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것에도 그 깊이가 있다. 그 깊이를 경지라고도 한다. 경지는 마음속 느낌의 깊이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는데도 그 경지가 있다.
어제는 너무 무더운 날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피한다고 거리에 나와 맥주를 마시고 있다. 무더운 여름밤에 야시장을 돌다보면 여기서기서 흥분한 사람들의 왁작지껄 소리가 들린다.
술은 사람을 흥분하게 한다. 술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는 사람들을 가끔씩 본다. 동시에 어떤것이든 그 반대면이 있듯이 술은 인류역사상 가장 잘못된 발명이였을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어찌되였건 술은 발명이 되였고 우리는 그렇게 발명된 술을 마시고 있다.
술을 즐긴다는것과 마신다는것 역시 그 깊이가 다르다.
취하는데도 경지가 있다. 언제나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으로 마구 퍼마시는 사람은 술의 묘미를 모르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술은 얼근히 취하는 미훈(微薰)의 상태가 가장 술의 묘미를 느낄수 있을때다. 얼근히 취했을때는 누구나 의기양양해진다. 이런 얼근한 묘미는 자신감을 동반한다. 단순하고 규칙적인 일상을 벗어날수 있는 멋진 선택일수도 있다. 이러한 자신감이 술을 깨고나서도 이어질수 있다면 술이란 정말 대단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술을 깨는 순간 사람들은 다시 주눅이 들고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우리 마음이 알콜의 흥분상태에서 원상복구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술에 취했다가 깨여나서도 남는것은 있다. 그것은 아마 문학일것이다.
술에 얼근히 취하면 감수성이 예민해져서 현실과 공상과의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창조적인 사고력이 여느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인다. 우리가 잘 아는 당조때 시인 이백이 가장 전형적인 예가 아닐가 싶다. 얼근한 기분에 시흥이 넘치고 얼근한 기분에 불후의 명작을 남긴 사례가 부지기수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 술의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창조적인 심경에 도달하여 필요한 자신감과 넓고 큰 마음이 생겨나는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집집마다 경조사때면 술을 한잔씩 마셨고 풍작을 이루는 추석을 맞아 술을 즐기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면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실때는 그 장소와 때에 맞추어서 마셔야 제격이다.
어떤 작가는 술에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거북하고 딱딱한 공식석상에서 마시는 술은 천천히 한가하게 마음놓고 마셔야 한다. 병자는 적게 마셔야하고 편하게 마실수 있는 술은 점잖게 랑만적으로 마셔야 한다. 마음에 슬픔이 있는 사람은 모름지기 정신없이 취하도록 마셔야 한다. 봄철에는 집뜰로 나가 마시고 여름술은 들로 나가서 가을술은 배우에서, 겨울술은 집안에 들어앉아서 마실것이며 밤술은 달을 벗 삼아 마셔야 한다.>
술이 발견된후 세계 어디에나 술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친구중 누군가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 친구는 나한테 차를 마시는 방법을 가르쳐주면서 술을 끊을 것을 권했던 친구이다. 그러나 술을 끊자고 결심하고 차를 마시기 시작해서 나는 불현듯 차와 술은 서로 다른 종류의 삶의 방식임을 깨달았다. 술은 차를 대신할수 있어도 차는 술을 대신할수 없음을 느낀것이다. 어느 작가가 말했던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차는 세상을 버리고 숨어 사는 사람과 비슷하고, 술은 말에 올라탄 기사(騎士)와도 같다. 술은 좋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차는 조용한 유덕자(有德者)를 위한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술 마실때의 장소와 환경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한다. 옛날 어느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술에 취하려면 알맞은 때와 장소가 있다. 꽃의 빛깔과 향기와 화합하려면 낮에 꽃을 바라보며 취해야 하며, 생각을 가다듬어 깨끗이 하려면 밤에 눈을 보면서 취해야 한다. 성공을 기뻐하여 취한 사람은 그 기분에 맞게 노래를 한절 불러야 하며, 송별연에서 취한 사람은 기분에 곁들어 한 곡조 가락을 뜯어야 한다. 선비가 취했을때는 창피를 당하지 않게끔 행동을 삼가야 하며, 무인(武人)이 취했을때는 무용을 높이기 위해 많은 술을 가져오게 하여 더 많은 깃발을 세우도록 해야한다. 누각에서 술을 마실때는 시원한 바람의 덕을 보기 위해 여름철이 좋으며, 강위에서 베푸는 잔치는 확 트인 자유로운 느낌을 더하기 위해 가을철이 좋다. >
술마시는 진수를다 가르쳐준 셈이다. 그래서 요즘따라 노래방이 흥성하는게 아닌가 싶다. 즐거움을 더하는데는 술 한잔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가락을 뜯는만큼 한것이 없기때문이다. 가을철 소슬한 바람을 맞으며 강가에 배를 띄우고 술한잔 마시면서 인생을 논한다면 그러한 즐거움을 어찌 술마시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해할수 있으랴.
그러나 술도 비난해야할것은 있다. 중국의 술문화에는 더 이상 마실수 없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마시게 하고 좋아하는 악습이 있다.
외국을 많이 돌아다녀 보았지만 여태 중국사람들처럼 술을 떠들썩 마시면서 억지로 권하는 나라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언젠가 사람들이 가득 모인 주연에 갔는데 처음에는 조용히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더니만 한참후 술이 몇순배 돌고나니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소리가 일어나고 술좌석은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한결 주흥을 돋구기는 했지만 너나할것없이 제정신을 잃고 손님들은 큰 소리로 술을 더 가져오라고 재촉을 하고 자리를 떠나기도하고 비꿔 앉기도 하면서 누가 주인이고 주연의 의미가 뭐였던지도 분간이 서지 않는다. 그러다가 끝내는 술마시기 내기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굉장한 주량 자랑과 간사한 지혜와 책략과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를 항복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서로 겨루게 된다. 그러다보면 모두 녹초가 되고 여지없이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한다. 이튿날 서로 만난다 하더라도 얼굴마저 기억나지 않는것이 다반사다.
나는 술은 마시는 사람으로서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교사상으로 가득 찬 우리의 문화를 볼때 술을 권하는 풍토를 다소 이해할수도 있다. 술을 마시고 싶어도 비싼술을 권하지 않으면 마시지 못하는것이 정례였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술을 권할때 비로서 마음놓고 량껏 마실수 있었다. 손님이 사양을 하면 주인은 더 정성껏 권한다. 그렇게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술상이 무르녹고 서로의 관계는 돈독해진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시대가 지나갔다. 술이 귀한것보다는 건강이 귀하고 사람이 귀한시대에 들어섰다.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마시게 하고 그 사람이 괴로워하는걸 보고 즐거워하는 풍토를 없애야 한다.
술은 주량보다도 술이 지닌 신비로운 가치를 존중하는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술을 억지로 권한다는것도 유쾌하고 흉허물없는 친밀한 기분에서 나온 행동으로 그 때문에 술좌석이 흥이 도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단지 먹고 마시는것만을 위함이 아니다. 차례로 음식이 들어오는 사이사이에 이야기도 주고받고 농담도 서로 나누고, 여러가지 비즈니스에 대한 제안도 하면서 우리는 술의 매력에 듬뿍 빠진다. 술한잔 들어가면 우리는 마음을 연다. 서먹하던 사이가 한순간 가까와 짐을 느낀다. 인맥을 만들고 친한 사이를 만드는데는 술만한것이 없다. 유쾌한 즐거움속에 흠뻑 취해서 형님을 찾고 동생을 만든다. 그러다보니 비즈니스도 용의해 진다. 그러나 무턱대고 주는대로 받아마셔서 내 건강을 해치고 매일이다싶이 술에 빠져있으면 인생은 무너진다.
술에도 그 경지가 있는것이다. 술을 마셔야하는 상황을 나는 나름대로 세가지로 나눠어봤다.
적당한 시기, 적당한 장소, 훌륭한 사람들, 이 세가지가 다 구비된 상황에서 술을 마신다면 참으로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깊이 또한 따로 있다. 적당한 시기, 적당한 장소, 훌륭한 사람들과 함게 한다해도 내 몸이 받지 못할만큼 취하게 마신다면 나한테 득될것이 없다. 실수를 연발할것이고 내 건강 내 인생에도 역작용을 놀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술은 폭음하면 안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미훈의 상태가 가장 적당한 양라고 생각한다.
나도 술을 약간하기에 그것이 내 친구의 말대로 도덕적인 약점이될수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그 반면에 약점이 없는 그런 사람은 또한 조심해야 한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신용을 할수 없다. 성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약점이 있을것이다. 그러나 약점을 남한테 보이지 않으려고 억지로 애를 쓰는 사람들은 남한테 자신의 마음을 열지않고 남의 열린 마음만 들여다 보겠다는 이기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많은 책에서 보았겠지만 먼저 마음을 열어야 상대도 마음을 열고 서로 가까워 질수 있는것이다. 약점을 없는척 감추려는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지나치게 냉정해지기 쉬워서 실수라고는 전혀 저지르지 않는다. 그들의 습관은 대체로 규칙적이며 술 마시는 사람보다 생활이 기계적이고 언제나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고 있다.
나도 약간은 이성적인 사람은 좋아하지만 완전한 이성인이란 아주 질색이다. 언젠가 어느집에 초대되여 갔는데 방안은 물론 지나칠 만큼 깨끗하게 정돈이 되여있어서 아무렇게 앉기가 민망스러웠고 또 그 집 식구들은 누구나 단정해서 따뜻한 인정미라고는 찾아 볼수 없는것 같았다. 주인양반이 어떤 종교를 믿고 있다고 술을 마시지 않는단다. 물론 손님이 마실술도 없다. 온집식구가 식전기도를 한다고 그들과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억지로 끼워서 기도를 한다.
손님을 접대함에는 주인의 입장보다는 손님의 입장을 생각하고 나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것이 사람의 살아가는 도리라고 나는 배웠다.
나는 내가 술을 마신다고 해서 술마시는것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너무 근엄하고 완전 무결한 도덕가들과 종교 광신도들, 그리고 감정이 없고 시적인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는 다소 실수도 하고 틀리기도 하면서 술을 마실줄 아는 사람과 어울리는것이 더욱 유쾌하다는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술을 체질적으로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그런 체질을 가지고 태여났다고 해서 힘을 잃을 필요는 없다.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은 현(鉉)이 없는 악기를 켜면서 즐겼다고 한다. 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술을 못 마신다 하더라도 술의 정서를 느낄수가 있다. 그것이 더욱 중요하다.
<글자 한글자도 몰라도 시취를 알고, 기도 한마디 드릴줄 몰라도 신앙심이 있고 한방울의 술도 마실수 없더라도 취한 정취를 알며 암석(巖石)이 어떤것인지는 전혀 몰라도 그림에 대한 정서를 가진 사람이있다.>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시인, 성자, 애주가, 화가와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어느 작가가 말했다.
강태공도 낚시코가 없는 낚시를 고래희(古來稀)가 넘도록 즐겼다고 한다. 그것이 그 사람의 경지인것이다.
술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술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비로움과 결부된, 술마시는 사람의 경지와 함께 한다. 내가 볼때 술을 마실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따뜻한 사람들이다. 지혜롭고 따뜻한 사람들과 함게 인생을 사는것이 무슨 죄라도 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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