은 가야산을 경계로 하여 남쪽에 위치한 가야는 우리 나라의 꼬리 부분에 있는 영토였다.
수로왕은 궁궐을 짓게 하였다.
그러나 왕이 워낙 소박하고 검소한 성품이라 화려하게 짓게 하지 않았다. 풀로 이은 지붕의 처마 부분을 자르지 않았으며, 흙으로 된 계단은 석자를 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궁궐은 백성들의 집과 별로 다를바가 없었다.
그가 왕위에 오른지 2년이 되는 봄, 수로왕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 나라의 도읍을 정해야겠다. >
그리고 궁궐이 있는 남쪽 신답평으로 나아갔다. 사방을 찬찬히 둘러본 왕은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은 마치 버들잎처럼 협소하구나, 그러나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상서로운 정기가 서려있으므로 백성들이 살 만한 장소로다. 더구나 하나에서 셋을 이루고, 셋에서 일곱을 이루니 일곱 성인이 살았던 땅이 진실로 여기에 부합되는것 같도다. 그러니 여기에다 도읍을 정하면 나라가 번성할 것이다.>
그리하여 인부를 동원하여 그곳에 성을 쌓고 길을 만들며 궁궐과 창고, 관청등을 짓기 시작했다.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이 힘을 모아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성과 성안의 모든 건축물들을 빨리 완성할수 있었다.
수로왕이 왕위에 오른지 3년이 되던해 2월에 마침내 궁궐이 완성되였다.
왕은 좋은 날을 택하여 새로 지은 궁궐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어진 정치를 펼쳐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갔다
그 무렵, 이상한 사람이 수로왕을 찾아왔다. 그는 키가 3척에 머리의 둘레는 1척이었다.
그는 스스로 완하국 함달왕의 태자라고 소개한후, 알에서 나왔기때문에 탈해 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그대가 이곳에 온 연유가 무엇인가?>
수로왕이 묻자 탈해는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왔소이다.> 하고 서슴치않고 말했다.
그 말에 수로왕이 하도 어이가 없어 웃었다.
<으하하하......., 하늘이 나를 왕위에 오르게 하고 나로 하여금 나라를 태평케 하여 백성들이 편히 살수 있도록 명하였거늘 어찌 그대가 마음대로 왕의 자리를 빼앗을수 있겠는가? 분명히 말하지만 하늘의 뜻을 거역하면서 그대에게 왕위를 넘겨 줄수는 없다. 또한 사랑하는 나의 백성들도 그대에게 맡길수는 없다. 그러니 잔말 말고 썩 물러가거라.!>
<그렇다면 서로의 재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것이 어떻겠소?>
탈해가 이렇게 제의하자 수로왕도 좋다고 응낙하였다. 탈해는 순식간에 한 마리의 매로 변했다. 그러자 수로왕은 즉시 술법을 써 독수리로 변했다.
탈해가 이번엔 참새로 변하자 왕은 새매가 되였다.
탈해가 다시 본래 모습으로 변하자 왕도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탈해는 수로왕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왕이시여! 제가 매가 되였을때 왕께서는 독수리가 되였고, 참새가 되였을 때는 새매가 되여 저를 잡아먹을수가 있어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이렇게 살려주신것은 왕의 어진 마음씨 때문입니다. 감히 왕과 겨루어 왕위를 다툰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주십시요>
탈해는 이렇게 사죄하고 궁궐을 떠났다. 그러나 가락국을 완전히 떠난것은 아니었다. 수로왕은 탈해가 가까운 바닷가로 나가 떠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으음, 탈해라는 자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다시 궁궐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쫓아버리는것이 상책이다. >
왕은 곧 수군에게 명하여 탈해를 멀리 내쫓게 하였다. 가락국의 수군들이 출동하자 탈해는 신라의 계림으로 달아났다. (여기에 쓰인것은 신라의 것과 많이 다르다.)
그로부터 몇년후인 무신년(48)7월 27일 의 일이였다. 9간들이 왕을 찾아와 말했다.
<대왕께서 왕위에 오른지도 벌써 일곱해가 되였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배필를 만나시지 못하고 계십니다. 신들의 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시는 아이를 택해서 왕후로 삼도록 하십시오.>
이 말에 수로왕이 대답했다.
<내가 이곳에 내려온것은 하늘의 뜻에 의한것이었소. 그러니 나의 배필이 될 왕후도 하늘이 정해줄것이오 . 그러니 그대들은 념려하지 마시오. >
며칠후, 수로왕은 유천간에게 가벼운 배와 빨리 달리는 말을 주며 명했다.
<유천간은 지금 당장 망산도로 떠나거라. 거기서 기다렸다가 하늘이 나에게 보내주실 여인을 모셔오도록 하라.>
그리고 신귀간에게 명하여 승점이란 곳에 가서 마중하도록 했다.
유천간이 망산도에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을 때 서남쪽으로부터 붉은 색의 돛을 달고 붉은 기발을 휘날리며 배 한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천간은 횃불을 올렸다.
배는 쏜살같이 섬을 향해 오더니 많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상륙했다.
승점에 있던 신귀간은 이 광경을 보고 급히 궁궐에 가 왕에게 알렸다. 이 소식을 듣고 왕은 몹시 기뻐하며 신하들을 보내 영접해오게 했다.
바닷가로 나간 신하들은 그 여인을 궁궐로 모셔들이려 했다. 그러자 여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그대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 어찌 경솔하게 따라갈수 있겠는가?>
신하들은 궁궐로 돌아가 여인의 이 말을 왕에게 전하자 왕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도다. 귀한 사람이니 귀하게 맞아주는 것이 나의 도리일 것이다.>
수로왕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몸소 여인을 맞으려 행차했다. 궁궐 서남쪽 산기슭에 도착한 왕은 그곳에 장막을 쳐서 임시 거처를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여인은 바다가에 배를 매어 두고 륙지에 올라와 우뚝이 솟은 산언덕에서 쉬고 있었다. 거기서 여인은 입고 비단바지를 벗어 산신령께 례물로 드렸다.
여인을 시종해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심보와 조광이요, 그들의 안해는 모정과 모량이였다. 또한 데리고 온 노비까지 합치면 20명이 넘었다.
여인이 소지한 물품은 화려한 비단과 금은 보화 등으로 모두 진귀한 것들이었는데, 어찌나 많은지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여인은 천천히 왕이 머물고 있는 임시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왕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반갑게 나가 맞았다.
<잘 오셨소! 나는 가락국의 수로왕이요.>
여인도 그제야 안심된 얼굴로 미소를 머금고 수로왕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소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써 성은 허요, 이름은 황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이는 열여섯살입니다. 올해 5월 어느날 저의 부왕께서 하늘에 계신 상제를 꿈에 뵙게 되였는에, 저를 가락국의 수로왕께 보내어 배필을 삼께 하라 하셨다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배를 타고 이곳으로 오게 된것입니다. >
왕은 아유타국 공주의 그 말에 답했다.
<실은 나도 하늘의 뜻으로 오늘 아유타국의 공주인 그대를 왕후로 맞이하게 될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그래서 미리 신하들을 보내 마중하도록 한 것이요. 아름답고 어진 그대를 맞이하게 되니 이 몸은 기쁘기 한량없소.!>
왕후를 맞이하게 된 수로왕은 왕후를 시종해온 아유타국의 신하들과 노비들도 잘 대접했다.
며칠 후, 수로왕은 아유타국 공주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나라의 어머니인 왕후가 정해지자 신하들과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며 축복했다.
이로부터 세월이 흐른 어느날, 왕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9간들은 여러 관리들의 어른인데, 그 지위나 명칭이 모두 천박스럽기 그지없다. 혹 문명된 외국인이 들으면 반드시 웃음거리가 될것이다.> 왕은 9간들의 성과 이름을 각자의 품격에 맞도록 고쳐 주었다. 또한 나라의 법도와 벼슬의 명칭도 새롭게 했다.
이렇게 나라와 집안의 질서를 잡고, 백성들을 자식같이 사랑하니 나라안은 저절로 태평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왕이 왕후와 함께 사는 것을 비유하면 하늘이 있음으로 해서 땅이 있고, 해가 있음으로 해서 달이 있으며 양지가 있으므로 해서 음지가 있는것과 같았다.
얼마후 왕후는 곰을 얻는 꿈을 꾸고 잉태하였다. 이 아이가 곧 수로왕의 뒤를 이은 거등공이었다.
태텽 세월이 흐르는 동안 왕후는 1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왕과 신하들, 그리고 만백성들이 몹시 슬퍼하였다. 왕은 구지봉 동쪽에 있는 언덕에서 왕후를 장사지냈다. 그리고 왕후가 살아 있을때 백성들을 사랑했던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몇 개의 지명을 지었다.
왕후가 처음 가락국으로 와서 상륙했던 그 나루의 마을을 <주포촌>이라 하고, 비단 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예물로 바쳤던 그 산언덕을<능현>,붉은 깃발이 들어오던 그 바다가를 <기출변>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왕은 왕후가 세상을 떠난후 슬픔과 외로움속에서 지냈다.
<나도 이제 왕후곁에 가리다.>
왕후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지난뒤 기묘년(199)년 3월에 수로왕도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그때 왕의 나이는 158세였다.
온 나라 사람들은 마치 부모를 잃은 듯, 침식을 잊고 슬퍼했다. 궁궐 동북쪽에 왕릉을 정하고 장사 지내니 그곳이 곧 수로왕묘가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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