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 -> 좋은글 -> 펌글
나의카테고리 : 좋은 시
'사실주의적 기법의 시상'
시를 대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마음가짐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어떤 형식의 것이든지, 머리이든 마음이든, 때론 가슴이든 시를 대하고 접하는 신체의 부위가 다르다.
위의 시를 조탁한 시인의 마음이 어떤 상태였는지 다소의 궁금증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물론 시인의 객관적이고 사실적 관찰이 극도로 예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몹시 곤궁한 노후의 한 인물을 통해서 얘기하려고 했던 의지가 없지는 않았겠으나 그게 아주 차가운 체온으로 느껴졌다. 시인의 너무나 사실적인 관찰 탓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고 있다.
시인의 관찰 대상이 된 노구를 일상의 주변에서 발견하는 일은, 사실 아주 사소하리 만큼 쉬운 일이다. 그 노구들의 모습은 사시사철 조석과 주야를 가리지 않는다.
그들을 목도하는 일은 결코 마음 가벼운 일이 아니며 여럿의, 몹시 무거운 상량을 불러 일으키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런 옛말이 지금도 공감을 받을지 알 수 없다. '곤궁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을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어릴 적 부터이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알쏭달쏭한 말이다.
서양의 학문에서는, 특히 경제학에서는 숱한 논란과 처방이 거듭 제시되어 왔다. 실패의 경험이 반복됐다는 의미이다. 거울이라는 역사가 비교적 정확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실패와 성공의 사례를 말이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다.
세상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정치라는 이름으로 백성, 또는 국민, 시민 특히 인민들을 속이고 수탈하고 지배한 사기꾼들이 적지 않았다. 정치인이라고 불리는 정상배들과 이들에 빌붙어 곡학아세를 목숨처럼 여기는 책상물림들이 그들이다. 현재도 바뀐 것은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구부러진 골목'처럼 노구의 '각'을 지게한 게 어찌 세월, 그 뿐이겠는가. '야윈 뼈 마디'를 삐걱대게 만든 게 어디 세월과 비탈진 골목 뿐이었을까.
저녁, 노구를 차갑게 사실적 수법으로으로 조탁하여 그려낸 화폭 같은 시를 읽는 속내가 솔직히 편치 않다. 시인의 따듯한, 살가운 온기를 느끼고 싶은 까닭이다.
펌 글 ㅡ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