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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문-애국계몽기소설과단재소설의성격
2009년 05월 16일 22시 06분  조회:2781  추천:0  작성자: 방룡남

불행한 출발, 그 역경의 시작

-애국계몽기 소설과 단재 소설의 성격

한기문(문학평론가)

-1950년을 전후한 시기에 신문, 잡지 그리고 당시 활발히 전개된 상업적 출판에 힘입어 다양한 형태의 서사문학이 출현하였다. 첫째, 국가의 근대화 혹은 국난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국내외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전기문학, 둘째로 작가의 의식과 이상을 대변하는 화자에게 현실을 분석, 비판하도록 함으로써 독자의 각성과 정치적 계몽의 효과를 의도한 시사토론체 소설, 셋째로 근대소설적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면서 당대의 시대상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반영한 신소설이 그들이다. 앞의 두 양식이 정치적 계몽을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문학적 의장을 빌린 혐의가 농후하다면, 신소설은 그에 비해 순문학에 더 가까운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한국소설문학대계1<<신소설>> 동아출판사 1995 539페이지)

-본래 근대사회의 주류적 서사양식은 소설이다. 근대소설은 시민의식의 문학적 표현으로서 사회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와 엄정한 분석, 비판을 통해 시대현실을 묘파하는 데 그 문학적 사명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서사문학은 그 문제의식의 치열함에도 불구하고 근대소설의 확립이라는 문학사적 요구를 철저하게 실현하지 못했다. 즉 현실의 여러 모순과 당대 민중의 다양한 요구를 완미한 근대소설의 양식 속에 수렴하는 대신, 서로 다른 양식으로 분열되어, 근대를 추구하는 정신이 근대적 양식과 결합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회 각 영역에 엄존했던 봉건세력의 완강한 반대와 이를 교묘히 이용하면서 식민지 침략의 발판을 넓혀 나갔던 일본 제국주의로 말미암아 근대적 개혁이 완수되지 못한 탓이다. 이러한 정황이 작가가 근대소설이란 새로운 양식으로 자신의 문학적 이상을 실현하는 길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그 결과 애국계몽기 서사문학은 구소설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신소설이나, 전기.서사성보다 정론성이 두드러지는 시사토론체와 같은 <<불완전한>> 양식을 산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애국계몽기 서사양식들이 완미한 근대소설의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과 그들의 수행한 문학적 성과는 분리해서 따져 보아야 할 문제이다.(540)

-‘신소설’이란 명칭은 이인직의 <혈의 누>(1906)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이때의 신소설이란, 구소설과 구별되는 새로운 소설이라는 다분히 편의적인 명칭으로 명확한 양식적 특질을 내포한 개념이 아니었다. 이는, 번안소설인 <애국부인전>(장지연, 1908)에도 ‘신소설’이란 표제가 붙어 있으며 신소설이란 명칭과 아울러 ‘가정소설’, ‘최근소설’, ‘정치소설’과 같은 표제가 두루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던 것이 이후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면서 명칭에 걸맞은 장르적 개념을 얻게 된 것이다.(540)

-그렇다면 신소설이 수행한 문학사에서의 역할과 의미는 어떠한 것인가. 먼저 근대문학적 요소로, 언문일치에 가까워진 문체의 변화와 작품 속에 반영된 내용의 리얼리티가 비약적으로 발전된 점을 들 수 있다. 신소설은 비록 불완전하게나마 고전 국문소설의 운문체 문장이나 한문 직역투에서 벗어남으로써 문체에서 근대소설 형성의 길을 닦아 놓았다. 또한 작품 배경과 소재를 주로 갑오경장과 청일전쟁 이후의 사회현실에 둠으로써 소설이 지나친 허구와 비현실의 세계로 떨어질 가능성을 좁히고, 결과적으로 인물과 사건이 한층 실감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 리얼리즘의 일보 진전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541)

-이러한 리얼리즘의 진전은 문명개화의 요구를 체현한 인물 군상을 빚어 내어 봉건적 사회체제와 가족제도의 완고한 구습을 비판하게 하였으며, 귀족사회의 몰락과 평민층의 성장과 같은 사회변동을 그려내고 미신타파, 신교육의 필요성, 남녀간의 자유로운 연애 등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동력이 되었다.(541)

-하지만 신소설에는 근대소설과 부합되지 않는 구소설의 잔재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이를테면 처첩, 계모와 전실 자식 간에 빚어지는 봉건 가정 내부의 갈등에 대한 과도한 집중이라든지, 선인형과 악인형으로 인물을 유형화하여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성격변화의 가능성을 봉쇄한 점, 우연성의 남발, 권선징악의 도식적 구조 등이 그것이다.(541)

-그렇다면 신소설이 이렇듯 반구반신의 문학에 머무르게 된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우선 구소설의 영향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을 만큼 근대사회로의 이행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작가의 안목이 제한된 점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구소설에 길들어 있는 독자층의 낙후한 의식의 흥미 본위와 통속성을 조장한 점, 그리고 일제의 간섭에 의한 사회 전반의 위축과 발전의 차단으로 인해 신소설 가운데 새롭고 긍정적인 요소들이 강화될 수 없었던 점 등을 지적할 수 있다.(541)

-<혈의 누>(1906)는... 청일전쟁의 참상을 실감 있게 그리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일점의 비(非)를 찾기 어려울 만치 규격이 정비된 구성”이라는 임화의 평가와 같이 묘사나 구성에 있어 구소설과 현격한 차이가 있다.(542)

-...<은세계> 전반부가 보여준 문학적 성취와는 달리 후반부는 옥순과 옥남의 미국 유학이란 맹랑한 구성을 통해 전반부에 나타난 최병도 죽음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반봉건 근대화’라는 시대적 요구가 단순한 서구문명의 수입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사태를 왜곡한다. 이러한 서구문명에 대한 무조건적 예찬은 <혈의 누>에서도 명료히 드러났던 것으로, 당시 대한제국이 안고 있던 숱한 모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서구 문화와 문명의 수입을 상정하는 이인직의 관점은 ‘서구의 아류’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현실적 존재를 인정하고 나아가 그 힘에 복속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당대인이 추정할 수 있는 근대화의 유일한 모델이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실로 가공할 만한 논리의 함정이 아닐 수 없다.(544)

-<귀의 성>(906-1907)은 표면적으로 <사씨남정기>나 <정을선전>과 같은 중세 가정갈들형 소설의 맥을 잇고 있는 것처러 보인다. 그러나 이인직은 평민인 강동지의 딸 길순과 김승지 부인의 갈등을 축으로 ‘처=순선(純善)’, ‘첩=순악’이란 도식을 역전시킴으로써 처첩갈등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신분적 모순과 사회적 약자인 첩들이 당할 수 밖에 없는 불합리한 질곡을 예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545)

-<귀의 성>에는 <사씨남정기>와 같은 예정된 권선징악의 구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량한 인물의 대표격인 길순은 아들과 함께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고 자기 품성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한다. 김승지 부인의 비참한 운명 또한 선천적을 예정된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의 필연적 결과였을 뿐이다. 이것이 <귀의 성>과 전대 가정소설이 구별되는 지점이다. 예컨대 <사씨남정기>의 주제가 사대부적 관습과 질서가 강요하고 있는 사회적, 인간적 갈등을 무마하고 얼버무려 그 모순을 온폐, 보수하려는 데 있었던 것과는 달리 <귀의 성>은 단호히 양반이 지배하는 사회의 모순을 폭로한다. <귀의 성>의 리얼리티는 바로 이러한 가정모순의 사회적 본질을 묘파한데 있다. 근대주의자 이인직의 현실안이 빛을 발하는 대목인 것이다.(545)

-<구마검>(이해조 1908)은 바로 이러한 분열, 즐 ‘계몽성’과 ‘현실성’의 이원화라는 현상을 자신의 미학적 특질로 하고 있다. 이는 기실 <구마검>만이 아닌 애국계몽기 소설사에서 흔히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으로, 문학의 계몽적 본질과 소설문학의 특수성을 종합해서 사고하지 못한 시대적 한계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계몽성’이 극단적으로 추구될 때, 작품의 서사성이 위축되어 <금수회의록>이나 <자유종>, <거부오해>,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과 같은 토론체 소설이 등장하게 된다.(547)

-애국계몽기에 시사토론체 소설이 성행한 것은 무엇보다 그 형식이 간편함과 단순함이 작자의 사상을 전달하거나 문제의 시비를 가리는데 손쉬웠기 때문이다.(547-548)

-그러나 문학 본래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단히 불충분한 것이었다. 작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마는 인물과 환경이 작자의 의도에 따라 편의적으로 결정되었으니 결국 계몽적 의도에 따라 소설의 외피를 빌린 것이었다.(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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