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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2015년 04월 03일 11시 35분  조회:2764  추천:1  작성자: 行者金文日
  오늘은 음력 이월 십팔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날이다.
오늘따라 청명을 맞아서인지 봄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밤새 봄눈이 가득 내렸다.
 부처님 열반날은 예수님 오신 날과는 달리 선물을 주고 받는 명절 분위기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장엄하고 숙연한 분위기가 나는 이날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벌써 봄이 오는가부다. 봄비가 대지를 적신다. 풍년들 징조이리라. 풍년이 들고 흉년이 드는 어떤 숙명이라는것은 있는것일까?
인간은 숙명을 거슬러 보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정말 숙명이 있는것일까? 숙명이 있다면 어떤것일까?
숙명론자들은 그것을 인정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람의 힘의로 어쩔수 없는것들이 있다.
비행기를 만들어서 자연을 정복하려고 하나 비행기가 언제 추락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명을 연장하려고 갖은 애를 다 쓰지만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그게 숙명이라면 숙명이라고 할수도 있을것이다.
  사랑을 시작하나 사랑이 언제 떠날지도 알수 없다. 그것도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통속에서 산다고 부처님께서 그리 가르쳤을것이다. 만남이 무르익으면 떠나감이 기다린다.
사랑을 심는 계절에 사랑은 떠나간다. 그게 운명의 장난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니면 사랑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집에서 늦은시간까지 컴앞에 앉아 일을 하다가 창문을 여니 시원하고 습윤한 바람이 가슴 가득히 들어온다. 요새는 이것저것 일을 한답시고 멈추어 보지를 못했다. 사람은 가끔씩 휴식하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듯 싶다. 나무베는 나무군에게는 도까나 톱같은 연장을 가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삶에도 휴식하면서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이 필요할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정신을 충전하는 방법중의 하나가 아닐까 ?
  오늘은 왠지 가슴이 많이 아프다. 창문가에 흐르는 빗물처럼 내 맘속에서도 비가 내린다. 멀리 빗속을 걸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저 빗속에서도 가야할 길이 있나부다. 뒤못습이 무척 애처롭다.
부처님은 자비를 품고 오셨고 자비를 실천하셨고 자비를 가르쳐 주셨다. 부처님께서는 삼보에 귀의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말은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의 말씀에 귀의하고 부처님께서 창건하신 승단에 귀의한다는 말이다. 부처님은 그로써 우리에게 인생의 참된 길을 가르치려고 애쓰셨다.
  인간이 그냥 숙명대로 사는것이라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가르침을 주실 필요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숙명을 바꾸고자하는 인간의 노력에 응답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을 따르고자 노력하는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또 엄연히 숙명이 있다고도 한다. 그건 우리가 전생과 금생에 쌓은 업보에 의한 것이라고도 한다.
업에 의한 숙명, 그것은 참으로 무섭고도 자비로운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그것을 벗어날수 있는 길을 부처님께서 오셔서 가르치신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어가신 지금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것을 기록한 경전을 가지고 믿고 따라야한다고 불교에서는 가르치고 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오셔서 설법하시던 시대를 가리켜서 정법(正法)시대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입적하신후 경전을 가지고 공부하는 시대를 상법(像法) 시대라고 한다. 그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그때를 말법(末法)시대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곁을 떠나가셨지만 부처님 계시던 그때를 우리는 생각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숙명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나의 삶, 나의 사랑, 나의 우정, 나의 모든것을 생각해본다. 내가 살아온길과 이제 살아가야 할길을 찾아본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아래층 화단에 심은 꽃나무들이 봄눈에 애처롭다.
문뜩 소시적 아름다워서 기억해두었던 노천명 시인의 시 한수가 떠오른다.

들녘 경사진 언덕에 네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적적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 모를 풀 틈에 섞여
외로운 절기를 홀로 지키는 빈 들의 새악시여
갈꽃보다 부드러운 네 마음 사랑스러워
거치른 들녁에 함부로 두고 싶지 않았다

한아름 고이 꺾어 안고 돌아와
책상위 화병에 너를 옮겨 놓고
거기서 맘대로 화창하라 빌었더니
들에 보던 그 생기 나날이 잃어버리고
웃음 거둔 네 얼굴은 수그러져
빛나던 모양은 한 잎 두 잎 병들어 가는구나
아침마다 병이 넘게 부어주는 맑은 물도
들녘의 한 방울 이슬만 못하더냐?
너는 끝내 거치른 들녘 정든 흙 냄새 속에
맘대로 퍼지고 멋대로 자랐어야 할 것을.....

뉘우침에 떨리는 미련한 손은
이제 시들은 마른 너를 다시 안고
높은 하늘 시원한 언덕 아래 묻어주러 나왔다
들국화야! 저기 너의 푸른 천정이 있다
여기 너의 포근한 갈(葛) 방석이 있다

  국화제(菊花祭)라는 제목으로 된 참으로 처량하고 아름다운 시다. 여성 시인의 자상함과 사랑의 마음이 가득 담긴 시인듯하다. 국화는 국화답게 들에서 살아야 하나보다. 그게 국화의 숙명이라면 그리 살아야 할것이다. 모든 생겨난것은 소멸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언제나 이별을 준비해야한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리라. 그러나 준비하고 있어도 슬픈것이 이별이다.
  아니 모든 이별은 준비를 허락하지 않는다. 인연은 문뜩 왔다가 문뜩 떠나가는 숙명적인 뭔가가 있는것 같다. 그래서 더 슬프다.
아~님은 나를 떠나갔지만 나는 님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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