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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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실을 말하다
2015년 05월 03일 18시 40분  조회:6563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구실을 말하다
 
  《사람은 누구나 다 영웅이나 위인이 될수는 없다. 그러나 항상 사람이 될수 있다.》누가 한말인 백번도 옳은 말이다. 그런데《사람이면 사람인가? 사람이라야 사 람이지.》라는 말도 있다. 전자는 명백한 객관사실을 천명하였고 후자는 현념 비슷한 인생숙제를 내고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사람의 허울을 썼지만 사람다운 구실을 하며 살아야 명실공히 사람이라 칭할수 있다는 그 점이다. 아마 그래서 인간의 사색중에서 가장 침중한 사색은 어떻게 참사람이 될것인가 하는것이리라. 사람이 되는데는 련습이 따로 있을수 없거니와 또 참사람의 기준과 통일된 표준답안이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라야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고 세상을 마주하여 마음이 걸리는 점이 없는 사람이라야 할수 있을가? 세상에 흔하디흔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례로 들어 보자.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모든 생육능력이 구비되여있는 성인남녀는 자신이 원하고 상대가 있을 때 별로 마음 별러먹지 않고도 쉽게《아버지》,《어머니》가 될 수 있다. 로신선생이 일찍 말했듯이 사람아버지(어머니)와 아이아버지(어머니) 두 부 류중에서 어떤 아버지(어머니)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는 각자의 그 행하는 구실여하에 따라 갈라지게 된다. 이를테면 처자를 양육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그 책임감마저 내버린다면 애아비는 되였으되 사람아버지는 못되 는것이요. 남성은 옳되 남편구실, 아버지구실, 나아가서 사람구실을 못하는《사람》이 아닐수 없다. 녀자도 마찬가지다. 뻐꾸기처럼 알만 낳아놓고《어머니》의 직책을 다 하지 않거나 지어 제좋은 노릇만 한다면 애에미는 되였으나 어머니구실을, 안해구실을 못한 한낱《애에미》에 불과한 녀자일뿐이다.
   이른바 신분, 직업에 좇아 나눈 3교9류의 사람들을 놓고 말할 때 결국은 각자가 해야 할 구실로 되기도 하는것이다. 농부는 농부의 구실, 병사는 병사의 구실, 교원 은 교원의 구실…등등.
   지고무상한 제왕을 놓고 보자. 베이컨은 제왕을 보통 사람이면서도 인간세상은 신 또는 신의 의지의 체현이라고 말했는데 자신의《권력의지론》에서 출발한것이다. 보다 낮잡아 말한다면 왕이란 국민에 대한 걱정이라는 부담을 짊어진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 할수 있다. 그가 개국왕이든 세습왕이든 찬탈왕이든 일단 왕이 되였다면 그 나라안에서 제일 중대한 구실을 잘해야 왕다운 왕인것이다.
   사학가들은 흔히 봉건중국의 력사는 건달과 수재의 력사라고 말한다. 그 전범으로 류방이나 주원장을 들고있는데 어찌 론의되든간에《득민심자 득천하(得民心者)》 라는 치세의 도리는 들어서 알고있는 개국왕들은 그래도 초기에는 선정을 베풀긴했으나 그후의 세습왕들은 거개 부화타락하여 궁궐을 짓고 미녀를 뽑아들여 주지육림, 주색잡기에 미쳐돌다보면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다시 천하가 뒤번져 새 왕조로 바뀌 군했다. 제왕은 아니였어도 실권을 쥐고 중국천하를 쥐락펴락하던 자희태후야말로 만고에 악명을 남긴《제왕》이였고 제구실을 못한 악녀였던것이다.
   제왕의 좌우에서 후한 봉록을 타먹으며 부귀영화를 누린 대신이나 재상들의 구실도 천근같이 무거운것이다. 설사 바보혼군을 보좌했더라도 국계민생의 밝은 정치를 펴도록 진충보국해야 하는데 건륭의 재상이였던 화신처럼 국고가 비건말건 제 배때기만 채운 탐관오리가 되거나 애국명장 악비를 모해하고 일세영달을 위해 외적과 화친을 구걸한 진회따위가 되여서는 다 제구실을 못한 대신들이 되고 결과적으로 사람구실을 못한 페물들인것이다. 이런 인간찌꺼기들은 우리 배달민족의 력사에도 많다. 더는 말고라도 근대사에《을사오적》이라는 더러운 이름을 남긴 리완용같은 인물들이 그렇지 않은가?  
   이른바 지방관들의 구실은 어떠해야 하는가? 벼슬감투를 썼다면 소임의 구실을 바르게 해야 국태민안(国态民安)하고 부국강병(富国强兵)한 나라가 세워짐을 먹물이 좀 든 사람이라면 다 아는 도리이다. 변학도처럼 민중의 고혈을 짜내고 주색에 혈안 이 되여 날치면《가성고처에 원성고(歌声高处 怨声高)를 빚어 필경은 암행어사수종들 의 륙모방망이에 골통이 으깨질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고금동서에서 보면 어떤 나라에서든 이런 제구실을 못한 란신적자(乱臣贼子)들에 의해 국운이 기울어진것이다.
   옛날만을 더듬어 망령들만을 꾸짖을일이 아니다. 현시대에 와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가치관념속에서 소위《구실》은 이질화되여 제노릇이 되고말았다. 옛날 할아버지네들이 대통을 내흔들며《에익, 사람구실을 못할놈 같으니라구!》하고 꾸짖은것은 장차 제 안속을 옳게 채우지 못할놈이라고 걱정한것이라기보다 립신양명하여 맡은바 일을 잘 감당해내지 못할가봐 우려한것이라 생각해야 마땅하다. 아닌게아니라 살아오는 동안 세상에서 제일 배워내기 어려운 기술인즉 사는 기술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바꾸어말하면 사람다운 인간구실을 하면서 산다는것이 용이하지 않다는 그 점이다.
   어떻게 해야 사람구실을 바르게 하는것일가? 일찍 학문을 깊이 닦아 박학다재 (博学多才)하면 제구실하게 되는것일가? 덕재를 겸비하여 도덕을 숭상하면서 살면 사람구실을 하는걸가? 우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래로는 애비된 의무와 도리를 다하 면 명분이 바르게 되는걸가? 모르긴 해도 그게 구실의 전부는 아니리라. 아, 참으로 제구실을 다하고 산다면 후회많은 인생이란 없으련만
도저히 깨칠수 없는 인간구실을 두고 고민고민하다가 일전에 세상물정에 밝고 인정에 숙달한 한 로스승을 찾아가서《구실》의 도를 가르침받은바 있다.
  《어렵도다. 구실의 도를 터득한다는것은 옛날 공자같은 성인도 그로서의 구실을 다하려고 3천제자를 모아 인, 의, 례, 지, 신(仁,义,礼,智,信》을 설파하면서 치국지도를 펼치고 렬국을 돌아다니며 공명을 이루려했지만 사관벼슬 한달만에 소정묘를 죽인것밖에 해놓은 일이 없었도다. 이르는 곳마다에서 벽에 코가 부딪지고 시골농부에게마저 놀림을 받았으니 기타 록록한 무리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리오.》
   현대에 와서 뢰봉이나 구양해, 초유록이나 공번삼같은 지인지사들이 나오긴했지만 잔뜩 슬기로와지고 약발라진 사람들의 시점에서 그들을 다 제구실 잘한 사람들이 라고 입을 모을지 알수 없는터인즉 그대 이제 지천명도 저물어서 구실을 도를 묻는것은 눈이 어둡고 귀가 먼 이 늙은이를 딱하게 굴자는것이 아니라면 무모한짓이 아니겠는고?》
 《예, 아니올시다. 제가 구하고저 하는것은 사변술도 아니고 더구나 정도로서의 구실이 아니라 한낱 포의한사(布衣士)로서 공리(功利)의 실혜를 얻는 구실의 도입니다.》
  《어허, 그게 무슨 고약한 심사인고? 정말 우직하도다. 비정한 구실의 도를 구하다니, 그대가 말한것처럼 지금은 완전히 공리의 시대여서 같은 문제를 두고도 어진것을 어질다 하지 않고 지혜로운자를 지혜롭다 하지 않아서 덕성과 덕망이 오히려 비웃음거리로 되였거니와 오직 리기만이 좋고 나쁨의 척도가 된줄 모르는가? 한즉 어떻게 하는것이 바른 구실이고 어떻게 하는것이 잘하는 노릇인지 구분하기 어렵도다. 황차 나라의 기강을 세워야 할자들이 오히려 <제구실>》하기에 설쳐대는판에 진정 구실의 도가 있겠는고? 이미 다 궁해버렸느니라.
   단지 세상물정에 어둡고 리성정신에 열을 올리고있는 지성인들이 고지식하게 렴결봉공(廉洁奉公)이요, 무슨 량지요, 우국우민이요 하면서 세기말의 페단에 길이 개탄하고있느니라. 자고로 소가죽이 다 썪었는데 윤기나는 털이 있었던가, 어렵도다 어렵도다.》 
 《로선생의 말씀이 페부지언이기는 하온데 정말 바른 구실의 도가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단 말씀입니까? 도가 한자 오르면 마도 한장 오른다하지 않았나이까?》
 《그렇도다. 바른 구실의 도를 현대류행어로 정신문명이라 할수 있는데 그게 평민백성들더러 아무데나 오줌누지 말고 침뱉지 말며 사람을 대하되 언행이 례절바른것을 요구하는 등 자질구레한 현상유지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응당 선행되여야 할것인즉 상층계층의 도덕건설이니라. 그러지 아니하고<나는 바담풍해도 너희들은 바람풍해라> 하고 가르쳤다는 옛날 얼간둥이 서당훈장처럼 처사해야 그게 웃음거리 아니겠는고? 그런즉 지금 세상엔 리기와 투기로써 제 배를 채우는 길이 있을뿐이로다.
   내 그대에게 말하거니와 이 길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역빠름인데 이미 전문적인 학문이 되였느니라. 범죄심리학이 사회심리학의 분과로 된것처럼 <역빠름학》은 <처 세학>의 분과로 되였는데 이에는 벼슬학입문, 전권(权钱)교역원리, 숨은 경제묘책, 관계학지남, 정계심리학, 관리형상술…등 전문분야가 포함되여있니라.
    이 <역빠름학>은 대학본과생이나 석사연구생들이 해서 꼭 잘 배워내는게 아니며 오히려 지식은 천박하나 진취력이 강하고 덕재는 없으나 모략에 이골이 텄거나 실속은 없어도 구변술이 좋은자가 누구보다 재빨리 배워낼수 있는것이거늘 어찌 황당학문이 아니며 허황하지 않을소냐. 나로 말하면 풍진세상에서 경륜이 넓지 않다고 말할수 없고 교훈도 많지 않다고 할수 없으나 이 <역빠름학>강의고를 집필하기 사작하여 이날 이때까지 제1장, 제1절, 제1항을 썼을뿐이로다. 제1장, 제1절, 제1항의 제목은 <기회가 있을 때 한몫 후무리기>인데 물이 흐린김에 손을 써 고기를 잡듯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단단히 챙겨야 <제구실>하는것이로다. 만약 기회가 없으면 창조해내고 과감히 짜내고 후무려내며 범의 코등의것이라도 떼내면 상책이로다.
   경우야 어떻든 다다익선이면 좋고 처음에 콩팥이 떨리고 본심이 비탈리더라도 제 안속을 굳히는것외에는 눈 딱감고 철면피해야 되느니라. 말하자면 양대가리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기량과 같은것이로다. 내부들통이 나지 않으면 곁에서 눈치채도 감히 들쑤시지 못하는 형편이니 사달이 생겨서 쇠고랑 차기까지는 손자밥 떠먹고 천장을 쳐다보듯이 태연해야 하며 바람새 세차도 시종일관해야 뜻을 이루는거다. 그러자 면 검박을 숭상하고 청렴을 크게 론해야 하며 최면술을 익혀 남의 눈을 가리고 아닌보살해야지 귀막고 방울훔치기식의 우둔한 짓을 해서는 자멸이니라.》
  《너무 한심해서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눈이 아찔해지나이다. 그런데 입안에 떡을 가득 베물고서 어찌 노래를 부를수 있겠나이까?》
 《모르는 소리!언청이가 콩가루 먹기란 속담이 있지 않는고? 그래도 떡심좋아서 노래부르는자들도 푸술하니 요사스럽다하지 않는가, 제2항의 제목은 <권모술수로 한자리 차지하기>인데 그 객관적기초는 권전(权钱)이니라. 내 본래 이에 대해 한두가지 알고는 있으나 그 용속함을 생각하면 두통이 심해지고 속에 메스꺼워지면서 세상사가 허무하여 더 집필할 마음이 싹 없어졌도다. 이런 구실의 도는 자기와 가족의 만복에 필요한 <역빠름학>》에 속하긴 해도 지각이 있고 량심을 개를 준 사람이 아니고는 배울바가 아니로다. 대저 인생이란 환득환실(患得患失)이거늘 리기와 탐욕에 목숨까지 들이댈자라면 그게 숫구멍이 꼭뒤에 박힌자이며 한사코 가는 길이 무덤이지 복지이겠는고…》
 《예, 많은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소생은 본디 철학이나 인문학따위를 수염이 희도록 탐구했으나 결국엔 20세기 공을기가 된것뿐이여서 늦게나마 시국에 눈떠 처 세와 공리의 <구실학>을 배울가 작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만복의 문을 열고 비록 무재무덕(无才无德)하나 얼렁뚱땅 팔방미인으로 행세하면서 명리를 단번에 얻어 가문서껀 빛내려 했건만 로선생의 교도를 깊이 세기면서 스스로의 유치함과 천덕스러움을 뉘우치게 됩니다. 죽은 정승이 산 강아지만 못하다는데 적게 먹고 가는 똥을 누면서 안빈락도로 문인의 바른 구실이나 할가 합니다.》
  《오, 그대는 정말 팥죽함지에 코가 빠져도 굶어죽을 샌님이로다. 기껏 구실의 도를 구하고저 하다가 이제 물러서니 비록 명지한 처사이나 평생 청운에는 인연이 없음이요, 궁핍은 더구나 벗어나지 못할것이로다. 어떠한 일에도 지망자가 있는법이로다. 그대는 마다해도 이 구실학에 흥심이 있는자는 많으리라. 집에 돌아가 빈 붓방아나 찧으면서 하늘이나 바라보는게 좋겠니라.》
   나는 깊은 사의를 표하고 곧추 집에 돌아왔으나 무엇이 무엇인지 알수 없고 마음만 황황해났을뿐이다. 결코 <구실의 도> 를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였다. 나는 나대로 있고 해서《오, 스프도다!》하고 깊이 자탄할 필요도 없는 일이였다.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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