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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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첫 사랑 이야기 - 둘
2006년 01월 17일 00시 00분  조회:5204  추천:50  작성자: 황유복
첫 사랑 이야기
-- 둘


영국의 추기경이자 시인이였던 뉴우먼(New man)은 《신사론》에서 《신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남계인생수필》코너가 《도라지》에 개설되면서부터 나는 줄곧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쓰다 보니 나는 이미 신사로서는 자격상실이 된것 같아 은근히 후회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가 있고《둘》이 없을수 없어 《살신성인》(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는 뜻이 아닌, 신사로서는 죽되 보통사람으로 된다는)의 각오로 계속 필을 들게 된다.

첫 사랑은 나의 인생에서 문화적 환경이 완전히 바뀌여지는 대변혁의 시기에 찾아왔다. 북경의 한 대학 력사학부에 입학하면서 나는 줄곧 몸담아오던 조선족학교의 조선족문화환경을 떠나 하루아침에 완전히 다른 한족문화환경에 들어서게 되였다. 정원이 60여명이던 우리 반은 거의 전부가 한족학생이 아니면 만족, 회족 등 한족문화권의 소수민족이였고 유독 나만이 소수민족 학교 출신이였다.

그때까지는 아직 소수민족문자로 대학입시에 응할수 있는 제도가 없었고 다만 소수민족학교 학생들에게는 외국어와 고대한어를 시험에서 면제시켜주는 혜택이 있었을뿐이였다. 대학생활 첫주일에 나는 먼저 자신의 외국어와 고대한어 수준이 다른 학생들보다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체험하게 되였다. 고대한어는 그런대로 혼자서 노력할수 있겠으나 로어는 청강도 할수 없는상태였다. 담당강사가 학부에 상황보고를 했고 학부 교학 담당주임은 나를 불러 다른 학부로의 학적이전을 권유했다. 나는 내 전부의 자존심을 내걸고 따라잡기 위한 시간을 요청했다. 한정 시간내에 계속 청강수준 미달일 때 학부이전을 약속한 상황에서 학부주임은 흔쾌히 한 학기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로어를 자습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다.

바로 내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 중경시에서 온 진명이라는 녀동학이 나를 찾았다. 입학후 실시된 로어실력 검정고시를 거쳐 로어과 과대표로 지정된 그녀는 나에 대한 과외지도를 자진해 나섰다. 그때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그녀가 고마웠다. 우리는 매일 아침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운동장 남쪽 숲에서 만나 한족학교 고중 로어교과서에 따라 공부하기로 약속했다. 진양은 엄격히 잘 지도해주었고, 나는 열심히 따랐다. 덕분에 석달이 지나 나는 6권의 고중 로어교과서를 독파하고 담당강사의 검정을 거쳐 정상적인 청강에 림할수 있었으며 제3학기가 마감할 때는 진양과 나란히 최우수성적으로 로어과를 마칠수 있었다. 로어 과외지도가 끝나는 날 진양은 향후 고대한어 지도를 제의해왔고 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마침 학기 중간시험 성적이 발표되면서 나의 고대한어 성적은 이미 만점으로 알려졌고 담당교수도 종합평가시간에 나를 특별히 칭찬해 주셨던 터라 그녀는 다시 과외이야기를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후 나는 한족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새로운 문화에 《미쳐》버리고 말았다. 교수들과 동급생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한어구사능력과 외국어, 고대한어수준을 재빨리 향상시켰고, 남들이 별로 관심하지 않는 갑골문(甲骨文), 동정문(銅鼎文)에까지 관심을 갖고 공부했으며 전각(篆刻)기술을 익히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9개월이라는 시간이 나도 모르게 흘러갔다.

이듬해 5월, 교정의 라일락꽃이 유난히 향기를 발산하던 어느 주말에 진양은 나에게 데이트를 요청해 왔다. 북경전시관 극장에서 개봉되는 쏘련 영화 《부활》의 관람권을 구입해 온것이였다. 함께 영화를 보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금방 본 영화와 레브 · 똘스또이의 원작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야기는 거의 나혼자 한 것 같다. 그후 좋은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우리는 토요일저녁을 골라 함께 영화를 보게 되였고 함께 산책하면서 영화와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한 관계가 일년 넘게 지속되면서 주변에서는 우리가 련인관계라는 말들이 돌기 시작했다. 어느 하루 진양이 동석한 자리에서 짓궂은 한 급우가 나에게 진양과의 련애관계를 공개하라고 떠들어댔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당장 진양에게 데이트신청을 하겠다는것이였다. 나는 급급히 우리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변명하였다.

그 일이 있은 후 3-4주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학교주변 우체국을 거쳐 보내온 두툼한 편지를 받게 되였다. 진양의 편지였다. 《2년전 로어과외로 시작된 당신과의 만남과 접촉은 어려운 사정에 처한 소수민족동학에 대한 나의 동정심에서 출발된것입니다.》그러나 《당신에 대한 리해가 깊어지면서 나는 그때의 〈동정심〉이 얼마나 유치한 선입견이였는지를 깨닫게 되였습니다.》《식을줄 모르는 탐구욕, 깊이를 잴수 없는 지혜, 해박한 지식, 문학과 예술의 재능 그리고 선량하고 정직한 인품, 당신의 그 모든것들이 하나의 항거할수 없는 힘이 되여 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나는 2년동안 당신이 언젠가 저에게 사랑을 선언할것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당신이 영원히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때문에 불안해지고 있습니다……》진양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무엇인가 잘못 되였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답장을 썼다. 《당신은 내가 존경하는 선생이였고 은인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저는 조선족출신입니다. 조선족남자는 타민족 녀자와 결혼하지 않는 전통적인 풍속이 있습니다.》

편지가 전달된 다음날 진명은 청강하러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빈자리를 보는 순간 나는 죄장감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진명의 친구들이 그가 몸져누웠다고 알려주었다. 그녀의 자리가 이틀, 삼일째 비여지면서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처음 나는 그것이 어려운 고비에 나를 도와주었던 은인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죄책감으로 생각하여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고민이 깊어지면서 나는 그것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녀가 있어야할 자리가 비여져있을 때 내 마음속에 와닿는 허전함과 불안함은 과연 무엇일까? 《타민족과 결혼할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동안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쉽게 사랑과 무관한 친구관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민 끝에 나는 그녀가 이미 내 가슴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되였다.

진명이 결석한지 나흘째 되던 날, 나는 그녀를 찾아갔다. 《당신이 겪고 있는 그 엄청난 마음의 고통이 나로 하여금 〈고정관념〉의 가면을 벗을수 있게 하였소,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의 진실을 찾을수 있었소. 나는 이미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소. 다만 그 가면때문에 볼수 없었던것이였소.》고통으로 창백해졌던 그녀의 얼굴이 행복으로 새롭게 피여날 때의 그 예쁜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랑을 약속하면서 우리는 《약법3장(約法三章)》을 채택하였다. 《①사랑은 두 사람의 학업에 장애가 될수 없다. ②사랑은 분수에 넘는 소비나 사치와 련관될수 없다. ③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결혼과 같은 미래를 설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였다. 우리의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누군가가 계산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것 같다. 우리가 열애하면서 함께 본 영화가운데 《2×2 =5》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웽그리아 영화가 아니였나 싶다. 계산으로 말하면 완전히 틀린, 그래서 계산되지 않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뜻이였을것이다. 《약법3장》과 함께 약속된 우리의 첫사랑이 《계산》이란 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관계없이 우리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첫사랑의 세계로 깊숙이 빠져 들어갔다.

200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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