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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확장성과 안정성
2009년 05월 16일 15시 24분  조회:2492  추천:0  작성자: 방룡남

만해 한용운은 선사이고 독립투사이면서 또 시인이기도 하다는 종교철학적 또는 사회정치적 안목으로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그의 시집 「님의 침묵」을 불교의 철학 내지 교리로 뜻풀이하거나 사회정치적 이념 내지 민족정신으로 찬양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물론 만해의 인간과 사상을 연구하다보면 궁극적으로는 그런 결론에 도달할 당위성도 있는 것이겠으나,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만큼 만해의 탁월한 시적 재능은 그 거창한 사상성이나 정치성에 가리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다.

혹자는 그의 시를 조국애와 독립의식이 투철하다는 주장으로 애국주의시, 항일저항시로 확인하고(특히 혁명적사실주의를 주창하던 중국에서는 그렇게 가르쳤다.) 혹자는 그런 이데올로기나 협애한 인간적 삶의 추구에서 벗어나 불교적 철학에 의한 인간한계의 극복에 도달한 철리적 시로 추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물이나 존재물이든 그 고유의 본질적 속성을 갖지 못하면 그건 벌써 존재적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시가 우선 시로 읽히려면 시의 본체론적 특성이라 할 상상력과 그 상상력이 입은 옷이라 할 이미지창조에서 시적 감동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 창조된 이미지가 복합적이고 다의적이어서 끝없이 열린 확장공간으로 미끌어져 갈수 있을 때 우리는 시인의 탁월한 상상력과 시의 찬란한 매력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님의 침묵󰡕은 침묵하고 있는 님이어서 읽는 사람의 마음이나 인생자세에 따라 판단하기 나름이고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할지도 모르나 그의 거의 모든 시작품들에서 나타나고 반복되는 <님>은 사실 불교적 철학의 깨닳음이 마침내 시적 상상력의 비상을 통해 확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획득한 시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님>이 확장성을 띤 이미지라는 것은 그것이 많은 연구자들의 시각과 관점이 다른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는, 연구사검토만으로도 충분히 해석이 될 것이다.

 물론 이는 <님>이란 기표가 조국, 고향, 애인 등 다양한 기의들로 묶여질 수 있다는, 이를테면 어휘에 대한 상징적 의미해석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님의 침묵󰡕에 담은 시편들에서 <님>은 확실한 실상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고 다만 인간의 정감세계와 정신적 경험을 유대로 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한 시적 상관물의 무한한 변용에 의해 이지미화되고 있다는 텍스트 담론 분석에 충실할 때 우리는 부분적이고 지류적인 허상에 안목잡히지 않고 보다 포괄적이고 전체적이고 다의적인 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기의의 무한한 미끄러짐을 따라 언어유희적인 말꼬리잇기를 하다보면 확장성이 역(물극필반)으로 막힌 골목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님>이 안정성을 띤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에서와 같이 기의의 끊임없는 미끄러짐과 함께 의미확장이 가능하지만, 실제 시편들에서는 “두 주인공이 놓인 환경을 現實的 細部가 배제된 抽象이 아니라 생생한 具象 속에 마련하고 있”1)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정감세계와 정신적 경험을 유대로 하면서도 그 형이상학적 내용을 구상(具象)적인 시적 상관물의 변용을 통해 고집스럽게 반복적으로 나타냄으로써 이미지의 안정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철학적인 상상력이 인간의 정감세계와 정신적 경험을 유대로 하여 시적 상상력을 촉발하였다면 이러한 형이상학적 내용을 다시 구상(具象)적인 시적 상관물을 통한 이미지창조 내지 독특한 상징적 의미매김으로 제시함으로써 자유로운 상상속에서도 상징적 또는 비유적 의미구조에서 상대적으로 형태적인 안정성을 굳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상대적인 형태적 안정성이란 곧 믿음, 희망, 사랑일 것이다. <믿음>이 있어 이별에서조차 만남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으면 <님>은 <남>이 되어버린다. 믿음과 희망과 존경과 사랑의 대상물로서의 <님>이라면 이때의 <남>은 그냥 타인이 아니라 <서로의 감옥>일 것이다.

이와 같은 이미지의 독특한 상징적 의미들을 좀더 시와 함께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시적 상관물들이 즉물적 형태 내지 의미에서 벗어나 이미지창조에서 비물질적 가치 또는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였을 때라야 시는 시로서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는 한용운의 시세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200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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