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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치의 의미지
2009년 05월 16일 14시 34분  조회:2071  추천:0  작성자: 방룡남

 도덕과 질서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은 옷이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처럼 전혀 해답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기성된 도덕과 질서가 계속 사회구축의 구조적요소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계산적인 리기주의의 사치한 도덕적방패로 변질하고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현실적으로 던져진 부진이냐 발전이냐 하는 선택의 질문이다. 달리 풀어말하면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계률로서의 도덕이 허상과 실상의 사이에 등식이 성립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질문은 인간성을 해방하느냐 속박하느냐 하는 인간탐구의 가장 원색적인 문제이다.
허련순의 소설 <<슬픈 계률>>(<<천지>>1992년 4호)은 계산적인 리기주의에 복무하며 인간성을 외면하고있는 기존도덕적인 성륜리의 허위성을 고발하고있다.
<<그녀>>로 등장하는 녀주인공은 <<처녀때 너무 못생겨서 청혼하는 남자가 없었다>>고 한다. 서른살에 선택여지도 없이 한 홀애비와 결혼했으나 아들 하나 남기고 죽어버리는 결핵병환자였었다. 후에 남의 소개로 아이 셋을 둔 남자한테 시집갔으나 남편아이들이 어찌나 이악스레 나오는지 자기 자식이 주눅이 들어 기를 못펴는것이 가슴에 걸려 일년만에 리혼을 하고 나와버렸다. 그뒤 떠돌이 세방살이로 수모를 받으며 살다가 신계촌에 홀로 사는 홀애비가 좀 부실하기는 하나 일은 제대로 하고 집 하나를 쓰고 산다는 말을 듣고 자청하여 김부실댁으로 들어왔다.
<<남자에 대해선 애초부터 큰 기대같은걸 품어보지 못했던 그녀로서는 사랑이고 뭐고 단지 피곤한 몸을 담을수 있는 처지면 된다>>고 생각했고 <<아들애 하나만 눈치밥 안 먹이면 족하다>>고 생각하였다.
실로 생존본능의 가장 원색적인 추구인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명의 원색적인 추구마저 이른바 주위의 <<정상인>>들에 의해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부실이한테 시집온 근거로 같은 부실이 취급을 당하고 정상적 인간성의 욕구마저 망측한것으로 비난받으며 지어는 <<온갖 랭대와 멸시도 넉넉하게 받아당하는것>>도 <<그녀>>가 <<부실하기때문에 치욕을 못느끼는거라>>고 놀림받는다.
사실 이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과 인간성을 위협당하는 사실에 천착하는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위인것이다. 외적으로 부족한 <<그녀>>와 내적으로 좀 부실한 김부실의 생존본능의 추구는 이른바 사회 <<정식성원>>들의 인위적인 비난과 압제로 하여 부서지고마는것이다. 이것은 실상 생활의 바탕과 인간성을 멀리 떠나버린 관념도덕의 허위적인 위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벗겨버리고있는것이다. 자기들은 오장륙부가 하나도 세탁이 되지 않고서도 남을 헐뜯는데는 부쩍 열을 올리고 약한자, 부족한자를 억지로 인간대렬에서 밀어버리려는 인간추악상이 적라라하게 드러나고있다.
못난것, 부실한것이 잘못일수는 없고 악의 근원일수는 더구나 없다. <<잘난것>>, <<똑똑한것>>이 너무 잘난체, 똑똑한체 할 때 비로소 악은 생기는것이다. 특히 일잘하고 돈 잘 버는 시동생을 하루새에 <<그녀>>한테 훌떡 빼앗겼다는것이 김씨댁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때 악은 바로 김씨댁과 같이 리해관계를 함께 하는 인간들의 너무나도 계산적인 리기주의에 비롯하여 산생되는것이였다. 그들이 새살림을 꾸렸음에도 김씨댁은 아예 두 사람 다 손아귀에 넣고 부려먹으려 한다. 그래서 머리 쓴것이 <<경제권을 틀어쥐는 방법>>이였다. <<농사수입이고 남새 판 돈이고 모두 바쳐야 하고 돈을 쓸 때는 맡아내가고 밥쌀을 한주일에 한번씩 내가야 한다는 규정을 세웠다>>. 못난것, 부실한것이라는 근거로 생활자립권마저 박탈하고 그들을 노예로, 지어는 말할줄 아는 로동도구로 취급해버린것이다.
김씨댁이 자기의 이런 행위를 정당하게 위장하는 수단이 바로 자기 몸에는 그냥 더러운 똥집을 달고있으면서 남이 똥누는걸 흉보는 인간들의 몰렴치하고 루추한 심태로서 <<그녀>>와 시동생을 아주 자립할수 없는 천치로 확정해버린것이였다. 인간의 상정으로 말하면 시동생이고 동서이기에 김씨댁은 그들을 몰렴치한 인간들의 비난과 타격에서 구해내고 감싸줘야 할 보호인격이여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공짜로 부려먹을수 있다는 계산적인 리기주의는 그녀로 하여금 악의 수단을 서슴치 않고 행하게 한다. 그럼에도 이런 계산적인 리기주의앞에서 기성도덕은 과연 얼마만큼의 치유력을 갖는것일가. 관념도덕은 벌써 계산적인 리기주의자들의 사치한 장식품 내지 지어는 인간성을 속박하는 도덕적방패로 변질하고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라도향의 <<벙어리삼룡이>>에서의 천치의 이미지를 재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가장 철저한 인간탐구를 위한 인간성의 이미지이다. <<그녀>>나 김부실 역시 바보와 무지의 개념으로서 일상적, 상식적 또는 병리적차원에서의 천치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과 성실의 환상적차원에서의 천치이다. 이때의 천치는 인간을 타락과 허위에서 구제하는 천사의 얼굴이다. 약자에 대한 학대, 형식으로만 제약된 도덕이 그 앞에서 여지없이 몰골을 드러내고있지 않는가!
<<그녀>>와 김부실의 생존본능에의 가장 원색적인 추구마저 이른바 주위의 <<정상인>>들에 의해 여지없이 허물어지는 현실에 대한 천착이야말로 가장 진지한 인간탐구가 아니겠는가!
실로 소설<<슬픈 계률>>은 관념적인 도덕이나 륜리를 따지기전에 인간임을 긍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 인간선언이라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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