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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남들이 나의 안해를 지나치게 춰올리는게 그리 달갑지가 않다. 어떤 모임이나 사교파티같은데서 ꡔ사모님 믿진게 아니요? ꡕ 이렇게 나의 안해를 슬쩍 춰줄 때면 나는 슬그머니 한쪽 죽지가 축 처져내리곤 한다. 사교례절이라고는 하나 이때 내 안해라는 사람의 묘한 웃음---수줍은척하면서도 어딘가 시뚝해지는 그 표정이 가슴 한쪽을 섬찍하게 건드려놓기까지 한다.
솔찍히 말해서 지금의 안해와 사귀고 련애하고 결혼할 때 나는 이 녀자가 나에게 넝쿨채 굴러들어온 호박이라고 생각해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저녁 하도 밥맛이 없길래 가까이에 있는 랭면옥에 가서 랭면에다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있는데 우연히 말을 걸어와서 맺어진 인연이였다. 동북의 어느 대학교 외국어과를 나와서 북경에 있는 외국회사에 취직하고있다고 하였다.
ꡔ월금이 많겠네? ꡕ
나는 그러루한 회사원의 봉급이 꽤 높다는 소문을 들은적이 있는터라 얼결에 이런 말을 터뜨려놓았다.
ꡔ겨우 5백원인걸요. 먹고 입고 집세 내고나면 별로 남는게 없습니다.ꡕ
저그만치 5백원이란다. 졸업한지 겨우 일년도 채 안되는데 5백원도 ꡔ겨우ꡕ라고 하니 참 요즘 세월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취직한지 7년만에 강사 하나 요행 따내서야 백 몇십원꼴인 나에게는 그 ꡔ겨우ꡕ라는 말이 너무나도 분에 넘친다.
ꡔ난 명색이 강사라고 그래도 요즘 말로는 중급 인테리인셈인데 얼마를 받는지 알아요?ꡕ
ꡔ글쎄 말입니다. 직업마다 다르겠죠. 무료치료같은걸 말입니다. 그리구 선생님은 북경호적에 올라 있잖아요. 북경호적은 만원을 줘도 못산다지 뭡니까? ꡕ
그건 사실이다. 수십수백만이 호적없이 들어와 살아도 수도인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북경호적을 제한한다는게 오늘의 도리이다. 호적이 무슨 대수야, 돈만 있으면 어데서나 내노라 하며 사는 이 세월에.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입밖에 낼수 없었다. 그 만원을 주고도 못산다는 북경호적외에 내겐 아무런 우월감도 없지 않은가. 학문? 어디 가서 입에 올려보아라.ꡔ웃기시네ꡕ다. 나는 시도 조금 쓴다. 하지만 내 시를 읽고 감동될 사람이 이 사회에 몇이나 될가? 또 ꡔ웃기시네ꡕ가 아니면 대접받은줄 알아라. 훈장의 똥은 더구나 개도 안먹는다더라.
맥주도 다 마시고 랭면도 다 먹고 육수까지 후룩후룩 들이킬즈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약간 망설이다가 ꡔ제 세집에 잠간 들렀다가 가시죠? ꡕ 이렇게 제기한다. ꡔ북경에서 조선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ꡕ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아가씨가 매력적이라거나 하다못해 하루저녁쯤 껴안고 자도 무방하겠다는 따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참, 한가지가 좀 끌렸다. 서른살의 로총각에겐 이 아가씨가 너무나도 새파랗다는 점.
내가 자전거를 밀고 나서니 그녀도 자전거를 밀며 뒤따랐다. 나의 골동품자전거에 비해 그녀의 자전거는 너무나도 새것이고 사치하였다.
ꡔ새 자전거로군. ꡕ
ꡔ녜. <태호공주>라고 외국기술제휴로 생산하는거래요.ꡕ
요즘엔 수입품이나 하다못해 기술제휴나 합자기업, 국내 외국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이 인기이다. 순 국산품은 싸구려의 대명사쯤으로 되고.
ꡔ이것 보세요. 호적이 없으니까 자전거 등록도 안해주지 뭐예요. 선생님이 부러워요.ꡕ
ꡔ그것때문이라면 내쪽으로 등록해도 무방하겠지. ꡕ
ꡔ참말이예요? 꼭 그렇게 해주시죠? 제가 한턱 낼게요. ꡕ
그녀는 내 전화번호를 적어넣는다. 그리고 이�날에는 내 이름으로 자전거를 등록하였고 약속대로 그녀가 한턱 내여 나는 꽤 얼근해지도록 술을 마셨다. 그다음에는 물론 나의 거처에 와서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맞춤하게 취했겠다, 거기에 학문이 돋보인다느니, 내 시고를 몇줄 읽고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해볕도 못보고있는게 참 가슴아프다느니, 교원처럼 신성한 직업은 이 세상 더 없을것이라느니 하며 아가씨가 슬슬 춰주는 바람에 나는 퍼그나 들뜬 마음이 되여 사귄지 며칠 안되는 아가씨에게 그동안 쌓아두었던 학문을 한꺼번에 풀어놓기에 이르렀다. 그후에는 물론 한주일에 한두번 정도 만나 식사도 같이 하고 영화구경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드라이브도 하였다. 그러나 련애를 한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둬주일가량 데이트 약속이 뚝 끊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 몇달간의 데이트는 거개 그녀쪽에서 제의해온것 같았다. 그리움이라는것을 오래만에 느껴보았다. 가슴 어딘가 텅 빈것 같기도 하고 이따금 짜릿짜릿 아려오는것 같기도 한, 뭉클뭉클 감상에 젖게 하는 감정이 점차 절실해지며 조바심마저 일게 하였다.
두루 불편스레 서성거리며 걱정을 하고있는판에 그녀가 불쑥 나타났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가? 문득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특별히 정성스레 다듬은 차림이였고 얼굴에는 짙은 화장을 하였는데 그 솜씨 또한 여느 전문 분장사 뺨치게 세련된것이였다. 그리고 손에는 먹을것, 마실것들이 한구럭 가득 들려있었다.
식탁이 그럴싸하게 차려졌다. 녀자의 솜씨가 역시 다르구나 하는 감동이 옛날 어머니가 보아준 생일상과 겹쳐져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ꡔ오래만인데 뭘 위해 들가?ꡕ
동시에 나는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ꡔ생각이 나는군. 오늘이 내 생일이군.ꡕ
그녀는 내가 ꡔ내ꡕ를 발음할 때를 기다렸던듯 ꡔ생일ꡕ을 합창한다.
눈물이 핑 돈다.
오래만에 가정의 따스함같은것을 느낀다. 술도 많이 마신다. 그녀가 손보아온 진 안주, 마른 안주도 안주려니와 그 고마움, 기쁨, 그리고 별 할일없이 지내온 30년 인생의 무상함, 슬픈 련정, 목마른 정욕이 다 안주가 되여 취할듯 말듯 둥둥 뜬 느낌이다. 그녀도 꽤 마신다. 말도 많이 한다. 말을 하고 술을 마시고 안주를 씹고 삭이면서 좋은 밤을 보내고있었다.
그녀는 놀이감같은 핸드백속에서 곱게 포장된 종이 박스를 꺼낸다.
ꡔ오늘 마지막 프로예요.ꡕ
손목시계다. 도금이 잘된 스위스제였다. 나는 문뜩 재작년에 출국했다 돌아오면서 사둔 녀자용 손목시계가 생각난다. 꼭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사둔건 아니고 어찌어찌 사다보니 남은 외화로 그걸 사두었었다.
서로 손목시계를 채워준다. 그리고 또 건배를 하고 안주를 씹는다. 술도 안주도 알맞춤해졌을무렵 그녀는 나한테 따가운 록차를 따라놓고 설걷이를 한다. 한동안, 내가 차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며 아래다리를 흔들거리며 ꡔ도라지ꡕ를 듣고 ꡔ아리랑ꡕ를 듣고 조용필을 듣고있는 동안 달그랑 절랑 쏴쏴 그릇 부시는 소리가 반주를 하다가 언제부턴지 모르게 조용해진다. 록음기를 끄고 주방쪽에 나가보려는데 그녀가 머리매무새를 바로 잡으며 들어선다. 들어와서는 샐쭉 미소하며 핸드백을 집어든다. 그 미소가 좀 수상쩍다.
ꡔ... 오늘 여기서 자고가도 되죠? ꡕ
나는 아연해진다. 그러나 바로 이 말을 기다리고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꼭 껴안고 놓아주고싶지 않다.
다행히도 그녀는 처녀였다. 술이 얼근한데다 서투른 솜씨로 가지는 정사중에도 그것 한가지만은 잊지 않은건 본능때문이였을가?
그 뒤의 일은 별로 이야기거리가 될게 없다. 요즘 다들 그렇게 하고있는것처럼 우선 결혼등록을 하고 한동안 동거를 하다가 음력설에는 고향에 돌아가서 버젓이 식을 올렸다.
깨알까지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오붓한 신혼생활을 보냈다. 그녀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ꡔ만원 주고도 못사ꡕ는 북경호적도 중급지식인 정책에 힘입어 돈 한푼 팔지 않고 해결이 되였다. 물론 내가 근무하고있는 대학교 인사부문의 배려에 의해서였다. 그 덕에 그녀는 그 ꡔ겨우ꡕ 오백원 주는 회사에서 엉뎅이를 툭 털고 나와서 봉급이 ꡔ겨우ꡕ 정도를 훌쩍 뛰여넘는, 게다가 반쯤은 딸라를 내주는 ꡔ괜찮은ꡕ 외국회사에 냉큼 취직이 되였다. 조선어, 한어는 물론 영어, 일본어도 어지간히 하는 적임자가 그리 흔치는 않은것이다. 노란자위는 언제나 외국 ꡔ외ꡕ자에 있는 요즘 상황에서는 더구나 그렇다. 수입은 늘어나고 가정기물도 하나 둘 불어갔다. 그러다보니 내가 출국했다 돌아오며 그래도 그때는 최신형이라고 사놓은 가전제품이 인젠 아득한 구식이 되여버렸다.
요즘의 가전제품이라는건 대체로 주방용품이 많아서 주방일이 점차 쉬워지고있다. 그런데 가정살림이 편해질수록 안해라는 사람의 불평은 오히려 더 늘어갔다. 처음에는 그래도 신혼생활이 빛이 바래졌으니 여느 가정들에서처럼 인젠 부부싸움도 시작할 때가 되였나부다고 그 싸움을 오히려 가정 생활의 일부로 치부해버리고 체념했었다. 싸우고나서 안해가 눈물 코물 한주먹 두주먹 쥐여짤 때 살살 어루만져주고 다독여주고 그래도 아직은 재미가 식지 않은 정사를 땀이 후줄근하도록 즐기고나면 이튿날에는 또 아기자기한 부부가 되는것이다. 그런데 안해의 요구가 점점 한동안은 물의에 올랐다가 인젠 심드렁히 묵인이 된듯한 한족녀자들의 그것을 닮아가고있었다. 밥을 짓다가도 툭, 한족녀자들은 어쩌고저쩌고다. 그래도 나는 여직껏 닦아온 학문을 총동원하여 조선족 녀성의 미덕이 어디에 있는가를, 왜 녀자는 녀자다와야 하고 남자는 남자다와야 하는가를 차근차근 깨우쳐주었다. 하지만 안해의 분명한 도리앞에서는 허리힘이 쭉 빠질수밖에 없었다. 왜 다 같이 밖에 나가서 일하고는 집안일은 녀자 한쪽의 의무가 되는가 하는 도리였다. 나는 자신이 너무나도 구식 사내로 된게 아닌가고, 남존녀비니 대남자주의니 그런 공맹지도쪽으로 죄상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 친구들이 찾아올 때면 깎듯이 술상을 보아주곤 하여서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요즘에는 돈이 참 좋은 물건이 되였다. 그 개도 안먹는 종이장으로 사람 빼고는 뭐나 다 바꿔올수 있단다. 그러나 때로 그 돈때문에 걱정도 딸려온다. 안해는 그 돈 많이 주는 회사에 옮겨앉은다음부터 늘 밤중에 귀가를 하곤 한다. 때로는 외박까지 한다. 이게 살림 하는 꼴인가고 따질라 치면 제쪽에서 오히려 ꡔ돈 벌려니까 그런거죠. 돈이 뭐 절로 지갑에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는줄 아세요? ꡕ 이런다. 그런 로고때문인지 봉급 말고도 그녀는 슬슬 이런 저런 명목으로 돈을 걷어들여왔다. 그럴수록 나의 불만도 더해가고.
그러던 어느 날 그 부풀고 부풀어오던 불만의 풍선이 펑 터져버렸다.
일은 량집 부모님들에 대한 부조를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벌어졌다. 몇달전에 장인 어른 생신을 앞두고였는데 환갑땐 한창 공부중이라 술 한잔 못부어올렸다며 5백 하나는 부쳐보내야 하겠는데 하고 청을 들었다. 청을 드는것만 해도 고맙다. 딸 하나 대학공부 시키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ꡔ그것 참 잘 생각했군. 인젠 여생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즐겁게 해드려야지. ꡕ 하며 맞장구를 쳤더니 그녀는 별로 반색도 없이 5백원을 송금해보냈다. 말이 5백원이지 벌써부터 준비해놓은 옷감, 선물따위---장인, 잔모님 몫은 물론 처남,처남댁,처조카들 모두에게 한두건씩---를 값으로 치면 거의 천원어치는 될것이였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어쩌다 한번이겠지, 그렇게 막막한 살림도 아닌데 그만한것쯤 뭐 대수냐고 말없이 지나버렸다. 그런데 이 녀자가 보자보자하니 시아버님 환갑이 래일모레인데 백원짜리 두장 달랑 던져주며 ꡔ생각대로 하쇼. ꡕ 이런다. 그래서 그땐 ꡔ시아버님 환갑땐 잘 해드려야지ꡕ 하고 헛말이나마도 아껴두었었군.
그대로는 지나버릴수가 없었다.
ꡔ여보, 당신 시아버님 환갑을 뭐 동네집 령감님네 생신쯤으로나 아는거여? 결혼식날 장인어른 뭐라고 부탁했는데? 시집왔으면 인젠 시집 사람인게지. 그것도 맏며느리가 아니면 말도 안하겠는데 신부상 맏며느리 대접은 기분 좋으라고만 차려준줄 알아? ꡕ
그녀는 내 말이 뉘 하품소리나 되는듯 심드렁해있다가는 알맞춤한때를 기다려 찔 눈을 흘기고는 한다는 소리가
ꡔ걷어치우쇼. 상,상, 참 큰상소리 요란스럽네. 그게 어디 먹으라고 차린 상이예요, 빛 좋은 개살구지. 돈이 없슴다! ꡕ
이랬다.
ꡔ그 저금통장은 뭐 할라고 쓰는건데? ꡕ
ꡔ없다면 없는줄이나 아쇼! ꡕ
점점 콕 막히는 소리만 턱턱 줴친다.
ꡔ이 녀자 보자보자하니, 그래 친정아버님 생신 차려드릴 돈은 있고 시아버님 환갑 차려드릴 돈이 없어? 좀 웃기지 말아. ꡕ
결김에 서방질이라고 하더니 나는 그만 결김에 하지 말아야 옳을 소리를 툭 질러버렸다. 사내녀석 옹졸하다고 서로서로 못마땅해하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가는걸 주체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인젠 엎질러놓은 물이였다.
그래놓고는 안해가 찔끔찔끔 눈물이나 짤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하, 웃기시네. 이런 모양을 잔뜩 추슬려가지고 빤히 올려다보다가는 ꡔ돈 맘대로 벌어들이쇼. 벌어서 천이든 만이든 하고싶은대로 하쇼. 내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을께요. 돈 벌기가 뭐 식은죽 먹기나 되는줄 알아요? ꡕ
철썩! 귀뺨 하나 날아가 붙고 그녀는 ꡔ앙! ꡕ 하며 침대 구석에 엎어져 쿨쩍거린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되는 손찌검질이였고 또 한 남자에게 남은 마지막 솜씨이기도 하였다.
나는 문뜩 드팀없는 철리 하나를 터득한듯 싶었다. 돈이 량반이다. 학문이든 기술이든, 도덕적 인격이든 사회적 진리이든 돈이라는 하나님의 섭리앞에서는 다 숙연해질수밖에 없는게 오늘의 도리이다. 부부는 돌아서면 서로 남이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너무너무 밉강스럽다. 당장 리혼을 하고 ꡔ바이바이ꡕ를 웨치고싶어진다. 하지만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여쭈어야 하는가? 그 무서운 산골에서 아들 하나 공부시켜 성공했더고, 대학생며느리를 보았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며 즐거워하시던, 그리고는 잔치날밤 내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시던 부모님들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는가? 더구나 그렇게 바라시던 학문을 닦은 연고로 녀펴네한테 굽석거리지 않으면 안되였을 때, 그렇게 굽신거리지 않으려고 리혼을 한다면...
꼬박 두시간동안을 쿨쩍거리며 엎드려있는 안해를 노려보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키지 않지만 사과를 해본다. 생각하고 생각하여도 화해를 할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리고 내키지 않으면서 애무를 시작한다. 상투적 수단이다. 꼿꼿하던 안해의 몸뚱아리가 점점 나긋해진다. 그래도 내키지 않는다. 내키지 않으면서 나긋나긋한 몸뚱아리를 범하려고 서두른다. 그런데 연장이 말을 듣지 않는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인젠 생식의 몸짓만은 아닌 이상한 몸짓을 얼마간 허둥거리다가 툭 쓰러져버린다. 아차하는 사이 안해는 독스러운 눈길을 찔 갈기고는 저만큼 홱 돌아누워버린다.
그후에도 몇번 악을 써보았지만 내내 그 모양 그 꼴이다. 그래서 아예 안해의 곁에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주 신심가득하다가도 안해의 몸뚱아리가 기신기신 다가들어 불덩이가 될무렵이면 나의 연장은 영낙없이 놀란 달팽이마냥 쑥 움츠러들어가버리곤 하였던것이다.
약을 써볼가고도 생각한다. 요즘엔 그러루한 약이 약국마다 지천으로 쌓여있다. 하지만 정작 가격표를 들여다보면 좋다는 약은 눈이 휘딱 까뒤집어지도록 값이 엄청나다. 돈이야...
그래서 나는 또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멋있게 환상이 펼쳐지다가도 학문에 걸리기만 하면 단내나는 한숨 한웅큼으로 푹 김이 빠져버리고 만다. 학문과 돈은 너무나도 거리가 먼것이다.
집 근처에는 옛 북경성의 호성하(護城河)가 한갈래 지나가고있다. 그 옆으로는 원래 포장이 형편없는 도로가 나있었는데 지난 90년도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고속도로가 번듯하게 빠져나갔고 오수구덩이던 호성하도 세멘트로 정리되여서 완벽한 현대 도시의 모습을 갖춰갔다. 그 고속도로와 세멘트로 정리된 강 사이에 인행도가 한갈래 새로 생겨났다. 비록 강이라는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큰 내물만큼이나 되고 게다가 반은 오수여서 퀴퀴한 오물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래도 쌩쌩 비명을 지르며 허둥대는 고속도로의 자동차소리외에는 꽤 한적한편이여서 나는 학교에 교수를 나가지 않을 때면 늘 이 강옆의 인행도를 서성거리며 끈적끈적한 스트레스를 부스럼속에 모인 고름 짜듯 쥐여짜곤 한다. 요즘에는 더구나 서성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안해가 외박하는 날에도 그렇고 하루밤의 정사가 실패했을 때도 그렇고 안해의 직장 동료들이 제법 우리집에 모여들어 맥주잔을 떵떵 부딪칠 때도 그렇고...
정사쯤은 안해도 인젠 체념을 했는지 별로 대수로와하지 않는 눈치다. 그러니까 그 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안해의 동료가 다녀간후로는 정사라는걸 아예 가져보지 못한셈이다. 해서 그쪽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건 다행이라 하겠는데 어쩐지 그 친구가 마음에 석연치를 않다. 그날 그는 두툼한 지갑을 툭툭 치며 시뚝해서 백원짜리 지폐 한장을 뽑아들고 맥주를 사오라고 안해를 심부름시켰었다. 주객이 뒤바뀐 꼴이였다. 게다가 맥주잔을 덜렁거리며 내 안해를 춰주는 꼴이 그야말로 꼴불견이였다. 그래도 그쯤은 하루 오후 호성하가의 인행도를 서성거리고나면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문제는 며칠후 그날 함께 래방했던 안해의 녀자 동료가 걸어온 전화내용이였다. 전에도 몇번 래방했던것이므로 그녀와는 꽤 익숙한편이였는데 ꡔ그 동성동본이라는 친구 그저 볼 사람 아녜요. 더러 신경 써두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ꡕ 라고 툭 까놓았었다. 그 친구는 같은 회사의 동료가 아니고 거래하고있는 다른 한 회사의 사장인데 두루두루 일을 만들어가지고는 내 안해를 자주 찾아온다는것이였다. 어쩌면 그 녀자 동료가 녀자들 거개가 있는 서푼짜리 질투때문에 안해를 헐뜯었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날의 꼴불견의 꼴을 당해본 나로서는 그렇게 단순한 아녀자들의 질투로만은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저녁으로 안해를 닦아세웠다.
ꡔ그 친구 당신을 자주 찾아다닌다던데 반한건 아니야? ꡕ
ꡔ그 친구라니 누구 말이예요? ꡕ
ꡔ그 있잖아, 나와 동성동본이라는 그 친구 말이야. 그쯤 하면 난 시뚝해 해야 도리가 되나? ꡕ
안해는 허리 부러질 소리라며 진짜로 킥킥 웃어제끼며 아예 딴전을 부린다.
ꡔ식초 좀 자그만히 자셔요. 시쿨어서 이가 다 시여나네. ꡕ
ꡔ식초를 먹는다ꡕ는 말은 ꡔ시기한다ꡕ는 말의 한어식 표현인데 요즘엔 그런식으로 우리말을 하는 사람이 꽤 많아지고있다.
나는 이쯤에서는 도무지 그만둘수가 없었다.
ꡔ이건 장난이 아니야. 그러지 않아도 당신 요즘 외박이 잦아지고 귀가시간이 늦어져서 걱정중인데 동성동본은 웬 이 부러질 소리냐 말이야? ꡕ
ꡔ카라OK방을 하나 차려주겠다고 그래서 좀 자주 만났어요. 왜 안되나요? 융자금을 얻어주겠다고 그랬거든요. 꼭 카라OK방을 차려놓고말거예요. 어디 가서 20만만 대부를 해오세요. 그럼 당장에라도 래왕을 끊을게요. 곱다고 아첨하며 다니는줄 아세요? 그 신세에 그래도 남자라고 마음만은 살아서... ꡕ
나는 그만 입이 막혀버렸다. 돈과 성, 이 두가지면 나는 치명적이다. ꡔ카라OK방따위 싹 걷어치워! ꡕ 하는 따위 사나이의 호기는 벌써 기가 죽은지 옛날이다. 카라OK방이 돈벌이가 잘된다는걸 요즘 횡재에 초점을 맞추고있는 사람 치고는 모르는 이가 없는 형편인데 정말 안해가 거기에 성공하면 난 뭐가 되지? ꡔ내 시집 출간하는데 좀 선금할수 없겠어? ꡕ 이런 아첨은 퇴자 맞기가 십상이고. 돈 많은 사람일수록 돈에 눈을 더 밝히는게 ꡔ경제법칙ꡕ이다. 그러나 나는 돈이 없어도 돈에 눈을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돈이 있으면 성문제도 풀릴것이고 그러면 안해한테 언제나 지고들지 않아도 될것이다.
나는 또 퀴퀴한 냄새가 물큰거리는 오물구덩이 호성하가를 서성거린다. 문뜩 이러다가 누가 지폐장이나 지갑같은걸 떨군게 있지 않을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 강가는 낮에는 인적이 드물지만 밤만 되면 꽤 ꡔ호경기ꡕ인편이다. 집이 없는 련인들이 데이트를 하기에도 알맞춤하고 외로운 늙은이들이 서로 빨려들어가지 못해 애태우는 젊은 련인들의 몸짓을 짐짓 지켜보며 정양(靜養)을 하기에도 편리하며 더구나 요즘 부쩍 호경기가 된 암거래도 이런곳에서 더 안전할지 모른다. 이를테면 암딸라거래같은거.
나는 다리 부러졌던 사람이 걸음련습이나 하듯 느릿느릿 강가의 인도를 걷는다. 걸으면서 희끗희끗한것, 거뭇거뭇한것 하나 놓칠세라 두눈을 도사리고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희긋희끗한거라야 고작 빈 비닐봉지가 아니면 권연곽따위 밤손들의 쓰레기 정도이고 거뭇거뭇한건 고작 돌덩이나 어느 비새는 아빠트 옥상에서 바람에 날려온 펠트지쪼각따위들뿐이다. 어느 한길 되나마나한 측백나무옆에서 똥 한무지 발견한게 발견이라면 발견이라 할가. 이 도시에 아직 로천에서 똥 싸는 녀석이 있다는게 메스껍고 어쩌면 더러 희한하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나는 단념을 하지 않고 무슨 악귀의 최면술에나 걸린 사람처럼 자전거를 잡아타고는 가까운 거리를 계속 어슬렁거린다. 원래 교수가 없는 날 내 생활코스라는게 집에서 호성하가의 인도, 그리고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드라이브하는게 전부였는데 거기에 한가지 내용이 불어난셈이다. 남이 떨군 돈을 주어보려는 어처구니없는 망상!
그러나 나에게는 그따위 유치한 행운도 차례지지 않았다.
안해는 여전히 그 모양 그 본새이다. 때로는 제쪽에서야 술냄새를 훅훅 풍기며 밤중에 귀가를 하고 외박도 비일비재다. 구태여 변화라는게 있다면 전에는 늦게 귀가를 하거나 외박 한번을 할 때면 두루 구실을 붙이던것이 요즘엔 제쪽에서 더구나 기고만장하여 ꡔ카라OK방을 할려고 뛰는중이라지 않아요! ꡕ 이렇게 야단을 칠 정도로 일약 승급을 한것일것이다.
이상한 일도 많다. 안해가 곁에 누워있을 때면 싸늘히 식어서 속만 안타깝던 몸이 안해가 외박하는 날이면 설설 끓어오르는건 왜서일까? 어제밤에는 더구나 꿈에서마저 곰같은 녀체에 깔려 흠씬 식은땀을 빼였다. 그렇다고 그 녀체가 안해의 몸뚱아리인건 아니고.
아침에 잠에서 깨여나서도 머리가 뒤숭숭하였다. 뭔가 잘못되여가는 느낌뿐이다.
또 호성하가를 서성거린다. 눈길이 두리번거려진다.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 어처구니가 없는 행운이 떨어질리 없지만 그래도 그쪽에 신경이 씌여질 때에는 뒤숭숭하던 머리가 조금은 조용해진다.
한코스를 다 돌고는 자전거를 타고 두번째 코스를 돈다. 별 수확없이 후줄근해가지고 귀가할무렵 수위실 로파가 한족로파들 특유의 인정미 넘치는 수다스런 목청으로 불러세운다.
ꡔ마침 들어왔구만. 전화 받으시오 ꡕ
안해의 전화다. 또 외박이란다. 전날의 외박은 입치례로나마도 사과가 없다. 그 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친구한테 간단다. 카라OK방 개업이 거의 돼가서 그쪽을 한턱 먹인단다. 적어도 2-3차는 걸쳐야겠으니 아무래도 려관방신세를 져야 할것 같다는 설명이 덧붙었을뿐이다.
나는 물론 이런 경우 내가 참석하도록 배려하지 않는 안해를 탓할수가 없다. ꡔ당신같은 선비님이 나서면 다 되던 일도 튈거예요. ꡕ 안해는 이런 태도다. 설혹 안해가 초청한대도 가고싶지가 않다. 그따위 서로 춰주고 헐뜯고 돈자랑이나 하는 친구들속에 앉아있으면 우선 공기부터가 부담스럽다. 그런데 령감이 문뜩 떠오른다.
이상한 령감이다.
인젠 안해가 그런 술자리에 한두번 가는것도 아니고 동성동본이라는 친구와 함께 다니는것도 오늘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친구가 알선해주는 일이니 함께 갈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오늘은 몰래 그 뒤를 밟아보고싶어진다.
시계를 보니 다섯시다. 안해가 퇴근하기까지는 아직 반시간이 남았다. 외국회사라서 출퇴근시간이 아주 엄수되게 되여있다는걸 나는 안다.
회사는 호텔방 몇개를 세내서 쓰고있다고 한다. 십분쯤 지나니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밀려나오고있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대문만 주시해본다.
담배 한개비 피우고났을즈음 안해는 아직도 나의 이름으로 등록되여있는 그 백색 ꡔ태호공주ꡕ표 자전거에 올라타며 대문을 빠져나온다.
나는 그 뒤를 따른다. 사복경찰이나 된듯한 느낌이다.
골목길을 오불꼬불 15분쯤 페달을 돌리니 5-6층짜리 벽돌아빠트들이 쭉 들어선 아빠트 단지가 나타난다.
안해는 두번째 아빠트앞에서 자전거를 내린다. 그녀가 동에 들어설 때 나는 잠간 망설인다. 그러다가 뒤따라 들어간다. 혹 들킬지도 모른다는, 들키면 아무런 리유도 댈게 없다는 걱정을 되록거리면서도 2층까지 따라올라간다. 물론 발자국소리를 죽이면서.
그녀는 4층까지 올라가서 노크를 한다. 그걸 나는 3층에 서서 비스듬히 올려다 본다. 뒤모습이 반쯤 보인다. 3층의 구조를 살펴보니 안해가 노크하고있는 문은 4층 1번일것 같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고 안해가 들어간다음 나는 4층에 올라가서 다시 그 번호를 확인한다. 그리고는 동을 나오면서 또 동 번호들을 차례로 재확인한다. 난 지금 무슨 짓을 하고있는가? 리혼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갈라서면 정말 남이 되여버리는것일가? 리혼한다고 할 때, 처가집을 생각한다. 결혼식날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부모님들을 생각하다, 부러워하며 축복해주던 동네어른들을 생각한다,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을 생각한다. 안해와 그---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사내가 동을 빠져나올 때 나는 가슴이 뜨금해진다. 역시 그 사내였군. 제멋에 희희닥거리노라 머리만 돌리면 발견해낼 나를 그들은 발견하지 못한채 각각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다.
멍청히 뒤를 따라 나온다. 깊은 생각을 할수가 없다. 눈길이 두리번거려진다. 돈이라는 개념과 이 길이 내 일상의 코스가 아니라는것을 떠올린다. 한동안 두리번거리다가(인젠 돈도 쓸데 없겠군.)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코스에 돌아와서 또 서성거린다. 그러나 인젠 돈이 쓸데없겠지. 밤중까지 서성거리다가 또 그 잘 확인해둔 아빠트단지에 들어선다.
안해의 백색 자전거가 보인다. 아직도 내 이름으로 등록이 되여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 깊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4층 1번이라는 번호만 생각하며 계단을 오른다. 문을 노크한다. 노크하며 무슨 리유를 댈가를 궁리한다. 아무런 리유도 떠오르지 않는다. 될대로 되겠지.
ꡔ누구요? ꡕ
문은 열리지 않고 아직 잠기가 전혀 섞이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가 문 저쪽에서 들려온다.
나는 갑자기 흥분되여 서두른다. 심장이 팔딱팔딱 뛰기 시작한다.
다시 노크를 하며
ꡔ빨리빨리! 큰일났소, 빠리 문 여시오! ꡕ
그쪽에서도 서두르는 소리가 난다.
문이 열리자 다짜고짜 성큼 들어서며
ꡔ야단났소, 빨리!ꡕ
나는 잠옷바람의 그---나와 동성동본이라는 사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직 닫겨져있는 사이문을 열어 제낀다.
담요로 가리울데만 가리운 내 안해가 아직 무슨 일인지 멋도 모르고 퀭해 나를 쳐다본다. ꡔ무슨 일이기에 야단났다고 그러는거요? ꡕ 이렇게 아직도 정신이 덜 든, 멋도 모르고 서두르는 사내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며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본다. 네깐 년놈들 지력이 안된지.
ꡔ내 안해가 발가벗고 외간사내와 한침대에 누워있다는것만치 야단난 일, 세상에 또 어디 있겠소...ꡕ
나는 또다시 나의 령감과 림기응변이 뛰여나다는데 놀란다.
리혼은 얼음에 박 밀듯 척척 진척이 되였다.
법적 수속이 끝나는 날, 나는 법원의 대문을 나서자 곧 하늘을 쳐다보았다. 역시 하늘은 푸른 하늘이였다.
ꡔ용서하세요.ꡕ
그녀가 뒤따라 나왔다.
ꡔ미안해요...ꡕ
ꡔ미안할것까지야 뭐. 우린 원래 남이였지 않아? 이제 또 남이 된거야. 녀자와 남자, 그저 그런거야...ꡕ
외롭게 세상에 와서 외롭게 살다가 또 외롭게 가는게 인생이겠지. 나는 뒤의 말을 내 마음속에서만 하였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가버린다. 나는 그 자전거가 아직도 내 이름으로 등록되여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나도 다 낡아버린 내 자전거에 올라탄다. 동시에 아까 법원에 들어올 때 경찰과 옥신각신하던 서너명의 젊은이들을 떠올린다. 자전거주차장에서였다. 나는 원래 그런 거리의 구경거리에는 취미가 없었는데 자전거를 세워놓으려니까 별수없이 한두마디 얻어듣게 되였다. 물론 구경군들은 그 옥신각신을 쭉 둘러서서 구경하고있었다. 비법적인 딸라거래를 하다가 손목을 잡힌 모양이였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법원대문앞에서 그 위험한짓을 하였을가? 눈알이 팽글팽글 잘 돌아가는 약삭바르게 생긴 젊은이가 주머니를 툭툭 두드리고는 경찰에게 두손을 펴보이고있었다. 아마도 경찰이 감춰둔 돈을 내놓으라고 야단하는 모양이였다.
녀석들도 돈때문에 저꼴이 되였구나 생각하며 나는 법원에 들어갔었다.
자전거를 타고 내 늘 두리번거리며 누비며 싸다니던 코스에 들어서자 나는 잠간 자전거에서 내려 벅작거리는 로천가게들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돈에 모든 신경이 곤두선 사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이 살기 위하여 돈이라는게 생겨났을텐데 돈을 위해 사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게 참 이상스럽다. 그러니까 돈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이 거리에서 어디 구을러다니는 돈이 없을가고 두리번거린 자신이 참 어처구니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에 올라타려는 순간 난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모두들 그렇게 하는것처럼 나도 자전거에 남새바구니를 달고다닌다. 좀 유다르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바구니를 자전거핸들앞에 매달아놓는 대신 나는 접었다폈다할수 있게 만든 바구니를 자전거 뒤쪽의 짐실이옆에 매달아놓은게 다르다고 할가. 그걸 펴서 밑에 비닐박막쪽박이나 신문지 한두장을 깔아놓으면 훌륭한 남새바구니가 되는것이다. 아까 법원에 갈 때도 나는 공문가방을 거기에 담아가지고 갔었다. 그런데 바로 그 바구니에 신문지로 꽁꽁 싼 물건이 댕그랗게 놓여있지 않은가, 심장이 뚝 멎는것 같다. 돈이였다. 부랴부랴 자전거에 올라탄다. 그리고 아빠트 대문어귀까지 왔을 때 내집에 아직 ꡔ남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호성하가의 그 한적한 인도에 간다. 두리번거리며 겨우 다 세여보았을 때, 천원도 더 되였다. 별 괴상야릇한 일도 다 있군. 필요할 땐(물론 아무때라도 있으면 나쁘지야 않겠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거푸 십전짜리 한장 눈에 뜨이지 않던것이 또다시 ꡔ혈혈단신ꡕ이 된 오늘 문뜩 나타난다는건 하나님의 조화랄밖에, 그것도 자그만치 천여원! 비법적인 딸라거래를 하다가 손목을 잡힌 그 눈알이 팽이처럼 잘 돌아가던 약삭빠른 젊은이를 떠올린다. 그 녀석이 약삭바르게 림기응변하느라 슬쩍 숨겨둔것이라고 짐작하니 부담감도 별로 없다. 돈이야 똥이 묻어도 향기로운것이니까. 당장 그 돈이 쓰고싶어진다. 우선 식당에 들려서 한끼 먹는다. 전에는 네온싸인이 판들거리고 네면을 으리으리하게 장식한 식당은 아예 발을 들여놓을 엄두도 못내였었다. 그러나 정작 들어가보니 내 위로는 백원도 소화시킬수가 없었다. 또 자전거를 타고 두리번거리며 싸다닌다. 그러나 이번에는 돈을 줏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주은 돈을 쓰기 위해서였다. 문뜩 붉은등이 켜져서 자전거를 멈춰세웠는데 바로 길옆의 전선주에 ꡔ미혜카라OK방ꡕ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것이 보였다.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에도 꼭 같은 간판이 하나 있었다. 저도 모르게 그쪽에 걸음이 돌려진다. 그 카라OK방때문에 안해와 헤여진게 아닌가?
새빨간 꼬마전구가 간판밑에서 희미한 유혹을 빛으로 전하고있다.
복도가 오불꼬불 지옥으로 가는길 같다. 몇바퀴 에돌다가 역시 지옥의 길같은 계단을 오른다.
또 ꡔ미혜카라OK방ꡕ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그 밑에서는 역시 새빨간 꼬마 전구가 가물거리고있다. 아주 귀엽게 생긴 아가씨가 머리를 다소곳이 하며 ꡔ어서 오세요.ꡕ 한다. 카운터에서도 그보다는 좀 나이가 들어보이는, 주인인듯싶은 녀인이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한다.
방안에는 온통 채색의 꼬마전구투성이이다. 음악이 은은하다. 빨간 미니 스카트를 입은 아가씨들이 일부러 패션모델들처럼 엉뎅이를 멋스레 내저으며 사뿐사뿐 오간다. 쏘파에 앉으며 난쟁이 차탁을 마주앉아있는 사내들을 본다. 모두 멋쟁이들이다. 차탁 맞은켠에 앉아서 술을 치는 아가씨들과 치근덕치근덕, 히히닥닥거린다. 나한테도 아가씨가 와서 시켜놓은 맥주를 따라놓고는 서먹서먹 눈치를 살피더니 그대로 가버린다. 별로 속에 찬게 없어 보인 모양이다.
나는 맥주만 줄창 홀짝인다. 그 사이 박수소리가 나고 방 곳곳에 매달린 텔레비가 켜지고 T셔츠를 입은 사내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나는 또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킨다. 카라OK방이란 이런거였군.
내앞에는 술 쳐주는 아가씨도 없고 함께 술을 마셔주는 사내도 없다.
나는 신사 사내들의 본을 따서 손가락으로 딱딱 둬번 소리를 내본다. 아가씨가 온다.
ꡔ종이 좀 갖다주지? ꡕ
아가씨는 그대로 돌아가더니 OK가요 신청카드를 가져온다. 노래를 부를려고 종이를 요구한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 카드에다 시를 쓴다.
별이 색바랜 날
꼬마전구들이 가물거린다
욕망들을 녹여내는 술잔
한컵 또 한컵
나는
외로움을 삼킨다
그리고는 또 맥주를 꿀꺽거린다.
아가씨가 다가온다. 술 치는 아가씨들과는 다른 차림이다. 온통 하얗다. 옷차림도 하얗지만 팔과 다리, 목덜미마저 눈같이 하얗다.
ꡔ잠간 앉아도 괜찮겠습니까? ꡕ
목소리마저 하얗다. 그리고 나긋나긋하다. 손과 팔도 날씬하고 다리와 엉뎅이, 허리와 어깨, 목덜미... 한마디로 날씬하다. 가슴만은 팽팽한줄 알았는데 역시 날씬하다. 아무리 억세게 껴안아도 뼈가 상할것 같지가 않다.
그녀는 우선 내가 방금 써놓은 시를 들여다본다.
ꡔ얼마나 아름다워요... ꡕ
그녀는 내 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본다. 그 눈길도 촉촉하고 날씬하다. 시를 쓴 종이카드를 건네줄 때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는다. 내 몸마저 나긋나긋해진다.
나는 또 시를 쓴다.
해질무렵
잔디밭은 아가씨다
나무와 잔디
고독을 감싸는
꽃의 훈향이 그립다
이건 아가씨를 노래한거야 하니 아가씨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는다. 너무너무 아름답다.
술이 술술 넘어간다. 아가씨가 허리를 굽히며 뭔가 마루바닥에 떨어진걸 주을 때 야들야들한 유방이 들여다보인다. 나는 얼굴이 후끈해난다. 동시에 아래도리가 뻐근해진다. 이것도 아이러니야. 그리고는 집에 안해가 없을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지금 다른 남자의 몸에 붙어있겠지.
맥주를 마신다. 그러나 욕망은 녹지 않는다. 기껏 마셨을 때 나는 욕망이 녹았는지 얼었는지도 모른다.
계산을 하고 비틀거리며 밖에 나왔을 때 아가씨는 잠간 머뭇거린다. 뻐스가 없을 시간이였다.
ꡔ데려다줄가? ꡕ
지나가는 택시를 요행 잡아탄다.
아가씨가 류숙한다는 아빠트 방에 들어섰을 때는 자정이 넘어있었다. 취기와 졸음과 피로가 함께 몰켜든다. 아가씨는 ꡔ커피를 끓여올께요. ꡕ
하고는 주방에 나간다.
눈을 뜨니 이슬 먹음은 화초같이 싱싱한 아가씨가 새물새물 웃고있다. 쏘파에 기댄채 잠간 졸았던 모양이다. 아가씨는 하들하들한 비단가운을 걸치고있다. 카라OK방에서와 같은 채색 등불이 은은하다. 나는 빨려들듯 아가씨를 끌어안는다. 아주아주 녹신하다. 선률같은 등불과 탄력 좋은 침대, 날씬하고 비누향기가 그윽한 아가씨의 몸뚱아리, 4-5년동안 안해와 살을 섞으면서도 나는 한번도 그런 황홀경에 빠져본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무아의 경지다. 내 자신의 몸속에 아직 그토록 꿋꿋하고 탄력적인 정력이 잠재해있었다는데 놀랄 겨를도 없이 음과 양의 묘미와 절경을 만끽하고있었다.
잠에서 깨니 동창이 벌겋게 물들어있었다.
ꡔ잘 되였어요? ꡕ
아가씨도 깨여있었다.
ꡔ잘 됐다는게 뭐야? 아주 천당에 갔다왔어. ꡕ
그녀는 해죽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박씨같은 그 치아와 입술, 입귀에는 어쩐지 어색함이 은은히 드러나고있었다.
ꡔ그럼 백원만 놓고가세요. ꡕ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이윽토록 그녀를 지켜본다.
ꡔ그럼... ꡕ
ꡔ그래요. 그걸로 밥을 먹는 녀자예요. 병은 없으니까 걱정마세요. ꡕ
나는 또 멍청히 그녀를 지켜보다가 주섬주섬 옷을 주어입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여 차탁우에 올려놓고 문을 나선다.
결국 그랬었군.
나는 방 번호도 뒤돌아보지 않고 동(棟)을 나선다. 거리에서는 사람의 물결이 흐르고있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물결을 이루고있었지만 결국 남자와 녀자, 그렇고 그랬다. 그리고 부연 운무속에 빌딩들, 아빠트들이 우중충히 서있었다.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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