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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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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마라손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3045  추천:73  작성자: 김혁


봄날의 마라손



... 150여년전의 3월8일 미국 뉴욕의 방직녀공들이 비인도적인 공작환경과 12시간 장 로동과 낮은 로임등 악렬한 환경에 항거해 나서 파공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3.8절이 국제녀성절로 자리매김 되였고 변강의 오지인 여기(연변-편자주)에서도 큰 명절로 떠오르게 되였다.

사실 발렌타인데이(情人節)이요, 크리스마스요하면서 서양의 명절까지 당겨 와 즐기는 요즘세태에 매일매일을 우리는 명절 같은 기분으로 지내고 있다. 때문에 잡다한 명절은 이전처럼 그렇게 커다란 감흥을 자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덴가 대장부주의적 마른 호기에 물 젖어있는 나는 하필이면 여자들의 명절에 땀을 뚝뚝 떨구며 열성을 보이는 사내들을 좀 그런 눈길로 뇌꼴스레 흘려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안해와 그럴듯한 3.8절을 보낸 기억이 별루다.

미안한 고백이지만 재작년 녀성절은 안해와 큰 전쟁을 치르는 것으로 보냈다. 그날이 녀성들의 명절이였다는 것은 출근해서 직장녀동료들의 까닭없는 우월감 어린 모습들에서 느끼고 되었고 그런 무감각함에 안해는 어지간히 배알머리가 꼬였던 모양이였다. 그날 밤, 명절의 권리를 행사한다고 안해는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었고 나는 조용한 기회에 쓰고있던 작품을 마무리해보려고 컴퓨터를 열었다.

그런데 컴을 열자 모니터의 초기화면에 현시되는 커다란 글발-
“녀편네들 명절도 몰라주는 린색한 량반, 리기적인 량반, 당신 남편자격 없어요!!!”
어쩐지 그 글발들이 찜찜해서 화면의 글발을 지우려 했지만 뜻대로 되어주지 않았다.

지금은 자기 홈피도 설계할수 있는 어중간한 수준의 컴광(狂)이가 되었지만 그때 나는 안해에 비해 컴에 대해 숙맥이였다. 화면의 글을 지우려다 그만 어떻게 다쳐놓았던지 컴이 도스상태로 들어가고 말았다. 컴컴한 화면에 알고도 모를 영문자모만이 비 온뒤에 찍혀 진 닭발자욱같이 괴발개발 오려진 화면을 볼려니 까닭없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고 나는 더는 참아내지 못하고 안해의 핸드폰을 눌렀다. 노래방에 있던 안해의 목소리가 커졌고 따라서 나의 목소리도 높아 갔다. 결국 그 3.8절은 싸움으로 한단락 짓고 말았다.

그 일이 은근히 속에 걸려 다음 3.8은 좀 잘 보상하리라 마음먹었다. 하다못해 안해에게 라면이라도 손수 끓여주리라 생각했다. 가정이 파렬의 번개를 맞은 뒤 오랜 시간 독신생활을 해온 나에게서 다른 것보다는 라면 끓이는 솜씨 하나만은 만만치 않다.

나에게는 남다른 라면작식법이 있다. 우선 라면국물은 맹물로 하지 않고 쌀을 우려낸 쌀물로 한다. 그래야 국물맛을 낼수 있다. 다음 라면양념은 다 넣지 않고 절반가량 갈라 넣는다. 느끼하지 않도록, 다음 김치 국물도 부어 넣고, 양파도 사각으로 보기좋게 썰어 넣고 마늘도 다져 넣는다. 그리고 나만의 비밀인데... 중국전통음식인 붉은 썩두부(紅方)도 좀 떼여 넣는다. 그렇게 한식도 중국식도 아니게 끓인 죽탕같은 라면이지만 맛보면 누구하나 엄지를 빼들지 않는 사람이 없다.

허나 그3.8의 아침, 전날 산재지역에서 온 작가들을 배동하느라 제야가 넘도록 술 마시고 숙취에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분명 입 양태가 곱지 않게 변형되여 출근했을 안해에게 전화를 넣어 사탕먹은 꾀꼴새같은 목소리로 저녁에 맛있는걸 많이 사주마고 량해를 구했다. 안해는 점심은 회사에서 굉장히 회식이 있으니 저녁에 남편이 손수 끓인 천하일미의 라면이라도 맛보겠다고 했다. ok! 나는 흔쾌히 답복했다.

그런데 오후 나절에 얼음채찍처럼 나의 신심을 강타하며 날아든 까닭 없는 흉보(凶報)의 전화! 안해가 교통사고로 하남병원에 들려 갔으니 당장 오라는 호출이였다. 천방지축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쩌면 자기들의 명절에 교통사고에 당착했다.

몇 명이 당했는데 왜 서였던지 그중 뒤 좌석에 앉았던 안해의 상처가 가장 심했다. 안해는 머리를 열다섯코나 꿰매고 탈진한 듯 누워있었다. 녀성절이라 직근담당외의 간호원들 대부분이 명절 쇠러 나가고 그 3.8절을 우리는 썰렁한 병원의 구급실에서 보냈다.

침대곁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오랜만에 안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원체 요란스레 치장할줄 모르는 소박한 모습이다가 명절이라 사 입은 새 털세타는 피자욱으로 칠갑이 되어있었다. 가슴을 에이는 아픔을 이겨내며 살을 꿰맨 안해는 이제 조금 통증이 잊혀지는지 금방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런 안해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눈을 지질러 감고 누운 안해를 보노라니 왠지 회한의 감정에 가슴이 뭉클해 났다.

하필이면 글밭을 뚜지는 남자에게 환혹해 안해는 온갖 비난조소를 이겨내고 처녀의 몸으로 아이까지 딸린 나에게로 시집왔다. 일가혈육 한사람 없이 외홀로 셋방집에서 책과 술과만 벗해 자포자기하고있는 나에게 새 아침의 창을 열어 주었다. 여덟 살 난 내 딸애와도 거리를 좁히려고 무등 애를 썼다. 철부지 딸애는 안해를 언니라고 불렀다. 내가 여러번 닥닥질해서야 겨우 아지미로 호칭이 정해 졌다.

결혼 전날, 안해는 머리를 얹으러 미발청을 찾았다. 아지미가 좋은 딸애가 나의 눈총에도 부득부득 안해의 뒤를 묻어 나섰다. 머리를 얹어주던 미발사가 축하의 말을 하며 신랑이 무얼 하는가 자상히 물었다. 안해는 나의 신랑은 작가얘요, 좋은 책도 많이 펴냈구요 하면서 남편에 대한 자호를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뒤에 앉았던 원체 종알거리기 좋아하던 딸애가 불쑥 끼여들어 까랑까랑한 소리로 웨쳤다.
“그 사람 울 아버지애요!”

온 미발청의 직원과 고객들의 눈길이 졸지에 안해에게로 몰부어졌고 안해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안해는 조용히 나의 뒤를 묻어 섰고 달가이 글 외에는 또 글밖에 모르는 가난한 문인의 안해로 되었다. 그의 내조가 없었더라면 원체 불우하기 짝없는 인생력정를 밟고 있는 나는 그 험지를 다 헤쳐나가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이런 안해에게 금곡밥, 은곡밥을 못해 드릴망정, 명절에 홀대까지 하다니! 미안해! 를 속으로 련발하며 나는 그저 안해의 머리발에 엉겨붙은 피딱지들을 샅샅이 훑어 냈다. 지난해 3.8절 이렇게 나는 내 생애의 잊을수 없는 명절을 지냈다.

아르헨띠나의 한 사회학가는 “근년래 사회결구의 급변과 더불어 전통적인 가정결구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는바 단친가정, 재혼가정들이 많아지면서 우리는 새 코스달리기로 새로운 정(情)의 문화에 적응되여야 한다”고 피력했다.

3.8이라는 명절을 세계화시킨 150년전 녀공들이 그때 제기한 구호는 "빵과 장미"였다. 여기서 빵은 생활보장이요 장미는 생활질량을 징표해 말한다. 이제 안해와 나에게서 빵도 만들고 장미도 키우는 새로운 생활만들기가, 새로운 코스 익히기가 시작되였다. 서로 보듬고 서로 이끌며 우리는 마라손선수처럼 끊임없이 달려 가야한다. 그것이 무양(無恙)한 탄탄대로이든 질척이는 험난한 소로이든...

예로부터 제 녀편네 자랑을 하는 놈은 “팔불출”이라 했다. 허나 올해 3.8만은 좀 “팔불출”이 한번 돼 봐야겠다. 남자의 성숙치 못한 호기를 달가이 버리고 안해에게 사랑의 표시를 해야겠다. 하다못해 나의 특기인 라면이라도 손수 끓여 올려야겠다.

쌀을 우려낸 물로 라면국물을 만들고 라면양념을 조금 갈라 넣고, 김치 국물도 조금 부어 넣고 양파도 사각으로 썰어 넣고, 마늘도 다져 넣고, 붉은 썩두부(紅方)도 좀 떼여 넣고, 그리고 나의 마음도 큼적히 떼여 넣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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