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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에 다녀오다
2025년 01월 13일 16시 15분  조회:39  추천:0  작성자: 흑토의 사나이
2016년 국경절 련휴때 우리 나라5악중의 하나인 남악 형산을 톺아 그정상까지 올랐댔다. 형산은 호남성형양에 있는데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5악인만큼 비록 산세가 험준하여 힘에 부쳤으나 정상에서 밑을 굽어보는 순간만큼은 가슴 뿌듯한 순간이였다. 형산의 정상에서 일몰과 일출을 보려고 풍막과 생활도구들을 꿍져메고 힘겹게 톺아오르는 이들을 보면서 내심 탄복하기도 하였다.
형산을  답파해도 련휴가 남았기에 호남땅을 밟은 바에는 소산으로 가서 모주석의 생가를 방문하기로 의견이 모아져 소산으로 향발하게 되였다. 소산을 향해 떠나는 순간부터 나는 이름할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면서 몇십년전의 일들이 밀물이 밀려오듯 줄줄이 떠오르면서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드는건 나로서도 억제할수가 없었다.
아마도 소학교2학년때라고 기억된다. 그때 비록 시골학교였지만 전교문예경연을 조직하게 되였는데 우리 학급에서는 노래도 있고 춤도 있는 가무를 내놓게 되였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그때 그 노래가사와 곡이 그대로 기억에 생생하다.
“기차는 달려요. 소산으로 달려요. 산을 넘고 강건너 소산으로 달려요. 해빛은 찬란히 창을 비추고 차칸안은 들끓어요. 참말 들끓어요. 장족할아버지 해금타고 신강누나 춤추고 몽고족아저씨 노래불러요. 노래소리 웃음소리 그칠줄 몰라요.”
보다싶이 각 민족인민들이 기차타고 모주석의 고향인 소산으로 가면서  즐거운 심정과 들끓는 장면을 보여주고있다. 당시 우리 학급에는 20명이 채않되는 학생들이였는데 전원이 참가하였다. 한켠에 다섯씩 10명 학생은 종이박스로 만든 둥근 기차바퀴를 돌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각양각색의 민족복장을 차려입고 차칸에서 춤추고 노래불렀다. 특히 장족할아버지, 신강누나, 몽고족아저씨 차림을 하고 해금타고 춤추고 노래부르는 이들이 있고 또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고 춤추는 이들이 있어 관객들의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당연히 1등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어린 가슴에 소산으로 다녀오고픈 마음이 굴뚝같이 일었다.사실 나뿐만아니라 중국인이라면 전국인민의 태양이며 위인인 모주석의 생가를 가보고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였을것이다. 허나 호남성까지는 거리가 너무도 멀어서 가슴속에 념원으로만 남겨둘수밖에 없었다.
몇해전 남방으로 옮겨와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생각한것이 여건이 허락되면 어릴 때 출연했던 장면을 되새기면서 소산에 한번 다녀오리라는것이였는데 이제 그 소망을 현실로 이루게 되였으니 그 마음을 뭐라 표현했으면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흥분에 들떠 소산으로 달리는 차안에서 가는 내내 그 노래를 수도없이 흥얼거리였다.
    소산충의 모주석생가는 어릴때부터 사진이나 그림으로 보아오던것과 같았지만 직접 발을 들여놓고 보는 순간만큼은 숙연해지는 마음이였다. 집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집앞이 논으로 된 생가는 아늑하고 조용했을거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산수가 좋다는 느낌이였다. 방방곡곡에서 구름처럼 몰려온 방문객이 인산인해에 장사진을 이루었며 시종 비비적거리면서 밀려다녀야 했기에 사진한장 기념으로 남기지 못하는것이 큰 유감으로 남았다. 국경련휴인것도 있겠지만 위인은 영원히 인민들의 마음속에 살아있으며 인민들은 영원히 위인을 기리고있음을 알수 있었다, 
모주석의 생가는 1929년 국민당정부에 의하여 몰수당하여 파괴당한것을 1950년 원모습대로 복원하였으며 1961년 중화인민공화국국무원에서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공포하였고 1997년 중공중앙선전부에서는 전국 애국주의교양기지로 명명하였다. 1983년6월27일 우리 나라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등소평동지가 “모택동동지생가(毛泽东同志故居)”라는 친필제사를 써주었다.
 모주석의 어린 시절 부모님들을 도와 곡식이랑 말리웠다는 집옆 마당에 서있노라니 어느 책에서 본 한토막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주석은 어릴 때부터 이웃이나 어려움에 처한 동네사람들을 즐겨 도왔다고 한다.  1910년 가을, 당시 17세인 모주석은 호남상향 현립동산고등소학당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집떠나 50리 밖에 가서 공부하게 되였다. 집떠나기전 그는 시한수를 써서 아버지의 장부책에 끼워놓아 작별인사로 하였는데 길이길이 후세에 전해지고있다.
   이 아들은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니
   배워서 이름 날리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으리
   뼈를 묻을 곳은 고향뿐만 아니거늘
   인생 그 어디엔들 청산이 없으랴.                                             
    일본인 사이고우 다까모리의 시를 고쳐서 쓴 시지만 17세 소년의 가슴에 품은 웅대한 포부와 장한 뜻 그리고 그 씩씩한 기개가 읽을수록 가슴에 와닿으면서 감동에 젖어들게 한다. 방문객이 많아  밀쳐댔지만 나는 아랑곳없이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잠간 사색의 늪에서 헤여나오지 못하였다. 그렇듯 웅대한 포부와 장한  뜻이 있었기에 집을 떠나게 되였으며 끝내는 큰 뜻을 현실로 이루어 만민의 대구성으로 인민의 마음속 태양으로 되였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여 아쉬운대로 귀로에 올라야 했다.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모주석의 생가를 다시 우러르면서 이제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방문하면서 기념사진도 꼭 남길것이리라고 나름 소원을 만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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