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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잡문, 신변잡기
2013년 02월 06일 10시 08분  조회:7889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수필, 잡문, 신변잡기
 
                                   최 균 선
   
우리의 수필이 “신변잡기”차원에서 만족해야 하는가? 이것은 일가견도 아닌 묵은 과제이자 중복질의이다. 지금 수필창작에는 두가지 경향이 있다. 수필은 신변잡기가 되여서는 안되기에 문학성을 주장하는데 보수적이라는 모자를 쓰기 쉽다. 반면 곧이 곧대로의 신변잡기야말로 문학의 본연을 찾는 진보적문학관이며 작가적능력이 미달 이더라도 쓰자고 마음 먹으면 곧 써지는 글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에는 생활을 소재로 하지 않은 문학작품이 없다. 하다면 “신변잡기”에서 무엇이 문제시되는가? 수필을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형식의 글(엣센스사전)’ 이라고 해석한다해서 바로 잡문이나 다를배 없다는 사람들이 있고 잡문을 일정한 형식이 없이 되는대로 쓰는 글이라는 해석을 맹종하여 잘못된 글이면 그저 잡문이라고 밀어부치는 사람도 있다.
수필의 소재, 그것은 가장 일반적인것이면서 그것을 보편적인것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점에서 수필다운 수필이 되지 못하는것이다. 수필은 한가정의 생활보도가 아니며 정보전달이 목적인 설명문도 아니다. “숲속에 자지러지던 풀벌레도 잠잠하고 산마다에 단풍이 불타니 완연한 가을이로다” 라는식의 서술은 남들이 다 보는 풍경 이지만 나만의 체험, 련상, 사색속에 무엇인가 전개될 소지가 있다. 정감의 표출인 수필의 맛은 사실자체가 아니라 성찰, 사색에서 오기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개체로서의 나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주체를 “우리”라는 객체속에 융화시킬수 있는 보편성을 도모하는것을 문학에서의 의미화라 한다. “나”의 주관성은 자기 울타리를 뛰여나오지 못하고 자기도취에 빠져 감탄표를 찍을것이 아니라 공감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설명이 되겠다. 여기서 신변 잡기와 수필의 색채가 달라진다. 그만큼 수필은 선택된 체험과 감수에 력점을 둔다. 수필이 자신의 삶의 경험을 소재로 쓰는 글이라면 다른 쟝르보다 더 치렬하게 인간의 공성문제를 말하지 않을수 없다. 작가 자신의 삶의 체험이란 곧 더불어사는 삶의 현장도 포함되는것이지 단순히 내 가정에서의 내 삶의 체험만이 아니다.
인생잡사에서 선재하여 예술화하는것이 수필창작이다. 아무리 화려하게 다듬은 글이라도 그속에 정감적, 사상적, 철학적발견이 없다면 그것은 아기자기한 얘기로 서의 신변잡기에 머믈고 만다. 수필은 자신과의 대화인것이 아니라 사회독자와의 정서적, 사상적대화이다. 대화에 공감성이 결여하면 대화가 흥미진진할수 없다.
자기 생활에서의 얼룩, 상처, 정과 한을 발효시켜 은근히 취하도록 정감미주를 만들어야 함께 마시려들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완벽한 삶이 불가능하다. 그 부족 한 부분을 사색으로 깨달으며 어려움, 아픔, 슬픔이 공유화되고 다른 이에게 흡수되 여 조금이라도 치유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수필을 쓰고 발표하는 취지가 아닐가? 수필 의 특징은 숨김없이 자기를 말한다는것보다 개체의 인격색채를 현연하는데 있다.
문예수필이란 인간,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인생, 시대를 두고 고민하며 함께 울고웃게 되는 정감을 발굴한것이다. 무엇이든지 수필의 소재가 될수 있다는 말은 문학이란 창조적인 작업이기때문이다. 즉 묵은밥이라도 식혜를 만들어 모두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경지의 수필을 쓰는것이 작자의 창작목적이리라. 날아 다니는 모든 새는 조류이지만 조류에 속한것이라해서 다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다. 생활자체가 수필의 원천지이지만 곧 수필이 아니다.
수필에서 다양한 표현기법이나 개성적인 문체 등에 의해서 형성되는 심미적즐거 움이 허용되고 인위성을 배제할수는 없다. 그러나 간드러진 꾀꼬리소리가 곧 미묘한 선률인것은 아니며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산이 바로 풍경화인것은 아니다. 예술품이란 얻어진 소재를 가지고 작가가 자기의 정서, 그속에 녹아있는 제나름의 철학을 담아서 형상화하기때문이다.
문학화, 예술정감화는 형식에 유관된것이고 수필의 사회성, 보편적가치란 내용에 유관된것이다. 사회독자를 대상하면서 자기 모습만 들여다보는 자아봉페적인 수필이 나 자기 감상에 빠져있는 소녀적인 감상주의가 아닌 공감성의 안에서 함께 느끼고 사색하는 글이 보편가치가 있는 수필이 아닐가? 수필이 자기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글이므로 자기 정체성을 부각할수도 있다. 요는 내 이야기속에 나의 감수와 사색을 어떻게 독자들에게 공감시키는가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아표현뿐이라면 문을 닫고 수레를 만드는(闭门造车,出门合辙)격이 될수 있다. 그렇게 만든 수레에 앉아 “장안” 으로 들어가보아야 합당한지 알수 있으나 실망이 마중할수도 있으리라.
창작가치가 작자의 만족도에 좌우될수도 있지만 보다 요긴한것은 인생과 자연애 대한 관조에서 반짝이는 지혜와 사색에서 얻은 감오이다. 어느 쟝르보다 개성적인 수필에는 마음의 흐름이 그대로 흐르기에 인생관, 지식, 취미, 감정, 체험 등의 표술 이 정신호흡이 되는것이다. 그만큼 사회성,사상성, 지식성 등 수필의 본질적특징이 체 현되여야 한다, 그래야 신변잡기의 차원에서 맴돌지 않을수 있다.
수필의 글감에는 한계가 없지만 선택성은 있다. 내집 강아지가 새끼를 열마리나 낳았다는 이야기부터 사회제방면의 체험, 감수, 사색이 다 글감이 될수는 있으나 어 떤 유익한 주제발굴이 될수 없는것도 있다. 누구나 겪었거나 겪고있는 일상에서도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작업이 간거하다. 자아도취로 하여 자아실현과 공유성 사이에 너무 큰 편차가 생긴다면 그 수필은 독자를 잃을수밖에 없다. 
수필이 비평적인 문학이 될수 있다는것은 사물, 사회현상, 인성의 구석구석을 볼 때 그저 동조, 감탄만이 아닌 역향사유에 따른 비평성이 담긴다는 말이다. 남들도 다 체험하는 사실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비다듬어 내놓는다 해도 거기서 거기일 경우가 많음을 자각하고 자기도취를 절제해야 한다. 도리는 간단하다. 다른 집의 김치독에서 꺼낸 김치라도 그냥 김치맛이지 생선맛이 날수는 없기때문이다.
수필문체에 수기도 넣고있지만 수필은 작자의 인격색채가 현시되는 문학작품이다. 그래서 수필을 쓰려고 많은 체험에서 선택하게 된다. 선택된 체험이란 어떤 주제를 담을수 있는 제재이다. 주제를 발굴하고 공감대를 이루어 독자들을 문학적경지에로 이끄는 사람이 “나”라는 출발점에서 흔히 곁길로 빠질수도 있다.
수필이 곧 잡문이 아닌것은 주지하는바이다. 취사선택에서 잡문은 비평의 예봉이 돌려질 대상이 명확하며 작은것에서 큰것을 보아내지만 수필은 잡문보다 유연하고 담박하며 보통 3류제재를 다루며 작은것에서 큰것을 발굴한다. 문체풍격상에서도 잡문의 필봉은 예리하고 풍자적이며 신랄하나 수필은 한적한 마음으로 자아정감을 다루기에 부드럽고 글쓰는 자세도 가히 “신사적”이라고 할수 있다.
언어구사에서도 잡문은 풍자수법을 많이 쓰는데 반하여 수필은 유모아적이지만 포용범위는 협애하다. 잡문은 철학성이 짙고 랭정하나 수필은 서정적이고 열정적이며 자유색채가 짙다. 수필과 잡문은 자매간이지만 꼭 닮은 쌍둥이자매는 아니다. 잡문은  의론성이 중요시되고 개성과 공성의 융합, 취미성에서 수필과 차이성을 보인다.
잡문은 인생, 사회를 대하여 그것의 의미를 짓씹으며 철리적감오를 찾아 인성의 심층적발굴을 지향하고 지혜와 계발성을 구비하며 인간의 령혼을 정화시키는데 작용 한다. 수필은 정서적의미가 오묘하고 인성향기가 풍기기에 독자의 정서세계에 유익한 보탬을 준다. 이 시점에서 잡문은 딱딱한 글이고 수필은 유연한 글이라고 할수 있다.
사전에 의하면 신변잡기란 수필이고 수필이란 신변잡기라는것이다. 잡기는 글자 그대로 자질구레한 일을 질서없이 기록함. 또는 그런 기록. 잡록(杂录) 잡필(杂笔). (에센스국어사전)이라는 해석대로 수필, 잡기, 잡문의 뜻은 모두 같다는 사람도 있다.“생각나는 대로”와 “질서없이”와 “되는대로”라는 말로 세가지 뜻이 상통하고 있기때문이라고 오독하였기에 몰리해가 선행한것이다.
    홍매의 (나는 게으른 탓으로 책을 많이 읽지 못했으나, 그때그때 뜻한바가 있으 면 앞뒤의 차례를 챙길것도 없이 바로 기록하여 놓은것이기때문에 수필이라 일컫게 되였다.) 는 말에서 수필이란 신변잡기의 “잡기”의 뜻이며 “잡문”의 뜻은 “생각 나는대로”,“질서없이” “되는대로”인것이라고, “수필은 다름 아닌 잡문을 일컫는 말이 고, 잡문이란 문학화가 안된 글을 말하는것이고 이것이 신변잡기의 본질적인 뜻이다”라고 단언하는것은 지극히 학문적이 못되는 생각이다.
신변잡기가 수필에 들어있다 할진대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나는대로, 질서없이 되는대로 쓰는 글이기때문인가? 단순한 창작리념문제가 아니다. 수필은 '붓가는대로 쓰는 글”이기에 신변잡기일수밖에 없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신변잡기식 수필에 썩 공감되지 않는 리유를 사색해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문학화가 안된것도 있고 특히 “반짝!”하는 사상의 불티가 없기때문이다.
흔히 신변잡기식이 되는데는 무엇보다 작자의 자아도취가 지배적이기때문이다. 사회인으로서 아무 고민도, 아무 다툼도, 아무 불만도 없는 사람이 없듯이 그것이 반영되지 않는 글이란 없다. 기실 생활은 글에서 서술한것보다 더 풍부하지만 책 에서처럼 미만하기만한것은 아니다.
이태백이 놀던 달을 묘사해보아야 광한궁에 옥토끼가 방아찧는다는 고루한 이야 기 이상 더 나올것이 없다. 이처럼 글이 새로운 성찰, 비평정신이 없이 단순하 사실 의 엮음이라면 신변잡기에 머무를것이며 재간좋은 문자유희일뿐이다. 그러나 유희는 잠시 재미있을지라도 곧 끝나고 말것이다.
 
2012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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