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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함께 춤을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3117  추천:73  작성자: 김혁
닭울음소리 한 가닥 들을작시면
- 을유(乙酉)년 잡감(3)

닭과 함께 춤을

김혁|소설가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칭송된다.

머리에 있는 볏(冠)은 문(文)을 상징하고, 삼지창 같은 발은 내치기를 잘 한다 하여 무(武)로 여겼으며, 적과 용감히 싸우므로 용(勇)이 있다고 하였고, 먹이가 있으면 자식과 무리를 불러 먹인다 하여 인(仁)이 있다 하였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니 신(信)이 있다 하였다. 게다가 우리 인간에게 알과 고기를 주니 그보다 더한 익조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 조상들의 생각이었다.

닭은 다른 가축에 비해 취소(就巢, 알을 품음)성이 강하다. 몸은 작지만 한꺼번에 20알 정도를 품어 부화시킬 수 있다. 알을 품으면 매우 열심인데 식음을 끊고 뜨거운 가슴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 새매 따위의 육식 새들이 병아리를 낚아채려 들면 급하게 새끼들을 불러 품안으로 모으고 만약 병아리가 새들의 발톱에 걸려들면 어디에 그런 힘과 용기가 숨어 있었던지 날개를 푸드득 이며 크게 싸움을 벌인다.《암탉이 제 새끼를 품안에 모으듯 한다》는 말은 바로 지극한 모성애를 상징하는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닭의 그런 모성에 감격하여 《어미 닭과 병아리》라는 시를 지은 적 있다.
제 새끼를 건드리면/목털은 곤두서서/ 고슴도치를 닮았네/ 낟알을 찾아내면/ 쪼는 체만 하고/ 새끼 위한 마음으로/ 배고픔을 참네

사실 닭처럼 부지런한 동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 모이를 쪼지 않고 멍하니 있는 닭을 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알을 품을 때와 홰를 치며 울 때 정도만 빼 놓고는 하루 종일 먹이를 먹으러 고개를 조아리며 다닌다.

또한 수탉은 그 자부심과 사나움,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점을 닭싸움이라는 일종의 스포츠에 활용해왔다. 볏을 곤두세우고 상대에게 용감하게 달려드는 모습에서 닭의 강인함과 용맹성을 찾을 수 있다.
또 수탉이라는 이름은 남성의 성적 능력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수탉은 남성이 갖춰야 할 조건인 가정을 지키려는 용기와 시간의 변화를 판단하는 현명함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리상적인 남성 상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생태학자인 데스먼드 모리스는 닭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닭은 자연상태에서는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로서 농장이나 야생지, 모이통을 비롯한 모든 곳에서 흔히 《쫓기서렬》로 알려진 사회적 위계(位階)질서를 발전시킨다. 자기보다 우인 닭에게는 복종하고, 아래인 닭은 거느리는 것이다. 개개 닭들이 무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안정적인 질서를 유지하는데, 많게는 90마리의 무리에서도 그 서렬이 유지된다고 한다.

닭은 한낱 흙 속을 헤집고 뒤져 벌레와 풀 따위를 알아서 찾아 먹는 놓아먹이는 새이다. 하지만 그들은 해와 바람과 별을 알았다. 이는 자연순환에 깊이 조률돼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이들에 비추어 볼 때 혼란에 허둥대는 우리의 사회적 위계와 질서는 극히 중요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누구나 다음은 무슨 띠의 해인가 살피고 그 띠 동물에서 새해의 운수를 예점(豫占) 하려 한다. 새로운 띠 동물을 대하면서 그에 나타난 상징적 의미를 통해 어떤 새로운 기대를 걸어 보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올해에는 을유년 닭의 해, 우리모두 시간을 알리는 닭처럼 새끼를 품는 닭처럼 새매와 싸우는 닭처럼, 자부심을 지니고 사랑을 알며 신의를 지키는 강인한 인간으로 자신을 가꾸어 봄이 어떨가!

불교에서는 닭을 깨달음의 주체를 지닌 동물로 여기고 있다. 닭울음소리에 귀기울인 서산대사의 일화가 그 일례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때 70의 나이로 승병을 모집하여 서울을 되찾는 데 공을 세운 승려. 큰 의문에 부닥쳐 울증(鬱症)에 빠져 있던 서산대사가 하루는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낮닭이 홰를 치며 크게 울었다. 닭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대사는 의문이 풀리면서 확연히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대사는 다음의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홀연히 본래의 내 집을 얻고 보니(忽得自家底)/모든 것이 다 이러할 뿐(頭頭只此爾)
천만금의 보배도(萬千金寶藏) 본래 한 장의 빈 종이일 뿐이로다. (元是一空紙)
이제 외마디 닭 울음소리 들을작시면 (今聽一聲鷄)/장부의 할일 모두 마쳤어라(丈夫能事畢)

대사의 이 시구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바라나니 을유년 닭 해를 맞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짧은 닭 울음이 깨달음의 기연(機緣)이 될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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