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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꽃,응달에 피다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5056  추천:73  작성자: 김혁

 

마마꽃, 응달에 피다 (발취)

- 2003년 <<장백산>>장편소설상 수상작품

 

 

 

 

 제4부 누나와 요지경
        -<<짜그배>>누님 편

                  
        
               눈뜨는 풀
 
 
   ... 이 세상에 으뜸가는 미인이 누구일가?
  누군가는 혁명적 본보기극 <<홍색랑자군>>에서 나오는 오청화의 배역이라 했고 누군가는 <<두견산>>에 나오는 당대표 가상의 배역이라 했다. 그녀를 중앙의 어느 젊은 고위급간부가 좋아한다는 풍설이 항간에 돌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림부통수가 자기 아들을 위해 전국각지에서 추려뽑은 군인녀자라고 했다. 누군가 <<가장가장 붉은 태양>> 그분의 제일부인이라고 했는데 곁두리에서 한결같이 코방귀를 끼며 부인해 버렸다.
  그녀를 만나기전에 내눈에 가장 아름다운 녀자는 나의 어머니였다. 그후에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였는가>>속의 세라복을 입은 또냐였다. 허나 이런 내 가슴속에 현상된 영상들을  지우며 몇해전 길림지역에 세계최대의 류성이 내렸듯 녀자 하나가 빛뿌리며 내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짜그배>>누님이라 불렀다.
  <<짜그배>>, 어떻게 생겨난 어원인지는 알수없으나 우리 고장에서 <<짜그배>>는 짝짝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부모중 어느 한쪽이 타민족이면 우리는 그 사이에서 생겨난 자식을 <<짜그배 새끼>>라 부르군 했다. 조, 한 두가지 언어로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도 우리는 <<짜그배영화관>>이라 했다. <<짜그배>>누님은 아버지가 중국사람이였다. 그의 어머니가 쏘련류학을 갔을 때 쏘련사람과 관계해 낳은 아이라는 설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누님의 아름다움에는 혈연적인 단구(短軀)와 누르끼레한 피부를 가진이곳 사람들과는 달리 쭉 빠지고 희멀쑥한 것이 이방인의 냄새가 나는듯했다. 그로서 지어진 별명이겠지만 그 보다 더 비밀스러운 것은 <<짜그배>>누님이 선천적으로 한쪽 유방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가슴띠속에 양말을 움켜놓고 다닌다고 했다. 여하튼 고운꽃에 벌과 나비가 많이 모여들 듯 <<짜그배>>누님은 현성에서 구설에 가장 많이 오르는 톱인물이였다.
  <<짜그배>> 누님의 원명은 최승미였다. 50년대말, 중앙에서는 강철과 기타 중요공업산품산량면에서 7년에 걸쳐 영국을, 15년에 걸쳐  미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영국을 릉가하고 미국을 따라잡자 (超英勝美)>>는 구호를 내놓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대약진을 유발시킨 서곡이였다. 하여 그때 태여난 아이들중 초영이니 승미니 하는 이름들이 많았다. <<짜그배>>누님의 이름도 그렇게 지어진것이였다. <<짜그배>>누님을 내가 맨 처음 보게 된 것은 꽃샘추위가 불어치던 이른 봄이였다.
  그날도 나는 여느때처럼 사진관으로 갔다. 하릴없이 휘파람으로 알바니아 영화 <<죽어도 굴하지않는다>>의 주제가를 불며 상철형님을 찾아갔다. 사진관대기실의 문을 열다가 칙칙하던 대기실이 여느때보다 훤한 기운으로 넘치고 있음을 육감으로 느꼈다. 그다음 나는 누님을 보았다. 나의 곡조는 <<산에 올라라 용사들이여 이 봄날에 우리는...>>하는 대목에 와서 뚝 멎고  말았다. 국경절이면 천안문광장에서 쏘아올리는 축포를 기록영화에서 보듯 눈앞에서는 불꽃이 란무했다.
  누님은 사진찍으로 온 모양이였다. 그날따라 손님이 많아 누님은 대기실 구석쪽에 놓여진 장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찍는 엄마의 뒤를 묻어 온 계집애 하나가 칭얼이고 있어 그애를 어르느라 함께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누님은 머리를 량쪽으로 짧게 땋아내리고 있었다. 머리 한오리 흘러내릴세라 말끔히 빗어올렸는데 그렇게 반듯하고 빛나는 이마를 나는 본적이 없었다.
  그때 류행의 단일색으로 국방색옷차림이였지만 분명 다시 줄인 모양 앞가슴이 조붓하고 팔소매가 맞춤한 것이 옷이 품에 꼭 맞았다.
  마스크를 목에 걸고는 접어서 품에 간직했는데 하얀 마스크끈이 악세사리인양 미끈한 목을 장식해 주고 있었다.
  아이가 공기돌을 받아쥘때마다 누님은 박수를 치며 거침없이 웃군 했다. 사환소를 잘못 써서 너나없이 이발이 누르께한게 그때 사람들의 모습이였는데 누님의 이발만은 옥돌처럼 희고 쪽이 고르렀다.
  돼지뼈의 마디를 뽑아 빨갛고 파랗게 칠을 올린  공기돌을 누님은 곧잘 다루었다. 높이 솟았다 떨어지는 줴기와 함께 같은 색깔의 공기돌을 제꺽 골라 쥐군했는데 그때마다 유난히 높은 앞가슴이 출렁거렸다.
  나는 숨을 꺽 죽이고 대기실 문가에 못박혀 홀린 듯 <<짜그배>>누님을 지켜보았다. 사유의 움직임은 일순 결박되여 버렸다. 질?게 반짝이는 내 눈길을 의식했던지 누님이 내쪽에 머리를 돌렸다. 흑란(黑蘭)의 줄기처럼 유려한 눈섭, 처마처럼 길게 뻗은 속눈섭아래 가슴이 철렁하도록 깊고 서느러운 눈매가 나를 찔러왔다. 눈동자가 포도알같이 검었고 흰 자위는 희다못해 쪽빛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덴겁히 눈길을 돌리며 대기실에 들어섰다. 그러다 문턱에 걸채이여 하마트면 넘어질번 했다. 아닌 보살을 하고 다시 휘파람을 불려 했으나 하루에도 수차씩 불어 오던 그 알바니아영화의 주제가곡조가 이순간만은 웬지 떠오르지 않았다. 벽에 걸린 상장과 모주석어록들을 감상하는체 하였다. 그러면서 상장유리에 비친 누님의 모습을 계속 도적질해보았다.
  <<12번 손님입니다>>
  상철형님이 촬영실에서 대기실로 머리를 내밀며 까랑까랑한 소리로 웨쳤고 <<짜그배>>누님이 일어섰다.
  <<아지미차례가 됐어. 사진찍고 또 올테니 쬐끔만 기다려라>>
  계집애의 볼을 도닥여주고나서 누님이 촬영실로 들어갔다. 어쩜 목소리도 탁자우에 떨어뜨린 유리알이 또그르르 굴러가듯 그렇게 명랑할 수가 없었다. 대기실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촬영실문에 걸린 문보에 쯤을 만들고 <<짜그배>>누님이 사진찍는 모습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밝은 조명등아래에서 누님은 과장되게 더욱 예뻤다. 두팔을 가슴앞에 가새지르고 의자에 풍만한 넙적다리를 다른 다리우에 포개고  앉았다. 혁명에 충성하는자세, 두주먹을 부르쥐고  팔뒤꿈치를 앞으로 쳐든채 용왕매진하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 풍조였던 그때 누님의 그 선정(煽情)에 가까운 모습은 훔쳐보는 사내들의 눈뿌리를 뺏다. 내 뒤통수에 대고 어떤 사내는 화근내나는 한숨을 소리나게 쉬는것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던지 상철형님이 다가와 내 머리를 툭 쳐서야 허공에 아연하게 떠있던 나는 한동안의 바보에서 깨여날 수 있었다.
  <<잠 덜깼냐? 얼빠져갖고 뭘해>>
  형님이 내 심기를 엿본것같아 나는 목덜미를 붉혔다. 그러는 나를 형님이 <<짜그배>>누님에게 인사시켰다. 원체 형님과 <<짜그배누님>>은 아는 사이였다. 나는 앞이마를 긁적이며 누님앞에 나섰다.
  <<음마! 눈도 또랑또랑해라. 사내애가 가시내처럼 곱게두 생겼네>>
  누님이 무람없이 내 귀방울을 잡고 흔들며 연극적인 음성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얘 별명이 <가분수>랍니다. 골두 크죠?>>
  형님도 내 골통을 만지며 따라 웃었다.
  (이 죽일칼 따로 없는 형님아, 하필이면 처음 보는 녀자앞에서 내 별명을 쳐들고 그래.)
  나는 그러는 형님이 못내 미워나 속으로 게두덜 거렸다. 누군가 언감 <<똥파리>>네 패거리성원인 이 김찬혁이를 가시내 같다던가 <가분수>라 했다면 나는 가만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바라보는 것 만큼으로도 노곤할 발군(拔群)의 미모를 가진 누님앞에서 나는 능란한 조련사의 채찍밑에 맡겨진 맹수처럼 고분고분해지는 자신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날저녁 나는 잠을 설치고 말았다. 웃방의 <<흐르쑈브 동지>>가 요란스레 코를 굴러서도 아니였고 집안에 배였는 이약냄새때문도 아니였다. <<짜그배 누님>>은 준비없이 목격하는 꽃처럼 내 앞에 나타났고 그 꽃이 주는 아름다움에 나는 내내 사로잡혀 있었다. 그날 나는 줄곧 즐겁고 명랑한 아이로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마주앉아 화제를 만들어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이붓아버지에게 신문도 집어다 주었으며 나에게 차려진 칼치반찬을 통째로 고양이 밥그릇에 놓아주기도 했다.
  자정이 되도록 전전반측하며 나는 잠을 못 이루었다.
  고양이가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살며시 밖으로 나갔다.
  밤하늘에는  얇은 쇠조각을 매단 듯 별들이 찰강찰강 쇠소리를 내는상 싶었다.
  밤이 좋은 고양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양이를 찾지못한 내가 고양이가 되었다.
  밤고양이처럼 골목길을 헤매다 나는 어느덧 사진관앞까지 와있었다.
  심야에도 사진관은 문을 열고 있었다.
  몽유병환자처럼 나는 사진관에 들어섰다.
  현성은 오늘도 정전이였다.
  나는 성냥을 켜들었다.
  대기실을 지나 촬영실로 다가갔다.
  촬영실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두팔을 가새지르고 한 다리를 다른 다리우에 포개 얹은채 어둠속에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왔다.
  입술을 오무려 성냥불을 훅 불어껐다.
  한켠에 세워졌는 립식조명등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전구알을 만졌다.
  그러자 정전이였지만 조명등이 순간에 밝아졌다.
  선반우에 놓였는 라디오를 만졌다.
  그러자 정전이였지만 라디오에서 음악이 흘러 나왔다.
  쏘련가요 <<홍매화는 피였네>>의 곡조가 흘러나왔다.
  그사람이 몸을 돌려 나를 보고  웃었다.
  모란이 벌어지는듯한 요염한 웃음이였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짜그배누님>>이였다.
  음악소리속에 누님은 무대에 등장하는 발레선수처럼 핑그르르 맴을 돌았다.
  누님은 세라복을 입고 있었다.
  어깨에 바다물처럼 파란 줄무늬가 간  눈덩이처럼 하얀 세라복을 입고 있었다.
  누님이 춤을 추며 세라복단추를 벗겨내렷다.
  치마도 벗었다.
  내의도 벗었다.
  브래지어도 벗었다.
  꽃뱀이 허물을 벗듯 몸에 붙은 천쪼박들을 벗겨내렸다.
  하나 하나 하나 하나 벗겨내렸다.
  유방이 드러났다.
  하나 뿐인, 그래서 더 커보이는 유방이 출렁 드러났다.
  음악에 맞춰 유방은 흔들거리고 있었다.
  <<홍매화는 피였네
   들과 내가에
   사랑하는 사람아 난 널 생각해
   내가의 홍매화는 피여났건만
   그러나 내사랑은 언제 피려나...>>
  그 하나뿐인 유방을 출렁이며 누님은 춤을 추었다.
  몽롱한 리듬으로 춤을 추고 또 추었다
  이때 누군가 촬영실의 문을 왁살스레 열어?혔다.
  개털모자를 쓴 머리 하나가 불쑥 들어왔고 그 사람이 중국말로 물었다.
  <<떠우푸(豆腐)를 사겠소?>>...
 새벽의 두부장사 소리에 나는 꿈에서 깨였다. <<짜그배 누님>>을 부르며 잠에서 깨여 나는 팬티와 이부자리가 질펀히 젖어 있음을 발견했다. 늦잠자는척 질질 끌고 있다가 부모가 출근하자마자 후닥닥 일어났다. 몽정(夢精)으로 어지럽혀진 이부자리를 부끄럽게 내다 널었다. 나의 소년은 이렇게 완수되였다.
  <<짜그배 누님>>은 국영리발관에서 일본다고 했다. 나는 머리칼이 길어지기를 학수고대하였다. 머리가 길어지면 리발관에 갈수있을거고 리발관에 가면 <<짜그배누님>>을 볼수 있을터니깐. 허나 상고머리가 풍조였던 그때인지라 박박 깍은 머리는 도무지 자라지 않았다. 그러다 어중간히 길어진 모습을 하자 나는 불자동차처럼 리발관을 향해 뛰여갔다.
 커다란 체경앞에 리발사들이 줄지어 섰는데 <<짜그배 누님>>은 맨안쪽에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누님은 예이제이없이 예뻤다. 햐얀 가운은 어찌보면 세라복같기도 했다. 그 황홀한 꿈속의 장면이 떠올라 나는 스스로 귀밑을 붉혔다. 누님은 늙수그레한 말라꽹이 령감쟁이손님의 머리를 깎고있는중이였다. 손님 두셋이 장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안면없던 손님들이 신문을 접으며 수근덕 거리기 시작했다.
  <<이봅쇼. 4월 5일날 북경서 반혁명폭란이 일었다누만.>>
  <<그래 천안문광장에 새까맣게 모여 반혁명구호도 부르고 불도 지르고 했다오.>>
  <<주총리를 추모하는 활동을 하다 그랬다는데>>
  <<그게 다 등소평이라는 땅딸보가 조작한거라우>>
  <<그러게 당중앙에서 등소평의 당내외일체직무를 취소 하지 않았소.>>
  <<그 사람 이번까지 떨어지면 몇번이요? 세 번인가? 두 번인가?>>
  기실 이런 소식은 신문보기만은 열심하는 이붓아버지가 이약을 바르다 말고 또 혼겁을 떠는바람에 언녕 알고 있었다. 그날은 청명인지라 나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묘소를 찾았다. 자전거에 삽을 처매고 내가  어머니를 자전거뒤에 앉히고 말발굽산으로 갔다. 못나게도 내가 집의 자전거를 <<투명장>>으로 바친 뒤 이붓아버지는 또 한 대의 자전거를 사들였다. 잠글쇠도 가장 비싼 것으로 샀고 날이 지기 바쁘게 자전거를 집의 봉당에 들여놓군 했다. 그러는 <<흐루쇼브 동지>>가 가소롭기도 했고 퍽 보기에 안스럽기도 했다. 자전거만 보면 <<투명장 사건>>으로 집에 미안하고 상철형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언젠가는 기회를 보아 어머니에게 자전거사건의 자초지종을 말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어머니에게 내손으로 좋은 자건거를 사주리라 자기위안처럼 결심을 머금었다. 말발굽산까지는 꽤 멀어서 힘에 부쳤다. 내 얼굴은 땀벌창이 되었다. 어머니가 자기가 타고 나를 앉히려 했으나 나는 부득부득 우겨가며 어머니를 앉히고 산더기에 까지 이르렀다. 그러고보니 자전거 때문에 미안한마음을 조금이라도 무마할수 있을것같았다. 청명제를 지내러온 사람들이 산을 덮고 있었다. 서투르게나마 삽질을 해대며 처음 봉분에 흙을 얹어 <<가토(加土)>>라는 례식을 리행해 보았다.
  <<우리 찬혁이 다컸구나>>
  어머니는 서투루나마 열성을 보이고 있는 나를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가토를 마치고 아버지의 무덤에 술을 부어올렸다. 무덤가에 앉아 제물로 가지고 온 음식을 맛보았다. 어머니가 홍주를 비닐술잔에 절반도 못되게 부어서는 마셔보라고 했다. 부쩍 커버린 아들애에 대한 장려라고나 할가 어머니는 기묘한 감미가 섞인 모습으로 나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나는 그잔을 마저 채워서 단모금에 굽을 냈다. 사실 어지간히 목이 말랐던것이였다. 그리고 또 한잔 부어서는 역시 밑바닥을 보였다. 또 한잔 더 부어마시려는데 놀라움에 눈을 둥실하게 키운 어머니가 내 잔등을 철썩 때리며 술잔을 앗아냈다.
  과자를 씹으며 나는 봉분곁에 앉아 산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따습는 봄양기속에 레루가  산굽이를 돌며 누워있었다. 해빛에 레루장이 반짝 반짝 빛이 났다. 마침 기차가 지나고 있었다. 춘곤(春困)에 졸린 듯 기차의 기적도 나른하게 울리는 듯 했다. 나의 귀전으로 빈 탄알깍지가 내는 공명음이 이명(耳鳴)처럼 들려왔다. 아버지의 장례식때 탄알깍지나 탐내던 개구장이였던 나는 아버지의 무덤곁에서 성장을 위시하는 술을 두잔 마시고나서 무량한 감개에 빠져버렸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두사람의 시간을 마련한데서 사물사물 좋아진 기분을 집에 돌아오기 바쁘게 <<흐루쇼브 동지>>가 깨뜨렸다. 불난 소식을 알리는 사람처럼 이붓아버지는 벌겋게 흥분해 있었다.
  <<큰일났소. 큰일이야!>>
  미약한 바람에도 허리꺾는 갈대처럼 시국정세에 민감한 아버지의 이런 흥감스런 모습을 한두번 보지않았지만 이번에 이붓아버지의 반응은 여느때보다 더욱 컸다. 믿을만한 골목소식에 의하면 북경에서 아마 큰 란리가 일었다고 했다. 며칠후 신문에 <<천안문광장에서의 반혁명정치사건>>이라는 제명의 대형기사가 톱자리에 나갔다. 썩후에야 진상이 밝혀 졌지만 전국을 놀래운 청명날의 천안문사태는 문화대혁명의 원흉인 강청, 장춘교, 요문원, 왕홍문 <<4인방>>에 대한 오래동안 쌓였던 인민대중의 분노와 반항정서의 폭팔이였다. <<4인방>>은 나라의 최고권력을 찬탈할 음모로 등소평 등 능력자들을 타도하려고 하였으며 지어 주은래총리에게 까지도 자본주의 길로 나가는 집권파라는 정치모자를 씌우려 날뛰였다. 당시 항간에서 어른들사이에는 <<4인방>>에 대해 풍자하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강청이 <<무측천(武測天)>>처럼 여왕이 되기위하여 어떤 너절한 술수를 꾸몄다거나 왕홍문이 무식하여 어떤 망신을 했다는 등 류행되는 와중에 더 과장되고 민담화되여 골목안방의 유머로 술안주로 되었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발로되던 <<4인방>>에 대한 증오와 불만의 정서는 3월말부터 시작된 주총리에 대한 추모활동을 계기로 4월 5일 청명에 이르러 <<4인방>>성토대회로 폭넓게 번져나갔다. 천안문광장은 영웅기념비를 중심으로 수천수만개의 화환으로 뒤덮였고 광장주위의 나무에는 애도의 흰종이꽃들이 눈내린 듯 달려 있었다. 화환이나 꽃들에 달린 제문(祭文)에는 <<4인방>>을 저주하는 시와 글들이 붙어있었다. 그러나 북경시민들의 자발적인 주총리에 대한 추모와 <<4인방>>에 대한 항의는 반혁명정치사건으로 치부되여 무자비한 진압을 당했으며 등소평은 막후조종자로 몰려 당내외의 일체 직무를 철소당하고 말았다.
  어른들의 시도때도없는 운동때문에 모든일에 불감증세를 보이는 우리 년소배들은 중국의 대변혁을 예감하는 이 커다란 사변에 대해서 미처 다 아지못했다. 그저 어른들의 불안에 옮아들어 또 웬 굿마당이냐? 설둥해 있을 뿐이였다. 학교와 공장들에서는 긴급회의를 늦게 까지 연터에 이붓아버지와 어머니는 련며칠을 모두 밤늦게야 돌아왔다. 네거리의 확성기에서는 <<화국봉동지를 중공중앙제일부주석, 국무원총리로 임명할데관한 결의>>와 <<등소평의 당내외일체직무를 철소할데 관한 결의>> 거듭 방송되고 있었다. 그사이 부모님들은 혼자 묵은 밥을 들추어먹고 시뿌등해 있는 나에게 관심을 돌릴사이가 없어했다. 집에 들어서서는 옷벗을 념도 없이 마주하고 낮은 소리로 무언가 수근거렸다. 그러는 그들의 온몸에 긴장과 당혹감이 배여 있음을 나는 보아낼수 있었다.
  어른들이 마냥 머리를 유난히 높이 깎고다니는 부주석과 키가작달만한 우경기회주의분자에 대한 관심과는 달리 나의 관심은 온통 <<짜그배누님>>에게만 쏠려 있었다.
  나는 누님이 머리를 들어 내쪽을 바라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친히 내 머리를 깎아주기를 바랬다. 허나 누님은 빗과 리발기를 들고 열심히 그 령감쟁이의 머리를 깎는데 몰입되여 있었다. 어느 한번 머리를 들었지만 기계적인 동작으로 머리칼을 털어내느라 나를 보지못한 듯 했다. 또다시 머리를 갸웃한채 가위질을 했다.
  내 차례가되자 다른 리발사가 나를 불렀다. 리발사모양을 내려 그러는지 닭둥우리처럼 머리를 별스럽게 틀어올린 아낙네리발사였다. 누님에게 머리를 맡기고 싶은 나는 뒤에 온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이렇게 두 번이나 양보했지만 누님의 리발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령감쟁이가 까까머리를 요구하였기에 시간이 길엇던것이였다. 그에 비해 대충 응부하는지 닭둥우리머리를 한 리발사는 빨랐다. 또 한명을 끝내고 다시 한번 나를 점명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또 양보하려고 했지만 이제 기다리는 사람이 더 없었다. 할수무가내로 덜 반가운 그 아낙의 리발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덜충하게 생긴 <<닭둥우리>>리발사는 <<짜그배 누님>>을 원하는 내 마음도 모르고 기어이 나를 자기 가위아래로 몰아넣는것이였다.
  (죽일칼이 따로 없는 아낙네같으니라구.)
  나는 리발사아낙네의 묵처럼 흐늘흐늘한 배허벅을  권투연습용모래주머니처럼 치박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머리가 길지 않구만 뭘 깎는다고 그러니?>>
  아낙네가 게두덜겨렸다.
  <<그래도 깎아봐요>>
  나는 귀찮아하며 대답했다. <<짜그배누님>>은 여전히 그 령감쟁이를 위해 복무하고 있었다. 턱면도를 하고 코털도 짜르고 귀속에 난 털까지 짤라주고 있었다. 나는 그 령감쟁이의 갈비 아릉아릉한 배가죽에도 한 대 주먹을 먹이고 싶었다. 누님의 시선이라도 끌어보려는 심사에 나는 짐짓 리발사와 트집을 걸었다.
  <<리발기가 물어요. 머리가 뜯긴다니깐요>>
  아낙네가 리발기를 바꾸었다.
  <<이것도 물어요!>>
  나의 소리는 필요이상으로 높았다.
  <<그런데 얘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아낙네도 까닭없이 골통 부어하는 나에게 화를 터뜨렀다. 나의 이 전술은 령험을 보았다. <<짜그배 누님>>이 드디여 내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나를 유심히 뜯어보던 누님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였다.
  <<너! 엄상철이와 같이 있던... 그 애 맞지?>>
  <<예!>>
   나는 입술이 벗겨지게 웃었다.
  <<서로 아는 사이요? 그럼 승미가 좀 맡아보오. 죄꾸만눔이 어찌 까다로운양 하는지 못맞춰 내겠구만>>
  기분 접질린 아낙네가 <<짜그배 누님>>쪽에 나를 밀어맡겼고 그러는 아낙네가 이번에는 감사한 나머지 나는 엄마라고 불러주고 싶어졌다. 나는 소원대로 누님의 섬섬옥수에 나의 <<가분수>>머리를 맡길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정말이지 누님의 면도칼에 울대뼈가 베이여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새 꽃 붕어 그리고 빠찌 

 
  누님은 사진관으로 곧잘 찾아오군 했다. 사진도 자주 찍었고 상철형님과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군 했다. 곁에 묻어선 나에게 비싼 고량탕(高粱糖)을 먹으라고 주기도 했다. 부드럽고 촉촉한 누님의 손바닥으로 넘어온 고량탕은 말랑말랑하고 향긋한 것이 그렇게 맛날수가 없었다. 누님의 체취가 묻어나 그렇게 맛나는것일가?
  남자애들은 어려서부터 아름다움에 대해 밝히는 편이다. 코밑건사를 잘못할때부터 어른들은 작난삼아 아이의 색시감을 잡아주고는 아이의 반응에 웃음보를 터치는 짓거리를 잘하군 한다. 나더러 곁집의 유난히 실팍한 계집애에게 장가들라고 했다. 그때면 나는 유명하게 큰 <<가분수>>머리를 흔들며 <<난 커서 엄마에게 장가들래>>하고 엉뚱하게 말해 사람들을 웃기군했다. 그만큼 나의 눈에 아름다운 사람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소학에 들어가서는 우리에게 병음(?音)을 배워주는 중국문 교원을 나는 색시감으로 정하고 있었다. 칠판에 꼬불꼬불한 병음자모를 곱게 써놓고 <<버 퍼 머 퍼 더 터 너 러>> 악보외우듯 신나게 배워주고 있는 살결 하얀 중국문선생이 제일 좋아보였다. 그래서 중국문공부에 유난히 열성을 내기도 했었다.
  중학교에 오르자 학교에서는 남자반과 녀자반을 나누었다. 남녀유별에 눈을 밝히고 있던 세월이였다.  험악한 사회의 풍기에 마냥 괘념하고있는 부모와 교원들은 이성과의 교제에 대해서 그 어떤 준칙보다 엄하게 세웠다. 그래도 녀자반의 창가로 가서 들여다보며 는질거리기도 하고 복도에서 섰다가도 녀자애들이 지나가면 괴물같은 소리를 내여 녀자애들을 깜짝 놀래키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는 애들의 뺨이며 목언저리에는 여드름꽃이 징그럽게 피여있었다. 지금껏 단 한번 녀자반의 어떤 녀자애에 대해 의식해본적이 있었다. 피부가 하얗고 유난히 정교로운 쌍겹눈을 가진 애였다. 소학교에 내 책상곁에 앉았었고 더욱이 걔의 어머니도 교원출신이라는 동질성 때문이였다. 소학을 마치던해 녀자애는 부모를 따라 흑룡강으로 이사를 갔다. 그애네가 이사를 간단말을 듣고 나는 급급히 녀자애네 집으로 달려갔다. 부모들과 함께 자기의 짐을 챙기고 있던 애는 뜻밖에 나타난 나를 보고 놀라마지 않았다. 이어 녀자애의 하얀 볼에 감동의 빛이 번져나갔다. 기실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책 하나를 그애가 빌려간터에 그것을 되돌려 받으러 찾았던 나였다. 그림책을 되돌려달라는 말이 목에서 턱걸이를 했지만 나는 끝내는 그말을 꺼내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떠나는 애를 바래게 되었다. 차에 앉아 떠나면서 나를 향해 손을 젓는 녀자애의 눈에 설핏 눈물기가 돌고 있었다. 그때 함께 감동하면서 크렁하게 젖은 녀자애의 눈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소년기의 설익은 감동이라 할수있었다. <<짜그배 누님>>을 보면서 나는 녀자에 대해 강렬하게 의식했고 그런 의식을 가진 자기에 대해 소스라쳐 놀라했다. <<짜그배 누님>>이 내 신변에 나타난후로 나는 시인처럼 매일 열번을 감동하고 있었다.
  상철형님은 누님의 사진을 모주석초상만큼 크게 뽑았다. 보기에 퍽 좋았지만 사진을 다시 뽑고 칠을 다시 하고 세 번이나 역고를 치른뒤에야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 그 사진을 사진관 진렬창에 내걸었다. 그러자 사진관진렬창앞에는 최신동향이 적힌 대자보를 보듯이 사내들이 바자를 이루고  웅성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똥파리>>가 진렬창앞에 나타났다. 타고온 자전거를 길가에 팽개치더니 벽돌장을 주어들고 다짜고짜로 진렬창의 유리를 깼다. 구경하던 사람들과 사진관 직원들이 아연실색하였다. <<똥파리>>가 <<짜그배 누님>>의 사진을 끄집어 내는데 상철형님이 뛰쳐 나왔다.
  <<왜 그러우? 형님?>>
  <<야, 이 여자가 무슨 고, 공원의 잰내비냐? 누구 여자라고 하, 함부로 사, 사아진 내 걸구 그러냐?>>
  상철형님이 격해지려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되물었다.
  <<그럼 승미가 형님여자유?>>
  <<똥파리>>가 손등으로 형님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야 이 또, 똥꼬치가 마, 마, 말하는 모양 좀 보소. 기래 내 여자다. >>
  <<똥파리>>는 모여선 사람들을 둘러보며 으르렁이였다.
  <<다들 드, 들어둬라. <짜그배> 이 동팔이 여자다. 이 여자 낯반대기 좀 해, 해반주그레 하다고 엉큼한 궁리 푸, 품으면 안돼. 나 이 년과 자본적두 있어. 년의 엉덩짝에 지,지, 짐 두 개가 있지>>
  다시 돌아서 <<똥파리>>는 상철형님의 턱밑에 까지 다가들며 목소리를 낮추어 은근하면서도 야비한 소리로 말했다.
  <<그리구 젖통이 하, 하난지 두, 두갠지는... 알려안준다.이제 아, 알겠냐? 형수님이시다. >>
  <<똥파리>>는 팽개쳤던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산산이 박산난 진렬창을 돌아다 보았다.
  <<저 유리값은 네 로임 짤라 배, 배애- 상해!>>
  이새로 침을 찍 뱉고는 자전거를 타고 휑하니 가버렸다. 형님은 이윽토록 그 자리에 뿌리 내려있었다. 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지어지고 있었다. 언젠가 본듯한 표정이였다. <<똥파리>>네 집 창에 대고 섬광등을 치는 악동이짓을 하던 그날밤 창호지구멍으로 <<똥파리>>와 롱탕질을 쳐대는 녀자를 들여다보았을 때 형님의 얼굴에 이런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나는 무언가 소스라쳐 알게 되였다.
  원체 부부간의 이불안싸움도 새여나가는 작은 현성이라이 일은 인차 온 현성에 쫘악 펴졌다.  <<짜그배누님>>은 일신에 화냥기가 배였는 남자를 홀려 잡아먹는 여우같은 년이라고 사람들은 수근거리고 있었다. 지식청년으로 시골에 내려갔다가 좋은 일자리를 얻기위해 촌장과 배가 맞붙었다가 들통이 나 공청단직도 다 떼우고 쫓겨왔다고 한다. 누님의 유방도 그때 누님을 차지하지못한 촌부랑뱅이가 낫으로 베여놓아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기왕 버린 몸이니 체념하고 <<똥파리>>같은 위인에게 붙어살고 있는것이였다. 어머니마저도 그녀에 대해 방탕한 패녀라고 험구를 했지만 내 안목과 마음중에서의  <<짜그배 누님>>의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간혹 찾을길 없는 나의 친어머니를 그려보면서 나는 그모습을 <<짜그배누님>>과 비슷하게 견주어 보기도 했다.
  모두가 시기하고 질투하고 기피하는 <<짜그배 누님>>에게는 자색도 그렇고 남보다 뛰여난 곳이 많았다. 누님은 손부리가 매운 녀자였다. 그때는 땀받이로 목깃에 뜨개를 떠서 달리개를 받치는 차림이 류행이였는데 누님은 붉은 색으로 <<똥파리>>의 목달리개를 정성껏 떠주었다. 그 목달리개를 달고 <<똥파리>>는 여간 으시대지 않았다.
  <<이 여자 누, 눈곱도 안끼는 여자다>>
  시시때때 우리에게 그녀의 자랑을 해댔다. <<똥파리>>는 누님에게만은 창자까지 꺼내줄것처럼 끔직하게 굴었고 남들이 그녀와 가까이 할라치면 철조망처럼 나서 막군했다.
  누님은 쓰고 버린 링게르줄로 손노리개를 결을줄도 알았다. <<똥파리>>가 병원으로 가서 숱한 링게르줄을 얻어 왔다. 한참 주사를 맞는 환자의 팔에 꽂은것을 채여 온적도 있었다. 그렇게 파쑈적으로 빼앗아온 링게르줄이 누님의 손에 들어가면 각양각색의 화사한 손노리개로 변모하군 했다. 새도 겯고 꽃도 겯고 붕어도 겯고... 거기에 우리는 자전거열쇠나 집열쇠를 달고 다니군 했다. <<똥파리>>에게는 개를 결어주고 (<<똥파리>>는 개띠였다) 나에게는 새를 결어주고 상철형님에게는 꽃을 결어주었다. 그러면서 <<똥파리>>에게 말하지말라고 백당부를 했다.
  누님에게는 하나의 애호가 있었다. 모택동주석의 빠찌를 수집하는것이었다. 천안문성루에서 모자를 젓고 계시는 모주석, 장강을 건느고 손을 저으시는 모주석, 고향소산에서 아이들과 함께 계시는 모주석, 우산을 들고 안원으로 가시는 모주석, 팔각모를 쓰고 연안요동앞에 계시는 모주석, 밀짚모자를 쓰고 조이밭을 돌아보시는 모주석... 철로 만든 빠찌, 구리로 만든 빠찌, 사기로 만든 빠찌... 없는 것이 없었다. 문화대혁명기간 중국에서는 위대한 수령의 영상이 담긴 빠찌를 1만여종, 20억개나 만들었다고 한다.
  그 빠찌들을 붉은 비단천에 꿰여 집의 정면벽에 걸어놓고 <<짜그배 누님>>은 옷에 따라 멋을 내군 했다. 정치성이 다분한 빠찌도 누님이 달고나서면 귀부인들이 금이나 옥으로 만든 악세사리처럼 그렇게 어울리며 미묘한 멋의 음률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며 동학들에게서 부지런히 빠찌를 얻어 들였다. 집에 있는 빠찌들도 모두 들추어내여 누님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중에는 이붓아버지가 가져온 빠찌도 많았다.  나의 아닌 거동에 이붓아버지가 눈을 치뜨며 물었다.
  <<왜?>>
  <<달고 다닐려구요>>
  나는 배심좋게 대답했다. 나의 느닷없는 령수에 대한 애대와 존경심에 <<흐루쇼브 동지>>는 알수없다는 듯 메밀눈을 찌프렸다. 자기것이라면 서캐도 내여주기 싫어하는 이붓아버지였지만 나의 갑작스런 정치각오에 대견한 듯 간수했던 빠찌를 모조리 내주었다. 누님에게 즐거움만 줄수있다면 나는 그 어떤 수고스러움이나 굴욕같은것도 다 참아낼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한번 길가는 사람의 옷앞섶에 달린 빠찌가 나의 시선을 당겼다. 분명 누님에게 없는 빠찌였다. 여느 어른들 같으면 달라고 칭얼대거나 아이들같으면 련환화나 유리구슬을 주고 바꿀수도 있을터이지만 이번의 상대는 좀 곤난했다. 조금이 아니라 완연 어려웠다. 내가 눈독 들이는 빠찌를 달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체조선생>>이였던 것이다. 그 정신질환자가 옷앞섶에 주렁주렁 단 빠찌속에 유독 <<짜그배>>누님에게 없는 빠찌가 달려있었던 것이다. 허나 누님을 위하여서라면 모주석의 시사에서 읊조리다싶이 <<구중천에 올라 달을 따고 오대양에 내려가 별주부를 잡으려>> 결심했던 나는 <<체조선생>>에게서 그 빠찌를 얻어내려 마음먹었다. 정신질환자이니 상논같은 것은 생략하고 기습하여 빼앗기로 하였다. 김표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김표가 못볼물건을 본듯 눈확을 키웠다. 미친 수작이라는 듯 채머리를 달달 떨었다.
  <<체조선생을? 그 정신환자를? 씹할 왜? 임마 니가 정신환자다!>>
  반편인 <<회충>>을 구슬려 함께 나섰다. 그 며칠을 나는 <<체조선생>>의 행동반경에 대해 자세히 정찰했다. 하루종일 왕파리처럼 질서없는 그라프를 그으며 네거리를 쏘다니다가 밤이면 <<체조선생>>은 역전광장에 솟은 령수탑아래에서 바람막이로 삼아 잠을 자군 했다. 그 시간 그 지점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현성에 어둠이 깔리자 해종일 이 현성에서 가장 분망한 사람이였던  <<체조선생>>은 넝마를 덮고 령수탑의 뒷면에서 걸레뭉치처럼 구겨져 자고 있었다. 코를 싸쥐고 우리는 <<체조선생>>에게 덮쳤다.
  <<체조선생>>이 깨였고 옷감 찢어지는듯한 소리를 질렀다. 팔다리를 허우적이는 것을 <<회충>>이 두손을 잡아눌렀고 나는 무릎으로 배허벅을 눌렀다. 어둠이였기에 내가 요구했던 빠찌가 잘보이지 않았다. 나는 악취를 참으며 때국에 절은 옷앞섶을 더듬으며 빠찌를 찾았다. 기차역 역사쪽에서 비쳐오는 불빛을 받아 겨우 빠찌를 가려내였다. 문뜩 발에 밟힌 송충이처럼 꿈틀이던 <<체조선생>>이 반항을 멈추었다. 우리의 제압도 한결 느슨해졌다. 그런데 다음순간 <<체조선생>>이 우리가 어쩔사이없이 웃옷을 걷우어 올렸다. 옥수수 깜부기같이 볼품없는 때묻은 유방이 드러났다. 이어 능숙한 동작으로 바지도 벗는것이였다. 속바지도 입지않은 하체를 손쉽게 홀랑 드러냈다. 나와 <<회충>>의 어정쩡한 눈길이 맞부딤했다. <<체조선생>>이  우리를 쳐다보고 삭은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우악!>>
  나와 <<회충>>은 구역질에서인지 공포에서인지 모를 비명을 지르며 뛰쳐 일어났고 내기라도 하는 듯 내빼기 시작했다. 우리는 령수탑을 멀리한 어느 건물앞에까지 와서 멈춰섰다. <<회충>>이 침을 뱉았고 나도 까닭모를 이질감으로 따라서 침을 뱉기 시작했다. 한동안 우리는 방금전의 느닷없는 경황에서 깨여나지 못해했다.
 <<체조선생이 아마 널 신랑감으로 점찍어둔 것 같다>>
 어쩐지 난감한 국면을 깨련 듯 나는 우스개를 했다.
 <<임마. 널 찍었다. 넌 나보다 잘생기지 않았니?>>
 <<회충>>이 받아 넘겼다. 우리는 마주보며 미친사람처럼 웃기시작했다.
  손아귀를 긁히며 빼앗아온 그 빠찌는 모택동주석이 천안문 성루의 한백옥 란간에 팔을 얹고 홍위병맹장들을 부감(俯瞰)하는  모습이 찍혀진 빠찌였다. 그 빠찌를 치약을 묻혀 깨끗이 씻어서는 누님에게 가져갔다. 나의 로고는 헛되지 않았다.
  <<어데서 얻었어? 이 빠찌 나온지 꽤 오래되는건데>>
  자기에게 없는 빠찌라며 누님은 무등 기뻐했다. 내 귀방울을 잡고 다정스레 흔들어 주었다. 그 손이 부드러웠고 나는 그저 바보처럼 벌씬거리며 웃기만 했다.
  허나 시럽쟁이 같은 김표의 고자질에 <<체조선생>>에게서 신고스레 얻어낸 빠찌의 출처는 드러나고야 말았다. <<짜그배>>누님의 이마전에 내 천(川)자가 그어졌다.
  <<더럽지 않아요. 내가 치분 묻혀서 깨끗이 닦았다구요. 두 번 세 번 닦았는데...>>
  나는 급급히 변명을 달았다.
  <<더러워서 그러는게 아니다>>
  누님이 자못 엄숙한 모습을 짓더니 나더러 빠찌를 돌려주라고 했다.
  <<그 사람 정신병잔데요>>
  나와 동안범인 <<회충>>도 한마디 끼여들었다. 나의 호의가 뒤틀린 방향으로 나가게 되자 나는 볼부은 기색을 지었다.
  <<그런 환자이기에 더 돌려줘야 하는거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에게도 자기가 아끼는 것이 있다. 그걸 뺏는 것이 거지에게서 마지막 남은 동전 한잎을 빼앗아내는 것과 같지않고 뭐냐. 나 찬혁일 착한 사람으로 봤는데.>>
  누님은 차분한 어조로 허나 그 때문에 더 아프게 우리를 꾸지람 했고 그제야 자신의 어처구니를 깨쳐안 듯 나는 어쩔바를 몰라했다.
  <<네 안가면 내가 가서 돌려주겠다. >>
  누님은 <<체조선생>>을 찾아 나섰고 나와 <<회충>>은 스적스적 누님의 뒤를 묻어나섰다.
  우전국앞에서 <<체조선생>>을 찾아냈다. 굽높은 술잔같은 록색의 우체통에 기대여 <<체조선생>>은 해바라기를 하고있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것도 개의치않고 <<짜그배>>누님은 <<체조선생>>앞에 바싹 다가갔다. 한쪽 무릎을 세우며 쪼크리고 앉았다. 그러는 누님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그어지고 있었다. 걱정과 련민, 아픔과 면려로 혼반죽된 미소가 부채살처럼 그 아름다운 얼굴에 지어져있었고 그 때문에 누님은 여느때보다 갑절로 갑절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것은 내가 여직껏 본 가장 아름답고 인자한 미소였다. 그 미소앞에 서면 시들었던 풀도 생기를 품으며 살아오르고 그 미소앞에 서면 살인백정도 들었던 칼을 떨구게 할듯한 미소였다. 그 주술같은 미소에 <<체조선생>>은 옷감 찢어지는듯한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광기에 넘쳐 팔다리를 휘젓지도 않았다. 누님은 <<체조선생>>의 앞섶에 그 빠찌를 달아주었다. 잘못 꿴 단추도 바로 꿰여주었다. <<체조선생>>은 폭풍설이이는 밤 양우리를 찾아온 주인의  손에 맡겨진 면양처럼 누님에게 자기를 맡기고 있었다. 누님을 향해 봉두란발한 머리를 들고 낡아빠진 치륜처럼 삭은 이발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것은 분명 행복한 웃음이었다.
  <<짜그배>>누님의 그 박애와 긍휼(矜恤)에 담뿍 배인 웃음은 아직 세계관이 농익지못했던 나에게 하나의 진리를 깨우쳐주었다. 그 웃음에서 나는 이제 나도 남들에게 웃음을 주어야겠다는 착한 심성 하나를 품어보았다.  
  <<짜그배>>누님은 마음에 드는 새 빠찌를 보면 나처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량표와 바꾸군 했다. 전국량표 20근내지 40근이면 새로 나온 빠찌를 바꿀수 있었다. 한번은 사진관에서 량표로 빠찌를 바꾸다가 어떤 정치를 잘하는 시럽쟁이에게 걸려 들었다.
  <<아니, 이 갈보년이 령수의 마크를 량표와 바꾸다니? 그래 위대한 령수님이 상품이란 말이냐?>>
  다행히 곁에 상철형님이 있었다.
  <<이 보시오 손님. 모주석께서 말씀하시기를 <정신이 물질로 변하고 물질이 정신으로 변한다>고 하오. 우리는 정신을 가지고 저 사람은 량표로 쌀을 사먹으니 얼매나 좋소. 모주석은 실로 우리의 대구성이지요. 그렇잖소?>>
  말주변 좋은 상철형님이 둘러맞추는 말에 그 시럽쟁이는 그저 피짚먹은 소처럼 눈을 끔벅일뿐 아무 답변도 못하고 말았다. 시럽쟁이가 사라진후 누님이 배를 그러안고 웃었다. 상철형님도 웃고 나도 웃었다.
  상철형님이 촬영실로 다시 들어가고 누님이 금방 바꾼 빠찌를높은 앞가슴에 달았다. 나를 보고 물었다.
  <<멋있어?>>
  <<예!>>
  나는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곱니?>>
  <<예!>>
. 나는 계속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누나가 좋아?>>
  <<예!>>
  나는 여전히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나도 찬혁이가 좋다.>>
  누님은 나의 커다란 골통을 쓰다듬으며 눈으로만 웃었다.
  <<남들이 다 싫어하는 이 못난 누날 좋아해줘서 고마워>>
  누님이 창밖을 응시하며 혼자소리처럼 되뇌이였다.
 
            

              사춘기의 산

 
 
  그때 나에게는 딱 세가지 소원이 있었다. 우선 하나는 값비싼 <<짜발탕(雜拌糖)>>을 실컷 먹어보는것이였다. 고량탕과 우유사탕 알사탕을 고루 섞은것이엿는데 꾸바사탕이나 저질 밀가루로 만든 <<손가락과자>>>, <<신바닥과자>>같은 것은 그에 비할바 못되는 고급식료품이였다.
  다음 하나는 내눈으로 직접 코끼리를 보는것이였다. 그때 스리랑카의 녀수상 반다라나이케가 중국을 방문하면서 우의의 선물로 아기코끼리 한 마리를 증정한적이 있었다. 그 과정을 기록편으로 본 뒤 나는 이 거대한 아열대의 동물을 친히 육안으로 보고픈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 하나는... <<짜그배 누님>>의 아름다운 모습이 찍힌 사진한장을 얻는것이였다.
  해살이 올올이 선명해지면서 봄이였다. 누님의 미소처럼 아른아른한 기운으로 충만된 봄은 왔다. 깨여나고 자라나는 물상들처럼 나도 자라나고 있었다. 뜨거운 물에 오래동안 불구어둔 면직물옷이 줄어 들어서였던지 옷마다 팔이 뎅겅 드러나고 목이 겅충하게 드러나있었다. 코밑이 매탄부(煤炭部)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별스레 검스레 해졌고 목소리는 연마지로 쓸어놓은 듯 쉰듯한 소리여서 스스로 듣기에도 거북살스러웠다. 그리고 나의 몸도 해동을 맞고 있었다. 깨여지는 얼음장처럼 불안감이 내 속에서 파렬음을 내고 있었다. 나는 내가 꼭 어덴가 상처를 입은것처럼 여겨졌다. 어느때 어디서 어느곳인지 모르게 상한 것 같았다. 부모들이 출근하고 없는 한낮, 문을 잠그고 문보를 내리고 나는 거울앞에 마주섰다. 고양이가 지켜보는듯해 그마저 내보냈다. 그리고 옷을 벗었다. 처음으로 나의 벗은 몸매를 살펴보 았다. 은밀한 구석구석까지 살펴보앗다. 귀퉁이에 혁명적구호가 새겨졌는 체경속에서 나는 혁명하려하고 있는 내 남성을 보았다. 내 소중하면서도 흉물스레 느껴지던 부분에 한모숨의 자라고 있는 눈밑의 봄싹같은 것을 놀라웁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무가지에 봄물이 팽팽히 차오르듯 일어서는, 동면에서 깬 뱀대가리처럼  머리를 쳐드는 나같지않은 욕망의 다른 한 나를 보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흉터를 가리는 사람처럼 덴겁히 옷을 주어입었다. 체경속에 비친 내 얼굴은 내가 보기에도 야릇한 홍조로 달아올라 있었다.
  내 몸과 가슴속에 나도 모르는새에 연두빛싹이 가만히 움터있었다. 밤마다 나는 싹이 자라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그것은 자라려 하고 잇었다. 눈이면 눈, 흙이면 흙, 돌이면 돌을 물리치고 봄날의 눈석이 및의 싹처럼 자라려 하고있었다. 나는 내몸속에서 야릇한 주문(?文)으로 그런 싹을 키우고 있는 괴물이 웅크리고 있다고 느껴졌다. 괴물은 매일이고 물주고 덧거름을 주며 외로움과 불안과 충동의 싹을 키우고 있었다. 나는 그 괴물을 축출할 방도를 찾을길 없었다. 그 괴물을 축출하고 내 소동하는 심기를 무마해줄사람은 바로 누님이였다. 오직 그만이 곡예사처럼 괴물을 능란하게 다루어내고 시시때때없이 머리칼을 쳐드는 싹을 전지(剪枝)해 다듬어 줄수 있을 것 같았다. 명의사처럼 그누구도 알길없는 내 의난증을 대번에 진맥해 낼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마냥 누님곁에 있고 싶었고 누님이 내곁에 있을수 있기를 바랬다. 될수만 있다면 보쌈하는 옛날 사람들처럼 누님을 랍치하여 내곁에 업어오고 싶었다. 사진관 진렬장에 붙혀있던 누님의 사진을 하학하는길이면 지나치면서 훔쳐보군 했는데 <<똥파리>>의 횡포에 의해 진렬장이 박살나고 지금은 그런 욕망조차 달랠수 없게 되었다. <<똥파리>>는 그사진을 가져다 자기집 웃방미닫이에 붙혔다. 미닫이를 닫으면 막을 닫듯이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죽일칼이 따로 없는 <<똥파리>>같으니라구!)
  회억대비중에서 늘 성토하던 대지주처럼 누님과 누님의 사진마저 깡그리 점유해버린 <<똥파리>>가 사무치게 미워났고 사무치게 시샘이 났다. 그처럼 다만 누님의 사진이라도 내가 신변에 갖추고 싶었다.
  나의 불가능할 것 같던 갈망이 어느날 드디여 출구를 찾았다. 어느 한번 <<똥파리>>네 집에서 누님의 사진필림을 발견했던것이다. 트럼프를 찾다가 찬장서랍에서 필림을 보았다. 희미한 필림 륜곽속에서도 나는 그것이 언젠가 상철형님이 현상했던 누님의 사진필림임을 대번에 알아 볼수있었다. 그 사진필림을 가만히 품속에 집어 넣었다. 아닌 보살을 하고 <<똥파리>>네와 짝을지어 트럼프를 놀았다. 내의 속에 집어넣은 필림이 껄끄러워 났다. 그리고 가슴에 불덩이를 품은 듯 좀체로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 놀지않으려 해도 짝이 딱 맞았기에 누구도 좀체로 놓아주지 않았다.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겨우 몸을 뺐다. 그러는 나의 뒤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회충>>이 말했다.
  <<김찬혁! 너 회충약 먹어야 겠다>>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누님의 사진을 뽑기로 마음먹었다. 내게는 상철형님에게서 얻어가진 사진종이 몇장이 있었다. 빛에 포광(曝光)되여 못쓰게 된 사진종이였다. 허나 그 사진종이로 사진을 현상하는 방법을 상철형님이 배워주었다. 포광된 사진장을 펴고 그우에 필림을 놓는다. 다음 그우에 유리장을 짓눌러놓는다.해빛에 한동안 쬐이면 거짓말처럼 사진이 나온다. 그것을 인차 책갈피같은데 끼워 어두운곳에 간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해빛을 보이면 사진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약물에 뽑은것처럼 선명하지는 못했지만 영상이 제법 똑똑이 나오군 했다. <<사진사촌>>이 될만큼 원시적인 현상작업이였다. 형님에게서 배운 이 놀이를 나는 평소에 가장 즐겼다. 누님의 사진을 내손으로 현상하여 신변에 갖춘다는 가벼운 멀미와도 같은 상념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렇게 나마라도 누님의 사진을 현상하여 내 신변에 갖추어 두고 싶었다.
  허나 련며칠을 무심한 하늘은 내내 흐린 얼굴이였다. 해빛이 없이는 사진을 현상할수 없었다. 그런 하늘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모른다. 앞이마를 긁적이며 나는 안절부절을 못했다. 일기예보를 명심해 들었고 <<북경의 금산에 해빛이 비추어 내리네>>라는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해뜰날을 기다렸다. 음운(陰雲)이 걷히고 해가 나오기를 조갈들게 기다렸다. 따스한 해줄기가 내려와 갈망에 타는 내 가슴을 어루만져 주기를 바라고 바랐다.
  그러다 며칠후 하늘이 드디여 우거지상을 걷우었다. 원체 나는 뜨락에 나가 사진을 현상하려 하였다. 허나 그날따라 곁집애가 마당을 차지하고 나앉아 있었다. 학급에서 공부를 제일잘했고 모주석의 어록을 잘 외워 <<앵무새>>라는 별호를 가진 계집애였다.  <<앵무새>>가 마당에 쪽걸상을 들고 나와 앉아 <<붉은 보서>>를 쳐들고 있었다. 얼마후엔 녀석이 또 남동생을 불러냈다. 동생더러 자기의 외우기를 시험치게 했다. 안절부절 못하다가 더는 <<앵무새>>를 기다려내지 못하고 거리로 나갔다.
  거리는 전에 없이 시끌벅적했다. <<무산계급문화대혁명10주년 기념>> 대행사가 온 현성을 무대로 펼쳐 지고 있었다.
  둥챵! 둥챵! 둥둥챵! 
  귀청이 얼얼하도록 북소리 꽹가리소리 징소리가 울렸다.
  <<무산계급 문화대혁명 10주년을 열렬히 경축하자!->>
  <<모주석의 무산계급혁명로선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자!->>
  <<등소평을 타도하고 우경번안풍을 배격하자아!->>
  열기 띈 구호소리가 울렸다.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좋다네! 좋다네! 정말 좋다네!>>
  선전차에 매단 확성기에서 노래소리가 쟁쟁히 울려나오고 있었다.
  붉은 꽃, 붉은 표어, 붉은 기발, 붉은 얼굴들... 거리는 온통 붉은 빛의 물결로 장관이였고 구호소리와 노래소리로 랑자하였다. 길녁의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묻혀 그 열광적인 무리를 지켜 보았다. 모두들은 뒤질세라 만세! 만세! 타도! 타도!하고 목청을 다해 구호를 웨치고 있었다. 그누구도 혁명적행동에서 남에게 뒤지지 않고 열성을 보이려 했다. 어쩌면 그때 모두는 일제히 어떤 악마의 주문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충동과 유치한 리념이 너나의 신심을 얽동이던 세월이였다. 어느 한번 학교에서 투쟁대회를 벌렸는데 반혁명학술권위를 타도하자! 자본주의 길로 나가는 집권파를 타도하자!고 선창을 받아 웨치던중 수발실의 령감이 주석대에 앉은 교도처주임에게 전화를 전달하느라 홍주임전화!_하고 웨치자 다같이 홍주임 전화! 홍주임 전화!하고 목청껏 받아 웨치고는 뒤늦게야 소리죽여 킬킬 거린적도 있었다. 어른네들의 그 까닭없는 흥분과 격분에 애초에 우리는 곤혹스러웠으나 차츰 하루가 멀다하게 벌려지는 투쟁대회와 비판대회에서 우리는 차츰 그 도에 넘는 격앙에 습관이 되어 버렸다. 
  시위행렬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나는 더는 기다려내지 못하고 그 행렬속에 끼여들었다. 나는 한 마리의 송사리 새끼처럼 그 <<붉은 물결>>을 거스르고 있었다. 혼잡한 악음에 귀때기가 잘려나갈 듯 얼얼해 났다. 나는 다급한 뇨의(尿意)같은 것을 느끼며 최면된 무리같은 사람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오려 허우적이였다. 어찌보면 요사이 나는 혼자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그렇고... 혁명적 열의로 격앙된 사람들과는 역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나의 머리속에는 그저 나와 <<짜그배 누님>>만의 장소를 마련하고픈 오렌지빛 열망으로 골똑 차있었다. 사진을 만들 합당할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매이였다.
  다리를 건너 교외로 나왔다. <<붉은 물결>>은 교외로 까지 이어져 있었다. 선전차가  교외를 순찰차처럼 느릿느릿 오가며 같은 노래 같은 구호를 축음기 풀 듯 반복하고 있었다. 밭에서도 농민들이 일하다말고 둘러앉아 전간(田間)경축회의를 열고 있었다. 논두렁마다에 붉은기가 꽂혀 있었다. 그러한 무리들중에서 나는 한사람의 락오된 유목민처럼 같아보였다. <<핍박에 못이겨 량산에 오른다>>더니 나는 논두렁길을 가로질러 산으로 치달아 올랐다.
 하나의 광란하던 세계를 뒤로하며  산에 올랐다. 산에는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여있었다. 봄원족으로 산에 자주 오는편, 산에 오면 흔한 것이 진달래건만 마음으로 진달래꽃을 의식하기는 처음이였다. 몸과 마음이 변화를 가져오는 계절이였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 눈을 열어주고 마음을 설레게하는 것이 단 너나의 마음을 간질이는 봄바람만 아니라는 것을! 흐드러지게 피여난 꽃이 아름다워 몇가지 꺽어들었다.
  내가 오른곳은 고향의 서남켠에 있는 <<대포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였다. 산정의 삐쭈름한 바위돌이 멀리서 보면 꼭 마치 대포와 같은 형국이였다. 왜정때 일본령사관에 부임되는 령사마다 괴질에 걸려 죽은데서 이에 풍수를 본즉 대포산의 그 <<포신>>이 마침 일본령사관을 조준하고 있기에 악에 받친 왜놈들이 박격포와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포신을 까버렸다는 전설로 유명해 진 산이다.
  산더기에 좀 더 오르자  산그늘이 몸을 적셨고 청렬한 내음의 솔향기가 코를 푹쌍 쑤시며 덮쳐왔다. 어데선가 이름모를 새들이 포목찢는 소리로 울어댔다. 자그만 현성이 손아귀에 잡힐 듯 한눈에 안겨왔다. 붉은 인파가 백지에 엎질러진 잉크처럼 거리와 골목에 번져 나가고 있었다. 산아래의 어느 학교에서도 사생들의 경축대회가 한창이였다. 교정에 매단 스피카에서도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세계는 동무들의 것이며
  또한 우리의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동무들의 것이다.>>
  노래소리를 들으며 나는 품속에서 땀에 화락하니 젖은 것들을 끄집어 내였다. 너누룩한 바위돌우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널어놓았다. 따스한 해빛이 정수리에 동침을 꽂고 있었다. 이름모를 격정에 나의 작은 가슴이 손풍금의 바람통같이 풀럭이였고  얼굴은 처음 홍주를 맛보았을때처럼 달아 오르고 있었다.
  바위돌우에 신문지를 펴고 사진종이를 놓았다.
  사진종이위에 필림을 놓았다.
  필림위에 손바닥만한 유리쪼박을 놓았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빛은 여느때보다 찬란했고 충족했고 넉근했다. 진달래 꽃가지를 손에 들고 유심히 들여다보며 사진이 현상되기를 기다렸다.
  사진종이위에서 누님이, <<짜그배 누님>>이 현신을 하기 시작했다. 빛은 능란한 회화대가의 터치로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우선 몸의 륜곽을 그렸고 다음엔 얼굴을 그렸다. 해빛의 붓끝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짧은 량태머리, 반듯한 이마, 상큼 쳐들린 코마루, 꽃이파리를 문듯한 입술, 투박한 질감의 옷을 쳐들며 선명하게 솟아오른 왼쪽가슴...  나는 산속에 묻힌 보물을 쑤셔내듯이 경희로움에 넘쳐 사진을 집어들었다. 누님이 그 서느러운 눈매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달래꽃을 누님의 얼굴에 대여보았다. 꽃기운에 묻혀버린 누님의 얼굴은 더욱 아름다웠다. 나는 아슴한 현기증까지 느꼈다. 꽃가지를 입에 물며 나는 주술에 잡힌 사람처럼 바지궤춤을 스르르 까내렸다. 산아래에서 바람을 탄 노래소리가 끊겼다 이어지며 환청처럼 들려 오고 있었다.
  <<세계는... 동무들의 것이며... 또한... 우리들의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동무들의 것이다...>>
  나는 <<짜그배누님>>의 사진을 눈가까이에 쳐들었다. 이번에누님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꽃잎같은 입술을 열고 옥돌같은 치아를 보이며 높은 가슴을 출렁이며 웃고있었다. 수즙음으로 단을 꺽고 잠복해있던 <<포신>>은 대번에 머리를 쳐들었다. 갈망에 넘친 그것은 튼실했고 뜨거웠다. 그 <<포문>>으로 나는 광분하는 도시를 겨누었다. 손을 천천히 그러다 잽싸게 움직이며 장탄을 했다. 조준경을 맞추었다. 입에 꽃가지를 물었기에 변조된 소리로  자기도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구령처럼 말을 복창하며 한가슴 가득 루적된 열망과 곤혹과 애증의 <<포탄>>을 련발했다.
  <<승미누나는 <똥파리>의 것이다. 아니, 또한 상철형님의 것이다..그러나 결국은  나의 것이다! 나의것이다!! 나의것이다나의것이다나의것이다!!!... >>
  까옥!
  머리우에서 청승맞게 까마귀 한마리가 울었다. 솔향기가 새삼스레 단김을 뽑는 내 코속을 휑구어 냈다. 새의 울음이 귀에 잡혀들며 숲은 다시 나의 것이 아닌 원래의 숲으로 되었다. 나의 입에서 꽃가지가 떨어져 나갔다. 나는 물우로 금방 솟아오른 사람처럼 학학 거렸다. 격한 피로와 허무를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느새 누님의 사진이 떨어져 발치에 뒹굴었다. 흥건한 욕념의 배설물이 묻은 손을 주체할길없어 하다 나는 바지전에 문지르고 사진을 주어들었다. 빛은 금세 서투른 개구쟁이 화가로 변해있었다. 남의 집 담장에 작난질치듯 먹을 풀어 재빠르게 락서하고 있었다. 누님이, <<짜그배 누님>>이 웃음기를 거두며 재빨리 장막뒤로 몸을 감추어 버렸다.
  툭!
  실의에 가득찬 눈물방울 하나가 사진종이우에 떨어져 내렸고 이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붉은 무용신

 
 
  <<짜그배>>누님의 꿈은 문공단(文工團에) 들어가 전업무용수로 되는것이였다. 누님은 혁명적 발레극의 녀배우들처럼 발가락끝으로 직립하여 설줄도 알았고 단숨에 맴을 10여고패 돌고도 숨가빠 하지 않았다. 허나 누님은 해마다 문공단 입시에서 락방했다. 사실 자그만 현성에 누님처럼 용모예쁘고 신장이 훤칠한 녀자는 없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으로 빼여난 누님이 소박맞게된것은 모두다 누님의 신분때문이였다.
  누님의 어머니가 원체 직업 무용수였다. 50년대 쏘련에서 있은 모스크바세계청년예술축제에 선발되여 나가 독무로 은상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후 쏘련에 류학가서 무용전수를 받고 돌아와 예술학원에서 무용교원직을 맡았다. 허나 문화혁명이 터지자 문예계에서 맨 첫사람으로 <<수정주의 분자>>로 락인되여 투쟁을 맞았다. 반란파들에게 두팔을 뒤로 틀리고 거리에 끌려나가 조림돌림을 당했다. 홍위병맹장들로 조직된 반란파들은 누님의 어머니가 쏘련에서 타온 영예의 은컵을 산산이 박산냈고 이 현성의 이름을 빛내준 최고의 무용가더러 비판석상에서 투쟁받는 동안 줄곧 발가락끝으로 직립해 서있게 강요했다. 쓰러지면 다시 끄잡아 일으켜 발가락끝으로 서게 했다. 문공단에서 트럼베트를 불었던 누님의 중국인아버지는 어머니와 계선을 갈랐다. 타격과 수모를 못이겨 누님의 어머니는 스타킹으로 목을 매였다. 자결할 때 무용가는 쏘련에서 휘황을 뽐낼 때 입었던 그 무용복을 입고 죽었다고 했다.
  그런 뼈아픈 사연이 있었지만 피는 속이지 못하는법 <<짜그배>>누님은 춤에 남다른 기량을 보였다. 집체호에 내려갔을때 인민공사에 조직한 사원문예공연에서 누님이 독무한 <<양돈장의 처녀>>는 단연 일등상보좌에 올라 농민대표로부터 붉은 댕기를 맨 새 낫과 새 호미를 상으로 타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현성에 이름짜한 <<수정주의분자>>인데다 본인이 집체호에서 있은 서기와의 불정당한 관계로 쫓겨 났기에 문공단에서는 체격조건이 뛰여난 그녀를 시종 외면했다. 당시의 시체용어를 빌어보면 <<사회주의 풀을 요구할지 언정 자본주의 싹을 요구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누님은 해마다 입시를 보았고 해마다 미끄러졌다.
  <<죽일칼 따로 없는 눔새끼들. 신분이고 뭐고 추, 춤만 잘추면 되지않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는 말도 있잖냐? 똥꼬치같이 무, 문공단에 불을 콰악 질러 줄가부다>>
  그러는 <<짜그배>>누님이 보기에 안스러웠고 현성의 소문난 건달이라도 용빼는 수가 없는 <<똥파리>>는 곁에서 그저 길길이 뛰며 악담을 퍼부을 뿐이였다. 그때마다 누님은 그저 입귀에 고소를 머금었다.   
  누님은 로어도 할줄 알았다. 어려서 어머니에게서 배운것인데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에서 교재로 지정한 중국어도 배우기 바쁜데 누님은 말마디마다 잡아당긴 엿가락처럼 길고 따가운 오그랑이 굴리듯 혀를 힘들게 굴려야 하는 바쁜 로어를 그렇게 류창하게 잘했다. 상철형님이 누님에게서 로어를 배웠고 곁에서 나도 얻어듣고 이국어로 풍월 몇마디를 읊조릴줄 알았다.
  안녕하십니까?- 쯔뜨랍싼드뿌이
  다시 만납시다- 따스삐따냐
  아버지- 아쩨쯔
  어머니- 마찌
  누님- 씨쓰뜨라
  거울- 쩨르깔라
  빗- 그레벤
  혁명- 레바류우쯔야
  승리- 빠베다
  춤- 딴쩨에쯔...
  나는 배운대로 누님을 <<씨쓰뜨라!>>하고 불렀다. 그 애칭을 누님은 몹시 종아했다.
  흥만나면 누님은 발끝으로 직립해 서는 특기를 보이군 했다.  하나 둘 셋 넷 세면서 시간을 재군했다. 누님은 백개를 셀때까지 외다리로 섰는 두루미처럼 우아하게 뻗쳐서있을수 있었다. 그러다  힘들면 곁사람에게 콱 무너져내리며 까르르 웃군 했다. 아픈 발가락을 문지르며 <<이 발에 무용신을 한번이라도 신어봤음 원없겠는데>>하고 한탄하군 했다. 만약 앞부리가 뭉툭한  그 특제무용신만 있다면 누님은 백개 셀사이가 아니라 하루종일 직립해서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용에 흥취가 있었기에 누님은 남들이 싫어하는 혁명발레극 <<홍색랑자군>>을 열번이고 싫증냄이 없이 다시 보군했다. 어느한번도 또 표 두장을 끊어왔다. 현성의 문공단에서 조선말로 <<홍색랑자군>>을 무대에 올렸다는 것이였다.
  <<또 그 춤추는 녀자군대냐?>>
  <<이곳 문공단에서 하는건데요>>
  <<영화두 재미없는데 이곳 초, 촌뜨기들이 하는거야 보나마나 더 개죽이겠지>>
  <<똥파리>>가 흥취없다는듯 돌아누웠고 누님은 혼자 가면 재미없다며 마침 곁에서 김표와 군기를 놀고 있던 나를 불러 데리고 갔다. 나는 주춤하다가 따라나섰다.
  <<좋겠다. <가분수>는!>>
  김표가 손을 입에 물며 나의 뒤모습에 부러운 눈길을 던졌다.
  사실 그 한동안 나는 <<짜그배누님>>의 가까이로 가지못했다. 누님이 내가 대포산에서 한 짓거리를 다 알고 있는것처럼 생각되였던 것이다. 풀물이 묻어 잘 지워지지않는 옷가지처럼 그날의 부끄러움은 나의 마음속 골방깊이에 짙게 배여 있었다.
 가까이 앉은 누님의 몸에서는 야싸한 치분같은 좋은 냄새가 났다. 처음 누님의 신변 가까이에서 나는 흥분을 곰삭이며 극장의  어둠과 즐거움속에 묻혀버렸다. 현성의 랑자군들도 영화속의 랑자군에 못지않앗다. 씩씩한 랑자군들은 모두가 붉은 무용신을 신고 있었다. 무용신을 신고서 팽이처럼 맴을 돌기도했고 발끝으로 직립해 서기도 했다.
  <<저 무용신을 봐라 멋지지!>>
  어둠속에서도 누님의 눈길은 감질난 부러움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홍색랑자군>>을 보면서 나는 중대한 결의하나를 뼈물러 먹었다.
  (이제 빵도 있게 될거구 우유도 있게 될거얘요. 그리구 무용신도 있게 될거얘요. 기다려요. 나의 씨쓰뜨라!)
  영화대사처럼 입속말로 이런말을 되뇌이며 나는 어떻거나 내손으로 누님에게 무용신을 하나 얻어다 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언감 문공단을 털기로 마음먹었다. 허나 이는 <<체조선생>>에게서 빠찌 하나를 떼여내기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얼리고 닥치고 하여 김표와 같이 갔다. 남의 속곳을 훔친 전례가 있는 녀석에게서 지도를 받고 싶었다. 나 역시 중기인 자전거를 훔친 성과가 있기에 둘이 함께 나서면 신 하나를 후려내는것쯤은 약과고 육중한 발풍금이라도 메여올수 있을 것 같았다.
  <<땅짚고 헤염치기다.!>>
  도와달라는 말에 시틋해 하던 녀석은 녀자들의 신을 훔친다는 말에 흥취를 보이면서 외려 자기가 나를 끌고 나섰다. 문공단에 어떻게 들어서나 했는데 녀석에게 방법이 있었다. 녀석은 도담하게 전달실로 곧추 찾아갔다.
  <<무용실이 어데 있어요?>>
  전달실의 뙤창으로 골을 불쑥 들이밀며 수위령감을 보고 높은 소리로 물었다.   
  <<누굴 찾냐?>>
  의자에 앉아 졸고있던 수위령감이 잠기묻은 소리로 물었다.
  <<그 있잖아요. <홍색랑자군>서 오청화역을 하는 녀자. 주인공말이애요. 그 사람 우리 누난데요>>
  <<오- 무용조의 홍매를 그러는구나. 홍매에게 남자동생 있다는 말 못 들었는데>>
  령감은 아직도 자다 깨지못한 얼떨떨한 모습이였다.
  <<아바이가 뭐 호구복사 담당 경찰이얘요. 난 둘째동생이애요. 누난 홍매구 난 동생 홍표구요.>>
  녀석은 이순간만은 슴벅거리던 눈을 한번 깜짝하지도 않고 짜장 연극을 놀고 있었다. 그 당당한 모습에 눌렸던지 령감쟁이가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3층으로 올라가라. 동쪽 맨 마지막 칸이 무용실이다. 지금쯤은 공연련습을 하고 있을거다.>>
  우리는 달음박질치다 싶이 하며 3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김표에게 엄지를 빼들어 보였다. 김표가 시뚝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했잖나. 땅짚고 헤염치기라고>>
  문공단은 시끌벅적했다. 칸마다에서 목구멍을 쥐여비트는듯한 발성련습소리, 악기의 현을 맞추는 앵앵거리는 소리로 랑자했다. 현관의 벽에 붉은 선전문구가 붙어있었다.
  <<모주석의 혁명적 예술정책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문예혁명의 창도자 강청동지에게 경례를 드린다!>>
  동쪽의 맨 마지막 칸에 무용조라는 패말이 붙어있었다. 쿵당쿵당  홀을 뛰여 다니는 발구름소리에 뒤섞여 익숙한 <<홍색랑자군>>의 주제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앞으로 앞으로
   전사의 책임은 크고
   녀성의 원한은 깊다...>>
  나는 무용실의 문을 살며시 열어젖혔다. 벽에 거형의 체경을 달고 나무로 바닥을 깐 홀에서 무용복차림의 팔등신 무용수들이 날아오르는 새떼처럼 몸을 솟구며 뛰여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발부터 여겨 보았다. 그런데... 모두가 앞부리가 뭉툭한 무용신을 신지 않고 있었다. 무용배우하나가 뛰기를 멈추고 빠끔 열렸는 출입문쪽으로 길게 찢어진 눈을 돌렸다. 나는 덴겁히 무용실의 문을 닫았다. 다음보조는 어째야 할지 망연해 있는 나를 김표가 툭툭 건드렸다. 김표가 말없이 손끝으로 무용실곁의 칸 하나를 가리켰다. 갱의실(更衣室)이라는 패말이 붙어있는 칸이였다.
  <<틀림없이 무대복장을 두는 칸일거야>>
  김표가 억양을 한껏 낮춘 소리로 속살거렸다. 그리고나서 녀석은 갱의실의 문을 가벽게 노크했다.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다시 한번 노크했다. 역시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김표가 문을 조심스레 밀어제꼈다. 찌꿍! 문소리가 났고 그닥 높지않은 소리에도 우리는 와뜰 놀라 했다.
  갱의실안은 혼잡했다. 아닌게 아니라 갱의실에는 무대도구며 복장들이 산처럼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아마 갱의실 겸 창고로 쓰이는것 같았다. 화장경대와 의자들이 벽에 줄느런히 놓여 있는외 구석쪽에 커다란 북 몇 개가 놓여져있었고 징이며 꽹가리며 기발들이 되는대로 뒹굴고 있었다. 벽에는 울긋불긋한 무대복장들이 현란하게 걸려 있었다. 무용복을 갈아입은 배우들의 나들이 옷도 걸려있었다. 그 무대복장이 걸렸는 아래쪽에도 못을 줄느런히 박고 소도구들을 걸어놓았다. 소도구들을 일별하는 순간 나는 흥분을 못이겨 앞이마를 긁적이여였다. 내가 보물처럼 애타게 찾고저하는 무용신이 바로 그곳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한 개도 아니고 20여개가 줄느런히 걸려 있었다. 일매지게 걸린 붉은 무용신은 흡사 산자락을 에돌며 피여난 진달래꽃같았다. 나는 얼른 그중 한 개를 벗겨 손아귀에 쥐였다. 경대쪽에 다가가 배우들이 쓰는 분갑이며 립스틱을 만져 보고있는 김표를 끄당겼다.
  <<찾았다! 얼른 내빼자>>
  알큰한 미소를 띄고 내가 갱의실의 문을 열려는데 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갱의실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같았다. 우리는 어쩔바를 모르다가  저마끔 커다란 북뒤에 몸을 숨겼다. 운동때면 트럭에 싣고 거리를 돌리며 두드려대는 거대한 북몇개는 고맙게도 우리들의 작은 몸뚱이를 감추어주기에 맞춤했다. 문이 열렸고 경쾌한 무대동작처럼 무용수 하나가 잰걸음으로 뛰여 들어왔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김표도 긴장한지 목을 자라처럼 움추린채 입에 왼손엄지를 꽉 물고 있었다. 무용수는 경대에 마주서서 땀에 젖은 얼굴을 닦고 화장을 고쳐 했다. 경대를 향해 구홍(口紅)을 바른 입을 오무려 보더니 다시 경쾌한 동작으로 밖으로 나갔다.
  후- 안도의 숨을 내쉬며 우리가 몸을 일으키는데 문이 또 한번 삐걱 열렸다. 우리는 다시한번 풀더미에 대가리를 처박는 암꿩처럼 북뒤에 몸을 옹송그렸다. 옹송그리고 앉아 잠수하는 사람처럼숨을 꺽 죽였다. 그런데 눈이 길게 찢어진 이번의 무용수는 인차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무용수는 온몸이 물자루가 되어있었다. 검은 무용복의 뒤잔등은 땀자욱으로 얼룩져 있었다. 무용수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있었다. 그러다가 무용수가 아무런 주저도 없이 무용복을 훌렁 벗어내쳤다. 무용수는 순간에 브래지어 한 장만 가린 반라의 차림이 되였다. 땀에 번들거리는 가슴팍이며 겨드랑이며를 수건으로 문질러댔다. 치모를 밀어버린 겨드랑이가 눈에 부시게 말끔했다. 김표의 눈이 반짝 빛났고 하얀 낯바닥이 모주먹은 돼지처럼 붉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녀석은 북뒤에서 머리를 슬그머니 내밀고 무용수의 반라의 몸매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땀을 닦아내던 무용수가 흠칫하며 경대에 눈을 박았다. 한참 들여보다가 우리쪽으로 머리를 홱 돌렸다. 김표가 바삐 머리를 움츠려 뜨렸다. 허나 그 순간 녀석은 그만 땅에 놓였는 꽹가리를 건드리고 말았다.
  쟁그랑!
  듣그런 소리가 높았다.
  <<누구얏!>>
  무용수가 수건으로 가슴을 가리며 소리질렀다. 무용복을 집어들고 후닥닥 밖으로 뛰쳐나갔고 급기야 현관에서 투명한 고음이 터져올랐다.
  <<류망이야!>>
  나와 김표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허둥거렸다.
  <<뻗어라!>>
  김표가 갈린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갱의실의 문을 박차고 뛰여나갔다. 우리를 본 그 무용수가 아직도 옷을 입지못한채로 서서 다시 한번 불덴 사람처럼 소리질렀다.
  <<류망을 잡아요!>>
  녀자의 고음은 촉이 예리한 화살처럼 우리의 등판을 노리고 날아들었고 그 화살을 피하려는 듯 우리는 악을 써가며 뛰였다.
  <<도둑도 아니고 하필이면 류망이냐?>>
  녀자의 그 정평이 마음에 들지않아 뛰면서도 씨부렁이였다.  김표가 먼저 허둥거리며 층계를 달아내려 갔다. 경황중에 나는 그만 손에 움켜쥐였던 무용신 한짝을 떨구고 말았다. 그런데 층계로부터 벌써 사람들이 웅성이며 달려오르고 있었다. 김표가 되달아올라 왔다. 악기실이며 성악실로부터도 사람들이 불쑥 불쑥 나왔다 김표가 오페라가수인 듯 체구가 굉장히 거쿨진 사내한테 덜미를 잡혔다. 나는 무용신을 주으려다 말고 현관막끝으로 뛰여갔다. 그곳에 비상층계가 있을거라는 환상으로 헐떡이며 뛰여갔다. 그런데 현관의 맨끝에는 층계도 없었고 출구도 없었다. 그저 창문이 달려 있을뿐이였다.
  <<서랏!>>
  좋이 10여명 잘되는 사람들이 웨쳐대며 해조처럼 나를 향해 밀려왔다. 그 얼굴들에는 격노가 서려 이글거리고 있었다. 무용신을 가슴에 품고나서  나는 저도모르게 창턱에 올라섰다. 화단곁에 자전거를 줄느런히 세워둔 문공단의 뜨락이 보였다. 3층이 그렇게 높아보일수가 없었다. 현기증이 치받쳐 올랐다. 격노한 사람들이 물결이 나를 삼킬 듯 지척에 다가왔고 들숨을 한번 길게 긋고나서 영화 <<10월의 레닌>>중의 경전적인 장면을 재현하며 나는 창턱에서 뛰여내렸다.
  터져오르는 경아성을 뒤로 하며 나는 죽지부러진 새처럼 추락해 내렸다. 화단곁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뒹굴면서 나는 3층의 창으로 콩나물시루속처럼 머리를 빼곡히 내민 사람들을 보았다. 전달실에서 령감쟁이가 뛰쳐나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덴겁히 몸을 일으켰다. 허나 발목이 류탄(流彈)에 관통된 듯 아파났고 몇걸음 못가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발목을 접질러먹은 아픔을 느낄새도 없이 그 련며칠을 어른들의 적대시의 눈길속에 반성을 강요당했다. 우리집까지 찾아왔던 문공단 일군들은 교원과 로동자대표출신인 아버지의 신분을 보아 나를 용서해주고 돌아갔다. 그어떤 경제손실도 없었고 우리가 한일도 그렇게 천추에 용서못할 짓거리가 아니였기때문 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녀자의 속곳을 훔친 전과가 있는 김표가 동행했기에 죄는 모두다 김표에게로 돌아갔고 나는 그애의 사촉에 따라 나선 것으로 어른들은 추정하고 있었다. 이붓아버지가 이약냄시 풍기는 몸으로 바싹 다가앉아 처음으로 나를 내놓고 질책했다. <<이는 부르죠아적 사유에 물든 파렴치하고 저속한 행위라고>> 로동자대표다운 정치술어로 일장 훈화를 했다. 나는 그저 머리를 수긋하고 심각하게 반성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끈질긴 점액질같은 지루한 설교를 귀등으로 흘려보내며 속으로는 그 떨구어버린 한짝의 무용신에 대해 내내 아쉬움을 머금고 있었다.
  발목에 냄새나는 호골고(虎骨膏)를 붙히고 련며칠을 집에 꾹 박혀 쉬였다. 덜썽거리며 <<회충>>이 병문안을 왔다. 김표가 사람들에게 맞아서 눈확이 색안경을 낀것처럼 됐다고 알려주었다. 그다음에는 <<똥파리>>와 <<짜그배>>누님이 함께 찾아 왔다. 다른 사람 아닌 <<짜그배>>누님을 보자 감옥에 갇혔는데 면회 온 친지를 보듯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원체 그를 위해 벌린 짓거리였고 하루빨리 누님을 만나고 싶었었다. 허나 직접 누님을 만나자 내 짓거리가 어처구니없게 생각되여 누님을 쳐다보지못하고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앞이마만 부지런히 긁적이여 댔다. 
  <<왜 그랬냐? 너두 <리, 림표>처럼 여자빤쯔 도둑질하는 훌륭한 스, 습관이 있냐? 춤추는 년들은 속에다 어떤걸 입고 다니는지 보, 보고 싶었어?>>
  <<똥파리>>가 나의 고약딱지를 붙힌 발목을 꽉 쥐여놓았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남들이 뭐라겠어? 이 동팔이가 녀자 속옷복장점 차, 차리나 하겠다. 이 똥꼬치들아>>
  <<똥파리>>의 얼굴에 는 어의 없다는듯한 고소가 비쳐들었다. 그러다 내 머리를 툭 쥐여박으며 웃었다.
  <<너 3층에서 뛰여 내렸다며? 또, 똥담 큰 새끼. 이 크다란 가분수머리가 터지잖구 무, 무사한게 모를일이다>>
  짜그배누님이 사과한구럭을 내놓았다. 뼈에 금간데 좋다며 <<백보단>>이라는 가루약도 사왔다. 그 외에도 무언가 하나 더 내놓았다. 그것은 요지경이였다.
  <<내 갖고 놀던건데 집에 박혀 심심할 때 돌려봐. 무척 재밌다. 이거>>
  부모님이 퇴근할 시간이 다가오자 <<똥파리>>와 누님이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저... 누나>>
  나는 주춤이다가 <<짜그배>>누님을 불러 세웠다.
  <<왜 그러니?>>
  누님이 기다란 속눈섭을 치켜올리며 나를 보았다. 나는 앉은걸음으로 밀고가서 장롱을 열어젖혔다. 그속에 신문지에 여러벌 싸서 숨겨두었던 것을 꺼내였다. 다시 앉은 걸음으로 밀고가 누님에게 어줍게 내밀었다.
  <<날 주는거야? 뭔데?>>
  의문을 쳐들며 누님이 받아 들었다. 신문지를 벗겨 내렸다. 신문지에 신주단지처럼 싸둔 것은 무용신이였다. 한짝만 남은 붉은 무용신이였다. 문공단에서 잡혀서 구박을 당하면서도 가슴깊이 갈무리해넣고 발견될가바 속을 태우며 보존해온 무용신이였다. 누님의 속눈섭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걸 가져오느라 문공단가서 그랬니?>>
  나는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미안해요. 한짝은 그만 떨구어 버려서...>>
  누님이 다가와 내 머리를 매만져 주었다. 축축히 젖었는 소리로 말했다.
  <<내가 공연한 소릴 해갖고>>
  누님의 감격어린 말을 귀가까이 들으며 나는 한짝의 무용신이나마 신고 두루미처럼 외발로 오연히 섰는 누님의 고혹적인 모습을 환영으로 보고 있었다.
  
  이제보니 누님은 나를 완연 어린애 취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나에게 문안오면서 하필이면 유치원생들이나 환혹할 요지경까지 가져다주었던것이다. 그래도 나는 누님이 좋았다. 될수만 있다면 정말 아이로 되어 누님의 손에 딸려 문시부(門市部. 잡화점)도 가고 극구경도 가고 싶었다. 우리 친구들중에 김표를 내놓고 모두 누나가 없었다. 더구나 나같이 외독자인 아이는 더구나 적었다. 나의 친부모는 나외에도 더 아이가 없었을가? 혹시 내게도 친누나가 있지않을가? 있다면 나의 누나도 <<짜그배>>누님처럼 저렇게 마음 착하고 저렇게 얼굴이 예쁠가? 나는 부쩍 누나비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발목 때문에 집에 들어박혀 있으면서 나는 부지런히 요지경을 굴렸다. 요지경에 눈을 들이대고 보면 현란한 세계가 펼쳐지군 했다. 꽃밭에 들어선듯도 하고 궁전에 들어선 것 같기도 하고 꽃불폭죽이 터져오른 것 같기도한... 그런 기하학적 도안들은 나를 설둥하게 만들었고 작은 짓거리에서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개구쟁이들처럼 나는 요지경이 좋았다. 외눈망원경을 들고 섬을 찾는 수부처럼 요지경속에서 무언가 찾아내려는 듯 굴리고 또 굴렸다. 찬란한 해빛을 빌어 굴절된 세상을 아름답게 보기시작했다.
  접질린 발이 조금 나아지자 나는 집에서 배겨내지못하고 종전처럼 거리에 나섰다. 발을 살룩살룩 절면서도 사진관이며 영국더기며를 찾아 다녔다. 머리도 마침 길어져 또 누님네 리발관을 찾아갔다. 내가 3층에서 뛰여내리는 <<거사>>를 치르며 즐겁게 해주려 했던 누님을 다시 찾아보고 싶었다.
  이날따라 리발소는 시끌벅적했다. 멀리서부터 리발소 문앞에 사람들이 바자를 두르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웬일이냐?고 나는 사람들 틈사리를 비집었다. 욕설을 삼태기로 먹어가며 겨우 창문께까지 비집고 다가가 까치발을 하고 유리창에 낯을 붙히고 힘겹게 들여다보았다. 리발관안에서는 란투가 벌려지고 있었다.
  아낙네 몇몇이 달려들어 어떤 녀자를 짓누르고 그의 머리를 가위로 마구 자르고 있었다. 풍성한 머리칼이 흩어져 내렸고 잘린 머리칼들이 락엽처럼 흩날렸다. 리발의자에 짓눌린 녀자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시악을 썼으나 악착같이 달려드는 대여섯 잘되는 아낙네들을 당하지 못했다. 나중에 녀인은 체념한 듯 태아처럼 반항한번 하지않고 아낙네들의 짓거리에 몸을 고스란히 맡기고 있었다.
  <<이 천하의 갈보년아>>
  <<개같은 마우재 종자년아>>
  <<헌 신짝같은 년아>>
  <<가랭이 찢어죽일년아>>
  녀자들은 내가 여직껏 들어본중에 가장 더러운 낱말들을 깡그리 동원하여 녀인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그중에  리발관의 점원인 <<닭둥이머리>> 아낙도 보였다. 아낙네 하나가 어데서인지 헌신짝 하나를 가져다 끈을 지어 녀자의 목에 걸어놓았다. 입에 게거품을 물고 허연 목덜미들을 붉혀가며 한동안 만용을 부리고나서야 아낙들은 지친 듯 손을 멈추었다. 그네들에게 짓눌렸던 녀자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쥐여뜯긴 녀자의 머리는 소낙비를 두들겨맞은 까치집처럼 꼴불견이였다. 입귀는 터져 피가 배여나왔고 얼굴도 손톱에 할퀴여 벌거죽죽 자리가 나있었다. 적삼 앞섶이 찢어져 앞가슴이 훤히 들여다보 였다.  녀자는 목에서 헌 신짝을 풀어내렸다. 초점잃은 눈길을 들어 리발관의 출입문과 창에 코를 납작하게 붙이고 모여선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처참히 지치러든 꽃 한송이를 보았다. 나의 입으로 가느다란 비명이 새여나갔다. 난생처음 <<회충>>과 란투를 벌려보면서 단단한 일격을 받았을때처럼 멍해지고 말았다.  콩단처럼 뒹굴며 암팡진 아낙들에게 당하고 있는 녀인은 다름아닌 <<짜그배 누님>>이였던 것이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창에서 물러섰다.
  (왜? 누님이 뭘 잘못햇는데?)
  나는 일순 어쩔바를 몰라했다.
   <<저 천하 갈보년이 이번에는 문공단 부단장과 붙었다누만>>
  <<몇해고 시험에서 미끌어지더니 배우가 되고싶어 환장했나보지>>
  <<배우 시험치려면 시험장에서 해야지 이불속에서 해서 되남?>>
  창가에 붙어선 사람들이 잔뜩 흥미로운 눈길을 하고 윤나는 소리로 수근덕거렸다.
  한동안 망연자실해 서있다가 나는 돌쳐서서 내 뛰기 시작했다. 발목의 아픔도 잊고  내뛰기 시작했다. <<영국더기>>를 향해 내뛰여 갔다. 
  <<똥파리>>를 불러 <<짜그배누님>>을 구할 생각이였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다시 리발관으로 찾아왔을 때 암펌같이 날치던 문공단 단장의 녀편네와 휘동해온 아낙네들은 사라지고 리발관에는 고요를 되찾고 있었다. 그곳에 <<짜그배 누님>>은 보이지 않았다. 어데갔느냐는 물음에 란장판을 수습하고 있던 <<닭둥이 머리>>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몰라요 또 어느 군사낼 찾아갔겠죠 뭘. >>
  누님을 구박하던 녀인들속에 가세해 끼여들었던 <<닭둥이 머리>>는 한껏 야유하며 말했다.
  <<쥐, 쥑일 칼 따로 없는 녀, 년들>>
  <<똥파리>>가 누구에게도 모를 악담을 퍼부었다.
  저녁, 나는 밥맛을 잃었다. 누님의 추연한 눈빛과 까치집처럼 된 머리가 자꾸만 눈앞에 선연히 떠올랐다. 그리고 강다짐으로 누님의 목에 걸어놓은 하필이면 무용신도 아닌 헌신짝이 의문스러웠다. 밥알을 모래알 씹듯하다가 나는 참지못하고 어머니에게 헌신짝이란 뭘 의미하냐고 물었다. 어머니의 놀란 눈길이 나에게 맞혀왔다.  <<흐루쑈브 동지>>의 눈빛도 어머니와 마찬가지, 못본 풍경을 보듯 나의 입을 뚫어져라고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뭐 반동언사라도 내뿜었나? 아니면 국가기밀이라도 루설했나?)
  그 눈길이 싫어져  머리를 수긋하고 밥을 조겨대기 시작했다. 한가슴 가득한 의문덩이를 밥과 함께 꿀꺽 힘겹게 삼켜버렸다. 앙큼한 짓에는 능수인 김표와 물어서야 그 헌신짝이 갖는 상징의미를 알수 있었다. 중국사람들이 세상 더러운 녀인네를 비해 하는 말이라는것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짜그배 누님>>이 어떻게 되어 더러운 년이돼? 어떻게 헌 신짝이되냐 말이야! )
  나는 아낙들의 횡포와 그 저주에 의문스러웠고 경악해 했다.
  그 며칠동안 나는 헌신짝을 찾기에 골몰했다. 그런데 집에 흔하던 헌 신발들은 신발공장에 일하는 이붓아버지가 들어오면서부터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집은 남보란 듯 새 신발을 신고 다니군 했다. 나는 하필이면 신발공장에 다니는 이붓아버지가 미워나기 시작했다. 어느모로 보나 미운 <<흐루쑈브 동지>>였다.
  <<왜? 폐품수구소라도 차릴 작정이냐?>>
  나의 난데없는 짓거리에 김표가 의문과 야유를 보였다. 자기네 집에는 헌 신짝이 없고 정 얻고 싶으면 종발로친의 신을 얻어다 주마고 했다. 녀석에게서 재미를 잃고 나는 <<회충>>을 찾았다. 그에게서 헌신짝 몇 개를 얻을수 있었다. 또 먹을것과 바꾸었다. . 평소에 <<회충>>을 구워삶기는 쉬웠다. 먹거리만 주면 재롱을 부리는 곡예단의 원숭이처럼 만수받이로 무엇이든 다 들어주군 했다. 그런데 이번만은 녀석이 괴까다롭게 굴었다. 내가 먹고있던 <<손가락 과자>>  한웅큼을 내주었더니 녀석이 머리를 저었다.중국사람들이 만들어 파는 얼음 아가위 한꼬챙이를 사주고 바꾸려니 녀석이 머리를 저었다. 문시부로 가서 <<신바닥 과자>>를 사주려니 역시 머리를 저었다. 나중에 <<흰토끼>>표 우유사탕 한근을 사주고야 헌 신짝들을 바꿀수 있었다. 먹는데 몹시 탐하는 녀석은 내가 과자 한봉지를 다 내주었더라면 자기 어미가 지금 신고있는 신이라도 벗겨올 위인이였다. 나는 그무슨 보물함이라도 간직하듯 냄새나는 그 헌 신발짝들을 지니고 집으로 돌아왔다. 호시탐탐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밤, 나의 심기를 알아주듯이 마침 현성은 또 정전이였다. 야음을 타서 나는 <<짜그배 누님>>을 구박주었던 그 몇몇 아낙네 집을 찾아다니며 문고리마다에 헌신짝을 그 무슨 악마의 주문처럼 꽁꽁 비끄러 매 놓았다. 
  그때 사춘기에 갓 접어든 나에게 있어서 <<짜그배>>누님의 출현은 내장을 상하게 할만큼한 매력의 맹독을 지니고 나를 침식해 왔다. 누님은 내가 배꼽줄 자르고 나와서 처음으로 녀자를 의식하게한 녀자였다. 또 누님은 내 심성에 저장된 아름다움의 이미지가 가리키는 그런 사람이였다. 누님이 내게 주었던 요지경속의 무늬처럼 누님은 그렇듯 불가사이했고 그렇듯 아름다웠다. 나는 처음 이상야릇한 괴질같은 상사(相思)의 병을 앓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언젠가 앓았던 홍역처럼 얼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아프게 더 번거롭게 나를 괴롭혔다. 지금의 말을 빈다면 누님은 나의 우상이였고 꿈속의 련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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