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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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도시화 발상전환 필요하다
2007년 02월 11일 02시 01분  조회:2970  추천:124  작성자: 김준봉
[들어가는 말]

도시화 그리고 산업화

현대사회에 있어서 도시화 산업화는 필연이다....
고향을 떠나는 농촌을 걱정하기에 앞서 도시에 정착하는 조선족을 생각하라. 중국은 10여 년 전의 막노동자의 임금이나 지금의 도시저급 노동자 인력의 임금은 큰 차이가 없이 거의 동일하다. 다시말하면 중국의 고도 경제성장에 따라 일을 잘하는 고급인력이나 최첨단 산업관련 임금은 계속 높아가지만 막노동자나 저급인력은 계속 제 자리 걸음이다. 이는 농촌의 인구가 계속 도시화의 물결로 계속 도시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현재 도시화율이 아직 40%를 넘지 못하고 있으므로 도시화가 적어도 70-65%가 되는 시점까지는 앞으로 15-25년간은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계속 이동할 것이고 이러한 막노동자등 저급인력의 공급은 계속 되는 한 그 임금은 ! 그리 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족이 도시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필연적인 현상이고 어쩌면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고향을 떠나는 농촌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도시에 들어온 우리 조선족의 앞날을 생각하는 것이 더 옳은 발상이다. 이미 조선족의 무대는 동북이 아니다. 중국 의 도시전체, 더 나아가 서부지역을 비롯한 전역 아니 전세계가 조선족의 무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졸속으로 추진된 한국의 대 조선족 정책

만약 한국정부가 한국기업들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족의 한국입국을 허용하는 정책을 수립했을 때 조선족동포사회의 생활안정과 경제성장을 염두에 두고 섬세하게 추진했다면 오늘의 이 심각한 농촌의 상황은 이리 빨리 오지 않았을 것이다. 관련단체의 이해관계와 인력업체들의 로비에 놀아나 그들의 이권보호와 영사관과 브로커의 부패 고리를 차단하지 못한 채 10여년 넘게 무책임한 정책이 집행되고 말았다. 연수생제도로 저질러졌던 인권유린은 물론이거니와 짧은 기간 뼈 빠지게 일해 봐야 입국과정에 뜯긴 돈을 벌충하기 바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로 남게 되었다. 이들은 연변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정부의 단기체류와 단수비자정책으로 장기간 가족과 떨어져 있게 되면서 연변가정은 가족해체를 양산하게 됐던 것이다. 또 한?! 뮐ㅊ寬? 중국진출기업 가운데 연변지역의 경제성장과 생활안정을 위해 투자와 서비스 확대를 장려했다면 연변의 조선족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생활향상과 민족사회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때 늦었지만, 5년 방문취업제가 내년부터 시행될 수 있다니 시급히 법과 제도를 정비해 중국 내 조선족 사회의 가족해체를 막고 경제적 안정을 기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연변사회는 한국정부의 정책전환을 환영하면서도 엄격한 한글시험이 또 다른 비리를 만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보따리장사를 포함한 왕래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조선족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하고 미래를 만들어 가야할 책임과 권리가 스스로 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동북을 개척하여 정착한 것과 같이 이제는 도시로 나가 개척하고 우리의 터전을 넓혀야한다.

결국 도시화는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더 이상 농촌만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농촌에 살아도 TV와 냉장고를 가지고 있으며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농촌에 비록 살아도 도시인의 삶을 표방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한국의 문제, 중국 정부 만의 책임이 아니라 시대의 대세이자 흐름 인것이기 때문이다.
 

몸말 1- 한국인과 조선족-거주 지역 판도가 바뀌고 있다 

이농, 농촌 과소화, 조선족 근거지의 축소 

중국과의 수교 13년째를 맞아 조선족의 거주지는 동북지역 특히 연변을 중심으로한  교역과 관광에서 출발하여 처음에는 동북삼성지역(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인 길림성지역의 장춘시 길림시 교하시 통화시와 흑룡강성지역의 하얼빈시 목단강시 그리고 요녕성의 심양시 대련시지역의 교역과 북경 청도 상해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중앙민족대학 황유복 교수의 1999년 조사에 따르면 “농업경제가 자급자족경제에서 상품경제ㆍ시장경제로 전환되고 도시의 서비스업이 발전함에 따라 조선족사회에서도 대규모의 농촌인구가 도시로 이동하였다. 개방 이후 조선족 총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20만 명 가량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조사지인 흑룡강성 신락촌의 인구도 실제거주자로 보면 1970년대 초에 비해 약 절반 수준으로, 실거주 가구수로 보면 약 30%가 감소하였다. 

이농은 중국 전역에 걸친 현상이지만 조선족의 경우에는 "한국바람"이 이농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돈벌이를 위해 가족구성원의 일부가 한국으로 떠나는 것 자체도 농촌사회의 인구구성에 심각한 변화를 일으키는 이유가 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 '돈맛'을 보게 되고 도시생활을 해 본 경험은 중국의 농촌으로 일단 되돌아왔던 사람들로 하여금 농사일과 농촌생활에 대해 부정적인 가치관 내지 태도를 갖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돌아 온 사람들 중 많은 경우가 농사일에 전념하기 보다는 한국에서의 재취업 기회를 엿보거나 혹은 중국의 도시로 나가 조그마한 개인기업을 꾀하게 된다(황익주 1998).  

이러한 이농현상은 조선족 촌락의 사회생활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흑룡강성 신락촌에 대한 현지조사 보고(황익주 1998)에 따르면,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마을 내의 각종 조직의 구성원 수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조직의 활동력이 저하되었다. 아울러 집체생산이 개체생산으로 전환되고 이농 및 한국취업이 급증하는 과정에서 촌락공동체의 자원에 대한 주민들의 의존도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인민공사 시절 촌락민들에 대한 각종 자원배분에 결정적 영향력과 권위를 행사하였던 간부들도 권위의 사회적 토대를 상실하게 되면서 농촌사회의 정치구조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농의 또 다른 결과는 조선족 근거지의 축소이다. 조선족이 떠난 농촌에는 한족이나 만족이 들어와 산다. 많은 지역에서 이전의 조선족 마을이었던 곳이 폐허가 되거나 축소되었다. 흑룡강성 신락촌에서는 한족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 조선족이 한족에게 집을 팔면 500위안의 벌금을 물게 하였다. 그러나 500위안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 온 사람에게는 큰  돈이 아니며 실질적 제재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 여러 집이 한족에게 세를 주고 있고 몇몇 집은 이미 팔아버렸다(김광억 1998). 이러한 결과 외부로부터 온 한족이 다수가 되고 원주민이었던 조선족이 오히려 소수가 되는 경우도 나타난다. 연변자치주 요남 일대에서는 조선족 ?! 纘嶽? 50%가 폐경지로 되어 한족들이 새 주인이 되었다(림금숙 1995). 현재 추진 중인 두만강개발계획이 실현되면 산동성 등 외지로부터의 한족 유입이 가속화되어 연변의 조선족 인구비중은 총인구 대비 현재의 40%에서 20% 이하로 감소될 전망이다. 또 인구의 분산이 가속화될수록 한족과의 동화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황유복 1999) 

조선족 농촌사회의 공동화 현상

조선족 농촌사회의 공동화 현상에는 낮은 출산력도 일조를 하고 있다.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따라 조선족은 두 자녀까지 둘 수 있으나 거의 한 명만 낳는 실정이다. 연변자치주 조선족의 한 자녀 출산비율은 1991년의 86.2%에서 1996년에는 93.7%로 되었다(리창남, 리동학 1999) 돈벌이를 위해 젊은 부부 일방 혹은 쌍방이 외지로 이출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전통적으로 높은 교육열을 가진 조선족들이 막대한 자녀교육비를 감안하여 한 명만 낳아 잘 키워보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변자치주 조선족인구의 자연증가율은 1991년에는 4.9%이었으나 1996년에는 -1.1% 으로 자치주 성립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에 따라 연변지구는 조선족 집거지구에서 점차 산재지구로 바뀌고 있다. 연변지구의 조선족 인구는 1953년의 제 1차 조사에서는 연변 총인구의 70.5%를 차지하였으나 1996년 말에는 39.3%에 불과하여 명실공히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다. 이와 같은 인구감소추세가 계속된다면 '연변조선족 자치주'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서부터, 두만강 하류 개발에 있어서의 '민족우세'가 무너질 전망도 제기된다."(리창남, 리동학, 1999). 

이제 조선족의 판도 역시 중국 개혁개방 20년간 기존의 동북지역 농촌 지역에서 벗어나 점차 경제가 발달한 지역인 연해도시로 확산되면서 심양 대련을 중심으로한 동북시역과 북경 천진을 중심으로 한 경진지역 청도 위해 연태를 아우르는 산동지역, 난징 이우 푸동 소주 항주를 포함하는 상해지역 심천 광주의 광동지역 등 새로운 5개 지역으로 퍼져 가고 있는데 이는 처음 중국의 경제가 홍콩을 중심으로 남쪽 연안에서부터 동부 연안까지 이어졌다가 다시 내륙과 동북으로 발달하는 경제흐름의 지도를 반대로 닮아 가고 있는 형상이다. 

동북삼성을 제외하고 인구 십만 이상의 조선족 도시는 북경과 산동지역이고 5만 이상의 도시는 상해 광동 천진 등 3개지역, 1만명 이상은 강소성 절강성 해남도등 3개 지역이다. 이 지역의 조선족 인구는 현지 조선족 기업협회와 조선족학교, 정부 해당부문을 통한 자료와 동북 3성 12개 현(시)를 상대로 실질적인 조선족 거주 이주상황을 표본 조사한 자료를 통합 분석한 결과 중국 전국적으로 동북삼성을 제외할 때 무려 60만에 이른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 진출한 인구가 20만 명으로 추정되고(현재 한국에서는 한국에 거주하는 한족을 포함한 중국! 인의 숫자를 대략 30만명으로 보고 있슴), 그리고 동북삼성의 도시에 거주하는 40만의 조선족을 합하면 조선족의 도시화율은 총 조선족 200만명중 120만명으로 60%를 넘는다, 

그리고 한국인의 중국 진출을 보면 더욱 그 증가는 놀라운데 차이나드림을 안고 연평균 150여 만 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다녀가는데(2003년 156만 명) 구체적으로 중국에 장기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의 인구는 북경에 5만 5천명, 천진에 3만 명, 산동지역에 8만 명, 화남지역에 1만 8천명, 동북에 4만 2천명, 상해에 4만 3천명 그리고 기타지역에 2만 5천명으로 총 29만 3천명으로 집계되었다. 또한 한국 기업체 숫자도 산동에 1만 5천여 개 북경과 상해에 각각 8천여 개, 화남지역에 7천 100여 개 동북에 6천여 개 천진에 1천 900여 개, 기타지역에 6천여 개 등 총 5만 2천 여 개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추세로 간다면 2010년에 이르면 재중 한국인의 인구는 100만 명에 이르리라 생각된다. 

이는 최근 중국 사회과학원이 발표한 ‘중국 도시경쟁력 보고서’에서 중국 9대 경제 구역중 5위까지의 지역으로 

1.홍콩 마카오 심천 광주를 중심으로 한 화남 지역, 

2.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장강하류지역, 

3. 베이징 천진을 중심으로 한 화북 지역, 

4. 대련 할빈 장춘 심양 길림을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 

5. 청도와 제남을 중심으로 한 황하 중하류지역으로 

이는 한국인과 조선족이 자리 잡고 있는 5대 지역과 일치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가장 북쪽인 흑룡강 성부터 남단의 해남도에 이르기까지 중국 연해를 따라 에스(S)을자 형태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한민족인 한국인 중국의 조선족 러시아의 고려인 그리고 북한과 재일 동포,와 재미동포등 재외의 한민족은 지난 1200여 년 전의 신라의 해상왕 해신(海神) 장보고의 해상 루트를 따라 발전하고 있음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농촌 조선족문제 

 연변직역의 가정해체 또는 이혼, 조손가정의 조선족 어린이들이 기숙하고 있는 학교와 양로시설. 정신사회병원 등 복지관련 분야를 보면 연변자치주의 중심인 연길시의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동포사회는 깊은 중병으로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가장 큰 위기는 자치주의 조선족 감소현상이다. 2백만에 달하는 중국 내 조선족 가운데 84만 명이 거주하는 연변은 중국정부가 자치주로 인정해 소수민족 정책을 펼 정도로 조선족사회의 중심지였으나, 최근에는 인구의 급격한 이동으로 자치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고, 마땅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조선족들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개발이 신속하게 추진된 연안지역, 즉 상해, 북경, 청도, 심천 등지로 취업을 위해 이주했거나 한국으로 이동했다. 이런 경향, 즉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는 조건이 변화하지 않는 한, 연변자치주 조선족사회는 축소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둘째는 이런 일자리를 찾아 떠난 이들의 가족 해체현상이다. 장기간의 한국체류는 연변조선족 가정의 해체를 불러오고 고아와 조손 및 이혼가정이 속출해 결손가정이 60%를 넘는다. 연변농촌의 조선족마을은 무의탁노인이 5천명이나 되고, 고아도 3천명, 빈곤으로 학업을 중단할 처지에 놓여있는 학생이 6천명이나 된다. 하지만 즉각적인 대책마련이 뒤따르지 못한 채 자선총회를 비롯한 당국, 사회단체와 헌신적인 독지가들의 노력으로 기숙학교나 양로원 등의 시설이 부분적으로 가동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이러한 연변 조선족 동포들에 대해 매우 부끄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내 동포사회가 가족해체와 연변자치주의 중심이 흔들리게 된 원인제공은 대부분 한국정부의 무신경한 정책과 도시로 간 이들의 영향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화와 이농 현상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여러 분야에는 이른바 ‘원리(principle)’ 라는 것이 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사유와 실증에 의해 진리라고 판명이 난 것들이다. 사회과학의 경우 경제 및 사회 제도의 변화와 더 불어 이 원리라는 것이 변형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원리 안에 포함된 기본 개념에는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 일반 적이다. 원리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결과의 많은 부분이 원리에 의해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일을 하면서 그 결과가 이번만은 원리와 다르기를 바란다면 십중팔구 실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동전을 하늘 높이 던지고 이번만은 땅에 떨어질 때 동전이 옆으로 서주기를 바라거나 땅에 떨어지지 말기를 바라는 것이 어리석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래서 이렇게 도시화가 되?! ? 것은 잘 살아나가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몸말2-도시화를 시장경제의 눈으로 보자

시장 경제에 따른 자본주의 경제원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서승환교수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흔히 아는 경제 법칙 중에서도 금과옥조로 여기는 원리가 여러 개 있는데, 모두 다 알다시피 공산주의 시절의 공공재산의 집단농장보다는 사유재산권이 보장되어야 경제의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과 수요공급의 법칙 등도 중요한 원리에 속한다.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일한 결과 무엇인가 대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대가에는 금전적인 것은 물론이고 명예와 같은 정신적인 것도 포함된다.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얻을 때 그 대가가 배타적으로 자기 것일수록 더 큰 만족을 얻는다. 부서에서 성과가 좋아 얻은 상금으로 회식을 하거나 불우한 이웃을 돕기에 기부하는 것도 흐뭇한 일이지만, 작은 금액이라도 나에게 직접 주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만큼 흐뭇하지는 않?! ?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르게 일하면 다르게 보상을 받고 많이 일하면 많이 받는 것이 대원칙인 것은 불변의 경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많이 일한 사람이 많이 받아 적게 받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 줄 수는 있으나 적게 일한 이나 많이 일한 이나 그 보답이 똑 같다면 결국은 아무도 많이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엇인가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소유권이 필요하며, 소유권이 적절하게 보장되어야 경제도 효율적으로 작동된다. 아프리카의 코끼리는 그 수가 계속 줄어들어 보호대상이 된 지 오래다.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A국은 코끼리를 밀렵하는 사람을 엄벌에 처하는 법을 만들어 실행했다. 한편 B국은 각 부족에게 일 년간 코끼리 몇 마리를 잡을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일정한 수의 코끼리를 포획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는 것은 코끼리를 직접 잡아 수입을 올리든, 아니면 포획권을 남에게 넘겨 수익을 올리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각각의 부족에게 주변의 코끼리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한 것과 같은 결과이다. 결과는 ! 어떻게 되었을까?  A국에서는 코끼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B국에서는 코끼리 보호효과가 나타났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을 강제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목적을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조선족과 한국의 도시화의 비교를 통한 고찰

    조선족의 도시이동의 실태는 한국의 경우를 참고하여 생각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서울과 경기도를 포함하는 수도권 집중의 실태는 각종 자료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수도권의 면적은 전 국토의 11.8%에 불과한 반면, 인구의 46.7%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2004년 기준으로 경제력의 척도들을 살펴보면, 제조업체의 56.6%, 예금액의 67.9%, 대출 금액의 62.2%,대학수의 41.8%, 의료시설수의 47.5%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중앙행정기관의 72.7%, 정부투자. 출자기관의 85%,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69.8%, 100대 기업 본사의 95%, 벤처기업의 71.2%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도권에 인구 및 시설이 집중되는 문제는 매우 역사가 오래된 문제이며 지금도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며 지금도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다. 이미 카이사르 시절에 로마에 인구가 집중된 나머지 극심한 교통 혼잡이 발생하여 대낮에 도심의 마차 통행을 금지했다는 역사 기록도 있다. 지금 어느 나라의 국민을 붙잡고 물어보아도 그 나라의 수도 혹은 수도권이 지나치게 과밀하다고 대답한다. 우리가 보통 도시들이 과밀하다고 생각하듯이 일본 사람들은 도쿄권이, 영국 사람들은 런던권이, 프랑스 사람들은 파리권이 지나치게 과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소득수준, 경제체제 및 지역에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공통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흔히 ! ‘수위도시의 문제’라고 한다.

그런데도 앞서 언급한 수치들이 나타내는 것과 같이 수도권집중의 문제에 의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력 격차가 점차 커지며, 환경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족의 도시 집중 현상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선족의 도시 집중한 현상의 경우 동일한 현상이라도 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다른 대책을 강구하게 된다. 따라서 도시화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 기업, 각종 시설이 도시에 집중된다는 것이 도시 문제이며, 이 문제의 본질은 모두가 생산성이 높은 도시에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위도시의 총생산성이 지방과 농촌에 비해 2-3배정도 높은 것으로 추정된 연구 결과들이 있다. 다시 말하면 농촌과 도시는 같은 일을 하고도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도시가 농촌보다 월급이 두 배 이상이나 많은데 농촌에 살라고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는 발상이다. 더욱이 농촌이 섬나라처럼 분리되어 있지 않고 도시의 생활과 비슷한 냉장고 T.V. 세탁기 휴대전화기 교육비등 모든 지출분야가 연결되어 있는 현대인의 생활을 놓고 본다면 농촌을 지키라는 말은 더욱 설득력은 없어진다.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누가 강요하지 않는데도 도시에 몰려든다는 것은 도시에서 살면 무엇인가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해야 마땅하다. 즉, 도시에서 살면 다른 지역에서 사는 것보다 이득을 볼 수 있으므로 도시집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살면 무슨 이득이 있으며 그러한 이득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도시는 다른 지역에 비해 금융, 정보, 통신 및 SOC등 각종 하부구조 가 더 발달되어 있는데, 하부구조의 발달은 바로 생산성 증가로 연결된다. 즉, 도시권의 생산성이 지방에 비해 높다는 것인데, 이는 같은 노력을 들여 도시에서 생산 활동을 하는 경우 더 많은 이득을 올릴 수 있다는 !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도시권에 몰려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조선족의 도시화 문제를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의 선악을 구별하기 보다는 이러한 현상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농촌과 도시의 공동발전의 문제

     경제학에서 말하는 유명한 상충관계의 하나가 효율성과 형평 사이의 상충관계이다. 효율성이란 경제활동을 한 사람들이 얻은 이득을 모두 합한 것이며, 형평이란 얼마나 공평하게 나누어 갖는가 하는 것이다.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파이의 크기를 가능한 한 크게 만드는데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다. 형평을 추구한다는 것은 파이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파이를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지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다. 파이의 크기도 크게 하고 나누어 갖기도 공평하게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편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실제로 달성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공부도 컴퓨터 게임도 모두 열심히 해서 공부도 일등, 컴퓨터 게임도 일등을 !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이다.

효율성과 형평성의 상충관계- 그렇기 때문에 상충관계라는 말을 한다. 어떤 경제정책을 써서 효율성을 높이려고 한다면 형평이 훼손되고, 형평을 높이려면 부득이 효율성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효율성과 형평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단일 정책이 존재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도시집중해소’ 라는 정책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도시 정책과 공간 정책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도시에 관한 인식이다. 도시가 일반적인 보통의 재화와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유별난 특징을 갖고 있는 만큼 유별나게 취급되어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지나치게 되면 반시장적 혹은 반자본주의적 부동산 정책과 공간 정책을 당연시하게 된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만큼 무엇을 믿든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잘못된 상황 인식의 토대 위에서 형성된 믿음을 다른 사람들, 특히 가치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 전달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죄악이다.

도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돈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도시화를 막거나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도시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믿음은 자유지만 사물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과학에 속한다.

이제는 조선족의 도시화 정책은 국민들의 주거생활을 안정시키는데 맞추어져야 하며, 공간 정책은 국가경쟁력의 강화를 통한 모든 지역의 지속적 동반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데 맞추어져야 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형평에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며, 사회통합을 통해 경제. 사회의 안정을 이룩하는 것은 지속적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소득 재분배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도시 정책과 혼재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조선족 거주 정책과 공간 정책을 모색한다면 시장 친화적인 정책이 모색될 것이며 소기의 정책목표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을 떠나라---그러나 잊지는 말자.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그래도 농촌에 남는 자는 있다. 떠나는 이는 떠나야한다. 강요할 수는 없다. 한국도 농촌을 키우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결과는 잔뜩 빛만 진 꼴이다. 지금도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크다. 그러나 농촌의 부자도 많이 있다. 농촌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진 자만이 살아나는 것이다. 옛날의 농법과 경영방식으로는 이제는 더 이상 농촌을 지킬 수 없다. 

새로운 기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농촌도 도시화의 길을 걷는다. 농업도 땅위의 공장산업이다. 농촌은 적은 인력으로도 얼마든지 경영이 가능하다. 풍부한 한족인력은 어디에나 있다,

조선족의 도시화를 보는 근본적인 문제는, 도시로 또 도시로 몰리는 이유를 도외시한 채 나타나는 현상만을 주로 문제 삼는 데에서 비롯된다. 도시의 생산성이 여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 도시의 소득이 자연히 높아질 수 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일차적인 사회적 반응은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이 불공평성의 문제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며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외국으로 나가는 조선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일을 하고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나가지 않는 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농촌을 떠나서 도시로 가되 우리의 농촌을 잊지 않으면 충분하다. 농촌을 떠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우리의 고향이 아닌가? 언젠가 그리우면 돌아올 곳이! 다. 그때를 위해 남을 사람은 남아 지키고 있으면 된다.
 

마치는 말

-중국의 도시에서 기반을 마련하여 서부로 세계로 진출하자.

  도시와 농촌을 비교하자면 생산성이 높은 지역의 소득이 생산성이 낮은 지역의 소득보다 높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를 가리켜 도시지역학에서는 ‘자연스러운 소득격차’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러한 소득격차가 형평성의 측면에서 문제를 일으켜 사회적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생산성이 높은 지역의 성장을 강제로 억제하는 것은 국민경제 전체를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못하다. 오히려 생산성이 낮은 농촌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도시와 농촌이 서로 윈윈(相生)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도시화문제를 해결하는 바람직한 방법은 지방분권의 강화, 지방정부의 재정력 확충 및 지방의 생산 기반 강화 등을 통해 도시와의 격차를 줄여나! 가는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중국을 놓고 볼 때 서부대개발등 여러 정책으로 메꾸어 나가면서 동북지역 특히 연변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개개인으로 볼 때 그 효과는 미미하다.

따라서 조선족 도시화 문제와 조선족간 불균형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책은 다음과 같은 열가지 전제조건을 만족시켜야 할 것 으로 생각된다. 

첫째: 도시화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 도시화는 필연이다. 도시화를 하지 않고 잘 사는 길은 없다. 도시로 진출하여 중국의 주류사회에 접근하자-그리고 정치인과 경제인을 키우자.

 조선족으로 한족사회의 주류에 파고 들어야한다. 조선족을 지킨다고 조선족사회에 머물기만 한다면 더 빠른 몰락이 기다릴 뿐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 라는 말이 있다. 빈곤한 생활을 하면서 남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

둘째: 누구나 다 공부를 잘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농촌에서 농사만으로는 더 이상 도시화의 미래에 경쟁할 수 없다. 각각의 장점을 살리는 길을 찾자. 스포츠, 연예인, 예술가 전문가로 키우라. 전문가로 간다면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조선족의 예술성과 좋은 두뇌를 긍정적으로 사용할 분야를 키우자.

셋째: 세계화의 길을 걸으라. 농촌 보다는 도시가 국내 보다는 한국이나 일본 등 외국이 비록 힘은 더 들지 몰라도 분명히 생산성은 높다. 갈 수만 있다면 나가서 일하고 배울 수만 있다면 나가서 더 공부하자. 무너지는 농촌을 붙잡고 늘어지기 보다는 소수의 책임 있고 사명있는 이들이 농촌을 지키고 버티는 동안 하루라도 빨리 나가서 성공하여 돌아오는 것이 더 농촌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조선족 인구의 10%이상이 농촌에서 농사하는 것은 조선족으로 경쟁력이 있을 수 없다.

 넷 째: 지식산업 3차산업에 집중하라. 식당도 3차 산업이다. 농사 짖지 않고 식당만 한다고 결코 한탄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빌게이츠를 보자. 우리 조선족 중에 그런 인제 하나만 키워도 그 영향력은 정말로 지대할 것이다. 창조적 소수를 키우자-

다섯째: 상장기업을 만들라. 서로 힘을 합하고 더 큰 물로 나가라- 현재 중국 발전의 기초가 되고 주력이되는 화상(華商)을 본받자. 그들의 역량을 이용하고 우리 코리안 중심의 한상(韓商)을 생각하자.

여섯째: 정체성만 가지면 되는가? 정체성과 경쟁력은 다른 문제이다. 경쟁력이 없이 정체성만 있으면 전혀 힘이 없다. 우리의 근거지였던 동북지역은 제조업과 산업의 경쟁력이 따뜻한 남쪽과 서쪽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 

일곱째: 중국정부에 기여도를 높이라. 중국의 공민의로서의 긍지와 사명감을 갖고 경국의 경제사회 발전에 기여하자. 우리는 한민족이나 필경은 중국 공민이다. 전세계의 공민을 아우르는 사상의 확장이 필요하다.

여덟째:  사회에 봉사하는 기업, 인류에 공헌하는 이가 되자. 왜 돈을 버는가? 돈을 버는 목적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러한 원대한 뜻과 꿈이 있다면 우리 민족은 분명 그 꿈을 이룰 것이다.

아홉째 : 조선족 농촌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단순한 재정지원이 아닌 진정한 농촌의 역량강화를 이룩할 수 있는 정책의 수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중국 전 지역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며 지역 간 생산성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조선족 정책이어야 한다. 이제는 단순히 연변 혹은 동북지역만이 조선족지역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전 중국이 조선족 지역이  되야 한다. 그리고 모든 정책들은 경제주체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되는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마지막 열 번째:  도시를 기반으로 하여 서부로 개척하기를 제안한다. 농촌에서 도시 찍고 서부와 남부로 진출하자. 도시를 기반으로 자금을 마련하여 서부로 진출하자. 우리의 선조들이 동북을 개척했듯이 우리도 또 다른 신천지인 중국의 서부를 겨냥할 필요는 충분히 있다. 우리는 소수민족으로 한족에 비해 거부감 없이 서부로의 진출이 용이하고 도시에서 축적한 종자돈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는 사업을 서부를 겨냥해서 벌일 수 있다. 그리고 서부가 답답하면 물로 일본 유럽 미국 세계로 진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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