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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시 묶음
2019년 11월 30일 11시 54분  조회:1969  추천:0  작성자: 륙도하

 중고가전 수거 차량처럼

 신용목

   비온 뒤 지구는 커다란 비눗방울 속에 갇힌 것 같다. 울고 난 뒤 너는 너만큼의 비눗방울 속에 갇힌 것 같다.

  차 마실래?
  아니,
  아무도 저어주지 않아서
  물고기는 어항 속을 저 혼자 빙빙 돈다.

   물고기는 녹지 않는다.
  아픈 사람의 입술에 물려주는 젖은 헝겊처럼 빨래가 널려 있다. 빨래는 어항 같다. 아무도 마시지 않는다.

  소리가 들린다. 차들이 왔던 길을 가는 소리.
  물속처럼,
  너는 오후를 조용히 보낸다.
  후후, 불며 졸음이 졸음을 마시는 동안에도 옷은 조금씩 빨랫감이 되어간다.

  책을 펼치고 어떤 문장도 읽지 않는다.
  그래도

   책 속에는 사랑이 있다. 이야기는 사막이거나 바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폭풍우를 건너는 낙타가 있고, 죽어버릴 거야. 문을 쾅, 닫고 나가서는 어느 모퉁이 식당에서 국수를 삼키는 순간이 있고
   책 속에도,
  책처럼 조용한 사람이 있다.
  끝.

  창문을 닫으려고 창가로 간다.

  너머엔 학교가 있다. 여름이 운동장에 물길을 만들고 사라진 뒤 아이들은 다시 빗방울처럼 돌아올 것이다. 팔, 구, 사, 오, 전화번호를 크게 알리며 중고가전 수거 차량이 지나간다.

  어항은 식었다.


 

나도 가끔 유리에 손자국을 남긴다

          신용목

우럭이 관 속에 누워 있다
몇 마리 우럭들, 우럭의 영혼으로 헤엄친다 산 것들이 죽은 것의 영혼인 물속
연기의 문장으로 맴을 돈다

한생이 무덤 속이었던 우럭
물속에서 타 죽은 우럭
나도 가끔 창밖을 본다 철 지난 부음처럼 낙엽은 날아와 부딪치고 흘러내리는
손자국, 한 칸씩 허공은 투명하게 질러놓은 관짝들이다
가을은 눈부시게 출렁이는 공동묘지
물살이 씻고 가는 비문처럼

나도 가끔 방 안을 맴돈다
문 없는 집을 세워놓고 무섭게 달려 나가는 추억들이
몸 여기저기를 찢어놓을 때

문이 없어 그 자리 뒤집히고 마는 마지막,
죽음은 육신만을 거두어가므로
나는 아무도 읽지 못할 문장
당신의 영혼으로 눕는다

활활 타는 장작의 머리카락,
어떤 죽음은 쏟아져야 한다 몸에서 풀려나는 연기처럼
삶이 딛지 못한 곳으로
인근 재개발 문 없는 노장에서
나는 벽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 날의 도시, 문학과 지성>


 

절반만 말해진 거짓 /  신용목
   

  이제 놀라지 않는다

  새가 실수로 하늘의 푸른 살을 찢고 들어간다 해도

   

  그것은 나무들의 짓이라고

  오래전 내가 청춘의 주인인 슬픔에게 빌린 손으로 연못에 돌을 던졌던 것처럼

  공원 새들을 모조리 내던지는

  나무들,

  서서 잠든 물의 무덤들

   

  저녁의 시체들

  가을이 새의 울음을 짜내 신의 예언을 죄다 붉게 칠했으므로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그날, 마지막으로 던졌던 반지의 금빛 테를 가진 달빛조차도

  손목을 그은 청춘의 얼굴로 늙어가니

  집으로 돌아가

  최대한 따뜻한 밥을 하고 뭇국을 끓여 상을 차리고

  마음을 지우고 나면,

  남는 자신을 앉히고

   

  눈에서부터

  긴 눈물의 심을 빼내기라도 한다면 구겨진 옷가지처럼 풀썩 쓰러질 자신을 향해

  밥그릇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로,

  걸어가거나

   

  형광등 빛을 펴 감싸주며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

  온몸 뜨거운 물에 흠씬 적신 뒤 뿌옇게 김 서린 거울을 훔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네 몸이 아프다

  네가 내 몸을 앓듯이

  그러니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가 있어서

   

  물끄러미 나라고 이름 붙인 장소에서 가여운 새들을 울음 속으로 날려보내며

  중얼거린다

  절반만 거짓을 믿으면

  절반은 진실이 된다고,

  어쩌면 신은 우연을 즐기는 내기꾼 같아서 하나의 운명에 보색을 섞어 빙빙 돌린다

  그러나

   여름을 윙윙거리던 공원의 벌들도 열매가 꽃의 절반을 산다고 믿지 않는다

  꽃이 열매의 절반을 가졌다고도

  믿지 않지

  다만 우리가 별들의 회오리 속에서 청춘을 복채로 들었던,

  모든 예언은 절반만 말해졌다는
   
  그리고 그 나머지를 실현하기 위하여 삶이 아프다는 것

  이제 놀라지 않는다

  모든 나무가 지구라는 둥근 과녁을 향해 날아든 신의 화살이었다 해도

  우리가 과녁의 뚫린 구멍이라 해도,

  뽑힌 나무라 해도

   

  나무는 자신의 절반을 땅속에

  묻고 있으므로,

  내가 거울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자신의 목을 조르는 밤을 견디는 것처럼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중에서





 

공동체

신용목


내가 죽은 자의 이름을 써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내가 그의 이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오늘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으니
나의 이름은 갈수록 늘어나서, 머잖아 죽음의 장부를 다 가지고

나는 천국과 지옥으로 불릴 수도 있겠습니까?

저기

공원에서 비를 맞는 여자의 입술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면, 기도도 길을 잃고
바닥에서 씻기는 꽃잎처럼 그러나 당신의 구두에 붙어 몇 발짝을 옮겨가고……

나는 떨어지는 모든 꽃잎에게 대답하겠습니다.

마침내 죽음의 수집가,
슬픔이
젖은 마을을 다 돌고도 주인을 찾지 못해 누추한 나에게 와서 잠을 청하면,
찬 물이 담긴 주전자와
마른 수건 하나,
나는 삐걱거리는 몸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목소리로 물을 수 있습니다.
더 필요한 게 있습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달라고 할까 봐.
꽃 핀 정원에 울려퍼지다 그대로 멈춰버린 합창처럼, 현관의 검은 우산에서
어깨 위에서…… 빗물처럼
뚝뚝,

오토바이와 회색 지붕과 나무와 풀

위에서

망각의 맥을 짚으며
또,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울까 봐.
그러면 나는 멀리 불 꺼진 시간을 가리켜 그의 이름을 등불처럼 건네주고,
텅 빈 장부 속에

혼자 남을까 봐. 주인 몰래 내어준 빈 방에 물 내리는 소리처럼 떠 있는

구름이라는 물의 영혼, 내 몸속에서 자라는 천둥과 번개를 사실로 만들며

네 이름을 훔치기 위해

아무래도 죽음은 나에게 눈을 심었나 보다, 네 이름을 가져간 돌이 비를 맞는다.
귀를 달았나 보다, 돌 위에서 네 이름을 읽는 비처럼,
내가
천국과 지옥을 섞으며 젖어도 되겠습니까?
저기
공원을 떠나는 여자의 붉은 입술처럼, 죽음을 두드리는 모든 꽃잎이 나에게 기도를 전하는……
여기서도

인생이 가능하다면, 오직 부르는 순간에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사랑이 가능하다면,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그를 내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서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등


ㅡ시 노트ㅡ


공동체의 전문을 대하면
우리가 실존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지구는 우리가 상상할 수없는  슬픔들이
떠다닌다 만약 우리가 수십억 지구인의
비애를 피부로 다 느낀다면 우리는 잠시라도 웃음을 짓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슬픔의 숙주로 기생하는가  한생이란 잠시
일었다가 꺼져버리는 미풍처럼 덧 없고
허망한 것이리라 단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으므로 몇십년이란 시간의 뒤를 체험적으로 인식하지 못할 뿐
우리는 시시각각 슬픔이란 매개물 속으로
침몰하고 있으며 종국엔 이생의 모든 슬픔의 단어들 수집하고 떠날 것이다


내가 죽은 자의 이름을 써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내가 그의 이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오늘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으니
나의 이름은 갈수록 늘어나서, 머잖아 죽음의 장부를 다 가지고

나는 천국과 지옥으로 불릴 수도 있겠습니까?

             ㅡ 공동체 전문부분ㅡ

어쩌면 우리의 이름은 이미 오래전 죽은 자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름은 단지 사자의 석자 이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사실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 슬픔으로 죽는다 시인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현상에  담담하게  질문하고 있다

/내가 죽은 자의 이름을 써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내가 그의 이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이미 수많은 사람이 사용했고 앞으로도
사용하게 될 수 밖에 없는 현상을 이름이란 단어 속에 모두 집어 넣고 그 이름을 가져도 되겠느냐는 역설적 방법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며 상상하게 사유하게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한다 또한 시인은 그 질문을 통하여
인간이 가진 숙명적 이름을 환기시키고 소환하며 우리의 생각을 묶어 두고
있는 것이다


저기

공원에서 비를 맞는 여자의 입술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면, 기도도 길을 잃고
바닥에서 씻기는 꽃잎처럼 그러나 당신의 구두에 붙어 몇 발짝을 옮겨가고……

나는 떨어지는 모든 꽃잎에게 대답하겠습니다.

마침내 죽음의 수집가,
슬픔이
젖은 마을을 다 돌고도 주인을 찾지 못해 누추한 나에게 와서 잠을 청하면,
찬 물이 담긴 주전자와
마른 수건 하나,
나는 삐걱거리는 몸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목소리로 물을 수 있습니다.
더 필요한 게 있습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달라고 할까 봐.
꽃 핀 정원에 울려퍼지다 그대로 멈춰버린 합창처럼, 현관의 검은 우산에서
어깨 위에서…… 빗물처럼
뚝뚝,

오토바이와 회색 지붕과 나무와 풀

위에서

망각의 맥을 짚으며
또,
보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울까 봐.
그러면 나는 멀리 불 꺼진 시간을 가리켜 그의 이름을 등불처럼 건네주고,
텅 빈 장부 속에

           ㅡ 공동체 전문부분ㅡ

위  전문의 모든 것을 대변 하듯이 시인은 묻고 있다

/나는 천국과 지옥으로 불릴 수도 있겠습니까?/ 

그리고 시인은

/그러나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위 구절로 부정의 대비를 통해 긍정적 추론을
대입하며 또한 달관적 체념을 바탕에 깔고
반어적인 해답을 제시하며 우리가 가진 정서에 시인의 시적 자아의 태도를 반영시키며 공감을 끌어가는 것이 이 시의 특징으로 보인다 또한
시인은 삶과 질곡 속에서 파생된  슬픔이란 모든 이름을 맥박을 소멸과 진통 그리고 필연적 결과물로 인식하고 한 편의 깊은 서사를 시인의 독특한 구도를 빌려 나와 너
우리 모두를 공동체란 틀 속에 유입시키면서
시적 긴장감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한장면 한장면의 영사 속으로 몰아가
인생이란 광범위한 문제에 대해 우리 자신들에게 그 명암의 앞면과 뒷면을 뒤돌아
보게 하고 있다


인생이 가능하다면, 오직 부르는 순간에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사랑이 가능하다면,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그를 내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ㅡ 공동체 전문부분 ㅡ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이 생의 우리의
모습을 한없는 연민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온통 슬픔 밖에 없는 세상에 노출된 모든 이름에게

/사랑이 가능하다면,
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라고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이 시대의
자화상들에게 치유와 사랑의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오늘 신용목의 공동체 시  한 편을 읽으면서
삶이란 참 슬픈 노래가락이다
그것도 한소절의 짧은 노래
인간은 그 누구도 원초적으로 슬픈 짐승일 수
밖에 없으며 한없이 사랑하며 살아가기도 부족한 유한의 시간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그러므로 다 같이 슬픈 짐승들끼리
부둥켜 안고 얼싸안고 미워하지 말고
신이 인간을 용서 했듯이 우리도 늘 용서하며
살자 미워하고 사는 일이란
우리를 더 슬픈 짐승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나는 누구를 미워
한 적은 없나 싶어서 이 밤 저 반짝이는 별빛들에게 구원처럼 용서를 구한다[문정완]



0시의 자오선

신용목


  어제는 병실에서 자정을 맞고 오늘은
  가로수 스치는 차창 안에서
  자정을 지난다

  그때, 휘익 내 몸을 긋고 간 것
  어제와 오늘 사이

  1초와 1초 사이, 나를 갈라놓는 것 ─ 별자리를 긋고 간 것

  바람이 수북이 털을 깎는다 태양의 성기에서 쏟아지는 등고선 휜 능선 하나가 취한 망나니

  단칼로 떨어지는 0시의 자오선,
  이별은 그렇게 온다 죽음은
  그렇게 0시

  나와 나 사이의
  별과 별 사이의

  발자국마다 그 주인의 키로 서서 바람은 물끄러미 스러지는 순간들을 바라본다, 추억의 처형장인 몸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우주의 낱장이여, 안녕
  시간의 단면이여 문을 닫는다 침대는 도마처럼 반듯하다 문짝과 문틈으로 누워
  가만히 어둠 속에서 입을 벌린다

  물속에서 물풍선을 터뜨리듯 ─ 내 속의 어둠을 풀어놓는다

  아무래도 나는 부활할 것 같다

시집 《아무 날의 도시 중에서》


ㅡ시 노트ㅡ


시를 올려놓고 시간관계상 이 시는 시노트를 작성해야지 하면서 작성하지 못했다 조금 시간의 틈을 내서 늦게 시노트를 매단다

신용목시인은 거창출신의 시인이다
전형적인 농경사회에서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좋은
산과계곡 그리고 당시의 농경사회의 가난한
환경을 바라보며 체험하며 자라났다고 보인다 그러한 환경적 요소들이 이시대에 좋은 시인을 만드는데  좋은 토양으로 역활을
하며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0시의 자오선은 한 행성을 발자국을
추적하며 시인 특유의 작법과 감각적
언어로 시를 짜고 있다
신용목시인의 시집에서 시어를
잘 살펴보면 옛날에는 많이 사용했는데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언어들로 시를 바느질 한다  한편의 시에
보통 한 서너개쯤의 시어들이
정말 시의 몰입도
를 높이고 독자를 시 속으로 흡수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필자를 자처하는 나도 신용목의
그러한 점에서 매료되기 시작했고 그에게 대책없이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젊은 시인인데 어떻게
그러한 시어들을 알고 적절하게 시의 영역으로 그 시어들을 데려와 조합을
하는지 그만의 언어로 시를
조탁하는 솜씨는 그가 정말 진짜 시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발자국마다 그 주인의 키로 서서 바람은 물끄러미 스러지는 순간들을 바라본다, 추억의 처형장인 몸

                        ㅡ0시의 자오선 전문 중ㅡ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오선을 가진 행성이다
그리고 인간은 추억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다
0시의 자오선은 한 행성의 궤도를 추적하며
명암을 그려놓고 있다 행성은 그 행성의 고도와 궤적에 따라 그 빛의 명암은
극명할 수 있다

한국문단에 걸출한 젊은 시인들이 요즘 많다
문학도로서 좋은 시인들이 많다는 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또한 문학도로서 좋은 경쟁자가 있다 좋은 스승이 있다는 것은 진정 행복한 일이다 생각한다
또한 내가 넘어야할 벽이 있다는 것은
좌절이 아니고 온전한 기쁨이다
아직 이름없는 늦깍이 문청에 지나지 않으나
벽이 있어서 나는 늘 행복하다
아무래도 나는 부활할 것 같다[문정완]



산책자 보고서

신용목


  어쩌면 허기진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지붕의 망치질 소리로 비가 온다 지붕을 뚫지 못해 빗방울은 대신하여 빗소리를 집 안으로 내려보낸다

  이제는 그만 굴러 떨어지고픈 그림자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 비탈의 오래된 집

  끓는다는 말 속에는 불꽃의 느낌이 숨어 있다 비 오는 날 지붕이 끓는 것처럼 냄비 바닥의 불꽃 속에 숨어 있는 빗소리의 느낌을 라면 가닥으로 삼킨다는 말 속에는 또 비처럼 흘러내는 몸의 느낌이 있다

  나의 몸은 비를 대신하여 집 안에 고여 있다

  나는 비의 느낌으로 숨어 있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한사코 지붕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지운다 바닥에 누운 나는 한사코 바닥에 차는 빗소리를 지운다 빗방울의 시간은 빗소리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빗소리의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더 멀리 있어서 나는 온통 허기일 뿐 하루는 그 간격을 오가는 시간으로 더 먼 곳의 시간들을 지우고 있다

  산책은 자전의 느낌이다 하루를 대신하여 라면을 먹고 나는 나를 지웠다 시간의 반대편으로 뻗는 그림자로부터 간신히 몰락을 지우는 망치질까지

  나는 모든 말의 느낌으로 살아 있다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서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등


ㅡ 시 노트 ㅡ


신용목시인은 한국문학계에 주목 빋고 있는 대표적인 젊은
시인 중에 한사람이다 대체적으로  이미지와 이미지를 조합하여 시를 직조하는  방식이 촘촘하면서도 맥놀이가 긴 울림통을 가지고 있다

신용목 시인의 시  편들은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렵고 다양한 시적 이미지를 연결고리로 사용하여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설계 방식으로 시의 구조물을 설계한다 독자에게 시인의 시는 강력한 문학적 마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지구의 소유자가 아니고 잠시 산책을 나온 한시적 인 관람객에 지나지 않는다 하는 지점에서 이 시는 발아를 시작한다

유한적 존재론의 모퉁이에서 산책자라는자아를 통해
그 자아의 정서와 충돌하는  현실세계와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삶에 대한 노래를 빗소리와 비 망치질 지붕
기울어져가는 집 등등의 상징적  언어들로 재구성 재편성하여 신용목만의 시세계를 펼치고 있다

산책자 보고서는  인간의 유한적 존재론에서 파생하는
유물론적인 변증법을 기반으로 절제된 언어 그리고 심층적이고도  감성을 흔드는  시어들과  비유를 통하여 삶의 그늘을 들추고 내면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나는 오늘 모든 말의
느낌으로 살아있다 / 결구의 마감질은 역설적으로 고난의
실체를 통해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세계의 체감 온도를 대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구별의 산책자다  산책자 보고서 시 한편을 통해서 내안에서 범람하고 있는 부호들과 자주 조우한다
[문정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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