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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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잃은 친구
2015년 06월 24일 19시 15분  조회:549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고향을 잃은 친구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아래 /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건만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산골짝에 물이 마르고 /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있네…》
   고향을 그리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노래에 눈을 감노라니 며칠전 불쑥 찾아왔던 고 향친구가 생각난다.
    십여년전에 마누라가 죽자 무작정 연길에 들어와 삼륜차를 몰며 홀아비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친구다. 그러면서도 넥타이랑 매고 주말마다 무도장출입을 하면서 폼을 내기도 하던 친구다. 그런데 그날은 몇끼 굶은 사람처럼 초췌하고 어깨가 축 처졌다.
   《이 시간에 어쩐 일루…?》
    친구는 대답대신 마라초를 말아 굴뚝같이 연기를 뿜어올렸다. 이윽해서 하는 말 이 한심했다.
   《생각다못해 널 찾아왔다. 급히 세집을 맡아야 하겠는데ㅡ돈 좀 빌리려고…》
    발편잠을 잘수 있는 제집 한칸 없이 도시생활을 해오던 문간방 늙은이의 모습에 형언할길 없이 마음이 쓰렸지만 한편으로는 돈꾸러 친구를 찾아온데는 기분이 찜찜했다. 더구나 몇해전에도 석탄 살 돈이 없다고 찾아와서 손을 내밀던 친구였다. 그때 돈도 아직 갚지 못한 친구였으니 말이다.
   《들을라니 또 녀자를 얻어 살림을 차렸다며?》
   《응, 또 갈라졌어, 셋째딸년네 집에 얹혀살았는데 딸이 외국에 가고나니 죽지 떨어진 회토리가 되였다. 딸없는 사위란 말이 있지 않니? 그놈이 어찌나 구박하는지 따로 나야지…》
   《그러게 내가 뭐랬니? 알맞춤한 과부나 얻어 고향에 가서 닭, 개나 치면서 살라고 그랬지, 도시엔 얼굴밖에 없는 곳이야, 늘그막고생이 마지막고생이다.》
    직통배기인 나인지라 에누리없이 몰아주었다.
   《후ㅡ 인제 고향에두 갈수 없게 되였어, 그런 사정이 있으니 더 묻지 말아다오.》
    대답대신 땅꺼지게 한숨을 토해냈다.
    워낙 못한 술몇잔을 마시더니 혀꼬부라진 소리로 가사와 곡조를 제멋대로 둘러맞추며 넋두리를 하는것이였다.
   《찾아갈곳이 못되더라 / 내가 버리고 떠난 고향이길래 /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 전선대에 기대서서 울적에 / 똑딱선 프로펠라소리가 / 이 밤도 처량하게 들린다. 물우에 복사꽃같이 / 물우에 그림자같이 / 내 고향이 꿈에 어린다…》
   친구는 단돈 몇백원에 인격마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어찌 내 친구 한사람일가? 자기가 살던 고향을 뒤로 하고 무작정《도시진출》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련상하지 않을수 없다. 땅팔고 집 팔고 솔가하여 도시에 들어온 사람들속에서 성공한 사람들보다 실패한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이 아니던가! 저마다 제잘난 멋에 산다지만 제 앉을자리 설자리 찾지 못하고 부평초같은 삶을 사는 그 모습이 안타깝다. 하늘이 무너져내릴가 걱정하는 기나라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농민들의 도시진출을 제2차인구대류동이라 하면서 락후한 농경문화에서 해탈하여 새로운 생존환경을 개척하려는 몸부림이라고 한다. 탁상공론이야 어려울것 있으랴만 현실은 락관할바가 못된다. 결코 나무한그루를 보고 수림을 보았다고 하는것이 아니리라. 농민들의 확정적이고 목적, 의도적인 집단적거사가 아니라 보다 쉽게, 보다 편하게 살려는 무모한 급공근리(急功近利)의 개체활동일뿐이다.
   결과는 어떤가?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격으로 세세대대 땀으로 걸구고 피로써 지켜온 향토를 헌신짝 벗어던지듯하고 도시에 몸을 잠근뒤의 인생고가 얼마나 눈물겨우랴!
   우리 조선족농민들이 못살겠다고 떠난 고장에 한족들이 찾아들어 울타리를 둘러막고 보금자리를 마련해간다. 어느것이 더 바람직한 인생자세일가?《불귀,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라며 도회지생활에 미련두고있는 내 친구같은 사람들의 행각이 동정을 살수 있을가? 인생은 뜬구름이 아니요, 부푼 욕망만으로 사는게 아니다. 
   헌 자전거를 절컥거리며 택시, 자가용이 흐르는 도시의 네거리 명멸하는 가로등 아래 후줄근한 그림자를 끌고가는 친구, 가기는 가더라만 보금자리를 잃은 그 넋이 안식할곳 어디메냐? 친구야, 친구!네가 버린 고향이라지만 그래도 향촌에는 아직 사람냄새가 정겹고 더불어 사는 멋이 있더라. 성실한 로동의 향기가 땀흘린자를 저버리는 법은 없다. 울밑에 호박심고 터밭에 남새심으며 살수 있는 고향으로 친구야, 어서 가거라,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친구대신 옛노래 불러본다.
   《새들도 집을 찾는 저 산아래 /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 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 어부들 노래소리 멎은지 오래일세》
    고향을 잃은 친구야!넋이라도 있다면 꿈속에서라도 네 고향에 어서 가거라.
 
                                2003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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