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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 , 푸른사상, 2003.7
2009년 05월 16일 21시 53분  조회:2983  추천:0  작성자: 방룡남
김동민, 󰡔��한국문학사의 탐색󰡕��, 푸른사상, 2003.7


책머리에


우리 근대소설과 현대소설을 아우르고 있는 많은 연구서들이 유독 1940년대 전반기 작품만은 빠뜨리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문학연구자들의 관심 부족 및 자료소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소설의 유기적인 체계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맹점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뒤적이던 중 동시대의 침체된 문학사를 새롭게 조명할 기초적인 단서가 될 수 있는 텃밭을 찾았는데 개척소설이 그것이다. 1940년대 전반 재만 조선인 작가들과 다른 몇몇 작가들에 의해 씌어진 이 개척소설은 재만조선인문학을 비롯한 민족문학 전체를 비추어 보는 맑은 거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소위 개척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작품들만을 따라 모아 살피려는 어떤 시도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명칭이나 개념 등 가장 기초적인 것들에 대한 기준마저 제도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필자는 먼저 개척소설의 개념과 형성 배경을 고찰하고 이어 개척소설의 주제와 서사 특징을 밝혀 개척소설이 한국소설사에서 차지하는 의의와 가치를 도출해 보고자 했다.

그 결과, 개척소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었던(1) 시대의 감추어진 실상과 겨레얼이 소롯이 담겨 있는 문학 작품이며, 창작기법이나 문학적 패러다임에서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작적인 서사 특징을 이루어, 자칫 단절될 위험이 있는 한국문학사 연계화의 고리를 마련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이러한 개척소설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개척소설이라는 명칭보다 더 적절한 이름은 없는지, 혹 누락된 개척소설은 없는지, 친일소설이 개척소설로 거짓 포장되지는 않았는지, 개척소설의 독특한 양상을 바탕으로 한국문학의 영역을 더 넓힐 방안은 무엇인지, 이 밖에도 문학 연구자들이 계속 다루어야 할 부분은 적지 않다.(2)

한국문학사를 보다 깊고 곧게 세우기 위한 길은 늘 우리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은 숱하게 있겠지만 텍스트 자체를 통한 탐색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졌고 앞으로 만들어질 수많은 문학 작품을 제대로 분석하고 알리기 위한 노력은 의식 있는 문학 연구자들의 무거운 임무요 빛나는 특권이다.(3)


제1부

한국 개척소설 연구


Ⅰ. 서론


1. 연구 목적


이 글은 1940년대 전반기의 소위 ‘개척소설(開拓小說)<일면 생산소설(生産小說)>’이라 불리는 작품들의 양상을 살펴 한민족 문학사에 어떻게 자리매김을 할 것인가에 목적을 둔다.

한민족 문학사에서 개척소설이 차지하는 자리는 특이하다. 일제 식민지하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생겨난 소설의 유형이라는 점이 그렇고, 1945년 해방이 되자 그 성격상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고작 5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에 발표된 작품들에 한정된다는 점이 그러하다.(11)

“불과 30년에도 미치지 못하는 해방 전 한국의 근대문학의 역사를 1920년대, 1930년대로 구별하는 것을 보면 다소 어지러운 느낌을 갖게 되나, 이러한 시대 구분을 따른다면, 1940년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에 이르는 약 5년간은 일반적으로 암흑기라 불리는 시기에 해당한다”(사에구사 도시카쓰(三枝壽勝), 󰡔��한국문학 연구󰡕��, 심원섭 역, 베틀․북, 2000, 530쪽-각주1)는 일본인 학(11)자 사에구사 도시카쓰(三枝壽勝)의 말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이것은 우리 문학 논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세세한 시대 구분을 통해 문학작품을 비교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1940년 초 일제의 암흑정치 아래서 일체의 현실 비판적인 작품창작이 금지되자 그 탈출구로 등장하게”(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국어국문학자료사전 상권󰡕��, 한국사전연구사, 2000, 154쪽-각주2)된 개척소설에 대한 연구는 왜 그렇게 부진한가 하는 의아심을 드러낸 것으로도 생각된다.

이에 필자는 “이 시기의 문학(1940년대 전반기 소설: 필자 주)이 식민지시대 근대문학 전체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반 위에 성립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려고 했다”(사에구사 도시카쓰(三枝壽勝), 앞의 책, 530쪽-각주3)는 이야기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우리 문학의 공백 상태라는 이 시기를 가장 많이 담아내고 있는 개척소설에 대한 관심과 주의는 단절된 한민족 문학사를 이어준다는 의미에서도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12)

시대사적인 편차(偏差)를 보면서 일제의 계산과 그런 역사가 빚어낸 상황 안에서 우리 혼을 갖고 있는 작가가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눈여겨보고 민족사적인 연구 가치를 찾는 작업은 중요하다. 당시의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고 선행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 더 이상 문학 연구자에게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몇 개 되지 않는 그 자료들마저 방치된 채 소실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12)

󰡔��한국소설사󰡕��(김동욱․이재선 編를, 󰡔��한국소설사󰡕��, 현대문학, 1990-각주4)를 보면 근대소설 편으로 신소설과 1920년대 소설, 1930년대 소설을 논의하고, 현대소설 편으로 1945~1960년대 소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1940년대 전반기만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연구자들은 고대와 현대의 한국소설의 유기적인 연계화의 고리를 마련하는 단서가 이 책(12)으로써 가능해졌다고 밝혀 놓고 있다.(13)

그러나 1940년대 전반기 문학 연구를 제외한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도 수많은 문학 작품이 씌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문학을 있는 그대로 조명하고 또 지속과 변혁을 가로막는 요인은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13)

1940년대 전반기의 한국문학을 다루어 보고자 하는 데는 당시 한민족이 일제의 등쌀을 못 이겨 쫓겨간 만주라는 공간을 빠뜨릴 수 없다. 그런 만큼 작품의 주요 배경이 만주 미개지(未開地)이고 만주 지방의 개척민 생활을 그렸으며 대개 1940년대 초기에 나온 개척소설은 적절한 논의거리가 된다.

물론 만주 지역으로의 이주만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라 하와이나 멕시코, 러시아 등지로 이민을 간 이들도 있고 이들의 생활상을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고찰한 글도 있지만 가장 많이 이민을 떠난 곳은 역시 만주 쪽이기 때문에 개척소설의 의의는 더 크다고 할 것이다. 특히 일제 식민지정책의 희생물로서 전(全)민족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힘없고 무지한 우리 농민들이 많이 등장하여 민족의 삶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더 무엇보다 적절한 텍스트가 개척소설이라고 본다.(13)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작가군(群)들 속에서 재만조선인문학(在滿朝鮮人文學)을 논할 때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안수길과 이기영의 작품들 중에 개척소설의 계열에 들어가는 게 있고, 또한 재만조선인문학을 살핌에(13) 있어 빠뜨릴 수 없는 󰡔��싹트는 대지(大地)󰡕��에 실린 무려 7편의 작품도 개척소설의 유형에 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의 개척소설들만을 따로 모아 전반적인 양상을 비추어 보는 작업이 없었다는 것은 한국문학 연구의 맹점(盲點)이다.(14)

1940년대 전반기의 침체된 문학사를 새롭게 조명할 기초적인 단서를 찾을 수 있는 텃밭이 개척소설이라는 인식을 통해, 이 일련(一連)의 소설들이 바르게 앉을 밑자리를 규명(糾明)하는 일은 재만조선인문학을 포함한 민족문학 전체를 되짚어보는 계기도 될 것이다.(14)


2. 연구사 검토


일정한 시기(1940년대 전반기)에 일정한 작가들(재만 조선인 작가들과 몇몇 작가들)에 의해 씌어진 일정한 작품들(한정된 작품들)-실제로 다른 데서 그런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을 개척소설이라고 갈래지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지적한 대로 소위 개척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진 작품들만을 따로 모아 살피려는 어떤 시도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개척소설에 대한 전체적인 연구의 소홀함은 우리 문학사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의 일면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국문학사는 문제적이거나 예외적인 작가에 대한 연구에 치중되어 왔으며, 여타의 군소(群小)작가에 대해서는 소홀히 취급해 왔다는 점이 특징”(김용성․우한용 공편, 󰡔��한국근대작가연구󰡕��, 삼지원, 2001, 382쪽-각주9)이라는 이야기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개척소설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는 연구대상이 지극(14)히 한정되어 있는 한국소설사의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개척소설이라고 불리는 소설작품들이 문학을 논하는 이들의 관심 밖에 벗어나 있었다는 데에서 그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이런 현상은 특히 만주의 우리 문학에 대한 연구가 오래 전부터 미흡하였다는 데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그 당시 만주에 있던 조선인 문단(文壇)은 경성(京城)을 중심으로 한 문단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 중에도 개척소설에 가장 접근했다고 생각되는 기존의 연구를 찾아보면, 재만조선인작품집 󰡔��싹트는 대지(大地)󰡕��에 대한 고(考)가 보이고, 개별적 작가론을 다루는 과정에서(물론 개척소설이라는 점은 고려하지 않고)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취급하고 있는 정도이다.(15) 이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면,

첫째,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본 연구가 있다.(15)

조남철은 일제하의 한국 농민문학이 갖는 의의가 크다고 보고 크게 세 시기(時期)로 나누어 고찰한 결과, 이 논문에서 다루는 시기와 가장 일치하는 1939~1945년을 제2기로 보고 체제(體制) 지향적인 생산문학으로서의 농민문학이 주창(主唱)되었다고 본다.

오양호 역시 문학사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간도문학(間島文學)을 연구하면서 우리의 1940년대 현대문학사가 안고 있는 문제를 여기서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명우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한국 농민소설을 사적(史的)으로 연구하여 한국 농민소설이 변화, 발전되어 온 과정과 농민소설이 지닌 특성 및 그 한계를 밝히고 문학서적 의의를 드러내 보고자 했다.


둘째, 전개 양상을 중심으로 접근한 연구가 있다.

조정래는 개척소설의 넓은 범주에 속하는 만주소설이 가지는 특수한 모순적 양상응ㄹ 지적하고 있는 바, 만주에서 문단을 탄생시키려면 협화(協和)이념과 같은 일제의 정책 홍보에 따르면서 그 속에는 조선인 특유의 문학적 영역을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척소설에 대한 사전적(辭典的)이고 일반적인 의미와도 서로 맥이 통하고 있다.

이정숙은 간도 이주(移住) 작품을 중심으로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의 실향소설(失鄕小說)의 전개 양상을 살펴 궁국적 의미를 찾아보았는데 이 논문에서 관심을 두는 만주 개척 이주민에 대하여는 고향과 향수가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정신적 받침대라고 보았다.

신희교는 암흑기 소설을 어용소설(御用小說)의 유형과 순수지향 소설의 유형으로 크게 나누고 어용소설의 양상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다룬 소설․징병(徵兵)을 독려(督勵)한 소설․전시하(戰時下)의 생활 양식을 격려(激勵)한 소설․개척민의 삶을 다룬 소설로 나누고 있다. 즉 개척소설 계(16)열에 속하는 소설을 모조리 어용소설에 집어넣고 있는 것인 바 이것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이라고 생각된다.


셋째, 민족의 삶을 태대로 한 연구가 있다.

유관지는 해방 이전 만주에서의 민족 수난 체험과 한국 현대문학과의 관계를 살폈다는 점을 살 수 있지만 자기 논문의 결론에서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탐색적(exoploratory)인 연구로서 심층적 분석을 하지 못한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다.

김종호는 일제가 강제로 점령한 시기의 만주 유이민(流移民)소설을 대상으로 소설 속에 나타난 작가의 현실인식의 내면적 논리와 예술적 형상화의 방식을 밝히고 있다. 만주 유이민 소설은 항일 투쟁 소설의 가능성을 열고 민족의 생존 방식에 대한 문제를 내세워 보였다는 등의 의의를 가진다고 보았는데 개척소설을 가려 정하는 과정에서 이 글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개척소설의 유형에 대한 재고(再考)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넷째, 개척소설의 개념으로 고찰한 면은 거의 보이지 않고 농민소설(農民小說)의 관점에서 다루어 보려고 한 연구들이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이 글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방향과는 다르다.(17)


3. 연구 범위와 방법


개척소설을 논함에 있어 중요한 것이 식민(植民)의식의 불식(拂拭)이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던 한국의 정신적 전통을 바로잡는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식민성 사고방식 가운데 하나로 한국인이, 한국이나 한국문화를 스스로 열등시하는 그런 자조 자멸의 사고방식을 들 수가 있다. 이 같은 사고방식은 멀리 삼국시대 이후부터 있어 온 사대주의에 뿌리를 박고 있다 하겠으나, 이러한 의식을 철저히 배제한 다음에 접근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그리고 개척소설에 대한 연구는 기존의 농민소설 연구나 실향소설(失鄕小說)연구와는 분명히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개척소설에 합당한 제 값을 매길 수 있다. 특히 개척소설 연구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도 농민소설이나 실향소설과 중복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확실하게 구분 지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의 접근은 오히려 개척소설의 정체성(正體性)을 흐려 놓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

즉, 많은 선행 연구들이 개척소설의 양상과 특질을 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개척소설을 농민소설이나 실향소설 등과 같은 연장선상에 놓고 고찰하고 있거나 아예 처음부터 선입견을 가진 상태(가령, 친일 기관지에 발표된 소설이라든지 대개 무명작가의 소설이라든지 하는)에서 논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그릇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개척소설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개척소설을 살필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개척소설은 전혀 다르게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은 기존의 연구들에서 어렵지 않게(19) 알아낼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은 소설작품은 일반적인 개념으로 보아 어떤 다른 문학 장르보다도 시대 현실을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야기한다는 전제(前提) 밑에서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겠으며, 기존의 재만조선인문학을 논의하는 이들이 이쪽 분야의 특성상 많은 비중을 두는 문학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면을 아우르면서 다루어 볼 생각이다.(20)

개척소설은 아주 미묘한 시대 상황 속에서 태동(胎動)한 문학이기 때문에 작품 외적인 요소를 참고하면서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포장되어 전달되어지고 있는가를 잘 알아내는 안목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 분석이란 통일된 전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무의미하며,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자세히 읽기는 겹친 뜻을 가려내는 일만이 아니라 자세히 공들여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음을 전제하고 그 전제를 공들여 확인하는 작업(이상섭, 「<뜻겹침>의 일곱 유형」, 문학사상, 1988.1, 178쪽-각주15)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것이다.

개척소설이 많이 나온 만주 지역에서의 역사적 상황을 참고하는 일도 중요하다.(20)

개척소설을 연구함에 있어서는 일제의 주도하에 세워진 만주국(滿洲國) 또한 상당히 큰 비중을 두게 된다. 일제의 만주에서의 철도 부설권과 탄광 경영권, 그리고 당시 만주국을 형성하고 있던 다섯 민족에 대한 일제의 오족협화(五族協和) 주창 등은 개척소설의 소재(素材)와 일치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이 글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사안(事案)이다. 즉, 자칫하면 모든 개척소설이 일제의 국책(國策)에 영합하는 것처럼 보일 소지가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작품의 내면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논의에서 밝혀질 것이다.(21)

그리고 앞에서부터 이미 그렇게 써 왔지만 이 글에서는 ‘생산소설(生産小說)’이란 이름으로 적지 않고 ‘開拓小說)’ 한 가지로 통일하여 표기(表記)하고자 한다.

개척소설의 명칭에 대한 논의는 제2장의 앞부분에서 좀더 자세히 다뤄지게 되겠지만 앞으로 개척소설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비교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더 적의한 이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주요 대상 텍스트로는 기존의 논자들이 통상적으로 소위 개척소설의 유형에 넣고 있거나 스스로 개척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는 작품들-이기영(李箕永)의 󰡔��신개지(新開地)󰡕��․󰡔��광산촌(鑛山村)󰡕��, 안수길(安壽吉)의 「목축기(牧畜記)」․「원각촌(圓覺村)」, 정인택(鄭人澤)의 「검은 흙과 흰 얼굴」, 윤백남(尹白南)의 「벌통」, 이석징(李石澄)의 「도전(挑戰)」, 신서야(申曙野)의 「피와 흙」, 송산실(松山實)의 「한등(寒燈)」, 그리고 당시 만주에서 창작활동을 하던 작가들의 7인 작품집 󰡔��싹트는 대지(大地)󰡕��에 실려 있는 김창걸(金昌傑)의 「암야(暗夜)」, 박영준(박영준(朴榮濬)의 「밀림(密林)의 여인(女人)」, 안수길의 「새벽」, 신서야의 「추석(秋夕)」, 한찬숙(韓贊淑)의 「초원(草原)」, 현경준(玄卿駿)의 「유맹(流氓」, 황건(黃健)의 「제화(祭火)」 등을 삼고자 한다.(22)

Ⅱ. 개척소설의 개념과 형성 배경


1. 개척소설(생산소설)


1) 개척소설


이기영(李箕永)이 「대지(大地)의 아들󰡕��을 연재(<조선일보>(1939. 10. 12~1940. 6. 1)-각주17)할 때 “만주 개척민 소설”이란 제목이 함께 붙어 나왔다. 흔히 만주국(滿洲國)이 세워지기 이전에는 이민(移民), 선구(先驅) 개척민(開拓民)이라고 하고, 세워진 이후에는 개척민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리고 󰡔��만선일보(滿鮮日報)󰡕��를 보면 여러 지면(紙面)에서 ‘개척’이란 말이 수도 없이 나오고 있다.

또 김오성(金午星)이 <국민문학(國民文學)>에 ‘재만조선인작품집(在滿朝鮮人作品集) 󰡔��싹트는 대지(大地)󰡕��를 평(評)함’이라는 글을 쓸 때 제목을 ‘조선(朝鮮)의 개척문학(開拓文學)’이라고 붙여 놓고 있다. 이 평론 속에는 “만주(滿洲)에는 어느 기성문화(旣成文化)의 지대(地帶)에서 찾어볼 수 없는 생산적(生産的)인 개척정신(開拓精神)이 날뛰고 있으며”(김오성, 앞의 책(󰡔��국민문학󰡕��, 1942. 3-인용자 주), 18쪽-각주18)라는 대목이(23) 나온다. 과연 그러했는가를 따지기 앞서 이런 사고(思考)의 바탕 위에서 살펴본 󰡔��싹트는 대지(大地)󰡕��였기에 ‘개척문학(開拓文學)’이란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다.(24)

여기서 우리는 󰡔��싹트는 대지(大地)󰡕��의 「서(序)」에 나오는 염상섭(廉尙燮)의 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염상섭은 󰡔��싹트는 대지(大地)󰡕��에 실린 작품들을 “일망무애(一望無涯)의 황막(荒漠)한 고량(高粱)바테서 진흙덩이를 후벼파고 도다나온 개척민(開拓民)의 문학(文學)”이라고 지극히 칭찬하면서도 바로 다음 글에서 “개척(開拓)의 문학(文學)이라하야 자비(自卑)하거나 모멸(侮蔑)을 느지는 안흘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염상섭 스스로도 개척문학이라는 명칭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염상섭은 또 안수길의 첫 단편집 󰡔��북원(北原)󰡕��에 실은 서문(序文)에서 이런 글을 남기고 있다. “금후(今後) 만주(滿洲)에서 우리의 손으로 개척민문학(開拓民文學) 내지는 농민문학(農民文學)이 생성(生成)한다면”라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기서 개척소설과 농민소설을 구별지어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주를 지역적 배경으로 삼은 소설들은 토지 개척에 그 주된 주제를 맞추고 있다는 것은 제3장의 작품의 분석을 통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또 하나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 󰡔��만선일보󰡕��에 실린 개척 가사 현상 모집(開拓歌詞懸賞募集)의 요항(要項)이 그것이다. “가사(歌詞)는 5절 이내(五節以內)로 하되 개척(開拓)의 정신(精神)을 고양 고무(高揚鼓舞)하고 겸(兼)하야 희망(希望)과 안거(安居) 낙업(樂業)의 명랑성(明朗性)이 있음을 요(要)함”(만선일보, 1941. 12. 21-각주23)이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25)

이것은 “위의 글(개척 가사 현상 모집 요항: 필자 주)에서 우리들의 눈을 끄는 바는 ‘개척(開拓)’과 ‘식량 증산(食糧增産)’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희망(希望)’과 ‘안거(安居) 낙업(樂業)’ 운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어휘의 나열이야말로 중일전쟁(中日戰爭)에 이은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의 발발로 말미암아 더욱 급박(急迫)해진 국내(國內) 사정(事情)을 호도(糊塗)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고 보아 무방(無妨)할 듯싶다”(채훈, 앞의 책(󰡔��일제강점기 재만한국문학연구󰡕��, 깊은샘, 1990-인용자 주), 163쪽-각주24)라는 지적처럼, 개척이니 생산이니 하는 말은 일제가 수탈(收奪)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26)


2) 생산소설


‘생산소설’이란 말은 임화(林和)의 「생산소설론(生産小說論)」(인문평론, 1940.4)에 처음 나타난다. 임화는 여기서 “소설의 제재(題材)로서의 ‘생산(生産’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현실세계를 소비와 생산의 이원적(二元的) 구조로 파악하여, 국가, 국책(國策)이라는 전제(前提)아래 생산소설(生産小說)의 기능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그는 생산소설을 통해 평면적 수준의 리얼리즘(realism)을 입체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조남철, 앞의 논문(「일제하 한국농민소설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8-인용자 주), 135쪽-각주25) 있다.

또한 임화는 사회적 관계 밑에서, 즉 국책이라든가 전쟁 따위의 정치적 사실 내지 정치적 기구와의 관계 밑에서의 생산을 중요시하며, 이를 위해 생산소설을 주장한다. 즉, 그가 주장하는 ‘생산소설’이란 “전쟁문학(戰爭文學) 또는 총후문학(銃後文學)으로서의 농민문학을 의미”(조남철, 앞의 논문, 136쪽-각주26)한다고 볼 수 있다.(26)


2. 개척소설의 형성 배경


일제 식민지정치의 혹독함은 1940년에 최고조에 이른다. 특히 조선농촌에 대한 수탈은 일본 군대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보금∙회수∙교통∙위생∙건설 등의 일체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조선 전체를 기지화(基地化)하려는 계획된 책략(策略)이었다.(28)

역사적으로 볼 때 검열제도는 15세기 중엽에 독일 교회에서 카톨릭 승정(僧正)에 의한 인쇄물 통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후 정치 집권자의 통제 수단으로 내려오다가 폐지된 구시대의 유물이다. 일제는 오래 전 사라진 이 제도를 식민 조선에 다시 악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제 검열을 그래도 어느 정도 적게 받은 만주를 중심으로 태동한 개척소설은 망명문학(亡命文學)의 성격을 띠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반도에서는 극히 소수의 문인을 빼고는 작품 활동이 금지된 상황 속에서 위에 말한 것처럼 마지막 보루이던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에 이어 <문장>∙<인문평론>까지 폐간되었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만주의 망명문단(文壇)에 대한 평가는 지금보다 더 새롭게 이루어져야 마땅하다.(35)

개척소설의 등장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개척소설이 속해 있는 재만 조선인 소설문학의 풍토(風土)에 대한 선행 지식(先行知識)이 필요하다. 우선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황과 대다수 작가들의 의식 세계와의 차이점을 들 수 있다. 재만 조선인들은 그야말로 ‘미개척지(未開拓地)’이고 ‘비생산적(非生産的)’인 척박(瘠薄)한 그 곳 땅에서 악착같이 살아가기 위해 피땀을 쏟았다.

그러한 시대 현실을 어느 계층보다 잘 꿰뚫어 볼 수 있었던 작가들의 고뇌와 사명의식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김창걸처럼 붓을 꺾거나 아니면 친일(親日)로 나아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작가들은 동포들의 정서(情緖)와 의지를 나타내고 드높이는 길을 걸었으며 특히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개척소설이 한몫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36)


개척소설을 살피는 데 있어 절 때 빠뜨릴 수 없는 자료가 조석간(朝夕刊) 각 8면씩 발간되었던 󰡔��만선일보(滿鮮日報)󰡕��이다.(36)

필자가 볼 때 󰡔��만선일보󰡕��는 개척과 생산의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려는 일제 정책의 틈바구니에서 국내 작품 활동이 금지된 우리 작가들이 겉으로 일제에 얹혀 있는 척하면서 실제 안으로는 우리 것을 살리기 위한 숨통 틔우기의 지면(紙面)이었다는 이중적인 잣대를 댈 수 있겠다.(39)


3. 개척소설과 친일소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개척소설은 친일소설과의 변별(辨別)을 통해 보다 그 주제와 서사적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두 계열의 소설은 실제 아주 다르면서도 작품의 소재(素材)라든지 그 작가를 보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자칫 혼동을 줄 소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39)

친일문학은 개척소설 태동 시기와 거의 맞물리는 1940년을 전후하여 싹트기 시작했다. 중일전쟁(中日戰爭)을 전후하면서 싹튼 전쟁문학, 다시 그 후의 총후의식(銃後意識)을 강조한 애국문학, 그리고 40년대 전반의 국민문학(國民文學), 그 후의 결전문학(決戰文學) 등 일련의 문학운동 및 문학작품이 정도가 덜하고 심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개가 주체성을 상실한 일본 추종의 문학이었다.(40)

친일문학은 일본에 협력하는 문학이며 굴욕과 수치의 문학이다. 친일 작가는 역사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니지 못한 채 조선이 영원히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갈 것으로 착각한 사람이다. 하지만 친일 작가의 양산(量産) 뒤에는 일제의 치밀하고 혹독한 지배 체제가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40)

만주 개척민의 이야 담고 있어 소위 개척소설이라고 불리는 작품 중에서 적어도 이 글의 개척소설에 대한 잣대를 가지고 고찰했을 때 거리가 먼 것이 정인택(鄭人澤)의 「검은 흙과 흰 얼굴」(조광, 1942. 11)이다. 무엇보다 일제의 국책을 수행하는 조선이주협회의 부탁을 받은 주인공이 북만주의 개척민 부락인 H부락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설정부터가 벌써 의도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기영(李箕永)의 「만주와 농민문학」(인문평론, 1939. 11-각주55)이라는 글을 보면 「검은 흙과 흰 얼굴」의 주인공이 만주 개척지를 견학하고 그 감상을 쓰게 된다는 상황설정과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즉, 이기영이 만주의 농촌을 둘러보고 그 느낌을 기록한 글이 바로 「만주와 농민문학」이다.

그런데 이 두 글이 다같이 일제의 눈을 의식한 이러한 제약성 때문인지 이기영의 글 또한 상당히 문제가 많다. 말하자면, 「검은 흙과 흰 얼굴」처럼 만주의 개척지에 대한 찬양과 그 곳 조선인의 개척정신을 기리고 있다. 특히 강압에 의해 정든 조국 땅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식민지 농민의 고뇌와 만주라는 척박한 대지에서 그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과 한을 고발하지 않는다.(41)

특히 「검은 흙과 흰 얼굴」은 작품 속에 나오는 모든 인물과 모든 기관이 하나같이 친일 양상을 띠고 있다. 철수와 혜옥은 물론 조선이주협회와 사무소가 저마다 나름대로 일제의 국책에 순응하는 태도를 취한다.

작품의 배경이 만주 미개지이면서도 철저히 일제에 부합하고 있는 「검은 흙과 흰 얼굴」은 역으로 개척소설의 양상과 유형을 알게 하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일제 개척 국책의 위대함과 만주 조선인 농민들의 복된 생활상에 감탄을 금치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제 신궁(神宮)과 신사(神社)를 그리는 과정에서는 체제 지향적인 경향이 두드러진다. 조선 농촌보다도 훨씬 잘 사는 거기 농촌에 감격스러워하고 조선인 여선생이 헌신적으로 교육에 임하는 모습을 통해 너무나 큰 감명을 받는다.

만주 개척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노골적으로 끌어 보려는 이 작품은 철저히 일제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친일 작가 글쓰기의 한 표본으로 생각된다. 현실 비판적인 요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일제에 의해 자행되는 횡포와 야욕을 오히려 찬양하고 부추겨 조선인의 가치 판단과 의식 자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구실을 한다.(55)


윤백남(尹白南)의 「벌통」(신시대, 1945. 1)은 스스로 ‘개척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는 작품으로 일제의 개척민 정책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다. 양성진 개척단의 광술이 어머니의 삶을 통해 개척민 생활이 살만 하다는 것을 은근히 드러낸다.(55)

이석징(李石澄)의 「도전(挑戰)」(인문평론, 1940. 10)은 생산소설론을 주창한 임화(林和)의 추천작이다. 이 글 뒤에서 살펴볼 안수길(安壽吉)의 「목축기(牧畜記)」와 마찬가지로 작품 소재가 돼지 사육이다. 그러나 「목축기」의 주인공이 활로(活路)를 찾기 위해 목축업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이 소설의 주인공은 취미 반 직업 반의 마음으로 돼지를 키우게 된다.(56)

<춘추(春秋)>(1943. 4)는 송산실(松山實)의 「한등(寒燈)」∙신서야(申曙野)의 「피와 흙」∙안수길의 「목축기」의 세 작품으로 ‘만주개척민 창작특집’을 꾸몄다. 이들을 모두 개척소설의 부류에 넣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목축기」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작품은 친일소설로 봐야 한다.(56)


송산실의 「한등」은 박영준의 「밀림의 여인」에서 일제와 대립되는 공산비(共産匪)를 나쁜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적(匪賊)의 습(56)격을 받아 ‘왕청현’ 부락이 폐허가 될뿐더러 주인공이 부모마저 잃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부락재건에 나선다는 상황은 분명히 어용(御用)으로 보인다.

신서야의 「피와 흙」은 만주국이 세워지기 전 일본군의 추격을 받아 도망치던 중국군 패잔병들이 국자가(國子街) 북방의 고려촌(高麗村)을 침범하여 심한 횡포를 부린다는 이야기이다. 일본과 중국의 세(勢)싸움 때문에 조선인이 해를 입는 이 소설은 일제가 주도하는 만주국을 찬양하는 것으로 보아 친일로 기울고 있다.

중국군에 의해 주인공의 아버지를 비롯한 수많은 조선인이 죽고 집은 불타 완전히 폐허가 된 고려촌이 만주국 건설로 인해 예전보다 더 잘 살게 되었다는 소리는 시국적(時局的)인 경향을 띤다.(57)

이상 살펴본 소설들은 한 마디로 개척소설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이 작품들을 개척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이 글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소설들을 개척소설의 계열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앞으로 살펴볼 여러 개척소설들의 정체성을 보다 명쾌하게 밝히기 위함에서다.(57)


Ⅲ. 개척소설의 주제와 서사 특징


지금까지 한국 개척소설에 대해서는 사전적(辭典的)인 의미에서 조금씩 언급되었거나 극히 부분적인 접근이 있을 뿐 일련의 개척소설들을 모아 그 주제와 서사 특징을 구체적으로 총체적으로 밝혀 놓은 게 없는 실정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개척소설에 대한 관심 부족과 그릇된 인식, 그리고 자료들을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워 연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1940년대 전반기에 만주에서 만들어진 개척소설이기 때문에 그 시대적인 상황이나 지역적인 한계로 인해 우리 문학 논자들이나 독자들에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명하다. 그 결과 개척소설의 주제나 서사 특징에 대한 연구는 물론 개척소설이라고 하는 명칭이나 그 계열에 속하는 작품들에 대한 지식도 퍽 미천한 형편이다. 이런 까닭에 개척소설에 대한 연구는 처음부터 큰 벽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게 된다.(58)

개척소설에 대한 기존의 설명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작품의 배경이 주로 만주 미개지(未開地)나 광산촌∙어촌 등 산업촌(産業村)이어서 개척(58)소설 혹은 생산소설이라 부르게 되었다”(대부분의 국어국문학사전에 실린 개척소설의 풀이는 이렇게 되어 있다-각주74)는 것이다.

즉, 개척소설은 그 배경이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한정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개척소설의 주제와 서사 특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주 미개지나 산업촌이 아닐 경우에 대개 개척소설로 부를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작품 배경만 위와 같다고 하여 개척소설로 넣을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다. 이런 배경의 소설은 많기 때문이다.

좀더 살펴보면 농촌을 무대로 하지만 당시 조선인 유이민(流移民)이 많았던 간도(間島) 등 만주 지방의 개척농민 생활을 그린 점에서 농민소설(農民小說)과 차이를 둘 수가 있는 것이 개척소설이다. 말하자면 농민소설과는 엄밀히 구분되는 것이 개척소설인 것이다. 그리고 당시 만주를 자기들 손아귀에 넣을 목적으로 식민지 민족인 조선인들로 하여금 만주 지방의 개척농민이 될 것을 부추긴 세력이 일제(日帝)라는 역사적 사실을 놓고 볼 때 개척소설의 양상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한편 어떤 개척소설은 광산촌을 비롯한 공업지대를 무대로 하고 있으나 프로 문학이나 산업소설과는 달리 노동운동을 다루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순전히 생산 의욕만을 드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일제가 조선의 물자를 수탈(收奪)하기 위해 생산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개척소설은 상당히 친일(親日)적인 색채를 나타낼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개척소설은 비록 그 소재(素材) 면에서는 그런 인상을 주고 있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체제 모순 폭로와 저항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다. 위에서 개척소설은 순전히 생산 의욕만을 높이고자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는 목적은 일제 말기에 전쟁 물자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59)

특히 겉으로는 일제의 이런 국책(國策)에 얹혀 있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적으로는 당시 조선 민중의 식민지적 고뇌를 경제적 측면(이 부분을 강조한 것은 개척소설을 연구하고자 할 때 상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무론 조선인이 만주 등지로 이민을 간 배경에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할 것이다-각주75)에서 다뤄 그 허위와 위악(僞惡)을 노출시키는 양상을 지닌 것이 개척소설이다.(60)

안으로는 반일의식을 지키면서 겉으로는 식민체제에 영합하는 양면적(兩面的)인 구조는 바로 개척소설이 취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양상이다.(61)

또 개척소설은 대지(大地)라는 대자연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 있지만 자연적인 서정파소설(抒情派小說)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자연을 아름다운 풍경화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척소설은 자연을 대하는 입장에서도 특이한 양상을 띠고 있는 소설이다.(61)


1. 개척(開拓) 현장의 위악성


조선인 작가들의 작품 활동에 대한 일제의 검열과 통제가 심했던 틈바구니에서 당시 만주 개척지의 고난과 궁핍상을 잘 드러낸 일련의 소설들이 있다. 안수길(安壽吉)의 「새벽」∙신서야(申曙野)의 「추석(秋夕)」∙김창걸(金昌傑)의 「암야(暗夜)」 등이 그것이다.

일들 작품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주로 문학외적인 모순을 문학작품을 통해 고발하고 시정(是正)을 주장하는 고발문학(告發文學)과 그 궤를 같이한다. 문학사적으로 볼 때 1930년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인민전(61)선파(人民戰線派)의 반전(反戰)∙반독재(反獨裁) 사상이 식민지 체제하의 우리나라에 와서는 반제(反帝) 휴머니즘의 문학사상으로 받아들여져 현실도피 문학이 아닌 고발정신의 문학으로까지 발전하였다.

특히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향(轉向)하는 작가가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식의 모랄을 더 한층 중시했다는 데서 이들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인의 만주 이주는 국내에서의 조선 농민의 반봉건적 토지소유 형태와 정당하지 못한 토지 정책 등 일제의 계산된 수탈 정책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들은 그러한 점을 간과하는 인상을 준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이 작가들이 국내 사정에 눈을 돌리지 않았거나 민족의식이 결여되어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을 살 소지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허점일 수도 있지만 일제의 눈을 피해간다는 개척소설의 특질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능하다.

현실이 고난과 궁핍을 차 있을 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 혹은 저항 의지를 품게 되기 마련이다. 저항의 어의(語義)는 본래 라틴어(pugnacertaman)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의미는 저지(沮止)∙대치(對置)∙미움이다. 개척현실의 고난과 궁핍상을 이야기하는 이 일련의 개척소설에 있어 그것은 곧 일제에 대한 적대의식과 맞섬으로 귀결되어진다.(62)


1) 안수길 「새벽」<원명: 호가(胡哥)네 지팡>


간도(間島)의 망명문단(亡命文壇)에서 크게 활약해 온 안수길이 일제 암흑기인 40년대 초엽에 발표한 「벼」∙「새벽」 등과 함께 「목축기」에서도 소극적인 듯하지만 항일 저항의 빛은 역력해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명재, 앞의 논문(「식민지시대문학의 특성연구」, 경희대 박사논문, 1983-인용자 주), 79쪽-각주78)도 있다. 즉, 「새벽」과 뒤에서 살펴볼 「목축기」는 단순히 현실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반일사상(反日思想)까지 담고 있는 것이다.

안수길의 작품들 중 공통적으로 개척민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 「벼」∙「북향보」와 비교해보면 「새벽」에 대한 보다 명확한 접근이 가능하다.

우선 「벼」의 양상을 보면 갈등과 모순을 조선인과 일본인의 화합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또, 「북향보」는 일제에 의해 세워진 만주국을 찬양하는 면이 보인다. 이에 반해 「새벽」은 개인과 사회의 투쟁 양상을 띤다.

「벼」∙「북향보」는 일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면 「새벽」은 그것을 극복한다. 바로 여기에서 개척소설로서의 「새벽」과 비개척소설로서의 「벼」∙「북향보」의 서로 다른 주제와 서사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63)

「새벽」은 ‘창복’이라는 한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목 밑에 ‘어떤 청년의 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말하자면 청년으로(63) 성장한 후에 소년 시절을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바 이것은 미래지향적인 극복의지와 신념이 들어 있음을 의미한다.(64)

「새벽」은 살 길을 찾아 들어간 만주 땅의 괴상한 풍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안정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조선 이주민들의 실태를 ‘인질(人質)’이라는 무도(無道)한 악습을 통해 실감나게 드러내 보인다.(66)

그런데 작품 속에서 그 곳 주민들에게 가장 암적(癌的)인 존재는 일본인이나 만주인이 아니라 같은 조선인이다. 여기서도 개척소설의 한 특질을 알 수 있다. 즉,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한 인물 설정이 그것이다. 만약 조선인의 증오의 대상이 조선족이 아니라 일본족이나 일제가 내세우는 만주국 협화(協和)의 대상인 이민족(移民族)이라면 그 시대 상황을 놓고 볼 때 「새벽」의 발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67)

오히려 지팡주인 중국인 호가(胡哥)보다도 더 동족(同族)을 괴롭히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데 사실 이런 인간형(人間型)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면으로 보면 박치만은 조선인의 얼굴로 가장(假裝)한 일제이다.(67)

일반적으로 인성(人性)은 개인이 타고난 생물학적 특징과 그 개인과 관련된 제 문화적 요소가 상호 작용하는 사회화의 과정 속에 형성된다고 보(67)는데, 「새벽」에서 가장 반동적(反動的)인 인물로 묘사되는 박치만의 행위는 일제하에서 조선인이 어느 정도까지 비인간적이고 반민족적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68)

‘왜 만주로 이주(移住)하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등 문제의 심각성을 희석(稀釋)시킨 느낌이 없지 않다’(채훈, 󰡔��일제강점기 재만한국문학연구󰡕��, 깊은샘, 1990-인용자 주)는 것은 ‘일제의 검열(檢閱)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못한 생각이다. 일제의 수탈과 탄압을 못 견뎌 이주한 만주 땅에서 그런 비극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발표할 기회를 잃었을 것이다.(70)

개척소설은 당시 조선 민중의 식민지적 고뇌를 경제적 측면에서 다뤄 그 모순을 파헤친 일련의 작품을 말한다(73)

또, 한 가족이 겪는 비애와 고통은 그것이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현실과 결부되어 있고, 더 나아가서는 국권을 상실하여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현실과 관련되어 있어서(조정래, 앞의 논문(「1940년대 초기 한국농민소설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7-인용자 주), 91쪽-각주90), 「새벽」은 일제 치하 조선 개척민의 고난과 궁핍상을 표출시킨다는 의미 외에도 적지 않은 겨레얼과 저항 의지를 담아내고 있다.(76)


2) 신서야 「추석」


「추석」은 일제 당시의 거창하고 엄격한 이념의 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사소한 일상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그 가치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단순한 사건과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풍자기법을 십분 활용하여 그 시대 만주 조선인의 초조와 불안정한 내면을 잘 그려내고 있으며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사실에서 개척소설의 양상을 띠고 있다.(77)

또, 이 소설이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는 것은 한 해의 피땀을 수확하는 추수의 계절 추석 때 김서방이 아내를 잃는 사실이다. 이런 뛰어난 상황 설정에도 불구하고 콩트로 이야기를 처리한 것은 적지 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역량도 문제삼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당시의 정치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문학의 한계로 보여 진다.(78)

어디에서도 일제의 국책에 영합한다든가 일본인들을 찬양하는 면을 볼 수가 없다. 정복(正服)한 순사로 대변(代辯)되는 일본인들의 횡포와 위세를 고발하면서 힘없이 무너지며 살아가는 조선인의 처참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지접 총칼을 들고 설치는 큰 사건이 아니라 시골 장터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소한 일을 통해 일제로부터 당하는 조선인의 비애를 충분히 상징적으로 그래내는 작품이다.(83)

하지만 「추석」을 통해 주목할 것은 소설 기법의 힘이다. 즉, 단순 구성이며 짧은 분량(200자 원고지 35~40매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풍자 기법을 써서 일제에 항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소설은 농민을 등장인물로 하고 있지만 농민의 모습이나 농촌의 풍습은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도 농민소설과는 엄격히 구분될 수 있다. 그러면서 또 이 글 뒤에서 살펴볼 협화 이념이나 교화 정책 등의 분위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대신 비판적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감을 맛보게 한다.(85)

이렇게 하여 일본인으로 상징되는 순사와 조선인으로 상징되는 김서방은 추석을 매개로 서로 상반된 양상을 나타낸다. 즉, 조선인에게 있어 풍족과 기쁨의 명절이어야 할 추석이 도리어 상실과 빈곤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또 생산에 대한 조선과 일본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작품은 개척지 조선인의 고난과 궁핍상을 그려 일제 생산 정책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는 데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86)


3) 김창걸 「암야(暗夜)」


김창걸은 1940년 󰡔��만선일보󰡕��에서 모집한 신춘 현상 공모에 「청공(靑空)」(󰡔��만선일보󰡕��, 1940. 2. 11-각주105)이라는 소설로 뽑힌바 있다. 「청공」은 현경준(玄卿駿)의 「유맹(流氓)」처럼 일제의 국책에 부합되는 아편 문제를 다루는 주제가 좋아 당선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청공」에 비하면 「암야」는 상당히 반일(反日)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청공」이 일제 어용지(御用紙)로 알려진 󰡔��만선일보󰡕��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암야」를 통해서는 당대 작가들이 가졌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86)

이 소설은 애정 갈등이라는 양상을 통해 당시 궁핍한 만주 개척촌의 한 단면을 고발한다. 지독한 가난은 결국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극한 상황을 몰아온다. 바로 인신매매가 그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안수길의 「새벽」과 마찬가지로 갚지 못하는 빚 대신 딸을 제공한다는 이런 설정은 당시 조선인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87)

이 작품은 일제에 의해 주도된 만주 개척 사업으로 인한 조선인의 아픔과 한을 잘 드러내고 있다. 빈곤의 터전으로서의 농촌은 더욱이 일제 수탈 정책의 중심이 되는 표적물로서 당시 농민의 생활상은 어느 계층보다 열악하고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87)

작품 속에서 온갖 악역을 맡고 있는 같은 동포인 윤주사는 일본인이 대체(代替)된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드러내 놓고 일제를 비방할 수 없는 그 시대 상황이라는 점은 개척소설을 검토할 때 반드시 참고삼아야 할 사실이다. 살기 위해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찾아간 땅에서 살기 위해(기약도 없는 곳으로) 야반도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그 당시 일제에 의해 주도된 소위 개척사업의 허황됨과 개척지라는 곳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땅인가를 엿보게 한다.(91)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강인한 의욕과 태도를 나타내 보이는 것은 개척민 제1세대가 아니라 제2세대라는 사실이다. 즉, 조선인들이 갈수록 당시의 부조리한 시대를 부정하고 강력한 저항 의지를 키워가고 있었음을(실제 그렇지 못했다면 앞으로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음을) 작품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92)

개척소설 중에서도 이 작품만큼 결말이 산뜻하고 희망적인 것도 드물다.(96)

이런 결말은 앞에서 살펴본 안수길의 「새벽」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즉 「새벽」에 나오는 복동예와 삼손은 「암야」의 주인공들인 ‘나’와 고분이처럼 도망하여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복동예의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마감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암야」는 「새벽」보다 훨씬 강한 저항 의지와 희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96)

또 「암야」는 만주 유이민 제1세대와 제2세대를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96)

제2세대인 명손과 고분의 저항과 의지 표출은 단순히 제1세대인 부모와 윤주사, 그리고 최영감에 대한 적개심이나 공격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 일제에 대한 조선인의 쌓여던 울분 토로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으로 보아야 마땅하다.(97)

이처럼 「암야」는 일제 수탈이 심한 가난한 농촌으로부터의 탈주(脫走)라는 서사(敍事)를 통해 당시 고난과 궁핍이 낳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강렬한 고발정신으로 확대되는 작품이다.(97)


이상으로 일제에 의해 주도(主導)되는 개척 현실의 고난과 궁핍상을 그려내고 있는 「새벽」∙「추석」∙「암야」 세 작품을 살펴보았다.

이 소설들은 일제의 감시 밑에서도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잘 그려내고 있기는 하지만 아쉬운 것은 만주국(滿洲國)이라는 테두리 속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자칫 일제가 표방하는 ‘북향건설’의 국책과 맞아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줄 우려도 낳는다. 그러나 만주에 이주한 조선 농민의 의식과 의지를 뚜렷이 담아내는 등 개척소설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97)

이 중 특출한 작품이 「새벽」이다.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만주 조선인의 처참한 생활상을 보여주는 등 일제의 검열을 피해 가는 기법을 활용하여 개척소설의 서사 특징을 잘 알게 한다. 만주문학의 대표작으로 보아도 손(97)색이 없다.(98)

주인공 창복 일가가 경험하는 비애와 모순은 단순히 한 가족사의 수난에 머물지 않는다. 염상섭이 󰡔��싹트는 대지(大地)󰡕��의 서(序)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은 ‘이민수난기(移民受難記)’의 본보기로서 일제 그늘에 가려진 조선 이주민의 진솔한 삶을 당당하게 그려낸다. “인생의 진실이나 삶의 진리는 삶의 무게가 실리는 자리, 곧 삶의 심층(深層)에 있다. 그것을 캐고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고 문학의 몫”(강희근, 󰡔��오늘 우리시의 표정󰡕��, 국학자료원, 2000, 276쪽)

일제 시대 조선인의 고난과 궁핍한 실상을 비판적인 눈으로 풍자하는 「추석」은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수탈로 인해 경제적인 핍박을 받는 조선인의 비애와 무능을 잘 그려낸다. 특히 ‘추석’이라는 조선 고유의 명절을 통해 시대 아픔을 한층 잘 드러내는 점이 돋보인다.

일제 현실의 모순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감하게 대처하는 「암야」는 만주 유이민 제1세대와 제2세대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일제의 약탈로 피폐해진 개척 농촌으로부터 탈주하는 인물들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되찾고자 하는 놀라운 설정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 일련의 개척소설은 일제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적극적인 저항(암야)을 띠는가 하면 소극적인 저항(새벽)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소극적인 저항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가치를 낮게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작품 내면에 함축되고 암시되는 의미가 더 깊고 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소설들은 일제의 만주국 이념에 대한 홍보를 강요하는 정치적 요구를 간접적으로 공격한다는 점에서는 뒤에서 살펴볼 협화(協和) 이(98)념의 모순을 다루는 장(章)과 유사한 성격을 띠기도 한다. 어쨌든 이 세 작품은 모두 일제에 의해 일체의 현실 비판적인 작품 활동이 금지된 상황 속에서도 만주 개척지의 고난과 궁핍상을 잘 드러내 보인 개척소설이라는 값매김을 할 수 있다.(99)


2. 낙토(樂土) 건설의 허구성


낙토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이런 허구성을 고발하는 작품으로 이기영(李箕永)의 󰡔��신개지(新開地)󰡕��∙「광산촌(鑛山村)」, 안수길(安壽吉)의 「원각촌(圓覺村)」 등이 있다.

이 일련의 개척소설들은 개척의 허상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조선인 잘 살 수 있는 이상촌(理想村)을 희미하게나마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낙토는 외부의 어떤 압력이나 종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도록 자유스럽게 내버려두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즉, 조선인의 낙토는 일제가 물러난 땅이라는 뜻을 전하면서 식민 체제하의 무력에 의해 건설되는 집단촌(集團村)이 얼마나 허울 좋은 마을인가를 비판한다.(99)

일제에 의해 주도되는 근대화는 비정상적인 문명의 유입으로 인해 도리어 조선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파괴하고 사회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궁핍만(99)을 초래한다. 금전의 위력이 더욱 커지고 농촌은 무너져 민심은 갈수록 흉흉해진다.(100)

일제의 낙토 건설 국책에 동조하는 부류와 저항하는 부류를 통해 진정한 조선인의 꿈과 희망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이 일련의 개척소설들은 인간의 영원한 낙원에 대한 모형도를 제시한다. 다만 일제의 감시를 의식한 탓에 문학적 형상화가 부족하고 주제의식 또한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이 아쉽다.(100)


1) 이기영 󰡔��신개지(新開地)󰡕��


󰡔��신개지󰡕��는 1920년대 중반 충청남도 천안 부근의 달내골(月川里)을 배경으로 하여 철도 개통을 통한 일제 식민지적 근대화의 모순을 파헤치는 장편소설로서 <동아일보>에 연재(1938.1.14~9.8)된 작품이다.(100)

이 소설의 앞부분에서는 조선의 전통적인 생활 터전으로 번창했던 달내장터가 철도 개통에 의해 쇠잔해지는 과정을 강윤수와 김순남네 가정을 중심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절망과 함께 희미하게나마 어떤 희망을 제시해 보이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101)

즉, 근대화 과정과 그로 인한 병폐들, 애정의 갈등 구조, 농촌의 빈궁, 대가족 제도이 불합리, 조혼의 폐단, 신영성과 구여성의 의식 구조 대비 등 당대 한국인의 일상과 심리를 상층계급의 두 가정과 하층계급의 두 가정의 결혼을 통해 드러내는(이미림, 󰡔��월북작가소설 연구󰡕��, 깊은샘, 1999, 44쪽-각주119) 복합적 서사구조가 장편소설다운 면모를(101) 지닌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강하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소위 낙토 건설을 내세우는 일제에 의해 자행되는 식민지적 근대화로 피폐해지는 조선농촌 모습이다. 일제의 조선 착취가 어느 곳보다도 심하게 행해지는 농촌 속에서, 토지 조사 사업으로 인한 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지주, 마름과 소작인들과의 대립 관계로 파생되는 농민들의 실상이 철저히 파헤쳐진다.(102)

󰡔��신개지󰡕��와 이기영의 다른 작품 󰡔��고향󰡕��, 󰡔��봄󰡕��을 비교해 보면 개척소설(127)로서의 󰡔��신개지󰡕��의 양상이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고향󰡕��은 농촌의 어려움에 대한 이유와 모습이 비교적 상세히 드러나고 있으나 비판의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봄󰡕��은 남에게서 전해 듣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신개지󰡕��는 농촌의 궁핍과 농민의 몰락상을 안에 감추고 있다.

일제 대응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고향󰡕��은 조선의 풍습과 조선인의 모순을 비판하며 일제를 추앙하는 모습을 띤다. 󰡔��봄󰡕�� 또한 조선의 반상(班常)차별 의식을 드러내어 일제에 순응하고 있다. 그러나 󰡔��신개지󰡕��는 식민지 체제를 고발하고 조선 민중의 연대(連帶)를 촉한다.

이렇게 볼 때 󰡔��신개지󰡕��는 개척소설로서의 독특한 몫을 매우 잘 감당하고 있으며 󰡔��고향󰡕��처럼 일제 당시의 농촌과 농민에 대해 그저 깨우치고 가르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있는 등 이기영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128)


2) 안수길 「원각촌(圓覺村)」


뒤에서 살펴볼 한찬숙(韓贊淑)의 「초원(草原)」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소설은 대륙적인 웅장한 스케일이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억세고 힘찬 기분이 드는 ‘억쇠’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129)

소설 속에 나오는 부정적 인물로 조선인을 등장시킨 것은 안수길이 일제 당시의 조선인의 삶의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 부조리와 모순을 지적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때문으로 풀이하는 논자도 있다.(조남철, 앞의 논문(「일제하 한국농민소설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8-인용자 주), 151쪽 참조-각주151) 그러면서 비록 이 시기가 일제에 의해 강압적인 문화정책으로 체제문학에의 강요가 아주 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무릇 작가의 사명감은 아무리 힘든 여건 속에서라도 응당 그 시대 삶의 실체와 부조리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30)

이 작품은 북도(北道) 조선인들뿐만 아니라 남도(南道) 출신인 경상도 농민들도 입식(入植)될 것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남녀의 삼각관계에 더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겉으로 일제의 국책에 영합하는 척 하면서 내면으로는 유이민의 고뇌와 실상을 다루려는 개척소설의 서사 특징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130)

만주 이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비교적 사실적인 필치로 묘사한(조남철, 앞의 논문(「일제하 한국농민소설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8-인용자 주), 137쪽-각주152) 「원각촌」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작가의 의도하에 씌어진 작품답게 개척소설로서의 양상을 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원각촌」을 어용소설(御用小說)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보다는 특히 만주에서의 고난과 시련을 이겨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주인공 억쇠의 행동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130)

‘원각촌 사람이면서 원각촌사람이 아’닌 억쇠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이런 그가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억쇠’라는 별호(別號)처럼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기 때문이다. 원각촌 사람들은 억쇠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는 아내 금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주민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 같은 민족과도 등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시의 어두운 면을 엿볼 수 있다. 억쇠는 스스로 외부와의 벽을 쌓는 것이다.

소외란 원래 싫어하여 따돌린다든지, 사이를 나쁘게 한다든지, 멀리 한다든지 하는 행위나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일반화되면, 인간의 사회적 활동에 의한 산물, 곧 노동의 생산물, 사회적 제관계, 금전, 이데올로기 등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의 활동 자체가 그 인간에게 속하지 않고 외적으로 또 강제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 된다. 억쇠를 소외감에 빠지게 하는 일(132)은 또 있다. 바로 아내 금녀 때문이다.(133)

혜룡선사는 ‘한문으로된 불경을 언문으로 번역하는사업에 착수하’게 되는데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언문으로 번역한다는 것은 민족 얼을 기르게 하는 의미로 파악된다.

이 부분은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대한 저항 의지로도 생각된다. 비(134)록 한문으로 된 불경을 언문으로 뒤쳤다고 하지만 사실은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일본어를 쓰게 한 데 대한 반발과 고발로 보여진다.

또‘절에서 행하든 예식절차를 고쳐 민중이 친할수있는 절차를 꾸미’기도 한다. 이것도 조선 민중을 위한 일이다. 그리고 ‘땅값이 싼 만주 그중에도 반도인이 많이사는 간도에 토지를 사놓고 농호를 �아 농사식히는 일방 포교도 하고 학교도 세’운다는 것은 민족 의식을 일깨우는 것과도 서로 통한다.(135)

원각촌은 그야말로 일제로부터 해방된 곳으로 그려진다. 만주인 지주들의 횡포도 벗어나 있다. 그 당시 조선인이라면 모두가 소원했을 이상촌이다. 같은 동포끼리 어느 누구의 억압이나 통제도 받지 않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곳, 즉 진정한 낙토를 비록 소설 속에서나마 실현시킨 작가의 소망과 의지가 퍽 돋보인다.

또, ‘어른들은 특히 부인들은 법당에 드나들어 부처님 앞에 예배함으로서 지금까지 만주들에서 갈팡질팡 갈바를 몰랐든 마음의 귀이처를 찾은 것을 기뻐하였’으니 진정 조선인의 리상촌이 형성된 것이다. 그리하여 ‘왼동리는 한덩어리가 되어 원각교리상촌건설의 희망에불타고있었다.’ 하지만 같은 민족인 한익상이 문제였다.(137)

주인공이 자살하거나 도피하거나 하는 소극적이고 비겁한 행위가 아니라 악(惡)의 화신(化身)을 가차없이 처단하는 점에서 통쾌하고 발전적이다.(139)

부부요 같은 민족인 금녀에게는 차마 어쩌지 못하는 억쇠는 사랑과 정이 넘치는 조선인의 표상이다.(140)

결국 억쇠는 금녀를 죽이지 못한다. 그리고 금녀를 말에 태우고 또다시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난다. 이들의 모습은 당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던 조선인의 비애와 방황을 대변해 준다.

그러나 이들이 떠나고 있는 ‘원각촌은 평화한 꿈속에 명일의평화를 꿈꾸며 곤히 잠이 들고 있었’으니 억쇠로 하여 조선 주민들은 평화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핍박받는 조선인이 압제에 대해 보다 강하게 도전하고 현실을 극복할 것을 뜻한다.(140)

「원각촌」에 나오는 인물들이 일제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는 다양하게 그려진다. 친일로 대표되는 한익상과 반일로 대표되는 혜룡대사가 큰 두 개의 축을 이루고 있으며 주인공 억쇠와 금녀는 그 중간에서 방관자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한편 생활 자세로 보면 친일과 반일의 두 세력은 모두 적극적이다. 이에 반해 억쇠는 방어적인 양상을 띠고 금녀는 피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친일로 대표되는 한익상응ㄹ 제거하는 것은 혜룡대사나 그를 신봉하는 원각촌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처음에 방관자였고 심지어 한익상과 친해지기까지 했던 억쇠이다. 그리고 억쇠가 한익상을 죽인 것은 한익(140)상이 금녀를 넘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또한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원각촌」은 방관자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버리고 지금까지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일제에 대항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일제 낙토 건설의 허구성을 고발하는 동시에 조선인의 이상촌을 세우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141)


3) 이기영 「광산촌(鑛山村)」


「매일신보」에 연재(1943.9.23~11.2) 되었던 「광산촌」은 농사꾼이었던 주인공 형규가 광산촌으로 들어와 광부 생활을 하는 이야기이다.

물자를 수탈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생산량을 늘리고 각종 물자를 아껴 쓰자는 일제의 홍보와 일치하는 내용을 다루는 이 소설은 친일문학으로 힐난을 받을 여지가 있지만 개척소설은 그 소재만을 놓고 평가할 성질이 아니다.(141)

그런데 형규가 광산 징용으로 인부를 모집하는 공문이 나오고 구장이 권하는 통에 자원한다는 상황 설정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친일적인 성향을 띤다. 당시 일제의 소위 광산 징용 장려정책에 부응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개척소설의 한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즉, 일제가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수급하기 위한 선전물로서(141)의 문학만이 검열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142)

한편 형규가 일하고 있는 이 광산에서는 증산주간이라는 것이 있다. 광부들의 경쟁심리를 불러일으켜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해 매달 한 차례씩 있게 되는데, 이것은 일제의 노동 착취 수단으로 생산 실적이 좋은 단체에게는 상도 내린다. 이 증산주간에 대해 주인공은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광부들을 통해 그것을 비판하기도 한다. 작가가 누구의 입을 빌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볼 대목이다. 갈수록 창작에 대한 여건이 나빠지고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142)

또, 이 작품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동극단이 찾아와 하는 연극 공연이다. 그 공연을 본 을남은 어머니의 사랑과 여성의 정조를 생각하는 등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그 공연 내용이 일제의 국책이나 선전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전이니 산업 전사니 하는 대화를 되풀이하여 일제가 일으키는 전쟁을 선전하고 충성을 고조시키려는 것과 대비시켜 고찰해야 할 것이다.(142)

이동극단이 돌아가고 난 후 형규는 을남이를 두고 고향 농촌으로 향하고 을남이는 슬픔에 잠기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비록 형규의 탄광작업기간이 끝나 광산촌을 떠난다고는 하지만 왜 마지막 주인공을 다시 농촌으로 되돌아가게 하는지 그 내면의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 작가는 식민 시대의 광산업을 일제의 전재 수행을 위한 물자 수탈로 보고 그 왜곡된 실상에 대한 비판으로 농민에로의 회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143)

형규는 ‘넉넉지못한 농가에 태여나서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하였을뿐이’지만 ‘일터를 학교와같이 알고 나가서 광일을 하다가 집으로 도라와서는 틈틈이 공부를’ 하는 모범적인 조선 청년이다.

이처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유를 배우지 못한 데서 찾고 있는 것은 퍽 밝은 안목이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그 어려운 시대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물론 형규는 모두 잘 살기 위한 일이라는 구호 아래 자행되는 일제 생산 정책에 잘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개척소설의 서사 특징이다. 농촌 출신인 그가 광산에 근무하면서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를 잘 읽어내는 것이 이 작품을 이해는 관건이다.(145)

‘마침 작년봄에 면에서 광산증용(鑛山徵用)으로 인부를 모집한다는 풍문이 나오고 구장이 권고하는 바람에 자원’한 형규이다. 일제의 조선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조선 사람이 권고하고 조선 사람이 지원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일제의 눈을 의식한 표현이다.(146)

그런데 형규의 생각은 또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자연계를 상대하야 생산에 종하기는’ 농민이나 광부나 마찬가지라고 본다....일제가 국책으로 앞세우는 생산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얼핏 일제의 정책에 부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단서가 달려 있다. ‘소소한 일개인의 이해를 떠나서 생각할때는’ 하는 말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 한해 광부는 ‘참으로 신성한 직업이라 할수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국가는 곧 일제를 말하고 개인은 조선인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149)게 되면 작가가 작품 속에서 드러내려고 하는 의도가 명백해진다. 이런 점이 개척소설의 주제 표출 방식이며 서사 특징이다.(150)

또한 을남이는 그 후 옥순이의 생활을 궁금하게 여기며 여자의 정조(貞操)에 대해 생각한다. 이것은 작품 속에서 상당한 분량으로 강조된다. 광산촌 이야기를 하면서도 생산에 대한 선동보다 조선인의 이런 가족애와 전통적인 정조 관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일제에 부합하지 않고 우리 것을 지키려는 개척소설의 한 면모를 읽게 한다.(157)

곧 「광산촌」은 농사지을 땅이 없는 농민이 어쩔 수 없이 농촌을 떠나 광산촌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일제 당시 농토를 잃고 고향을 떠나는 조선인의 참상과 비애를 고발해 보인다. 조선인의 낙토는 농촌이며 낙토 건설 주체는 농민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농민이 일제에 대해 저항하는 양상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광산촌」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개척문학과 프로문학의 차이를 규명하는 한 단서가 된다.(157)

원각촌의 경우 실제 조선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상촌 건설을 제시해 보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원각촌이라는 작은 마을은 일제 세력이 물러가고 조선인들만 모여 살아갈 수 있는 낙토를 상징한다.(158)


3. 협화(協和) 이념의 모순성


만주라는 특수한 지리적 여건 속에서 작가들이 창작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만주국의 건국 정신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따라서 만주국의 실제 주도권자인 일제가 주창하는 소위 협화 이념은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소설은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복잡한 측면들이 서로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그려지게 된다. 정치 이념이 판을 칠 때 그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것을 잘 말해주는 작품이 한찬숙(韓贊淑)의 「초원(草原)」∙안수길(安壽吉)의 「목축기(牧畜記)」∙황건(黃健)의 「제화(祭火)」 등이다.

이 일련의 소설들은 다른 개척소설에 비해 주인공이 높은 지식이나 안목을 가졌거나 상당한 사회적 위치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농림부에 근무하는 기사, 학교 교사, 인텔리 등이다. 이들은 어떤 이념을 소화하고 전파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즉, 일제의 협화 정책을 수행하는데 적합한 인물 유형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그 이념의 성격에 있다. 바로 일제가 내세우는 협화를 바탕에 깔고 있는 이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화를 강조하거나 적어도 동조하는 태세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내면에 담긴 의도는 또 다르다. 이러한 서사 특징을 가진 개척소설들이 위의 세 작품이다.(159)


1) 한찬숙 「초원(草原)」


한찬숙은 실제로 만주국 농림부 관리였는데 그의 「초원」에 등장하는 주인공 임봉익 역시 농림부에 근무하는 기사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더욱 실화(實話) 같은 느낌과 작가의 강한 의도가 전해진다.(160)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소설 제목이면서 주요 배경인 초원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올려다보며 바위에 돌을 던져 운수를 보는 돌점이나 치고 처녀의 꿈을 삭이게 하는 초원은 서정파소설(抒情派小說)에 나오는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다. 어떤 낭만도 느껴지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개척소설의 유형이 갖는 서사 특징을 알 수 있다. 초원(자연)은 그저 개발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160)

이 작품의 애정 양상은 일반 애정소설과는 다른 각도에서 조망해야 한다. 즉, 애정담(愛情談)을 통해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적 모습을 전반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 「초원」이며 이것이 개척소설의 서사 특징 중 하나이다.(161)

실제로 이 작품은 목적의식(만주국 협화)에 치우친 나머지 표현에 있어 수준이 낮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학적 완성도보다 만주라는 거칠고 메마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미개한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쪽을 강조하려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된다. 개척소설은 서정파소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이 그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몽고족들에게는 자연이 삶의 터전이지 낭만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축이다. 이것은 안수길의 「목축기」와 같다.(162)

여기서 일본 관동군이 만주국 4000만 이상의 이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이른바 ‘민족협화’를 내세우고 그것을 ‘오족협화(五族協和)에 의한 왕도낙토(王道樂土)의 건설로서 주창했다는 사실을 되살려야 한다. 또한 1932년 7월에 만주국협화회(滿洲國協和會)라는 관제조직을 발족시켜 민중 지배의 첨병으로 삼았다는 역사적 배경도 중요하다.

일제는 조선 개척민을 앞장 세워 몽고족을 비롯한 이민족들과의 협화를 이루게 한 후 마지막에 가서 모두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음모를 꾸몄다. 조선인 젊은이가 몽고 처녀를 대상으로 계도(啓導)를 하고 있는 「초원」을 읽을 때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163)

「초원」은 단순한 이야기로만 볼 것이 아니다. 이 작품 속에는 조선족과 만주족의 관계라는 국제적 문제가 엄연히 드러나고 있다.(164)

조선 사람이 우리들(몽고인들)과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인가 하고 몽고 처녀가 반문하는 것은 일제가 만주국 5개 민족이 잘 지내며 운운 하는 것에 대한 회의(懷疑)이다.(164)

오상순의 경우 주인공 임봉익은 만주국의 정책을 실행하며 특히 조선족과 몽고족, 만주족이 화합하자는 ‘오족협화(五族協和)’를 강조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견해를 보인다.(164)

그런가 하면, 「초원」은 그 작품 경향을 따져 보면 한찬숙의 직업적 한계(그는 앞에서 말했듯 만주국 정부의 농림부 관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를 느끼게도 하는 작품이다. 소위 개척과 생산의 고취와 홍보를 담당해야(164) 할 한찬숙은 조선인으로서 일제에만 영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제의 비리를 파헤칠 수도 없는 묘한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165)

임봉익이 ‘축산학교(畜産學校)를 졸업하자 대륙진출의 큰을품고 단거름에’ 들어왔던 곳이 몽고였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제가 대륙진출의 꿈을 품고 만주국을 제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던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 이야기다. 그 당시 일제의 지배를 받던 조선인은 곧 일본인이라고 볼 때 이것은 일본의 몽고 진출을 말한다.

한편 “봉익이가 이번에 마루도아버지를라 파일콜이라는 동리에 출장하야온것도 단순히 몽고들판에 이상한 풍경이나 보고가자는 간단한생각은아니엇다”라든가, “세상을모르고 지나가는 몽고의 미개한 민족을 지도하기위하여 자청하고나온 봉익”이라는 이야기는 개척소설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즉, 자연을 아름다운 풍경화로 보는 서정파소설과 다르고 미개한 만주 땅을 계도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비치는 것이다.

또, 이국(異國)과 타향, 풍물과 정서를 탐미적(耽美的)으로 묘사하는 태도인 이그조티시즘(Exoticism)과도 구별된다. 시민계급의 적극적인 개척정신을 반영하는 일면도 없지는 않지만 흔히 낭만주의의 현실혐오가 낳은 동경으로 먼 것에의 미화(美化)로 나타나는 이른바 이국취미(異國趣味)는 이 소설에서 찾을 수 없다. 이 모든 점은 이 소설이 협화 이념에 깊이 침체(165)된 듯한 인상을 던져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166)

임봉익의 임무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임봉익의 고뇌는 이해된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그런 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시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없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즉, “개척 농민의 선구자적 업적을 소개하고 영웅화함으로써 생산 정책을 주도하고 조선인의 농촌 이주를 장려하는 데 일조(一助)하고자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조정래, 앞의 논문(「1940년대 초기 한국농민소설 연구」, 연세대 박사논문, 1987-인용자 주), 78쪽-각주198)는 동시에 작가로서의 고뇌를 읽을 수 있는 개척소설의 서사 특징이다.(166)

작가가 계속하여 몽고족의 미개 상태를 이야기하는 의도는 조선족의 우월감을 확인함으로써 일제로부터 받아야 하는 열등의식과 자비심(自卑心)을 덜어보려는 것이다. 일제의 협화 이념에 호응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작가의 수완으로 생각된다.(167)

몽고 처녀인 마루도가 조선 젊은이인 봉익이와 처음 손을 잡았을 때의 감정이 솔직하게 표출된다. ‘이곳 저곳들판으로 도라다니며 여름내 싸버린 쇠이나 말을 줍느라고 념이업’는 마루도와 ‘말타고 차저온 봉익이를’ 통해 역시 조선 민족의 문화가 몽고족의 그것보다 우월함을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168)

봉익이의 마루도에 대한 계도는 약간 문제이긴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일제의 협화를 염두에 둔 설정으로 봄이 더 타당할 것이다.(168)

소설 속에 어떤 목적의식이 개입하게 되면 자칫 무미건조해지거나 사상성이 짙은 경향으로 흐르기 쉽다. 이 작품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요소를 안고 있다. 그래도 이런 점을 감쇄시키는 것은 마루도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자기 민족의 개화보다도 봉익을 향한 사랑의 감정에 더 사로잡혀 있음으로써 소설로서의 재미를 보태주고 있는 것이다.(169)

자기들의 정신적 지주로 군림하는 ‘활불만 맛나면 벌벌고 말한마디 변변히 건네지도 못하는’ 몽고사람의 하나인 마루도가 보는 봉익은 ‘무어든지 이곳백성들을 위하여 이익이 되고 행복이되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아주 멋있고 훌륭한 인물로 비치고 있다. 그것은 조선의 문화가 몽고에 비해 우월하다는 바탕을 깔고 있는 경배요 애정이다.

그런데 사실 각 사회 문화는 그 문화 고유의 특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각 문화가 지니는 의미의 차이는 상대적이므로 문화간의 우열을 비교할 수는 없다. 객관적인 안목에서 볼 때 각 사회의 문화는 그 문화 고유의 특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는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고려할 때 한 사회의 문화는 다른 사회의 기준에 의해 평가될 수 없다. 이 작품의 작은 흠은 이런 문화의 속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170)

아버지와 남동생을 두고 사랑하는 봉익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는 마루도는 자신이 살고 있는 ‘파일콜서’ ‘삼백리는 넘는곳’인 ‘흑산투지’ 가려고 한다. 게다가 그 ‘흑산투는 소련의 접경이요 동쪽의 큰길로 그냥처저가면 삼하(三河)지방’인 것으로 되어 있다. 몽고의 개화뿐만 아니라 소련까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이것은 재차 지적한 것처럼 만주국 다섯 나라의 협화를 부르짖는 일본의 구호와도 맥이 통하고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꼼꼼히 읽어보면 작품의 어느 부분에도 일제에 영합(迎合)하려는 면은 띄지 않는다.(171)

마루도가 봉익을 찾아가는 이러한 결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一貫)되게 조선인의 우월감을 밑바탕에 깔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두 민족간의 협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미묘한 점이 개척소설을 읽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문제이다.(172)

임봉익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마루도와 그녀의 아버지는 조선민족과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만주국이 일제의 계획에 의해 그들 손에 넘어가게 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인과 몽고인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다. 물론 작품 속에서 임봉익(조선인)이 마루도를 비롯한 현지인들(몽고인)에 대해 우월감을 갖는다든지 사랑보다 시혜(施惠)를 강조하는 등 소설로서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약점은 감수(甘受)해야 할 것이다.(172)

「초원」은 조선족과 만주족의 협화라는 명목을 통한 일제의 만주국 지배야욕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는데 그 가치와 의의를 둘 수 있다.

만주 세력을 상징하는 활불(活佛)과 조선 세력을 상징하는 임봉익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몽고 처녀 마루도의 심리와 선택 의지를 통해 이야기는 전개된다. 특히 만주족에게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활불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어 조선족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얻어낸다. 일제의 국책인 만주국 오족협화(五族協和)를 임봉익과 마루도라는 두(172) 젊은이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상당히 친일적인 양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개척소설만이 지니고 있는 서사 특징이다.(173)


2) 안수길 「목축기(牧畜記)」


「목축기」는 그 시간적 배경이 1940년 가을부터 같은 해 겨울까지이며 공간적 배경은 이른바 ‘목축지정현’인 ‘00현’의 와우산(臥牛山)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깐 개척소설이 많이 쓰여지기 시작한 시기가 이 작품 속 시기이며 역시 개척소설의 주요 배경인 만주 개척지를 그리고 있고 일제의 수탈을 위한 목축업이 주된 사업으로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173)

찬호가 선생으로서 학생들로부터 ‘존경이나 흠앙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학생들은 ‘묵묵히 괭이와 호미로 땅을 파는’ 일을 좋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찬호의 꿈은 당연히 좌절될 수밖에 없다. 또, ‘만주국의 교육 방침’에 대해서도 모두들 부정적으로 본다.

이 부분은 상당히 역설적이고 반어적이다. 주인공 찬호는 만주국을 찬양하는 입장에 서 있고 소위 교화되어야 할 학생들은 도리어 개척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 대해 주인공은 퍽 마음이 아프다는 식이다. 겉으로는 분명히 일제의 만주국 협화 정책에 영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 대목은 찬호가 학교를 그만 두고 개척민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과정을 알게 하는 부분이다. 만주국에 대해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 반응을 나타낸다. 일제는 조선인 가운데 지식인을 특히 활용하고자 했는데 그들이 이용한 교사가 개척지에서 교육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실패를 하고 말았다는 것은 일제 국책의 허위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다.(177)

오로지 가축 키우는 일에만 열중인 로우숭은 ‘만주국이 건설된 지 8개년이 된 오늘에도 그대로 옛날 세상인 것으로만 여’길 뿐만 아니라 ‘도무지 그런 것을 알려 들지 않’는 사람이다. 일제의 강요나 회유를 무시해 버리는 태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가 염두에 두지 않는 만주국은 곧 일제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177)

로우숭은 작가가 시대에 대응하여 드러내고 싶어하는 인물로 생각된다. 이것은 작품의 끝에 가서 로우숭이 범을 죽이기 위해 산으로 떠나는 장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178)

기우는 돼지를 산짐승에게 빼앗긴다는 내용의 소설로 안회남이 쓴 「늑대」(조광, 1943년. 8)가 있다. 보현이네 집의 돼지를 늑대가 물어 가는데 그 원인이 허술한 돼지우리로 돼 있다. 말하자면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는 일종의 근로소설(勤勞小說)이다. 「목축기」와 비교해 볼 때 이 소설은 시대적 고민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에 반해 「목축기」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개척소설이다. 돼지를 잃은 조선 개척민들은 두 번 다시는 당하지 않을 결심을 한다. 바로 ‘파수 보기’가 그것이다.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수 없다는 당시 조선 사람들의 분노(178)와 의지가 표출되는 대목이다. 더 약탈당하기 전에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드러나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불만과 원한은 갈수록 고조될 수밖에 없다.(179)

위에서 천성(天性)은 착하나 무모한 사람으로 묘사되어지는 로우숭은 어렵게 일제에 항거하는 당시 만주 개척민의 표상이다. 일제의 만주 개척국책이 조선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과 수난을 요구하는가를 지적한다. 범에게 왼쪽 귀를 할켜 떼어진 후 몹시도 분해 하고 침울해 하다가 결국 범을 죽이기 위해 창을 들고 산 속으로 떠나는 로우숭이야말로 주인공 찬호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 맡아 나선 인물이다. 작가는 피해 가는 수법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목축기」의 표면적인 개척민과 내면적인 개척민은 다르다. 일제가 내세우는 소위 만주 개척민의 허상(虛像)을 깨달을 수 있다. 겉으로는 일제의 국책에 영합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조선인의 아픈 실상을 그려내는 것이 개척소설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을 이해하기가 수월해진다.(179)

「목축기」는 일제의 협화 정책을 빙자한 조선인 물자 수탈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고 나아가 조선 개척민의 저항 의지를 표출시키고 있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찬호와 로우숭의 역할을 주의 깊게 고찰하는 것이 이 작품을 읽을 때 특히 유념해야 할 점이다.(180)


3)황건 「제화(祭火)」


당시로서는 드물게 나름대로 인간 내면 심리를 깊이 드러내 보일 뿐만 아니라 특히 역사와 사회적인 부분까지 건드리고 있는 「제화」는 1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는 서간체 형식의 소설이다. 주인공 ‘나’는 조선 땅에서 만주로 옮겨와 살고 있는 인텔리 젊은이다. 그리고 1920년대 말 지식인 소설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문화청년회 지도자이다.(180)

이 소설은 관념소설(觀念小說)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묘사(180)에 치중하고 있을 뿐 뚜렷한 형상화의 서사는 거의 없다. 주인공은 오직 혼자만의 내면 의식에 빠져 있고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친구들과의 인간관계 등에 관해서도 흐릿하게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한창 나이인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게 하고 스스로는 자살을 하려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도달하고 있지만 그 원인 또한 막연하게 드러나고 있어 좀더 높은 차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자살을 결심하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일제 협화 이념의 희생물이 된 만주 실향민의 애절한 심정과 절망감, 그리고 피로감을 잘 드러냄으로써 당시 사회의 그늘을 부각시켜 보이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런 점에서 일종의 우울문학(憂鬱文學)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제화」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암담하며 우유부단한 성격의 인물 창조 등을 담고 있다.

무기력한 주인공은 시종 현실에 대해 혐오감과 도피 충동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미치광이도 못 되고 훌륭한 지도자도 되지 못한 채 자포자기의 인간이 되어 고뇌와 갈등의 포로가 되고 있을 뿐이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암흑기의 전형적인 인간상을 제시하는 소설이다.(181)

황건의 소설은 당시의 다른 작가들이 인물에 대한 형상화에 있어서 그들의 기질과 생활과는 동떨어진 ‘투사(鬪士) 일반으로 묘사하던 제한성을 깨뜨리고 주체형의 인간 성격을 높은 차원에서 형상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로써 그의 소설적 의미는 계급성을 심리적인 차원에서 다뤄 내고 있(181)다는 점이 될 것이다.(이명재 편, 󰡔��북한문학서전󰡕��, 국학자료원, 1995, 1181쪽-각주219) 특히 「제화」는 일제 사회 제도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 부정하고 있는데 그것도 지식인의 심리를 통해 그려내고 있어 깊이를 가진다. 다만 「제화」는 작품 속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는 것(가령, 문학청년회의 내분)에 대해 뚜렷한 제시가 부족하기 때문에 애매한 느낌은 있다.

특히 젊은이들을 많이 등장시킨 작품이란 점에서 일제의 눈을 더욱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면 이런 서사 기법이 한국소설 창작 기법의 영역을 넓히는 데 한몫을 할 수도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이야기 없는 이야기 기법을 통해 일체의 현실 비판적인 작품 창작이 금지된 1940년대 초기의 탈출구를 모색한 것이 되지만 평가는 엇갈린다.(182)

우선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지식 청년의 고뇌와 갈등이 읽는 이의 마음이 답답할 정도로 짙게 깔려 있다.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정적(靜的)인 분위기는 오히려 암울한 그 시대를 드러내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185)

무릇 예술이란 궁극에까지 추구해 가는 길이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허무이다. 허무의 선언이다. 이 허무를 인간이 인정 아니할 수 없다. 허무라느 사실을 인정하였을 때 새로운 창조보다 레디메이드를 수긍(首肯)한다.(구연식, 󰡔��한국시의 고현학적 연구󰡕�� 시문학사, 1979, 76쪽-각주235) 허무에 대한 이러한 자각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189)이 된다.(190)

절망과 허무의식은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된 모티브다. 그런 점 때문에 이 작품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암울함과 답답함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시대의 아픈 실상을 샅샅이 말해준다. 기주는 협화 이념이 빚어낸 괴로운 현실을 탈주하고 싶다.(190)

끝내 자살로 생(生)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당시 젊은이의 고뇌는 이해가 되지만 지나치게 감상적(感傷的)으로 흐르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물론 이것은 그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작가의 입장을 고려하면 이해가 된다. 즉, 일제가 내세우는 협화 이념은 그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고 있으며 작품 속 인물들은 그것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학고 「제화」는 당시 젊은이들의 시대 대응 자세와 내면의 심리를 상당히 깊이 있게 처리하고 있고 또 다양한 성향이 드러나 있기도 하여 개척소설 중에서는 가장 현대소설과 가깝게 받아들여진다.(196)

협화가 참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려면 협화의 대상이 되는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 시대 협화 이념은 오직 일제에 의해 만들어졌고 따라서 일제가 다른 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이 몇 편의 개척소설을 통해 드러난다.(197)

조선족이 몽고족을 계몽시킨다는 내용의 「초원」은 일제의 만주국 독점야욕을 폭로하며 협화라는 명목 아래 펼쳐지는 일제 만주 개척 사업의 실상을 드러내 보인다. 초원은 오직 일제의 개발 대상일 뿐이다.

「목축기」를 보면 개척민 부락을 세우기 위해서 필수적인 두 가지 조건이 나온다. 감자 사료 등을 얻기 위해 농민을 입식(入植)시키고 현 당국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개척민이 잘 살 수 있는 땅을 만들기 위해서 일제의 이런 통제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일제 협화 선전이 스스로 모순을 보이고 있음을 알게 한다.

김동인(金東仁)이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나오는 주인공에 대해 과도기의 이 청년이 받은 불안과 공포의 번민에 몹시 불안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제화」의 주인공을 통해서도 비슷한 감정을 맛보게 된다. 만주 개척지는 조선 젊은이들에게 아무 꿈도 희망도 없는 암흑의 땅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일제의 협화 이념에 휘둘리는 조선인의 괴로움과 성가심으로 형상화되고 있으며 나아가 조선인 스스로도 혼란스러움에 빠지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197)


4. 교화(敎化) 정책의 이중성


일제는 조선인을 교화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일제의 국책에 저해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끈덕진 회유와 압력을 넣었다. 겉으로는 무지한 조선 민중을 깨우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 정책은 조선인의 의식을 철저히 바꿔 놓으려는 술수에 지나지 않았다.(198)

이런 사실을 알아챈 작가들은 일제의 이중성을 포로하는 등 교화 정책에 반발하였다.

여기 해당하는 작품은 현경준(玄卿駿)의 「유맹(流氓)」∙박영준(朴榮濬)의 「밀림(密林)의 여인(女人)」 등이 있다.

이 소설들의 주인공은 일제가 교화를 내세워 회유하고 협박하는 시대(198)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당면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당시 세계적인 사조(思潮)나 분위기가 이들 소설 속 인물들처럼 인간이 비애와 고뇌에 시달리는 추세에 있었다는 점도 작품 전반적인 경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더욱이 그런 중에도 특히 우리나라는 간악하고 치밀한 일제의 이중적(二重的)인 교화 정책에 시달리는 처지였으니 이 일련의 개척소설들은 그런 현실을 그려내는 몫을 잘 해내고 있다.(199)


1) 현경준 「유맹(流氓)」


「유맹」은 우선 아편 중독자의 갱생(更生)이라는 퍽 특이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과 주의를 끌 만한 중편소설이다. 발표 지면도 다양하여 처음에는 <인문평론(人文評論)>(1940.7~8)에 실리고 그 뒤 󰡔��만선일보󰡕��에 게재되었다가 다시 「마음의 금선(琴線)」이란 제목을 달고 단행본에 수록(1943.12)되었다.

이렇게 소재로나 여러 발표 지면으로나 특이한 이 소설은 보도소(輔導所)가 있는 폐쇄된 수용(收容) 부락을 중심 무대로 그 곳에 강제 수용된 사람들의 애환과 갈등, 그리고 황폐한 인간성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199)

보도소장의 사명감에 넘치는 압박과 회유에도 마약 중독자, 사기범, 도박꾼 같은 폐인들은 좀체 마음을 돌려 갱생의 길을 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일제의 교화라는 것이 허위와 위악에 찬 것임을 상징한다.(199)

특히 「유맹」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착, 학대와 불신 등을 바탕으로 하여 훌륭한 서사적 세계를 창조해 내고 있는 소설인데 다만 그 형식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통계 자료를 지나칠 정도로 길게 늘어놓고 있다든지 보도소장의 일장 연설을 지루할 만큼 장문(長文)으로 삽입시켜 놓았다든지 주제에 집착한 나머지 문학성이 감소되었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약점은 다음에서 볼 수 있듯 보고문(報告文)의 성격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자의 말-이것은(이하 략-인용자)


「유맹」의 맨 앞머리에 들어 있는 작자의 말이다. 현경준은 이 글을 소설이라기보다 ‘한개의 보고문(報告文)에 불과(不過)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제2, 제3의 보고문을 쓸 것이라고 밝힌다. 그것은 이 부락-보도소(輔導所)의 ‘소생 상황(蘇生狀況)을 보고(報告)’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여기에 기록(記錄)된것은 지금(至今)으로부터 3년 전(三年前)의 상황(狀況)이라는것을말하’고 있어 작자의 집필 의도를 엿보게 한다. 즉, 현경준은 「유맹」을 소설이 아닌 보고문(報告文)인 것으로 인식시키고 싶어한(201)다. 그래서 훨씬 더 생동감 나는 효과를 얻으려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유맹」이 개척소설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더 확실해진다.(202)

「유맹」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우선 󰡔��만선일보󰡕��(1941. 3. 20)에 나오는 “국책 협력(國策協力)의 목적(目的)으로서 금연소설(禁煙小說)과 금연실화(禁煙實話) 금연체험기(禁煙體驗記)를 모집(募集)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어 볼 필요가 있다. 만주국(滿洲國)이 세워진 후 인간 자원을 재활용할 목적으로 만든 보도소(輔導所)에 있는 아편 중독자나 밀수꾼들을 등장시킨 이 소설은 앞서 󰡔��만선일보󰡕��에서 밝힌 모집 요항과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202)

인물들이 보이는 말과 행동은 작가의 의도를 잘 담아낸다. 보도소장의 설교를 무시하는 보도소 피보도자(被輔導者)들이 이해하기 힘든 나쁜 짓거리와 패륜은 작가가 감추어 둔 조선 민중의 일제에 대한 역설적 항거와 고뇌로 보인다. 이 작품 역시 개척소설이라는 계열로 놓고 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와 닿는 느낌은 대단한 차이로 나타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난해하고 논자들의 평가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202)

작품의 앞부분에서부터 탈주 사건을 다루어 보도소 안의 반목과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그런데 이 소설은 도대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처음부터 난해한 양상을 띤다. 이것은 일제의 검열을 피해 가려는 작가의 수완으로 판단된다.(203)

일제의 국책에 의해 세워진 보도소가 어떤 곳인가를 보도소장의 입을 통해 밝혀 보이고 있는데 자못 역설적이고 풍자적이다.(205)

「유맹」 또한 분명히 어떤 질서 체계가 잡히는 게 사실이다. 단지 개척소설이라는 양식을 빌려 말하자니 약간 모호한 기법이 불가피했던 것이다.(208)

기를 쓰고 계도하려는 보도소장에 의해서는 조금도 마음이 변하지 않던 명우가 순녀 때문에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싶고 밤새도록 울고 싶은 인간적인 생각을 한다. 즉, 허울 좋은 일제 교육의 맹점을 비꼬는 것이다.(210)

사회가 비도덕적일 때 그 비도덕적 사회의 구성원이 아무리 도덕적 지향의지를 가지도록 강요받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일제를 대변하는 보도소장이 내세우는 그릇된 가치에 동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은 당연하다.(211)

그리고 보도소장과 단장이 그렇게 계도하려는 아편 중독자들은 오히려 대부배급 때문에 더욱 아편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일제의 계도니 교화니 하는 게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부분이다. 그리하여 피보도자들의 탈주는 끊이지 않는다.(212)

결국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방황하고 갈등하는 조선인의 모습이 보도소라는 특이한 배경과 탈주라는 행위를 통해 잘 표출된다. 세상에 대한 이들의 원망은 갈수록 그 골이 깊어지기만 한다.(213)

일제의 조선인 자원 활용 획책은 여기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규선이 끝까지 아편 중독자로 남음으로써 보도소의 역할과 임무는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제는 결국 자신들의 몫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타민족인 조선인의 처지와 형편을 도외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말 것임을 이 작품은 경고한다. 즉, 피보다자들이 죽음과 절망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런 속에도 작가는 일제와 조선의 동반 추락을 암시하는 것이다.(214)

퍽 난해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소설은 겉으로 나타난 의미와 속에 감춰진 의미가 서로 다른 개척소설이라는 잣대로 비춰보면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텍스트는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한 것을 채워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은 독자”(유재천, 「시와 언어」, 󰡔��삶과 문학󰡕��, 우석, 1998, 131쪽-각주 271)의 몫이다. 개척소설이 일제의 검열과 통제 때문에 완전히 표현하지 못한 의미까지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215)

「유맹」은 열악한 환경 속에 감금당한 채 똑똑한 직업도 없이 살아가는 피보도자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보도소의 열악한 환경과 보도소장의 거짓된 교화를 폭로하여 당시 일제의 횡포와 억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데 「유맹」의 감춰진 주제가 있다.(216)

그리고 「유맹」에서는 개척소설이 지니는 독특한 서사 특징을 볼 수 있는데 작품의 표면적 의미와 내면적 의미의 뒤바뀜이 그것이다.

즉, 겉으로 볼 때 보도소장과 단장은 피보도자들을 계도(啓導)하기 위해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반면에 계도의 대상인 피보도자들은 철저히 부정적인 모습들로 부각된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피보도자들의 행동이나 대화는 보도소장과 단장의 위악(僞惡)과 허위를 알게 한다. 일제의 비열한 회유책과 강제성을 느낄 수 있다. 도리어 피보도자들이 계도자이고 보도소장이나 단장은 계도되어야 할 대상으로 변한다.

곧 「유맹」은 보도소라는 아주 이색적(異色的)인 제재를 취하여 일제 당시의 모순과 비리에 대한 항거를 역설적으로 처리해 보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이 난해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이처럼 낯선 배경이나 인물, 그리고 서사의 이중구조 등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암담하기 짝이 없는 시대 현실을 아편 중독자 부락을 중심으로 표출시켜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신념이다.(216)


2) 박영준 「밀림(密林)의 여인(女人)」


「밀림의 여인」은 김순이라는 처녀가 공산비(共産匪) 대원으로 10여 년 동안 녹립당 생활을 하던 중 일본군 토벌대에 사로잡혀 산 속에서 나와 ‘나’와 ‘나’의 가족이 베푸는 희생과 교화를 받아 사회로 환원된다는 내용이다.(217)

이 소설은 ‘갱생’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앞에서 살펴본 현경준의 「유맹」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다만 한 가정이라는 좁은 공간 속에서 역시 한 개인의 갱생을 다루는 점이 한 부락을 공간 무대로 하여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맹」과 차이가 있다.(217)

어쨌든 정상적인 사회인이 되게 한다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일제가 획책하는 만주국 이념이 강조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지만 김순이의 비현실(217)적 신념과 의지를 바탕으로 그것을 지양함으로써 오히려 당시 조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반성하게 하는 효과를 얻어낸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김순이가 산(山) 처녀로서 좀 더 원시적이고 활달한 면모를 띠었으면 하는 것이지만 교화라는 정치적 목적이 걸림돌이 되고 있음은 어쩔 수 없는 개척소설의 한계이다.(218)

「밀림의 여인」은 반일(反日) 유격대원(遊擊隊員)의 전향(轉向)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를 뿐 아니라 친일적인 색채가 다소 엿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주인공 ‘나’의 시선보다 유격대원인 ‘김순이’의 시선을 포착하여 살펴보면 그런 느낌은 훨씬 줄어든다. 겉으로는 일제에 순응하는 척 하면서 내면적으로는 조선 민중의 고뇌를 다루고 있는 것이 개척소설이므로 이 작품 또한 행간(行間)을 유의 깊게 읽어야 한다.(218)

이 소설은 ‘나’의 직업이 그저 만주국 관리라고만 되어 있을 뿐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상태로 밀림의 여인인 김순이를 계도하고 교화한다는 점에서 일제에 대해 작가가 취하는 태도가 다른 개척소설에 비하면 상당히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나’를 사이에 둔 나의 처와 김순이가 가질 수 있는 감정도 작품 속에 흐릿하게 녹아 있을 뿐이다.(218)

자유란 외적 강제(强制) 또는 구속을 받지 않는 자립적(自立的) 상태, 소극적으로 외적 구속에서 독립된 것, 적극적으로 자기의 본성(本性)에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는 필연(必然)과 모순되지 않으며 자연충동적(自然衝動的) 자의(恣意)와는 구별된다.

그러나 일제는 자신들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조선인들의 자유를 빼앗은 상태에서 회유하고 협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순이는 아무래도 이런 사회에서는 살 수가 없어 죽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당시 사회가 얼마나 살기 어려웠는가를 고발하는 대목이다.(222)

김순이는 ‘나사람 업는데가 초치안허요!’라면서 흥분한다. 여기 김순이가 말하는 나쁜 사람 없는 데는 곧 일제가 없는 세상이다. 김순이는 ‘아무래도 이세상에선 몰살것’ 같다면서 일제로부터의 자유를(223) 염원한다.(224)

그녀는 비록 공산비에게 잡혀 산으로 가긴 했지만 지금보다 훨씬 그 생활이 행복했다는 것이니 이것은 곧 일제의 지배를 받는 이 세상에 대한 반발과 증오의 완곡한 표현이다.(225)

뒤이어 나오는 ‘나’의 한바탕 연설은 완전히 사상(思想)교육이다. 그들(공산비)의 사상은 ‘인류전체의 행복을 위한 사상은 못될것’이고 ‘게급을 업시’하는 것은 ‘결국 한게급만을 만든다는 것이오 라서 나머지 게급의 행복은 는다는것이’니 좋지 못한 것이라고 설득시키려 든다.

일제와 공산비라는 두 개의 축을 세워 두고 조선 여자를 끌고 당기는(226)식의 작품 처리 방식은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유아적 취향처럼 느껴진다. 거의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상대를 교화시키려는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일제의 끈질기고 가증스러운 행위를 고발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단순한 구성 방식이 더욱 그러하다.(227)

결국 ‘나’는 그녀를 이 사회에 붙들어 두기 위해 결혼 이야기까지 꺼내게 된다. 그런데 결혼을 시키려는 ‘나’의 설득에 대해 순이가  보이는 거부의 태도는 아주 완강하다.(228)

특히 ‘그건 해서 무엇해요?’라는 김순이의 말은 이 사회의 모든 제도나 장치에 대한 거부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일제가 강요하는 대로 하지 않으(228)면 왜 살지 못하느냐는 반발심을 겉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종으로 만든다는 것을 통해 ‘남자=일제, 여자=조선’의 등식을 낳을 수 있다. 말하자면 여기서 결혼은 곧 일제에 의한 조선인의 속박이요 만행(蠻行)으로 해석되어진다. 결혼은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경하겠다는 전제하에서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김순이의 생각으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결혼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는 종속 관계로서 그 결말이 불행할 것은 자명하다.(229)

김순이의 반박에 대해 ‘나’는 ‘서루 사랑한다면 종이란 말을 쓰지 않게 된다며 계속 설득의 고삐를 늦추려 들지 않고 있다. 이것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화합을 권유하는 말이다.(229)

그리고 김순이의 감정은 극(極)에 이른다. 눈이 번쩍이고 그 눈에는 ‘거운 덩이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런 김순이의 얼굴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힘든 현실 앞에서 강한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조선인의 표상(表象)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향(轉向)에 따른 인간적 치욕이나 굴욕감이 그의 전 생애에 걸쳐 관련된다고 볼 때, 그러한 선택은 또 다른 이념으로써 충분히 보상할 만한 내적 충실성을 확보한 후라야만 가능한 행위(신동욱, 󰡔��1930년대 한국소설연구󰡕��, 한샘, 1994, 230쪽-각주291)임을 고려해야 한다.(230)

‘나’ㄱ 그렇게도 열심히 교화하고 주입하려 했던 모든 것은 결국 허위요 위악임이 드러나고 따라서 김순이 앞에서 허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일제의 회유책이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230)

답답한 심정응ㄹ 눈물로만 씻어내고 있는 김순이에게 그토록 열성적인 자세를 보이던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결국 ‘나’는 김순이를 ‘바라보는것 외에 아모것도 못해준 방관자에 지내지 못한 사람’임을 깨닫는다. ‘다만 아프로 눈물을 흘리지안코 사려주엇스면 하고 나혼자 속으로 바랄이’다. ‘나’의 김순이에 대한 시혜(施惠)는 사랑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김순이의 아버지는 그녀가 공산비로 들어가게 된 앞의 대목에서 밝히고 있듯이 첩을 두고 있었던 이른바 부르조아였다. 그런 부모인 탓에 앞으로 김순이의 생활이 어떠할지 짐작할 수 없다. 사실 김순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기차는 속력을 내며 순이의 새생활을 재촉하는드시 다름질첫다.’는 결말은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한가닥 희망에의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이처럼 당시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다른 계열의 작품들이 일제에 순응하거나 좌절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끝까지 의지를 반영시키고 있다.(231)

「밀림의 여인」에 나오는 중심인물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이념방식을 취하고 있어 이야기를 흥미롭게 한다. 우선 ‘나’의 처는 일제가 조선인의 인력을 활용할 목적으로 주창하는 조선인 사회 수용 정책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순이는 아예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더 나아가 반발하는 양상을 띤다. 그녀의 입을 통해 일제의 교화와 책동에 반발하는 말들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이 일제의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이다.

이처럼 ‘나’는 친일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오로지 사회적 인간형을 지향한다. 그 반면에 김순이는 반일의 표상으로 순수한 인간형을 바라고 있다.(231)

‘나’의 처는 같은 여자이면서 김순이와는 다르게 남자에게 순응하는 인간형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중심인물은 어디까지나 김순이와 ‘나’이고 ‘나’의 아내는 부수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사회주의 사상에 무의식적으로 젖어 있으면서 반문화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밀림의 처녀 김순이, 그리고 지식인 계급으로 문화적인 경향을 띠면서 심지어 만주국 관리 노릇까지 하는 현실에 부응하는 ‘나’, 이렇게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은 친일과 반일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은 시혜(施惠)와 사랑의 혼동을 통한 시대 풍자와 새로운 인간형을 탐색하는 과정이 일제의 교화 정책이라는 이중성과 맞물려 교묘히 드러나고 있는 소설로 평가된다.(232)


현경준의 「유맹」은 과장된 선전 문구와 세세한 통계 수치를 글 속에 삽입하는 등 문학성이 약간 덜어지기는 하지만 특색 있는 소재(素材)로 교화의 이중성을 드러내 보인다. 일제의 계도(啓導)에 대한 매점을 지적한다. 계도자와 피계도자가 뒤바뀐 듯한 특이한 이야기 구조가 눈을 끄는 문제작이다.

일제의 조선 인력 자원 활용 정책에 대한 비리와 부정을 보도소(輔導所)에 강제 수용된 인물들의 반항적∙도전적∙자조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당시 일제가 혈안이 되어 수탈하려는 조선 인력 자원의 실태를 폭로한다.(232)

박영준의 「밀림의 여인」은 조선인을 활용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사회로 환원시키려는 일제의 간악한 면을 엿볼 수 있는 교화소설이다. 공산비(共産匪)를 매도하고 일본군 토벌대와 일제에 영합하는 사람의 끈덕진 활약상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일제의 이중적인 얼굴을 보여준다.(232)

결국 일제가 주창하는 교화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화(感化)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회유와 강압으로써 식민 민족을 일제의 희생물로 이용하려는 저의(底意)가 숨겨진 악의(惡意)의 교도(敎導)에 다름 아니다.(233)


Ⅳ. 개척소설의 소설사적 의의


세계 어느 나라 문학을 돌아봐도 한국 개척소설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어느 나라도 한국의 개척소설이 태동(胎動)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같은 길을 걸어온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라는 일찍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었던 특수한 시대적 상황이 낳은 소설의 유형이며 그것이 창작된 기간도 불과 5년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작품이 1940년대 전반기에 발표되었을 뿐 그 이전에는 없었고 그 이후에는 해방이라는 역사적 상황변화로 인해 단절되어 버렸던 것이다.

개척소설이 한국 문학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는 우리 작가들이 더 이상 눈치를 보아야 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척소설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일체의 현실 비판적인 작품 창작이 불가능해지자 그 대안(代案)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일제가 물러남과 동시에 함께 사라지게 된 것은 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몇몇 의식 있는 작가들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개척소설을 그냥 일제의 부산물(副産物)(234)정도로 소홀히 대할 일은 아니다. 모든 문필 활동이 금지된 암흑기에 붓을 꺾지 않고 무학을 통해 당대 현실의 모순 요소를 타개했다고 할 수 있다.(235)

개척소설은 다른 어떤 유형의 소설보다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개척소설이 형성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어느 시대나 어떤 공간보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 있었고 그런 만큼 작가들의 의식이나 창작 기법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척소설에 대한 자료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다.(240)

개척소설은 일제의 국책 홍보와 조선인 작가의 민족의식이 교묘하게 맞물려서 나온 세계 어느 소설사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소설 양식이(240)다. 특히 대부분의 개척소설이 일제 어용지로 알려져 있는 󰡔��만선일보󰡕��를 통해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개척소설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대단히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점이 개척소설이라는 전례 없는 특이한 유형을 낳게 한 가장 근본적인 밑바탕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척소설이 지닌 핵심적 가치와 의미는 일제에 의해 모든 현실 비판적 창작 활동이 금지된 조건 아래에서 현상을 넘어 민족의 삶을 통찰∙음미∙반추하여 작품으로 형상화한 소산물이라는 것이다.(241)

1940년대 전반기에 나온 작품들에 대해(한국문학의 공백기라는 이 시기를 메울 목적과 의욕에서) 지나친 기대와 높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반발을 막을 수 있는 자료로 개척소설을 들 수 있다.

개척소설이 집중적으로 발표되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우리 문화의 암흑기로 인식돼 왔다. 게다가 확실한 검증(檢證)을 거치지 않은 채로 우리의 많은 유산(遺産)들이 친일(親日)이라는 올가미에 씌어져 평가 절하(切下)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 중 한 가지가 개척소설이다. 특히 국내의 이름 있는 작가들도 작품 발표를 하지 못하게 된 그 상황 속에서 비록 크게 문명(文名)을 날리지는 못하던 작가들이지만 조선 이주민(移住民)의 삶이 곳곳에 밴 척박한 만주를 배경으로 하여 우리글로 쓴 것이 개척소설이다. 따라서 혹 그 작품성 면이나 소재(素材)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세세히 검토해 보아야 마땅하다. 특히 소재만을 놓고 볼 때는 분명히 일제의 국책(國策)에 호응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 또한 개척소설이라는 잣대로 비춰보면 이해가 가능하다.(241)

한국 문단(文壇)에서 거의 정설(定說)로 굳어 버린 우리 문학상의 공백 상태라는 1940년대 전반기를 가장 많이 담아내고 있는 개척소설은 단절된 한민족 문학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시대사적인 편차(偏差)를 보면서 일제의 계산과 그런 역사가 빚어낸 상황 안에서 우리 혼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눈여겨보고 민족사적인 연구 가치를 찾는데 적절한 텍스트가 개척소설이다.

개척소설의 주인공은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은 기존의 소설에서는 보기 힘든 양상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모습의 주인공은 현대소설에 나오는 부정적 인물형과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르다. 겉으로는 부정적인 면모를 띠지만 속으로 보면 오히려 긍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개척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점이다.

그런가 하면, 개척소설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체는 주인공이 아니라 부수적인 인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작품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미 밝힌 바 있지만 이것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작가의 수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개척소설이 가지는 특장(特長)으로 평가할 만하다.(242)


1940년 초 일제의 암흑정치 아래서 일체의 현실 비판적인 작품 창작이 금지되자 그 탈출구로 나오게 된 개척소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부분이 일제의 어용지(御用紙)로 알려져 있는 󰡔��만선일보(滿鮮日報)󰡕��를 통해 발표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혹은 작품 분석을 통해 밝힐 수 있었다. 즉, 소설 곳곳에는 일제의 국책을 홍보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이면(裡面)에는 또 이런 일제의 횡포를 고발하고 저항하는 요소가 숨겨져 있다.(242)


개척소설은 친일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 소재와 조선 민중의 고뇌를 드러내기 위한 작가정신이 교묘하게 뒤섞인 이중성(二重性)을 가진 소설이다. 이것은 이 유형의 소설이 당시의 아주 묘한 시대 상황의 바탕 위에서 씌어진 작품이란 점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개척소설의 한계이자 미덕이다.

개척소설을 보는 두 가지 입장, 즉 친일이냐 배일(排日)이냐 하는 상반된 주장 중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가에 따라 개척소설의 의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은 후자에 높은 비중을 둔다. 일제의 엄격한 통제 밑에서도 그만큼 할 소리를 하고 있는 개척소설은 우리가 단순히 작품을 통해서 받게 디는 느낌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내포(內包)한다.

개척소설의 값을 온당하게 매기는 일은 다른 유형의 소설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늘날 시대 여건(與件)으로 볼 것이 아니라 개척소설이 씌어졌던 그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살펴볼 때라야만 가능하다.(243)


한국문학의 창작기법이 단조롭다는 지적에 대해 개척소설이 지닌 독특한 서술 방식-가령, 겉으로는 일제에 편승(便乘)하면서 속으로는 조선 민중의 식미지적 고뇌를 다루었다는 등의-을 보다 심화 발전시켜 한국문학의 새로운 창작기법 하나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작가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약간의 제약(정치 사회적이든 윤리 도덕적이든)이 따르기 마련인데 개척소설의 이 같은 창(243)작기법을 변모 발전시켜 잘 활용한다면 훨씬 다채롭고 자유로운 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244)

개척소설은 공통 분모(分母)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시 몇 가지로 하위분류가 가능하고 그렇게 갈라진 개별 작품들도 다시 나름대로의 독특한 양상을 이루고 있어 한민족 소설문학의 제재(題材)영역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국내 작가들뿐만 아니라 현재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문학에 대한 안목과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소설 속의 대표적인 인물이 농민이라는 사실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일제 당시 우리 민족의 8할을 차지하고 있던 계층이 농민이었다. 이런 농민을 작중 중심인물로 내세운 개척소설은 일제하에서의 조선인 전체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따라서 창작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그 시기에 개척소설은 그 얼마 되지 않는 작품들만으로도 한민족의 삶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일을 해냈다.

암흑기라고 불리는 1940년대 전반기는 문학적 공백기가 아니다. 개척소설이 그 자리를 매우고 있다. 국내는 아니지만 만주에서 우리 민족의 곤궁한 삶을 그려낸 개척소설은 30년대 문학적 전통을 이어받은 소중한 문학적 자산이다.(244)


Ⅴ. 결론


이 글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개척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여 따로 갈래지어도 무리는 없는가, 1940년 초 일제의 암흑정치로 말미암아 현실 비판적인 작품 활동이 철저히 금지된 상황 속에서 개척소설이 과연 어떻게 탈출구를 찾고 있는가, 혹시라도 개척소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적인 면보다도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런 것에 대한 해명을 분명히 해줌으로써 앞으로 계속해서 개척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이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등등이다.(245)

동양을 지배하기 위해 만주국(滿洲國)을 건립하여 오족협화(五族協和)를 주창하는 등 온갖 술수를 서슴지 않던 일제의 국책(國策)과 개척소설의 소(245)재(素材)를 비교해 볼 때 너무나 용의주도한 일제의 계산속을 알 수 있었다.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한 개척과 생산에 대한 일제의 획책이 그것이다. 개척소설의 소재는 분명히 일제의 정책에 부응하는 것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상 텍스트를 꼼꼼히 분석해 본 결과 개척소설의 유형 속하는 작품을 쓴 작가들의 문학적 역량뿐만 아니라 조선인의 자의식(自意識)을 엿볼 수 있었다. 즉, 대부분의 개척소설은 겉으로는 일제에 영합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지만 작품 내적인 의도는 분명히 다르다.

개척소설에는 개척지의 고난과 궁핍상이 있고 일제가 선동하는 낙토 건설의 허구성 및 협화 정책의 모순이 폭로되며 이중구조를 통한 교화소설의 맹점이 드러난다. 따라서 분명히 친일소설과는 구별된다. 일제의 혹독한 검열과 통제 밑에서도 대개의 개척소설은 작가의 깨어있는 얼이 작품 깊은 안쪽에 숨 쉬고 있다.

이 일련(一連)의 소설들은 30년대 문학적 전통을 계승한 문학적 자산(資産)으로서 한민족 문학사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40년대 전반기의 공백을 너끈히 메울 수 있는 값어치를 가진다. 그런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개척소설의 계열에 드는 작품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절실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누락되었을 수도 있는 작품들을 빠짐없이 발굴하여 정당한 값을 매겨야 하리라 본다. 물론 그러기에 앞서 이미 개척소설로 갈래지어진 작품들에 대한 보다 치밀한 총체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 개척소설들도 그 각각에 대한 평가가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제 조건을 두고 고찰해 보아야 함이 당연하다. 이 글이 텍스트로 삼은 개척소설도 친일 요소와 반일 감정 등을 놓고 저울질해 볼 때 조금씩 그 정도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다 같은 개척소설이지만 천편일률적인(246)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령 󰡔��신개지󰡕��∙「새벽」∙「추석」∙「암야」∙「원각촌」∙제화는 민족의식이 강한 쪽이며, 「광산촌」∙「목축기」∙「밀림의 여인」∙「초원」∙「유맹」은 일제 국책을 어느 정도 묵인하는 편이고, 친일소설로 분류한 「검은 흙과 흰 얼굴」을 비롯한 5편은 철저히 일제에 영합하는 경향을 보였다.(247)

이 글이 다루는 시기에 일제와 우리 문학은 분명히 공생(共生)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논의를 통해 밝혀졌다. 그렇다고 투쟁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이 옳다. 즉, 일제는 홍보용으로서, 우리 작가들은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이 개척소설이라는 전례(前例) 없는 형식을 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이 일련의 소설들은 창작 기법이나 소재 면에서나 문학적 패러다임에서나 대단히 특이했고,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자적인 서사 특징을 이루었다.(247)

그리고 좀 더 적합한 이름을 새로 붙여도 좋겠지만 이미 불리어 왔던 대로 개척소설이라고 해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 본다. 일제와 우리 민족이 ‘개척’이나 ‘생산’을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에 피해의식이나 자괴감에서 굳이 일제가 본 측면에서의 의미만을 떠올릴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개척과 생산은 물질적인 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247)

개척소설은 친일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 소재와 조선 민중 고뇌를 드러내기 위한 작가정신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이중성(二重性)을 가진 소설이다. 즉,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나라가 가장 힘들었던 시대의 감추어진 실상(實狀)과 겨레얼이 소롯이 담겨 있는 문학작품이다. 그 속에서 옥석(玉石)을 가려내는 일은 밝고 냉철한 분석 능력과 미래 지향적인 역사관을 가진 문학 연구자와 독자들의 몫으로 넘겨질 수밖에 없다.(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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