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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의 견훤
후백제의 시조인 견훤은 경상북도 상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여났다. 본래 성은 이씨였으나 뒤에 견씨로 바꾸었다고 하지만 분명치 않다.
옛날 기록에는 신화적인 요소가 들어있다.
옛날 옛적, 한 부호가 광주 북촌에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무남독녀 외동딸이 있었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행실이 단정하여 동네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느 날 딸은 수심이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아버지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밤마다 자주빛 옷을 입은 어떤 남자가 제 방으로 들어와 자고 갑니다.>
<뭐라고?그게 사실이냐?>
아버지는 기가 막혔다. 아직 시집도 안 간 딸의 방에 밤마다 낯선 남자가 드나든다는것은 보통 일이 아니였다. 만약 소문이라도 퍼지면 집안 망신일뿐만아니라 딸의 장래도 불행해질것은 뻔한 일이였다.
너무 놀란 아버지는 조용히 딸에게 일렀다.
<얘야, 그건 정말 해괴망칙한 일이구나. 오늘 밤 긴 실타래에 바늘을 꿰여 두었다가 그 사내가 또 오거든 몰래 옷자락에 꽂아두어라.>
그날 밤이였다.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다. 날이 밝자 아버지는 그 풀려 나간 실을 따라가보았다. 실은 북쪽 담 밑으로 이어져 있다가 땅속으로 들어갔다.
<정말 이상한 일이구나!.>
아버지는 담 밑을 파보았다. 거기에는 커다란 지렁이 한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그런데 실이 달린 바늘은 그 지렁이의 허리에 꽂혀있었다.
<아니, 이럴수가!>
아버지는 놀라 반쯤 벌린 입을 한참동안이나 다물지 못하였다. 그러나 누가 볼까 무서워 재빨리 흙을 다시 덮었다. 생각해보니 잘못 하다가는 딸의 장래만 망칠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딸의 신랑감을 구하기 시작했다. 마침 마땅한 사윗감이 나오자 서둘러 결혼을 시켰다.
결혼식이 끝나자, 아버지는 사위에게 말했다.
<여보게 사위, 자네는 둘째 아들이니 집으로 갈것이 아니라 오늘부터 내 집에서 살도록 하게나.>
그리하여 사위와 함께 살게 되였다. 세월이 흘러 딸은 잉태하더니 사내아이를 낳았다. 태어날 때의 울음소리가 보통 아이와 달리 크고 웅장하였다.
<음, 이 아이는 예사로운 아이가 아니도다!>
아이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성장하면서 예상했던대로 뼈대가 굵고 기골이 장대했다. 또한 지혜롭고 총명하기가 범상치가 않고 특출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비밀이 없는 법이라, 어디서 어떻에 알았는지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저 아이는 지렁이의 아이래.>
<지렁이 자식이지만 어쩌면 저렇게도 잘생기고 총명할까?>
이 아이는 열다섯살이 되였을 때 스스로 견훤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견훤의 아버지 이름이 아자개였다. 본래 농사를 지었으나 뒤에 상주 사불성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 장군이 되였다. 아자개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용맹과 지략이 출중하여 모두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 중에서도 맏아들 견훤의 지략은 놀랍도록 뛰여났다.
겨훤이 아기때의 일이다. 어머니는 들에서 밭을 가는 아버지의 밥을 갖다주기 위해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기에게 말했다.
<아가야, 아버지에게 점심밥을 드리고 올 테니 울지 말고 놀고 있어야 한다.>
아기는 어머니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것처럼 방긋 웃었다.
<아이구, 우리 아가 예쁘기도 해라
어디선가 종달새가 지저귀고 산들바람이 불어와 봄의 향취를 흠뻑 느끼게 하는 화창한 날이였다.
어머니는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포대기에 싸서 나무그늘 밑에 잠시 뉘여놓았다. 그리고 남편의 점심을 가지고 밭에 나갔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큰 호랑이 한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아기가 누워있는 나무 그늘밑으로 다가왔다.
<앗, 호랑이다! 호랑이가 아기에게 다가간다!>
<이이구머니나,무서워라!>
<어머나, 저걸 어째!>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두렵게 소리치며 후닥닥 도망쳤다. 그것을 본 견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깜짝 놀라 아기가 누워있는 쪽으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이고 맙소사!>
어머니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만 정신을 잃을뻔하였다. 아버지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떨고있었다.
<여보, 어떡해요? 우리 아기가 꼼짝없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되였어요.>
견훤의 어머니는 숨이 막혀 소리조차 제대로 지를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려요.>
견훤의 아버지는 부인을 부축하여 밭도랑에 몸을 숨기고 그쪽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호랑이가 아기를 해치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다가가더니 아기 옆에 비스듬이 누워서 젖을 먹였다. 그 모습이 마치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것과도 같았다.
<원 세상에......., 저런 일도 있다니!>
견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말할것도 없고, 밭도랑에 숨은 동네 사람들도 모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할 뿐이였다.
<호랑이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다니, 저 애는 분명히 보통아이가 아냐.>
<그래, 호랑이 젖을 먹었으니 호랑이처럼 용맹스러운 장사가 될지도 몰라.>
이런 견훤이 장성하자 체격이며 용모가 늠름하면서도 특이했다. 그리고 그 의기는 활달했고 비범했다.
뜻이 큰 견훤은 군인이 되여 서울로 들어갔다가 서남쪽 바다가로 가서 해안 수비의 임무를 맡았다. 밤이면 창을 베고 누워 적군을 기다릴 만큼 그의 기개는 다른 군사보다 월등했다.
그래서 그의 명성은 날로 드높아갔다. 드디여 큰 공을 세우고 무장이 되였다.
신라 진성왕6년 , 몇몇 총애받는 신하들이 엄청난 세도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라의 질서는 한없이 문란해졌고 백성들은 고통속에서 신음했다.
<이 썩어빠진 나라에서 더 이상 충성하고 싶지 않다. >
견훤은 이렇게 결심하고 뜻을 함께 할 군사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 달만에 그를 따르는 군사가 5천명에 이르렀다.
힘을 얻은 견훤은 무진주를 공격하고, 스스로 완산 땅에 도읍을 정한 뒤 왕이 되였다. 그러나 드러내 놓고 왕이라고는 하지 못했다.
이때 강원도 원주 지방의 도둑 괴수 양길의 세력이 막강했다. 애꾸눈의 왕자인 궁예는 자진해서 양길의 부하가 되였다. 이 소식을 듣고 견훤이 양길에게 무장의 직책을 주었다.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지금의 전주)에 이르자 그 고을 백성들이 열렬히 환영하고 위로했다. 견훤은 자신이 민심을 얻은 것이 즐거웠다.
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말했다.
<백제가 개국한지 6백년만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장군 소정방을 보냈다. 소정방은 수군 13만명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왔다. 이 무렵 신라 김유신은 군사를 몰아 황산을 치고 당나라 군대와 합세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나 현훤은 오갠 분원을 갚을 것을 늘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였으니 도읍을 세우고 그날의 분함을 갚겠다.
그디어 견훤은 후백제왕이라고 자칭하고 완산주에 도읍을 정했다. 왕은 서둘러 관청을 설치하고 공이 큰 사람들에게 벼슬을 내려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932년, 견훤의 신하중에 용감하고 지략이 뛰여난 장군 공직이 태조에게 항복했다.
<그놈이 나를 배반하다니.........여봐라! 당장 공직의 가족을 잡아오너라/>
견훤은 공직의 두 아들과 딸을 붙잡아 다리의 힘줄을 끊어놓았다. 그리고 고려의 예성강으로 들어가 염주, 백주, 진주의 배 백척을 불살랐다. 태조가 운주에 머물러있을때 견훤은 날쌘 군사를 뽑아 공격대를 만들러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려의 장군 유금필이 굳센 기병으로 견훤의 공격대를 쳐부셨다.
공격대의 실패는 견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웅진 이북의 30여개 성이 소문을 듣고 자진 항복을 했고, 견훤이 특별히 아끼던 종훈, 지겸, 상봉, 최필 등도 태조에게 투항했다.
<으음, 이래서는 나라의 장래가 위태롭다. 우선 왕권을 튼튼히 해야겠다. >
견훤은 이렇게 결정한 후 양검은 강주로, 용검은 무주로 나가 고을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고 맏아들인 신검을 금강과 함께 옆에 두었다.
그러자 금강의 형인 신검,용검 양검이 불만을 품었다.
935년 봄, 이찬 능환이 양검, 용검과 짜고 신검을 포섭하여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유페시켰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끼는 금강을 죽였다.
신검은 스스로 임금이 되여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날이 밝기 전에 궁궐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나도록 하라.>
죄수들을 석방한 직후에 신검이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모든 신하들이 입을 크게 모아 만세를 부르며 소리쳤다.
<만세! 만세!, 만세!>
<대왕마마 만만세!>
견훤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대궐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봐라, 이게 무슨 소리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신하가 대답했다.
<아뢰옵기는 황공하지만 부왕께서 연세가 많아 정사에 어두우신지라, 근래에 와서 장자인 신검이 부왕의 자리를 대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든 장군들이 환영하여 축하하는 소리입니다.>
<뭐, 뭐라구?>
견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불끈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내 이놈을 당장..........>
견훤은 밖으로 나오려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신검이 보낸 건장한 군사 30명이 방문을 지키고 있었다. 때문에 견훤은 금산사에 갇혀 임금의 자리를 내놓을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이런 동요가 떠돌았다.
가련한 완산 아이는
아비 잃고 눈물 흘리네.
꽃 피고 새 우는 4월의 어느날, 금산사에 갖혀있던 견훤은 자신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에게 술을 마시고 취하게 했다. 그런후 금산사를 탈출했다.
태조와 심하게 대립을 했던 견훤이 아들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갇혀있다가 탈출하자, 태조에게 사신을 보내 그의 신하가 되기를 간청했다.
태조는 흔쾌히 견훤을 맞이하여 주었다. 태조는 견훤의 나이가 10년이나 위라고 하여 상보라 부르며 좋은 집에서 편히 지낼수 있게 했다.
견훤은 태조의 온정으로 노비까지 거느리고 풍족하게 지냈지만, 아들들에게 왕위를 빼앗긴 울분때문에 울화병이 날 지경이였다.
<이놈들, 내 그냥 두지 않겠다.>
견훤은 이를 빠득빠득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후백제의 신검 밑에는 견훤의 사위 영규가 무장으로 있었다. 그는 신검이 왕위를 찬탈한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아내에게 넌지시 말했다.
<중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했소. 그런데 어찌 신검 같은 반역자를 섬길수 있겠소. 고려에 피신해 있는 부왕을 위해서라도 나는 신검을 응징하려 하오. 이러한 나의 뜻을 고려의 왕에게 전할 생각인데 부인의 생각은 어떻소?>
남편의 말에 아내가 말했다.
<당신의 말이 곧 나의 뜻입니다.>
936년 2월, 영규는 눈보라가 몹시 휘몰아치는 날에 고려로 밀사를 보냈다. 밀사를 통해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자기의 뜻을 적었다.
<신검은 나라의 반역자일뿐만 아니라 부모에게 커다란 불효를 저지른 죄인입니다. 고려의 왕께서 의로운 깃발을 드신다면 저는 안에서 호응하여 고려의 군사를 맞이하겠습니다.>
영규의 이 편지를 받은 태조는 몹시 기뻤다. 밀사를 후히 대접해 보내면서 태조는 이런 말을 전했다.
<만일 장군의 은혜를 입어 나라가 하나로 합쳐진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장군을 형의 예우로 받들어 모시겠소. 나의 이 말은 천지 신명께 맹세하겠오.>
견훤은 날이 갈수록 분함이 들끓어 올라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해 6월 견훤은 태조에게 나아가 말했다.
<노신이 전하께 도움을 청했던것은 전하의 위엄을 빌어서 반역한 자식을 베기 위함이 였습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 군사를 보내어 반역한 아들들을 섬멸해 주시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태조는 말했다.
<토벌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
태조는 먼저 태자와 장군 슬희에게 보병과 기병10만명을 주어 천안부에 나가 있게 했다. 그리고 9월에 직접 그 군사를 거느리고 후백제를 공격해 들어갔다.
황산벌까지 쫓아가며 공격하자 이에 후백제의 많은 군사와 장군들이 항복했다. 그러자 신검은 더 이상 대항하지 못하고 능환 등 40여명과 함께 항복하고 말았다.
태조는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포로가 된 그들을 위로하여 처자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능환과 신검은 앞에 꿇어않지고 추상같은 호령을 했다.
먼저 능환을 보고 소리쳤다.
<네 이놈! 네가 양검과 더불어 모의하여 대왕을 가두고 그 아들을 왕으로 세운것은 천인공노할 죄악이니라. 어찌 신하된 도리로 그럴수 있단 말이더냐?>
태조의 엄한 호령에 능환은 고개를 푹 떨구고 대답을 못했다.
<능환의 목을 베거라!>
능환은 날카로운 칼에 맞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죽었다.
<신검은 듣거라! 너는 남의 협박을 받아 왕이 되였고 , 또 항복하여 죄를 빌었으니 사형만은 면해주노라. 이제부터라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참되게 살도록 하여라.>
아들 신검의 죽음을 보지 못한 견훤은 울화병이 생겨 자리에 눕게 되였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등창까지 났다. 그런지 수일만에 견훤은 황산의 절간에서 최후를 마쳤다.
태조 19년 (936)9월 8일에 한을 품고 세상을 뜬 견훤의 나이는 7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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