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월 16일)은 항일저항시인 윤동주가 일제감방에서 생을 마감한지 72돐이 되는 날이다. 또한 올해는 윤동주의 탄신 100돐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72년 전 일제감방에서 28세의 젊은 나이에 옥사한 시인의 육신은 고향 룡정에 묻혔어도 그 넋은 우리와 함께 하면서 무한한것을 깨우쳐주고있다.
누군가 “세익스피어는 시대가 없다”는 말로 위인이 창출한 문학정신의 영구불멸을 함축성있게 정리한바 있다. 민족수난기 겨례의 비극을 뼈저리게 아파하고 이를 극복할수 있는 힘이 자기에게 없음을 부끄러워한 윤동주의 순수한 정신, 반성의 자세는 일제식민지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겨례의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세계 기타 민족의 명인들과 마찬가지로 윤동주는 연변의 자산임과 동시에 겨레의 공동한 문화재부로서 그가 부각시킨 불멸의 정신적 유산은 지역을 넘어 민족과 나라, 더 나아가서 세계 평화애호인민에게 속한다.
고금중외에 자국의 력사문화명인을 초개처럼 대한 나라는 없는 줄로 알고있다. 자국인이 아니더라도 일단 자국운명에 적극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결코 “홀대”하지 않고 자국력사에 기록돼온 사례는 많고도 많다.
몇년전 19세기 저명한 작가 고골리의 탄생 200주년에 즈음 하여 로씨야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 사이에 고골리의 나라귀속 문제를 두고 치렬한 론쟁이 벌어졌었다. 고골리가 우크라이나 에서 태여났고 우크라이나에서 생활했으니 당연히 우크라이나 작가라는것이 우크라이나측의 태도였고 고골리는 로씨야어로 집필하고 로씨야어로 사고하였으니 백퍼센트 로씨야작가라는게 로씨야측의 주장이였다. 구쏘련이 해체되기전에는 전혀 문제시 되지 않았던 이슈다. 결국은 두 나라에서 각자 자기“유산”으로 표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고골리 나라귀속이 어떻게 변했던 그가 19세기 저명한 비판적사실주의 문학정초자로서의 세계적지위, 그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문화콘텐츠내역은 변한게 없다.
윤동주도 가끔 나라귀속론란에 휩싸일때가 있다. 장장 150 여년이라는 중국조선족이민사에 대한 료해가 전무하거나 삐뚠시 각을 가진 일부 이방국학자들이 윤동주가 처했던 일제식민지 력사시기 민족수난의 생태를 도외시하면서 상식을 벗어난 이른 바 윤동주 “국적반환싸인” 헤프닝까지 벌리여 우리 나라 학자들 의 빈축을 샀던적까지 있다. “헤프닝”은 어디까지나 “헤프닝”일 뿐이지만 우리에게 은근히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생각해본다.
“위인 치고 고립된 산정(山顶)은 드물다. 위인은 련산(连山) 의 정상이다.” 윤동주는 “고립된 산정”에서 우연하게 배출된 인물이 아니라 20세기초 룡정반일항쟁의 피어린 “련산”에서 솟아난 선각자의 한사람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윤동주에 대한 리해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패러다임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윤동주는 28년이라는 짧은 생애에서 21년을 룡정이라는 이 반일항쟁성지에 몸담고 반일계몽교육을 받으며 항일저항시인으로 부상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과정을 차례로 소화했다고 할수 있다. 룡정의 비장한 반일 넋이 윤동 주의 정신을 정화시켰고 시인의 지조와 사상적 뿌리가 고향룡정 에 내려지게 하였다. 어찌보면 일제의 감옥에서 옥사한 시인의 룡정회귀는 락엽귀근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겠는가?
윤동주는 룡정이 낳은 연변의 아들로서 숙명적으로 우리가 정중하게 대해야 할 위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윤동주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초급단계에 머물러있 다는 점이다. 윤동주 발견이 우리가 아닌 일본학자에 의해 지난 8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후 연변문단이 비로서 윤동주에 접근하기 시작했지만 어쩔수 없이 이방국 연구성과에 편중해온 것도 사실이다. 어찌됐던 이는 윤동주고향의 타이틀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수 없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 남의 “입양아”로 전락될수도 있음은 먼 일이 아닐것이다. 일부 이방인들이 벌린 “싸인” 촌극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오지 않았나싶다.
다행스러운것은 소설가 김혁선생이 3년전 대학교교수, 문인 들을 규합하여 룡정· 윤동주연구회를 발족시키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 늦은대로 윤동주연구가 본격적인 흐름을 타고있어 체면을 살리게 되였다. 윤동주살리기, 우리 정부의 힘이 보태 져야할 시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윤동주연구는 문학인들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따라서 조선족에게만 국한된 명인연구가 돼서도 안된다. 윤동주연구가 광범 한 조선족과 기타 민족, 나아가서 아세아 여러 나라 학자들의 폭넓은 관심, 동참, 성원과 이어졌을때만이 윤동주정신의 탈지역 세계화의 가치성이 증폭될수 있다.
올해는 윤동주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윤동주의 고향 룡정이 세계 윤동주연구의 구심점으로 돼야 함은 당연지사인줄 안다. 시인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연구작품활동, 연구포럼, 각종기념이벤트가 탄력을 입으며 윤동주생가기념관, 명동기념 관을 비롯한 룡정의 관련유적지건설이 세계적인 눈높이에서 재검토, 재기획, 재정리되면서 명실공히 정신적 품위가 돋보이고 문화적 향기가 그윽하며 새로운 비전이 꿈틀거리는 거창한 윤동주연구전시체험공간으로 재건되리라는 소망을 가져본다.
연변일보 201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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