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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우리의 온돌문화 (김준봉)
2007년 10월 17일 16시 39분  조회:6276  추천:99  작성자: 김준봉

다시 보는 우리의 온돌문화
-제6회 국제온돌학회 개최에 부쳐

김준봉
  국제온돌학회 회장/도시주거환경설계연구소장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유산  ‘온돌 그 찬란한 구들문화’ --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대영백과사전’에는 온돌은 ‘ONDOL’로 표기되고, 구들 역시 고유명사이기에 다른 표현은 아직 없고 ‘GUDLE’로 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구들이나 온돌이 하이퍼코스트(hypocaust)로 표기 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우리의 전통 난방기술을 계승․발전․전파시키지 못한 동안에 아주 원시적은 온돌 구조인 하찮은 서양식의 하이퍼코스트에 비교되어 표기되고 있다.

하이퍼코스트는 서양 로마시대에 원시적 바닥 난방 형태인, 그것도 단지 로마시대에만 목욕탕 용으로 잠깐 사용되었던 우리 구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단순한 구조이다. 마루바닥에 수로(水路) 형태로 뜨거운 물을 흘려서 바닥을 데웠던 시설인데, 우리의 전통구들처럼 축열이나 취사 겸용 등의 복잡한 구조도 없고 불기를 직접 보내지도 않은 아주 원시적인 구조이다. 이런 하이퍼코스트를 우리 고유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첨단화된 구들과 비교하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먼저 온돌과 구들에 대한 용어정의를 하면 사전적 의미는 ‘구들’은 ‘방바닥에 골을 내어 불을 때게 하는 장치’ 또는 ‘고래를 켜고 구들장을 덮고 흙을 발라 방바닥을 만들고 불을 때어 덮게 한 장치’ 등으로 설명되는데 주로 우리 전통방식의 구들 고래와 구들장을 가진  직화(直火) 방식의 난방 방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이와는 비슷하지만 온돌은 단순히 ‘방바닥 밑으로 불기운을 넣어 방을 덥게 하는 장치’로 실의 바닥을 데우는 난방방식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온돌(溫突)'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조선 왕조 실록]에 등장하는데, 세종 실록 7년 을미 7월 병진]이며, 바닥에 본격적으로 장판을 깐 것도 이때부터 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구들’은 순 우리말로 ‘구운 돌’이란 의미에서 발전하였고 지금까지 넓게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온돌은 한자로 따뜻할 온(溫) 돌출하거나 발산한다는 돌(突)자를 쓰는데 이같이 열석 (熱石)으로 쓰지 않고 온돌(溫突)로 쓰는 데는 이미 따뜻한 복사난방의 의미를 두고 조합해 놓은 단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민족은 온돌의 의미를 단순히 돌(바닥)을 뜨겁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닥복사난방과 축열(畜熱)의 의미가 함유되어 있게 용어를 정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쓰는 ‘온돌’과 ‘구들’용어는 서로 같은 의미에서 출발 하였기 때문에 ‘구들’이라는 용어는 과거 전통 온돌 방식의 난방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온돌의 경우는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바닥을 데우는 난방방식을 통칭하는 것으로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경우는 온돌(溫突)이라는 용어는 주로 사용하고 있지 않고 과거 전통방식의 구들난방은 캉(炕) 또는 훠캉(火炕)으로 쓰여지고 있으며 지금의 온수난방이나 전기를 사용한 바닥난방은 띠러(地熱), 혹은 띠놘(地煖)이라고 쓰는데 우리민족이 온돌의 종주국임을 알리고자 한다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온돌(溫突)을 지금보다도 널리 쓰게 하는 것이 우리의 온돌의 우수성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경우 굳이 ‘구들’이라는 용어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이미 외국에 ‘ONDOL’로 알려져 있고 대영백과사전에 등장하는  ‘온돌 溫突 ONDOL’용어를 쓰는 것이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 우리의 한영사전에 ‘온돌’은 ‘ONDOL’로 표기하면서 ‘구들’은 ‘Korean hypocaust’로 표기 되는 곳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인데 ‘하이퍼코스트’는 서양 로마시대에 원시적 바닥 난방 형태인, 그것도 단지 로마시대에만 목욕탕 용으로 잠깐 사용되었던 우리 구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단순한 구조이다. 마루바닥에 수로(水路) 형태로 뜨거운 물을 흘려서 바닥을 데웠던 시설인데, 우리의 전통구들처럼 축열이나 취사 겸용 등의 복잡한 구조도 없고 불기를 직접 보내지도 않은 아주 단순하고 원시적인 구조이다. 이런 ‘하이퍼코스트’를 우리 고유의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첨단화된 구들과 비교하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따라서 영어표기로는 ‘온돌’은 ‘Ondol’로 ‘구들’은 ‘Gudle’로 표기가 되어야 하고 중국어로는 ‘溫突’로 쓰여지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온돌의 발생은 불의 관련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 옛 문헌 유적으로부터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온돌은 구석기시대부터 불의 이용으로 발생되고 오랜 시대에 걸쳐 발달된 것으로 만주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발생되어 발달하였다고 생각된다.

한반도의 온돌은 신석기 시대의 움집 화덕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는데, 이에 관한 가장 오랜 자취는 두만강 유역의 서기 전 5천 년에서 4천 년 사이의 서포항 집터에서 발견되었다. 한 줄로 마련된 5개의 화덕 가운데 양끝의 두 개에는 냇돌을 둘렀으나, 가운데 3개에는 자갈만 깔아놓았다. 이것은 양끝에서 불을 지폈다가 가운데 화덕쪽으로 모아 놓은 자국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때의 화덕은 집안을 덮이거나 밝히고 음식을 끓이는 따위의 여러 가지 구실을 함께 한 셈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고구려의 벽화와 발해의 왕궁터에 구들의 발전된 모습이 보여지는 바, 최초의 우리 민가에서 사용한 구들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이전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문헌상의 구들이 구조와 과학적 기능인 현존 구들로 발전하는데, 약 수 백 년 이상이 걸렸다고 보아 최초 원시인이 불을 획득하고, 불을 이용하여 구들을 만드는 데는 보다 수십 배의 시대가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면, 구들은 구석기 시대에 불의 발견과 사용으로부터 처음 발생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청도기 시대로 접어들어, 농사를 짓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화덕의 구실은 취사와 난방의 두 갈래로 나뉘었고, 이때부터 난방용 화덕을 집 한 귀퉁이에 붙이고, 엉성하게나마 굴뚝(구새)을 세워 연기를 밖으로 뽑았다. 이 화덕은 철기 시대에 기억자꼴 구들로 발전하였다. 평안 북도 노남리의 집 한 자리에서 나온 것이 그것이다. 동쪽의 것은 너비 30센티미터, 깊이 30센티미터이고, 남북으로 놓인 것은 너비와 굴뚝이 딸려 있었다. 방의 일부만 데우는 이 기억자꼴 구들은, 서기4세기경 황해도 고구려시기(B.C 37~668)의 안악 제3호 무덤 부엌 그림에, 음식을 끓이는 부뚜막과 난방용 아궁이를 따로 낸 것이 보인다. 따라서 이때에도 구들은 방 일부에만 놓은 것이 주류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통구들(온 방 전체가 온돌로 되어있는 경우)로 바뀌어, 방 어디에나 앉고 눕게 된 것은 고려 시대 중기 이후 일반화되고 이것은 조선 시대 초기가 되어서야, 중부 이남에까지 퍼져 나갔다.

구들에 관한 첫 기록은 7세기 중엽에 나온 [구당서(舊唐書)]의 다음 내용으로 “겨울에는 긴 구들을 만들고 그 아래에 불을 지펴서 방을 덥힌다.” 고 기록되어 있는데 중국 사람들이 ‘긴 구들’ 이란 의미로 장캉(長炕)이라 쓰였는데 이는 그들이 보기에는 당시 아주 신기한 발명품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를 ‘캉(炕)’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동북쪽의 민가를 답사하다 보면 어느 집에나 이러한 온돌인 캉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산간지대의 농민들 조차도 이것이 한국에서 들어왔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니 이는 반갑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족(漢族)이나 만주족의 온돌(溫突)은 방 앞쪽(창쪽)에 놓은 '쪽구들'과 방의 반 넓이에 시설한 '반구들' 두 가지 뿐으로, 중국의 조선족인 우리네와 같은 통구들(온구들)은 없다. 이것은 중국 사람들이 우리처럼 앉지 않고 서서 지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을 신고 집안을 다니는 입식 문화이기에 온돌이 더 이상 발달하지 않고 부분온돌형태로만 명맥을 유지 하고 있다. 또한 서양 난방은 천장만 따뜻하게 가열하는 난방인 반면 사람의 몸은 항상 천장이 아니라 추운 바닥에 있게 되어 의자 침대 등 땅에서 떠있는 불안한 상태에 있고 페치카(pechka)나 난로 등이 인체의 한쪽부분만을 데우게 된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계속적으로 온돌을 발전시켰다. 궁궐이나 집의 온돌을 살펴보면 참으로 놀라운 과학적 발명품들을 발견하게 된다. 고도의 물리학과 유체역학을 알지 못하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형태의 온돌을 우리 내 조상은 이미 수 천 년 전에 발명하여 사용했던 것이다.

*

올해로 제6회가 되는 국제온돌학회 학술발표대회를 온돌문화가 꽃피고 발전하는 중국 만주 벌에서 열린다.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바라는 바이다.

* 제6차 국제온돌학회 학술회의는 10월 19~20일까지 심양건축대학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됩니다.-편자주
관련사이트:http://jz.sjzu.edu.cn/cn/conference/lianxi-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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