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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자부부가 부른 사랑의 노래
2009년 05월 06일 11시 21분  조회:4007  추천:0  작성자: 人和

1962년 상해시 민행구 란평로에서 출생한 장가평은 2살때 부모가 리혼하여 아버지 장대군과 함께 살았다. 1979년 6월 18일 오후, 학교에서 조직한 수영활동에 참석한 장가평은 머리가 수영장의 단단한 세멘트바닥에 부딪쳤는데 선생님과 동학들이 건져서 상해민행구45병원(지금의 상해제5인민병원)에 실어갔다. 검사결과 의사는 “중추신경이 엄중하게 손상을 입었고 경부이하가 전부 마비되여 한평생 다시 일어설수 없게 될것입니다. 만약 회복이 잘 된다고 해도 손가락의 일부분 기능만 가능할뿐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장가평이 페인이 된것을 보고 계모도 모른다고 달아나고 리혼한 생모도 관계하지 않았다. 장가평은 자살하고싶어도 머리만 움직일수 있을뿐 다른 부위는 지각이 없었기때문에 자살할수도 없는 처지였다. 부모도 없고 동무도 없이 장가평은 장장 6년을 입원해있었다.


1983년 5월, 라지오를 통해 중앙인민방송국의 영어학습프로를 듣던 장가평은 영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로부터 그는 이를 악물고 영어를 자습했다.


1986년 7월, 장가평은 치료비용을 이어댈수 없어 퇴원하는수밖에 없었다. 계모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바람에 그는 갈곳이 없었다. 다행히 민행구정부에서 장가평에게 30평방메터되는 집을 해결해주었다. 생존을 위해 장가평은 번역문장을 잡지사에 투고했는데 퇴고만 맞았다. 1993년 5월 15일, 장가평이 번역한 글이 《세계의 창문》에 발표되여 30원의 원고료를 받게 되였다.


1993년 10월 25일, 항주시장애자직업기술학교에서 공부하고있던 장애자처녀 오은교는 라지오방송에서 장가평의 사적을 듣고 감동되여 그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편지거래를 통해 감정이 깊어진 오은교는 자신의 일생을 장가평에게 바치기로 결심하고 동생의 도움을 받아 장가평을 찾아갔다.
오은교는 초기에 장가평과 한담을 하면서 불쌍한 남자를 위해 방안을 청소해주군 했다. 그녀는 3급장애자였기때문에 지팽이에 의지하여 간신히 걸을수 있었다. 이런 몸을 가지고 장가평을 도와준다는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였다.


 이는 오은교 자신도 알고있고 장가평도 알고있었다. 편지거래가 두 사람의 마음에 따뜻한 봄날의 희망을 안겨주었다면 현실은 그들에게 잔혹한 답안을 남겨놓은것이다. 오은교가 힘들게 방안을 청소하는것을 보면서 장가평은 침묵을 지켰다. 오은교도 마음이 몹시 괴로왔다. 그녀는 눈물을 참으면서 될수록 일손을 멈추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견지했다.


이튿날, 오은교는 장가평의 침대밑에서 두꺼운 원고를 들추어냈는데 이것은 장가평이 1년남짓한 시간을 들여 번역한 장편소설 《유리불뱀》이였다. 45만 5000자에 달하는 이 번역작품은 이미 여러 잡지에 투고했다가 퇴고된 “페지”였지만 한글자 한글자 알심들여 쓴것이였다. 오은교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장가평의 의력에 감동되기도 했다. 그녀는 “당신은 편지에서 모든것이 다른 사람의것이라고 했지만 그 말은 틀린거예요. 오늘부터 전 당신에게 속할것이예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장가평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온령에 돌아간 오은교는 부모한테 장가평과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놀라서 “저절로 자기도 돌보기 힘든 네가 너보다 더 심한 장애자를 어떻게 돌본다고 그러냐”라고 하면서 견결히 반대했다. 그녀의 부모들은 그녀를 가둬놓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6개월후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늘 남몰래 장가평이 이전에 보내온 편지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있는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부모는 날마다 초췌해가는 딸의 모습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어 결국 장가평과 결혼하는것을 동의하고말았다.


1997년 9월말, 오은교는 동생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에 앉아서 장가평을 찾아갔다. 1997년 10월 1일, 장가평과 오은교는 결혼수속을 밟았다. 신혼부부는 음료 한병 앞에 놓고 사랑을 속삭였다.


그들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웃들은 “3급장애자가 어떻게 1급장애자를 돌볼수 있겠는가”고 의심했다. 오은교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확실하게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어려운 문제였다. 집안일을 해보지 못했던 오은교는 남새를 사들이고 밥을 짓는 일부터 해결해나가야 했다. 처음 시장에 나간 오은교는 장사군에게 속히울가봐 지팽이를 짚고 온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남새가격을 알아보느라고 늦어졌다. 집에서 기다리던 장가평은 아무리 기다려도 안해가 오지 않자 무슨 일이 생긴것이 아닐가 하고 걱정하던 끝에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이웃들이 그의 안해를 찾으러 가려고 할 때 오은교가 기분이 좋아서 한광주리의 남새를 사들고 들어섰다. 그녀는 장가평을 보고 “제가 오늘 시장에서 제일 눅은 남새를 샀어요”라고 말했다.

 

장가평에게 밥을 먹여주는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였다. 장가평은 하반신이 감각을 잃었기때문에 지탱물을 잃으면 뒤로 넘어지군 했다. 오은교는 헌이불로 20여개의 크고 작은 방석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번 남편을 부축하여 앉힐때마다 쉴새없이 그의 뒤에 방석을 밀어넣군 했다. 남편이 편안한 감각을 느낄 때까지 방석을 밀어넣은 다음 바줄로 그를 묶어놓군 했다. 장가평을 보살펴주기 위해 오은교는 나가서 일자리를 찾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가두에서 내여주는 400여원의 최저생활보장금에 의해 생활했다. 어떤 때는 장가평의 원고료가 몇백원씩 생겼지만 소비가 높은 상해에서 고까짓 수입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1988년 2월의 어느날, 오은교는 50전에 만두 하나를 사왔는데 먹기 아까와 남편에게 주었다. 그러나 남편도 먹지 않고 안해에게 밀어주었다. 두 사람이 서로 권할 때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오은교의 어머니 장계화가 이 정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원래부터 딸을 1급장애인에게 시집보내놓고 밤잠도 못자면서 걱정하고있던 장계화는 이 정경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장계화는 한달음에 시장에 달려가서 먹을것을 사온 다음 다시 나가 옷궤, 랭장고, 세탁기 등 물건을 사들였다.

 

그날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것을 본 오은교는 “어머니, 울지 마세요.

 

우리는 힘들게 보내지만 매우 행복해요.이전에 저는 남에게 부담만 주는 사람이였지만 지금은 남편을 도와줄수 있는 사람이 되였으니 살아도 보람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1988년 5월,그들의 정황을 알게 된 란평로주민위원회에서는 해당부문에 반영하여 그들에게 영업집이 차례지도록 알선해주었다. 그들은 이 집을 매달 800원씩 세를 주어 기본생활을 해결할수 있게 되였다.

 

2000년 6월 25일, 백가출판사의 책임자 강일청은 6명의 번역가를 청하여 미국계렬탐험소설을 번역하게 했는데 《운약》의 번역을 책임진 번역가가 사유가 있어 퇴출했다. 강일청은 번역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장가평에게 이 책의 번역임무를 맡겼다.처음 탐험소설을 접촉한 장가평은 자료와 공구서적이 없어서 번역속도가 매우 늦었다. 오은교는 서점이란 서점은 다 돌아다니면서 남편이 적어준 서적을 사들였다. 그들은 또 아껴먹으면서 중고컴퓨터 한대를 샀다. 오은교는 장가평이 쓴 번역원고를 컴퓨터에 타자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날마다 장시간씩 글을 쓰고 타자한 그들은 신체가 쇠약해졌다.

 

2000년 11월, 장가평은 번역원고를 강일청에게 바쳤다. 2002년 12월, 장가평이 번역한 《운약》이 순조롭게 출판되였다. 책을 받아쥔 장가평부부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운약》이 출판되자 장가평은 1만원의 원고료를 받게 되였다. 2003년 1월 25일, 장가평은 정식으로 상해번역가협회에 가입했다. 그후 그는 여러 신문과 잡지에 륙속 많은 번역작품을 발표했다. 장가평은 외국영화의 번역도 맡아했다.

 

2008년 6월 14일, 제11기상해국제영화절에서 장가평은 또 영화의 번역을 완성했다. 갈수록 이름을 날린 그에게는 륙속 청탁원고가 날아들었다. 2009년 1월 15일,장가평은 5000원의 원고료를 받자 즉시 오은교에게 자동휠체어를 사주었다.


2009년 음력설전야, 상해영특송도서회사출판부 주임 염소청은 장가평의 사적을 알게 된후 탄복되여 장가평에게 《스티븐 호킹》이란 책의 번역을 맡겼다. 스티븐 호킹의 학생이 지은 이 영문전기는 분량이 큰 과학기술저작으로서 장가평이 처음 접촉하는 과학기술류의 번역작품이였다.


《스티븐호킹》의 번역을 체결한 날은 이미 음력 섣달 28일이였다. 그날 저녁, 오은교는 몇가지 료리를 볶아놓고 포도주 한병을 들고와서 축하해주었다. 장가평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안해에게 “여보, 그동안 당신이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는데 나를 만난것을 후회하지 않소?”라고 물었다. 오은교는 웃으면서 “만약 그때 제가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사랑의 가치를 실현할수 있었겠어요? 또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명의 의의를 체험하게 할수 있었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장가평은 감격에 목이 메여 안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의 성공은 당신의 생명과 심혈로 바꿔온것이요.당신이 없었다면 나의 오늘이 있을수 없었을것이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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