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49
생태주의와 생태시
홍문표
(1) 21세기와 에코토피아
① 21세기의 환상
정보통신의 혁명 - 앨빈토플러의 제3의 물결(농업-산업-정보) 지구촌시대. 디지털시대. 하이 퍼리얼리즘. 싸이버리즘
생명공학의 혁명 - 생명연장, 생명체조작, 헉슬리의「Brave new world」
신중심주의 - 인간중심주의 - 물신주의 - 과학신주의
② 자연파괴와 종말론
환경오염 - 지구온난화, 천재지변, 쓰나미 현상
생태계 파괴 - 우주, 생명, 인간, 유기적 관계, 먹이사슬 관계, 생존질서파괴
유전공학 - 생명 체계변화, 난치병, 괴물, 변종의 재앙
③ 인간중심주의의 허실
하나님의 천지 창조 - 인간. 생명체 모두 피조물-자연 인간 모두 보시기에 좋았더라
아담의 원죄 - 선악과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 의 계율)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 인간의 영원한 유혹)
아담의 후예들 -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헤겔,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
인간중심주의 - 이성중심주의 - 인간우월주의
인간 - 만물의 영장
자연. 생물 - 하등한 것. 파괴의 대상. 인간 욕망의 대상. 자연파괴 정당화.
과학기술의 발달 - 자연파괴 가속화. 농업시대 - 산업화. 자본주의. 공장공업, 대량생산. 대 량소비, 자본. 재화 돈 중심의 물신시대. 인간상품화.
④ 휴머니즘 - 인간중심주의 - 이성중심주의
모든 사물의 가치화 계량화
모든 인간의 서열화 계급화
플라톤 - 본질과 비본질. 진리와 비진리. 인간의 서열화
공자 - 도와 비도. 군자와 소인. 인간의 서열화.
⑤ 플라톤과 공자와 이성중심주의
그들은 이성적 가치기준을 정하여 본질과 비본질, 도덕과 부도덕, 문명과 야만, 선과 악 등 이분법적 사고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서열주의는 귀족과 평민, 양반과 상놈, 남성과 여성, 주인과 노예 등 계급주의를 정당화했고 마침내는 식민지 개척을 위한 전쟁이나 계급투쟁을 위한 피의 숙청,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운 나치즘의 유태인 학살 등 민족주의, 제국주의, 계급주의, 전체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파괴적인 폭력을 휘두르게 된 것이다.
⑥ 인간중심적 디스토피아에서 생태시의 에코토피아로
이처럼 인간 우월주의, 이성중심주의가 가져온 기술문명과 물신주의가 자연환경과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고 인간 생존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디스토피아(distopia)의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생태문제를 인식하고 모든 생명체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자생력을 회복하여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공존 공영하는 생태회복의 낙원(ecotopia)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것이 21세기 비평의 최대 화두일 뿐만 아니라 생태시(ecolyric)의 목표가 된다.
(2) 생태시의 형성
① 생태시의 의미
생태시(ecolyric)라는 명칭은 헤켈이 제시한 생태학(ecology)과 서정시(lyric)의 합성어다. 생태학이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시가 사물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라면 생태시는 생명체와 환경의 상호관계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된다.
② 생태학과 생태시
생태학이란 특정한 유기체와 주변환경 간의 연관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생태학적 인식구조와 생명존중의 철학,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환경보호 운동의 여러 이념이 생태시의 정신적 기저(基底)를 형성한다. 생태시는 이 같은 학문적, 사회적, 정치적 인식에 근거하여 인간, 동물, 식물이 생태계의 변화에 어떠한 반응과 변화를 나타내는가를 사실적인 언어로 재생해내는 현대시의 한 장르이다.
③ 기존의 시, 인간중심의 시
지금까지 시라고 할 때 공통된 조건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음악적인 언어, 상상적인 언어를 통하여 미적인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시의 주체가 철저히 인간이라는데 있다. 인간의 사상, 인간의 감정만을 유일한 시의 주제로, 시의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비록 사물이나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일지라도 이것은 인간의 사상을 자연에 투사하거나 동화하여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나타냈을 뿐이다. 따라서 자연은 다만 타자이고 수단일 뿐이고 주체나 목적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④ 생태시의 특징
생태시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사실적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시이며 환경파괴의 사회적 원인들을 고발함으로써 독자의 비판의식과 개혁의지를 일깨우려는 목적성을 가진 시다. 그리하여 생태시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독자로 하여금 모든 생명의 고귀함과 존엄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며 생명체뿐만 아니라 자연환경까지도 인간과 유기적 공동체임을 인정하고 생명과 우주의 유기적 질서를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여기에 상생주의(相生主義, win-win theory)라는 21세기 철학이 있다.
⑤ 생태주의와 환경주의
생태주의는 환경주의와 다르다. 환경주의자들은 자연 파괴의 문제를 인간의 이성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견지한다. 그들은 인간의 생활공간을 편리하고 쾌적하게 조성하기 위해서라면 주변의 자연환경을 충분히 가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는 끝내 인간중심주의다. 따라서 생태주의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차등의식, 소유의식을 갖는 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자연과 대등한 관계, 공존의 관계회복이라는 근본적인 의식 개혁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생태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평등을 내세우는 인간중심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자연과 우주 모두가 평등한 생태학적 민주주의, 절대의 민주주의다.
(1) 독일 중심의 생태시
① 생태시 운동의 출발
생태시 운동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독일어권에서 1950년대 태동기를 지나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고엽제 살포 등 환경오염. 각국의 핵무기 개발 등에서 반전 반핵 운동이 기폭제가 되어 녹색당. 그린피스가 가동되고 1970년대는 독일의 경우 환경정화노력이 전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운동이 시로 구체화되어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 독일의 생태시 1950~1980」 가 제작된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의 시인 92명이 쓴 206편의 생태시 앤솔로지
②「시조새의 꿈」 - 파충류와 인간이 공존했던 생태학적 에코토피아
오랜 세월동안 나는 너를 알고 있단다
수천 년 동안
늪처럼 이끼처럼
웃음을 머금고
그 시절을 되돌아보며
예감하는 나,
- 발터 헤레러의 「시조새의 꿈」에서
③ 물, 공기, 대지의 오염
우리는 대지의 살점을 도려내고
대지의 피부로부터 털을 깎듯
숲을 베어 냅니다.
더구나 구멍 숭숭한 상처 속에
아스팔트를 메꾸어 숨통을 틀어막지요
어느새 우리는 대지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인정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강도가 되어
밤낮 구별 없이
대지를 약탈하고 있습니다.
- 엘케외르트겐의 「대지」에서
④ 산업화, 도시화, 기술문명, 물신주의
우리 모두 마음껏 즐겨보자
우리는 쾌락의 칼로
하늘의 내장을 도려내 버렸다
천사들은 이미 노래를 멈추었으니
뮤직박스를 틀어라
광란의 재즈로
발을 뜨겁게 달구어라
- 다그마르 닉의 「증명」에서
⑤ 지구 멸망의 묵시록
어제 우리는
마지막 남은 늑대들을 쏘아 죽였다
이제
들판은 영영 정복된 셈이다
사과나무도 잔디도 우리의 것이 되었고,
세상은 온통 정원으로 변해가 된다
- 한스 위르겐 하이제의 「징후」에서
(2) 미국의 생태시
① 미국생태시의 형성
미국에서 생태학과 문학의 관계는 19세기 미국의 문인이자 사상가인 에머슨과 소로우로 거슬러 갈 수 있지만 네이쳐 라이팅(Nature Writing)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명으로 생태학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시가 씌어진 것은 197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나 머윈(W.S Merwin), 시어도어 레스키(Theodore Roethke), 에이드리엔 리치(Adrienne Rich) 의 시들이 생태학적 관심을 보이고 있다.
② 게리스나이더의 「거북이 섬」
해변가에 위치한 유레카.
핵발전소, 쌓아 논 목재더미.
타지 사람이 주인인 제재소들.
나무들이 잘려나간
산둥성이의 그루터기.
바다 안개 언저리에 서 있는 유레카.
여기 사는 사람은 누구도
이 마을을 다스릴
힘이 없다.
- 게리 스나이더의 「유레카에서의 예술인들 모임」에서
(3) 생태시의 두 유형
① 고발적, 사실적, 르뽀적 생태시
1952년 런던 상공에 하얗게 피어오른 구름떼가
불과 일주일 만에 성인 4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 그 구름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 스모그
이것은 스모그(연기)와 포그(안개)를 합쳐놓은 이름이다
(화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산화황과 질산이 결합된 물질로서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흔히 광화학 스모그라고도 한다)
-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의 「시 아닌 글」에서
② 은유, 상징 등을 사용한 세련된 문학형식의 생태시
새의 몸뚱이는 풍만하다
뼈들은
바닷 속으로 떨어져 내리고
피에 젖은 감람 잎사귀들이
앞으로 앞으로 흘러가는데
깃털들이 흘러가고
물고기들은 날아가며
나는 목이 마르다
- 에리히 프리트 「홍수」에서
(1) 생태주의와 동양사상
① 불교와 생태주의
불교에서는 인간의 죽은 영혼이 초목조수에 깃들인다는 전주설(轉住說)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과 자연이 적대관계가 아니라는 생명사상이고 특히 자타불이(自他不二) 라는 아트만(Atman)사상도 생태주의와 관계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성불(成佛)이라는 점에서 인간중심적 요소가 있다.
② 노장사상과 생태주의
노장사상은 무위자연(無爲自然) 만물일체(萬物一體)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일체 인위적인 사고와 행동, 공자적 태도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생태주의와 일치하나 적극적인 친자연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허무를 강조한 소극적인 생태주의라고 할 수 있다.
(2) 한국생태시의 형성
① 과거 한국의 시와 생태
과거 한국시는 생태학적 관심보다 자연에 대한 관심, 향가에서 주술성, 고려가요에서 보는 현실 도피처로서의 자연, 조선조에서 보는 불변성에 대한 도덕적 가치, 서경적 자연, 현대 서정시들이 보이고 있는 심미적 자연, 모더니즘 시가 보여주는 탈 개성적 자연들이다.
② 생태시의 확인
우리 문학사에서 생태문제가 거론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다. 사회단체로 환경보호단체들이 있었고 정부에 환경청이 생긴 것도 역시 이 시기에 이르러서다. 생태주의 비평으로는 신동춘, 최병현, 손유성, 이동승, 박이문, 송용구, 김욱동, 문덕수, 홍문표 「한국생태시의 과제」(1991) 등이 있고 시집으로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 고진하와 이경호가 엮은 생태사화집 「새들은 왜 녹색별을 떠나는가」가 출간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생태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연대의식이 가시화되었다. 그밖에도 김지하의 「중심의 괴로움」 신진의 「강」 강남주의 「흐르지 못하는 강」 이승하의 「생명에서 물건으로」 고진하의 「우주배꼽」 정현종의 「한꽃송이」 문정희의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송용구의 「풀피리 소리보다 향기로운」 홍문표의 「지상의 연가」 「나비야청산가자」 등이 있다.
(3) 한국 생태시의 유형
① 환경파괴 실상을 르뽀 형식으로 고발한 작품
그날 그 도시에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이
영문도 모르게 설사와 구토 피부병을 시작했고
임신중인 산모들이 태아를 유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 김용락의 「대구의 페놀수돗물」에서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사옵니다.
낮은 땅의 뜻만
땅에서 창궐하고 이사옵니다.
동맥경화에 걸린 샛강과
폐암에 걸리고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공장들
피가 맑아야 한다는 동의보감은
휴지가 되고 있사옵니다.
자외선이 쏟아지는 하늘 구멍을 향해
사람들은 대패질을 계속합니다.
- 강남주의 「비행기에서 보는 세상」에서
② 생태파괴로 인한 종말, 묵시록의 언어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자면 흘러내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 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 최승호 「공장지대」 일부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들이 일어날 때의 시간인데도
산의 그늘만이 길게 뻗쳐 있다
햇빛이 해골의 눈 속을 통과하여
바람이 불고 오늘은 눈이 내린다
지구는 혼자 외로이 겨울을
빠져나가면서 공중에 떠 있을 분
인류는 모두 어디에 갔는가
- 고형렬의 「지구묘」에서
③ 생태주의 먹이사슬의 문화. 생물 평등주의 그 마지막 희망
똥보면 베먹고 싶어
새벽 샘물
샘 뒤 언덕 위
산죽닢 스쳐 오는 바람을 마셔
동트는 분홍 산봉우리 흰 안개구름 마셔
똥만 보면 못 견디게 베 먹고 싶어
내 몸이 곧 흙이어설 게야
흙이 똥을 마다 안함
오곡이 장차 가득가득히 익어 끝내는
열매 열리게 될 터이어설게야
똥 속에 배시시
애린이 웃어설 게야
꼭 그럴 게야
- 김지하의 「똥」에서
올해도 꾀꼬리는 날아왔다
마음 놓인다. 꾀꼬리야,
(걱정 많은 생명계의 균형의
숨은 움직임을 번개처럼 알리니)
네 소리의 품속에 안기고 또 안긴다.
네 소리의 경전에 비하면
다른 경전들은 많이 불순하다.
번개처럼 귀밝히며
또한 천지를 환히 관통하는
이 세상 제일 밝은 광음(光音), 새소리!
아, 올봄도 꾀꼬리는 날아왔다.
1991년 5월 7일 오전 9시 43분.
- 정현종의 「한」에서
우리집 아이들은
딸기를 먹을 때마다
신을 느낀다고 한다
태양의 속살
사이사이
깨알같은 별을 박아 놓으시고
혀 속에 넣으면
오호! 하고 비명을 지를 만큼
상큼하게 스며드는 아름다움
잇새에 별이 씹히는 재미
문정희의 「딸기를 먹으며」에서
늘 푸른 강물이듯이
나는 당신의 목덜미를 잡고
당신은 내 외로움의 등줄기를 잡고
할딱거리는 대낮의 정사처럼
엉클어지는 운명이게 하소서
바다는 강물의 발목을 잡고
강물은 청산의 겨드랑을 잡고
해적선 노예들의 족쇄처럼
화인 맞은 엉덩이의 문신처럼
나는 당신의 폭력이 되고
당신은 나의 눈물이 되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훠이훠이 날아가는 서역 구만리
홍문표의 「늘푸른 강물이듯이19」에서
홍문표시창작강의 노트 50
페미니즘과 여성시
홍문표
(1) 페미니즘 운동
① 아담과 이브
지상의 역사는 누가 쓰기 시작한 것일까. 아담일까. 이브일까.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었겠지만 에덴에서 득죄하고 추방되는 인간사의 주체는 단연코 이브였다. 어느 민족의 역사를 보아도 원시시대는 여인이 중심인 모계사회였다. 그만큼 당초의 여성은 강한 존재였다. 그러나 농경사회 이후 노동력이 생계의 수단이 되면서 또한 자본과 화폐가 모든 가치와 삶의 중심이 되면서 차츰 남성의 역할이 우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류의 역사는 이제 남성 중심으로 쓰여지게 되었다. 남성 중심의 역사는 철저히 여성을 차별화하고 복종하게 하고 지배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문화다.
② 분노한 이브
사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는 함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하였다. 그만큼 공평하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도 역사는 오랜 동안 남성중심으로 왜곡되어 왔다. 최근 여성들이 이러한 불평등의 역사에 반기를 들었다. 남성중심의 역사를 바로잡고 여성을 여성 본래의 자리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feminism)이다. 따라서 페미니즘 문학이나 페미니즘 시는 여성의 제값 찾기를 위한 모든 활동이다.
③ 경계허물기 시대의 전략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 그리고 생태주의가 제기되면서 본격화된다. 이들 논리의 핵심은 기존의 모더니즘이 이성중심주의, 언어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라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남녀차별이 있고 서열이 있고 계급이 있고 불평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지금까지의 서구문화는 이성=합리=남성=진리, 감성=불합리=여성=비진리라는 등식의 가부장제, 남근중심주의였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사고체계의 해체를 주장했다.
④ 여성비하의 논리
밀레트(K. Millet)는 『성의 정치학』에서 남녀문제를 기본적으로 성(性)의 권력투쟁으로 파악한다. 남자들이 그 헤게모니를 빼앗기지 않고 여성들을 영원히 복종시키기 위해 거짓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그것을 진리로 제도화시킴으로써 여성들을 억압하고 속박해 왔으며 거기에 세뇌된 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이데올로기 속에 안주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제도가 가부장제(partriarchy)이고 대표적인 이데올로기가 바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라고 보았다.
한편 남녀의 문제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보봐르는 제2의 성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을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사실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라서 여성의 집단적 자각만이 이 불평등한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엘만(M.Ellmann)은 여성에 관한 사고에서 미국문학에 나타난 상투적인 여성의 속성을 보면, 무정형성, 수동성, 불안성, 제한성, 실용성, 순결성, 물질주의, 정신주의, 비합리성, 순종선, 반항성 등 11가지 유형이라고 한다. 이를 요약하면 천사와 마녀라는 이원화된 이미지로 구분될 수 있다. 집안의 천사는 현모양처형 여성으로, 가사노동과 육아에 속박되어 가정의 평화를 위한 순종적인 여성형이고 마녀형은 남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주체적 여성을 억압하기 위해 고안한 모든 악의 조력자로서 여성형이다.
⑤ 최근 여성문학의 과제
최근 여성의 문제나 여성의 글쓰기의 문제를 보면 여성의 역사와 여성 문학사의 재구성, 문학적 정전의 문제, 여성과 대중문화, 사회가 구성하는 성(gender) 개념과 생물학적 결정주의, 양성(androgyny)개념, 동성애 문학, 성적으로 읽기, 여성적 글쓰기의 본질과 이 글쓰기를 생산하는 조건, 성차별, 여성적 언어의 특수성과 이런 언어의 존재 여부, 가부장적 언어의 전복 문제, 주체성과 성적 정체성의 구성, 여성적 인식론의 가능성 등이다. 여기서 페미니즘 문학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여성으로서 글읽기, 여성적 글쓰기, 성차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할 수 있다.
(2) 전통적인 여성시 양상-복종 애원 남성중심
① 백제시대의 정읍사
달하 노피곰 도다샤 달이여 높이 좀 돋으시어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아! 멀리 좀 비치옵소서
어긔야 어강됴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시장에 가 계신가요
어긔야 즌 대랄 드대욜세라 아! 진 곳을 디딜까 두려워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느 곳에든 놓고 오십시오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랄셰라 아! 내 님 가는 그 길 저물가 두려워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아으 다롱디리
출전 : 악학궤범, 백제시대 어느 행상의 아내, 행상을 떠난 남편의 무사 귀환 염원.
④ 고려시대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가시렵니까 가시렵니까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날 버리고 가시렵니까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증즐가 대평성대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나더라 어찌 살라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버리고 가시렵니까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잡사와 두어리마나난 붙잡아 두고 싶지만
선하면 아니 올셰라 서운하면 오지 않을까 두려워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셜온님 보내압노니 나난 서러운 님 보내옵나니
가시난 닷 도셔 오쇼셔 나난 가자마자 다시 오소서
위 증즐가 대평성대 위 증즐가 대평성대
임과의 이별의 정한
기 - 원망적 애소 , 승 - 애소의 고조, 전 - 전제와 체념, 결-기도자적 애소.
⑤ 조선조의 여류 시조들
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春風니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굽이굽이 펴리라
- 황진이
임이 가신후 소식이 頓絶하니
窓밖에 櫻桃花가 몇 번이나 피였는고
밤마다 燈下에 홀로 앉아 눈물겨워 하노라
- 송대춘
(1)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의미
① 남성의 영원한 타자
고대 사회에서는 여성은 영원한 타자다. 남성은 자기의 주체를 확립하려 할 때 그 주체를 한정하고 부정하는 타자가 필요했고, 따라서 여성은 비본질적인 타자가 되었다. 타자로서의 여성은 언제나 종속적이고 부차적이고 부정적이다.
②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이분법
프로이드는 그의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성적욕망이라고 보고 특히 남성과 여성의 욕망이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표현된다고 하였다.
남성 - 지팡이, 양산, 막대기, 나무, 모자, 칼, 창, 총, 수도꼭지, 연필, 넥타이, 뱀, 열쇠, 산, 하늘 등
여성 - 구멍, 웅덩이, 동굴, 항아리, 병, 트렁크, 상자, 방, 호주머니, 배, 종이, 책, 테이블, 달팽이, 조개, 교회, 사원, 숲, 사과, 복숭아, 구두, 마당, 셔츠, 물, 바다 등
융은 인간의 정신 내면에는 남성의 경우는 아니마 (anima), 여성의 경우는 아니무스 (animus)라는 심리적 원형을 지닌다고 했다. 아니마의 원형은 남성의 정신에 있어서 여성적 측면이며, 아니무스의 원형은 여성의 정신에 있어서 남성적인 측면이다.
아니마(anima) - 남성의 여성적 측면, 영원한 여성상, 처녀, 여신, 천사, 마녀, 악마, 거지, 창부, 친구, 악녀, 베아트리체, 헬렌, 이브, 춘향, 심청, 소, 고양이, 호랑이, 뱀, 동굴, 몽상, 꿈, 언어, 이상적 자아, 밤, 휴식, 평화, 부드러움, 선
아니무스(animus) - 여성의 남성적 소망, 명배우, 권투선수, 정치가, 지도자, 이상적 남성, 독수리, 황소, 사자, 창, 탑, 현실, 역동성, 낮, 염려, 야심, 동물, 능동, 분열, 합리적 추상적 사고, 국가, 사회.
③ 신성과 타부로서 여성
그러나 여성을 타자로 해도 끝내 자연현상은 여성을 신성시하고 타부시한다. 이는 모든 생명들이 대지와 물에서 탄생하고 여성으로부터 종족이 탄생한다. 그런가 하면 모든 생명은 대지로 돌아간다. 이는 여성으로 돌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지는 탄생과 죽음이 있고 여성도 탄생과 죽음이 있다. 어머니인 대지는 그 뱃속에 그녀의 아이들의 유골을 내포한다. 인간 운명의 실(系)을 쥐고 있는 것은 여성인 것이다. 전설 속에 죽음의 모습이 여성의 얼굴로 되어 있고, 죽음 자체의 주재가 여성의 소관임은 흔히 쓰이는 「운명의 여신」 이라는 말이 뒷받침해 줄 것이다.
④ 마녀재판과 처녀귀신
서양에서는 모든 불행이나 잘못된 일에는 늘 마녀나 마귀할멈 짓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17-8세기에는 이단이나 이상한 짓을 하는 여인을 잡아 처형했다. 동양에는 처녀 귀신이 귀신 중에도 가강 무서운 귀신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속설도 모두 남성중심주의가 낳은 것들이다.
(2) 남성의 여성지향적인 시
① 여성 편향의 시
이상의 논거에서 볼 때 남성의 영웅적인 모습, 또는 독재성을 드러낼 때는 여성성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독재자나 영웅들은 여성을 제외한다. 그러나 남성이 또는 남성적인 사회가 죽음이나 탄생의 생사문제, 극단적인 선과 악의 문제. 민족, 집단, 사회가 이념적인 것을 지향할 때 감성적인 삶을 지향할 때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남성은 모성이나 여성을 지향하게 된다. 이브의 원죄를 저주한 남성의 역사는 마리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찾게 된다. 우리의 현대시사에서 특히 일제하에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를 여성적 편향(female-complex)라고 한다.
② 모성지향적인 시(mather- complex)
나는 王이로소이다 나는 王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 아들 나는 王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十王殿에서도 쪼끼어난 눈물의 王이로소이다.
「맨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이럿케 어머니서 물으시면은
「맨처음으로 어머니 받은 것은 사랑이엇지오만은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하겟나이다 다른것도 많지오만…
-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5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축축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니
서리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 신석정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
③ 님 지향의 시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한생 緣연分분이며 하날 모랄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 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데 노여 업다. 平평生생애 願원하요데 한데 녜자 하얏더니, 늙거야 므삼 일로 외오 두고 글이난고. 엊그제 님을 뫼셔 廣광寒한殿뎐의 올낫더니 그 더대 엇디하야 下하界계예 나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삼年년이라. 臙연脂지粉분 잇내마난 눌 위하야 고이 할고. 마음의 매친 실음 疊첩疊첩이 싸혀 이셔, 짓나니 한숨이오, 디나니 눈물이라.
- 정철 「사미인곡」에서
맨첨에 만난 님과 님은 누구이며 어느 때인가요
맨첨에 이별한 님과 님은 누구이며 어느 때인가요
맨첨에 만난 님과 님이 맨첨으로 이별하였읍니까 다른 님과 님이 맨첨으로 이별하였읍니까
나는 맨첨에 만난 님과 님이 맨첨으로 이별한 줄로 압니다
만나고 이별이 없는 것은 님이 아니라 나입니다
이별하고 만나지 않은 것은 님이 아니라 길가는 사람입니다.
- 한용운 「최초의 님」
④ 누이 지향(sister-complex) 의 시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바져나와 바닷가에서자.
비로소 가슴울렁이고
눈에 눈물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진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 비늘을 닮아야하리.
천하에 많은 할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 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 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 박재삼 「밤바다」
⑤ 여성화자의 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그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五月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덜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의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三百예순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1) 개화기에서 1960년대까지
① 이 시대 여성문학 개관
개화기 문학에서 여성문제가 거론된 것은 1900년 이해조의 「자유종」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부인들이 모여 남성에게서 억압받는 여성의 인권문제를 질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성의 문제가 시로 거론된 흔적은 찾기 어렵다. 1920년대에 김명순, 김원주, 나혜석 등 여성문인이 등장하는데 많은 에피소드만 있고 작품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1930년대는 김오남, 노천명, 모윤숙, 백국희, 장정심 등이 이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여성 시인들이다. 그 중에서는 단연 모윤숙과 노천명이 돋보인다. 모윤숙이 기교에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 자유분방한 정열을 표출하는 시인이었다면, 노천명은 단아하고 명상적이며 회화적인 절제된 정서를 표현하는 시인이었다. 이 두 여성 시인들의 대조적인 시 세계를 후대에 와서도 여성 문학의 두 흐름으로 여기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광복, 좌우 대립, 6.25와 산업화 초기 단계를 거치는 동안 매우 두터운 여성 문인층이 형성되었다. 이때 활발한 활동을 보인 여성 시인들로는 이영도, 조애실, 이영희, 노영란, 홍윤숙, 김남조, 허영자, 김지향, 김하림, 김여정, 임성숙, 김윤희 등을 꼽을 수 있다. 많은 문예지들과 일간지의 신춘문예 등을 통해 등단한 이들 여성 문인들은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말까지 이른바 여류문학의 전성기 동안 질적 양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시에 대하여 평자들은 ‘과거지향적’이며 ‘단조로운 방법으로 전통적인 한국 여성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으며 ‘정서적인 긴장감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② 이 시대 여성시 애정 모티브
임이 부르시면 달려 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라시면 나는 가지요.
임이 살라시면 사오리다.
먹을 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덤이로 옘집 채찍 맞으면서도
임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죽음으로 갚을 길이 있다면 죽지요.
빈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니요.
내 임의 원이라면 이 생명을 아끼오리.
이 심장의 온 피를 다 빼어 바치리다.
무엔들 사양하리, 무엔들 안 바치리.
창백한 수족에 힘 나실 일이라면
파리한 임의 손을 버리고 가다니요.
힘 잃은 그 무릎을 버리고 가다니요.
- 모윤숙 「이 생명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族屬)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질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 노천명 「사슴」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 김남조 「너에게」
(2) 1970년대 이후 여성시
① 이 시대 여성시 개관
1970년대 민중문학의 열기를 거쳐 8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시, 90년대의 생태주의, 사이버리즘의 문화현상은 그동안 모더니즘이 고집해온 모든 경계들이 허물어지고, 이러한 세계의 변화는 여성의 경우 여성해방은 물론 여성의 정체성 찾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70년대에 등장한 강은교의 사색적 허무주의, 그리고 김승희의 파괴적 내면주의는 고정희의 씩씩한 민중적 상상력과 짝을 이루고 있으며, 그녀들의 가열한 내면세계와 시대정신은 80년대의 최승자에 이르면 가장 치열한 종합을 이룬다. 이어 등장한 김혜순의 블랙유머를 기조로 한 경쾌한 악마주의는 성숙한 모성적 인식으로 심화되고 있으며, 황인숙은 아주 독특한 감각적 시세계를 그려 보인다. 90년대 시단의 한 징후로 보이는 포스트모던한 글쓰기를 볼 수 있으며, 이선영,이진명 등의 한국 여성시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시인들을 한 줄에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원칙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들이 개인에 따른 편차는 있지만, 그녀들은 특히 남성들에 의하여 「여성적」이라고 여겨져 왔던 시문법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들이 여성이 되기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이다.
② 페미니즘 시대의 여성시 보기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허허벌판에 누워/ 깨끗한 남자를 기다린다.// 불꽃이 울면서 짐승같이/ 젖무덤 속으로 기어든다.// 나무들은 간지러워/ 푸른 소리를 지르고// 드디어 그 남자가/ 길을 무찔러오는 소리// 부끄러운 머리채를 이끌며/ 내가 어둠과 함께 도망친다.// 바람 지나가면/ 날개가 크게 걸리는/ 거미줄을 타고/ 얼굴 모르는 신과 만난다.// 뱀과 미친 깃털이/ 낄낄거리며 흩어진다.// 모든 것을 용납하는/ 그 야수의 무덤 속으로/ 나는 바삐 숨는다.
- 문정희 「떠오르는 방」
남자가 모여서 지배를 낳고
지배가 모여서 전쟁을 낳고
전쟁이 모여서 억압세상을 낳았기 때문에
국토분단 장벽보다 먼저
민족분단 장벽보다 먼저
남녀분단 장벽허물 일이 급선무
- 고정희 「여성해방출사표」에서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 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 최영미, 「마지막 섹스의 추억」
어떤 마법의 한 마디를
이 타들어 가는 갈색 육체 위에서 간직할 수 있을까.
푸른 공작새를 위한 어떤 먹이.
어떤 황홀한 불의 최면 상태가
형태도 없이 떠가는 이 피의 방주를
다시 완전케 할 것인가
어떤 주문의 모차르트
어떤 장미의 원소.
어떤 태양의 기억이?
- 김승희, 「어떤 흑연빛 시간의 오이디프스」
나의 눈 코 이 어깨 허리 다리 발 심장 신장 대장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이 모두가 한번은 버려져야 할 것들이다
낡아가는 것들. 종종 고장이 나고 마침내 수명이 다하는 것들과 함게 살아간다
그 어느 해 가을과 또 다른 해의 가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례로 그랬듯
버려질 엄마 아버지 남편 그리고 나
버려지기 전까지는 손발 닳도록 살아간다
- 이선영, 「버려진 냉장고」
조용하여라. 한낮의 나무들 입 비비는 소리는. 마당가에 떨어지는 그 말씀들의 잔기침. 세상은 높아라. 하늘은 눈이 시려라. 계단을 내려오는 내 조그만 애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때처럼. 눈시울이 붉어라. 만상이 흘러가고 만상이 흘러오고. 조용하여라. 한 해만 살다 가는 꽃들. 허리 아파라. 몸 아파라. 물가로 불려가는 풀꽃의 해진 색깔들. 산을 오르며 사람들은 빈 그루터기에 앉아 쉬리라. 유리병마다 가득 울리는 소리를 채우리라. 한 개비 담배로 이승의 오지 않는 꿈. 땅의 양식을 이야기 하리라. 만상이 흘러가고 만상이 흘러가고
- 이진명, 「청담(淸談)」