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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독서만필-2] 서커스하는 녀자
2009년 06월 05일 14시 24분  조회:1878  추천:37  작성자: 김혁

 

김혁 독서漫筆 (2) 

 革 독서만필 (2)

  

서커스하는 여자  

전경린을 읽다
전경린의 작품은 많이 읽지 못했다. 중국과 한국수교이후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와 폭이 넓어져 신경숙이며 은희경이며 하성란이며 한강이며 등등 한국 녀류작가들의 적지 않은 작품들을 두루 읽어왔지만 전경린의 작품은 웬지 다른이들에 비해 많이 읽지 못했다.

외려 전경린을 알게 해준것은 그의 작품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을 각색한 영화 《밀애》를 보고서였다. 좋아하는 한국녀배우 김윤진이 열련을 펼친 영화에 매료되여 dvd로 소장해두었고 가까운 문우들에게 적극 추천하면서 빌려주기도 하다가 너무나도 탄탄한 시나리오구성을 느껴 누구인가 나중에 훑어보니 전경린의 작품을 각색한것이였다.

소설가 전경린

그의 작품을 문자로 읽은건 고작 한편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녀인》뿐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 한편만으로 족했다. 그 작품이 21세기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계관을 쓰고있어서가 아니였다.

우리가 읽어온 한국 녀류작가들의 작품들에는 거개가 사랑과 슬픔, 권태와 불륜, 령혼과 눈물, 류랑과 귀향… 녀성의 섹슈얼리티문제를 제기하려는 신열에 가까운 몸부림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 심취된것은 전경린이 철두철미한 리얼리즘에 천착하는 한국의 허다한 녀류작가들과는 조금 달리 환성이 가미된 리얼리즘의 모습을 소설에서 보여주고있어서였다.

 전경린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을 각색한 영화 "밀애" 의 포스터

소설은 몸이 공중에 뜨는 괴상한 캐릭터의 녀자를 주인공으로 하고있다.
몸이 공중에 뜨는 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집을 떠나 서커스단장과 함께 어떤 섬에 들어간다.
서커스단 단장인 최모는 《정처없고 황량하고 불안해보이는》 이 녀자를 사랑한다. 하지만 녀자의 사랑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령혼을 지닌 남자 《류》를 사랑한다. 《류》와 녀자를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최모는 녀자와 류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녀자는 모두가 떠나간 섬에서 원숭이, 타조, 불곰, 표범들과 함께 우리속에서 팔려갈 날을 기다린다.
어찌보면 골치거리 이 소설이 왜 나더러 쥐게 만들고 단숨에 읽게 만들었을가? 그 독서담은 간단하다.  녀성문제의식을 담고있는 이 소설이 남과는 다른 매혹적인 문체와 더불어 다른 한 개성으로 의미를 갖고있었기때문이였다. 작품을 읽는 동안 마치 겨울밤 이야기군에게서 이국적인 동화를 듣는듯한 환상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여있었다.
《저는 공중에 뜰수가 있어요.》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지만 서커스단장은 전혀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문체실험적성격을 모른채 책을 쥐였던 나는 적이 놀랐고 작품에 점차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초현실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결코 현실속에서 다른 존재의 내면에 방문할수 없다.  존재와 존재가 만날 때의 단말마적인 뒤틀림과 몽환성과 전률, 당신과 나는 세계의 표면이 열리는 그런 초현실성의 통로를 통해 잠시 결합하는것이다.》 
전경린의 어느 에세이의 한 단락이다.
《현실과 환상 사이 본질적인 경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고 전경린은 이 작품의 수상소감에서도 자신의 평소와는 달랐던 창작방식을 밝혔다.

작품을 읽고 작품평을 찾아 읽으니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녀인>은 서커스라는 특이한 상황속에서 부단히 방황하고 방랑하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소외와 단절 그리고 사랑과 저항을 뛰여난 감수성으로 묘사한 수작이다.》라고 평론가들은 격찬하고있었다.

전경린의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녀주인공도 다른 한국 녀류작가들의 작품과 례외없이 녀성에게 강요되여온 제도적인 삶과 저항하며 여전히 같은 욕망과 열정으로 녀성의 삶을 관통해간다. 허나 그 표현방식은 사뭇 다르다. 녀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기 남편과 아이들이 살고있는 집을 떠나온후 이 세상과의 모든 관계의 끈을 모두 놓아버린다. 이 끈으로부터 풀려나고싶은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녀자를 《공중에 떠오르는 서커스 녀자》로 가공해냈으리라.

결국 전경린의 소설은 《공중에 뜨는 녀자》라는 환상적인 설정으로 우리에게 결혼과 가족이라는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생의 욕망이 지시하는 길을 따라간 상실의 령혼을 살아가는 한 녀자의 삶을 보여주고있다.

기상천외한 작중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랭혹한 운명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의 삶과 저항을 읽게 되며 어느덧 심오한 존재론적 고뇌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흔히 페미니즘문학은 아프다.
이제는 그에 심드렁해지려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과 재미(?)를 갖게 해준 전경린의 작품이였다. 

    *** *** *** *** ***

몇해 전 판타지작품 한편을 습작 발표했었다. 다년간 문체실험에 대단한 열성을 보여오며 첫창작집도 초현실주의 작품의 제명을 땄던 나는 내내 문체실험의 성격을 띈 작품이면 애정을 가진다. 그래서 어찌보면 우리 문단에서 처음으로 되는 판타지작품을 만들면서 다른 작품에 비해 더 많은 품을 들였었다.

고심을 보였고 꽤 권위성있는 잡지 톱소설로 나갔음에도 문단에서의 반응이 미비했다. 그래서 내가 꾸리고있는 블로그와 몇몇 까페에 올려보았는데 외려 거기서 반응이 좋았다. 조회수가 천여회로 치솟은건 물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에 대한 과분한 찬사가 리플로 올라왔다.

생각이 착잡했다. 첫판타지작품이 랭담의 호수에 가라앉은건 나의 작품의 수준미달에도 있다고 자아위안을 했다. 그러나 놀라운건 적지 않은 독자 그리고 지어 같이 창작하고있는 문인들끼리도 이러한 문체에 반신반의, 지어 거부감을 갖고 작품조차 읽지 않은것이였다. 좀은 유감스러워졌다. 무라카미의 소설을 읽으면서 또 한번 우리의 작품이 갈수록 관념과 자아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데, 이는 열독자와의 거리를 멀리 두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일전에도 언급한적 있지만 여러가지 쟝르를 다루고있는 나에게 그중 한가지만 선택이 주어졌다면 무얼 택하겠는가고 물었을 때 나는 두말없이 동화를 쓰겠다고 대답한적 있다. 그리고 절박히 창작해야할 창작스케줄을 어느 정도 완수했다는 느낌이 올 그때에 가면 모든 쟝르를 접고 동화창작에만 몰두할것이라고 했다. 문학의 원형이라 말하는 체험을 토대로 작가는 작품세계를 형성해간다고 한다. 그러나 상상의 활동을 통해서 작가의 그 체험이 비로소 보편적인 확대와 효력의 힘을 얻을수 있다고 볼 때, 이러한 표현방식이야말로 과학적인 개념과 대응되는 이른바 문학의 궁극적인 단위가 아닐가. 

사실 우리들은 환상에 익숙한 독자들이다. 박래품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말고도 어려서부터 교과서처럼 접해왔던 중국의 고전들인 《서유기》,《봉신연의》,《료재지이》등은 환상작품의 극치인것이다.

독자들은  환상에서 감출수 없는 열망이나 현실비판,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 미래에 대한 호기심어린 전망, 영원하거나 궁극적인것에 대한 향수 등 다양한 숨은 그림을 찾을수 있다. 이제 와서 구태여 언급하는 환상은 창조의 요람이자 삶을 움직이는 엔진임을 새삼 확인하는것은 덤이다.

《붉은 수수》의 작가 막언(莫言)의 창작담 한구절을 빌어본다.
《오늘날 소설에는 언어도 있고, 이야기성도 있고, 구조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가 없는지 아십니까? <신비한 그 무엇>이 없습니다.
소설은 허구적인 신비를 노래하는것이거든요. 소설가가 언어와 이야기, 구조를 다 장악한다고 해서 독자에게 읽히고 위대한 작품이 되는건 아닙니다. 제가 고향을 제 서사구조에 끊임없이 삽입하는것도 이 세가지외에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죠. 고향에는 신화의 세계가 있고, 인간의 령혼을 위로해주는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가 있지요.》 

현실과 환상 사이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즐겨 다루어온 막언의 지적에서도 볼수 있다싶이 문학생태학에서 불균형이라 말할수 있을 정도로 환상의 고갈과 쟝르에서 단일을 우리는 보이고있는것이다. 따라서 어찌보면 우리 조선족 독자들의 맛망울도 경직되여 한가지 맛에만 버릇되여버린것 같다.

공상적이면서도 가능성을 지닌 미적표현을 통하여 인간일반의 보편적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독자들에게 크나큰 즐거움과 황홀한 미감을 준다는 점에서 이러한 쟝르의 일독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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