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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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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참을 찾아서
2010년 03월 19일 11시 35분  조회:3568  추천:29  작성자: 김혁


. 평론 .

문학의 참을 찾아서

― 김혁의 소설 읽기


장춘식
 

 

0. 김혁, 누구인가?

1965 년 9월 9일 룡정 출생. 다섯살때 우리 글을 깨쳐 여섯살 소학교에 입학할 때에는 장편서사시를 줄줄 외우며 선생님들을 놀래운 천재의 소년. 그런 그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을가? 그런데 그때문에 조금 탈선했다고 강제퇴학을 당하지만 퇴학을 당한 두달후엔가 그의 작문이 콩클에 입선하여 상패와 상금으로 라지오를 받게 된다. 선생님들도 소년의 능력을 인정하여 재등교통지를 냈으나 김혁은 고리끼처럼 사회대학을 다닌다고 룡정과수농장의 주물공장 주물공으로 취직을 해버린다. 이때 그의 나이 17세였다.

그 이듬해에 연길시교의 닭을 깨우는 부란공장에 부란공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 다음해에는 소설로 문단에 등단을 하며 또 그 다음해에는 고2 중퇴 학력으로 신문사기자에 등용된다. 그후 김혁은 중단편소설 70여편, 장편소설 2편, 시, 수필 300여편을 발표하며 20여차에 걸쳐 문학상을 수상한다. 우리 문단의 중견으로 당당히 자리를 굳힌것이다. 《금방 사회인으로 들어선 19세의 소년으로서는 파란만장하고 화려하다 할만한 경력이였다. 바로 이러한 경력과 이제 쌓아가야 할 경력이 그의 소설의 심층구조를 이루고있음은 당연한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그의 경력이 문학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로부터 비롯된 김혁의 문학은 과연 어떤 문학일가?

1. 순수에의 집착

소설은 자아와 세계가 상호우위에 립각한 대결을 벌이는것을 기본특징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러한 대결은 서사적으로 갈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갈등은 이야기의 기본적인 모습이기때문이다.

김혁의 다수 소설들, 특히 작가 개인의 경험적요소가 많이 드러나는 작품에서는 기본적인 대결이 순수의 상징 혹은 지향이나 정신적인 삶의 원칙 대 세속적인 삶 혹은 물질적인 욕구 사이에서 벌어진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진선미(^善美) 대 위악추(伪恶醜)의 대결이라 할수 있을것인데 이들 대결의 그룹들은 그러나 진, 차진(次차차진…차차위, 차위, 위… 식으로 차원이 다양하여 복잡한 양상을 나타낸다. 그러한 양상속에서 소설의 다양한 의미망이 이루어지는것이다. 정보의 다양성과 립체적묘사라는 시각에서 이는 김혁 소설의 장점이 된다고 할수 있다.

먼저 중편소설 《적(笛)》(도라지, 1994년 5호)의 경우 이러한 진선미와 위악추의 대결은 적(笛) 즉 피리로 대표되는 예술의 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작품은 김혁이 문단에 등단하여 거의 십년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만큼 성숙기에 이루어진 작품임을 알수 있다.

여기서 대결의 초점은 예술에의 몰입과 세속적인 욕구 사이의 갈등에 맞추어져있다. 엑스타시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예술에 몰입한다. 김성호의 표현을 빌리면 《예술의 엑스타시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악사 피리로 령험을 찾아 무아의 경지에 거의 이르다가 대자연속에 그채로 굳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기본적인 줄거리다. 단 여기서 《대자연속에 그채로 굳어버렸다》는 표현은 약간의 어페가 있는것 같다. 왕의 부름을 거역하는 수단으로 왼손의 손가락을 돌로 짓이갠다는것은 피리 부는 예술가로서는 파멸이라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른손으로 스승이 못다한 《악론》을 완성시키겠다는 결구부분의 의미로 보아서는 음악가로서의 파멸이라 보기는 어렵기때문이다.

작품에서 스승의 존재는 음악으로 대표되는 순수의 상징물이다. 세 친구의 음악적재질을 발견하고 가르치면서 음악의 최고경지라 할수 있는 《악론(乐論)》을 편찬한다는 표현은 결국 어떤 상징적인 모티프를 만들기 위한 장치라 할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상징된 순수, 즉 음악을 둘러싸고 세 제자들이 변화의 과정을 연출한다. 먼저 셋째가 순수를 포기한다. 하루동안 피리를 불며 음악에서의 퇴출을 위한 통과의례를 거쳐 현령이 되여 권력과 공명을 추구하며 이어 맏이도 같은 통과의례를 마치고 음악의 세계에서 퇴출하여 푸주간의 백정이라는 생계형의 삶을 선택한다. 이들 두 제자의 항복은 결국 세속적삶에의 귀의가 될것이다. 그만큼 순수를 지향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겠다. 이것이 대결의 제1단계가 된다. 제2단계의 대결은 끝까지 순수, 예술의 경지를 고집하는 주인공 악사 즉 둘째제자의 신변 혹은 의식 내부에서 벌어진다. 먼저 자식이 우물에 빠져 죽고 이어 안해가 소금장수를 따라 도주하며 나중에는 애인인 《춘향루》의 녀인마저 자살하고만다. 주인공의 의지를 동요시킬만한 주변의 상황들이다. 비록 약간의 심적인 동요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결국 다 극복해낸다. 그리고 이즈음에서 악사의 예술적추구는 세상사람들에게 인정될듯한 상황이 벌어진다. 임금이 악사를 궁중에 불러들이는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였다. 임금이 궁녀와의 섹스때 피리소리를 즐기기때문에 악사를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것이다. 이때에야 악사는 순수와 세속적인 삶은 통하지 않으며 심지어 타협마저 불가능함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순수를 선택한다. 자신의 손가락을 돌로 까서 궁중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은 오른손으로 스승이 못다 쓴 《악론》을 완성시키고자 하는것이다. 작가가 인식하고있는 예술정신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섹스마저 음악의 경지와 률동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표현력은 작품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고있다.

중편소설 《바람과 은장도》나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 《꽃뱀》 등 작품도 작품의 구조나 주인공의 성격들이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결구조는 비슷하다. 한결같이 순수와 세속적삶의 대결로 이루어진것이다. 《바람과 은장도》에서는 장현수라는 인물이 춤으로 대표되는 순수에 집착한다. 무용선생 차수경에 대한 짝사랑은 그의 순수에의 집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그 순수의 상징이라 생각했던 차수경이 예술을 배반한다. 따라서 차수경을 칼로 찌르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될지도 모른다. 세속적인 삶에서는 범죄가 되지만 순수에의 지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고상한 행위라 볼수도 있기때문이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은 순수에의 지향성을 포기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이올린에 천부를 지닌 방황은 사랑과 물욕이라는 세속적인 삶의 욕구에 항복하며 결국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했던 술공장이 망하고 사랑의 욕구를 만족하고자 했던 기녀에게서 성욕외의 만족을 얻어내지 못하며 다시 자연의 유혹 즉 바다의 유혹에 빠짐으로써 음악의 신성함을 되찾으려 하나 그것마저도 실패하여 죽은 인어가 되여버린다. 비록 자아와 세계의 대결에서 자아가 패하는 셈이지만 작가의 지향성은 여전히 순수에 맞춰져있다. 《꽃뱀》 역시 비슷한 경우이다. 현식과 현우라는 쌍둥이 형제는 순수와 세속이라는 두 상징성을 지닌다. 윤주라는 녀성이 먼저 현식을, 그리고 나중에는 현우를 사랑하게 된다는것은 세속에 의한 순수의 유린을 의미하겠고 현식의 파멸은 순수의 파멸을 시사한다고 할수 있다.

그러니까 《적》에서 《바람과 은장도》, 《바다에서 건져올린 바이올린》, 《꽃뱀》에 이르기까지 비록 더러 순수가 파국을 맞기도 하지만 작가의 지향성에서는 항상 순수를 우위에 놓고있는 셈이다. 다만 작가는 순수가 유린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라 가끔은 망설이고있기도 한다. 그만큼 작가의 고민과 현실인식이 절실하다는 말이 될것이다.

 

2. 새것에의 끊임없는 도전

김혁은 항상 고민하는 작가이며 동시에 항상 새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작가이다. 소설, 시, 수필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작품활동을 하기도 하고 좀더 많은 정력을 쏟았다고 할수 있는 소설분야에서도 력사소설, 판타지소설, 황당소설, 초현실주의소설 등 여러 장르와 기법들을 두루 섭력한다.

중편소설 《천재죽이기》(도라지, 1995년 5호)는 그러한 김혁의 실험정신이 잘 표현된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에 대해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나 규범의 파괴를 들어 이른바 쉐르알리즘 즉 초현실주의 소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나 규범을 파괴하였다면(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해체미학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보는것이 옳다. 이 작품이 초현실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 볼수 있는 리유는 환몽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주인공의 의식과 그런 주인공의 의식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태연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의식때문이 아닐가 한다. 초현실주의대가로 알려진 리상의 시와 소설작품들을 군데군데 인용함으로써, 또한 장절의 번호를 거꾸로 달았다든지 주인공의 이름을 엉뚱하게도 남성이라는 의미의 영어 man으로 하였다든지 하는 파격적인 구성 등은 그러한 환몽과 현실의 간격을 허물어버리는 역할을 하며 따라서 작품의 초현실적인 느낌을 강화시켰다고 볼수가 있다. 초현실주의는 경험의 의식적령역과 무의식적령역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수단이기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절대적실재, 즉 초현실속에서는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적인 리성의 세계와 簫蘭??있다고 보는것이다.

《사업에서는 빼여난데 대인관계나 사교술에서는 풋바지저고리로 정평이 나있》는 어느 회사 직원인 man. 그는 백과사전을 페이지, 줄까지 통채로 기억하는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천재라는 말로 불릴만한 존재이다. 그런 그가 회사에서는 돌리우고 마누라에게는 눌리고 사회적으로는 외면당한다. 겨우 티브이 오락프로에 나와 시청자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심심풀이로 리용되다가 결국 버려지는것이다. 여기서 대결의 주체는 정의이다. 앞에서 지적한 순수의 다른 형태가 될것이다. 그리고 보는바와 같이 대결의 결과는 주체의 파멸로 잠정 결론이 난다.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병든 우리 사회의 세태를 비판한 셈이다. 여기에는 사회 격변의 시대 가치오류 혹은 가치상실로 인한 허무주의적인 인식도 내재되여있다. 그런 허무주의는 천재가 가장 필요한 지식산업시대에 천재를 죽이는 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려낸데서도 알수 있지만 리상이라고 하는 20세기 중반 허무주의시인의 시작품들을 간간히 인용함으로써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즉 초현실주의기법의 도입에는 허무주의적인 인식이 상당히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단 작품에서 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린 man에 대한 청소부아줌마의 관심에서는 작가의 긍정적인 인식이 엿보이기도 한다. 주류사회의 외면에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우선 순수 대 세속의 대결이라는 김혁 소설의 구조를 업데이트시키면서 외연 확대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찾을수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눈에 띄이는것은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실험정신이다. 김혁이 추구하고있는 새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초현실주의라는 기법적인 시도에 이르러 괄목할만한 효과를 획득하고있는것이다. 은근히 드러나는 허무주의는 자제해야 하겠지만 서사적인 긴장감의 지속적인 유지와 동일 분량에 보다 많은 정보를 수용하면서 립체적이고 다각적인 주제의 표현에 성공했다는 점은 긍정해야 할바이다. 이것을 나는 항상 문학의 참(에 접근하고자 하는 김혁의 작가정신으로 보고싶다. 돌이켜보면 김혁의 문학행위는 그러한 문학의 참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에 다름아닌것이다.

3. 자기를 넘으라

중편소설 《불의 제전》은 우리 문단에서는 흔히 볼수 없는 판타지기법을 도입하고있다. 의사결정(투석처리)이나 범죄자 처벌의 방법(刺目刑, 《불기와 지짐》등), 불에 관련된 사실과 금기들, 불을 먹는 개 불독, 그리고 작품에 자주 나오는 화당(火塘), 화택(火宅), 남하족(南河族), 북산족(北山族), 곡성(哭城), 족장(族長) 등의 낱말들은 조건적인 설정이면서 동시에 일부는 고대 부족사회에서만이 존재했던 개념들이다. 판타지이면서 다분히 신화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설정이라 하겠다. 구태여 명칭을 붙인다면 판타지력사소설이라 부를수 있지 않을가 한다. 끊임없이 새것에 도전하며 문학의 참(에 다가가려는 또 다른 노력의 소산이라 할수 있다.

그러나 대결구조에서는 다시 《적(笛)》의 그것에 돌아간다. 다만 이번에는 명(스승)과 진(제자) 즉 《적(笛)》에서의 스승과 제자가 대결의 공동주체가 되고 족장과 장로들이 대결의 객체가 되여 얼마간의 변화를 보이고있다 하겠다. 그러나 춤 즉 예술을 중심으로 대결이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부터 이웃부락 산북마을의 춤사위를 배우기 위해 담을 넘어갔다가 잡혀 척목형을 당하는 명, 무용경색에서 돈에 의한 부정심사때문에 우승을 빼앗기는 진과 같은 시각에 일어난 어머니의 죽음, 교, 염 등 화신무용단 무용수들의 리탈, 애인 유의 처형과 죽음 등 여러가지 시련들은 결국 순수와 세속의 대결로 이루어진것이다. 모든 고통과 분노를 이겨내고 불과 한몸이 되는, 그래서 인간에게 불을 주는 경지, 그것을 김혁은 예술의 극치라고 보는듯하다.

순수와 세속의 대결을 통한 순수에의 지향, 그것은 당연히 가치있는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여러 작품을 통해 하나의 지향을 반복 풀어나간다는것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제한 혹은 구속할 우려가 있다. 이 작품에서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낯설게 하기의 시도가 엿보이고 또 내용적으로도 곡성(哭城)을 사이에 둔, 원래는 같은 부족이였다가 력사적원인으로 분단된 두 부락의 관계설정, 부락민간의 교류와 비밀래왕에 반해 두 부락 통치자들의 정치적인 갈등 같은것을 통해 조선민족의 분단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것 등 작품의 의미확장을 위한 시도들이 보이지만 문제의식은 순수에의 지향, 그리고 그것을 파괴하며 소외시키는 현대사회 가치의식의 타락에 대한 비판에 한정되여있다. 작가 김혁으로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다른 작품들을 더 들 경우 김혁 소설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한정된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가지 주제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또 다른 문제의식의 발견과 제시에 영향을 주게 되며 결국 사상의 페쇄를 야기시킬수도 있다. 비록 이 같은 주제의식의 집착이 작가 자신의 경력과 경험의 문제에서 비롯된것이라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때문에 좀더 개방적인 시각으로 주제발굴을 시도해야 하지 않을가 한다. 그래서 나는 김혁에게 자기를 넘으라는 충고를 주고싶기도 하다. 우리 문단의 중견이 되여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소설가로서 사회와 민족과 력사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응분의 역할을 해야 할것이다.


장춘식(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

 

연변문학 2006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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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연암
날자:2007-06-30 06:01:51
한편의 씨나리오를 보는 것 같습니다.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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