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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전적 프로필
[글을 잘 쓴다는 것]
훌륭한 작가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은 더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는 것은 이를테면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동시에 사고의 실현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걷는다는 것도 어떤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욕구의 실현인 것이다. 그러나 그 실현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그것이 목적에 맞추어 정확하게 이루어지든 아니면 마음내키는 대로 부정확하게 이루어져 소기의 목적에서 벗어나든-길을 가는 사람의 평소 훈련이 어떠한가에 달려 있다. 그가 자제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또 불필요하게 샛길로 어슬렁거리는 움직임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충분히 제 구실을 하게 되고 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목적에 더 부합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작가에게는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는 이러한 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마치 훈련을 받지 못한 조악한 주자가 스윙이 큰 암팡지지 않은 육신의 동작 속에서 허우적대듯 자기 자신의 정력을 탕진해 버린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그가 생각하는 바를 한번도 냉철하게 얘기할수 없는 것이다. 훌륭한 작가의 재능이란, 그의 사고에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훈련된 어떤 육체가 제공하는 연기와 그 연기의 스타일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는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글을 쓰는 행위는 그 자신에게가 아니라 다만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에만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다.(26쪽)
[나의 서재 공개]
책을 구입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자신이 직접 그 책을 쓰는 일이다.(32쪽)
작가들이란, 책을 사지 못할 만큼 가난하기 때문에 책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살 수는 있어도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책에 대한 불만 때문에 책을 쓰는 사람들이다.(33쪽)
2. 문예비평
[프란츠 카프카]
나는 오늘날의 유럽과 인류의 몰락에 대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카프카와의 대화를 기억한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신의 머리에 떠오른 허무주의적 사고들이자, 자살적 사고들이야.} 이 말은 처음에 나에게 그노시스 Gnosis의 세계상, 즉 신을 사악한 조물주로 또 세계를 그 신의 타락으로 보는 신비적 세계관을 상기시켰다.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그가 말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신의 언짢은 기분, 기분이 나쁜 날일 따름이야.}-{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인 이러한 현상계 외부에는 희망이 존재하고 있을까?}-그는 미소를 지었다. {암, 희망은 충분히, 무한히 많이 있지.-다만 우리를 위한 희망이 아닐 뿐이지.}(막스 브로트)
이러한 말들은, 카프카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특이한 인물들, 즉 유일하게 가정의 품을 벗어났고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그들에게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는 그러한 인물들로 나아갈 수 있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해 준다. 이 이상한 인물들은 동물들이 아니다. 더구나 반은 고양이이고 반은 양인 잡종도 하니고 오드라데크와 같은 架空의 동물도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인물들은 모두 아직도 가정의 영향권 안에서 살고 있는 것들이다. 그레고르 잠자가 바로 양친의 집에서 해충으로 깨어나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상속물이 반은 양이고 반은 고양이인 괴상한 동물이며 또 오드라데크가 家長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것도 그나름의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助手>들은 이러한 서클로부터 떨어져 나온 존재들이다.(68쪽)
인도의 전설에 의하면 간다르바 Ghandarve라는 아직도 미완성 상태의 존재인 미숙한 피조물이 있다. 카프카의 조수들도 이와같은 성격을 띤 존재들이다. 그들은 다른 어느 인물군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누구한테도 낯설지 않다. 그들은 이를테면 여러 인물군들 사이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68쪽)는 使者들이다. 카프카가 말하고 있는 대로 그들은 使者인 바나바 Barnabas와 비슷하다. 그들은 아직도 자연의 모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마룻바닥 한쪽 구석에 헌 여인의 스커트 두 벌을 깔고 잠자리를 마련하였다....가능한 한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팔다리를 끼기도 하고 서로 쪼그리고 앉는 (물론 언제나 속삭이고 킬킬거리면서)등의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다. 어스름녘에는 그들이 있는 구석엔 단지 커다란 실뭉치 하나만 보였다.>바로 이와같은 사람, 즉 미숙하고 서투른 인간들을 위해 희망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69쪽)
이 사자들의 활동에서 별다른 무리없이 살짝 드러나고 있는 것은 이 전체 피조물들의 세계를 답답하고 음울하게 지배하고 있는 법칙이다. 그 어느 것도 확고한 지위나 대치될 수 없는 확고한 윤곽을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모두 상승하거나 전락할 찰나에 있다. 또 그들은 모두 그들의 적이나 이웃과 교체될 수가 있다. 나이가 찼으면서도 그들은 모두 성숙하지 못한 채로 있다.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에 처해 있으면서도 이제야 비로소 오랜 존재의 출발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질서나 위계질서에 관해 논한다는 것은 여기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것들이 암시해 주고 있는 신화의 세계는 신화에 의해 구원이 이미 약속되고 있는 카프카의 세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젊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카프카는 신화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판 오딧세이로서의 카프카는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에 의해 사이렌들의 유혹을 뿌려쳤던 것이다.(69쪽)
도어벨 소리치고는 너무 큰 이 종소리가 하늘에가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카프카적인 인물들의 제스쳐는 일상적 주위세계에 대해서는 너무 강력하며 보다 넓은 어떤 세계로 뚫고 나가고 있는 것이다. 카프카의 대가다운 노련한 면모가 드러날수록 그만큼 그는 그러한 동작들을 일상적인 상황에 적응시키거나 아니면 그 동작들을 설명하는 일을 더 자주 피하고 있는 것이다.(73쪽)
그의 단편들은 비유가 아니며 또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의 단편들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인용할 수 있고 또 설명을 위해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카프카의 비유들을 해명해 주고 또 K의 제스쳐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거동을 해명해 주는 어떤 교리를 소유하고 있을까? 그러한 교리란 없다. 기껏해야 우리는 이러저러한 것이 그러한 교리를 암시해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어쩌면 카프카는 그러한 것들은 저 교리를 전해주는 유물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그러한 것들은 저 교리를 준비하는 선구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간사회에 있어서 삶과 노동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카프카는 그 조직이 그에게 불투명하게 보이면 보일수록 한층 더 끈질기게 그것에 몰두하였다.(75쪽)
카프카는 평범한 사람들 측에 속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해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한발한발씩 자신을 밀고 나갔다. 그리고 또한 그는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이해의 한계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때때로 그는 마치 도스토예프시키의 종교 패판장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77쪽)
카프카는 자기자신을 위한 비유를 창작해 내는 보기 드물 정도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비유들은 설명이 가능한 것에 의해서 완전히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와는 반대로 그의 작품해석에 방해가 되는,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예비조치를 강구하였다. 우리는 그의 작품의 내부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또 의심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카프카가 이미 언급한 우화를 해석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카프카 특유의 읽는 방식을 유념해야만 한다. 그의 유언은 이러한 점을 말해주는 또 다른 하나의 예이다. 자신의 유고들을 소각시켜 달라고 한 카프카의 지시는 전후사정을 두고 보더라도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법 앞에 서 있는 문지기의 답변들처럼 조심스럽게 따져보아야만 한다. 매일매일의 삶이 가져다 주는 풀기 어려운 행동방식과 해명하기 힘든 발언 앞에 서 있었던 카프카는 어쩌면 죽음을 통하여 적어도 자신의 동시대인들도 그와 동일한 어려움을 맛보도록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77쪽)
카프카의 세계는 세계라는 하나의 극장이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무대 위에 서 있는 존재이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은 누구나 오클러호머의 자연극장에로의 입단이 허용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기준에 의해 채용이 이루어지는가는 풀려질 수 없는 문제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인 연극적 재능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응모자에게 기대되어지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정이 절박하면 그들이 요구하는 바대로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되고 있다. 그들은 마치 피란델로의 드라마에서 6명의 단원들이 작가를 찾아나서는 것과 같이 그들의 역할을 가지고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카프카의 인물들이나 피란델로의 인물들의 경우 이러한 장소는 마지막 도피처이다. 또 바로 이러한 사실이 그 장소가 구원의 장소라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구원이라는 것은 현존재에 덧붙여지는 프레미엄이 아니라 오히려 카프카가 말하고 있듯이 <그 자신의 앞이마의 뼈에 의해 길이 차단되고 있는> 어떤 한 인간의 마지막 출구인 것이다.(78쪽)
카프카 역시 우화작가였다. 그러나 어떤 종교의 창시자는 아니었던 것이다.(79쪽)
카프카의 단편과 장편소설에 나타나는 여러 모티브들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철저히 규명하는 일보다는 그의 유고인 비망록에서 사변적인 결론을 추론해 내는 일이 더 쉽기는 하다. 그러나 작품에 나타나는 모티들만이 카프카의 창작을 지배하였던 前世的 vorweltlich 힘들을 이해하는 관건을 제공한다. 이들 前世的 힘들은 물론 오늘날 우리 시대의 세속적인 힘들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 힘들이 카프카 자신에게 어떠한 이름을 가지고서 나타났는지를 말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즉 그는 그 힘들의 정체를 몰랐고 또 그러한(82쪽) 힘들 속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몰랐는 점이다. 그는 단지 前世 vorwelt가 죄라는 형태로 그에게 내미는 거울 속에서만 재판의 형태로 나타나는 미래를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최후의 심판일까? 재판관을 피고로 만드는 재판일가? 그 소송 자체가 형벌이 아닐까? 여기에 대해 카프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대답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하였을까? 아니면 오히려 그런 대답을 미루려는 것이 그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이야기들 속에서 서사성이 그 의미를 다시 획득하는 것은 미래를 연기시킨다는 세헤라자데의 입을 통해서이다.(83쪽)
[프루스트의 이미지]
으레 하는 얘기지만, 모든 위대한 문학적 작품들은 하나의 장르를 정립하기도 하고 해체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들 작품은 특수한 경우인 것이다. 그러나 프루스트의 경우는 가장 파악하기가 힘든 경우 중의 하나이다. 허구적인 얘기와 自傳的 사실, 그리고 해설이 하나가 되어 있는 구조에서 시작해서 끝을 모르는 문장의 구문에 이르기까지(여기에 넘쳐 흐르는 말의 나일강은 점차 넓은 진실의 영역으로 나아가면서 이 지역을 비옥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규범을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관찰자의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의 중요한 인식은, 문학 분야에서의 이 위대한 특수 경우가 동시에 지난 수십년 동안에 이루어진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는 점이고, 또 이 업적이 이루어진 제반조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건강했다는 점이다. 이상스러운 병과 엄청난 부, 그리고 비정상적인 성벽이 바로 이러한 불건강한 조건들이었다. 이러한 삶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전형적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징표적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사실은 이 뛰어난 작가적 업적이 불(102쪽)가능의 중심부에서, 또 모든 위험한 중심부-이러한 위험한 중심부는 동시에 모든 위험에 대한 무관심이기도 하다-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이 <필생의 업적>의 위대한 실현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하나의 마지막 실현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프루스트의 이미지는, 시와 삶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커가고 있는 간극이 획득할 수 있었던 最大의 人相學的 표현이다. 그의 이미지를 떠올리고자 하는 시도를 정당화시키는 윤리적 가치는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고 하겠다.(103쪽)
잘 알다시피 프루스트는 그의 작품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삶이 아니라 삶을 체험했던 사람이 바로 그 삶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삶을 기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아직도 부정확하고 매우 엉성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여기에서 기억하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그가 체험한 내용이 아니라 그러한 체험의 기억을 짜는 일, 다시 말해서 회상 Eingedenken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기억을 WK는 일이 아니라 망각을 짜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루스트가 무의지적 기억 memoire involontaire이라고 부르는 무의지적 회상은 흔히 기억이라고 불리워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망각에 훨씬 가까운 것이 아닐까? 기억이 씨줄이고 망각이 날줄이 되고있는 이러한 무의지적 회상이라는 작업은 회상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회상하는 일의 반대가 아닐까?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밤이 짰던 것을 낮이 풀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게 되면 우리는 대부분 약하고 느슨한 몇몇의 조각 속에서 망각이 우리들 속에서 짰던 이미 체험한 삶의 양탄자를 갖게 된다. 그러나 낮이 시작되면 우리는 언제나 목적과 결부된 행동을 하게 되고 또 그 위에 목적에 맞게 기억을 하게 됨으로써 망각이 밤새 짰던 직물과 장식은 해체된다. 그렇기 때문에 프루스트는 마지막에 가서는 인공적으로 불을 밝힌 방안에서 그의 모든 시간을 아무런 방해 없이 작품을 쓰는 데 이용하였고, 또 이를 위해 시간이 만드는 정교한 상감조각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낮을 밤으로 바꾸었던 것이다.(103쪽)
로마인들이 텍서트 Textum라는 단어를 직물처럼 짜여진 어떤 것으로 이해했다는 점을 두고 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텍스트만큼 촘촘히 짜여진 텍스트도 없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세상의 어떠한 것도 그의 성에 찰 만큼 촘촘하고 지속적으로 짜여져 있지 않았다.(103쪽)
교정을 보는 프루스트의 습관은 문선공을 거의 절망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교정지는 언제나 여백 가득히 씌어져서 되돌아왔다. 그러나 오식은 하나도 고쳐지지 않았고, 활용한 수 있는 공간은 온통 새로운 텍스트로 채워졌다. 이렇게 해서 기억의 법칙성은 작품의 전체 범위 내에서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다. 그 이유는 체험되어진 어떤 사건은 유한한 데 비해 기억되어지는 사건은 그 사건의 전과 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풀어 주는 열쇠구실을 함으로써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에 의한 사건의 짜임새에 규칙을 부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기억이다. 다시 말해 텍스트의 통일성을 형성하는 것은 오로지 기억이라는 순수행위 actus purus 그 자체일 뿐, 작가도 아니며 또 얘기의 줄거리는 더욱 더 아닌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작가의 개입과 얘기줄거리에 의해 생겨나는 중단은 다만 기억이라는 연속성의 또 다른 면, 이를테면 양탄자 뒷면의 무늬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104쪽)
프루스트가 그렇게 열광적으로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그의 끝없는 노력의 저변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모든 삶과 작품 및 행동이란 다름아닌 현재적 삶 속에서 일어나는 가장 진부하고 가장 덧없으며, 또 가장 감상적이고 가장 약한 시간의 일사불란한 전개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인가?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어느 대목에서 프루스트가 그의 이러한 가장 본래적인 시간을 묘사했을 때, 그는 우리들 누구나가 이러한 시간을 자기자신의 현재적 삶 속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도록 묘사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본래적 시간을 하나의 일상적 시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시간은 밤과 더불어, 열려진 창문의 난간에서 불어오는 바람결과 새들의 잃어버린 지저귐과 함께 온다.(104쪽)
콕토는 프루스트 독자의 최대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다. 즉 그는 프루스트라는 인간 속에서 맹목적이고 무의미한, 편집광적인 행복에 대한 동경을 보았던 것이다. 행복에 대한 이러한 동경은 프루스트의 눈에서 및나고 있었으나, 그 눈은 행복한 눈빛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눈 속에는 도박이나 사랑 속에 빠져 있을 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행복이 도사리고 있었다. 또 왜 프루스트의 작품을 관류하는, 가슴을 멎게 하고 뒤흔드는 행복의 의지가 그의 독자들 가슴 속에는 좀처럼 파고 들지 못하는가에 대해 답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여러 대목에서 프루스트 자신도 그의 독자들이 이 작품 전체를 체념과 영웅주의 및 금욕주의라는 해묵은 안이한 관점에 의해 바라보도록 하는 데에도 一助하였다. 아무튼 인생의 모범생에게는 위대한 업적이란 다름아닌 노력과 비탄, 그리고 환멸의 결과라는 사실만큼 더 분명한 사실은 없는 법이다.(105쪽)
행복을 향한 의지에는 일종의 행복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중적 면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頌歌적 행복의 모습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悲歌적 행복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자에 속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 보지도 못하고 또 지금까지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즉 열락의 절정이고, 후자에 속하는 것은 원천적인 최초의 행복을 영속적으로 복원하려는 영원히 거듭되는 새로운 반복이다. 프루스트의 경우, 현재의 삶을 기억이라는 마술의 숲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바로 이러한 비가적 행복의 이념-우리는 이를 엘레아적 eleatisch 행복의 이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이다.(105쪽)
프루스트에게도 일종의 옛 이상주의의 흔적이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흔적이 이 작품의 중요성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프루스트가 펼쳐 보이고 있는 영원성은 곧장 나아가는 무한한 시간으로서의 영원성이 아니라 둘둘 말린 나선형적 시간으로서의 영원성이다. 그가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가장 실제적인 모습을 하고 공간과 결부되어 있는 이러한 나선형적인 시간의 진행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의 진행이 그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곳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기억 속과 또 외부에서 일어나는 늙어감 속에서이다. 늙어감과 기억의 상호작용을 추적한다는 것은 프루스트 세계의 핵심부, 즉 둘둘 말려 있는 나선적 시간의 우주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유사성의 상태 속에 있는 세계이고 또 이 세계 속에는 교감 Korrespondenz 의 영역이 지배하고 있다. 이러한 상호교감을 최초로 파악한 것은 낭만주의자들이고 이러한 상호교감을 가장 깊이 파악한 사람은 보들레르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 이를 밖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프루스트이다. 그것은 <무의지적 기억>의 작품, 즉 불가피하게 늙어가는 노화의 과정에 대적해서 回生하는 힘의 작품인 것이다.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 아침이슬처럼 <일순간 Nu>에 반영되는 곳에서는 回生의 고통스러운 쇼크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시 한번 지나간 과거의 일들을 끌어모으게 되는 것이다.(113쪽)
프루스트의 방법은 성찰 Reflexion이 아니라 과거의 일들을 현재 속에 생생히 떠올리는 방식 Vergegenwartigung이다. 프루스트의 전 작품을 관류하고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진정한 드라마를 실제로 체험해 볼 시간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통찰이다. 우리를 늙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이지, 결코 그 밖의 사실이 아닌 것이다. 얼굴에 새겨진 작은 주름, 그것은 위대한 정열이나 악덕내지 우리들을 가끔 찾아 오는 인식의 기록부이긴 하지만 정작 주인인 우리는 주인노릇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114쪽)
기억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만 취각에 의해서 보관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면(여기서 기억 속에 있는 냄새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냄새에 대한 프루스트의 민감성이 우연한 기회에 맡게 된 냄새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찾아 내는 대부분의 기억은 시각적 이미지로서 우리들에 나타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무의지적 기억의 가장 유동적인 형태까지도 그 대부분은 유리된-그것이 이상스러울 정도로 현재적이긴 해도-시각적 이미지인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프루스트의 작품에 내재하는 가장 내적인 토운에 자신을 내맡기고자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러한 무의지적 회상이라는 하나의 심층에 자신을 침잠시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때 우리들이 침잠하는 무의지적 기억의 심층에서는, 기억의 여러 계기들은 우리들에게 더 이상 개별적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마치 그물의 무게를 보고 고기가 얼마나 잡혔는가를 아는 어부처럼, 무정형적이고 이미지가 없는 상태로 또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도 무게의 어림짐작으로 떠오르는 전체적 이미지로서 부각되는 것이다. 취각이란, 잃어버린 시간의 바다에 내던져진 그물의 무게에 대한 감각을 뜻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의 문장은, 사유하는 육체의 전 근육에 의한 활동이고, 또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의 바다에 내던져진 그물을 걷어 올리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엄청난 노력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117쪽)
[보들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해서]
엄밀한 의미의 경험이 지배하고 있는 곳에서는, 개인적인 과거의 어떤 내용들은 기억 속에서 집단적인 과거의 내용들과 결부되어 있다. 의식절차와 축제들을 동반하는 여러 儀式들은-이러한 의식들은 프루스트에서는 어느 한 곳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이들 두가지 요소, 즉 개인적인 과거와 집단적인 과거의 내용들을 거듭해서 융화시키고 있다. 이들 儀式들은 어떤 특정한 시기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서는 그 기억을 평생동안 갖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의지적인 기억과 무의지적인 기억은 그 상호적인 배타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124쪽)
충격적인 요인이 각각의 인상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면 클수록, 의식이 자극의 방어를 위해 부단히 긴장하면 할수록, 그래서 이를 통해 의식이 성공을 크게 거두면 거둘수록, 그러한 인상들은 그만큼 더 적게(127쪽) 경험 Erfahrung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오히려 그러한 인상들은 그럴수록 체험 Erlebnis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충격방어라는 특수한 작업은 사건의 내용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대신에 그 사건에 대해 의식 속에 하나의 분명한 時點을 지시해 주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성찰의 최고업적이기도 할 것이고 또 그것은 사건을 하나의 체험으로 만들 것이다. 성찰이란 것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즐거운 공포 내지 혐오스러운 공포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충격방어의 실패를 인정하고 있음을 뜻한다.(128쪽)
소망이라는 것은 경험의 질서에 속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젊었을 때 소망했던 것을 나이가 들면 지천으로 많이 갖게 된다>고 괴테는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의 생애에서 소망을 일찍 품으면 품을수록 그만큼 소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지는 법이다. 한 소망이 오래 지속될수록 그만큼 더 그 실현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먼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것은 그러한 시간을 채우고 또 갈랐던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현된 소망은 경험에 선사된 왕관이다. 민중들이 사용하는 상징에서는 시간상의 먼 거리 대신에 공간상의 먼 거리가 등장한다. 따라서 공간의 무한한 거리 속으로 사라져 가는 유성은 어떤 실현된 소망의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다.(147쪽)
보들레르가 의미했던 교감이라는 것은 위기에 아무런 영향을 받음이 없이 스스로의 위치를 굳히려고 하는 어떤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오로지 儀式的인 것의 영역 속에서만 가능하다. 만약 그것이 이러한 영역을 넘어서게 되면 그것은 <아름다운 것>으로서 나타난다. 아름다움 속에는 예술의 儀式的인 가치가 드러난다.(150쪽)
더 이상 아무런 경험도 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위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를 내는 일의 실질적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러한 경험불능이다. 화를 내고 있는 자는 <아무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화를 내는 자의 원형인 티몬 Timon은 누구에게나 마구 대고 화를 낸다. 그는 더 이상 친구와 원수를 구별할 수 없는 입장에 있지 않다....화는 우울한 자를 내리누르고 있는 초침의 박자에 맞추어 폭발하듯 일어난다.(153쪽)
우울 속에서 시간은 物化된다. 매 순간은 눈송이처럼 사람을 뒤덮는다. 이러한 시간은 무의지적 기억의 시간처럼 역사가 없다. 그렇지만 우울 속에서는 시간에 대한 지각은 초자연적으로 첨예화되어 있다. 매순간은 시간의 충격을 중도에서 가로챌 준비가 된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계산하면서 우리는 시간의 지속성보다 시간의 일사불란한 균일성을 더 우위에 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시간계산 속에 비균질적인 특이한 단편적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양적인 시간측정과 함께 질적인 시간을 인정해서 이 둘을 합친 것-바로 이것이 달력이라는 작품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를테면 회상의 자리를 기념축제일이라는 형태로 빈 채로 남겨 둔다. 경험을 할 능력을 상실한 사람은 마치 달력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된다. 대도시인은 일요일이면 이런 기분을 맛보게 된다.(154쪽)
죽음이 제거된 지속은 끝이 없는 어떤 두루마리 그림의 조악한 무한성과 같다. 그러한 지속에서는 전통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지속이란 경험이라는 빌어 입은 의상을 입고서 우쭐거리며 행세하는 어떤 체험의 총괄개념이다. 이에 반해 우울은 체험을 본래의 모습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우울한 자는 지구가 적나라한 자연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을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본다. 지구의 주위에는 前史의 숨결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한 일말의 분위기 Aura도 없는 것이다.(155쪽)
우리가 문위기 Aura를, 원래 무의지적 기억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지각대상의 주위에 모여드는 연상작용이라고 규정한다면, 그 대상에 있는 분위기는 실용적 대상에서 연습으로 남게 되는 경험에 해당한다. 카메라와 그 뒤에 나타난 그와 비슷한 기계적 장치에 근거하고 있는기술들은 의지적 기억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155쪽)
하나의 그림은 그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눈이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어떤 것을 재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근원적인 형태의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그 무엇을 그 그림이 투영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소망을 부단히 키워 나가는 그 어떤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로써 사진을 그림과 구별시키는 것이 무엇이며 또 왜 이 두가지를 동시에 포괄하는 창작의 원리가 존재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이 명백해졌다. 즉 어떤 그림을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시선에 대해 사진이 갖는 관계는 배고픔에 대해 음식이 갖는 관계나 아니면 갈증에 대해 음료수가 지니는 관계와 같은 것이다.(157쪽)
무의지적 기억으로부터 나오는 이미지의 특징이 이들 이미지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면, 사진은 <분위기의(157쪽) 붕괴>라는 현상에 결정적인 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158쪽)
아우라의 경험이란 인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형식을, 무생물 내지 자연적 대상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옮겨놓는 데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시선을 주고 있는 자나 서선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자는 우리에게 시선을 되돌려 준다. 우리가 어떤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시선을 되돌려 줄 수 있는 능력을 그 현상에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경험은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과 일치한다. 그런데 이러한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은 일회적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자료들은 그것을 붙잡아 자기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기억으로부터 빠져나간다. 따라서 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은 그 자체속에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 현상>을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아우라의 개념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다. 분위기의 이러한 정의는 현상이 지니는 宗敎儀式的 성격을 명백히 해주는 이점이 있다. 본질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가까이 갈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즉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실제로 儀式적인 像의 주된 특성이다. 프루스트가 아우라의 문제에 얼마나 정통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우라를 아우라의 이론을 파악하는 개념들을 통하여 때때로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비밀을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은 사물들이 한때 그 사물 위(158쪽)에 머물렀던 어떤 시선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자위한다.>(그것은 아마 그러한 시선에 응답하는 능력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들은 기념물들이나 그림들이, 수세기에 걸친 찬미자들의 사랑과 경의가 그 주위에 짜 왔던 부드러운 베일 밑에서만 그 모습을 드려낸다고 생각한다.> 프루스트는 확실한 견해를 피하면서 <이러한 기괴한 환상은, 만약 그들이 그러한 환상을 개인에게만 존재하는 유일한 현실, 즉 그 자신의 특유한 감정세계와 연관시킨다면 진실이 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꿈 속에서의 지각과정을 아우라적인 지각과정으로서 규정하고 있는 발레리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앞의 내용과 유사하면서도, 그의 규정이 객관적인 방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앞서고 있다. <내가 이러저러한 대상을 보았다고 말할 경우 이로써 나와 그 사물 사이에 어떤 동일성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에 반해 꿈속에서는 어떤 동일성이 존재한다. 내가 보고 있는 사물들은 내가 그 사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159쪽)
어떤 시선이 극복해야 할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시선으로부터 나오기 마련인 마력은 더욱더 강하게 될 것이다. 거울처럼 투명하게 우리를 바라보는 눈들 속에서 그 거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 그대로 남게 된다. 그러한 눈들이 먼 곳의 거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바라 이 때문이다.(160쪽)
보들레르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둔감성이라는 것은 종종 아름다움의 한 장식물이다. 만약 두 눈이 검은 늪처럼 슬픔에 잠겨 투명해지거나 아니면 적도의 대양처럼 매끄러운 고요함에 잠기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둔감성 덕분인 것이다.> 그러한 눈들에 생기가 돈다면, 그때의 생기라는 것은 먹이를 찾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몸을 지키는 맹수들의 생기인 것이다. (행인들을 지켜보면서 동시에 경찰의 감시도 살피는 창녀들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보들레르는 기이 Constantin Guys가 그린 창녀들을 주제로 한 여러 그림들 속에서 이러한 생활방식이 만들어 내는 인상학적인 유형을 발견하였다. <그녀의 시선은 맹수들의 시선처럼 먼 지평선에 고정되어 있다. 그 시선은 맹수의 불안함을 띠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시선은 이따금 갑자기 긴장되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대도시 사람들의 눈이 방어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지나친 부담에 시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게오르그 짐멜 Georg Simmel은 눈이 담당하고 있는 보다 덜 눈에 띠는 기능에 대해 언급하였다. <들을 수 없고 보기만 하는사람은......볼 수는 없고 듣기만 하는 사람보다 더 불안하다. 여기에 대도시의 특징적인 면이 있다. 대도시 사람들의 제반 상호관계의 특징적인 점은, 시각의 활동이 청각의 활동보다 현저하게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의 주된 원인은 공공 교통수단에서 비롯된다. 대형버스, 지하철 및 전차 등이 19세기에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말 한마디 주고 받음이 없이 서로를 몇분 동안, 심지어 몇시간 동안이고 빤히 쳐다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지는 않았었다.>(161쪽)
방어적인 시선 속에는 꿈꾸듯 먼 곳에 망연자실한 채 빠져드는 면이 없다. 방어적인 시선은 심지어 그러한 망연자실한 태도를 유린하는 데에서 쾌감같은 것을 느끼기조차 한다.(161쪽)
사람들은 어쩌면 <유용한 환상>에 대해서보다는 <비극적인 간결성>에 대해 더 큰 가치를 둘지 모른다. 보들레르는 먼 곳이 지니는 마술적인 면에 집착하였다. 심지어 그는 풍경화를 장터의 판잣가게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척도로 삼아 그 가치를 측정하기까지 하였다. 마치 어떤 그림앞에 너무 가까이 접근할 때의 관찰자가 으레 체험하는 것처럼 그는 먼 곳의 마력을 꿰뚫어보고자 한 것은 아닐가?(162쪽)
보들레르는 자신의 생애를 형성해 온 모든 경험들 가운데서 군중에 의해 떠밀리는 경험을 결정적이고 독특한 것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또 스스로 생명력을 지니며, 거리산보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군중의 광채는 보들레르에게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군중의 비열함을 마음에 새기기 위하여 그는, 거기에서는 구제불능의 여인들과 버림받은 자들조차도 어떤 정돈된 생활방식을 변호하고 방탕한 생활을 매도하여 또 돈 이외에는 모든 것을 배격하는 그러한 대낮의 세태를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그의 마지막 동지들인 이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자 보들레르는 군중이라는 존재와 맞서 싸우게 된다. 그렇지만 그의 분노는 비바람에 맞서는 사람들처럼 무력하기만 하다. 이것이 바로 그가 거기에 어떤 경험과 같은 비중을 부여했던 체험의 실상이다. 그는 현대의 센세이션이 지불해야 할 대가, 즉 충격체험 속에서 아우라가 붕괴되는 현상을 단적으로 지적하였다. 이러한 아우라의 붕괴현상에 동의하기 위해 그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시의 법칙이다. 그의 시는 프랑스 제2제정의 하늘에 <아무런 분위기도 없는 하나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164쪽)
[얘기꾼과 소설가]
-니콜라이 레쓰코브의 작품에 관한 고찰
아직도 말이 끄는 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고, 또 구름 이외어는 변하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시골의 맑은 하늘 아래에 서 있었던 세대들에겐, 파괴적인 분출과 폭발이 지배하는 역사 속의 구름 아래에서는 보잘 것 없고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몸뚱아리밖에 남은 것이라곤 없었던 것이다.(166쪽)
진정한 얘기는 드러난 형태로든 숨겨진 형태로든간에 유용한 그 어떤 것을 내포하고 있는 법이다. 이러한 유용성은 설교 속에 있을 수도 있고, 실제적 충고에도 있을 수 있으며, 또 속담이나 생활의 좌우명 속에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얘기꾼이란 얘기를 듣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조언을 해주는 일은 바야흐로 케케묵은 것이 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된 근본 이유는 경험과 의사소통의 직접성이 점차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과적으로 우리들 자신이나 남들에게 아무런 조언도 해줄 수 없게 되었다.(169쪽)
얘기의 몰락의 마지막 단계를 나타내는 한 과정의 징후를 예고한 것은 근세가 시작되면서 대두되기 시작한 소설의 발흥이다. 소설은 얘기와, 또 보다 좁은 의미의 서사시적인 것과 구별짓게 하는 것은, 소설이 근본적으로 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의 보급은 인쇄술의 발명과 함께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구전으로 전수될 수 있는 것, 즉 서사시의 자산은 소설을 형하고 있는 내용물과는 그 성질을 달리하고 있다. 소설이 여타의 산문문학, 예컨대 동화, 전설, 심지어 소품소설 Novelle 등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구전적 전통으로부터 생겨난 것도 아니고 또 그 속에 몰입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소설이 무엇보다도 다른 산문문학과 구별되는 것은 얘기와의 대비를 통해서이다. 얘기를 쓰는 사람은 그가 얘기하는 내용을 경험-그것이 자기 자신의 경험이든 아니면 남이 보고하는 얘기든간에-으로부터 얻고 있다. 그러고 난 후 그는 또 다시 그 내용을 그의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경험이 되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다. 소설가는 자신을 남으로부터 고립시켰다. 소설의 산실은 고독한 개인, 즉 자신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더 이상 표현할 수 없고 또 자기 자신이 남으로부터 조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남에게도 아무런 조언을 해줄 수 없는 고독한 존재이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다른 것과 전혀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을 인간적 삶의 묘사 속에서 극단적으로 끌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은 삶의 풍부함과 또 이러한 풍부한 삶의 묘사를 통해서 살아감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다단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최초의 위대한 소설, 동키호테를 보면 우리는 금방, 가장 고귀한 사람 중의 한사람, 즉 동키호테의 정신적 위대성과 용감성 및 남을 도우려는 마음가짐이 일체의 조언을 결하고 있고 또 일말의 지혜도 내포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세기가 지나면서 이따금 소설 속에 지시적 사항을 삽입하려는 시(170쪽)도-아마 이러한 시도가 가장 지속적으로 행해졌던 것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서일 것이다-가 있었지만, 이러한 시도는 소설형식 자체의 변화를 가져다줄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교양소설은 소설의 기본구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사회의 발전과정을 한 인물의 발전과정 속에 동화시킴으로써 교양소설은, 그 인물의 발전과정을 규정하고 있는 질서에 정당성-그것이 비록 부서지기 쉬운 정당성이긴 하더라도-을 부여하고 있다. 교양소설이 부여하고 있는 정당성은 현실과는 정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다. 특히 교양소설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현실과 정당성 사이의 불협화음인 것이다.(171쪽)
그리이스의 최초의 얘기꾼은 헤로도투스이다. 그의 {역사 Historien}의 3권 14장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기가 있는데, 우리는 이 얘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다. 이 얘기는 사메니트우스에 관한 얘기다. 이집트의 왕 사메니트우스가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에 패해서 붙잡혔을 때, 캄비세스는 이 포로에게 모욕을 주자고 하였다. 그는 페르시아의 개선행렬이 지나가는 거리에 사메니트우스를 세워둘 것을 명령하였다. 또 그는 계속해서, 포로로 하여금 그의 딸이 물동이를 가지고 우물로 가는 하녀의 모습을 하고 그의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도록 하였다. 모든 이집트사람들이 이러한 광경을 보고 울고 슬퍼하였지만 사메니트우스만은 혼자 눈을 땅 위에 떨어뜨리고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러고 난 후 곧 그의 아들이 처형을 당하기 위해 행렬 속에 함께 끌려가는 것을 보았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후 그의 하인들 중의 한 사람인 늙고 불쌍한 남자가 포로행렬중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바로 그 순간, 그는 손으로 머리를 치면서 가장 깊은 슬픔을 나타내는 온갖 표식을 보내었다.
이 얘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얘기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보는, 그것이 새로웠던 바로 그 순간에 이미 그 가치를 상실한다. 그것은 오로지 그저 한 순간 속에서만 생명력을 가진다. 또 정보는 스스로를 완전히 그 순간에 내맡겨야만 하고 또 한순간의 시간도 잃음이 없이 그 순간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얘기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그것은 스스로를 완전 소모하지 않는다. 얘기는 자신이 지닌 힘을 집중된 상태에서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뿐더러 또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다시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몽테뉴는 이 이집트왕에 다시 언급하면서 왜 그가 하인을 보자 비로소 슬퍼하였던가를 자신에게 묻고 있다. 이 물음에 대해 몽테뉴는 <그가 이미 너무나 슬픔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 슬픔이 조금만 더 커지더라도 그것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터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또 <왕의 가족들의 운명이 왕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운명이 바로 자(173쪽)신의 운명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우리는 삶에서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많은 것들이 무대 위에서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따라서 이 하인은 왕에게는 단지 한 사람의 배우였을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니면 <커다란 슬픔은 정체되었다가 이완의 계기가 와야만 비로소 터진다. 이 하인을 보는 순간이 바로 이 이완의 순간이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로도투스는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설명도 부가하지 않았다. 그의 보고는 건조하기 이를데 없는 보고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로부터 유래하는 이 얘기는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경탄과 깊은 명상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수천년 동안 밀폐된 피라미드의 방에 놓여 있으면서도 오늘날까지 그 맹아적 힘을 보존하고 있는 한 알의 씨앗을 방불케 한다.(174쪽)
하나의 얘기를 지속적으로 기억하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심리적 분석이 배제된 정결하며 간결하게 짜여진 집중적 문체이다. 얘기하는 사람에 의해 미묘한 여러 심리적 진행과정에 대한 묘사가 자연스럽게 포기되면 되어질수록, 그러한 심리적 진행과정이 듣는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게 될 승산은 더욱 더 커진다.(174쪽)
베짜는 일의 리듬과 같은 얘기에 한번 빠져드는 사람은 그 얘기를 남에게 다시 전할 수 있는 재능이 저절로 생겨나게끔 그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얘기를 하는 재능은 이처럼 베를 짜는 일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짜여진 얘기의 그물은, 그것이 수천년 전에 가장 오래된 수공업적 형태의 주위에서 한번 짜여지고 난 이후로는 오늘날에 와서는 그 마디가 하나하나씩 헤어지고 있는 것이다.(175쪽)
수공업의 주위에서-그것은 처음에는 농촌적 형태이었다가 나중에는 해양적 수공업, 마지막에는 도시적 형태로 발전하였다-오랫동안 번성하였던 얘기 그 자체는 이를테면 의사소통의 수공업적 형태이다. 얘기는 정보나 보고처럼 사물의 순수한 <실체>를 전달하려고 하지 않는다. 얘기는 보고하는 사람의 삶 속에 일단 사물을 침잠시키고 나서는, 나중에 가서 다시 그 사물을 그 사람으로부터 끌어낸다. 그래서 얘기에는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옹기그릇에 도공의 손흔적이 남아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얘기꾼으로서의 소설가 Erzahler들은 자신이 나중에 체험하게 될 상황을 얘기의 맨 처음에 묘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175쪽)
발레리는 그의 관찰을 <영원성이라는 생각의 소멸과 지속적인 일에 대한 기피는 거의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는 문장으로 끝맺고 있다. 영원성에 대한 생각은 옛날부터 죽음에서 그 가장 강력한 원천을 찾았다. 이러한 생각이 사라지면 죽음의 모습도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변화는, 얘기의 기술이 사라지면서 경험의 직접성이 감소하는 정도에 발맞추어 일어나게 될 것이다.(177쪽)
죽음은 얘기꾼이 보고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인준을 뜻한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그의 권위를 빌어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의 얘기가 소급해서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인간의 自然史이다.(178쪽)
사실상 <삶의 의미>는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소설이 전개되는 것도 이 중심을 둘러싸고서이다. 그러나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은, 곧 이러한 형상화된 삶에서 독자들 자신이 처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당혹감 그 자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엔 <삶의 의미>가, 저기엔 <이야기의 모랄>이 있다는 바로 이러한 구호를 가지고 소설과 이야기는 서로 대립되고 있으며, 또 이러한 구호에서 우리는 이들 예술형식들이 지니는 전혀 상이한 역사적 좌표를 읽을 수 있다. 소설의 최초(183쪽)의 완벽한 모범이 동키호테라면 소설의 최후의 완벽한 모범은 아마도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Education sentimentale}일 것이다.(184쪽)
사실상 이야기에는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가?>하는 물음이 그 정당성을 잃게 되는 적은 한번도 없다. 그라나 소설가는 이와는 반대로 마지막 境界, 즉 그가 결말 Finis을 씀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어렴풋하게 인식하게 하는 그러한 경계를 한 발짝이라도 더 넘어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184쪽)
독자들의 관심을 흥미진진하게 돋우는 것은 무미건조한 재료이다. 모리츠 하이만은 언젠가 한번 <35살에 죽는(원문은 윗점) 사람은 그의 생의 모든 점에서 35세에 죽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문장처럼 애매모호한 문장도 없을 것인데, 우선 그것은 여기에서 그가 時制를 잘못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러하다. 이 문장이 뜻하는 바의 진의는, 35세에 죽었던 사람은 회상 속에서는 언제나 35세의 나이로 죽은 사람으로 보여질 것이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실제적 삶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는 문장이 기억된 삶에서는 이론의 여지없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의 본질을 이보다 더 잘 나타내 주는 문장도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은 소설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삶의 <의미>는 오로지 그들의 죽음에 의해서만 비로소 해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독자는 실제로, 소설에서 <삶의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들을 찾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독자는 어떤 식으로이든 간에 미리부터 그가 소설인물의 죽음을 함께 체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소설인물들의 상징적 죽음, 즉 소설의 종말이라도 체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물론 더 좋은 것은 그들의 죽음을 체험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어떻게 해서 소설인물들은 독자들에게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그것도 일정한 장소에서의 죽음)을 인지시킬 것인가?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에서 가장 열렬하게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문인 것이다.((185쪽)
소설이 의미를 갖는 것은, 소설이 이를테면 제3자의 운명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러한 제3자의 운명이, 그 운명을 불태우는 불꽃을 통해서 우리들 스스로의 운명으로부터는 결코 얻을 수 없는 따뜻함을 우리들에게 안겨 주기 때문이다. 독자가 소설에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은, 한기에 떨고 있는 삶을, 그가 읽고 있는 죽(185쪽)음을 통해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인 것이다.(186쪽)
위대한 얘기꾼으로서의 모든 소설가는 마치 사닥다리를 아래 위로 오르내리는 것처럼 그들의 경험을 자유자재로 얘기할 수 있다. 아래로는 지구의 내부에까지 이르고 있고, 또 위로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하나의 사닥다리는 집단적 경험-이 집단적 경험에서 보면 모든 개인적 경험의 가장 깊은 쇼크, 즉 죽음까지도 아무런 자극이나 장애가 되지 못한다-을 말해 주는 이미지이다.(186쪽)
동화는, 신화가 우리들 가슴에 가져다준 악몽을 떨쳐버리기 위해 인류가 마련한 가장 오래된 조치방안을 우리들에게 알려 준다. 동화는 바보의 인물을 통하여 어떻게 인류가 신화에 대해 바보처럼 행동하였는가를 보여 주고, 막내동생의 모습을 통해서는 인류가 신화의 원초적 시간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짐에 따라 어떻게 그들의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 떠났던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는 우리들이 두려움을 갖는 사물들이 투시·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현명한 체하는 영리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는 신화가 제기하는 의문이 마치 스핑크스의 물음처럼 단순한 것임을 보여주며, 그리고 동화 속의 어린이를 도우는 동물의 모습을 통해서는 자연은 신화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들하고도 함께 어울리기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현명한 조언-이러한 조언을 옛날에는 신화가 인류에게 가르쳐 주었다면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가르쳐 주고 있다-이 있다면, 그것은 신화적 세계의 폭력을 간계와 무모한 용기로 대처하는 것이다. (동화가 용기 Mut를 이를테면 변증법적으로 간계 Untermut와 무모한 意氣 Ubermut로 나누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동화가 소유하고 있는, 사물을 해방시키는 마법은 자연을 신화적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해방된 인간과 공모관계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성숙한 인간은 이러한 공모관계를 가끔, 다시 말해 그가 행복할 때에만 느낀다. 그러나 아이는 이러한 공모관계를 동화 속에서 처음 만나게 되고, 또 이를 통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187쪽)
얘기꾼이란, 의로운 자가 얘기의 인물 속에서 자신을 만나게 되는 그런 인물이다.(194쪽)
3. 문예이론
[技術複製時代의 예술작품]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언제나 복제가 가능하였다. 인간들이 한때 만들었던 것은 인간들에 의해 언제나 다시 모방되어질 수가 있었다. 이러한 모방은 예술적 수련을 위해 도제들에 의해 행해졌고, 작품의 보급을 위해 예술의 대가들에 의해 행해졌으며 마지막에는 돈벌이에 혈안이 된 제3자에 의해서 행해졌다. 이에 비해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좀 새로운 현상이다. 기술적 복제라는 이 새로운 현상은 역사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그러나 점점 더 강도를 더해 가면서 관철되었다. 그리스인은 예술작품을 기술적으로 재생산하는 두 가지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鑄造와 刻印이었다.(199쪽)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 그 요소는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 예술작품이 지니는 일회적 현존성이다. 예술작품은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 역사에 종속되기 마련인데, 예술작품의 이러한 역사성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위에 말한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성이다.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성에 함께 포함되는 것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예술작품이 겪게 되는 물리적 구조의(200쪽) 변화와 소유관계의 변화이다. 물리적 변화의 흔적은 오로지 화학적·물리적 분석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는데, 이러한 분석은 복제품에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소유관계의 변화의 흔적은 어떤 전통에 속하는 문제로서, 이 문제의 추적 또한 모름지기 원작의 상황을 그 출발점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201쪽)
원작 Original의 시간적·공간적 현존성은 원작의 진품성이라는 개념의 내용을 이룬다.(201쪽)
어떤 사물의 진품성이란, 그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과 함께 그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적 가치까지를 포함하고 또 그 사물의 원천으로부터 전수되어질 수 있는 사물의 핵심을 뜻한다.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적 가치는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복제의 경우 후자가 사라지게 되면 전자, 다시 말해 사물의 역사적인 증언적 가치 또한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렇게 해서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은 사물의 권위이다.(202쪽)
복제에서 빠져 있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우리는 분위기 Aura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Aura이다.(202쪽)
역사의 거대한 여러 시대들 내부에서는 인간집단의 모든 존재방식과 더불어 인간의 지각의 종류와 방식도 변화를 겪기 마련이다. 인간의 지각이 조직화되는 종류와 방법, 지각이 이루어지는 매체는 자연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그 성격이 규정된다.(203쪽)
예술작품의 유일무이성은 그것이 전통의 상관관계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전통 자체는 물론 무엇인가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하고 또 무엇인가 변화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의 비너스상을 예로 들어 보더라도 그리이스인들은 전혀 다른 전통의 상관관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중세의 승려들이 불길한 우상으로 보았던 비너스상을 그리이스인들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마주 대하였던 것은 그 비너스상의 유일무이성, 달리 말해 그것의 분위기였다. 전통의 상관관계 속에 깊숙이 들어가 그 일부가 되고 있는 예술작품의 본래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은 宗敎儀式 속에서이다. 주지하다시피 가장 오래된 예술작품은 처음에는 마술적 의식, 다음으로는 종교적 의식에 봉사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런데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실은, 예술작품의 이러한 분위기적 존재방식이 한번도 儀式的인 기능과 분리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달리 표현하면 <진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그것에 제일 먼저 본래적 사용가치가 주어졌던 종교적 의식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 있다. <진짜>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제아무리 간접적으로 매개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세속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의 여러 형태에서까지도 세속화된 儀式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205쪽)
예술적 생산은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形像物로부터 시작되었(207쪽)다.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바이지만 이들 형상물에서는 그것들이 보여진다는 사실보다는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더 중요하였다. 석기시대의 인간이 동굴의 벽에 그린 사슴은 일종의 마법적 도구였다. 그 사슴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려지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신령들을 위해 바쳐졌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종교의식적 가치는 예술작품이 숨겨진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어떤 神像들은 밀실에서 승려들에게만 그 접근이 허용되고 있고, 어떤 마돈나상은 거의 일년내내 베일 속에 가려져 있으며 또 중세사원의 어떤 조각들은 지면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여러 예술활동이 제각기 종교의식의 모태에서 해방됨에 따라 예술활동의 생산품이 전시되어질 기회는 날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있다.(208쪽)
일찍이 사람들은 사진의 예술성 여부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많은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이에 선행되어야 할 물음, 즉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예술의 전체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은 제기하지 않았다.(210쪽)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충동의 무의식적 세계를 알게 된 것처럼 우리는 카메라를 통하여 비로소 시각의 무의식적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224쪽)
모든 예술형식의 역사를 보면 거기에는 위기의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는 이들 예술형식은 변화된 기술수준, 다시 말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통해서만 비로소 아무런(224쪽) 무리 없이 생겨날 수가 있는 효과를 앞질러 억지로 획득하려고 한다. 따라서 위기의 시기, 특기 이른바 퇴폐기에 생겨나는 예술의 괴상하고 조야한 형식들은 실제로는 이러한 시기의 가장 풍부한 역사적 에너지의 중심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 그러한 야만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예술운도을 볼 수 잇게 된 것은 다다이즘에서이다. 다다이즘이 지니는 충둥의 전모를 알게 된 것은 최근에 와서이다. 다시 말해 다다이즘은, 오늘날 대중들이 영화에서 찾고 있는 효과를 회화나 문학의 수단을 통하여 만들어 내려고 했던 것이다.(225쪽)
다다이스트들은 그들 작품의 상품적 가치보다는 관조적 침잠의 대상으로서의 작품의 무가치성을 보다 더 중시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소재를 근본적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이러한 무가치성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그들의 시는 외설스러운 문구나 말의 쓰레기를 합쳐 놓은 <말의 샐러드>이다. 단추나 승차권 등을 몽타주하여 불여 놓은 그림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수단을 통하여 이들 그림이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의 분위기를 가차없이 파괴해 버리는 일이었고, 또 생산의 수단을 빌어 그들의 작품에다 복제의 낙인을 찍는 일이었다.(225쪽)
예술작품은 다다이스트들에 이르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각적 환영이나 사람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청각적 구조이기를 그치고 일종의 폭탄이 되었다. 이 폭탄은 보는 사람의 눈과 귀에 와 닿는다. 그것은 촉각적 성질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써 그것은 영화에 대한 수요를 촉진시키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영화의 정신분산적·기분전환적 요소는 무엇보다도 우선 촉각적인 것이고, 또 그것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단속적으로 들어오는 영화장면과 관점의 변화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펼쳐지는 영사막과 그림이 놓여있는 캔버스를 한번 비교해 보자. 캔버스는 보는 사람을 관조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는 그 앞에서 자신을 연상의 흐름에 내맡길 수가 있다. 그러나 영사막 앞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영화의 장면은 눈에 들어오자마자 곧 다른 장면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것은 고정될 수가 없는 것이다....실제로 이러한 영상을 보는 사람의 연상의 흐름은 끊임없이 영상의 변화로 인하여 곧 중단되어 버린다. 영화의 충격효과는 바로 이러한 데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또 이러한 충격효과는 다른 충격효과가 모두 그러한 것처럼 단단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상태에서만 어느 정도 완화되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다다이즘이 아직도 정신적 충격 속에 포장해서 감싸고 있는 물리적 충격을 영화는 그의 기술적 구조의 힘을 빌어 그 포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있는 것이다.(226쪽)
예로부터 건축은 오락적·집단적 방식으로 그 수용이 이루어지는 예술작품의 원형이었다. 건축의 수용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원리를 보면 우리는 이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을 것이다.(227쪽)
건축술의 역사는 그 어떤 다른 예술의 역사보다도 장구하다. 그리고 건축술이 미친 영향을 머리 속에 떠올려 본다는 것은, 예술작품을 대하는 대중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알아 보려는 모든 시도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건축물의 수용은 두가지 측면, 즉 사용과 지각, 더 정확히 말하면 촉각과 시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수용방식은 이를테면 관광객이 어떤 유명한 건물 앞에서 주의력을 집중하여 그 건물을 수용하는 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각적인 면이 갖는 관조에 해당하는 것이 촉각적인 면에는 없기 때문이다. 촉각적 수용은 주의력의 집중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익숙함을 통해 이루어진다. 건축의 경우 그러한 촉각적 수용은 상당할 정도로 시각적 수용까지도 경정하게 된다. 또 이러한 촉각적 수용은 본래 한 번의 긴장된 주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연히 어떤 대상을 주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건축물을 통해 형성되는 수용방법은 경우에 따라서는 규범적인 가치를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역사의 전환기에서 인간의 지각구조에 부과된 과제는 단순히 시각, 다시 말해 관조를 통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고, 또 그러한 과제는 촉각적 수용의 주도하의 익숙함을 통해 점차적으로 해결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228쪽)
[사진의 작은 역사]
카메라에 비치는 자연은 눈에 비치는 자연과는 다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카메라에는 인간에 의해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공간 대신에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드어선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예컨대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대강 어떻다고 흔히 말을 하지만 <걸어서 나아가는> 순간 순간의 자세가 과연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고속도 촬영기나 확대기와 같은 보조수단을 통하여 이러한 것을 밝혀낼 수 있다. 마치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충동적이고 무의식적인 세계를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사진술을 통하여 이와 같은 시각적이고 무의식적인 세계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이난 의학이 밝혀내려고 하는 세포의 구조나 조직과 같은 것들은 모두 아름다운 풍경화나 아니면 영혼이 담겨 있는 초상화보다는 근본적으로 카메라에 더 가까운 것이다.(237쪽)
[수집가와 역사가로서의 푹스]
엥겔스의 명제들을 잘 생각해 보면 볼수록 그만큼 더 명확해지는 것은,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서술하는 일은 역사주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관조적 성격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의 서사적 요소를 포기하기 않으면 안된다. 역사는 그에게 있어 어떤 구성의 대상이 되는데, 그 구성의 장소를 형성하는 것은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삶 그리고 특정한 작품이다. 그는 그 시대를 사물화된 <역사적 연속성>으로부터 폭파시켜 그 시대로부터 무엇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그는 그 시대로부터 삶을, 그리고 그 생애로부터 한 작품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성을 통하여 얻어지는 성과는 바로 작품 속에 생애가, 생애 속에 그 시대가, 그리고 시대 속에 역사의 진행과정이 보존되어 있고 또 지양되고 있다는 점이다.(275쪽)
역사주의가 과거의 영원한 상을 제시하고 있다면 사적 유물론은 일회적인 과거의 경험을 각각 제시해 준다. 구성적 요인을 통하여 서사적 요인을 해방하는 일이 이러한 경험의 조건임이 드러난다. 역사주의의(275쪽) <한때......이 있었다>라는 이야기 속에 묶여 있었던 강력한 힘들이 이러한 경험 속에서 해방된다. 모든 현재에 대해 어떤 근원적인 경험이 되는 그러한 역사와의 경험을 실천에 옮기는 일, 바로 이것이 사적 유물론의 과제이다. 사적 유물론은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하는 현재의 어떤 의식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276쪽)
사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적인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맥박을 현재에 이르기까지 느낄 수 있는 어떤 이해되어진 것을 追체험하는 것을 뜻한다.(276쪽)
우리는, 어떤 예술작품의(276쪽) 역사적 내용을, 그것이 예술작품으로서 우리에게 보다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파악하는 일이 단지 개별적인 경우에만 성공하고 있다는 점을 가차없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의 예술작품을 파악하려는 모든 노력은, 그 작품의 냉철한 역사적인 내용이 변증법적인 인식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한 공허할 수밖에 없다.(277쪽)
문화유산의 현존재는 그것을 창조한 위대한 천재들의 노고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이름도 없는 동시대의 부역자들의 노고에도 힘입고 있는 것이다. 야만의 흔적이 없는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 지금까지 어떤 문화사도 이러한 사실이 지니는 근본적 의미에 공정치 못했으며 앞으로도 좀처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283쪽)
개개인이 속하고 있는 계급이 생산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의해 생겨나게 되는 무의식적인 계급적 행동방식보다는 개개인의 의식적인 이해관계에 더 주목하는 관찰방식은 결과적으로 이데올로기형성에 있어서 의식적인 요인을 과대평가하게 만든다.(301쪽)
경제생활에서 권력을 쥔자와 피착취자 사이에는 사법관료와 행정관료라는 한 장치가 끼어들게 되는데 이 장치의 구성원들은 더 이상 충분히 책임있는 도덕적 주체로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들의 <책임의식>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그러한 양심적 불구의 무의식적 표현인 것이다.(301쪽)
4. 언어철학과 역사철학
[언어의 모방적 성격]
언어형성에 있어서의 모방적 행동은 擬聲語라는 이름하에서 인정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언어가 일종의 합의된 상징의 체계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언제나 다시 의성적 해명방식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를 띠고 등장하는 생각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317쪽)
<모든 말 그리고 모든 언어는 의성어적이다>라고 레온하르트는 주장한 바 있다. 이 문장 속에 담겨 있음직한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이 과연 무엇인가를 정확히 가늠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비감각적 유사성이라는 개념은 몇 가지의 길잡이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동일한 것을 뜻하는 여러 상이한 언어의 단어들을, 이 단어(사물)들의 의미를 중심으로 해서 모아 놓으면, 우리는 이들 단어들이 모두-비록 그것들이 상호 아무런 유사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지라도-어떤 방식으로 그 의미에 대해 그 중심부에서 상호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한번 연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유사성은 상이한 여러 언어에서 동일한 것을 의미하는 단어들의 상호관련성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다시 말해 우리의 고찰은 입으로 말하는 언어에만 한정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입으로 말하는 언어 못지 않게 씌어지는 언어와도 관계를 맺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씌어지는 말은-많은 경우 입으로 말해지는 말보다 더 명확하게-그것의 문자가 그것의 의미하는 바에 대해 갖는 관계를 통해 비감각적 유사성의 본질을 밝힐 수가 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말해진 것과 의미되는 것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씌어진 것과 의미되어진 것, 그리고 말해진 것과 씌어진 것 사이의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은 비감각적 유사성인 것이다.(317쪽)
필적 해독법은 필적으로부터 필자의 무의식적 세계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를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처럼 쓰는 사람의 행위를 통해 표현되는 모방적 과정은, 문자가 생겨나던 매우 오래된 옛날에는, 쓴다는 행위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문자는 언어와 더불어 비감각적 유사성 내지 비감각적 교감(교응)의 기록부가 된 것이다.(317쪽)
그러나 언어와 문자의 이러한 면은 언어의 다른 면인 기호학적인 면과 동떨어져서 발전하지 않는다. 언어의 모든 모방적 요소는 오히려 불꽃과 비슷하게 일종의 운반자 Trager에 의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이 운반자가 곧 언어의 기호학적 요소이다. 그러니깐 단어나 문장이 갖는 의미의 상관관계가 바로 운반자인 셈인데, 이것을 통해 유사성은 비로소 일종의 섬광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318쪽)
[번역가의 과제]
어떤 예술작품이나 예술형식을 인식하는 데 있어 수용자를 고려하는 일은 결코 생산적이 되지 못한다. 비단 어떤 특정한 수용자층이나 아니면 그들의 대표자를 고려하는 일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상적> 수용자라는 개념까지도 모든 예술이론적 논의에서 방해요소가 되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논의들은 단지 인간의 현존재와 본질만을 그 전제로 하고있기 때문이다. 예술 역시 이와 같은 식으로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실제의 예술작품에서는 인간의 반응은 별로 문제시되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그 어떤 시도 독자들을, 그 어떤 그림도 관람자를, 또 어떤 심포니도 청중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319쪽)
궁국적으로 보면 삶의 영역은 자연이 아닌 역사에 의해 정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나 영혼이나 감각과 같은 막연한 것에 의해 삶의 영역이 정해져서는 안된다. 따라서 철학자의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보다 광범위한 삶의 역사를 통해 모든 자연적 삶을 파악하는 데 있다.(322쪽)
한 작가가 살던 시대의 문학적 언어의 경향은 시대가 지나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며 또 잠재적 경향은 기존 형식으로부터 새로이 그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새롭게 보였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진부한 것이 될 수 있고 또 한때 유행했던 것이 나중에 가서는 옛스러운 것이 될 수도 있다. 언어의 이와 같은 변화와 의미의 끊임없는 변화의 본질을 언어와 작품의 고유한 삶에서 찾지 않고 후세 사람들의 주관성(가장 조야한 심리주의까지 포함해서)에서 찾는다는 것(323쪽)은 원인과 본질을 혼동하는, 더 정확히 말하면 가장 강력하고 생산적인 역사적 과정의 한 단계를 사고의 무능력으로 인해 부인하는 것을 뜻한다.(324쪽)
[역사철학테제]
이러한 슬픔(멜랑콜리)의 본질이 무엇인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 즉 역사주의의 신봉자들은(346쪽) 도대체 누구의 마음이 되어 보려고 감정이입을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다. 대답은 두말할 나위없이 승리자의 마음이 되어 보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런데 그때마다의 새로운 지배자는 그들 이전에 승리했었던 모든 자들의 상속자이다. 따라서 승리자의 마음이 되어 본다는 것은 항상 그때마다의 지배자에게 유리하게 됨을 뜻한다. 이로써도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승리를 거듭해 온 사람은, 땅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짓밟고 넘어가는 오늘날의 지배자의 개선행렬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전리품이란 지금까지 으레 그러했던 것처럼 이 개선행렬에 함께 따라다닌다. 우리가 문화유산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 전리품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역사적 유물론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판저긍로 관찰하고 보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문화유산에서 개관하는 것은 하나같이 그에게는 전율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원천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의 현존재는 그것을 창조한 위대한 천재들의 노고뿐만 아니라, 이름도 없는 동시대의 부역자들의 노고에도 힘입고 있는 것이다. 야만의 기록이 없는 문화란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번도 없다. 문화의 기록 자체가 야만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넘어가는 傳承의 과정 또한 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유물론자는 가능한 한도내에서 이러한 전승으로부터 비켜난다. 그는 곁에 거슬러서 역사를 솔질하는 것을 그의 과제로 삼는다.(347쪽)
억눌린 자들의 전통이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훈은, 우리들이 오늘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라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상례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질 것이고, 그리고 이를 통해 파시즘에 대한 투쟁에서 우리가 갖는 입장도 개선될 것이다.(347쪽)
역사의 연속성을 폭파시키고자 하는 의식은, 행동을 개시하려는 순간의 혁명적 계급에 고유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새로운 달력을 도입하였다. 이 새로운 달력의 첫날은 역사의 低速度 촬영기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기억의 날로서 국경일의 모습을 하고 언제나 다시 되돌아오는 그 날은 따지고 보면 항상 동일한 날인 것이다. 따라서 달력은 시계처럼 시간을 계산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백년이래 유럽에서는 그 가장 희미한 흔적조차도 드려내지 않았던 역사의식의 기념비이다.(353쪽)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도기로서의 현재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이 그 속에 머물러 정지상태에 이르고 있는 현재의 개념을 포기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이와 같은 현재의 개념에 의해서만 역사를 쓰고 있는 현재가 정의되기 때문이다. 역사주의가 과거의 <영원한> 이미지를 나타낸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일회적인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보여준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거의 영원한 이미지 따위는 역사주의의 유곽에서 <옛날 옛적>이라고 불리우는 창녀에게 정력을 탕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맡겨 버리고, 대신 그는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역사의 지속성을 폭파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남자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354쪽)
<이 지구상의 유기적 생물체의 역사와 비교한다면 호모 사피엔스(인류)의 보잘 것 없는 오천년 역사는 이를테면 하루의 24시간 중의 마지막 2초와 같은 것이고 또 이러한 기준에서 두고 보면 문명화된 인류의 역사는 기껏해야 하루의 마지막 시간의 마지막 초의 1/5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어느 현대의 생물학자는 말한 바 있다. 메시아적 현재시간의 모델로서 전 인류역사를 엄청나게 축소해서 포괄하고 있는 현재시간 Jetztzeit은 우주 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만든 바로 그 형상 Figur과 정확하게 일치한다.(355쪽)
역사주의는 역사의 여러 상이한 계기 사이의 인과관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도 그것이 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서 역사적 사건이 되는 법은 없다. 원인으로서의 사실은, 수천년이라는 시간에 의해 그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추후에 역사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가는 사건들의 계기를 마치 염주를 하나하나 세듯 차례차례로 이야기하는 것을 중지하고 그 대신 그가 살고 있는 자신의 시대가 지나간 어느 특정한 시대와 관련을 맺게 되는 상황의 배치로 파악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메시아적 시간의 단편들로 점철된 <현재시간>으로서의 현재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되는 것이다.(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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