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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빈곤이냐, 철학적 빈곤이냐
2009년 05월 16일 14시 33분  조회:2161  추천:0  작성자: 방룡남

평론을 할라치면 종종 작가의 사상 내지 주장을 포착했느니 못했느니 하는 시비가 생긴다. 나중에 타협한다는것이 주제의 다각성으로부터 평론가는 얼마든지 다른 초점에서 문제를 잡을수 있다는것이 그런대로 적극적인 태도이고 소극적이래도 평론가는 평론가대로 일가지견을 내놓을수 있다는 태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작품을 놓고 작가의 경향이 어느것인가 하는 판단에 따라 그 작품의 가치가 긍정 내지 부정되는것이니 허투루 대할수 없이 <<인명>>(작품의 운명)에 관계되는 일이겠다. 만병통치의 약이 없는 한 병을 옳게 진단하는것은 병을 치료할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상식적인 요구조건이다.
필자가 김일의 근작 단편소설 <<빈곤>>(<<장백산>>1992년 2호)을 읽으며 봉착한것이 바로 이 점이다. 풀어말하면 작가의 경향 내지 주장을 이렇게 봐도 좋고 저렇게 봐도 좋은 일이 아니라 이렇게 보면 소설이 실패한것이고 저렇게 보면 소설이 성공한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것이다.
필자가 이 소설에서 쉽게 잡은것이 사회적빈곤과 철학적빈곤이다. 달리 말하면 작가가 사회적빈곤을 썼을수도 있고 인간의 철학적빈곤을 썼을수도 있다는것이다.
작가가 사회적빈곤을 썼을 경우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와 매력은 퇴색해진다. 돈 있는자의 정신적빈곤, 글 읽는자의 물질적빈곤, 그것이 이 사회 객관 내지 일반으로 설명되는 경우 치원이나 김일의 형상은 자기의 <<비극적운명>>으로 그런 사회적빈곤을 폭로하고 호소하기에는 너무나도 가냘프고 자살적이다. 틀림없이 비극이란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한 미의 훼손이다. 그런데 치원이의 경우 그는 그런 불가항력적힘의 강타를 받기에 앞서 그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철학적빈곤으로 하여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고만다. <<상점에서 나와 가게방 뒤벽에 대고 오줌을 솨솨 내갈기>>고 <<한달 로임을 봉투채 밀어넣>>는 행위는 결코 <<금전만능의 인격론>>이란 현대문명병과는 전혀 무관한 미개병이다. 사실 그의 모대김과 신음소리는 사회적빈곤에 대한 대항적인 비명인것이 아니라 물가의 모래탑처럼 너무너무 쉽게 씻겨내리는 그 자신의 허탈한 령혼을 두고 부르는 영탄곡이다.
김일의 형상은 어떤가. 얼핏보면 그는 글읽는자로서 물질적빈곤에 모대기고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준 단색텔레비죤까지 팔아먹구>> <<그 돈으로 사흘마작>>을 논 김일, <<그저 하두 심심하니 친구들끼리 좀 놀구 또 뚜드려 먹구 소일하>>는 김일의 형상은 물질적빈곤을 호소하기에는 너무도 멀리 정신이 벌써 시들어버린것이다.
그러고보면 돈 있는자 치원의 정신적빈곤, 글 읽는자 김일의 물질적빈곤이란것은 일종의 가면에 지나지 않고 결국은 두 정신질환자가 같지 않은 가면을 쓰고 같은 극을 표현하고있는것이다.
이처럼 령혼이 방황하는 <<철학적빈곤증>>은 사회적빈곤을 폭로한다는 주제를 약화시킴에 반하여 무병신음하고 고독한체하는 인생실패자의 넉두리라는 주제를 뚜렷이 떠올리는것이다. 이런 초점에 렌즈를 맞추면 치원이와 김일의 형상은 또 얼마나 생동하고 신랄한가.
물론 그들의 고통 내지 넉두리의 근원은 그런대로 사회에 있다고 볼수도 있을것이다. 사회학적진단을 하면 경제발전기에 과연 여러가지 페단과 부식작용이 훨씬 맹렬한것이다. 이것은 계절이 바뀔 때의 발병률이 많은것과 같은 도리일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매개 사람들의 신체소질과 항역능력을 간과할수 없다. 특히 특정된 환경이 아니라 일반적인 환경에서 누구나 다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고험을 통해 승패의 두 부류가 있을 때 우리의 가치판단은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것일가.
사회적빈곤 즉 돈 있는자의 정신적빈곤과 글 읽는자의 물질적빈곤은 류행성감기균으로서 수시로 사람들을 질병에로 몰아가고있다. 그다음 제기되는것이 개체의 <<철학적빈곤>>이다. <<철학적빈곤>>자는 오뉴월고뿔도 쉽게 걸리고마는것이다. 불가항력적이 아니라 얼마든지 이겨나갈수 있는 충격앞에서 그 자신의 취약성때문에 허리꺾이고말 때 우리는 거기에서 얼마만큼의 비극성을 눈물머금고 읽을수 있을가. 자신의 라태, 무지, 무능을 덮어놓고 일방적으로 억울한체, 슬픈체, 고독한체 지어는 인류의 위기감같은것까지도 느낀체하는 어리광대같은 연기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성장을 위한 사회의 모진 진통을 절감할수 있는것이다.
아무튼 돈 있는 치원이든 글 읽는 김일이든 한바탕 허무맹랑한 광란적인 배설을 거쳐 그래도 나중엔 저들의 <<철학적빈곤>>을 깨달은것이 주제밝힘에도 명랑하지만 그보다 먼저 변화된 사회 내지 사회적빈곤에 도전하는 적극적이고 발전적인 인생자세도 보여주었다고 할수 있겠다.
<<어느날 아침 꿈속에서 깨여나면...>>
<<술 안먹고 마작도 안놀리...>>
<<우리는 잃어버린 리상을 찾자.>>
이것이 바로 작가의 호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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