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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애경, 해방 전 간도 체험소설의 공간수용 양상 연구, 한림대 박사논문, 2004
간도는 간도 문학 작가의 개인적 체험의(1쪽) 공간이자 민족 이주의 공간이었던 만큼, 일제 강점기라는 민족 수난의 시대를 겪어야 했던 작가가 문학 공간으로 수용할 때, 그것은 작가 의식이나 작가의 현실 대응 방식과 관련을 맺으며 나아가 작품의 서사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 개별적 작가의 공간 인식을 통해서 생산된 간도 문학에서의 공간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일제 강점기 한국 문학의 공간이 확대되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우리 문학 속에 수용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문학 작품을 통해 본 간도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가졌던 공간이었는지를 알아보는 의미가 있다.(2쪽)
작가의 간도 체험, 혹은 만주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간도 문학’을 살펴 봄에 있어서는 먼저 만주에 대한 지리적, 역사적, 민족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조선인의 만주 이주에 따른 고난과 정착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간도 문학은 우리 민족의 만주 이주의 역사와 밀착되어 형성된 문학이기 때문이다.(2쪽)
재만조선인 사회의 형성과 확대는 곧 재만조선인 문단이 자생할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또 점차 문예활동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고 발표지면이 축소되는 등, 민족 말살정책이 시행되어 가던 조선의 상황에 비하면, 표면적으로라도 조선인을 만주국의 5개 민족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던 간도는 문인들의 문예 활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5쪽)
특히 해방전 간도문학은 조선족 문학의 근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과 조선족 문학의 문학사적 공유물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간 주제와 소재의 특이성으로 한국 문학의 지엽적 성과물로만 여겨졌던 간도 문학의 가치와 비중이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7쪽)
이들 작가의 출생 연도는 각각 1901년, 1906년,(8쪽) 1911년으로 5년 정도씩 간격이 있고, 간도 체류 기간에 최서해 5년, 강경애 8년, 안수길 13년으로 차츰 길어진다. 따라서 이 세 작가의 체험은 시기적으로 각각 3․운동 직후의 1920년대, 간도 5․30폭동과 만주국 수립의 1930년대 전반, 그리고 중․일 전쟁기인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반의 것이며 당연히 그곳의 정세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탈출기」로 대표되는 궁핍의 간도, 「소금」으로 대표되는 반만항일무장투쟁 기지로서의 간도, 「목축기」로 대표되는 전시 생산 기지로서의 간도이다.(이상경, 「간도체험의 정신사」, 작가연구 제2호, 새미, 1996,p.11-인용자 재인용) 간도의 정세와 이주 조선인의 현실을 작품 속에 그려 놓은 이들 세 작가의 작품에서는 작가별 개성과 아울러 해방 전 간도 문학의 초기․중기․말기의 시대별 특성을 볼 수 있으며, 또 간도 문학, 혹은 재만 문학이 해방 후 중국 조선족 문학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세 작가는 간도에 살고 있던 조선인의 고난에 찬 삶을 문학작품 속에 형상화함으로써 한국문학의 문학적 공간을 북방으로까지 넓혀 놓았고, 간도라는 이국의 공간을 익숙하고 친밀한 곳으로 장소화시킴으로써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이들의 문학은 하나의 공통분모를 이룬다. 또 이들은 공히 일정 기간 간도에 살다가 해방전에 다시 한반도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간도 체험 작가로 묶어 고찰하기에 적당하다. 그것은 해방 이후 계속해서 간도에 남아 ‘중국 조선족 문단」을 이끌었던 다른 재만 작가들과 크게 변별되는 요소이기도 하다.(9쪽)
안수길의 초기 문학에 대한 그간의 평가를 정리해 보면, 대략적으로 ‘빈곤문학’ 이나 ‘농민문학’, 또는 ‘이민문학’으로 보는 긍정적인 관점과 만주국 이념에 충실한 부일 혹은 친일문학의 부정적인 관점으로 나뉘어진다. 전자의 경우는 안수길의(17쪽) 초기 소설이 이주민의 고난을 통해 한민족의 만주 개척사를 증언하는 성격을 가지며 만주국 정책과 부합하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비해, 후자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안수길이 작품을 통해 민족의 독립이나 적극적 형태의 항일을 모색하기보다는 만주국 정책에 부응함으로써 비민족적인 작품 세계를 갖고 말았다고 비판한다.(18쪽)
한편, 이들 작가의 개별 연구에 비하면 간도 문학의 전반적인 연구는 그다지 많이 이루어진 편이 아니다. 주로 일제 강점기 농민들의 고향 떠남과 이주를 다룬 작품들을 대상으로 ‘이민문학’(오양호, 「이민문학」1, 영남어문학 3집, 1976-인용자 주), ‘실향소설’(이정숙, 일제하 실향소설 연구, 서울여대 박사논문, 1989-인용자 주), ‘유이민소설’(민현기「한국 유이민소설 연구」, 어문학 51집, 1990-인용자 주), ‘유민소설’(이정은, 「한국의 유민소설 연구」, 영남대 박사논문, 1995-인용자 주), 혹은 ‘이향소설’(조구호, 일제강점기 이향소설 연구, 경상대 박사논문, 1999-인용자 주)이라는 명칭 아래에서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로 궁핍해진 농촌과 이민의 문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연구가 수해오디었다.(18쪽)
한편 골덴스타인은 공간의 네 가지(다섯가지?-인용자) 기능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공간 묘사는 허구의 이야기를 진실임직한 세계에 위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둘째로 다른 많은 장소들 중에서 특별히 선정된 그 소설 특유의 공간은 이야기의 극적 효과 창출에 기여한다. 셋째, 공간은 성격부여의 기능을 갖는다. 환경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며 인간을 형성한다는 생각에서 사실주의, 자연주의 소설에서는 배경이 바로 그 곳에 사는 인물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여기서 공간은 상징적 기능을 갖는다. 넷째, 공간에는 행동, 플롯이 전개되도록 하는 기능도 한다. 다섯째, 더 나아가 공간은 사건이 전개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다섯째, 더 나아가 공간은 사건이 전개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박혜영, 「문학과 공간: 이론적 접근I」, 덕성여대논문집 제25집, 1996, pp.129-130-인용자 재인용)(26쪽)
간도 문학에 있어서 공간의 문제는 대단히 독특하고 의미심장한 면모를 갖는다. 고향 떠난 사람들, 즉 이주민을 다룬 작품이 대부분인 만큼, 간도 문학을 여타 문학 작품과 구별하는 가장 큰 요소가 공간적 배경일 것이며, 작가에게나 독자에게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역시 일차적으로는 공간의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우선 새로운 땅을 알아야 하는 일일 것이고 그 다음 정착하고 적응하고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그 땅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거키는 것이 일반적인 이주의 양상이다. 그렇다면 간도 문학에서 낯선 공간 속에서 어떻게 그 공간을 이해하고 의미화 할 것인가의 문제는 작가 의식면에서 다른 어떤 문학적 주제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속한다. 만일 그것이 단지 소재나 배경으로만 머물지 않고 주제를 이끌어 내고 인물들의 행위와 사건들을 주도적으로 발생시킨다면 그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27쪽)
식민지 시대에 있어서 ‘간도’란 외국의 지명이 아니라, 그대로 식민지의 처절한 삶을 보여주는 한 비극적 상징이다.(35쪽)
더 이상 안주할 수 없는 고향을 떠난 조선인들에게 간도는 예전의 고향과 같은 삶의 터전을 그 곳에 새로 일구어 가야 하는 개척의 땅이다. 고향을 떠나 찾아가고자 하는 간도는 희망의 땅이자 이상향으로서 그려진다.(36쪽)
이국의 땅을 떠돌아야 하는 당대 조선인들의 입장은 열려진 공간, 이를 하이데거식 표현을 빌자면 세계 속에 내던져진 존재가 되었다.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장소로서의 고향이 훼손됨으로써 거족적인 고향 상실의 운명이 펼쳐지고 유랑민이 되어 낯선 공간을 방황한다. 그들이 얻은 공간에 대한 자유는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식민지의 궁핍한 상황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다. 미처 이질적인 공간을 마주할 준비가 없어도 낯선 미지의 세계로 떠날 수밖에 없다.(44쪽)
문학에서의 묘사는 일반적인 것보다 기술적이고 의도적인 것이다. 근대문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종류의 묘사는 배경 묘사일 것이다. 최근에는 배경이 인물의 행위와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강하여져서 배경 묘사는 인간 행위에 대한 간접적인 암시 또는 대조 비판이 된다고 보고 있다.(클리언스 브룩스․로버트 펜 워렌, 안동림 역, 소설의 분석, 현암사, 1996, p69-인용자 재인용)(121쪽)
설화와 꿈은 일반적으로 서사적 허구에 사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학적 결함이 될 수도 있는데, 안수길의 경우 그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비유를 위한 소설적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작품 「새벽」에서 작가는 기억 속에 있던 설화를 통해 등장 인물의 심리 상황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예언하는가 하면, 새로운 땅에 깃을 내린 이주민의 심적인 부담과 삶의 괴로움, 비극에 찬 고난의 현실 상황을 비유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 「벼」에서는 조선인의 간도 이주와 정착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설정되고 있다.(128쪽)
“「벼」에서 北間島에 이르는 그의 작품의 기조음을 이루는 만주는 최명익, 정비석의 낭만적 도피처도 아니며, 최서해의 홍염에서처럼 외인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의 장소도 아니다. 그의 만주는 이태준의 농군(1939)에서 모사도니 것과 같은 땅에 깊은 애착과 결부되어 있는 만주이다. 일제의 악랄한 수탈 정책 때문에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나와서, 원주민과의 목숨을 건 투쟁 끝에 쟁취하였고, 계속 원주민들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만주의 땅이 안수길의 정신적 고향“인 것이다.(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 민음사, 1973, p.236-인용자 재인용)(128쪽)
중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는 조선인을 만주 황무지의 개척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주 조선인의 입장에서 보면 만주이주와 정착은 곧 땅에 대한 깊은 애착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일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벼’는 이주 조선인이 낯선 만주 공간을 친숙한 삶의 공간으로 바꾸어 나아가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고 있다. 이러한 역학 관계는 결국 보는 시각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혹은 정반대로 부정적인 방향에서 작품을 해석하게 만든다. 당대의 조선인의 만주 이주가 일제에 의한 ‘정책 이민’이었다는 성격을 문제 삼는다면 시대 상황과 관련하여 작가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재만(133쪽) 조선인 사회의 확대는 부정할 수 없는 당대의 현실이었고 안수길의 경우 그 현실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시대적 상황과 결부하여 그들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함으로써 민족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을 알 수 있다.(134쪽)
[벼]에서 이주민들이 거친 삶을 감수하며 일구어 놓은 만주 땅은 이제 남의 땅이 아니다. 이주민들이 떠나온 고향은 기억 속에서 과거의 한 시점에 고정된 후 반복적인 일상 속에 거듭 재현되어 왔으므로 현재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어떤 상황이 온다 해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136쪽)
안수길의 초기 문학 가운데, 1940년대라는 시대적 정치 상황 변화와 관련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재만 조선인의 고민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작가 의식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장편 북향보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원각촌」이나 「목축기」도 그와 같은 계열의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들은 만주국의 협화정신을 배경으로 낙관적 전망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 본 「새벽」이나 「벼」의 세계와는 확연히 구분된다.(139쪽)
「원각촌」의 주인공 억쇠(이원보)는 작가 안수길이 창조해 낸 개성이 강한 인물이다. 억쇠의 아내 금녀는 간도에서 만주인 지팡살이(농장소작인)하는 아버지의 백 원 빚에 대한 담보였던 것을 억쇠가 대신 갚아 주었으므로 그와 결혼하였다. 만주인의 인신매매 풍습이 소재가 되고있는 점은 「새벽」에서와 같다. 억쇠는 의처증이 있어 아내에 대한 지나친 의심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다. 그는 아내를 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구나 탐을 내는 ‘백 원’짜리 비싼 물건을 품고 있는 것과 같아서 아내를 빼앗기거나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한다. 이 작품은 억쇠가 일거리를 찾아 아내를 데리고 원각사라는 절이 있는 조선 개척민 마을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140쪽)
한편 억쇠는 의처증으로만 일관하고, 원각촌에 등장부터 퇴장에 이르기까지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를 갖는다. 마을의 암종인 한익상을 처단하여 원각촌의 해결사 역할을 한다. 이러한 억쇠의 행위는 고향의 어느 마을에나 존재하던 장수설화가 개척마을인 원각촌의 현실 속에서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언젠가는 전설 속의 산 너머 아기장수가 나타나 마을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 것처럼, 아기장수는 현실의 고난에 대한 구원이자 변화에 대한 갈망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그동안 주로 억쇠라는 한 인물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막상 작품을 읽어보면 과연 억쇠를 그려내는 것이 작품의 의도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억쇠의 행위는 논리적 설명이 필요 없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것이(141쪽)며, 그에게 집밖의 외부 세계란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공간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마을에 좋은 일을 한 셈이 되었지만 개인적인 의미에 함몰되어 스스로 수행한 자신의 행동이 갖는 의미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마을을 떠나고 있다. 그렇다면 억쇠는 결국 만주에 조선인 개척 마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설정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작품의 무게 중심은 억쇠라는 인물이 아니라 원각촌에 있는 것이 되며, 이는 작품의 제목과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인물로서의 억쇠 자체를 조명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인물인 억쇠의 행위를 통해서 원각촌이라는 이주민 공간을 희망적인 장소로 장소화함으로써 토포필리아를 구현하는 작가 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142쪽)
한편 안수길의 작품 「원각촌」은 작가의 이전 작품에 비해 사실감(reality)이 많이 떨어진다. 마� 태생의 조선인 한익상 말고는 노동력 착취, 민족 차별, 정세의 불안 등 어떤 문제도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새벽」의 절망적 상황이나 「벼」에서의 치열하게 맞서야만 했던 만주의 현실과는 매우 대조적인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새벽」이나 「벼」에서의 만주가 고난과 비극으로 가득 찬 현실의 공간이었다면 「원각촌」은 낙관적 전망으로 이어지는 이상과 희망의 공간이다.(142쪽)
그러나 일제 말, 벼농사에만 종사하던 재만 조선인들은 정부의 시책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벼농사는 초창기부터 이주 조선인의 주 종목으로 황무지를 개척하는데 기여했지만, 만주의 근대화 과정에서 전반적인 산업 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필요가 있었다. 특히 간도는 일제시대 이전부터 양돈, 양계, 양봉 등 목축의 중심지(최경호, 안수길연구, 형설출판사, 1994, p.101 참조-인용자 재인용)였으며, 목축은 논농사보다 생산성이 높은 1차 산업이다. 작가는 「목축기」라는 작품에서 목축과 논농사를 다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재만 조선인이 논농사를 하든, 밭농사를 하든, 목축을 하든 그것은 그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방편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목축이 일제의 정책이었다고 하면, 사실 조선인을 이용해 만주의 황야를 개척하는 벼농사 역시 일제의 정책이었다. 따라서 논농(143쪽)사인가 목축인가 여부는 ‘친일적’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또 목축이 조선인에게 불리한 업종이 아닌 한, 그것을 행하거나 권장한 일 자체를 문젝삼는 것은 국가주의적인 편향된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인들이 마주로 간 것은 살기 위한 것이었고 계속해서 그 땅에서 살아가야 할 재만 조선인들이 당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국가일 수밖에 없는 만주국을 부정하고 그 정책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의 안수길의 문학은 재만 문학이 독자적인 길을 가도록 길을 열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144쪽)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만주국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는 중국, 일본, 조선인, 재만 조선인이라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르게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중국이나 조선에서는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정부라는 입장이며, 대륙침략의 야욕을 가졌던 일제는 조선인을 이용해 만주에 영역과 명분을 확보하고 마침내 만주국을 세움으로써 만주 경영의 기틀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주에 살고 있던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만주국은 어쩔 수 없는 자신들의 국가였고,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살피기에 앞서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꾸려가는 일이 우선되어야 했을 것은 자명하다. 그것은 재만 조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1940년대로 가면 이주의 역사도 오래고 이주 조선인의 수효도 크게 늘어 이주민 사회가 방대해졌으므로 일제나 조선에 의존적이기보다는 차츰 독자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다.(150쪽)
소설은 소재로서만 사회와 관련을 맺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의 등장인물로서든 현실의 작가의 입장이든 외부 세계에 반응하는 주체적 체험의 양식은 사회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 작품에서 만주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신념가인 정학도를 내세워 농민도를 말하고 북향정신을 설파하는 것은 작가의 재만 조선인의 장래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인 것이다.(150쪽)
만주국의 정책방향과 재만 조선인들의 사정을 문학작품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은 상호 협조와 호응을 기대하는 작가의 의도된 배려라고 하겠다. 이러한 내용은 문학 작품을 통해 만주국 정책에 협조함으로써 친일적 성향을 보인 것으로 혐의를 받은 부분이다. 그러나 조선이 아닌 만주국에 사는 입장에서 목축이 만주국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재만 조선인의 경제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면 조선인의 입장에서 거부하기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결국 만주국과 재만 조선인의 이익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안수길이 볼 때, 목축은 재만 조선인에게 꼭 필요한 생산업이었던 것이다.(153쪽)
만주를 고향으로 삼자는 안수길의 계몽 의식은 재만 조선인의 삶과 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데로 나아간다.(154쪽)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조선인을 비하하거나 민족 차별을 조장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만주의 타민족과 화합하여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작가는 다른 민족의 눈에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동족의 결점 부분들을 작품을 통해 객관화하여 제시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155쪽)
작품 북향보는 후반부로 가면 목장을 보전할 수 있게 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는데, 그 댓니 북향정신은 ‘환경 개선 운동’이나 ‘농촌 계몽운동’정도로 비약하고 있다.(155쪽)주인공 찬구와 충청도 출신인 듯한 목장의 익살꾼 강서방의 대화에서 더 자연스럽게 만주에 대한 토포필리아를 느낄 수 있다.(156쪽)
북향보에는 이주민 2세대가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만큼 만주를 고향으로 삼자는 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앞에서 본 찬구나 명식처럼 만주는 그들 부모의 뼈가 묻혀 있는 곳일 뿐 아니라 자신을 비롯한 그 후손들이 앞으로 일구고 살아가야 할 현실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 조선인 이주민들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만주에 들어가 그곳의 어지러운 정세와 민족 차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2세 교육에 힘쓴 것은 그 땅에 대한 애정을 높이고 그 사회에 기여하는 면도 있겠으나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려는 노력의 하나였을 것이다.(158쪽)
한편 북향보에는 대부분의 2세들이 ‘북향정신’에 동조하고 만주를 고향으로 삼고 있는 것과 달리 기어이 조선으로 가는 개성적인 인물이 있어 주목된다. 그는 정학도의 딸 ‘애라’인데, 주변의 젊은이들이 북향 목장에 매달리 때, 그는 만주를 떠나 경성으로 간다. 만주를 고향으로 삼자는 이 작품의 주제를 놓고 볼 때(158쪽) 주저없이 만주를 떠난 그는 매우 파격적 인물이다. 그의 정신적 지향은 부모가 고향으로 삼고자 하는 농업국 만주가 아니라, 개인적 재능과 사회적 성취의 가능성 면에서 열린 세계였던 문화의 도시 경성에 있었다. 그는 나중에 음반을 취입하여 ‘조선의 종달새’가 되고 북향목장을 구하는 일에 일조한다. 애라는 북향목장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북향정신의 수호ㅈ바가 되었다고 하겠다.(159쪽)
「새벽」과 「벼」가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보여준다면, 북향보를 위시한 일련의 작품 「원각촌」이나 「목축기」에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 작품에서 작가는 ‘북향정신’을 부각시키고자 하였으므로, 재만 조선인의 현실을 그렸던 작품들에 비해 비현실적인 요소나 이상 추구, 계몽주의적 성격이 많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다. 만주에 있는 동포들이 이제는 만주를 고향으로 삼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가자는 작가의 의도는 일제 패망을 앞둔 만주에서 국가적 관점을 벗어나 민족의 장래에 대한 상황적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사실 만주를 고향으로 삼게 되는 것은 만주의 특정 장소에 대한 애착심이 전제되어야 한다. 만주 공간에 대한 애착은 특정 장소가 고향에서의 경험과 같이 정서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곳으로 여겨질 때 절로 생겨날 수 있는 것이지, 구호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159쪽) 곧 해방이 되고 중국 조선족으로 편입될 재만 조선인들의 입장에서는 국가개념보다는 땅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고 태도와 의식을 정비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안수길의 북향보는 당대 사회의 증언적 성격보다는 대중을 선도하고 교화하는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하였다. 작품의 발표 시점도 그러하지만, 만주에 대한 애착을 강조하고 이주민들에게 만주 땅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자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향보는 간도 문학으로서의 한국 문학과 중국의 조선족 문학으로 나뉘어 지는 갈림길에 서 있는 작품이다.(160쪽)
이 작품은 만주 조선인 선구 개척민들의 피땀 어린 고난의 역사를 통해 만주가 우리 민족의 삶의 공간으로 편입되었고 마침내 고향으로 삼을 만큼의 친근한 고장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다.(160쪽)
무엇보다 작가 안수길은 ‘만주’를 민족의 일시적인 피난처가 아닌, 이주 조선인이 대를 이어 살아가야 할 땅으로 인식하였다. 그에게 있어 만주는, 수십 년에 걸친 조선인의 개척사를 간직하고 있는 시공간이자 수많은 동포들의 삶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일제의 패망을 목전에 두고 재만 조선인 사회의 중심에서, 문학작품을 통해 스스로도 모호하던 재만 조선인의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그들의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결국 중국 조선족으로 살아강 하는 재만 조선인을 거시적 관점에서 보았던 작가의 판단과 희구가 자신의 간도 체험을 문학으로 형상화하면서 ‘북향(北鄕)’이라는 이상향의 추구로 드러났던 것이고, 그것은 곧 이주민의 땅에 대한 물리적인 정착 단계를 넘어선 지점에서 ‘정신적인 정착’을 도모했던 작가의 노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161쪽)
안수길의 간도 시절에 쓴 초기 작품에서의 간도는 작가의 공간 의식의 변화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165쪽)
「벼」를 분기점으로 하여 농민의 땅에 대한 토포필리아는 만주 땅에 대한 뿌리내림의 방법이 되지만 다른 한편, 일제나 만주국의 시책으로서의 생산력 향상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중성을 갖게 된다. 이는 재만 조선인이 조선인이면서 만주에 사는 만주인이고, 중국 땅에 사는 중국인이면서 일제의 식민지인이라는 이중적 성격에 기인한 것이다. 일제와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재만 조선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던 작가는 만주국을 인정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작품 「벼」에서 남의 땅에 사는 민족의 설움을 그렸던 작가가 북향보에서 만주를 후대에 물려줄 고향으로 삼자고 주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또 북향보외에 「목축기」, 「원각촌」 같은 작품이 계몽적이고 이상적인 방향으로 밝게 그려지고 있는 점과, 이들 작품에서 이주 조선인을 괴롭히는 주체가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라는 점도 이와 관련이 있다.(165쪽) 오족협화의 기치를 내세운 만주 땅에서 이제 이민족이라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작가로서 그의 고민은 재만 조선인이 국가로서의 조선인이 될 수 없고, 그들이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만주 땅이 조선 땅이 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땅에 대한 소속을 분명히 하게 되면 국가에 대한 선택은 결국 만주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만주국 국민이 된다 해도 조선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은 바뀌지 않는다. 근대적 개념으로 볼 때, 국가와 민족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무엇보다 안수길의 초기 문학에서 추구했던 것이 땅에 대한 애착이었기 때문이다. 이국땅에서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낯선 공간을 익숙한 공간으로 장소화하고, 확고한 장소애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중국 조선족의 존재가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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