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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태현상
2009년 05월 16일 13시 08분  조회:1945  추천:0  작성자: 방룡남

아폴리네르의 소설 <<오노레 쉬불락의 소멸>>은 카프카의 <<변형기>>처럼 인간의 의태현상을 쓴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오노레 쉬불락은 스물다섯되던 때에 한 유부녀와 치명적인 애정도가니에 빠진다. 그러다가 며칠동안 출장중이라는 남편의 기만술에 속아 유부녀와 둘은 알몸의 그대로 남편의 총구멍앞에 서게 된다. 오노레 쉬불락은 극도의 공포속에서 그저 꺼져버렸으면 하는 소원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벽에 등을 붙이며 자기의 몸이 그대로 벽과 더불어 함께 되기만을 기원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예기치 않은 일이 실현되였다. 그는 갑자기 벽지의 색갈이 되여버렸고 사지는 의지의 힘으로 엄청나게 늘어나서 납작하게 되였으며 결국 그의 몸은 그대로 벽과 한덩어리가 되여버린것이다. 그를 죽이려고 한참 날뛰던 남편은 그 분노를 안해에게 전환시켜 그녀의 머리에 여섯발이나 쏘아 무참하게 죽이고만다. 그리고는 절망에 울어대며 사라져버린다. 남편이 가버리자 오노레 쉬불락은 본능적으로 정상적인 모양으로 되돌아가며 본래의 색갈이 된다. 그후로부터 그는 의태의 령역에 속하는 이 요행스러운 능력을 지니게 된다.
중국 고전명작중에도 <<료재지의>>와 같은 귀신이야기가 수두룩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고 이채로우며 의태현상을 고도로 집중체현한 소설은 그래도 <<서유기>>일것이다. 손행자는 72반의 둔갑술을 가지고있으며 헤아릴수 없이 많은 요귀들이 변신술을 부릴뿐더러 하늘에는 호풍환우하며 형태나 색채를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 부처님과 신선들이 있다. 물론 소설로서의 오노레 쉬불락의 의태현상이다.
서유기의 둔갑술은 사실의 차원에서는 기막힌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의 강렬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경험내지 체험에 가까운 인상을 남기게 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그것은 소설이 거짓말에 의탁하면서도 진실과 현실에 도달하기를 포기하지 않기때문일것이다. 오노레 쉬불락의 입을 빌면 자연은 자기의 아이들중에서 위험에 빠져있는 자들, 그리고도 너무나 약하여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자기를 둘러싸고있는것들과 함께 합쳐버릴수 있는 재주를 나누어 주었다. 나비는 꽃을 닮고 어떤 종류의 벌레는 나무잎과 흡사하고, 카멜레온은 주위의 상태에 따라 몸을 잘 감출수 있는 빛갈을 바꾸기도 하는 등이다.
의태현상이란 사실 형태와 색채를 변경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의지의 본능은 두가지로서 하나는 극도의 공포와 피해의식이요, 다른 하나는 욕구불만일것이다. 생활의 일상에서 우리는 카멜레온식의 인간을 성실하지 못하고 도덕적이 못되는 위선적인 인간으로 몰아붙이며 사기군이나 협잡군과 등호를 쳐버린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은 자기의 승진을 위해 남을 모함하고 상전에 아부하는 벼슬광환자, 자기가 진리의 화신인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리성을 강요하면서 자기는 호의호식에 빠져버린 방탕아, 국가의식이요, 집체주의요 하는 아름찬 구호를 웨쳐대면서 자기는 뒤주속의 쥐처럼 나라의 재물을 좀먹는자들의 가장 교활한 수단으로 의태법이 활용되고있는 탓일게다.
그러나 사실 의태현상이 자연이 베풀어준 재주라 한다면 의태현상 자체가 그대로 비난받을것은 아니다. 생활의 일상에서도 우리는 흔히 본래의 사실을 숨겨야만 하는 때가 자주 있게 된다. 그것은 사실자체가 그대로 사회적 긍정이나 도덕적 정당성을 보증한다고는 할수 없기때문이며 지어는 정당한 사실만 있는것이 아니고 부당한 사실도 있기때문이다. 제사집에 가서 슬퍼해주고 혼사집에 가서 기뻐해주는것이 문화인의 선의적인 위선이라고 할수 있다. 무더운 삼복철에도 장소 맞춰 옷을 입는 체면을 우리는 원시인으로 퇴보하기전에는 도저히 버릴수가 없다. 점심이나 저녁식사때에 내려오는 이러저러한 검사단을 우리는 웃으며 환영할수밖에 없다. 무슨 의연이요, 부조요 하는 항목이 갈수록 많아지지만 아니내면 모르되 낼바에는 웃으면서 당연한것처럼 태연자약하는것이 리로울뿐이다. 암행어사처럼 돌연습격하는것이 황제의 행차처럼 요란스럽게 떠들면서 내려가는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풀을 다쳐 뱀을 놀래우는것이 목적의식적인것이 아니라면 현명한 관원들은 자기의 신분을 감추는 의태법을 배워야 한다. 악인이 의태법에 능하면 만사람이 해를 입을것이요, 선한자들이 의태법에 능하면 사회가 화목한 대가정처럼 하냥 밝음이 깃들것이다.
오늘도 나는 길을 가다가 풋면목이라도 있는 이를 만나면 반갑게 웃으면서 알은체 할것이다. 그보다 더 가까운 이를 만나면 오래오래 손을 잡고 살틋한 정을 나타낼것이다. 그리고 직장에 가면 모든 사람들과 깍듯이 인사를 할것이다. 찬물에 밥을 말아 김치를 먹으면서 한때를 맛있게 배불리 잘 먹었다고 안해에게 감사의 말을 한마디쯤 해주는것을 잊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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