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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공자의 로맨스
선덕녀왕때의 일이다. 김유신에게는 출가전의 아릿다운 누이동생 둘이 있었는데 맏이는 보희였고 다음이 문희였다.
보희와 문희는 용모는 둘다 선녀처럼 아름다왔으나 성격상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보희는 호수처럼 잔잔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무희는 흐르는 시내물처럼 개방적인 성격의 활달한 처녀였다.
어느날 밤, 맏이 보희는 해괴망칙한 꿈을 꾸었다. 서악산 꼭대기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더니 오줌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려 서울장안을 잠가버렸다. 이튿날 아침.,보희는 간밤의 꿈을 생각하면서 저 혼자 시무룩이 웃고 있었다. 꿈도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언니는 왜 정신나간 사람처럼 실없이 웃고만 있어요?>
문희가 보희의 웃는 모양을 보고 말했다.
<참, 꿈도 별난 꿈이 다 있지.>
<무슨 재미나는 꿈을 꾸었게요? 좀 들려줘요.>
<얘, 그만둬라 . 너무도 창피하고 해괴해서 동생한테도 말하기 안됐다.>
<아이, 언니두! 무슨 꿈이길래 그래요? 어서 들려줘요.>
문희가 하도 조르기에 보희는 꿈이야기를 대충 들려주었다.
<언니, 그 꿈을 내가 사겠어요. 내게 팔아요.>
<그래 팔지 . 얼마에 사겠느냐?>
보희는 그저 장난으로 넘겨버렸지만 문희는 장난이 아니였다.
<비단치마 한감이면 어때요?>
<참말이냐? >
<참말이 아니고요!>
문희는 얼른 비단치마 한감을 언니의 품에 안겨주고 다시 다짐을 받았다.
<이젠 그 꿈을 내가 샀어요.>
<그래 팔았다. 인젠 물리지 못한다.>
<안 물려요.언니도 물리지 못해요.>
문희는 이렇게 치마 한감으로 언니의 꿈을 사고 이날부터 더욱 큰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좋은 꿈이야! 장차 어떤 행운이 트일지 모른다.)
문희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흐뭇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뒤 한 열흘이 되는 어느날이였다. 김유신은 그가 늘 흠모하고 존경하는 왕족 김춘추와 함께 자기 집 뜨락에서 정초놀이로 공차기 유희를 하고있었다.
김유신은 귀족출신의 명문가에서 태여난 포부가 큰 젊은이였다. 그러나 그의 조상은 신라의 태생이 아니라 일찍 신라에 통합된 가락국의 후손으로서 신라의 직계귀족은 아니였다. 그러한 김유신이였든지라 큰뜻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김춘추와 같은 유망한 왕족과는 가까이 사귀고 나아가서는 특별한 인연을 맺는것이 나쁠리 없었다.
김춘추로 말하면 신라 제25대 임금 진지왕의 손자로소 직계왕족이였다. 신라의 귀골중에서도 왕위마저 계승할수 있는 진골에 속하는 인물이였다. 그리하여 유신은 늘 마음속으로 그를 존경해오는 터였다.
공차기 유희가 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지게 하였다.
<이것 참, 미안하게 됐소. 어서 집에 들어가서 꿰매야지. 고름이 떨어진 옷을 어떻게 입고 나서겠소?>
김유신은 아닌 연극을 꾸몄다. 김춘추는 할수 없이 김유신을 따라 사랑채로 들어갔다.
유신은 김춘추를 사랑방에 모신 다음 우선 보희를 불렀다.
<보희야, 내가 실수해서 춘추공의 옷고름을 찢어놓았구나. 어서 들어가서 달아드리도록 하여라.>
<아이, 오빠도 참! 그런 사소한 일때문에 어찌 귀공자앞에 나서겠어요?>
보희는 벌써부터 얼굴이 빨개졌다.
<그럼 문희야, 네가 들어가서 달아드리도록 하여라.>
<네, 분부대로 하겠어요.>
보희와는 달리 문희는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얼른 바느실을 찾아들고 오빠를 따라 사랑방으로 건너갔다.
<나의 누이동생 문희요. 어서 그 저고리를 벗으시오.>
김유신은 누이동생을 김춘추에게 소개하였다/
문희는 살포시 눈을 내리깔고 김춘추가 벗어주는 옷을 두손으로 받아들더니 한쪽켠에 물러앉아 정성스레 바느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순간 , 김춘추는 깜짝 놀랐다.
(아니, 김유신에게 이토록 아릿다운 누이동생이 있었단 말인가? )
왕족의 일원으로서 신라사회의 상층에서 생활하고 있던 김춘추이지만 이렇듯 아름답고 정다운 녀자는 일찍 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서 문희가 가장 아름다운 녀인인듯 싶었다.
호협한 정열에 타끓는 월성공자 김춘추의 가슴에는 어느덧 사랑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김유신의 언동과 문희의 눈길에서 김춘추는 그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고있었다. 이리하여 이날부터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에 자주 들면서 비밀리에 문희를 만나 사랑을 속삭이게 되였다. 마침내 그들의 사랑은 불같이 타번져 성혼전의 문희의 몸에는 태기까지 있게 되였다.
(지금까지는 모든것이 뜻때로 되였다. 그러나 만이 이롯 그 친다면 누이동생을 망치고 집안을 망칠뿐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속히 성례를 시키고 정실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김유신은 더욱더 엄청난 연극을 꾸미였다.
어느날 조용한 기회에 그는 문희를 무섭게 닦아세웠다.
<문희야, 네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까지 하였으니 가문을 망신시켜도 분수가 있지. 이게 무슨 꼴이냐?>
김유신은 노지충천하여 소리소리 질렀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된 문희는 너무도 부끄러워 고개도 감히 들지 못했다.
<누구의 소행이냐? 어서 말해라! 너는 이제 백번 죽어 마땅하니 나는 너를 불에 태워죽일것이다.!>
<오빠, 제발 노여움을 거두세요. 제가 죽을죄를 졌으니 이 한몸만 조용히 없애주시고 상대자는 묻지 말아주세요.>
문희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흐느껴 울었다. 제 한몸이 죽는것은 아깝지 않으나 김춘추에게 련루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김유신은 문희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가슴이 쩌릿해났다. 제가 꾸민 연극때문에 누이동생이 잠시나마 눈물을 짜고 있는것이 괴롭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너도 나도 다 참아야 한다. >
김유신은 문희의 들먹이는 어깨를 측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말만은 여전히 추상같이 하였다.
<이 며칠동안은 절대 이 방을 나서지 말고 나의 처분을 기다리도록 하라!>
유신은 문을 걷어차고 방을 나섰다.
이때부터 그는 일부러 온 장안이 다 알게 떠들면서 부모의 허락도 없이 남의 사내와 사귀고 잉태까지 한 누이동생을 불에 태워죽일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선덕녀왕이 행차가 들놀이를 나가다가 김유신의 집근처를 지나게 되였다. 그때 김유신의 집 앞뜨락에서 검은 연기가 짚동같이 솟아오르면서 시뻘건 불길이 하늘이 낮을세라 타래쳐올랐다.
<아니 저게 유신의 지빙 아닌가? 저런 큰불이 나서 어쩌나! 어서 가서 불을 끄도록 하라!>
그러자 내막을 아는 한 신하가 말하였다./
<아니올시다. 유신의 누이동생이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였기때문에 유신공이 지금 누이동생을 불에 태워죽이는것입니다.>
<아니. 잉태한 여자를 태워죽이다니?>
본디 마음이 너그러운 녀왕이였던지라 임신한 여인을 태워죽인다는데는 소름이 끼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유신의 매제와 상관한 사람은 누구라던가?>
녀왕이 갑자기 이렇게 묻자 아까부터 얼굴이 벌개있던 월성공자 김춘추는 그만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녀왕은 고개를 숙이고있는 김춘추를 건너다보았다.
(유신의 집에 무상출입하고 그의 매제를 나꿀수 있는 사람은 왕족이 아니면 어림도 없을것이다. )
이렇게 생각한 녀왕은 부드러우나 지엄한 목소리로 김춘추를 불렀다.
<춘추! 과인은 벌써 다 알고있다. 그대는 어이하여 유신의 매제를 구하지 않는가?>
<어명을 따르오리다.>
김춘춘는 기다렸다는듯이 얼른 말을 몰아 김유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유신공, 잠간만!>
그때 이글이글 타오르는 장작불옆에는 죽음을 앞둔 문희가 소복단장으로 조용히 꿇어앉아있었고 유신은 바야흐로 누이동생을 꾸짖고 있었다. 두말할것없이 그것은 정광설이였다. 왕의 행차가 오늘 있게 된다는것을 미리 탐지한 유신이였던지라 구원의 손길이 반드시 미칠것을 확신하고 지금 바로 왕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참이였다. 만일 이때 임금의 명경으로 김춘추가 구원하러 오지 않았더래도 유신은 장작더미가 다 타서 재가 식을때까지도 일자 설교를 그치지 않았을것이였다.
<유신공 잠간만! 어명을 받고 문희를 구하러 왔소 . 그리고 또 나의 간청이기도 하니 용서해주게.>
<아니, 임금께서 ?>
유신은 짐짓 놀라며 그자리에 주저앉더니 다시 말하였다.
<어명이라 하고 또 춘추공의 간청이라 하니 아니 들을수는 없지만 패가망신시킨 녀자를 어찌 집에 둔단말이요?>
<알겠소, 내가 다 알아서 처치할테니 그만 용서해주게 >
이리하여 문희는 어명에 의 해 구출되고 그후 얼마 안가서 김춘추는 례를 차리여 문희를 안해로 맞이하였다. 왕족출신의 유망한 김춘추와 가락국후예인 유신은 이렇게 처남매부간이 되였다.
654년 봄, 월성공자 김춘추는 마침내 진덕왕의 뒤를 이어 신라 제 29대 임금으로 되고 치마 한폭으로 언니의 꿈을 산 문희는 꿈같이 일국의 왕후로 되였다.
이때부터 김춘추와 김유신은 더욱더 한사람처럼 얽혀지게 되였으니 신라를 위해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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