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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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2015년 06월 24일 18시 48분  조회:5605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석 양
 
   조화로운 우주만물이 베풀어주는 극치의 경물중에서 해돋이는 자체의 특이함으로써 사람들을 무척 현혹케 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시인과 문필가들이 해돋이를 감상하기 즐겨했고 정채로운 필치로 불후의 걸작을 남겼던것이다.
   물바래 부서지는 만경창파우에 그렇듯 장려한 화폭을 펼쳐보이는 바다의 해돋이든, 헌산준령 칼벼랑우에서 바라보는 산우의 해돋이든, 망망한 리해천리 뭉게이는 안개를 서서히 젖히며 장관을 드러내는 밀림의 해돋이든, 지리한 밤의 장막을 찢어버리고 밝아오는 저 동녘하늘가에 위대한것의 탄생을 고하며 빛과 열, 광명과 생명을 인간세상에 소생시키는 해돋이는 그 어느것이나 매혹적이 아닌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서산에 지는 해, 저 불타는듯한 락조를 두고 명상에 잠기는것도 매우 즐긴다.《거칠은 광야에 외로운 연기 피여오르고 지는 해 대하에 잠겨 쟁반같구나.》라고 한 옛시인의 주옥같은 시구에는 물론 딱히 알수 없는 서글픔이 담겨있지만 석양은 그로서의 돋특한 경치를 갖고있음을 어쩌랴!
   한낮을 빛과 열로 우주를 축복햏주던 해는 서천에 기울무렵 역시 금방 솟아오를 때의 그 눈부신 빛발로 하늘을 물들이듯 연분홍 채단을 서서히 펼치며 수집은 처녀애마냥 발가우릿한 얼굴에 행복과 자랑의 미소를 함뿍 머금고있다.
   만리 쪽빛하늘도 지평선기슭에 닿은 부분은 온통 붉게 물들어 엷은 구름층과 더불어 눈부신 금관을 쓴 이 우주의《왕자》를 그토록 장엄하게, 그토록 청신하고 아름 답게 안받침해주었다. 이윽고 현란하던 우주의《왕자》의 휘늘어진 옷자락에 검은 반점이 하나, 둘 생기더니 나중에는 하나로 뒤엉켜 암혹생의 우울한 기분으로 하늘과 산봉우리와 전야를 무겁게 해준다. 아쉬운듯 서쪽하늘가에 너울거리는 해님의 등근 얼굴은 새날의 광명을 묵묵히 기약하며 어둠의 장막을 밑으로부터 끌어올리더니 급기야 자취를 감춰버린다. 때를 같이하여 석양의 잔광도 조화를 이룬 갖가지 색갈로 창공을 비춰보고는 스러져버린다.
   이윽고 하늘에도, 먼 산봉우리에도 노을빛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군림하는 밤의 장막이 넓은 옷자락을 펼쳐 축복받은 대지를 고요와 평화의 꿈나라로 포근히 싸안 아준다.
 
                                 1988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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