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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 단상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2842  추천:73  작성자: 김혁

 
. 문화칼럼 .


무자년 단상

독고혁
 


1


세방살이에 밀려 부초처럼 떠돌 때의 일이다.
세방값이 싼 쪽을 택하다보니 시교쪽에서 지낸적 있는데 그 세집이 밭과 가까워 쥐가 들끓었다. 몇천권에 달하는 소장한 책들을 마땅히 둘곳 없어 헛간에 까지 무져 두었는데 그 집을 떠나오면서 보니 맙시사! 책들이 쥐떼의 화를 입은것이 아닌가!

쥐들이 하필이면 책을, 한 두책도 아니고 무려 백여권 되는 책을 썰었는데 어쩌면 한결같이 서배(書背)를 썰어놓은 것이였다. 분석해 보니 책을 제작할 때 바른 서배의 풀을 핥고 갈아 먹은 것이였다.

그때로부터 원체 혐오스러운 형상의 쥐는 나에게서 가장 꺼리는 동물의 1순위로 각인되였다.

2


새해가 되면 보통 그 해의 띠로 상징되는 동물의 의미를 담아 덕담을 건네곤 한다. 그러나 올해는 사실 그러기가 쉽지 않다. 다름아닌 쥐띠해이기때문.

쥐에 대한 이미지는 늘 부정적이다. 쥐는 농작물을 해치고 곡식을 훔쳐먹으며 불결한 곳을 들락거리며 전염병을 옮기기도 한다. 이에 인간들은 옛날부터 쥐 퇴치에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지탄의 대상이 되여온 쥐이기에 관련된 속담이나 표현도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쥐뿔도 모른다, 쥐 뜯어먹은 것 같다, 쥐포수 같다(사소한 리익을 얻으려 애쓰는 사람을 비유), 쥐구멍에 홍살문 세우겠다. (가당치 않은 일을 주책없이 이루려함을 이름), 쥐구멍으로 소 몰려 한다. (도저히 되지 않을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하려고 듦)

하지만 사실 쥐는 인간과 가장 인연이 깊은 동물이다. 이미지와는 달리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도 깊다.
쥐는 지구상 인류와 함께 가장 널리 분포됨을 자랑하고 있다. 구석기 유적의 화석에서 발견된 것을 보면 쥐가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해온 것을 알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집에서 쥐가 사라지면 집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해 집을 수리했고 쥐들이 높은 지대로 이동하면 홍수가 날 징조로 보고 그에 대비했다.

이제는 우리의 일상과 떨어질수 없는 컴퓨터, 그 조종기 격인 마우스- 역시 영어로는 쥐라는 뜻이다. 

쥐띠는 평생 부자로 산다고 알려져 있으며, 근면하고 성실하게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속설이 있다. 이는 쥐가 선천적으로 눈치빠르고 어려운 여건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습성에서 나온 것이다.

 
쥐는 력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상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 갑을병정(甲乙丙丁) 등의 십간(十干)과 자축인묘(子丑寅卯) 등의 십이지(十二支)의 글자를 아래우로 맞추어 날짜의 명칭으로 사용한 것은 3천년 전, 이것을 년대로 표기한 것은2천년 전, 한대(漢代)로 부터였다.

십이지의 첫자리에 쥐가 놓이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하필 많은 동물 중 쥐가 첫자리에 놓이게 되였을가? 사연을 말해 주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옛날, 옥황상제가 동물들에게 지위를 주고자 했다. 그 선발 기준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정월 초하루에 제일 먼저 천상의 문에 도달한 짐승으로부터 그 지위를 주겠다고 했다. 정월 초하루가 되여 동물들이 앞다투어 달려왔는데 소가 가장 부지런하여 제일 먼저 도착하였으나 도착한 바로 그 순간에 소에게 붙어 있던 쥐가 뛰어내리면서 가장 먼저 문을 통과하였다.
쥐는 자신의 한계를 일찍 파악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결국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은 것이다.

쥐는 문화적으로 재물, 다산, 풍요기원의 상징으로 간주되였으며 그 근면성과 인내력은 칭찬을 받아 왔다. 농사의 풍흉(豊凶)과 인간의 화복뿐만 아니라 배길의 사고를 예시하거나 꿈으로 알려주는 령물로 받아 들여졌다.

문학 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중국 최초의 시가집인 “시경”의 “석서(碩鼠)”편에는 큰 쥐가 백성에게 세금을 과중하게 거둬들이는 것을 탓하는 장면이 있다.
…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식량 앗아가지 말라/3년이나 널 보살폈는데도 날 보살필 생각은 없구나/이제 너를 버리고 저 평화로운 지역을 찾아가련다

다산 정약용의 노행(奴行)이라는 시에서 쥐는 간신과 수탈자에 비유된다.
… 백성들은 쥐 등쌀에 나날이 초췌하고/기름 마르고 피 말라 뼈마저 말랐다네

이 작품들에서 쥐는 폭정을 일삼는 임금을 은유하고 군주의 정치가 간신배들에 의해 피폐화됨을 나타내고 있다. 


3


대망의 2008년 무자년(戊子年) 새해가 밝았다.

무(戊)는 만물이 자라서 풍성하게 얽혀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 자(子)는 태아가 자리 잡은 모습을 본뜬 글자로 자손을 의미, 글자풀이만으로도 풍성함을 의미한다.

또한 쥐는 12지 동물의 으뜸으로서 새로운 한 시대를 열어가는 상징적 의미도 지닌다. 강한 활동력과 부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21세기에 사뭇 어울리는 띠라고도 할 수 있다.

올해 무자년, 쥐의 지혜와 생명력으로 희망을 열어가는 풍요로운 한 해가 됐으면 한다.

 

 

 

기자 블로그: http://blog.hani.co.kr/kh99

 "연변일보" 週刊 "종합신문" 200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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