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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왜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은 거의 언제나 클로즈업일까? 왜 채플린 영화에서 떠돌이 찰리가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할 때 카메라는 어김없이 그의 전신을 잡을까? 바보 같은 질문이라구요? 네, 맞습니다. 이러한 의문들이 바보 같다고 느끼셨다면 당신은 이미 영화라는 매체를 알고 있는 분입니다.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것은 둘의 친밀성이 카메라의 근접촬영을 통해 잘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300미터 전방에서 키스하는 남녀를 먼 거리에서 떨어져 촬영했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둘 사이에 오가는 친밀함의 감정은 커녕 도대체, 저것들이 저기서 뭐하는 걸까? 라고 행위 자체에 의문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꾸 만나면 정이 들고, 안 보게 되면 그만큼 그 사람을 잊게 된다는 인간사의 소소한 감정의 법칙을 표현한 격언인데 이 말은 영화에 딱 적용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즉, 카메라와 피사체 간의 거리는 관객들이 느끼는 정서적인 거리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채플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채플린은 클로즈업은 비극에, 롱 숏은 코미디에 적합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 같습니다. 만약 채플린의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며 우스꽝스러운 동작 하나 하나가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 Pickpocket>에서 소매치기 주인공의 우아한 손동작처럼 클로즈업으로 찍혔다면 결코 우습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떠돌이 찰리의 모습은 대체로 롱 숏이나 풀 숏, 혹은 적어도 미디엄 숏으로 찍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찰리조차도 클로즈업으로 찍힐 때가 있습니다. 그건 그의 표정이 정말로 영화의 빛이 될 때입니다. 혹, 여러분은 <시티 라이트 City Lights>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꽃 파는 맹인 아가씨가 눈이 보이게 된 후, 촉각을 통해 떠돌이 찰리를 알아보는 저 유명한 장면입니다. 과연, 이 신(scene)의 마지막 숏에서 떠돌이 찰리는 클로즈업으로 찍혔습니다. 하지만, 이 신 전체가 클로즈업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영화 개론서나 영화사 책에서 눈에 익은 스틸 사진 하나만을 보고 그 신 전체를 본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스틸 사진(still photograph)이 아니라 활동 사진(motion picture)입니다. 계속해서 움직임에 따라 숏의 크기도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문제의 <시티 라이트>의 마지막 신도 역시 여러 개의 숏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개의 숏은 각기 다른 촬영거리에서 찍혔습니다. 찰리는 쇼 윈도우 앞에서 얼쩡거리다가 예의 그 꽃 파는 맹인 아가씨(이제는 맹인이 아닙니다만)를 알아봅니다. 이때의 숏은 찰리의 허리 위를 잡은 미디엄 숏이죠. 찰리는 이전의 만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려고 하지만 아가씨는 이 남자, 나한테 반했나봐~라고 동료에게 말하면서 마냥 재미있어 할 뿐입니다. 과거의 은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죠. 그녀는 꽃을 가지겠느냐고 묻고, 꽃 한 송이를 찰리에게 줄 의사를 비칩니다. 이 숏 역시 아가씨의 상반신을 잡은 미디엄 숏입니다. 그 다음 숏은 쑥스러워서 가려고 하는 찰리에게 꽃을 권하는 아가씨의 모습을 담은 풀 숏이죠. 아가씨는 꽃에 더해 동전 한 닢을 찰리에게 적선하려고 다가갑니다. 이 때 찰리의 손을 잡은 아가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 숏 역시 미디엄 숏으로 찍혔죠. 그 이상함의 감정이 피사체와 가까워지는 거리를 통해 전달되는 것은 바로 이 때부터입니다. 바로 다음 숏에서 그녀의 손은 찰리의 손을 마주잡는 데, 이 때 두 사람의 손은 정확히 화면의 정중앙에서 포착한 클로즈업으로 제시됩니다. 그 다음에 아가씨는 비로소 과거의 은인 찰리를 알아차리고 울먹이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때의 숏은 손을 클로즈업한 숏의 이전 숏과 같은 구도로 찍혔는데 촬영거리는 좀 더 관객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꽃을 움켜 쥔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어색한 웃음(울음?)을 짓는 찰리의 얼굴 클로즈업이죠. 당연하게도 이 숏에서 두 사람의 정서적 거리감은 극대화되고 덩달아 우리의 감정도 증폭됩니다. 우리는 이 숏으로만 <시티 라이트>의 마지막 신을 기억하지만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기적 같은 순간은 단지 하나의 숏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촬영거리가 다른 각각의 숏을 통해 정교하게 결합된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는 데이빗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에서 영국인 로렌스(피터 오툴)가 훗날 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아랍인 알리(오마 샤리프)와 처음 만나는 신입니다. 로렌스는 아랍인 하인과 함께 사막의 우물가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불현듯 지평선 멀리서 뭔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이 신은 극단적인 롱 숏(extreme long shot)으로 제시됩니다. 일반적으로 멀리 있는 것은 우리의 주의를 끌기 어렵지만 물리적인 거리감이 주는 형식적 요소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극적 요소입니다. 여기에서 조금씩 움직이며 이쪽으로 아주 느리게 다가오는 그 무엇인가는 우리의 주의를 끌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또한 로렌스와 아랍인 하인이 느끼는 의혹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신은 종종 로렌스와 아랍인 하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숏 다음에 그들의 눈으로 보는 주관적인 시점 숏으로 구성됩니다. 로렌스는 저 멀리서 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고, 그의 눈을 통해서 우리들 역시 그 이상한 신기루와도 같은 물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침내 검은 점으로 보였던 물체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탄 낙타로 드러납니다. 여전히 극단적인 롱 숏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전의 그것과 비교해서는 훨씬 가까워졌기 때문에 우리의 의혹감은 어떤 확신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숏에선 아랍인 하인이 성급하게 달려들어 낙타를 타고 오는 알리를 총으로 겨누게 되고, 알리는 하인이 쏘기도 전에 먼저 쏴서 하인을 쓰러뜨립니다. 하인이 쓰러졌을 때쯤에는 알리가 거의 이쪽으로 다가와 뚜렷하게 그 형상을 알아볼 수 있으며 우리의 의구심은 해결됩니다. 만약 이 숏을 로렌스, 하인의 클로즈업, 미디엄 숏(혹은 풀 숏)과 알리의 클로즈업, 미디엄 숏으로 나눠찍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우리는 알리의 존재를 알지 못하지만 대충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구나 하는 정도의 감각은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롱 숏, 그것도 주관적인 시점 숏으로 보여줌으로써만 획득할 수 있는 의혹감의 증폭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즉, 로렌스와 하인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에 대해 가지는 의혹은 물리적인 거리의 확보를 통해서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과연 저것이 무엇일까? 하는 심리적 긴장감은 극단적인 롱 숏이 아니면 얻어내기 힘든 것이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신 역시 극단적인 롱 숏만을 줄기차게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로렌스의 미디엄 숏과 그의 눈으로 보는 시점 숏이 교차됩니다. 또한, 로렌스와 하인을 풀 숏 범위에 놓고 멀리서 다가오는 알리를 극단적인 롱 숏으로 잡은 객관적인 숏도 쓰이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오늘의 이야기는 촬영거리가 창출해내는 정서적 거리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스틸 사진이 아니라 숏과 숏으로 이어진 활동 사진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하나의 숏을 정지 시켜놓고 정서적 거리감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피사체와의 거리가 우리의 정서를 증폭시키기도 하고 완화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장면이란 바로 그 거리를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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