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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싱 페이퍼
잘 마른 잎사귀가 바스락거리며
나를 읽네
몇 장 겹쳐도 한 장의 생시같은
서늘한 바람 뒤편
달처럼 떠오른 내가 텅 빈 아가리 벌리네
지루한 긴긴 꿈을 들여다 봐 주지 않아
어둠이 흐느끼는 밤
백태저럼 달무리 지네
일순간 소낙비
가로수 이파리 눈꺼풀이 축축하게
부풀어 오르고
거리마다 지렁이가 흘러넘치네
아아 무서워 무서워
깨진 잠처럼 튀어오른 보도블록
불거져 나온 나무뿌리
갈라진 혓바닥이 배배 꼬이네
비명이 목젖처럼 달라붙어 꿈틀대네
나는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 싶지만
손금이 보이지 앓는 손
금밟지않기 놀이 하듯 두 다리가 버둥대네
두 동강 난 지렁이 이리저리 기어가고
구름을 찢고 나온 투명한 달
내 그림자는 여태도록 나를 베끼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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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이
1976 서울 출생. 서울여대 및 명지대 문창과 졸업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 시작. 시힘 동인.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속에는] [ 독한 연애 ] 가 있다
감상.
기름종이는 기름을 먹인 종이. 기름과 종이가 한몸이 된 종이.
그것은 제 자체가 용도가 아니다. 대상을 투영시키거나 비추는 용도다. 화자는 기름 종이가 되어 자기의 내면 위에 몇 겹으로
얹혀져 있다.
기묘하고도 재미있는 이 놀이는 소낙비 내린 거리로 표현되어
자기와 거리가 묘하게 뒤섞여 있다.
묘사와 상상이 뒤섞인 이 상태의 풍경을 묘한 거리로 그려낸다.
내 그림자가 여태도록 나를 베끼고 있다는 것,
이 마지막 행이 시를 중층구조로 만들었다.
소낙비의 순간을 잡아 채 트레이싱 페이퍼로 바꾸는
시인의 역동적 상상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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