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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해외 동시산책

하청호 동시바구니
2017년 02월 20일 19시 34분  조회:1337  추천:0  작성자: 강려

겨울 산

하 청 호    

  •     겨울 산에 가면
        깊은 생각에 잠긴
        나무를 본다.
        맨몸으로 하늘 향해
        꼿꼿이 서서.

     

        쉬임없이 재잘대던
        산 개울물도
        걸음을 멈추고
        하얗게 앉아 있다.

     

        이따금 산새 두 마리
        깊은 생각 속으로 날아든다.

    (2004년 겨울『아동문학평론』제113호)

 

고향

 하 청 호    

     시냇가에 나가
     세수를 하려 하니
     해님이 먼저
     제 얼굴울 씻고 있었다.

 

     '이제 왔니.'
     해님은 환한 얼굴로
     나를 반기며
     금빛 물살을
     두 손 가득 담아 주었다.

   제목을 왜 '고향' 이라고 했을까요? 도시에서는 모두 집안의 수돗물로 세수를 합니다. 세수를 할 만큼 맑은 시냇물도 없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냇가에 나가 아침해가 잠긴 시냇물에 세수를 할 수 있는 시골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 이라고 했습니다.
  해님이 두 손으로 떠 주는 금빛 물살을 생각해 보셔요. 자연과 내가 떠 주는 금빛 물살을 생각해 보셔요. 
  자연과 내가 하나로 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김종상)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하 청 호    

비 오는 날
연잎에
빗물이 고이면
가질 수 없을 만큼
빗물이 고이면

 

고개 살짝 숙여
또르르또르르
빗물을 흘려 보내는 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가질 만큼 담는 것을.

 

 

구석

하 청 호    

  •    마당이 환하다.

       햇살은 밝게 비치고
       바람이 향기롭게 맴돈다.

     

       그런데 저기
       마당에서 밀려난 벌레들과
       여린 풀들
       온갖 잡동사니들은
       구석에 모두 모여 있다.

     

       가끔 길 잃은 햇살이
       한 줌 빛을 뿌리고 가는
       어두운 구석.

     

       누가 알까
       마당이 저리도 환한 것은
       구석이 있기 때문인 것을.

    (2007년 대구아동문학회 연간집 『꿈밭에 모여』)

 

누에고치

하 청 호    

누에고치는 실패 같아요.

 

엄마가 실타래를 풀어
실패에 정성껏 감듯

 

누에는 입에서 한 가닥
고운 명주실을 뽑아내어
칭칭
고치에 감아두었어요.

 

집에서 학교까지
몇 번이고 다녀올 만큼
길고 긴 실을
고치에 감아두었어요.

 

누에고치는
누에가감아 놓은
하얀 실패 같아요.

(2007년 여름 『오늘의 동시문학』)

   시인은 누에고치를 보면서 실패를 상상하고 있다.
  "시는 오로지 상상의 언어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다른 여러 생각과 감정에 의하여 무한한 형상으로 빚어내는 것"이라고 헤즐리트는 말한다.
  여기서 이미지란 누에고치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길고 긴 실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힘과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이미지가 시적 분위기나 배경, 상황을 제시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성자)
 

 

눈길이 머문 자리에

 하 청 호    

   꽃의 눈길이 머문 자리에 네가 있고
   나비의 눈길이 머문 자리에 네가 있고
   별빛, 달빛이 머문 자리에도 네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그러나 친구야, 정말 네가 좋은 건
   내 눈길이 머문 자리에
   네 해맑은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 눈빛 속에 네 눈빛이 잠겼으면 좋겠다.
   정말 좋겠다.
   

   친한 친구를 멀리 떠나 보내고 나니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합니다.
  이제는 잊었겠지 싶은데도 어느새 그 친구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곤 한답니다.
  하청호(1943~) 시인이 정든 이와의 이별 뒤에 온 애절한 그리움을 '눈길'과 '눈빛'의 시어 변주로 노래합니다.
  그래도 이런 그리움은 퍽 아름답지 않습니까? 
(박덕규)
 

 

돌다리

 하 청 호    

  깡충
  깡충
  별들이 건너뛰다가

 

  퐁당
  퐁당
  물 속에 빠져 버렸다.

 

  반짝
  반짝
  냇물 속에 빠진
  수, 수만의 별
  별들.

 

 

무릎 학교

 하 청 호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칠판도 없고
    숙제도 없고
    벌도 없는
    조그만 학교였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걱정이 없는
    늘 포근한 학교였다.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귀한 것들을
    이 조그만 학교에서 배웠다.

 

    무릎 학교
    내가 처음 다닌 학교는
    어머니의 무릎
    오직 사랑만이 있는
    무릎 학교였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닌 학교는 무릎 학교입니다. 
  오직 사랑만 있는 어머니의 무릎. 
  그 곳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귀한 것을 배웠습니다.
 (하청호)

  칠판도 없고 벌도 없는 그런 학교가 있다니! 믿지 못하시겠지만, 잔뜩 기대하고 읊어봄 직한 시가 아닐까요?
  그 학교가 결국은 '어머니의 무릎'인 것이 좀 실망스러우신가요?
  무릎학교, 하고 다시 말하면서 눈을 감아 보세요. 사랑이 밥이고 책이고 운동장인 그 곳에 내가 있고, 포근한 기운이 몸을 감싸게 되는 걸 느낄 테지요.
  음식을 먹을 때는 꼭꼭 씹어 먹고, 책을 읽응 때는 또박또박 소리내어 읽으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박덕규)

 

            잘 아는 사실에 빗대어 표현하라


  어머니의 무릎을 사랑이 넘치는 사랑의 학교에 비유하고 있다.
  오직 사랑만 있는 어머니의 무릎, 이 시가 빛나는 것은 그런 어머니 무릎을 '학교'로 바꿔놓은 것이다.
  잘 모르는 '무엇'을 잘 아는 '무엇'으로 바꿔놓는 것이 비유이다.
  시를 쓰려는 사람은 시적 대상을 잘 아는 다른 것으로 바꿔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준관)

 

 

미루나무

 하 청 호    

  매미가 운다.
  온통 매미로 뒤덮이는 미루나무
  반짝이는 잎새
  그것은 그대로 매미가 된다.


  등허리 반짝이며 달라붙은
  수, 수만 매미 떼가 된다.


  흔들릴 때마다
  더욱 자지러질 듯 쏟아지는
  저 매미 소리.


  여름날 냇가 미루나무는
  커다란 매미다.
  커다란 울림통이다.

 

 

 발자국

 하 청 호    

  •    진달래가 피고
       산 찔레가 피고
       들국화가 피었다.


       철따라 피는 꽃은
       시간이 딛고 간
       고운 발자국.

    (2004년 9월『시와 동화』제29호)

 

봄날(1)

하 청 호     

  바람도 샘을 하나
  꽃샘 바람
  개나리 꽃망울
  벙글다가 만다.

 

  우물가
  일찍 나온
  미나리 새순
  꽃샘 바람 시새움에
  입술이 파랗다.
      

   시새움이란 자기보다 좋거나 잘 하는 것에 샘내는 것을 말합니다. 봄이 되어 샛노랗게 피는 고운 개나리꽃과 파란 미나리의 예쁜 새순을 바람이 시새움을 한다고 했습니다.
  개나리꽃의 아름다움과 미나리 새순의 귀여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김종상)
 

 

봄날(2)

 하 청 호

  •  봄이 오는 연못
     햇살이 눈부시다.

     새로 돋는 풀잎
     연한 목이
     연못 깊이 내려가 있다.

     햇살은
     봄 햇살은
     물 속까지 따라가
     연초록 풀잎을
     감싸주고 있다.

     은빛 목도리처럼,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봄에

하 청 호 

   한 겹 
   또 한 겹

 

   장미꽃 봉오리에 
   포옥 
   싸인 오월

 

   나풀
   나풀 
   노랑 나비
   한 겹
   꽃잎을 벗기고 가고

 

   윙―
   꿀벌 
   또 한 겹
   벗기고 가고

 

   아!
   반쯤 핀 장미꽃
   속엔 
   햇살이 오월을 
   품고 있네.

<1973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보통 내용에 새로운 시의 빛…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 가운데에서 하청호의 수 편의 시가 고른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봄에」를 당선작으로 결정한 것은 퍽 즐거운 일이었다. 그 까닭은 그 동안에 당선된 동아일보 동시 부문의 편균 수준보다 좀 높아진 감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위한 시는 표현이 쉬워야 한다는 절대에 가까운 조건에 얽매여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마나한 뻔한 소리를 내용으로 삼아온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고도화된 기교는 범속한 내용이라도 새로운 시의 빛을 발하게 하여 준다는 것을 이 시는 밝혀주고 있다. 결국 어린이를 위한 시란 소재나 내용면에서 한계성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고도의 기교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무턱대고 동심이란 아리송한 말만 내세우지 말고 평면적인 내용이라도 시의 기교를 통하여 깊은 맛을 만들어 내야 한다. 본래 훌륭한 시란 어디서 어디까지가 내용이고 기교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김요섭 어효선의 심사평)

   오월이 되어 장미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는 걸 봅니다. 그런 걸 지은이는 '장미꽃 봉오리에 / 포옥 / 싸인 오월'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장미꽃 한 잎 한 잎이 벗겨지고 있는 사이에 벌이 몇 차례 다녀간 적이 있는데, 이걸 '윙― / 꿀벌 / 또 한 겹 / 벗기고 가고' 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치 벌이 장미꽃 꽃잎을 직접 벗기고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은 평범한 내용이라도 남다른 각도에서 보고 느끼고 표현했기 때문에, 마지막 연에 가서는 그 시적 감동이 극에 이르고 있습니다.
 (허동인)
 

 하 청 호    

   산은
   말이 없다.
   거대한
   침묵의 덩어리다.

 

   엄청난 침묵에
   숨이 막힐 것 같아

 

   산개울이
   작은 소리로
   얘기를 하고 있다.

 

   쉬임 없이
   조잘대고 있다.

   산이 '거대한/ 침묵의 덩어리'라고?
  그렇다. 누가 산이 말하는 걸 보고 들었겠는가. 수억만년 입 다물어 엄청난 침묵만을 쌓아올린 산.
  그런 사람 앞에 앉아 있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그런데 산은 숨구멍을 터놓았네. 조잘조잘 재잘재잘.
  산개울이 대신 침묵의 덩어리에 바늘구멍을 뚫으며 정답게 얘기를 해 주고 있네.
  정겹구나, 산개울. 
(박두순)
 

 

어머니의 등

하 청 호     

  어머니 등은
  잠밭입니다.

 

  졸음 겨운 아기가
  등에 업히면,

 

  어머니 온 마음은
  잠이 되어
  아기의 눈 속에서
  일어섭니다.

 

  어머니 등은
  꿈밭입니다.

 

  어느새
  아기가
  꿈밭길에 노닐면,

 

  어머니 온 마음은
  꿈이 되어
  아기의 눈 속으로 달려갑니다.
  아기 마음도
  어머니 눈 속으로 달려갑니다.

            

 

폭포

하 청 호   

       폭포 앞에 서면
       수만 마리로 쏟아지는 세 떼 소리
       솟아오르는 새 떼 소리.

       깊은 숲 속
       숱한 산새 소리들이 몰려와
       일시에 토해 내는 소리.

       곤두박질치며
       허연 날개 퍼덕이며
       치솟아오르는 소리.

       푸른 물 속에
       허연 속살 번쩍이며
       자맥질하는 소리.

       하늘에도 땅에도
       내 몸에도

       온통 휘감으며 달라붙는
       저 소리
       수만 마리의 새 떼 소리.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감각 기관으로 붙잡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 기관은 눈, 코, 입, 귀, 피부 등이지요.
  폭포물 소리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매우 자세하게 그려 냈습니다. 
  우리도 쏟아지는 폭포를 감각 기관으로 느껴 보고 그것을 무엇에 어떻게 비겨서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김종상)
 

 

폭포(1)

하 청 호   

       폭포 앞에 서면
       수만 마리로 쏟아지는 세 떼 소리
       솟아오르는 새 떼 소리.

 

       깊은 숲 속
       숱한 산새 소리들이 몰려와
       일시에 토해 내는 소리.

 

       곤두박질치며
       허연 날개 퍼덕이며
       치솟아오르는 소리.

 

       푸른 물 속에
       허연 속살 번쩍이며
       자맥질하는 소리.

 

       하늘에도 땅에도
       내 몸에도

 

       온통 휘감으며 달라붙는
       저 소리
       수만 마리의 새 떼 소리.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감각 기관으로 붙잡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 기관은 눈, 코, 입, 귀, 피부 등이지요.
  폭포물 소리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매우 자세하게 그려 냈습니다. 
  우리도 쏟아지는 폭포를 감각 기관으로 느껴 보고 그것을 무엇에 어떻게 비겨서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김종상)
 

 

폭포(2)

하 청 호    

   누구인가.

 

   높푸른 바위 벽에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치는
   저 힘찬 손길

 

   흰 물감 듬뿍 찍어
   하늘에서
   땅으로
   단숨에 내리긋는
   저 힘찬 붓질

 

   하얀 폭포.

 

 

풀씨 이야기

하 청 호     

  겨우내 길고 긴 밤
  화로 속에 깊이 묻어 둔 불씨처럼
  한 알 풀씨는
  지난 해, 볕바른 양지에서
  해님이 묻어 둔 초록 불씨입니다.

 

  겨울 찬 바람에도
  용케 견디어 온 초록 불씨
  봄바람에 되살아나
  산과 들에
  초록 불을 지핍니다.

 

  한 알 풀씨에 붙은 불은
  동구 밖을 지나
  보리밭 이랑마다
  산등성이마다
  푸른 아우성으로 일어섭니다. 

 

   봄이 되면 산에서 들에서 일제히 일어나는 풀씨. 겨우내 해님이 묻어둔 초록 풀씨.
  산과 들에서 봄바람을 타고 초록불을 지핀다고 했습니다.
  초록 풀씨가 초록불이 되어 동구 밖을 지나 산등성이마다 불을 지피고 있다는 묘한 발상이 남다르지 않습니까! 
(허동인)

  

     하 청 호(河淸鎬)

1943년 12월 14일 ∼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면 출생.
대구사범학교를 거쳐 한국방송통신대학 초등교육과(전문과정) 및 동대학 행정학과(학사과정) 졸업.
1972년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둥지 속 아기새>가 당선, 1973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봄에>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함.
'현대시학'에 시 <오동나무>가 천료됨으로써 동시와 함께 시도 쓰고 있음.
1976년 세종아동문학상,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 1991년 방정환문학상, 2005년 대구광역시문화상, 2006년 제2회 윤석중문학상 수상.
2006년 황조근정훈장 서훈. 
동시집 : 둥지 속 아기새(1974)
            빛과 잠(1976)
            하늘과 땅의 잠(1979)
            보리, 보리 문둥아(1982)
            하늘엔 또 하나 새 별이 뜨고(1984)
            잡초 뽑기(1986. 대일) 
            풀씨 이야기(1994. 대교출판) 
            풀과 별
            새소리 그림자는 연잎으로 뜨고
            큰나무가 작은 나무에게
            무릎학교(2003. 10. 만인사)
            초록은 채워지는 빛깔이네(2006. 8.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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