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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소설의 리얼리즘 정신
2009년 05월 16일 15시 32분  조회:2947  추천:0  작성자: 방룡남
 

1. 들어가는 말

2. 리얼리즘정신과 현진건 소설의 3단계 발전

  3. 나오는 말



1. 들어가는 말


한국의 근대문학을 갑오개혁 이후에서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문학, 즉 신소설, 신체시의 산생과 함께 서구 근대 문예사조들을 수입하던 시기의 문학이라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근대문학의 흐름은 초기에 사조와 기법의 범람이 무질서하게 일어나다가 차츰 정리되고 리얼리즘이 주조를 이루게 되었다고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의 특정 현실에서 출발하여 세계문학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근대문학 형성기의 한국은 근대사회에로 주체적인 발전을 하지 못하고 열강들의 힘 나아가서는 일제 식민통치에 의한 강박실행으로 하여 근대사상의 민족적 주체가 온전하게 형성될 수 없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학사조도 또한 근대사상의 민족적 주체의 형성과정과 함께 범람과 굴절과 정리의 적응단계를 거치게 된 것이었다. 격세지변의 시대에 주체성마저 상실한 민족의 문학현장도 지극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 15세기 르네상스 이후,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에 일어난 세계 근대문학은 주로 현실에 접근하여 인간의 문제를 사회와의 연관 속에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아의 각성을 다루었다. 이러한 주류적인 문학경향은 낭만주의 이후의 자연주의, 사실주의 문학으로 물꼬를 틀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 특히 제일차세계대전을 전 후로 유럽은 정신사적으로 심한 아픔을 겪으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에서 혼란기를 맞았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예술적 감수성에 있어 19세기가 실현했던 리얼리즘적 종합의 능력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소멸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리얼리즘이 지배했던 시대 이후는 <비(非)리얼리즘 문학의 시대>라고 확정지을 수 있다.”1)

이 비 리얼리즘문학이란 리얼리즘문학에 반대하는 단일 문학사조가 아니라 리얼리즘과 대립되는 모든 부류의 문학경향 내지 사조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사조의 범람은 근대의식을 배우는 학생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를 비롯한 한국지식인들에 의해 그대로 한국문단에 범람하게 되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사회현실과 근대사상의 민족적 주체성 확립을 위한 몸부림 속에서 현실에 접근하고 사회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리얼리즘정신이 작가사상의 기본 흐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는 1919년의 3․1운동을 문화배경으로 할 때 더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정신적 곤혹․방황과 함께 더욱 사회를 직시하게 된 결과였다. 이는 또 작가의 시대적 고민의 사회적 원인을 근원적으로 파헤치는 작업과 직결되어 많은 작가들의 옹호를 받게 된 것이다.

리얼리즘이 미성숙에서 성숙에로 발전하는 과정은 바로 객관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성찰하는 작가적 사상의 성숙과정이었으며 구체적인 형상을 통하여 일반적인 사회본질을 제시한다는 리얼리즘의 참 정신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김동인의 「약한자의 슬픔」등은 심리묘사나 성격창조에서 소박하게나마 리얼리즘의 특성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김동인의 경우 많이는 소설형식 그 자체의 미학적 추구에만 집착한 나머지 결국 문학을 위한 문학에로 떨어져 사회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성찰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무력하게 그리고 고립적으로 묘사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에 비해 염상섭은 초기작품인 「표본실의 청개구리」에서 벌써 리얼리즘 문학에로 한 걸음 다가서면서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민과 아픔을 통하여 사회의 암흑면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도 결국은 현실묘사에서 기계적인 수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인식 또한 지극히 주관적인 약점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인물의 개성적인 창조와 매개된 사회현실의 본질적 제시에 문학의 진가를 두고 있었던 염상섭은 「만세전」에 와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당대 식민지사회 상황을 보다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제시하면서 주인공의 발전적인 성격을 창조하는데도 성숙한 작가적 역량을 보임으로써 리얼리즘문학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한국 근대리얼리즘문학의 성장과정을 작가적 성숙과정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투명하게 보여준 작가는 아무래도 빙허 현진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진건의 「빈처」,「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등 초기 작품에서는 주인공 내지 작가의 사상적 방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아직 습작의 단계에 있었던 작가의 미성숙과 갈라놓을 수 없을 뿐더러 역시 당시의 시대상황과도 연관되는 것이고 나아가 창작기법으로 수용된 리얼리즘에 대한 철학적 이해의 빈곤하고도 무난하지 않은 것이었다.

근대의식의 세계적인 물결을 따라 형성되기 시작하였던 시민사회지향의 민족주의는 외세의 식민통치에 의하여 민족적 주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신구대립의 역사적 과업을 짊어진 채로 우선 민족생존의 운명 앞에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다. 특히 1919년의 3․1독립운동이 일제탄압에 의해 실패하면서 민족계몽운동과 함께 애국주의자였던 지식인들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 사상적 방황과 인생의 곤혹으로 몸부림쳤다.

현진건의 초기 작품들은 리얼리즘의 요소가 다분히 들어있으면서도 이러한 시대적인 진통 속에서 그 아픔을 근원적으로 진맥하고 인생을 총체적으로 철학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의 20대 초반이었던 사상적 미숙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의 초기 작품에는 또 「희생화」와 같이 신구관념 교체기의 진보적 이념을 포장 없이 드러낸 습작품에서 멀리 지나오지 않은 시기에 발표한 작품으로서의 한계성도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의 경우에도 예술적 진실과 사회적 현실의 유기적인 통일을 시도하고 있는 작가의 기량과 역량은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잠재적 역량은 마침내 「운수좋은 날」에서 주관적인 시각과 순수 개인적 삶에서부터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과 사회적 현실에로의 확장된 의식성향을 보이게 되었고 「고향」에 오면 마침내 성숙한 리얼리즘정신을 발산하게 된다.

이는 “조선 혼과 현대정신의 파악”에 문학정신을 수립한 작가가 마침내 리얼리즘의 진수를 득도한 결과였다고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 리얼리즘정신과 현진건 소설의 3단계 발전


빙허 현진건은 1920년 <개벽>지에 단편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얼굴을 나타냈다. 이 작품은 비록 신구관념 교체기의 진보적 이념을 문학적 장치가 어설픈 대로 별로 포장 없이 드러낸 습작품이긴 하였으나 그만큼 갓 이십대(1900년 생)에 들어선 현진건의 미래지향적인 삶의 출발을 알리는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선은 그의 작가적 생애의 출발점이라는 데서 자리 매김을 할 수 있겠고 다음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신구관념 교체기에 진보적 이념을 추구하고 사회현실을 직시하고 성찰하는 작가적 자세를 정립하는 계기였다는 데서 의미 매김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해 걸러서 발표된 「빈처」, 「술 권하는 사회」를 통해 충분히 실증되고 있다.


1) 첫 번째 단계: 리얼리즘의 지향-「빈처」 「술 권하는 사회」


혹자는 “「빈처」는 「희생화」의 연장선 위에 놓여진 작품으로, 그 소재가 새로울 것도 없으며 더 뛰어난 비판정신이나 투철한 역사의식의 발현도 없다. 다만 그의 사실주의적 기법의 발전이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사회 변동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긴 하지만 그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 민족적 차원에서 파악해야 할 문제에까지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2)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오히려 「빈처」는 바로 작가가 「희생화」의 이념적이고 도식적인 계몽소설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 리얼리즘지향의 징표였다고 확인할 수 있다.

위의 평자가 「빈처」와 「희생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재단하는 것은 “그 소재가 새로울 것도 없으며”에서부터 벌써 지극히 독선적이고 주관적인 결론에 빠진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희생화」는 다만 신구관념 교체기에 이념적 진보를 추구하는 미완성 청년의 가치지향을 작가이념 그대로 전달하고 있으나 「빈처」는 이러한 추상적인 가치추구에서 벗어나 암흑하고 불안한 시대상황에서 정신적 방황과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는 지식인 청년의 심리적 갈등을 구체적으로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품은 그러한 심리적 갈등을 사회현실과의 매개 속에서 근원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회인식이 변질된 시대에서 사회에 선택될 수 없었던 개인의 심리적 방황과 고민이라는 상황은 벌써 “현상적 현실에 대한 탐구는 현실과 맺는 관계의 확실성을 되찾는 수단이 된다.”3)는 리얼리즘의 한 원리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을 따라 사건관찰의 시각을 확인해 보면 이 작품은 작가지망생인 나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존경하면서도 주변인간들이 발산하는 속물적 유혹에 대해 본성적으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내와 나의 갈등(기실은 그런 아내를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의 심리적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은 아내와의 직접적인 충돌이 아니라 아내의 모순된 심리에 대한 관찰을 통한 ‘나’ 자신의 심리갈등에 시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작품은 속물적인 인생을 살지 않으려 하면서도 정신적 성장의 길이 막힌 암흑한 사회현실에서 방황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 젊은 지식인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당대 사회현실을 외면한 채 속물적으로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을 멸시하면서도 그 자신의 무능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상황 때문에 정신적 성장이나 인격완성을 할 수 없었던 시대여건이 희미하게나마 주인공의 심리자세를 통해 알려진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유능한 인간’들의 속물적인 타락과 아내와 같이 자기를 인정하고 또 자기가 기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지 속에서 스스로 갈등하고, 그러면서도 인격완성을 사회현실에서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고 주관적으로만 고집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신구관념 교체기에 반역사적인 봉건윤리 관념의 상징물인 중매결혼이 작가들의 비판대상이 되었고 현진건 자신이 「희생화」에서 신사상을 주장하였으면서도 「빈처」 등 작품의 주인공들이 도리어 그 봉건적인 가정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대로 의식과 생존이 분열되는 당대사회의 삶의 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 지식인들은 대개 유학을 많이 하였고 적지 않게는 바로 가부장제적 봉건윤리 관념의 소산인 봉건가정을 탈출하여 유학의 길을 갔었으니 그런 행위 자체가 근대사상의 동경이요 봉건윤리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럼에도 「빈처」의 주인공은 유학에서 돌아온 후 사회를 향한 정신적인 가치추구는 전혀 실현가망조차 보이지 않고 다만 주관적으로 정신가치를 고집하면서 유일하게 자기를 존경하고 자기에게 순종하는 봉건가정의 아내한테서 자기의 가치를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사회발전의 근대사상을 추구하는 ‘나’와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지는 봉건사상에 염색된 아내의 원상회복과 정신적 행복은 아무런 미래제시나 대안도 없는 ‘나’의 정신적 가치추구로 하여 역설적이고 불행의 씨앗이 묻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은 한 젊은 지식인의 개인적인 삶을 다루면서도 그의 정신적 방황과 고민이 그냥 허영이나 무능에 의한 개인적인 것에 있지 않고 정신적 가치가 추락하고 식민지 지식인으로서는 도저히 정신적 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당대 사회현실을 폭로하고 있다는 데서 리얼리즘의 추구가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콘텍스트적인 의미담론에서는 주인공과 사회를 모순의 한 쌍으로 볼 수 있으나 실제로 그 서사구조에서는 당대사회의 특정한 현실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주인공의 실패의 과정이 현실적으로 사회를 폭로할 수 있는 어떤 사건과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다. 그런 한계 때문에 주인공의 정신적 방황은 추상적이고 실패의 원인도 자신의 무능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약점을 작가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극복은 그의 작품을 한 걸음 리얼리즘에 다가서게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때로부터 작가 현진건은 벌써 자기가 이미 발표한 작품에 대해서도 항상 진지한 문학적 검토를 하였던 듯싶다. 그리고 그러한 검토의 잣대로 리얼리즘을 선택하였던 듯싶다. 바로 그러한 작가적 자세가 그를 나중에 리얼리즘의 완전한 등반에 성공하게 하였을 것이다.

「술 권하는 사회」는 작가가 「빈처」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썼지 않았나 생각되는 작품이다. 그것도 “구체적인 전체인 창작 안에서 전체로서의 인간을 사회의 부분으로서 묘사한다.”4)는 리얼리즘의 한 원리에 접근하여 구체적인 개인을 사회와 결합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비록 인물과 구성은 「빈처」와 많이 닮아있지만 서술시각이 크게 바뀌고 있다.

우선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사회에 대한 작가의 아니꼬운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고민하는 근본 원인이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는 것을 제목에서부터 확인한 작품은 부조리한 사회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는 주인공의 울분을 통하여 좀 더 직접적으로 사회에 시각을 돌리고 있다. 그가 술을 마시는 것은 무슨 화증이나 ‘하이칼라’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슨 회를 하나 꾸려놓고도 처음은 민족을 위하느니, 사회를 위하느니 하면서 목숨마저 서슴없이 바칠듯하던 인간들이 이틀도 되지 않아 명예와 지위를 위해 싸우고 찢어발기는 당대 조선사회의 몰락과 지성인들의 속물적인 타락 앞에서 취한 자학이었다.

정신적 가치추구를 하면서도 이와 같은 전체적인 몰락상 앞에서 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주인공은 소극적인 자학으로 세상을 등지려고 하지만 아무튼 그것은 타락한 인간들에 대한 저주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이 작품의 주인공은 「빈처」의 주인공보다 정신적인 가치지향에서 사회구원에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회의 부조리와 억압에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고민할 뿐더러 무지로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삶조차 역사를 역행한 과거를 살고 있는 아내를 더는 참아줄 수 없어 마침내 집을 탈출한다.

이러한 결말은 정신적 가치추구를 하던 주인공한테는 부조리한 사회가 출구가 없는 닫힌 공간일뿐더러 역사의 잔재로 남은 봉건가정도 그의 영구한 안식처는 아님을 시사해준다.

이 작품에서는 아내 스스로도 남편과의 긴 대화에서는 늘 보이지 않는 어떤 장벽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빈처」의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실패하면서도 전혀 지적교신이 있을 수 없는 아내한테서나마 정신적 위안을 받으려는 허위성을 드러내고 있는데 반하여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은 보다 사회공익 내지 사회구원의 사업에서 정신적 가치추구를 하였던 지성인답게 아내의 무지와 몰이해에 마침내 집을 탈출하고 마는 것이었다.

사회 지성인들의 속물적 타락과 구제불능의 사회몰락 앞에 술로 자학하던 주인공이었다면 그런 심리배설에 가까운 울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또한 자학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근대의 여명을 맞았으면서도 식민과 봉건이라는 두 개의 질곡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을 가두고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오물구덩이 같은 사회를 술로 망각하려 하고 다시 집을 탈출하는 것으로 무지와 외면하려 하는 주인공은 신구관념 교체기를 살면서도 결국 식민지 억압에 의한 정신적 가치의 상실로 방황하고 고민하던 당대 지식인의 전형적 형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결말은 「빈처」에서 보여준, 사회발전의 근대사상을 추구하는 ‘나’와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지는 봉건사상에 염색된 아내의 원상회복과 정신적 행복은 결국 아무런 미래제시나 대안도 없는 ‘나’의 정신적 가치 추구로 하여 역설적이고 희화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작품도 비록 주인공의 울분 토로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동료나 주변 지식인들의 속물적인 이기심을 질타하고는 있지만 현실사회 상황 내지 시대특성에 대한 객관적인 제시가 없고 주인공의 삶의 사회적 갈등도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런 대로 문제의 제시는 좀 더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술 권하는 사회」가 「빈처」의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사회적 시각에서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매개되는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삶의 구체적 양상을 사회적 부분으로 전형화하지 못하고 있다.

“리얼리즘은, 그것이 현실을 지향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한, 새로운 총체성을 구상하는 노력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이다.”5)

이러한 한계를 느끼고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현실을 보여주고 그 사회현장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구체적 삶의 양상을 통해 구체성과 보편성의 유기적 통일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 바로 「운수좋은 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두 번째 단계: 사회현실을 매개하는 구체화-「운수좋은 날」


뒤에 발표되는 소설이 앞에 발표된 소설의 한계를 극복하는 단계적인 발전과 변화의 모습은 작가 현진건이 리얼리즘의 진수를 밝혀내고 그것을 자기의 창작주장으로 확고하게 자리 매김 해 가는 성숙과정을 실천적으로 투명하게 보여준다.

「운수좋은 날」에서는 앞의 소설들이 보여준, 사회를 관찰하는 시각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찐하게 보이고 있다.

이때에 이르러 작가 현진건은 앞의 소설들이 사회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데 있어서 작가적 시각의  한계가 있었음을 확인하였던 것 같다.

초기작품에서의 작가적 시각의 한계는 1919년의 3․1독립운동이 일제의 탄압으로 그 역사적 의의만 깊은 채 비운의 장막에 가리어지고 민족계몽운동의 주자들이었던 지식인들이 방향을 상실하고 정신적 공황을 앓고 있던 모습 그 대로의 발로였다고 할 것이다.

이는 작가 현진건 자신이 그런 방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고 그만큼 그의 창작은 지식인의 고민을 고립적으로 새김질하는 근시안을 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걸치면서 창작을 통한 문학적 성찰은 현진건으로 하여금 작가적 사상의 성숙과 리얼리즘정신에 대한 핵심적 파악으로 하여 창작시야와 공간을 넓힐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지식인의 울타리 속에서도 주로 자기 자신의 신변체험과 고민과 아픔에 시선을 빼앗겼던 현진건은 마침내 머리를 들어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작가적 안목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한 안목으로 작가는 당대사회의 본질적인 부조리는 단지 지식인들의 고민과 방향상실만이 아니라 그것에 앞서 인간의 생존자체가 근원적으로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삶의 권리마저 박탈하는 당대사회, 그것은 빛을 차단한 닫힌 공간으로서 물론 지식인의 정신적 가치추구를 변질시키는 오물구덩이이기도 하였다.

작가는 바로 그 사회현장에서 원초적인 삶의 욕구에 몸부림치는 인간을 찾아내는 것이 당대현실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리얼리즘정신이라고 확인하였을 것이다.

사회현실을 바라보는 이러한 작가적 시각의 변화 내지 확장은 자연히 사회적 삶의 현장을 작품 주인공의 활동무대로 설정하게 되고 그와 같이 넓어진 공간과 객관적 관찰을 위해 전지적 화자의 시각으로 주인공을 추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리얼리즘문학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가진 상황을 예술 속에서 다루는 것이다. 그런 한에서 이른바 자유로운 창조나, 현실을 완전히 등지는 것은 리얼리즘과 거리가 먼 것이다.”6)

「빈처」나 「술 권하는 사회」의 플롯이 주로 사회에서 퇴장한 후에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공간이 이루어지는 집-가정을 무대로 하고 ‘나’와 아내의 대화로 구성되고 있다면 「운수좋은 날」은 주인공 김첨지의 인력거의 바퀴자국이 찍히고 있는 열린 사회현장-서울 동소문 안을 무대로 하여 최하층 인간들에게 삶의 최저 여건마저 주어지지 않은 절망적인 사회현실을 날카롭게 폭로하고 있다.

앞의 두 작품이 주인공과 아내의 눈 사이 거리에 시각이 제한되고 그들의 대화로 모든 사회적 요소들이 간접화 추상화되었다면 「운수좋은 날」에서는 단편의 특성에 맞게 주인공의 현실적인 삶의 일상에서 가장 전형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그 사건을 예술적으로 꾸며줄 수 있는 부수적이면서도 극적인 세부들을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눈이 올듯하던 날에 방정맞게 얼다가 만 비가 내린다는 서두는 날씨마저 여상하지 않음을 제시하여 이런 「운수좋은 날」의 불길함을 벌써 아이러니컬하게 색칠하고 있다.

이처럼 제목과 서두에서부터 대립 항을 설정하면서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작품은 행운과 불안을 동시에 감수하는 김첨지의 복잡한 심리적 변화, 표리가 틀린 반상의 행위, 속되고 거친 말투 등 치밀한 묘사를 통하여 기법에서부터 리얼리즘의 성숙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주인공 김첨지의 형상이 당대 사회현실의 원색적 삶의 양상을 형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전형이라고 할 때 작품은 현실사회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리얼리즘정신에 충실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20년대 한국 하층민들의 삶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상황을 알아보면 투명하게 보아낼 수 있는 것이다.

“1920년대와 30년대를 통해 식민지 지배당국이 춘궁민 혹은 세궁민으로 지목한 농촌빈민은 대체로 전체 농촌인구의 절반 가까이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연간 약 15만 명 정도가 농촌을 떠난 것으로 통계되었다.(중략) 192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하는 화전민, 이 시기에 처음으로 생겨나는 도시지역의 토막민(土幕民)과 전국 각 지방 토목공사장의 날품팔이 노동자 등은 모두 이들 농촌빈민 출신의 자기소유가 없는 노동자적 존재들이었다.”7)

“식민지시기 농촌빈민의 이농(離農)현상은 도시지역에서의 노동시장 형성에 의한 노동력 흡인의 결과가 아니라 농촌 내부에서 생산수단을 잃고 노동자적 처지에 빠진 농민들의 실업, 빈민화, 파산에 의한 이른바 밀어내기식의 이농이었다.”8)

말하자면 이 시기 농민들의 대량적인 도시진출은 결코 정상적인 근대자본주의 발전이나 도시 기계산업의 성장으로 인한 노동력 흡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농촌의 토지수용 내지 약탈, 지주세력의 강화에 의한 소작조건의 악화와 소작료의 고율화, 마름의 중간수탈 등을 통한 가혹한 착취에 생존의 기본조건마저 상실한 빈민층의 확산의 결과였다.

그것은 오히려 도시와 그 주변에 토막민이라는 새로운 빈민계층을 형성하면서 가뜩이나 도시산업화의 미숙성, 후진성 때문에 일자리를 얻기 힘들었던 도시민의 생활에도 걷잡을 수 없는 충격과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날이 갈수록 도시지역도 빈민층의 수가 증대해가고 그 처지가 갈수록 어렵고 처참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원색적인 삶의 양상이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원인을 안고 있는 주인공 김첨지의 삶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면 주인공 김첨지는 과연 당대사회에 확산되어 가고 있던 빈민층의 전형적 형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작품은 한 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특정한 사회현실과 연계시키고 있는데서 리얼리즘의 성공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작가의 묵시적인 시각에서만 한 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특정한 사회현실과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당대가 하층민들이 살아가기에 어렵고 그리하여 과연 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삶을 살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결론을 앞세운 작가적인 시각을 감각적으로나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만큼 작가는 아직 작품의 서사를 통하여 그 특정한 사회현실의 총체적 또는 본질적 근원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고 지어는 상술한 시대적 배경 내지 상황도 주인공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투명하게 확인할만한 구조적 짜임이나 기술적 장치로 설정되어 있지 않고 있다.

이는 작가 현진건이 문학창작에서 리얼리즘의 핵심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음에도 아직 그 진수를 완전히는 터득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즉 작가 현진건은 소설주인공의 개인적인 삶을 당대사회현실과 연계시켜 묘사해야 한다는 리얼리즘의 이해에는 도달하고 있으나 그 당대사회현실을 현상적 내지 사실적으로 파악하였을 뿐 그것을 총체적인 관찰과 이성적인 성찰을 통해 본질적으로 밝혀내지 못하였던 것이다.

여기에서 현진건은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 초기단계의 작품에서 사회현실에 대한 반영으로 리얼리즘의 요소를 내비치면서도 시각적인 한계를 드러냈다면 「운수좋은 날」 등 제2단계의 작품에서는 그런 시각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현실에로의 확장을 보여주면서도 아직 객관적 현실에 대한 이성적 성찰에 도달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진건의 창작단계를 그 뒤로 제3단계까지 밝힐 수 있음은 창작에서의 작가의 진지한 성찰과 리얼리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제3단계에서 앞 단계의 시각적 한계와 객관적 현실에 대한 총체적 파악, 이성적 성찰, 객관적 제시를 하지 못하였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작가의 성숙된 역량과 리얼리즘의 완숙함을 보여준 대표적 작품이 바로 단편소설 「고향」이다.


3) 세 번째 단계: 사회현실의 이성적 성찰-「고향」


「운수좋은 날」에서 작가는 당대사회현실을 주인공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통하여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그 당대사회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성적으로 성찰하지 못하였다면 「고향」에서는 바로 그 당대 사회현실의 발생근원을 파내고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전형적 주인공이 상징하는 무리에 속하는 인간은 누구나 다 그런 운명일 수밖에 없는 역사적 근원 내지 사회적 뿌리를 파헤치고 있는 것이었다.

농촌에서의 토지수탈과 소작조건의 악화 및 소작료의 고율화로 생겨나는 빈민층의 확산과 그들의 도시진출의 결과가 도시사회의 절망적인 삶의 현실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그런 사회현상의 기저에는 바로 일제 식민지 토지정책 나아가서는 전체적인 식민지통치정책의 음모가 바탕으로 깔려있는 것이었다.

우선 전체적인 식민지통치정책에서 보면 “조선에서의 중소지주․자작농․자소작농 등 농촌중간층의 성장을 억제하고 농촌사회를 일본인 및 조선인 대지주와 그 소작인으로 양분하여 농촌에서의 민족부르조아적 계층의 성장을 저지함으로써 그 식민지 지배를 영구히 하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9)

다음 식민지 농업정책에서 보면 “<토지조사사업>, 수리조합사업, 일본농민의 조선에의 식민 등이 일본인의 조선에서의 토지소유 및 지주화를 조장하는 정책이었고, 따라서 그것은 조선의 중소지주층․자작농층․자소작농층 등의 농촌중간층을 소작농으로 몰락시키는 정책이었던 것이다.”10)

농촌의 토지수탈 및 그로 인한 빈민화현상이 일제의 농업정책 나아가서는 식민지통치정책에 직결되는 필연적인 결과라면 그것은 다만 당대사회의 한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바로 국가 내지 민족 전체의 운명에 씌워지는 멍에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작가는 이성적인 성찰을 통하여 마침내 당대사회현실을 총체적으로 포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운수좋은 날」의 주인공 김첨지의 삶의 양상을 일제 식민통치의 사회현실에서 민족적 억압 내지 수탈이라는 본질적인 원인에 의한 보편적 운명으로 확인하지 못한 한계를  느낀 것만 같다. 즉 당대 사회현실에서 가능했던 하나의 구체적인 사실로만 읽혀지는 주인공의 형상적 한계가 바로 인물의 구체적인 운명을 당대 사회의 객관적 삶의 양상으로 승화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면서 「고향」에서는 떠돌이 주인공의 시대적 운명을 그가 속한 국가 내지 민족의 운명과 연결시키고 있다.

주인공의 떠돌이 삶은 그 계기부터 일제 농업수탈정책의 선봉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농토를 빼앗긴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주인공의 떠돌이가 그 한 개인의 운명이나 선택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당한 핍박이었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양척식주식회사의 토지수탈은 그대로 일제의 식민지통치정책을 수행하는 일부였던 만큼 주인공의 고향에 대한 그들의 수탈은 곧 한반도에 대한 일제식민지수탈의 한 축도임에 다름 아닐 것이었다.

이처럼 사건의 계기에서부터 주인공의 떠돌이 운명은 당대사회의 객관적 삶의 조건에 의해 주어지고 있다. 즉 그것은 일제의 토지수탈에 의해 고향에서 삶의 뿌리를 뽑히고 정처 없이 살길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던 당대사회 농촌 빈민층의 삶의 객관적 양상이었다.

대구 근교의 평화로운 농촌의 농민이었다는 표현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른바 토지수용의 약탈성을 대비적으로 날카롭게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구성으로 보아 주인공의 삶의 아픔이나 식민지통치정책에 의해 수탈당하는 민족의 비운을 현재형 사건 속에서 전개시키고 있지 않다. 작품은 ‘나’가 찻간에서 만난 떠돌이한테서 그가 떠돌이를 할 수밖에 없게 된 동기와 편력을 이야기 듣는 형식으로 엮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을 아무런 사건이나 갈등도 없이 단순하게 한 떠돌이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사회현실의 부조리 내지 일제식민주의자의 침략적 야성을 폭로하는데 그쳤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작품의 주인공 ‘나’가 단지 떠돌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역할만을 하고 있지 않음에 주의를 돌리게 된다. 이 작품의 ‘나’는 김동인의 작품 「배따라기」에서의 ‘나’처럼 다만 이야기를 이어주는 접속어의 역할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작품에서는 ‘나’가 처음에 중국인이나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떠돌이를 우습게보고 외면하던 데로부터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이야기를 듣게 되고 대화를 하게 되고 나중에 그와 어우러지게 되는 감정적 기승전결이 아주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적 변화에 대응되는 것이 떠돌이의 마술사와 같은 신분상징의 복장변화이다. ‘나’의 감정과 떠돌이의 ‘복장’이 민족이라는 동질적인 내함에서 융합되는 그 시점에서 마침내 ‘나’는 ‘조선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주인공의 복장변화는 얼핏 보아서 작가의 의미담론을 위한 인위적인 장치인 것 같다. 그러나 주인공이 더 이상 윤락할 수 없는 하층민-떠돌이라는 신분으로 하여 그것은 당대의 삶의 조건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상대에 따라 신분 변화를 나타내는 복장요술은 시대를 변혁할 아무런 힘도 없는 하층민의 변질된 반항의식의 표출형식일 수 있다. 소설이 따라지 인생을 취급하고 특히 리얼리즘이 구체적인 인물을 통하여 보편적인 사회본질을 밝혀낼 때 권위적인 상층인과 따라지 인생의 하층민 사이의 모순은 흔히 풍자와 희화화로써 전개된다.

“리얼리즘 예술은 원리적으로 ‘해학의 반문화(反文化)’에 속하게 되며, 모든 권위 위주의 이상을 구체적이고 세속적인 것과 대비시킴으로써 비판하는 것이다. 리얼리즘이 엄밀한 방법인 경우에 풍자적인 웃음과 해학은 반어(反語)가 되며, 거짓된 이상을 파괴하는 계몽적인 노력을 향한 반어의 진지함과 지속력은 역시 반어로부터 나오는 웃음이 뒷받침하게 된다.”11)

「빈처」나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인 지식인과 「운수좋은 날」의 주인공인 하층민이 하나의 작품에서 만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가설적인 판단은 배제하고라도 아무튼 첫 단계의 소설에서 당대사회현실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정신적 방황과 고민에 몸부림치던 지식인이 일제식민지 토지수탈정책으로 하여 고향에서 쫓겨나 떠돌이 신세가 된 조선농민의 모습에서 당대 조선사회의 본질적 모순과 그에 의해 주어지는 조선인의 비참한 운명을 보고‘조선의 얼굴’을 발견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향」은 단지 떠돌이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식민지 사회현실의 암흑상을 폭로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런 객관적 현실을 마침내 식민지 지식인의 눈을 통해 총체적으로 확인하고 각성한다는데 정서적 흐름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제3단계의 「고향」에 이르러 작가 현진건은 사회를 총체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작가적 성숙과 리얼리즘의 완숙함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3. 나오는 말


근대화자체가 외세에 의해 강행되었던 근대한국에 있어서 문학사조 역시 사회정신사의 발전에 앞서 근대적인 문예기법으로 수입되어졌다. 그만큼 사조의 범람과 혼란이 불가피하였고 점차 사회현실을 대상으로 한 문학창작의 임상실험을 통하여 리얼리즘이 주조를 이루면서 정리되어갔었다.

근대화를 실현한 서양의 근대사회와는 달리 근대한국은 일제식민통치하에 국권을 상실하고 민족이 멸망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은 만큼 정신사적 속성을 띠고 있는 문학사조도 민족의 운명과 긴밀히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성적으로 성찰하는 리얼리즘이 자연히 주조를 이루게 되는 것이었다.

사조의 범람과 혼란 속에서 리얼리즘이 주조를 이루어 미성숙에서 성숙에로 발전하는 과정은 바로 객관현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성적으로 성찰하는 작가적 사상의 성숙과정이었으며 현실을 객관적으로 제시한다는 리얼리즘의 참 정신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그러한 리얼리즘의 발전을 작가적 성숙과 함께 단계적으로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빙허 현진건이다.

현진건은 초기단계의 작품에서 인간의 구체적 삶을 사회현실과 결합시키는 리얼리즘의 요소를 내비치면서도 시각적인 한계를 드러냈고 제2단계의 작품에서는 그런 시각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현실에로의 확장을 보여주면서도 아직 객관적 현실에 대한 총체적 파악과 이성적 성찰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3단계에 와서 그는 앞 단계의 그러한 작가적 미숙성을 극복하고 리얼리즘정신의 핵심에 접근함으로써 마침내 사회를 총체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작가적 성숙과 리얼리즘의 완숙함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강만길,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 창작사 1987.

김열규/신동욱 편,『현진건연구』, 새문사, 1989.

김중하, 「현진건 문학에의 비판적 접근」, 김열규/신동욱 편, 󰡔현진건연구󰡕, 새문사, 1989.

서종택/정덕준, 『한국현대소설연구』, 새문사, 1990.

스테판 코올, 󰡔리얼리즘의 歷史와 理論󰡕, 여균동 편역, 한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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