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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편, 작가론총서(12),『채만식』, 문학과지성사, 1984
2009년 05월 16일 21시 28분  조회:1588  추천:0  작성자: 방룡남

김윤식, 「채만식의 문학 세계」

 채만식의 여러 작품들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의 아이러니는 그의 작품을 이루는 문장 하나하나와 그 문장 사이의 행간,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 그가 즐겨 등장시키는 인물들에게서 다 같이 드러난다. (19)

 그의 소설의 아이러니는 그가 언제나 부정적 인물을 소설의 전면에 내세우고 긍정적 인물을 후면에 내세우거나, 희화하는 데서 얻어진다. 부정적인 인물들은 긍정적 인물보다도 각별한 작자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긍정적인 인물들은 언제나 부정적 인물들의 조롱의 대상이 된다.(190

 그의 문장의 아이러니는 그가 부정적인 인간을 역설적으로 긍정적으로 보여 주려고 하는 과정에서 자연히 생겨난다. 작가 자신은 엄격한 관찰자의 입장에 서 있는 척하면서, 부정적 인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능청스럽고 의뭉스럽다.(20)

 그의 아이러니는 그러나 강력한 비판 정신의 소산이다. 일제의 잔인한 검열 제도를 피하여 자기가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는 역설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21)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정당하게 이해하고 그것의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사고인(思考人)을 만드는 댓니에 식민지 교육은 생각하지 않고 실기에만 전념하는 기능인들만을 만들어낸다. 그 기능인들은 외계의 변화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순응할 뿐, 거기에 아무런 회의감도 내 보지 않는다....실제로 『태편천하』에는 그런 교양인이 등장한다.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목적이 출세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윤직원 영감이 그렇다.(21-22)
 
 근 식민지 치하를 오히려 신분 이동의 호시기라고 판단하고 그의 자식들을 일제 식민지 당국에 알맞는 인물로 키우려고 애를 쓴다.(22)

 수형 할인과 미두에 대해서 채만식이 대단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식민지 궁핍화 현상의 한 첨예한 예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는...소액의 민족 자본이 일본인의 대자본 밑에 어떻게 형체도 없이 녹아 가는가를 미두를 통해 여실하게 보여 주며, 수형 할인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상을 빗대어 보여 준다. 특히 수형 할인은 법의 용인을 받은 도적질이라고까지 극언한다.(23)

 작가의식이란 현실의 겉구조와 속구조를 함께 파악하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41)

 『태편천하』는 미두 대신 수형(어음) 할인을 통해 벌어지는 식민지 생활상의 일면을 보여 주지만, 중인 계층 의식과 진보주의 측에 서는 인물(종학) 설정으로 역사의 방향성을 파악하려는 단서를 어느 정도 보이고 있다. 굳이 여기서 방향성의 단서라고 한 것은 이 작품이 풍자로 일관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분적 풍자, 즉 수법으로서의 풍자의 차원이 아니고 요설적인 차원의 풍자성일 때, 작품에서의 긍정적인 측면은 가려지거나 미약해져 드러나지 않는다. 풍자 정신이 강할수록 그것은 역비례 관계에 놓인다. 이를 두고 풍자성이 억압 모티프로 되었고, 그 억압 모티프가 후퇴적 모티프를 너무나 압도해 버린 형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태편천하』를 읽고 나면 쓰다 만 듯한 느낌을 받거나 한바탕의 입담을 들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의 정석에서 너무 멀리 벗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62-63)

 『탁류』에는 그래도 상당한 소설적 구성 요인으로서의 일상성(전체성을 위한)이 담겨 있지만, 『태편천하』는 요설적 풍자에 함몰되어 허무주의적인 것이 점점 강하게 자리를 잡는다. 고골리적 방법 정신이 아닌 요설적 풍자는 모든 것을 입심으로 처리하여 현실을 가려 버릴 따름이다. 그것은 주관성·추상성이기에 현실의 본질에 이르는 길을 오히려 차단한다. 남는 것은 허무주의적인 것뿐이다.(63)

 소설에서의 대상은 주인공과 환경의 유기적 관계에서 역사의 방향성을 묘사해야 하고, 그럴 적에 대상의 전체성이라 한다. 우 중 주인공 쪽의 비중은 극에서보다는 훨씬 약할 수밖에 없다. 극의 주인공으로서의 문제적 인물이 소설에서 부주인공에 맞먹는다고 말해짐은 이 때문이다. 시대적 일상적 삶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못지 않게 중요하다. 채만식 소설은 주인공의 개성에는 극히 불투명하고, 그 대신 시대적 일상적 삶으로서의 디테일의 우위를 적절한 한계 이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물과 시대적 삶으로서의 환경 세계와의 유기적 결합, 소위 구조화의 틀을 통일해 보이지는 못한다. 이처럼 주인공의 강렬한 방향성의 인식이 없고, 일상적 삶의 반영만이 일방적으로 무성하면, 그 소설은 한갓 풍속소설에 멈추고 만다.(73)

 대상의 전체성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만을 제시해 놓았다면 그것은 소설의 참된 반열에 들 수 없다.
 이와 같이 소설은 올바른 역사의 방향성을 포착하고, 그것을 인물과 환경 세계 속에 유기적으로 통일해서 제시하지 못하면 전혀 쓸 수 없는 문학 양식인 것이다. 소설을 두고 <필요한 시대 착오>의 폭이 극히 좁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 넓은 의미의 리얼리즘이라 하며, 리얼리즘은 그러기에 사조상의 명칭이라든가 단순한 분류 개념적 단위가 아니다. 그것이 창작 방법일 때 가장 선명해지는 것이다.(77)

이주형,「'태평천하'의 풍자적 성격」

『태평천하』에서 채만식은 비판 정신의 확립과 비판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보여 준다. 그는 이 시대가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며 무엇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그는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풍자한다. 풍자의 대상이 된 작중 인물들의 공통점은 민족적 이상에 역행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반민족적·반사회적 행동으로 일관하는 지주 겸 고리대금업자, 목적 없이 살아가는 타락한 부유층의 자제, 그리고 이들의 주변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모르고 동물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채만식은 한 세대 속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무려 다섯 세대 속에서 찾아내고 있다. 이는 여러 세대의 가치관을 동시에 대비시킴으로써 그것들의 차이와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105-106)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요 작중 인물들의 언행과 사고는 개인적인 범위에서 문제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혹은 민족적 차원에서 문제거리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작자는 이들을 당대 사회와 단절시킨 상태에서 한 보편적 인간 유형으로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의 식민지적 전형으로 다루려고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작자가 직접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문제는 한국의 역사적 상황이 개인의 삶의 방식을 어떻게 변모시킬 수 있는가, 이 시대에 있어서 척결되어야 할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의 주제나 인물은 시사성을 지니며, 현실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106-107)

 1910년대에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한 일제는 조선시대의 토지의 세습적 보유자이며 경작자이던 농민들로부터 토지 소유권을 빼앗고 봉건 지주의 토지에 대한 권리를 자본주의적 사유권으로 인정함으로써 봉건 지주들이 일제하에서도 지주로 남아 있도록 하는 법적 보장 조치를 취했다.(107-108)

 일제 치하에서 일부 변형된 봉건적 요소인 전 자본주의적 토지 사유권은 자본주의적 사유권으로 법인되고, 경제 외적 강제는 법률상으로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습적으로는 소작 계약, 소작권 이동 등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살아 있었다. 따라서 일제하의 지주 제도는 해체되지 않은 이러한 봉건적 요소 때문에 <반봉건적 지주제도>에 머물러 있었다.(108)

 이 작품에서 반어, 과장, 자기 폭로, 비유, 희화화는 서로 뒤섞여서 시종일관 웃음과 혐오감, 경멸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작자는 이러한 수법을 동원하면서 여러 인물과 사건에 대해 즉각적인 평가를 내리고, 그것을 경어체를 써서 독자에게 직접 이야기해 준다. 따라서 독자가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면서, 사태를 즉석에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독자를 작자 편으로 끌어들인다.(116)

 즉각적 평가와 연극적 장면화는 곧 문제의 현장감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문제가 과거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것이며, 그것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곰곰히 생각해서 판단, 평가할 것이 아니라 연극 관람자처럼 시간의 지체 없이 보는 자리에서 바로 평가하고 대응책을 떠올려야 할 것이라고 믿게 한다.(117)

『태편천하』의 기법적 특색은 판소리를 발전적으로 계승·변형한 점에 있다고 하겠다. 『태편천하』는 판소리 사설의 풍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표현 수법뿐만 아니라 판소리가 가진 장르적 성격까지도 이용하고 있다. 작자는 구술 논평자로서의 판소리 창자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으며, 때때로 서술 내용을 극의 장면과 같이 만들고 있다.(119)


정현기, 「'濁流'와 '太平天下'의 인물」

 『삼대』가 연재되던(1931년 1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215회)시기와  『탁류』가 연재되던 시기(1937년 10월 12일부터 1938년 5월 17일까지 198회 연재)의 시간적 차이는 6us이라는 긴 세월이다. 이 시기는 1934년 2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제2차로 사상범 검거를 비롯, 이른바 좌익 운동자들이나 민족 운동자들은 외부적인 압력과 함께 자체의 내분에 의해 스스로 분해하여 그 모둔 단체가 해체되었거나 또는 국외로 탈출했거나 지하로 잠적할 수밖에 없었고 일제가 가장 악랄하게 한국민의 황민화(皇民化) 정책을 추구했던 제7대 미나미 지로오(南次郞: 1936년 8월경 취임) 총독 시대다. 이 당시 한국에 있어서의 이상적인 꿈을 한국민으로서 내 보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시기였다.(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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