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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제2영토처럼 많은 유민이 살았고, 그런 이주지대에서 생성된 문학유산이 마땅히 문학사의 공백기를 논의하는 자리에 상정디어야 할 것이다. 아니 이것을 마땅히라고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렇게 디어야 한다.(20쪽)
개별적인 문학 작품의 연구나 작가의 연구가 바람직한 문학사의 기술을 위한 변별자적 성격 규명이라고 한다면, 1940~1945년 사이의 기간이 시간적 무대가 된 이런 작품에 대한 평가가 지금까지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문학 연구자들이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21쪽)
더욱이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날조하고 왜곡해서 기술하며, 고구려 시대까지만 해도 우리의 땅이었던 간도에 그들의 괴뢰정부 滿洲國 건립까지 합리화시키려는 근자에 우리는 간도를 재인식하면서 묻힌 역사를 캐내어야 할 것이고, 문학 연구 또한 여기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21쪽)
일제의 강점기 30여년은 거의 떠남의 사회였고, 밀려남의 형세였다고 할 수 있다.(23쪽)
이농형(離農型) 작품군은 어둠을 헤쳐 밝음을 지향하는 아들의 세계이고, 이 아들은 아버지로 상장되는 退孀性, 보수성, 소극성의 이미지와는 다른 진취성, 미래지향성, 적극성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농형 작품군 중 이민지 만주를 무대로 하고 거기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는 이농민들의 생활을 문제삼는 작품들, 이를테면 <벼>, <農軍>, <새벽> 등의 작품은 <故鄕 없는 사람들>, <農村 사람들>, <移住民 列車> 등에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에의 지향 의지와는 다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즉 이들 작품의 등장 인물들이 앞세서 고찰한 바와 같이 중국인이나 만주 원주민들과는 적대적인 관계에서 묘사되고 있으나 일인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란 점이다. 이 점은 <벼>의 경우에서 비교적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農軍>이나 <새벽>같은 작품에서도 엿보인다.(39쪽)
그런데 나까모도(<벼>-인용자 주)가 내세우는 [세계 동포애]란 사상이 당시 일제가 표방하던 四海同胞 또는 協和精神과 다를 바 없는 위장된 침략 근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만주에 이주한 한국 이민에 대한 중국인이나 원주민의 박해를 뒤에서 도와 준다는 행동과 같은 것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일제가 한국을 통치하면서 내세웠던 소위 협화 정신을 연상시키는 불유쾌한 도움이다. 그리고 매봉둔 이민촌에 [水田 開拓의 첫 괭이를 내려놓았다]는 홍덕호의 행동 역시 당시 일제의 만주와 水田 개발 정책을 연상시킨다.
이런 점이 한국 이농민의 親日 의식을 노출시킨 것이라고 바로 말할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주인공이 일인의 세계 동포애의 사상에 힘입어 학교를 짓는 일에 더욱 적극성을 보이는 행동은 당시 한국인의 민족 의식의 변모의 일면을 드러내 보이는 면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한국 독립 운동의 주축이 만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 문학 외적 사실과도 대립되는 점이다. 그러니깐 <벼>의 찬수, <農軍>의 창권과 같은 인물은 어려운 생활에서 벗어나 新開地를 찾아왔다는 점에서는 역경의 극복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불투명한 행동을 보여주는 면은 이들 작품이 지닌 커다란 한계점이라 하겠다.(40쪽)
국문학은 문학이다. 그리고 국문학인만치 그 문자는 우리의 문자로 쓰여져야 하고, 민족적 감정이나 문제, 사상 또한 한국적인 것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않은 작품은 아무리 문학적 가치를 지녔다 하더라도 국문학으로 잡을 수 없다. 만약 민족 감정을 외면하고 우리의 국가관을 망학한 문학이 있다면 그것은 매국 문학, 반역 문학이지 국문학이 아니다. 반대로 민족 정신을 지키면서 압력에 항거하는 문학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국문학, 민족 문학이 된다.(41쪽)
간도를 중심으로 한 亡命地帶 在滿鮮人의 생활을 다룬 작품을 대상으로 잡을 때 문제는 달라진다. 여기서는 비옥한 토질과 광활한 대지를 배경으로 새로운 민족 이민의 현장을 문제삼는다. 이것은 本國文學이 식민지 조선의 진실한 형상을 외면하고 점진적 개혁 혼을 들고나온 태도와는 판이하다. 난관을 극복하고 역사를 지배하면서 전 인류에 대한 윤리적 보편주의에 기초한 당대 한민족이 직면한 역사 조건을 인식하고, 인간의 도덕적 가치 문제를 의식하면서 우리의 존엄과 생존이란 민족 의지를 표현하려 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분명 1940년대를 대표하는 민족 문학의 엣센스가 될 수 있는 문학이 間島移民文學이다.(43쪽)
여기서 이민 문학(exile文學, 亡命文學)이란 용어는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내용이나 소재, 표현 문자의 相異에서 오는 제재론적 命名이 아니라 地政的 차이에서 본 지방 문학, 본국 문학의 한 갈래란 입장에서 쓰여진다. 따라서 이 글은 하나의 지방 문학으로서 한 시대의 문학적 특성인 국문학의 본질을 밝혀 보려는 시도가 된다.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이 시기에 와서 우리의 문학은 새로운 문자와 새로운 사상 감정의 표현과 더불어 창씨개명된 작가에 의해 한국과는 떠나 버렸으나, 이 망명지 간도 이민 문학은 그 표현 문자가 아직 국자·한글이고, 작품의 여러 요건이 앞시대의 한국 문학과 지속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작품에 나타나는 갈등의 양태가 1940년대의 민족적 감정과 관심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43쪽)
문학 작품이 반드시 사회사의 한 단면으로 쓰여진 것은 아니며, 또 사회적 징후로서 창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학 작품은 특정한 한 개인이 본 체험의 비전으로 개인의 사상, 자아(Identity)의 주장이다. 그러기에 어떠한 작가도 고립하며 살지 못한다. 그는 독특한 개인이지만 타인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知的 배경 속에서 살고 있는 개인이다. 작가의 임무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문제에 완벽한 해결책을 내리는 것이라기보다 刺戟的이고 昭明的인 개인적 비전을 톻해 해결책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보면, 異民族의 통치 시대를 산 우리의 작가가 현실적 문제-민족 해방이란 문제-를 바로 비판하지 못하고 보호색을 쓰거나 새로운 주제로 눈을 돌리는 것이 일단 이해된다.(45쪽)
말하자면 가장 완벽한 식민지 시대가 오면서 민족은 닫힌 사회로 빠져들고 정신적 자기 혁명은 권력지향적이고 우파적 현실 타협안으로 인해 마비되었다. 內鮮一體가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되는 상황에서 민족 의식은 본국에 잠시 머물다 移民 지대로 모여들었다. 그곳은 한반도의 안이 역사의 보편성과 국제 사회의 평화 체계나 인간 존엄의 가치가 여지없이 마멸되어 大和民族만이 알파요 오메가라는 논리 속에 전 민족이 제국주의에 이끌려 가고 있었던 상황과는 아주 달랐다.(46쪽)
우리 민족이 滿洲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지만 본격적으로 망면의 성격을 EL고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다. 그러나 在滿 移民들이 문학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30년대에 와서야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1935년부터 同人인 北鄕會가 동인지를 내면서 망명 문단을 형성키 위해 李周福과 毛允淑, 安壽吉이 작품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48쪽)
망명 문단이 보여주고 있는 新開地 이민의 의지나 流民의 恨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開拓民文學 내지는 농민문학의 생성은 전혀 별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것은 리얼리즘 문학이 복사적 기능에 머문 것이 아닌, 즉 파악이 아니라 선택된 현실의 순수한 반영으로 민족이나 역사적 문제에 있어서 어떤 본질적 문제를 제공하려 ks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드러난 현상(Appearance)에 지나지 않고, 1940년대 문학의 본질은 이 망명 문학이 갖는 현실(Reality)이란 의미이다.(54쪽)
그러나 1930년대에 있어 가장 사려 있는 리얼리스트였던 염상섭의 이런 협화 정신 운운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작품 <牧畜記>는 그렇게 순순히 협화 정신을 형상화하지는 않고 있다.(55쪽)
그런데 이 시대의 작품에서 農民道나 농촌부흥론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국의 식민지 정책과 연관지워 설명하려는 것은 일종의 선입관적 인상을 준다.(56쪽)
1920년대의 최서해는 자신이 만주에 겪은 궁핍, 곤욕, 참상을 기록한 작품을 써서 있는 사실의 기록이란 새로운 문학 형식을 이 땅(56쪽)에서 성공시켰다. 이것은 작품보다 문학론이 우세했던 계급 문학의 이데올로기를 무색하게 했고, 방화, 살인으로 끝나는 結句 부분의 반항 양식은 음울한 분노에 적절한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당시 1920년대 산문 문학에 새로운 유행을 유포시켰다. 1920년대의 최학송의 이러한 작품의 특질, 특히 在滿鮮人의 궁핍과 참상, 그것의 보고문학적 성격은 1940년대의 이 在滿鮮人을 다루는 작품에도 아주 방사하다.
소금 밀매로 근근히 호구해 가는 유랑 농민의 서글픈 얘기를 쓴 <새벽>에서 [피]가 보여주고 있는 충격적인 결구는 가히 이런 이민 사회의 단면을 다룬 典範이라 하겠다.(57쪽)
南石 안수길의 <벼>, <새벽>, <圓覺村> 등은 1940년대 만주 이민의 고달픈 생활 현장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짐으로써 설득력을 획득하고 있다. 이것은 1940년대의 본국 문학이 朝鮮文人報國會를 중심으로 皇道文學을 수립하려던 문학적 현실과는 너무나 상이하다. 따라서 안수길의 간도 이민 소설은 당대 한국 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강력한 민족의 지향 의지를 형상화한 작품의 좋은 예가 된다.(65쪽)
안수길의 작품이 1920년대 최서해 작품에 나타나던 체험적 민족 궁핍화를 고발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국문학의 지속적인 일면에 닿아 있고, 在滿鮮人의 망명 의지를 형상화하였다는데 또 다른 민족문학사적 변화가 있다. 공백기 문학 대체 논의는 이런 근거에서 출발한다.(65쪽)
안수길의 농민 소설을 두고 당시 일제의 水田開墾에 따른 국책순응의 각도에서만 해석할 수 없다. 그것은 만주로 찾아간 사람이(65쪽) 한뙈기의 땅도 붙일 곳이 없어 살 길을 찾아 떠난 소작농이거나, 품팔이, 실업자의 무리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식 계급의 출신이 농촌의 무지한 농민을 계몽하기 위해서 농촌으로 뛰어드는 면은 1930년대 농민 계몽 소설의 한 갈래란 점에서 주목된다.(66쪽)
1940년대에 있어서 朝鮮農民文學의 근본적인 과제는 작가 자신이 농촌을 알고, 농민의 유랑, 破産, 負債, 農耕, 穀分打租 등의 조선적인 제 특질을 闡明하는 것이 그 과제의 하나로 지적되었다.(印貞植, <朝鮮農民文學의 根本的 課題>, <<人文評論>>,1939. 12월호, p. 19 참조-인용자 재인용) 그리고 특히 이러한 문제는 이때 많은 한민족이 간도 등지로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됨으로써 만주에 있어서의 우리 민족의 생활사는 중요한 명일의 문학으로 제시되었으며(현경준, <문학풍토기>(간도편), <<人文評論>>, 1940. 6월호 p.84 참조-인용자 재인용) 이러한 제시는 실제 관심 있는 작가들에 의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이기영, <만주와 농민문학>, <<人文評論>>, 1939. 11월호. pp20~22.-인용자 재인용)(67쪽)
특히 1940년대는 일제의 단말마적인 軍國意志가 완전히 민족적인 것을 말살하고 大東亞共榮圈 건설에 혈안이 되었던 시기다. 이로 인해 민족 의지는 완전히 폐쇄당하고 좌절과 자학적 증세, 또는 事實受理論으로 등분되던 때다.(68쪽)
그러나 그 앞서부터 한국인을 排日運動의 일환으로 압박하고 있던 중국측은 설사 만주국의 건설로(1932. 3. 1) 한국인에 대한 악감이 정치적으로 완화될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원래 일제가 한국인을 중국에 귀화시켜 일제의 자금으로 토지를 매수시킴으로써 한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쁜 감정은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었다. 따라서 재만 한인은 중국인과의 갈등으로, 정치적으로 만주국 국민이면서도 심리적으로는 만주 국민이 아니고 일제의 한반도 정책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이고 보니 皇國臣民도 아니다. 이런 풍토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도는 無人境의 처녀지에서 원시적 생활을 하거나 바보처럼 그들 친일파나 만주 원주민의 박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72쪽)
준지하듯이 1940년대 이후는 파시즘의 대두와 일제의 악랄한 戰時政策으로 우리 문학은 두꺼운 벽에 부딪치면서 작가 의식의 좌절이 문학 일반의 현상으로 나타났던 시기다.(84쪽)
한국의 현대문학을 재정리 재평가하는 일은 당면한 우리 문학사의 과제다. 이와 같은 문학사의 개편 복완에 있어 거의 간과했거나 경시해 온 일제 통치하의 이민 문학은 소위 암흑기로 명명되는 1940년대의 문학을 평가하는 데 새로운 좌표로 나타났다. 특히 '40년대는 이제가 우리말을 말살하고 문학 예술까지 日文에 의한 親日御用文學으로 강요함으로써 많은 작가가 변절하고 그외 남은 문인들도 일정하의 생활과 미족 의식 사이에 야기되는 갈동이 일어 이른바 인생파, 전원파 등 패배주의적 문학 행위로 돌아가거나 절필했다. 그러나 이민 문학-만주, 간도 등지의 2백만의 이주농민을 다룬 南石(安壽吉)이나 曙雲(朴啓周)의 前期 문학은 朝鮮臨時保安令(1941년)이나 出版事業令(1943년) 등과는 문관한 무학적 양상을 나타낸다.(88쪽)
<<북향보>>에 비민족문학적 요소가 나타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타난다면 어떻게 나타나고 있고, 시대상이 이떻게 굴덜되어 있는가가 실상 더 중요한 점일 것이다. 따라서 <<북향보>>가 제기하는 문제점은
첫째, 1940년대 중기에 있어서 우리의 正體와 역사 의식이 무엇이며,
둘째,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이 함께 보여주는 귀농의 성격,
셋째, 이 소설의 주요 인물군의 우화된 행동의 의미와 1930년대 농민 소설과의 관계 등이다. 나아가 예상되는 이런 결론은 1940년에서 1945년 사이를 소위 암흑기로 규정하는 한국 현대문학사의 오류를 시정하는 또 하나의 논증이 될 것이다. 한편 이런 결과는 조선 후기 이래로 그곳으로 이민을 간(申基順, <<韓末外交史硏究>>, 一潮閣, 1967, p.15-인용자 재인용) 동족의 성격과 근대문학사에서 간도나 만주의 이민들이 남긴 문화적 업적이 우리 의식사에서 어떤 비중을 지니는가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도 되리라 본다.(116쪽)
1940년대 만주 및 간도 에 있어서 한국인이 처한 입장을 보면, 우선 그들의 국적이 마주국이었다. 민족은 한민족이면서 국적은 만주국이었고, 또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이었기에 이주해 온 땅에서도 그들의 간섭을 받아야 했다. 만주국은 일본이 세운 괴뢰국가였으니 만주국의 보호란 것은 기대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들은 우리 민족을 흘러든 유랑 민족쯤으로 무시하고 적대시하였다. 이런 처지는 우리 이민에게는 국권 상실, 유랑, 새로운 땅에서의 또 한번의 간섭받음이란 점에서 삼중고의 어려움이 되었던 것이다.(118쪽)
주지하듯이 일제 강점기에 있어서의 만주와 간도는 독립 운동의 집결지로서 독립군이 아닌 이민의 힘까지 항일 구국 운동으로 전이시킬 수 있었던 제2의 한국 영토였다. 한반도의 안이 민족 의식과 민족 의지를 집약한다기보다 오히려 반민족적 역사의 수렁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을 때도, 그와는 달리 그곳은 구국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반역사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위치에 있었기에 민족 의식과 역사 의식을 망각하지 않을 수 있었고, 문학 또한 그러한 민족 체험을 형상화할 수 있었다.(121쪽)
<<북향보>>는 짐승처럼 고향을 쫓겨났던 이민들이 거친 이역의 땅에서 협력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는 민족의 문제가 작품의 소재로 채용되고 있다. 그러나 앞의 자료 검토에서 보았듯이 이 작품의 몇 부분에 나타나는 비민족적인 문맥이 민족적인 문맥으로 제작될 만큼 스토리가 확산되어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작품의 결말이 나타내는 주제이고, 등장 인물이 보여주는 마지막 의미이다. 그리고 끝까지 모국어를 사용한 깡기에서 발견되는 민(121쪽)족 의식과 역사 의식이다. 민족 의지의 좌절과 변절의 현장으로 타락한 한반도를 아리랑을 부르며 흥안령을 넘었던 민족의 수난사가 이 작품에서는 당시의 일반적 문화 풍토와는 달리 [북쪽에 새고향 건설]이란 스토리로 소설의 주제가 숨어들고 있다. 五族協和를 외치는 일반 문화 풍토가 외관(Appearance)이라면, [북쪽에 새고향 건설]이라는 숨은 의미는 그런 외관을 넘어선 내포화(Connotation)가 아닐까.(122쪽)
이것이 해명되었을 때 <<북원>>(1943년), <<북향보>>(1944~45년), <<북간도>>(1957~67년)로 이어지는 안수길 문학의 미족 대서사시의 端初가 분명히 잡힐 것으로 보인다.(122쪽)
교육계 출신 정학도, 농업학교 출신 오찬구, 소설가 현암, 여교사 석순임 등이 모두 이민의 앞날만을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들의 적대 세력에 대해서는 한번도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지식인들의 이러한 행동이 보여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은 1945년 무렵 한민족의 후예로서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했던 한계점이 아닐까. 왜냐하면 1945년 그 시점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적대 세력과 맞서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삶을 유지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들 등장 인물들은 소설을 써서 선대 이주민의 고난을 후세에게 교육하려 하고, 단오에 박첨지 놀이, 사자 놀이, 동대항 추천 대회, 씨름 대회 등을 열어 우리의 전통 풍속과 민속을 지켜나가려 하며, 농악을 통해 이주민들에게 애향 사상, 애족 정신을 일깨우려 한다. 또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 수시로 나타나는 北鄕精神, 稻魂思想에 대한 지문은 이런 면을 둘러 이야기하는 것이 된다. 한편, 이 소설이 신문 연재 소설이면서도 정치적 이야기나 당시의 전황 같은 것을 내비치지도 않는 것은 침묵, 그 이상의 의미를 암시하거나 상징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무관심도 하나의 소극적 저항이 되기 때문이다. 오찬구를 위시한 이런 비판적 지식인상은 당시 몇몇(131쪽) 유수한 한국 소설에 나타나는 낙관주의적 세계관을 지닌 인간상, 즉 식민지의 궁핍화 현상을 누구보다도 뚜렷이 알면서도 무력 투쟁에 나서지는 않고 그러면서도 좌절하지 않는 희귀한 지식인의 한 유형으로 보인다. 이 무렵의 이와 유사한 인간상을 우리는 채만식의 <<濁流>>의 주인공 남승재를 통해 발견한 사례(김현, <<문학사회학>>, 민음사, 1984, p. 154-인용자 재인용)를 가지고 있다.(132쪽)
만약 A,B 두 인물군을 드러난 대립으로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작가의 사상 전달에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첫째 당시의 검열로 인해 민족적인 A인물군이 비민족적인 B인물군에게 꺾여야 했을 것이고, 둘째, 당시의 실제 인간상이 미족적인 것(A)과 친일적인 것(B)으로 맞설 수 없었던 시기였으니 위험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사회 실상이 맞서 있지 않은 듯 한데 그것을 맞서 있는 것으로 드러냈으면 신문 소설로서 당장 견디어(134쪽) 낼 재간이 없었고 작가 자신도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135쪽)
<아리랑>이 <간도 아리랑>으로 개조되어 불리고, 북만주 넓은 천지가 日人의 천국으로 화해간 시기에 민족 이민의 이상을 현실과 대립의 각도에서 인식하고 형상화함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 어떤 명목으로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제가 우회되어 독자에게 후일담으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이 뒷맛은 A군의 되살아나는 과정과 C군의 변신과 결말의 해피엔딩 예보에서 드러난다. 모든 소설이 해피엔딩의 구조도 아니고, 또 모든 소설이 주인공의 승리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북향보>>는 민족적인 차원에서 시작된 북향 목장의 건설이 비민족적인 기회주의자 박병익에 휘말려 한때 고난에 빠지지만, 마침내 승리하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선주민 정학도의 대에서는 목장 건설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1대 주인공의 대에서는 이와 맞서는 적대 세력의 비협조와 외면을 극복하기 위해 눈물겨운 모금 운동으로 위기를 넘긴다.(135쪽)
적대 세력 B군이 목장을 담보로 사업을 시작하자, A군은 그 적대 세력을 꺾으려 하지 않고 저당을 해제할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 전력을 쏟는다. 국가의 힘도 상실한 이역에서 우리 이민이 살아 남으려면 이런 수동적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들은 그 터전인 목장을 팔아 넘기려는 세력을 향해 한마디의 공격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농민들의 지도자 정학도가 이상농촌을 건설하자면서 일본이나 반대 세력을 비판하지 않았던 것과 똑 같다.(135쪽)
안수길은 수세에 몰려 있으면서도 공세를(135쪽) 취할 줄 모르고 주어진 상황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듯 응집과 일체감으로 위기를 넘기려던 그 딱한 현장에서 이 작품을 쓰고, 발표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구체적인 현실 체험으로 인하여 리얼리티를 잃을 염려가 없는 작품이고 현장성이 강한 작품이다. 이런 면은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작중 인물, 농민 소설가 玄岩이 <<싹트는 대지>>를 지칭하는 듯한 <동트는 대지>의 이야기로 잘 방증된다.(136쪽)
이상과 같은 성격 창조는 작가의 현실 수용 태도, 즉 선택된 현실이 아니라 현장 그 자체를 모두 수용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적인 것도 친일적인 것도 드러내 놓고 택할 수 없는 시대 사정으로 보았을 때 이런 작가의 태도는 무관심이나 阿世라기보다 현명한 방법의 선택이라 판단할 수 있다. 이 점은 또 작품이 평면적 인간군의 대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C군이 대단원 부분에서 전향하고 A군의 인물들이 목적을 달성하는 입체 구성을 이루면서 B군의 몰락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136쪽)
지금까지 논의한 사실을 정리하면 이 소설은 현실과 理想의 거리가 떨어져 있으나, 그 거리를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대립과 꺾임으로 주제를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들의 변모와 현장의 실상을 정공법의 논리를 통해서 좁힘으로써 주제를 다음어 낸 작품이다. 그리고 이것은 日帝와의 맞섬이 정학도와 같은 理想型의 인물로는 현실의 극복이 불가능했기에 오찬구와 같은 실천적 인물을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기법은 당시의 검열 제도를 의식하고 민족 이민의 현장을 둘러 나타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점은 이 소설이 클라이막스를 갈등이 아니라 스트리의 전개에 두고(136쪽) 있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137쪽)
1) 1940년대 만주와 간도의 문화적 外觀은 한반도 내의 일반적 문화 상황과 다른 바가 없었다. 그러나 1930년대말 <<北鄕>> 등 동인지로부터 시작된 순수 문학의 경우는 그런 문학 일반의 경향과 다른 민족 수난의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北鄕譜>>의 경우도 광복 직전까지 고향을 돌아가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流謫地에서 모국어를 사용하여 [북쪽에 새 고향 건설]이란 주제를 다룸으로써 그렇나 전시대 문학과 동일한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음도 함께 밝혀졌다.
2) <<북향보>>는 1930년대 민족 문학의 주류로 평가되는 <<흙>>과 소재, 구성, 인물의 성향 및 주인공의 일대기 등이 아주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1930년대 민족 문학과 동일 계열의 농민소설로서 그러한 작품군의 주제, 즉 민족의 자강사상이 1945년대에 구현된 놀라운 예가 된다. 따라서 이 소설이 신문 연재 소설로서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는 시대 상황은 이 작품의 민족문학적 주제의식을 근본적으로 뒤엎을 수는 없다.
3) 이 소설은 자손 대대로 살기 좋은 새 고향을 만들자는 이상과 그러한 이상 실현을 어렵게 하는 현실이 갈등과 대립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검열을 의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현실을 그렇게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 즉 민족적인 것도 친일적인 것도 드러내(137쪽) 놓고 주장할 수 없는 시대 의식을 함축시키려는 확대된 리얼리즘 정신이라 하겠다. 그러나 북향 목장이 재건되고, 목장 건설의 적대 세력(B군)이 긍정 세력으로 넘어옴으로써 離農들의 뿌리내림이라는 이 소설의 주제가 효과적으로 구현되었다. 이런 인간상의 창조는 이 작품이 사건을 갈등이 아니라 스토리의 전개에 두고 있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4) 앞의 결론 1), 2), 3)을 전제할 때 본고는 한국 현대문학사가 1940년에서 1945년 사이를 [공백기, 암흑기]라고 논술하고 있는 오류를 간도문학을 통해 시정하는 또 하나의 논증이 된다.(138쪽)
그러나 윤동주의 시 세계를 내정적이고 실존적인 의식에 바탕을 둔 좌절된 자아를 보는 시각은 종래의 견해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단지 추억된 고향의 감각적 대상, 혹은 고향의 삶 자체를 보여주는 것을 두고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의미 속에 고향이 놓인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147쪽) 점은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유랑의식을 해명함으로써 분명히 드러나고, 그 유랑의식이 좌절이라기보다 식민지민적 고뇌에서 비롯되는 고향은 있으되 안주할 고향이 아니라는 또 다른 고향, 또 다른 고향을 찾을 자세에서 증명된다.(148쪽)
한국적인 정서가 무엇이냐는 물음에서 제일 먼저 이야기되는 것이 情이고 恨이다. 한 예를 들어 우리에게 있어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한은 무엇일까. 무엇이 강점기 우리 민중의 보편적 정서가 될까. 그것은 헤어짐에 대한 그리움이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착이다. 이 점(148쪽)은 그 불행했던 시절의 정서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출하는 <아리랑>과 같은 노래에서 아주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리랑과 일제 강점기 36년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우리의 노래이고 그 노래가 주는 맛은 별리에서의 아쉬움이다.(149쪽)
잮론할 여지가 없지만, 이 시대의 문학사는 <<在滿朝鮮詩人集>>, <<北原>>, <<싹트는 대지>>, <<北鄕譜>>, <<北鄕>> 동인지 등 間島 移民文學으로 대치된다.(158쪽)
어느 시인에게나 초기의 시집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습작기로부터 제1시집을 내기까지, 거개의 시인이 겪는 가장 긴 고심과 모색의 기간이 이 때이며 그런 흔적이 그대로 次期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문학이 시인의 체험이나 생활과 무관하지 않고, 그 시인의 前半生의 생활에서 형성된 의식이 인식의 방향을 결정 짓는다고 볼 때,...(161쪽)
柳致環은 후에 그의 만주행이 불가피했던 사실을 밝히는 글에서 당시의 현실을 질식할 [일제 질곡의 하늘 아래]란 표현을 쓰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지 그의 인생에 희망을 건다든지 설계를 세운다든지 하는 것은 적 앞에 자기를 종으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아부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따라서 당시의 현실에서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면 원수에 대한 가열한 반항의 길로 자기의 신명을 던지거나 아니면 희망도 의욕도 저버리고 그 굴욕에 젖어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165쪽)
한국 시에 있어서의 [北滿體驗]은 크게 두 갈래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역사적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공간적인 의미이다. 전자의 경우가 陸史, 尹東柱 등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경우는 본고에서 논하려는 柳致環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166쪽)
그러나 문학작품의 연구에서 역사의식을 전제할 경우, 특히 일제강점기의 작품에서 이런 태도를 적용시킬 때 연구의 대상이 되는 시인은 [민족 시인], [저항 시인], [節義 시인] 식으로 관념화 내지는 우상화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해당 작품에서 節義的인 우상화의 요소가 있으면 모르지만 이런 요소를 찾아내기 힘들 때 그 작품에 대한 의미는 부정적으로 평가되거나 이해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이제 거의 타성화된 느낌마저 갖게 하는데, 이것은 일부 한국 문학 연구가 안고 있는 하나의 한계점이라 할 수 있다.(167쪽)
북만의 시간적 체험, 곧 李陸史나 尹東柱의 경우에 있어서는 시인의 의식이 역사 속으로 잠입함으로써 이들이 살았던 시대의 현실에 참여하고 그것이 주는 의미의 해명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 陸史에 있어서의 [北滿](曠野)은 현재와 천 년 뒤의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이고, 尹東柱에 있어서도 北滿은 과거의 추억 속에 살아있는 [北滿]이다. 이럴 때 시인은 시간 속에서 의식활동을 전개하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 수 있다. 그래서 옛날을 회상하는 抒情地帶에 머무를 수 있는가 하면 앞날을 기약하는 예언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기에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서 유린당하고 버려진 땅이 스스로 다스(167쪽)리는 사람들의 나라가 되리라는 민족의 기약된 미래를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북만을 작품에서 공간적 素材場으로 체험하고 있는 유치환의 경우에 있어서는 시간상으로는 현재일 뿐이고, 그 현재가 현실과 대응되면서 긴장감을 자아낸다. 전자가 과거, 현재, 미래와의 만남에서 시적 긴장을 이루어 낸다면, 후자는 현재와 현실이 만나는 二元對立의 세계에서 詩的 긴장을 빚어낸다. 李陸史의 <曠野>에선 가장 고달픈 현재가 찬란한 미래와 대응된 후 다시 미래 속으로 잠입함으로써 上乘指向이 가능해졌고 尹東柱의 <별헤는 밤>에서는 불행한 현실이 행복했던 과거로 回歸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형상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柳致環의 경우는 현실을 直視한다. 나와 현실과의 사이에 거리를 두지 않고 현실과 맞서서 卽物的인 각도에서 대상을 인식한다. 이것은 그의 시가 표현에서 기교를 부리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선 증명된다.(168쪽)
외부에 나타난 역경이 아무리 황막하더라도 인간의 내면 생활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생활이 어두움으로 찰 때는 불행을 벗어날 수 없다. 이때 인간은 황막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싸워야 하고 그와 함께 자신의 내부적인 불행을 막기 위해 자신을 가로막는 어두움의 근원을 또한 없애야 한다.(173쪽)
우리가 나라를 일제에 유린당하고 있는 동안은 조선 독립군이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국권회복을 꾀했고, 문학의 경우 <별헤는 밤>의 민족 시인 尹東柱가 태어났고 그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또 한편 李陸史와 같은 선이 굵은 민족적 서사 문학이 시적 체험으로 익어간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丹齋 申采浩가 <<海潮新聞>>과 같은 것을 통해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기도 했던 무대였다.(175쪽)
밝음과 어둠의 대립 구조는 <<北間島>> 전체 구조의 한 축약이 된다. 그리고 그 축약은 이 소설이 민족의 수난 받은 역사를 극복의 의지로 형상화한 문제를 둘러서 보여주려는 상징 체계의 징후를 띠고 있다는 면에서 주제 발견의 출발점이 된다.(207쪽)
특히 <<北原>>과 같은 창작집은 1943년이란 시기에 발행되었고, <<북향보>>는 광복 직전까지(1945.7.4) 모국어로 우리 농민의 어려운 이주사를 다루었다. 이것은 주요한 의미를 지닌다. <<북간도>>는 안수길의 이런 문학 맥락에서 마지막 자리에 서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1870년부터 1945년 우리 나라가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민족의 갈등, 곧 한국인 대 중국인, 한국인 대 일본인, 중국인 대 일본인의 대립과 이주, 농민의 뿌리내림, 고난의 현장을 추적하고 있다.(208쪽)
민족의 이런 힘든 과거사를 평범한 移農民의 가족사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이 우리 민족의 원초적인 생존 의지를 그려내고 있다는 데 우선 의의를 찾아낼 수 있다.(210쪽)
이 작품은 이농민 이한복 일가의 무서운 간도 이주의 피와 땀의 역사이다. 물론 여기에는 복동예 같은 불쌍한 여인의 운명이 있고, 청산리 싸움의 대승리 같은 실재의 사건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건은 험악한 역사의 변화 속에 개똥참외처럼 살아온 이름없는 韓民族의 힘든 간도에서의 생존의 역사에 바쳐지고 있다. 이 작품에는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시기의 유명한 사건이나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상의 사건이나 실제 인물들은 마이너 케렉터로 처리되고 평범한 농군을 통해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즉 목격자적 입장에서 진술되고 있는 역사소설이다. 이를테면 政事的 역사소설이 아니고 평범한 중도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당대 민족의 역사의식의 핵심에 접근하여 리얼리티를 획득하려는 작품이다. 이러한 점에서 <<북간도>>는민족문학의 한 고전적 면모를 보여주는 소설이라 하겠다. 이것은 [역사의식이란 현실을 역사 흐름의 일환으로 파악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했던 안수길의 역사관이 E.H. 카가 [역사란 본질상의 변화요, 운동이요, 진보]라고 했던 바로 그런 역사의식의 본질 이해에 서 있기 때문에 형상화된 결과로 보인다.(212쪽)
역사소설이란 지난 날의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재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이 장르는 역사상 실제의 사건이 정사의 입장에서 다뤄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곧 역사상의 위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한 시대와 사건을 역사적 기록에 부합되도록 재구성하는 이른바 정사적 역사소설, 실제적인 시대아 서건은 2차적인 것이 되고 작가가 창조해 낸 허구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적 경험과 소설미학이 조화된 리얼리즘으로서의 역사소설이 쓰여질 수 있다. 뒤의 경우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적인 사건이 실제 역사와 상응되면서도 과거의 역사가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되고 있다는 면에서 소설발달사에서 앞의 것보다 한 발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정사적 역사 소설이 역사상의 위인, 영웅, 실존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되는 만큼 작가는 당시의 역사와 인물의 행적을 추적하여 기술하는 데 지나치게 영중하기 쉽다. 이러다 보면 당해 작품은 傳記나 野談類로 흘러 敍事文學이 본질적으로 지니는 리얼리즘적 성격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213쪽)
가령 <<전쟁과 평화>>와 같은 고전적 역사소설이 인류의 큰 변동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택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당수가 그 시대를 살았던 실제 인물들이다. 그렇지만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인물들은 그러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창조된 가상적 인물들로 되어있다. 피에르, 나타샤, 안드레이와 같은 톨스토이가 창조한 인물들은 알렉산더 황제, 나폴레옹과 같은 역사적 실존 인물보다 더 생생히 살아 있고, 그런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그 시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아니라 허구적 인물 안드레이를 통해서 인간의 야심, 명예욕, 존경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영웅이란 것이 사실은 얼마나 의미없는 존재인가도 배우게 된다.(213쪽)
곧 역사에 기록된 어떤 독립투쟁보다도 무지한 이들이 민족 진로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꾼 담당(215쪽)자였고 희생자였다는 역사의식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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