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절 옆에는 산을 끼고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다. 여름이면 제법 물이 많으나 가을이 되면 작은 냇물처럼 졸졸 흐를뿐이다. 그 계곡을 따라 산위로 올라가다보면 자그마한 호수가 있다. 아니 호수라기보다는 물웅뎅이라는 편이 더 잘 어울릴것이다. 비록 자그만하지만 제법 깊어서 여름이면 우리 몇몇이 수영도 하고 휴식을 즐기는 곳이도 하다. 가을이 되면 그 물웅덩이의 수면이 많이 낮아져서 무릎을 조금 넘을 정도로 준다. 물가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가득 떠있지만 물속에서 헤염치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숨기지는 못한다. 그 물웅덩이의 옆에는 커다란 바위산이 있다. 그 바위산 옆으로 세가닥의 샘물이 흘러내리는데 아무리 추운 겨울철에도 얼지않는다. 우리절에는 옛날 어느때 놓았는지 알수 없으나 수도물이 연결되여 있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밥을 짓거나 마실물은 전부 이곳의 샘물을 떠오게끔한다. 세가닥 샘물중 두가닥은 호수 안쪽으로 떨어지기에 가을철엔 물을 받지 못하여 한쪽에서만 물을 받아가군한다.
우리 여섯명이 밥을 짓고 음료수로 마시는 물의 양은 많이도 필요없어서 하루에 네댓번만 지게로 날라와도 충분하다. 우리는 절에서 규칙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각각 나누어서 한다. 나는 매일 우리들의 마실물과 공양음식을 지을 식료수를 길어야 한다. 삼시공양은 오정사제가 주로 했고 오공사형은 절안의 청소를 맡았다. 오진은 아직 어려서 땔감이나 주어오면 된다. 그런데 가장 쉬울것 같은 그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 여럿이 여가가 있으면 서로서로를 돕지 않으면 안된다. 가을이 되기전에 나무들을 많이 해와서 창고 옆 담벼락을 따라 가득 쌓아놓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일과처럼 되여서 계속 주어다 쌓는다. 가끔 산에 폭설이 내릴때가 있는데 그럴때 땔나무가 준비되여 있지 않으면 진짜 얼어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삶에는 항상 준비하고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풍요로울때 준비하고 있어야 위기가 왔을때 비로서 잘 헤쳐나갈수 있다. 수행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정진을 많이 해야지 죽음의 임박에 닥쳤을때가서 부처님께 매달린들 무슨 소용있겠는가.
<금강경> 공부를 하다보면 하나,둘 모르는것이 생기기 시작하던데로부터 전체를 이해할수 없게 된다. 모르는것이 당연한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배우고 공부하는것이다. 처음 경전을 공부할때 나는 <금강경>을 번역하신 분들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생각을 할때가 많았다. 경,률,장 세가지를 기본적으로 소화하지 못했다면 번역이 어려웠을것이지만 더 중요한것은 반야바라밀을 이루지 못했다면 진짜 번역을 할수 있었을까 의문이 갔다.
스승님이 내가 아주 어릴적 <금강경>에 대해서 강해하시면서 말씀하실때 금강이라는 금강은 금강석이라는 금강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금강석이란 무엇입니까?’ 물어보니 ‘금강석은 다이아몬드라고도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이다.’라고 하셨다. 당시 다이야몬드를 구경도 못한 나는 금강석은 그냥 아주 단단한 돌멩이 정도로 상상을 했다. 물론 나는 지금도 진짜 금강석을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이제는 사진으로나마 보아서 금강석이 어떤 금속인지 대충 알만하다. 금강석으로 만든 칼은 모든것을 벨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법을 벨수 있고 또 모든법을 이룰수도 있는 최고의 경전이라고 하여 금강반야바라밀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우리가 보통 보는 <금강경>은 구마라집의 번역본인데 어떤 번역본을 보면 그 앞에 능단”能斷”이라고 번역한것도 있었다. 모든걸 끊을수 있다는뜻으로 그렇게 번역하였을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를 끊고 성불할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된것이다. 가능하게 구마라집은 번역하면서 경전안에 이미 그 끊는다는 뜻이 포함되였다고 생각하여 경의 이름에 그 두글자를 넣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반야는 지혜임을 다 잘 알듯이 바라밀 이란 대안(피안-彼岸-강의 저쪽언덕 즉 지혜의 언덕)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경전을 보면 경명(경의 이름)의 마지막끝에 ‘다’자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다 라고 읽는것이다. 몇번 써서 올린 내글의 댓글 읽어보면 뒤에 꼬리말을 다는 분들이 마하반야바라밀’다’ 라고 써놓은걸 볼수가 있었다. 우리가 읽는 260자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어떤 사람들은 그냥 줄여서 ‘다심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유기를 읽어보면 손오공사제가 오조선사를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오조선사가 당삼장에게 가르쳐준 경이 바로 이 ‘다심경’이다. 서유기에서 앞의 마하반야바라밀이란 글을 빼버리고 그냥 ‘다심경’이라고 부른데서 우리도 쉽게 그냥 다심경이라고 부르는것이다.
금강경을 번역한 요진삼장법사구마라집(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이 없다면 그렇게 우리의 모든 번뇌와 고통을 멸할 이 경전을 언제 접하게 되였을지도 모를일이다. 구마라집의 아버지는 당시 인도의 재상이였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재상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여 스님이 되려고 하였는데 그의 어머니의 반대로 못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당시의 공주였는데 그 재상이였던 남자를 압박하여 환속하게 한후 시집가서 아들을 낳았다. 그가 바로 구마라집이다. 그런데 그 이후 아들을 낳은후 그 공주가 오히려 자신이 출가하려고 했다. 재상인 남편은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다. 스님으로 출가하여 수련하고 있는 자신을 억지로 환속을 시켜 결혼까지 해놓고는 당신이 되려 출가한다니 안된다는것이다. 영화 한편을 찍어도 될만한 스토리다. 어찌됐건 그런 부모의 피를 받아 구마라집이 태여났다. 그는 열한두살때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수 있었다. 서른몇살때 그는 중국에 왔고 당시 중국은 역사상 남북조 시기였다.
당시 중국에서도 이 위대한 학자를 모셔오기 위해서 전쟁을 하여 세개의 나라가 소멸되기까지 했다. 고금중외 역사상 놀랄만한 사건인것이다. 이런 대 법사를 모셔오기 위해서 각나라에서는 모두 최선을 다했고 경제나 정치보다도 그를 청해오는것을 최대 목표로 삼기도 했다. 한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소멸하고 또 다른 나라가 다른 한 나라를 평정하는등 당시 역사를 보면 정말 옛날 사람들이 철학과 인생에 대해 깊이 연구하려했으며 노력도 했음을 보아낼수 있다.
중국판본으로 된 <금강경>을 보면 발원문같은것이 먼저 있다. 요즘 어떤 사찰에서 찍는 <금강경>은 앞의 발원문이나 계송을 지워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그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금강경> 전문을 이해하는데 모두 필요한 의의가 있기때문이다. 첫 계송을 보면 이렇게 되여 있다.
이 계송은 중국의 유일한 여황제였던 무측천이 썼다고 한다. 무측천도 <금강경>을 연구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무측천의 글이라면 그의 경지가 당시에도 상당했음을 보아낼수 있다. 특히는 운하범(雲何梵)계 역시 그가 썼다고 하는데 정말 사실이라면 무측천 여황제의 높은 문학적인 경지를 엿볼수 있는 계기라 하겠다.
雲何得長壽, 金鋼不坏身
復以何因緣,得大堅固力
雲何于此经,究竟到彼岸
愿佛開微密,廣爲衆生說
우리글은 소리글이라서 중국글을 직역한 경전을 읽다보면 암호를 읽는것 같고 머리가 띵하다는 사람도 있다. 특히 우리중 오진이 그런한데 중국글 배우기 싫어한다. 우리글을 배우면 되지 남의 글까지 배워서 뭐하냐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것은 민족적인것과 국가적인 차원을 벗어나서 배워야 한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뜻을 알고 읽은 경전의 효과성을 잘 알것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영원한것이 없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말과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국가와 민족 모두 언젠가는 없어질수 있다. 중국이 더 이상 중국이 아닐수도 있고 대한민국이 더 이상 대한민국이 아닐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그런 깨침을 얻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 이르기 전까지는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 부지런히 갈고 닦는 방법밖에 없다.
앞의 계송에서 물어보았듯이 “雲何得長壽, 金鋼不坏身”이라고 물었다. 즉 어떻게 하면 청정함과 장수와 영생불사를 얻을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본것이다. 우리를 대신해서 그런 질문을 던진것이다. 어떻게 하면 길게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여야만 생명의 영원한 불멸의 그 본래를 찾을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한것이다.
이어서 ‘복이하인연,득대견고력’이라고 질문하였는데 그런 대 견고력(堅固力-굳고 튼튼한 힘)이란 우리 모든 인류가 얻고자 하는 것인데 도대체 어떤 인연이 되여야만 그런 견고한 힘을 얻을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온것이다. 인간세상의 모든것은 완벽하게 튼튼한것은 없다. 견고하지도 않다. 수명도 길지 않다. 기껏살아봐야 백년 이백년이 최고다. 가정, 부모, 자녀, 부부의 사랑 모든것이 견고하지 않다. 언젠가는 헤여지게 돼 있다. 불경에서 많이 나오는 말인데 모임이 있으면 흩어질때가 있다는 말이다. 모일때의 인연이 다하면 우리는 헤여지게 된다. 중국말 속담에는 ‘천하에 끝나지 않는 연석이 없다.’란 말이 있는데 바로 이러한 불교철학에서 나온 속담이다.
오늘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였다가도 어느날인가 또 돈을 잃을때가 있다. 죽으면 가져갈수도 없다. 권리도 손에 왔다가도 언젠가는 또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간다. 튼튼한 집을 지은것 같아도 언젠가는 무너질때가 있다.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 모래성을 쌓았다가 어느 순간 바람에 날려 없어지고 물결에 씻겨 사라지는것처럼 인생의 모든것은 그러하다.
‘雲何于此经,究竟到彼岸’이란 말은 우리가 <금강경>을 연구하여 어떻게 그중의 방법을 찾으며 어떻게 삼계의 고해를 벗어나서 청정하고 항상 즐거움으로 가득찬 극락의 세계를 찾을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마지막 한마디는 부처님께서 그 미묘하고 비밀스런 법문의 문을 열어 우리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하는 뜻이다.
<금강경>을 외울때 32장절로 되여 그 장절에 나누어 외우니 뜻의 이해도 쉬웠고 외우기도 용이했던 기억이 난다. <금강경>의 원시번역에는 장과 절을 나누지 않았다. 장절을 나눈것은 후세의 작품이라고 한다. <금강경>을 최종 삽십이품으로 나뉜분은 중국의 양무제의 아들 소명태자이다. 요즘 중국바람이 불어서 조기 유학을 보낸다고 중국으로 자식들을 보내여 공부시키는 부모님들이 많은데 그렇게 배워서는 현대의 중국어밖에 배워낼수 없다. 장사하고 사업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인 인생공부를 하려면 중국의 고대문학을 배워야한다. 중국문학을 배우려면 근대의 소설보다는 소명태자가 직접 편찬해서 묶은 <소명문선>(昭明文選)정도는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 스승님이 멀리 길떠나실때면 오진의 공부를 나한테 맡기시는데 그만큼 머리 아픈 일이 없다. 오진은 장난이 심하고 뛰여다니기 좋아해서 억지로 쓰고 억지로 외워야만 머리에 넣는 중국글을 배우는것이 좋을리가 없다. 그러나 중국글을 모르면 그 뜻을 설명해줄수가 없어서 나중에 스승님이 돌아오셔서 질문하시면 큰 일 날 지도 모른다.
소명태자가 그렇게 품목을 나누고 분류를 하고 표제를 달아 놓으니 공부하는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그 표제를 단것도 정말 매 장절의 중심과 주제에 맞추어서 해놓아서 내 수준에 오진을 가르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오공사형은 속세의 나이로는 나보다 몇달 이상이여서 사형으로 됐지만 절에 들어온 시간은 나보다 늦다. 그러나 나보다 구족계도 먼저 받았다. 주지스님은 일년가야 한두번정도 법문을 해주시고 대부분 스승님이 직접 강해하신다. 절안밖의 일들도 모두 스승님이 대신 하신다. 그래서 많이 바쁘시다. 스승님을 모시고 절밖에 나가서 일보는 경우는 우리 셋이서 엇바꾸어 다녀오고 우리가 심부름을 다녀올때는 오진을 데리고 나간다. 스승님이 동안거 준비로 서울다녀올 일이 있으시다고 길차비를 하신다. 이번에는 오공사형이 따라갈 차례여서 우리 모두는 부러워했다. 오공사형은 스승님을 따라 서울 두번이나 다녀왔으나 나머지 우리 몇은 서울 구경도 못한 촌중이다.
이제 내일이면 스승님과 오공사형이 서울길로 떠나고 오정사형은 주지스님과 우리의 삼시공양때문에 바쁠것이다. 매일 산에 가서 물을 긷는 일은 이제는 신체도 단련할겸 산천구경도 할겸 참 좋은데 오진을 공부시키는 일에는 걱정이 앞선다.
<금강경>의 제일 첫 장절은 “법회인유분”(法會因有分)이다. 법회를 열게된 인연을 설한 장이다. 내일부터 오진과 <금강경> 공부를 하게 된 인연은 무엇일까? 내가 여기서 이 생을 살게된 인연은 또 무엇이며 인터넷 앞에서 이런 글을 쓰게 된 인연 또한 무엇일까? 의문이 가득 피여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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